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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물처럼 단단하게>라는 제목부터가 심상치가 않다.부드러움과 단단함이 서로 대조적이면서 그 속에 커다란 함의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물은 부드럽지만 때로는 포효과 같은 웅대함과 거친 생명력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부커상을 수상하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옌롄커작가가 내놓은 작품들은 중국정부측에서 보면 꽤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이면서 껄끄럽기만 할 것이다.그러나 중국의 실상과 진실을 알고자 하는 독자들은 그의 작품 속의 내용과 문체를 알고자 갈망하고도 남는다.무엇이 그를 '중국 최대의 문제 작가'라고 낙인을 찍었을까요.중국이 시장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 속에서 G2국가의 위용을 떨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중국 공산당 창립이후 중국경제 및 국가발전을 저해해온 것(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6.4천안문 사건 등)들이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고수 속에 그 베일을 세상에 노출시키는 것은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고 정치민주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1950년대 소련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던 중국이 경제 지원이 끊겨지면서 소련을 수정주의자로 매도하면서 그들만의 사회주의 노선을 걸으려 했던 중국은 '대약진 운동'을 펼치면서 중국시 농업과 공업발전을 꾀하려 했지만 자연재해,뒤떨어진 생산방식 등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발전은 더디어만 갔다.그러던중 중국식 경제개발 계획이 1962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기존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경제개발 계획,지침과 주자파(走資派)로 불리는 덩샤오핑,류사오치 등과의 갈등,그리고 신편 역사극인 해서파관(海瑞罷官)이 마오의 체제와 이념에 반하고 (그의 아내 장칭이 고발)하여 반혁명,반체제 인사들을 대거 숙청하고 지식인들을 시골로 보내 강제노역을 통해 사상 개조를 행했던 것이다.그 와중에 유명한 문인들(라오서,바진 등)이 자살 및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문혁은 형식적으론 1969년에 끝났다고 공포했지만 그 후유증은 마오의 죽음과 4인방이 숙청될 때까지였다고 보여진다.
이 글은 단연 문화대혁명 기간에 일어났던 일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작가 특유의 문체가 여러 소재를 잘 반죽해 놓았다는 인상이 크다.주인공 가오아이쥔과 샤홍메이가 이끌어 가는 혁명 이야기가 단순히 마오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혁명과 혁명 방법에 대한 이론에서 시작되어 가오아이쥔과 샤홍메이가 혁명 전사로서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적시하면서 그 길을 위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사답게 밀고 나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문혁은 기존의 낡은 제도 즉 낡은 사상,낡은 풍속,낡은 문화,낡은 관습인 사구(四舊)척결을 내세우면서 지식인,반혁명분자,지주,부농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다 비판투쟁을 통해 한 인간을 수렁텅이에 빠뜨리고 수치와 모욕,갱생의 길도 주지 않았던 암흑의 문혁이었다.

문혁기간중 자아비판,비판투쟁의 희생양이 된 지식인들의 공개 장면
혁명가의 아들로 태어난 가오아이쥔은 활달하면서 자신의 혁명 동지가 되어 줄 샤홍메이를 교외 철도에서 만나 둘은 혁명의 길을 함께 할 것을 언약하고 부창부수와 같이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해 나간다.둘은 유부남,유부녀의 입장이지만 서로는 한 눈에 반하면서 혁명활동을 하면서 시간이 나는데로 만나고 정분을 쌓아 나간다.남녀가 이십대이고 현재의 아내,남편과의 잠자리가 불만족스러웠으면 외도 아닌 외도를 매우 농염하게 펼쳐 나가는데 옌롄커작가는 이 욕정 해소를 통해 혁명의 길이 순조로워질 뿐만 아니라 혁명에 반하는 아내,샤홍메이의 남편,시아버지마저 숙청을 하는 것이 당과 혁명에 충실하는 것으로 여기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도 한다.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이러한 행위는 패륜적이고 비인륜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져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 가오아이쥔은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서 방해,가시와 같은 존재는 제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뿐이다.
혁명 완수와 출세를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들의 애정행각이 어느덧 샤홍메이의 시아버지도 감지되면서 이들은 반혁명 간통 살인죄라는 죄명으로 특별구류를 살게 된다.그러다 가오아이쥔은 옛 혁명열사들의 삶을 회고하면서 탈출을 시도하다 다시 감옥으로 제발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이 관 서기에 의해 추죄를 받은 이유는 관 서기가 갖고 있던 한 장의 사진이 분실된다.사진은 마오의 부인 장칭의 사진이었는데 이 사진이 없어지면 관 서기는 관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사진이 분실된 것을 이 둘에게 덮어 씌우려는 데에 있었고 결국 사진은 찾지 못한 채 가오아이쥔과 샤홍메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가고 만다.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에도 격렬한 키스로 하나가 되어 육신은 사라져 가도 영혼만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 두 명의 혁명 열사를 통해 마오와 장칭,저우언라이와 덩잉차오의 관계도 연결되어 상기되었다.이념과 사상을 완결시키기 위해서는 인정과 피,눈물도 모두가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장대한 서사시와 같이 도도하고도 육중하고 차가우면서도 농염한 정사신(Scene)은 근래 보기 드물었기에 매우 충격적인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치닫고 중국 인민들의 교육수준,의식구조가 높아져 가고 있기에 정치민주화는 시간 싸움이 아닐까라는 예측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