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의 마법 - 당신도 모르게 꿈을 이루어주는 비밀의 힘
존 윤(윤형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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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유익한 도서를 접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이 많이 들었다.또한 저자가 유쾌발랄한 언어 감각과 다양한 부류층과의 일화나 간접 체험담을 실례로 보여 주어 8의 마법을 이해하는데 가일층 쉽게 다가옴을 실감했으며 매사 부정적이고 저돌적이며 일방통행을 하는 분들에게는 실천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며 상대방이 저절로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으리란 예감도 들었다.

원래 중국의 중심부(양쯔강)에서 밀려난 하카족들이 홍콩,인도네시아,필리핀등지로 밀려 나면서 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영위하면서 부를 일궈낸 비밀,비사등이 범상치 않게 실려 있어 읽는 내내 하카족이 어떤 민족일까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거명만 해도 너무나 잘 알려진 쑨원,장졔스,떵샤오핑,리떵후이,코라손 아키노 여사등 거물급 인사들 모두가 하카족으로서 당대를 풍미한 인사들이다.그들은 8이라는 숫자에 모든 것을 걸고 총력을 기울이는 듯하다.중국어 발음으로는 ’빠’라고 하며 신년인사로는 꿍시파차이라고 하는데 ’파’는 재물을 얻어서 번창하다,행운을 불러들인다는 뜻으로 신년에는 돈을 많이 벌어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서인지 파 소리와 비슷한 빠를 그들의 속성상 좋아하게 된 것 같다.중국에서 가장 큰 빌딩도 1999년 8월 8일 88층으로 우뚝 솓아 있고,지난 올림픽도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에 거행되었고,신차도 88자가 들어간 번호는 부르는게 값이었고 하며 그외에도 전화번호,비밀번호등에 8자를 선호한다고 한다.불가사의하며 미신적으로도 느껴지지만 중국인의 샤머니즘에 입각한 건지 과학적인 요소에 근거한 것인지는 미스터리일 뿐이다.

저자는 8의 마법을 실천하는 3단계 전략을 제시하는데 IBL(Imagine,Brige,Leave) 즉,행운을 잡기 위해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생하게 상상하고,상상한 미래와 현실 사이에 중간 다리를 놓고,지금 갖고 있는 헌 믿음을 버리라는 것이다.그런 연후에 비로소 새 믿음과 함께 훨씬 성장한 미래의 나로 탈바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카인의 특징을 네 가지로 압축해 놓고 있는데,

1.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는 각고내고의 정신
2.자신을 지키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강건홍익의 정신
3.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업근면의 정신
4.하카인들끼리 힘을 합쳐 고난을 이겨나가는 단결분투의 정신


상기 항목4는 주목을 받을 만하다.왜냐하면 해외에 나가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우연히 동족(하카)을 만나면 반갑고 따뜻하게 대하며 어려운 점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일마냥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인데,가끔 미주지역에서 교포가 한국에서 온 한국인을 만나면 막 ’배에서 내린 촌놈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고국에서 온 같은 민족이지만 따뜻하게 대하고 도움을 주어도 그 때뿐이고 돌아서면 은혜를 까맣게 잊는 다는 것이다.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IBL을 실천하고 순조롭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강력한 말의 힘과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팬클럽의 힘,반복과 집중의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말의 약속을 지키는 힘이 그들의 역사를 이루어냈고,자신과 맞지 않는 부류라 할 지라도 넓은 마음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자신의 행운을 이루어가는데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평소에 부정적이며 나약한 생각을 많이 한 편이라 이 도서를 통해 다소는 위안이 되었고,강한 신념과 희망에 가득 찬 모습으로 타인에게 대할때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과 의식 작용은 다르게 다가오리라 확신이 서며 자신의 행운을 이루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모습보다는 강력한 말과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아갈때 ’행운의 여신’은 나에게 저절로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믿음이 선열한 이미지로 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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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1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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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현대 사회의 흐름과 구조를 파악할 수가 있다.나아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을 수가 있을 것이다.길게는 조선시대의 유교체제와 봉건적인 사회상 그리고 무능력하고 앞을 내다볼 줄 몰랐던 구한말 위정자들의 안이한 자세와 태도가 국권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던 아픈 역사가 있었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의연히 일어선 의용군,독립운동가,뜻있는 인사들이 자주적인 독립을 원했건만 약한 국력 앞에 강대국들은 또 한 번 이나라를 어두컴컴한 터널로 몰고 가고 말았던 것이다.

 

독립의 기쁨도 잠시였을 뿐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이념과 사상의 종속국가로 몰락하면서 뜻있는 인사들은 신탁통치를 분연히 반대하면서 자주독립국가의 실현을 위해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이승만정권과 김구는 한 판 승부를 벌이지만 이승만정권의 비호하에 김구는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아울러 이승만은 5.10선거를 앞두고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술수에 불과했다.나아가 1948년 제주도에선 군.경에 의한 남로당 계열과 무고한 주민들이 대량 학살되고 여.순반란 사건까지 번져 나간다.이를 기화로 정권유지용으로 국가보안법의 서막이 이루어지면서 국가체제에 반하는 자들은 무조건 잡아 들여 무참히 인권탄압을 자행한다.

 

이 글이 1945년 해방무렵부터 1960년 4.19에 이르기까지의 불행하고 굴곡진 이승만 정권의 실상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서중석저자는 해방 50주년을 맞이하여 갑자기 정부에서 '이승만 살리기'를 접하면서 극우반공세력,극좌혁명세력,중도합작세력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3년 동안 어떻게 활동했는가를 연구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를 출판한 이후 조봉암과 4월혁명에 관한 자료를 모은던 중 이승만 정권에 초점을 맞춰 논문과 저서를 준비하여 이 도서의 집필에 착수했다고 한다.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승만 정권을 매도하던 언론세력들이 이제는 이승만,박정희 신드롬을 추켜 세우고 있다고 하니 과연 이 나라에 정치민주화란 무엇인가가 허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을 등에 업고 탄생한 이승만정권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추한 한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권에 방해되는 세력은 가차없이 학살을 저지른 짐승만도 못한 추악한 인물이다.제주 4.3사건,여수반란사건,지리산 빨치산 사건,보도연맹사건 모두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였다.그런데 이러한 인물을 미화하고 추켜 세우려고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나아가 1956년 5.15정부통령 선거에서 장면부통령 죽이기,진보당 조봉암 죽이기,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획책한 3.15 부정선거가 1960년 마산에서 김주열의 죽음으로 4.19의 도화선이 된다.파죽지세로 몰려 오는 학생과 군중의 위세에 눌린 이승만은 불안한 상황에서 깃발을 내려야만 했다.

 

한국현대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권력욕이 강했던 이승만,박정희 정권 모두 장기 독재정권을 탐하려다 끝내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던 인물들이다.그들을 미화해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인권을 유린하고 자주독립,민주화의 요구를 묵살하고 권력에만 혈안이 되었던 그들의 종말은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역사 바로 세우기는 끝난 것이 아닌 진행형이기에 국가와 민족,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설익은 상태로 끝내서는 안될 것이다.확고한 의지와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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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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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의 대문장가였던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20세기 독일 문학가였던 토마스 만,헤르만 헤

세,프란츠 카프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이다.쇼펜하우어는 허무주의에 빠졌고 니체는 생(生)철학의 실존주의자로 각인되고 있다.수많은 인물 중에 왜 하필이면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글쓰기,글에 대한 생각이 중요할까.그것은 글을 쓰면서 사고하는 맹목적이고 상업적인 글쓰기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그들의 메시지가 교훈과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엊그제 읽은 니체의 문학으로의 삶을 통해 니체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어떻게 글을 쓰고 글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 보는 것은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듣기로는 전세계적으로 1초당 86,000여권의 각종 출판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팸플릿부터 계간지,격월간지,단행본,사전 등 수도 없어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이 중에 과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아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글을 잘 쓰는 사람,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들은 천부적인 자질과 재주를 타고 나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문학적인 소양과 능력이 있는 부모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지만 요는 고전과 같은 양서를 읽어 가면서 쓰고 지우고 첨삭하고 탈고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 내야만 글이 글답게 세상에 탄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책을 많이 읽되 생각하지 않은 글쓰기는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오랜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글의 내용과 문체는 전달력도 떨어지면서 독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지 않을까 한다.

 

쇼펜하우어는 민간 문필가로서 글쓰기와 글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다.글쓰기에 대한 신념이 매우 강하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자부심 또한 높기만 하다.쇼펜하우어의 글은 <소품과 부록>에서 글쓰기나 책과 관련되는 '스스로 생각하기','글쓰기와 문체','책과 글읽기','박식함과 학자에 대하여'에서 그의 글쓰기,문장론을 소개하고 있다.그는 글쓰기에 관해서만큼은 일목요연하고 확고하기만 하다.니체 글쓰기,문장론에 관한 저서는 남기지 않아 그가 남긴 <인간적인 것,너무나 인간적인 것>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학> 등에 실린 글을 모아 놓은 것을 발췌하여 소개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경우에는 형편없는 저술가,기자들이 독일어를 훼손하는 것에 분노하여 유언처럼 글을 남겼다."앞으로 나의 글을 출판할 때 단어 하나와 음절,글자와 구두점이라도 훼손하는 자는 나의 저주를 받으리라."라고 했다.그는 특별히 할 말이 있을 경우에만 글을 쓰고,돈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생전에는 빛을 발하지 못한 그의 작품이 후세에 세인들에게 주목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반면 니체는 문체를 중시하여 글을 쓸 때마다 글의 내용에 적합한 문체를 찾았는데,<인간적인 것,너무나 인간적인 것>에서 아포리즘(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낯설게 제시하여 다르게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것) 형식을 취하고 있다.그는 아포리즘 형식으로 글쓰는 이유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자는 그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중략)이처럼 잠언을 이해하려면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걸어갈 수 있는 정신의 거인이라야 한다.거인은 발밑의 난쟁이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멀리 떨어진 위대한 친구의 목소리는 분명히 듣는다고 했다.

 

쇼펜하우어가는 저자를 세 부류로 나누고 있는데 '사고하고 나서 집필에 착수하는 사람들' 사고를 했기에 글을 쓸 뿐이라는 것이다.보기 드문 저술가의 글쓰기는 몰이사냥과 같아 짐승이 이미 우리 속에 잡혀 들어가 있으므로 사냥꾼은 이제 목표를 정하여 쏘기(서술)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얼마나 멋진 비유이고 명확한 말인가.둘은 공통적으로 웃고 춤추는 것을 가르치는 책을 원하고 있는데 글 속에 잔잔한 웃음과 유머,기지를 보여 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150여 년이 흘렀지만 그들이 남긴 글쓰기,문장론은 오늘날 글쓰기를 삶의 어떠한 방식으로 취하고 있든 커다란 교훈과 본보기가 된다.잘못된 글쓰기를 바로 잡아 나가야 함은 물론 조잡한 생각이나 단상으로 이야기를 펼쳐 놓으려 하는 얄팍한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문학적인 미를 완성하고 세상을 비추어 주는 고전과 같은 작품을 많이 읽고 깊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 글쓰기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면 비로소 몸과 마음,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해 가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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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 유시찬 신부의 인생공감
유시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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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을 찾기 위해 내면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마음으로 사색하면서 늘 이 문제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길은 평등하면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잘난 사람이 죽어서 호화로운 묘를 만들어 후손과 주위에 널리 알리고 못난 사람은 죽어 한줌의 재가 될지라도 죽음 이후에는 그 사람이 생전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가치에 중점을 둘 뿐이지 돈과 권력,명예의 다소로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한다.즉 살아 있을 때 가족과 주위,사회에 어떠한 영향과 평판을 남겼는가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는 노령화인구의 증가로 노후문제가 커다란 이슈가 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서 기회비용을 셀 수도 없이 잃어가고 있다.설령 취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자녀교육비,생계비,노후문제가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하여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부류도 생기도 있다.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GDP)가 수치로는 높지만 실질적인 삶의 만족도는 밑바닥을 헤매고 있다는 반증이다.나아가 현재의 이십대와 베이비 붐 세대와의 소통과 대화가 부족하여 밀어 주고 이끌어 갈 세대간 단절도 커다란 문제가 아닐까 한다.

 

유아부터 대학까지 부모님이 자식에게 쏟아 부은 교육비만 해도 몇 억은 들어 갔으리라.그렇게 교육투자를 했어도 몇 십 퍼센트만 자신이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취업을 위해 또 다른 기회비용을 들이면서 고생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 실정이다.또한 교육인적자원부가 내놓은 교육정책도 늘 조삼모사와 같이 수시로 바뀌면서 일선 학교,학부모들에게 학생들의 진로 문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문제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교육은 백년대계'인 만큼 교육정책을 펴는 관계자는 넓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협소하게 짜맞추기 식이다.독서,토론,논술 아무리 외쳐대도 일선에서 보여주는 것은 공교육을 못믿어 사교육으로 모두들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좋은 대학,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사교육도 모자라 몇 년씩 랭귀지 코스를 밟으면서 아예 해외유학까지 마치는 부류도 있다.금전 여력이 뒷받침 되기에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허탈하고 무기력하기만 할 뿐이다.

 

스펙이 취업에 중요하다고 해서 수많은 스펙을 쌓았지만 이제는 스토리텔링으로 넘어 가고 있다.어느 곳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시대가 급박하게 변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잣대도 수시로 바뀌는 상황이라 취업생들은 긴장의 연속이다.취업문이 좁으니 기업은 정해진 인원내에서 어떻게든 옥석을 가려야 하는 것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비사회인으로서 업무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원만한 성격,성실성과 책임감 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스펙과 스토리텔링을 위해 취업생들이 치뤄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치일 것이다.누구를 봐주고 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경쟁상대일 뿐인 사회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사회적 인간관계 역시 자기 코드와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법인데 한국사회는 그 정도가 지나칠 정도이다.정치권을 비유하면 그들의 정강과 이념이 타당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헐뜯고 인신공격하고 심지어는 폭행도 불사하는 추태를 보여 주고 있다.그들이 면책권을 교묘히 이용하여 방약무인과 같은 행태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것도 자라나는 어린이,청년층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고스란히 물려 받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해 주고 포용하려는 상생의 실천을 이제는 정치권부터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소외된 계층 및 사회적 약자는 늘 외롭고 고독하고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과 압박감을 못견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대학총장을 역임하고 신부로 다시 돌아온 유시찬저자의 이 글은 경쟁,상극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메시지가 강렬하기만 하다.온실 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이제는 기지개를 활짝 펴고 광활한 우주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를 주문하고 있다.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한데 사람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부모의 온실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자립하기를 바라고,새로운 것,새로운 사람을 찾아 '접속'해 나가야 하고,스티브 잡스와 같이 영적 지도를 찾아 참선에 몰두하고 앉았을 때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내적 에너지를 길어 올릴 수 있다고 한다.자신의 생명을 가장 강하고 아름답게 끌어 줄 동인(動因)이 아닐까 싶다.

 

무한대의 경쟁 속에서 모두가 지치고 허탈하며 우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지식의 축적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영적 세계를 쌓아 가는 거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자신과 주위,자연과 세계를 향해 생명력 있는 삶을 새롭게 꾸리고 보다 차원 높은 세계의 주인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마음의 자세,태도를 전환시키는 것은 어떨까 한다.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새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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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 - 행복할 경우 읽지 말 것!
아르튀르 드레퓌스 지음, 이효숙 옮김 / 시공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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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삶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그런데 사랑과 행복이라는 것은 수치로 계산하고 환원할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말이기에 개인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달라지리라 생각한다.그중에 행복은 삶 가운데 소중한 덕목 중의 하나이지만 요근래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 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다들 먹고 살기 바쁘고 돈에 찌들려 살아가다 보니 자신에게 다가온 만족감의 발로인 행복이 왔을지라도 채 그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흘려 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지 않을까 한다.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누리면서 사는 보람과 가치를 타인들과 공유해 나가는 것이 소소한 행복거리가 아닐까 한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생전 제 할머니께서는 증손자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증손자 한 번 보고 죽는다면 더 이상 원(願)이 없겠다고 하셨다.그러나 결혼 한 해를 앞두고 치매성 질환으로 돌아가시면서 할머니께 증손자를 보여 드리지 못했다.그러한 말이 나올 때 결혼을 염두에 두고 데이트를 하고 대상을 할머니께 인사시키며 서둘러서 결혼을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할머니께서는 그러한 바람이 사는 보람이었을 것이고 소소한 행복이었으며 혈육의 끈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할머니의 바램을 생전에 보여 드리지 못한 점이 두고 두고 가슴을 애리게 한다.그러나 인명재천이라 인력으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 때도 있다.

 

아르튀르 드레퓌스저자는 20대 젊은이로서 80대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벗의 얘기를 듣고 행복의 단상을 메모 형식으로 짧게 짧게 그려 나가고 있다.모두에서도 말했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나이와 입장,신분과 여건,상황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돈과 물질이 풍족하고 신분이 높아도 그것이 행복의 증표일 수도 없고 그 반대인 상황일지라도 수분지족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다.행복도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이 내게 달겨들 수도 있고 멀리 떠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오늘날과 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가 복잡하게 이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때에는 나보다 못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고 마음을 이어 나가는 구축과정 속에서 행복 만들기는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온갖 감정이 일어난다.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이 연결고리마냥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한다.너무 많은 것을 탐하고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마저 악화되어 간다면 이것 또한 행복을 망치는 길이 아닐까 한다.산다는 것은 늘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혼가 가는 길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삶의 동반자가 되어 힘을 합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목표 지향점을 향해 살아가야만 한다.그러다 보니 좋은 관계로 시작했을지라도 삶의 길에서는 예기치도 않고 복합변수가 도출되면서 이해관계로 서로 충돌하면서 갈라 서는 경우도 많다.타협점을 찾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생각과 주장이 강하다 보니 관계의 열매가 결실을 보지 못하고 낙과하는 경우와 같다고 보여진다.젊은 혈기로 만났을 경우에 특히 개인의 생각과 감정,주관이 강해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나이가 많아지면서 개인의 경륜과 경험,처세술이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서로 타협할 줄 알고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인가를 삶의 경험으로 판단하기에 그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오래 이끌어 가는 동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복은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을 자신만의 계획과 목표대로 살되 사행길을 접어 들지 않고 제도와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과 인간관계를 돈과 물질보다는 배려와 존중,관용으로 대하면서 관계 만들기를 꾸준히 이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만족을 느끼고 행복지수가 높아져 가지 않을까 한다.세계적으로 한국이 행복지수 밑바닥,자살율 최고라는 불명예스러운 오욕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고 돈과 물질로 대하려 들고 사회 양극화로 인한 사회구성원간의 불화도 커다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행복이라는 진부한 주제를 놓고 보니 행복은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다.현재의 삶에 충실해지려는 것도 행복의 디딤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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