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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 독일의 대문장가였던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20세기 독일 문학가였던 토마스 만,헤르만 헤
세,프란츠 카프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이다.쇼펜하우어는 허무주의에 빠졌고 니체는 생(生)철학의 실존주의자로 각인되고 있다.수많은 인물 중에 왜 하필이면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글쓰기,글에 대한 생각이 중요할까.그것은 글을 쓰면서 사고하는 맹목적이고 상업적인 글쓰기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그들의 메시지가 교훈과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엊그제 읽은 니체의 문학으로의 삶을 통해 니체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어떻게 글을 쓰고 글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 보는 것은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듣기로는 전세계적으로 1초당 86,000여권의 각종 출판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팸플릿부터 계간지,격월간지,단행본,사전 등 수도 없어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이 중에 과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아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글을 잘 쓰는 사람,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들은 천부적인 자질과 재주를 타고 나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문학적인 소양과 능력이 있는 부모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지만 요는 고전과 같은 양서를 읽어 가면서 쓰고 지우고 첨삭하고 탈고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 내야만 글이 글답게 세상에 탄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책을 많이 읽되 생각하지 않은 글쓰기는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오랜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글의 내용과 문체는 전달력도 떨어지면서 독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지 않을까 한다.
쇼펜하우어는 민간 문필가로서 글쓰기와 글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다.글쓰기에 대한 신념이 매우 강하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자부심 또한 높기만 하다.쇼펜하우어의 글은 <소품과 부록>에서 글쓰기나 책과 관련되는 '스스로 생각하기','글쓰기와 문체','책과 글읽기','박식함과 학자에 대하여'에서 그의 글쓰기,문장론을 소개하고 있다.그는 글쓰기에 관해서만큼은 일목요연하고 확고하기만 하다.니체는 글쓰기,문장론에 관한 저서는 남기지 않아 그가 남긴 <인간적인 것,너무나 인간적인 것>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학> 등에 실린 글을 모아 놓은 것을 발췌하여 소개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경우에는 형편없는 저술가,기자들이 독일어를 훼손하는 것에 분노하여 유언처럼 글을 남겼다."앞으로 나의 글을 출판할 때 단어 하나와 음절,글자와 구두점이라도 훼손하는 자는 나의 저주를 받으리라."라고 했다.그는 특별히 할 말이 있을 경우에만 글을 쓰고,돈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생전에는 빛을 발하지 못한 그의 작품이 후세에 세인들에게 주목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반면 니체는 문체를 중시하여 글을 쓸 때마다 글의 내용에 적합한 문체를 찾았는데,<인간적인 것,너무나 인간적인 것>에서 아포리즘(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낯설게 제시하여 다르게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것) 형식을 취하고 있다.그는 아포리즘 형식으로 글쓰는 이유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자는 그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중략)이처럼 잠언을 이해하려면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걸어갈 수 있는 정신의 거인이라야 한다.거인은 발밑의 난쟁이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멀리 떨어진 위대한 친구의 목소리는 분명히 듣는다고 했다.
쇼펜하우어가는 저자를 세 부류로 나누고 있는데 '사고하고 나서 집필에 착수하는 사람들'은 사고를 했기에 글을 쓸 뿐이라는 것이다.보기 드문 저술가의 글쓰기는 몰이사냥과 같아 짐승이 이미 우리 속에 잡혀 들어가 있으므로 사냥꾼은 이제 목표를 정하여 쏘기(서술)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얼마나 멋진 비유이고 명확한 말인가.둘은 공통적으로 웃고 춤추는 것을 가르치는 책을 원하고 있는데 글 속에 잔잔한 웃음과 유머,기지를 보여 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150여 년이 흘렀지만 그들이 남긴 글쓰기,문장론은 오늘날 글쓰기를 삶의 어떠한 방식으로 취하고 있든 커다란 교훈과 본보기가 된다.잘못된 글쓰기를 바로 잡아 나가야 함은 물론 조잡한 생각이나 단상으로 이야기를 펼쳐 놓으려 하는 얄팍한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문학적인 미를 완성하고 세상을 비추어 주는 고전과 같은 작품을 많이 읽고 깊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 글쓰기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면 비로소 몸과 마음,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해 가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