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개정판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의 삶은 큰 의미에서 보면 역사의 한 울타리 속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개인의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사회문제가 되고 그것은 점층적으로 하나의 역사의 틀을 형성해 나가기도 한다.특히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시대보다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사상과 이념으로 내란과 전쟁 등은 유년기의 어린이들에겐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아픔과 상처가 남긴 트라우마는 결코 잊혀질 수가 없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현기영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되는데 해방후 작가의 고향인 제주의 풍광과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하게 놀던 기억과 추억 그리고 한국현대사에 씻지 못할 오명인 4.3 제주항쟁의 와중에서 무고한 제주 양민들이 국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살해 당하는 광경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작가의 상상력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 살아 있는 당시의 단상을 오밀조밀하게 들려 주고 있어 현장감과 향토애를 느낄 수도 있지만 잘못된 이념의 누명을 안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양민 학살사건이 작가의 고향 근처에서 발생하고 이 기억이 작가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전율감과 공포심마저 들게 한다.

 

이 글은 작가의 유소년기가 대부분이다.고향 마을에서 목도했던 4.3 제주 양민 학살사건이 본격화 되고,작가의 나이 6세무렵 토벌대들에 의한 무차별적인 양민학살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얘기로도 당시의 상황을 들어가면서 소년은 공포증으로 시달리고 가정은 아버지의 부재로 늘 공허하기만 하다.집안 일에 무심하고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 아버지를 어쩌다 집을 찾아 오고 만나게 되어도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여겨지기에 냉랭하기만 한 가정분위기가 맴돌기도 한다.

(어머니)의 한몸으로 악착같이 절약하면서 집안을 꾸려나가는 모습은 한 머슴아 같기도 하고 꿋꿋한 여인네의 모습을 그려놓아 가슴 뭉클했다.그 당시는 암암리에 사회적으로 둘째 부인을 갖는 시대였는지 아버지도 사업차 인천에 머무르면서 알게된 여인과 오래도록 사귀어 오고 결국 백부에 의해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바라 보는 당시 작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그것은 혈육이라고는 하지만 사랑과 애정을 겉포장한 아버지의 모순되고 거짓된 언행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4.3항쟁으로 많은 양민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가면서 소년은 그 참상을 직접 겪으며 몸서리치는 기억을 담아가고 집안에서는 내성적이고 신경질적이도록 예민했던 성격이 주위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마냥 비쳐지지만 국어선생님 댁을 찾아가면서 서가에 꽃혀있는 책을 빌려 아프고 말못하는 냉가슴을 책으로 달래고 문학도로서 밑거름을 배양하는거 같았다.중학생이 되어서는 물가에서 보는 여인네의 풍만한 육체,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앳된 새색시가 좁은 공간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 보면서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숙맥이었던 작가에겐 이성을 알게 되는 설레임의 시기였을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작가의 아버지는 왜 가정을 등한시했는지 참 궁금합니다.어머니가 싫었는지 딴마음을 먹고 계셨는지는 모르지만...주인공은 성년이 되어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보내드리며 어릴적 일을 회고한다.자주 고향을 생각하고 찾으려 하는 것은 인간의 귀소본능인거 같다.그러면서 다음에는 자신의 차례라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임종장면에서 아버지 몸을 향을 낸 물로 씻겨 드리며 아버지와의 불행했던 시절을 작가는 화해하고 용서를 하면서 부자의 정을 되찾기도 한다.이 장면을 읽으면서 아버지께 못해 드린 불효가 후회가 되고 작가의 인간적인 진정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함마저 느끼게 했다.

또한 이 글은 작가의 어릴적 깨끗하고 무구한 제주의 풍광 및 주위환경이 외지에서 온 기업인들의 무분별한 토건으로 인해 수려한 제주의 자연이 크게 훼손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표하기도 하지만,작가는 어린 시절 속으로 돌아가 마음으로 보고 반추하면서 다가오는 죽음의 세계를 준비하는거 같다.소설이 대부분 픽션이지만 이번 작품은 작가의 자서전과 같이 지나온 시간과 세월,공간과 기억,추억을 하나로 묶어 담담하게 풀어 내고 있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201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2013년 '일본 서점 대상'2위의 랭크에 올라선 <64>는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이처럼 일본에서 맹인기를 끌고 있을지가 궁금했다.숫자 64가 가리키는 것은 쇼와 연화 맨마지막 해인 1989년이 쇼와 64년이면서 동년 동월 7일에 쇼와 천왕이 붕어(崩御)하면서 헤이세이(平成) 연호로 바뀌게 된다.쇼와 64년 1월 5일 일본 군마현에서 오기와라 소년의 유괴살인을 모티브로 하여 이 작품을 구상하고 출간했다고 하는데 구상,집필,출판에 이르는 시간은 10여 년이 걸렸다는 대작이다.

 

얼리답터로 선정되어 받은 가제본은 한 장당 네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육중하기만 하다.그만큼 요코하마작가가 신산한 공을 들이고 촘촘하면서도 리얼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추리의 완성품으로 다가온다.방대한 양이지만 내용이 계통성 있게 흘러 가는 점이 가독성을 더해 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또한 요코하마작가 특유의 경찰 조직과 언론사와 관계,조직의 생리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다뤄지고 있어 타조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도 남는다.

 

쇼와 64(1989년)년 초 D현에서 발생한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의 공소시효 1년을 남겨 놓고 또 다른 교통사고가 발생한다.이러한 사건을 정리하여 대외에 홍보하는 주인공 미카미는 20년을 형사직에서 근무하다 수긍하기 어렵게 경무부 홍보담당관으로 발령을 받게 되는데 그는 무슨 이유로 이러한 인사발령을 받았을까를 생각할 틈도 없이 언론사 기자들과의 입씨름에 휘말리게 된다.그는 홍보담당관이지만 경찰의 정의를 내세워 기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 신경을 쓰고,그의 머리 속에는 기자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이 생존비결이라는 것을 터득한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아카미는 그의 딸 아유미가 가출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못생긴 외모로 인해 살기 싫다는 말을 남기고 행방불명이 된다.경찰내부에선 밖으로 알려 사건수사를 하자고 하지만 경찰의 신분 체면도 있고 해서 아카미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하는 상황이다.그러는 와중에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이 미제(未濟)로 남은 상태에서 신임 경찰청장이 유괴 살인사건의 피해자 집을 방문하겠다고 하지만 당사자는 이를 완곡히 거절을 한다.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그 슬픔과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 가는 법인데 당사자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시적이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해 줄 증거물과 단서가 범인체포로 이어지는 것을 원할 것이다.형식적인 인사치레,위로는 당사자의 슬픔을 누그러 뜨리기는 커녕 경찰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악화시킬 뿐이다.

 

사람과 돈을 쥔 이가 정상에 선다,비밀을 흘리지 않고 오롯이 가슴에 품은 이들이 살아 남는다.

- 인상에 남는 말 -

 

기업에선 영업부가 꽃이고 경찰조직에선 형사부가 꽃이 아닐까 생각한다.우직하게 형사의 길을 걸어온 미카미는 홍보담당관이 싫든 좋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뇌리에는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미움을 받은 것은 아닌가라고 강한 추측과 회의를 느낀다.같은 입사동기인 후타와타리는 형사부장직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그 비밀은 '고다 메모'에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64사건이 발생하면서 미카미도 초동수사부터 끝까지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 발벗고 뛰었건만 근거없는 추측만 무성할 뿐 안타깝게도 미제로 남게 되었다.64의 비밀을 누군가는 알고 있겠지만 암묵의 규칙이라는 것이 경찰이 갖고 있는 존재의 이유를 파기하면서까지 형사부장직을 빼앗을 대의명분이 미카미에게는 없는 그저 일개 조직원일 뿐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삼켜야만 한다.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교통사고 가해자의 신상 공개하는 문제 그리고 아카미의 딸 아유미의 가출 사건을 넘어 자신의 인상문제까지 어느것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언론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해야 할 본분과 자세,그리고 조직 라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한 생존법 등을 놓고 미카미는 과연 살아 남고 승진하기 위해 윗선과 타협을 해야할 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그대로 지켜나가야 할 지를 놓고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을 것이다.그중에서도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은 사회악을 척결하는 차원에서 강력하게 다스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 - 우리가 알지 못했던 43가지 역사 이야기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 이야기,역사 소설을 보면 굵직굵직한 시대상황과 연계한 인물,사건,사고 등이 연결되어 서술하고 있다.저자의 예리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가미한 해제 등도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당대 얽혀 있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배경지식을 넓혀 갈 수가 있다.아울러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는 데에도 역사 이야기는 나름대로의 지식과 교훈,통찰력과 예측의 힘을 부여해 주기도 한다.

 

팍에 박힌 고루한 역사 이야기는 자칫 재미와 흥미,가독성을 잃을 염려마저 있지만 구체적인 이슈 및 에피소드는 나름대로 역사의 뒤안길을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일상에서 지인과 부담스럽지 않은 범위내에서 의견교환을 나눌 수가 있어 학습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자칫 딱딱해서 관심외의 대상이 될 뻔한 역사 이야기를 재미나는 에피소드와 교훈을 실어 준다면 읽는 재미를 안겨 주고 자신의 삶과 연계하여 통찰력과 비판력을 기르는 데에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1993년 2월부터 1년 2개월 정도 <FM은 내 친구>와 <밤의 디스크 쇼>에서 소개된 43편의 '세계사 뒷이야기'이다.한 인물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건과 비화가 공감이 가기도 하고 동정심이 가기도 하는 등 동류의식마저 일게 하였다.이름만 대면 거의 알 수도 있고 들어봄직한 인물들 위주로 구성이 되어 친근감마저 들게 한다.소개되고 있는 인물들은 비범하기도 하지만 인간내면의 사랑과 꿈,야망,거짓말,실수,오해,내면의 세계들을 다루고 있어 마치 그들의 심리세계를 엿보는 것 같아 흥미롭기도 했다.

 

베토벤이 사랑한 '불멸의 여인'에게 쓴 연애편지,팜므 파탈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의 사랑과 야망,<모나리자>는 다 빈치 자신을 그린 것인가,<목포의 눈물>과 <홍도야 우지 마라>에 얽힌 나라 잃은 비애,비행기와 낙하산의 시조는 중국이다,콜럼버스와 나폴레옹의 거짓말의 저의는? 희극과 비극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찰리 채플린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영친황의 약혼녀 민갑완의 한많은 사연 등이 소개가 되고 있다.

 

딱딱하지 않게 인물과 사건 등을 자료를 중심으로 어떻게 흘러 가고 인물의 내면의 모습은 무엇이었이며 당대 사회의 정체성과 한 개인이 처해있는 입장과 당위성 등을 밀도있게 그리고 있는 점이 현대인들에게 단순히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떠나 '나'라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 나갈 것인가를 자극하기도 한다.경우에 따라서는 그 인물들이 자신에게 롤 모델이 될 수도 있고 삶의 지혜마저 안겨 주기에 현재는 과거와의 대화이고 미래를 열어 가는 창이고 거울이라는 교훈을 새삼스레 얻었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나 지금이나 고위 공직자의 신분이라면 일상의 언행,몸가짐,처신을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다.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고위 공직자가 유부녀와 통간(通奸)을 하여 세인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회자가 된다면 나라의 체신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공직자간의 기강도 해이해지기 마련이다.그러나 남.녀간 서로 눈이 멀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이고 본성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사랑은 지체와 신분의 고하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지난 유교적인 봉건사회에서는 신분과 지체 등도 문제 삼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가혹한 벌을 내렸던 시절이 있었다.

 

불처럼 활활 타올랐지만 찬물을 끼얹은듯 이내 식어 버리고 만 <불의 꽃>은 읽는 내내 허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 없었다.김별아작가의 전작 <채홍>이 세종 며느리가 궁녀와 내밀하게 윤간(동성애)를 벌여 세종이 며느리를 쫓아낸 것이라면 이번 작품은 유부녀 유씨부인이 지신사(知申事) 조서로와 내통하여 고발 당하면서 세종은 강상죄(綱常罪)를 적용하여 참수형에 처하고 지신사는 아버지가 조선개국 공신이면서 현재 자신 밑에서 충성으로 업무에 임하는 것을 참작하여 극형보다는 유배형으로 마무리가 된다.

 

조실부모를 하고 탄탄한 집안인 조서로의 집으로 들어온 녹주는 청화당 할머니,이씨 부인,조반 등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데 훗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조서로라는 사내가 있었다.둘은 눈이 맞아 좋아하는 사이로 발전한다.이성을 알게 되는 시기에 조서로는 녹주가 독뱀에게 물려 상처를 혓바닥으로 빨아 준 사실을 이씨부인의 귀에 들어가면서 녹주는 결국 서로의 집에서 쫓겨 나게 되고 깊은 산 속 절로 들어가게 된다.반면 서로는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공을 닦아 관료로서 탄탄대로를 걷게 되지만 마음 속엔 녹주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나아가 관찰사를 지낸 이귀산은 부인을 잃고 아들마저 공주,옹주 등의 문제에 관여하다 임금의 심기를 어지럽혀 유배를 가게 된다.이귀산의 아내가 생전 자신을 위해 절에 불공을 많이 들인 것을 알고 마음을 다잡으려 개암사를 찾아 갔다가 그곳에서 필연인지 우연인지 그의 눈에 녹주가 꽂히면서 녹주를 후처로 데려 오게 된다.이귀산이 녹주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하지만 녹주는 은혜와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이런 와중에 이귀산의 집에 서로가 오게 되고 둘은 몇 십년을 못만난 오누이로 변신하면서 넘어서는 안될 깊은 사랑 속으로 빠지게 된다.사랑이 깊어 갈수록 상처는 더 깊이 패어가고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드러나면서 녹주는 참수형에 처해지게 된다.참수형에 처해지는 순간마저도 녹주는 서로에게 변치않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녹주야! 나를 미워해라.마음껏 원망해라!/나는 너를 단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다.너는 나였다.내 삶이었다.-

 

사랑은 말릴 일도 아니고 처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유교적인 봉건체제하에서는 강상(綱常)만큼 중요한 국가기강,규율을 없었으리라.천애고아로 자란 녹주는 그 위험하고 넘어서는 안될 심원한 사랑을 꿈꾸고 실현하려 했지만 당시 조선의 규율은 그녀 편이 아니었다.그녀에게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목숨을 걸고 한 남자에게 모든 것을 걸려고 했던 빛나는 청매죽마의 마음만큼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생 매창
윤지강 지음 / 예담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시대 팔천(八賤)은 사천(私賤)에 속하고 이들은 평민 계급으로서 그중에 기생이 있었다.노래와 시,서화 등의 재주에 능하고 국가급 연회,진연 등에 나가 지체 높은 사람들의 비위와 기분을 맞추면서 기량을 뽐내기도 했지만 일종의 자영업이었기에 국가로부터 일정한 급여를 받지도 못하는 핍진하고 궁핍한 생계를 영위해야만 했다.기생의 신분이었지만 시,악기에 능했던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기생 매창(梅窓)이다.

 

고향이 전북 부안이고 아버지(李湯從)은 거문고를 잘 타고 아전과 훈장의 삶을 살아가고 어머니는 명창으로서 일찍이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어 매창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부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매창은 유달리 딸에 대한 특별한 교육관으로 인해 당시 여자는 교육을 받게 되면 팔자가 사나워진다는 사회 분위기에 맞서 매창을 남장으로 변장케 하여 남자 학동들과 함께 학습을 하게 되었고 그녀의 시,노래,악기에 출중한 재주가 인정받게 되어 전주 교방(敎坊)에서 예기(藝妓)로 인정받게 된다.

 

매창이 살았던 시대는 붕당정치가 횡행하고 관료의 부패가 심했던 임진왜란의 전.후이다.임진왜란이 터지면서 왜군에 의해 무고한 백성들의 코와 귀가 잘려 나가고 강간과 도륙이 횡행했다.그녀가 태어나 자랐던 전라도 지방은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면서 민심이 흉흉하기만 했다.그러는 가운데 매창은 이성을 알게 되는 나이에 이르고 천인출신이지만 한시에 능했던 유희경을 만나게 되면서 매창은 유희경에게 반하게 되고 뜨거운 사랑을 불태워 나간다.시절은 하수상타 했던가,매창이 유희경을 만나던 해는 임란이 발발하면서 유희경은 의병으로 출전하게 되고 그와의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의미에서 매창은 그에게 은장도를 건네 준다.

 

매창은 유희경에 대한 연모의 정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속이 타들어 가는 상사병에 걸리게 되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유희경과의 꿈결과 같이 좋았던 시절을 떠 올리며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기별을 기다리지만 한 번 떠난 님은 함흥차사이기만 하다.매창이 한양으로 올라와 예기를 겨루는 진연에 참가했지만 국가의 사정이 악화되어 예기로서의 기량을 발휘할 기회마저 상실하게 되는데,마침 허균이 주최하는 야연(夜宴)에 초대되면서 그리고 그리워하던 유희경을 만나게 되지만 유희경은 이미 그녀에게 마음을 두지 않는다.그렇지만 매창은 유희경에게 자신의 정조와 절개를 확인시켜 주려 안간 힘을 쓰지만 결국 유희경으로부터 듣는 얘기는 싸늘하게 냉정하게 고향인 부안으로 내려 가라는 말이다.

 

매창은 명창이었던 생모 초제를 만나면서 그녀의 생부는 누구이고 왜 생모가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는가에 대한 곡절을 들으면서 간만의 부녀간의 애처로운 관계를 좁히기도 한다.그녀는 이제 사모하던 유희경에게 차이고 버림받은 몸으로 예기로서 다양한 재주와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사랑도 싸늘하게 식은 상태에서 고향인 부안으로 내려와 한많은 삶을 정리하고 객사(客死)를 하게 된다.그녀가 쓴 연애편지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가 남긴 시가 매창의 우울하고 애닯은 정조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독수공방 외로워 병든 이 몸에

고달프고 쓸쓸한 사십 년 길기도 해라.

묻노니 인생길 얼마나 된다고

가슴속에 맺힌 슬픔으로 하루도 눈물 흘리지 않은 날 없네.

 

매창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유희경을 잊어본 적이 없는 지고지순한 열녀였음에 틀림없다.같은 천인출신으로서 사회의 금기를 깨뜨리고 좋아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어 행복한 시간과 세월을 함께 나누려 했던 매창의 꿈은 한낱 물거품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기생의 신분으로서 다양한 끼와 재주를 지녔지만 당시 사회는 기생을 제대로 사람답게 대우할 수 없었던 사회였던 것이다.매창은 유희경외에도 허균 등 문인,사대부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꿈과 삶을 펼쳐 나가려 했던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이 글이 유희경의 촌은집(村隱集)과 허균의 성소부부고에서 차용했다고 하니 매창의 삶의 흔적과 그녀의 재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