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기술 - 발표 불안, 어눌한 말투, 목소리 떨림 등 말 못하는 당신을 위한 스피치 처방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3
김상규 지음 / 사이다(씽크스마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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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타고 나는 것인가,아니면 부단히 노력하고 연습해서 얻어지는 것인가? 아나운서와 같이 낭랑하고 담대하게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학가와 같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멋들어지게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그런데 이러한 사람들도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솜씨가 정교하고 설득력이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타고난 말솜씨의 소유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을 조리있고 설득력 있게 연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리라 생각한다.1:1로 만나는 친우가 아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목소리를 비롯하여 손짓,발짓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스피치 기술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개인의 표현의 시대를 맞이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소통과 공감력을 얻기 위해서는 알맹이 없고 실속없는 얘기는 천박하고 지루하여 듣는 사람을 멀리하기 십상이다.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더라도 색다른 화제,공감이 가면서도 재치와 유머를 적절히 활용하는 대화라면 친밀도는 더해가리라 생각한다.이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강단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경우에는 고도의 스피치기술과 청중들을 아우르는 재주와 능력이 겸비되어야 하기에 말하기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삶의 한 분야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흔히 식욕,성욕,수면욕을 기본욕구라고 한다.그위에 표현욕은 오늘날 개인에게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소소한 대화부터 청중들을 사로잡는 스피치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범위는 다양하기만 하다.사무적이고 형식적인 이야기보다는 관계와 소통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다니는 등 평소 배경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야 한다.나 또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면 아직도 서투르기만 하다.자신의 발표 자신감 결여가 크다는 것이 원인인데 발표할 기회가 많지 않지 않고 생래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이것은 할아버지,아버지의 영향이 큰 이유도 있지만 평소 자신의 역량이 부족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발표에 대한 준비와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장 환경,사회적 인식,고정관념,발표할 때의 상황 등의 발표 불안과 이미지,발음,발성,어투,콘텐트 미흡,준비 주복,경험 부족 등의 발표 자신감 결여를 놓고 볼 때 단연 발표 자신감 결여에 대해 깊이 인식하여 스스로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발성연습부터 어투,충실한 내용 전개 등을 염두에 두면서 연습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사람을 앞에 놓고 발표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된다.표현이나 말투,자세,몸동작 등을 직접 모니터해주면서 잘잘못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려 주기에 발표를 위한 좋은 스승이 되주기에 충분하다.나아가 전문적인 스피치를 원할 경우에는 스피치 코칭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스피치의 어느 부분이 결여되어 개선할 사항이 무엇인가를 조언과 가르침을 받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한다.예를 들어 복식호흡부터 말투,단어와 어구,어절 끊어 읽기 등부터 반복적으로 연습하여 말의 솜씨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특유의 유머와 농담 등도 섞어 가면서 스피치의 숙련도를 높여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밋밋하고 딱딱한 말투보다는 조리가 있으면서 공감과 소통이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한다면 표현력은 금상첨화가 되리라 생각한다.

 

 할 말은 너무 많은데 그것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중언부언하고,할 말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스피치로 구사하는 것이 안 되는 경우,진짜 할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스피치가 안 되는 경우가 제대로 된 스피치가 안 되는 경우일 것이다.나의 경우는 두 번째이다.분명히 할 말은 있는데 조리있게 말이 이어지지를 않아 스스로 답답할 때가 많다.생각과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어 말이 막힐 때가 있다.그래서 어떠한 얘기를 하더라도 머리 속으로 잠시 주제와 상황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기로 했다.우선 내 말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차분히 듣는 힘이 중요하고 그런 연후에 내 입장을 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스피치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그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발음연습,말투,억양 등을 최대한 살리고 내용의 충실도,설득력,유머 등을 적절하게 살리고 싶다.말을 잘하는 달변가보다는 성실한 자세로 다가가며 내가 발표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맺어 가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에게 말의 기술은 단지 표현을 하는 차원이 아닌 목적과 효익성,공감성을 함께 생각하면서 배우고 익혀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모든 일이 그러하듯 말의 기술도 후천적인 노력이 부단하게 이루어질 때 그 효과와 결실은 서서히 나타난다고 생각을 한다.알맹이 없는 말보다는 충실한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는 평소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다니고 타인들과의 대화와 토론의 과정에서 표현력은 좋아지고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도 좋아지리라 생각한다.말은 타고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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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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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따라 유랑극단,어머니따라 불공을 드리고 씻김궂을 보러 따라 다니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선연하다.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대 위에 알록달록 분장한 희극인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짙은 눈썹에 하얀 분가루를 진하게 바르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권위있는 자세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하기도 했다.실감나게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눈과 귀를 쫑긋히 하고 숨을 죽이면서 할머니와 구경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할머니 머리에는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손수건이 가려져 있고 배가 고프다고 하니 팥들어 간 찐빵을 사서 허기를 달래기도 하면서 유랑극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그리고 불교를 믿는 집안이라 사월 초파일에는 으례 절에 등불을 켜고 공양을 드리기도 하고 집안에 액운이 찾아 오면 유명한 무당을 찾아가 씻김궂을 벌이기도 했다.식구들의 앞날,죽은 조상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내복을 사서 가지고 갔다.무당은 의식에 따라 접신의 예를 갖추고 식구들의 사주를 보면서 액운을 풀어 주고 조상의 한을 달래 주었다.

 

 

진도 씻김궂

 

 한국 전통예술문화이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살풀이춤,태평무,판소리,궂거리 등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는 토속문화이다.백성들의 애환을 달래기도 하고 신명나는 춤과 노래로 좌중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손과 발동작,목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마다가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절제된 미가 압권이다.노래,춤,장단이 일체가 되어 풀지 못한 한을 풀어 내던 한국 고유의 샤머니즘 문화이다.이러한 춤과 소리가 어우러진 전통예술문화가 요근래에는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서구의 문화와 사상이 온천지에 만연하다 보니 자칫 사라질 염려마저 없지 않아 있다.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조지훈시인의 <승무>는 불교적 복식에 유교적 가치관을 띤 스님의 춤사위을 애절하게 다가온다.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꼬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뻗은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냥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승무(僧舞)

 

 우리의 전통예술문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진옥섭저자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의 춤꾼,소리꾼들을 찾아 다니며 춤 한 사위,소리 한 소절이라도 듣고 싶어 애간장이 탄 흔적과 발품이 가상스럽기만 하다.그 예인들의 증류수와 같은 목소리,한마리 학이 되어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소리의 달인이 된 득음의 경지는 두 눈을 집중시키고 마음의 깊은 골짜기까지 후려치고 만다.감탄과 감동이 절로 일어난다.저자가 만났던 예인들이 나이가 들고 질병이 찾아 오면서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바람과 이슬과 같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서글픔과 그리움을 동시에 안겨 준다.그래서 저자는 한 명이라도 더 뵙고 소리,춤의 무늬와 질감을 더 깊게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지난 시절 예인들과의 추억과 그리움,사모하는 정이 못내 아쉬어 다시 올 수 없는 시간 속을 마중 나가는 참이었다.

 

 

공옥진여사의 광대연기

 

 

 나에게는 소리와 춤으로 유명한 고(故)공옥진여사의 공연하던 기억이 선연하다.흔히 병신춤으로 널리 알려진 예인 공옥진은 신체가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사연을 진한 연기로 관중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대학시절 수업을 마치고 또 다른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이동하던 중 공옥진여사의 <병신춤>과 그녀의 찰지며 대담하기까지 한 표정과 대사에 강의받는 것은 잊은 채 표정과 말씨를 진지하게 구경했던 시간이 새롭기만 하다.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홀로 자립을 해야 했던 공옥진여사는 <심청가>를 비롯한 살풀이춤,씻김궂까지 다재다능한 분이었다.세련되지 않은 극히 자연스럽게 촌티나는 말씨에 솔직한 표현은 좌중을 울리기에 충분하다.말년 감나무를 벗하며 홀로 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공옥진여사의 춤과 소리,연기가 그립기만 하다.

 

 소리꾼,광대,춤꾼 모두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적 신분이 그리 높지는 않다.지금이야 직업의 귀천이 사라져서 이들에 대한 선입견과 시선은 바뀌었지만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해방직후에 활동했던 그들은 부부의 연을 끊고서라도,돈을 되지 않지만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인 '끼'를 놓치고 싶지 않아 집을 뛰쳐 나오고 세상을 방랑하면서 소리와 춤을 배우고 익히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들은 스스로 팔자에 정해진 길이라 여겨 담대하게 이 길을 선택하고 결정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러한 소리꾼들은 교방,예기조합,권번을 거치면서 해방후에는 국악원으로 바뀌어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다만 이들에 대한 처우가 아직은 흡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소리와 춤 정말 다양하기만 하다.소고춤,민살풀이춤,중고제의 쑥대머리,학춤,북춤이 있다.그리고 판소리 열 두마당을 여섯 마당을 신재효는 춘향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흥부가,가루지기타령으로 정리하고 있다.판소리 명창들은 득음을 이루기 위해 깊은 산중 굴을 파고 독공을 해야만 하고 목청을 위해 생소금을 삼켜야 하는 시련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매일 나오는 각혈과 더럽고 오래된 인분도 삼켜야 하는 과정은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는 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그들의 목표는 폭포수를 뚫고 나갈 소리를 벼리기 위한 것이었기에 아무리 가시밭길과 같은 시련의 과정일지라도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가 콤비가 되어 진행하는 판소리는 언제 들어도 구성지면서 가슴 뭉클할 때가 많다.

 

 

판소리 장면

 

 

   전라도에서 소리를 동편,서편으로 나눈 것처럼 춤도 나눠보는 것이다.남녘을 동서로 나눠 호남 전체를 서편으로 영남을 동편으로 양쪽의 춤을 살피면 가정은 퍽 유효해진다.호남의 춤이 살풀이장단에 계면조라면 영남의 춤은 굿거리 장단에 우조인 것이다.기교를 위주로 한 호남에 비해 영남은 정직한 몸놀림으로 춤을 춘다.계면조가 식민지 설움을 통과하며 주류를 이뤘다는 견해에 따르면,우조는 유구하고 고풍스런 몸짓인 것이다. -본문-

 

 이렇게 춤과 소리,궂이 일제강점기,해방을 거쳐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 전통의 맥을 유지해 왔다.춤판은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과 소문이 잦아 몽골,중국,동남아,유럽 등의 원정공연을 하면서 한국의 전통예술의 미를 맘껏 발휘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1992년 사물놀이 팀이 발족되면서 전통 무형문화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현대적인 느낌을 살린 공연들이 시대의 흐름과 감각에 맞춰 색다른 맛과 여운을 안겨 주고 있다.끼를 살리고 팔자로 쓰여진 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소리꾼,춤꾼,광대들의 신명나는 한마당,구성지면서 가슴을 저미는 감동과 열광의 도가니를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은 케케묵은 것이 아닌 켜켜이 묵힌 신토불이와 같은 존재요,보배로운 한국의 무형자산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이 도서와 함께 <춤과 그들/동아시아출판/유인화저>을 읽으면 더욱 우리의 전통예술의 혼과 미를 이해하면서 우리의 것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고취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http://blog.yes24.com/document/720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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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변한다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지음, 장운갑 엮음, 강성욱 옮김 / 경성라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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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다.때와 장소,상황에 따라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좋은 생각과 감정은 잠깐의 기쁨과 환희,설레임인 반면 좋지 않고 싫은 감정은 오래간다.특히 괜히 싫은 존재가 있다.얼굴,표정,아우라,말투 등에서 거리감과 괴리감이 느껴져 싫은 경우가 있다.겉으로는 싫다고 내색을 하지 못하지만 느낌과 표정으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이것은 가족 구성원간에도 적용이 될 수가 있다.성격과 생활습관에서 오는 문제인데 가족 구성원이 제때 뭔가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딴짓을 하기도 하고 나 몰라라하는 무배짱식의 대담성이 짜증과 화를 돋굴 때가 있다.몇 번은 잔소리도 하고 큰 소리도 쳐 보지만 듣지 않을 때에는 내 버려두는 식이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다라는 체념을 하기도 한다.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다면 그때도 늦지는 않을거라고 내내 지켜보기도 한다.

 

 인간의 몸에는 수많은 세포,신경조직이 얽히고 설켜 있다.좋으면 엔돌핀,도파민,세로토닌 등의 호르몬이 분비가 되고 싫고 짜증이 나면서 화가 나면 극도의 아드레날린이 분비가 된다.조금만 인내력을 갖고 참으면 될텐데 대부분 순간의 감정이 문제이다.성격이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그러러니하면서 넘어 갈 수도 있겠지만 깐깐하면서 따지고 덤벼 드는 사람이라면 꼭 싸울 듯이 시비를 가려야 직성이다.성격이 어떻든간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요즘에는 괜히 나섰다가 봉변을 당할까봐 수수방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화갈 날 일,짜증이 날 일을 눈과 귀로 겪어도 이해하고 체념하는 것이 때로는 속이 편할 수도 있다.화를 많이 내는 한국인은 조급증과 성미 급한 것으로 인해 화와 짜증을 내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문제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정말 소소한 경우가 많다.화를 얼마나 많이 내면 화병이 생기고 한숨을 많이 쉬는지 모르겠지만 화를 짜증을 삭힐 줄 아는 지혜와 이해심,체념,관용의 정신이 어느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숨을 쉬고 먹고 자고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즐거운 일보다는 슬프고 짜증나고 화가 나는 일일수록 오래도록 가슴에 담기 마련이다.어린 시절의 끔찍한 화재,살인사건,죽음,폭력,강간.강도와 같은 일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듯 짜증과 화 역시 우리 몸에서 늘 도사리고 있는 좋지 않은 감정이다.짜증과 화가 많을수록 정신적 건강은 쉽게 무너지고 인간관계마저 황량하게 만들기에 스스로 짜증과 화를 줄일 수 있도록 세상을 넓게 보면서 짜증과 화를 다스려 나가야만이 삶도 건강해진다.진심으로 웃으면서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만들어 가도록 스스로 노력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함을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얼마 전 국민학교 동창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그 친구는 공무원의 신분으로 누군가에게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돈도 잃고 건강도 잃었다고 한다.죽기보다 싫은 우울한 시간들 속에서 삶을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그런데 처자식이 있고 삶을 놓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자각이 일면서 사찰에 들어가 영가의 수행을 하면서 천배(千拜)를 올리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모든 사악한 것들을 씻어 내면서 지금은 맑고 건강한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다.빚보증을 설 때에는 의리와 신뢰로 해주었건만 뒤에 오는 것은 배신이었고 자신과 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회한을 남겼는데 스스로 화를 다스리면서 절망과 회한을 모두 허공에 날렸다는 것이다.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구에게나 화가 날 만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을 오래 담아 두는 것은 삶의 근본을 뒤흔들고 목숨마저 잃을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글의 저자는 스리랑카 불교계 장로인 스마나사라로서 '화'는 우리 생명체에 늘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생명이란 감각이 있는 것'으로서 인간 역시 '화'라는 것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을 노스님답게 잘 들려 주고 있다.양이 적어도 '고(苦)'이고 양이 많아도  고(苦)를 느끼며 화를 느끼는 인간이기에 과유불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적당량이 최고이고 최선이라는 것이다.누구나 행복,운수,즐거움,신나는 일을 그려보는 망상에 젖지만 그러한 것들은 오래가지를 못한다.나아가 화와 사촌격인 욕(欲)도 도를 넘으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망가트리는 사악한 것이다.석가가 말하는 중도(中道)의 가르침이 오늘따라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화'를 10종류로 분류해서 파악하고 있다.위험성의 차이,행위의 차이,결과의 차이로 인해 화가 생긴다.흔히 더럽다,싫다,어둡다 등의 기본적인 감정인 화가 있다.이것을 넘어 격노,원망,경시(輕視),경쟁,질투,인색함,반항심,후회가 있다.화는 곰팡이와 같은 바이러스성 세균과 같다.늘 우리 마음 속에 숨어 있다 때에 맞춰 다양한 방법으로 화를 조장하기도 한다.타인의 좋은 점을 없애 버리려는 경시현상과 지도하고 가르치기 가장 어려운 반항심,과거에 ~했어야 좋았는데라고 생각하는 후회심 등은 내가 한때 마음 속에 품었던 나쁜 습성이었다.이 기회에 말끔히 버리려고 한다.이러한 '화'의 현상은 개인을 비롯하여 사회,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다.

 

 화를 대처하는 데에는 빨리 깨닫고 빨리 지우는 것이 핵심사항이다.모든 '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간파하는 지혜와 이해심이 중요하다.사람과 부딪히면서 삐거덕거리고 갈등과 다툼이 생길 경우에는 단 한 순간이라도 복식호흡을 하면서 과연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화'라는 존재와 싸우면서까지 마음을 상해야만이 옳은가 등을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화,질투,욕(欲) 모두 나쁜 습성이다.사람들과 둥글둥글 살아 가려는 연습도 해보고 물질적 소유욕을 내려 놓고 살아가려는 가쁜한 마음,많이 알고 있어도 현학적으로 나서는 마음보다는 깊이 경청하고 수용하며 통찰해 나가려는 진지한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우리 몸안에 늘 해묵은 독소,곰팡이와 같이 살아 숨쉬는 '화'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 순위이다.'화'는 좋지는 않지만 늘 언제 어디에서나 따라 다니는 존재이기에 '화'를 이해하면서 다독거리면서 삶의 목표를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려는 지혜와 겸허의 정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희망대로 흘러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그리고 우연과 요행은 없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을 한다.인과의 응보에 맞춰 오늘 지금 이 시간 무엇을 어떻게 하고 대처해 나가는가가 내일의 좋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조물주가 빚어 준 개체의 생명 안에는 화,욕,질투 등이 자연스럽게 포진하고 있다.이것들을 고통으로 맞이하기 보다는 약간은 친하지 않은 친구로 삼되 내 진정한 모습,노력하는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 주고 가까이 하려고 할 때 화,욕,질투 등은 햇살이 퍼지는 아침 이슬과 같이 흔적도 없이 멀리 사라져 가리라 생각을 한다.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화의 근본과 퇴치하는 법 등이 알기 쉬운가르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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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맛있다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강제윤 지음, 이상희 사진 / 생각을담는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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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가수의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구비구비 바다길에 배가오는데...를 어린 시절 LP레코드판으로 많이 들었다.청아한 목소리에 서정적인 가사말은 신선이 되듯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라는 시조 역시 위 노래말과 연결이 된다.한산섬이 있던 곳이 바로 통영이며 전적을 기리는 제승당(制勝堂)도 있다.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통영이라고 하는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고 할 만큼 야경은 황홀하기만 하다.

 

 

 강제윤저자는 통영의 토박이가 아니지만 통영을 너무도 사랑하여 붙박이마냥 3년 여 세월을 통영에서 먹고 자고 관찰하고 체험한 결과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글과 사진,스토리텔링이 갓 잡은 물고기마냥 파닥파닥 살아 있다.통영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생활력과 맛깔스러운 통영 사투리도 자연 그대로이다.흔히 경상도 음식은 별로 먹을 게 없다고 하는데 통영은 아니다.토양의 정기와 바다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다채로운 재료와 음식들은 생기발랄하고 인체의 허기와 허약함을 채워 주고도 남는다.게다가 문화와 예술의 본향이라고 할 정도로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들도 많은 곳이 통영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도시화로 인해 한반도 전역이 아파트,빌라붐이 일어났지만 지역 유지의 뜻에 의해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동피랑(언덕,비탈)은 한 두사람 간신히 다닐 정도이다.골목 골목 벽에는 추억과 정감어린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동피랑에서 조망하는 통영 앞바다의 푸르고 푸른 남해의 섬과 섬들은 다정하고 도도하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동피랑에서 만난 어른들의 자연스러운 통영사투리와 사라져 가는 대장간의 고적한 모습들이 인상적이다.한자리에서 몇 십년간을 대장간,요술통을 밥벌이 삼아 식구들을 건사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삶의 숭고함마저 든다.

 

 

 어디를 가든 때묻지 않게 순박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곳은 재래시장이 아닐까 한다.통영의 재래시장 서민들이 산과 들에서 뜯고 자른 푸성귀부터 바다에서 건져 온 활어들로 가득찬다.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통영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갖가지 활어들 앞에서 시선을 집중할 수 밖에 없는데 푸드 마일리지가 크지 않아 싱싱하면서도 가격도 착하기만 하다.그리고 여객선에 내놓던 점심식사가 충무김밥의 기원이 되고 '국풍 81'관제 행사때 대히트를 쳤다고 한다.속이 없는 김밥이지만 출출할 때 먹는 맛은 그만일 것이다.꿀빵도 빼놓을 수 없는 간식거리이다.먹거리 중에 하일라이트는 통영 다찌 상차림이 아닐까 한다.1인당 2~3만원을 내면 온갖 생선회와 해산물,반찬,기본 술이 나오는데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이다.

 

 

 저자는 생선회를 극찬하고 있다.제철에 먹는 생선회는 정신줄을 잃게 할 정도라고 하니 통영을 아니 가고는 후회막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농어,대구,조개,광어,멍게,꼼장어,굴 등 이름도 셀 수 없고 가짓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기만 하다.생선회를 먹는 방법,먹기 좋은 시기,인체에 끼치는 유익함도 사전지식으로 충분하기만 하다.젓갈을 좋아하는 나는 볼락젓갈에 시선이 집중되고 말았다.광주의 홍어,제주의 자리돔에 비견될 정도로 통영사람들을 볼락구이,볼락젓갈을 애지중지한다고 한다.그맛은 달콤한 쌀강정같다고 하니 저절로 군침이 돌고 만다.

 

 

 통영에는 본토박이 문화예술이 있는가 하면 외지인이면서도 통영을 못잊어 했던 사람들도 있다.백석 시인과 이중섭 화가는 외지인이면서도 통영에 대한 사연이 깊다.백석 시인은 통영의 처녀를 좋아해서 죽자 살자 쫓아 다니었건만 둘은 시간과 공간이 엇갈려 만나지를 못하고 친구를 통해 처녀의 오빠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건만 자신의 부도덕성을 일러 바쳐 백석은 그저 상사병으로 끝나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씁쓸한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으며,가난하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잇고 그림을 그려갈 수 있었던 이중섭화가의 초라한 삶도 새롭게 각인이 된다.

 

 

 통영이 낳은 문화,예술인은 참 많다.이념의 희생자로 영혼에 상처를 입은 윤이상 그는 살아 모국의 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잊지 않기 위해 윤이상기념관이 그나마 그의 삶의 궤적을 보여 주고 있다.영혼을 적시는 5000장의 편지와 중앙동우체국의 대명사 청마 유치환,토지,김 약국의 딸들,파시 등으로 널리 알려진 박경리의 굴곡진 삶,예술은 선생이 필요 없고 혼자 배우는 것이라고 했던 화가 전혁림은 생소하지만 독특한 추상화를 많이 남겼다.

 

 

 그외 통영은 역사의 숨결과 아픔,문인들의 발자취,볼거리,먹거리,산책로 등이 많다.충렬사,서화담,세병관,삼칭이길,해저터널,월성정씨 부인의 이야기 등이 있다.온몸에 쪽빛이 물들 것만 같은 통영 앞바다의 푸르름과 시복과 구복을 안겨 주기 족한 먹거리,투박하지만 정겨움이 물씬 배어나는 통영 사투리,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를 흠씬 느껴볼 수 있는 통영은 꼭 가봐야만 성이 찰 것 같다.통영의 향기,냄새,맛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공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글로나마 통영의 속살을 훔쳐 볼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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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황무지 개간과 사금채취,탄광작업,농사일을 하는데 유럽인들을 처음에는 고용했는데 날로 늘어만 가는 작업량을 감당하기에는 벅찼기에 싸고 평생 부릴 수 있는 흑인을 노예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흑인노예 무역은 일종의 사는 자와 파는 자와의 상품거래로서 흑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인종차별과 멸시,억압,유린을 당해야만 했다.국민학교 시절 사회시간에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노예와 채찍을 들고 흑인들을 감시하는 백인들의 삼엄한 모습이 선연하다.흑인노예 제도가 1808년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 남부의 사탕수수밭 등의 농작지에서는 절대적으로 싸고 부려먹기 쉬운 흑인노예들을 계속 착취하였던 것이다.

 

 

 노예 무역은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은 오로지 상품으로만 취급되었다. 그들은 두 사람씩 쇠사슬에 묶인 채 "책꽂이의 책들처럼" 몇 달 동안의 항해 끝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송되었는데, 초기에는 항해 도중의 사망률이 40%에 달하기도 하였다. - 네이버 -

 

 

 인종차별은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인종적으로 우월의식과 선민의식이 DNA안에 흐르고 있는 일부 계층들은 아직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멸시하고 차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제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선조가 흑인의 혈통이기에 이러한 현상은 수그러들고 모든 인종,인류가 상생하는 시대를 맞이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18세기 후반 어느 대저택에 수많은 흑인노예 즉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마셜집안과 그 휘하의 대표적 노예인 라비니아와 벨을 중심으로 다양한 에피소드,사건전개,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적 갈등 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캐슬린 그리섬작가 이 글이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도,노예 역사와 관련한 도서,탐문 등을 중심으로 매우 정교하면서도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언어로 당시의 노예제도 및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당시에는 인종차별이 당연시 되었지만 노예,하인의 몸으로 주인에게 늘 복종해야만 하는 처지에서 그들의 고달픔과 고통,상처를 마음으로 느끼고 동류의식을 느낄 때에는 마음이 짠하게 다가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아일랜드계이면서 백인인 라비니아는 부모형제를 잃고 혼자가 되어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오고,농장주의 사생아로서 노예로 살아가는 혼혈아인 (그녀는 흑인 출신)이 교차식으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1791년부터 1810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은 서로의 입장에서 농장주 및 같은 처지인 하인들을 바라보며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 특히 노예이고 하인이어서 마음대로 부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백인 누군가에게 팔아 넘길 수 있다는 극도의 오만과 편견의식은 읽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어린 라비니아와 벨은 열 살을 갓 넘은 때부터 이십대로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실감나게 잘 묘사하고 있다.아마 이 글은 백인이 노예를 착취하는 과정의 극히 일부라고 생각한다.

 

 

 라비니아는 주인이 거처하는 빅하우스에 주로 머물고 벨은 하인들의 숙소인 키친하우스에 주로 머문다.벨은 글을 배우며 바른 생활습관을 익혀야 한다는 파이크 할머니의 따뜻한 조언을 들으며 세상을 깨우치고 그녀에게 파이크 할머니는 세상의 전부였다.라비니아도 주인집에 머물면서 마님의 시중을 들기도 하고 틈이 생기면 벨이 있는 키친하우스로 가서 그녀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기도 한다.주인은 배 사업과 농사일을 병행하는데 농사일이 안될 때에는 하인들을 윽박지르고 죽이려 들려고도 한다.그럴 때 하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마마는 보기 좋은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보여 준다.당시에는 황열병이 유행하여 도리가 죽게 되는데 벨은 크게 상심을 한다.대저택과 노예,하인을 거느리던 주인도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의 상속권을 아들 마셜이 쥐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점입가경이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마셜은 졸부와 같은 근성에 언어 폭력과 강간을 일삼는 파렴치한이다.술로 시간을 보내고 그의 편은 오로지 랭컨(농장 감독관) 뿐이다.노예,하인들이 그의 삐닥한 언행을 조언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 하지만 듣지를 않는다.빅하우스의 마사 마님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향정신성 마약에 의존하고 벨의 자식을 애지중지한다.그러는 사이에 마셜은 라비니아를 아내로 삼게 되고 그들의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마셜은 또 다른 여인과 잠자리를 나누고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라비니아는 극도의 배신감과 절망,회한을 갖게 된다.한편 윌은 자신의 농장으로 벨을 비롯한 동료 하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마셜의 성격은 사이코에 가까울 정도로 극도의 포악성과 정신적 불안정성을 보이며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를 일삼는다.

 

 

 결국 마셜의 잔혹성과 횡포,포악성에 못이겨 빅하우스에 불을 지르고 라비니아,벨을 비롯한 노예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는데 벨은 키친하우스를 떠나지 않고 몇 년 뒤에 세상을 떠나고 주인의 묘 옆에 안장된다.당시 흑인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그저 주인이 시키는대로 따르고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언제 어디로 방출되어 팔려갈지 모르는 극도의 불안한 상황에서 그나마 노예들(마마를 비롯한 파파,제이콥 아저씨,윌 등)끼리의 우의와 애정이 묻어 났기에 훈훈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느낄 수가 있어 다행이다.계약노예인 백인 라비니아와 주인의 사생아인 벨이 보여준 우정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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