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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 명성과 인기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폭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내가 처음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느꼈던 꿈과 사랑,상실의 감정이 내 청춘시절에 한 번쯤 홀로 방황하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속앓이를 했던 아픈 기억이 오버랩되고 인간의 내면에는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혼자가 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가 깊게 마음을 휘집고 다니기 때문이기에 인상적이었다.사랑을 이루지 못해 상실했던 주인공에 대한 애틋하고 무기력한 모습에 다소 연민과 동정의 느낌마저 있었다.
그외 다수의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뜨거운 성원과 두터운 애독자를 형성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삶의 이력을 전체적이면서 포괄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잡문집>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간의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어 신선한 감각과 정체성을 알 수가 있어 그의 글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 같다.그는 일본이 말하는 베이비 붐 시대인 단카이(團塊)세대로서 1970,1980년대 일본 경제성장의 동력이고 주체이기도 한 세대이다.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와세다 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지만 재즈와 같은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여지며 한때는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다양한 음악가,작품 등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음악생활의 한단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잡문집>이 1979~2010년 그의 미발표 에세이 및 미수록 단편소설,그리고 대담에 이르기까지 무라카미하루키의 속살을 그대로 들춰내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언젠가 그가 쓴 원서를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 표준어이고 공통어인 동경어를 깔끔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서술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친근감을 느끼도록 배려를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했다.한국,대만 등에 열렬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그는 소설을 쓰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야기라는 하나의 '생물'을 독자와 공유하고,그 공유성을 지렛대 삼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개별적인 터널을 뚫는 데 있다.(중략) 중요한 것은 내가 쓴 그 이야기를 당신이 '자기 이야기'로 확실하게 끌어안아주느냐 마느냐,단지 그것뿐입니다." - 본문 -
그리고 그는 열렬한 음악 애호가이다.음악을 통해 인생의 질,인생에서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을 음악에서 만들어 가고 있다.사람마다 취향과 기호가 다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을 통해 좋고 나쁘고의 차이점을 비롯하여 아무 미묘한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가 있다고 하니 애호가를 넘어 음악통(通)이 아닐 수가 없다.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하고 싶은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정도로 집중과 몰입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그는 좋은 음악,필이 꽂히는 음악을 만날 때 그 기쁨과 환희는 그의 가슴 안에소 요동을 치듯 생기발랄함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나에게는 뭐가 있을까.무덤덤하게 하루 하루를 이겨내야 하는 현실과의 조용한 싸움일까.
이 글 속에는 1995년 고베 대지진과 옴 진리교인에 의한 지하철 사린사건을 들려 주고 있다.고베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재해가 발생했든데 일본 정부가 취했던 외국의 재해지원에 대한 거드름 피우기와 늑장 대응을 꼬집고 있고,지하철 사린사건의 주역의 신상을 보니 일본에서도 일류대학이라고 할 만한 대학출신의 엘리트들이었다.이들은 일본의 GDP가 세계의 톱이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이 느끼는 삶의 지수는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의 불특정 다수를 향해 파괴,살해를 모의했던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단편적인 일본사회의 모습을 접하면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부관계자,힘있는 자들이 과연 대다수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또는 재해와 같은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대응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라는 회의가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음악,번역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다.영미권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을 하다 보면 소설이 쓰고 싶지 않을 때에는 번역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에세이 소재는 바닥이 날 날이 멀지 않지만 번역거리는 바닥날 일이 없을 뿐더러 소설과 번역이라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해 가다 보면 뇌의 균형감각이 좋아진다는 것이다.당연한 애기이겠지만 번역을 통해 문장에 관해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게 되고 번역일을 하다 보면 문자와 문장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손으로 만져지는 감촉과 입체감을 동시에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그러면서 '좋은 글은 왜 좋은가'라는 원리를 터득하는 셈인데 '꿩먹고 알먹는 식'의 효과가 아닐까 한다.
그외 재즈음악을 청소년기(16세)에 접하면서 열렬한 음악 애호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이든 소설이든 마음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리듬이라고 한다.신체,지성,감성 리듬이 복합적으로 원활하게 작용함으로써 제대로 된 글이 탄생하고 소중한 리듬을 타면서 쓰고자 하는 글의 전개가 매끄러우면서도 탄탄한 대로를 달릴 수가 있을 것이다.내적인 마음의 울림과 함께 형성된 리듬감은 작가의 즉흥연주가 되면서 잠재되어 있던 이야기거리,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단상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야기의 전개가 자유로이 솟구쳐 오르고 그 흐름을 잘 타야 할 것이다.당연 체력과 지성,감성 모두가 삼위일체가 되어 준다면 작가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글쓰기를 거의 음악에서 배웠을 정도라고 한다.오랜 시간 음악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면 글쓰기를 시작도 못하고 소설가로서 '업'을 살아가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소설 창작의 많은 방법론을 탁월한 음악에서 배우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찰리 파커(색소폰 연주자)가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프레이즈는 그의 문장작법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진다.끝으로 안자이씨와 와다씨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대담을 들려 주고 있다.그의 삶과 작품 속에 나타난 다양한 에피소드 등도 제3자의 입장에서 들려주고 있기에 무라카미 하루키 대가의 삶과 작품,인생 역정을 알게 되어 차후 작품을 읽을 때에도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