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김영사 / 2013년 10월
평점 :
중국역사와 문화는 유구하고 찬란하며 양이 있는가 하면 음도 많다.오랜 세월 봉건제의 구습으로 관료의 부패가 횡행하면서 중국의 발전은 서양과 비교하여 오랜 시간 '잠자는 사자'로 남게 되었다.중국의 정치,경제,문화 등이 신중국이 탄생하면서 몇 차례의 정치시련과 오류에 의한 것도 그들의 발전을 더디게 했던 커다란 요인이다.다행히 덩사오핑에 의한 사회주의 체제는 고수하되 시장개혁을 도입하여 현재는 G2국가이면서 외환보유고 세계1위인 막강한 경제파워를 과시하기에 이르게 되었고 이웃나라인 한국은 이제 그들은 경제파트너 이상의 경쟁력을 갖춰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중국 CCTV<백가강단>의 국보급 왕리췬(王立群) 교수가 진시황에 대한 모든 것을 세세하고 담담하며 사료에 입각한 객관적인 강의를 들려 주고 있다.흔히 중국의 2대 정치가를 꼽는다면 단연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한,위,초,조,연,제) 진시황과 현대정치사의 거목인 마오저둥을 들 수가 있다.시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들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지만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백성들을 무참히 희생시키고 독선적인 경향을 띤 점은 공통점이면서 부인할 수가 없다.

진(晉)의 위열왕은 한(韓),위(魏),조(趙)에게 멸망하면서 진을 삼등분한 삼가분진으로 패가 나뉘어진다.전설과 같은 중국의 하.상.주시대를 거쳐 전국 7웅이 웅거하던 BC 259년에 진시황은 조나라 한단에서 태어난 인물인데 진(秦)나라에서 성장하면서 이웃 나라들을 하나씩 멸망시키면서 드디어 BC 221년에 천하를 통일하고 최초로 황제라는 호칭을 붙이게 된다.그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있어 그 수하의 주요 인물들의 보좌와 역할이 매우 컸는데 잘나갈 때는 한없이 믿고 맡기지만 마음이 틀어지면 '토사구팽'과 같이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는 냉혈한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이러한 상황을 접하다 보니 마키아벨리와 비스마르트라는 인물이 연상되기도 했다.비록 시대와 정치상황,인물의 정치안목 등은 상이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을 피를 흘리게 하면서 희생시킨 점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공과의 평가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진시황은 처음에는 영정(瀛政)으로 불리워지다가 천하를 통일하고나서 황제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는데 진나라에서 처음으로 황제가 탄생했다라는 의미에서 진시황제로 불리워지지 않았나 싶다.그의 정치적 식견과 안목을 배양한 배경에는 효왕,혜문왕,소양왕,양문국,장양왕(아버지) 그리고 영정인 진시황에 이르는 정치적 가문이 한몫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진시황은 원교근공(遠交近功)이라는 책략하에서 가까운 나라들부터 멸망시키면서 먼나라는 지리멸렬한 전쟁을 하는 한편 쉽게 이기기도 했다.조나라와는 줄다리기와 같은 격이었고 제나라는 쉽게 진에게 손을 들고 병합하는 꼴이 되었던 것이다.이렇게 이웃 나라들이 진(秦)에게 멸망당한 이유는 용인술의 부족,정치적인 부패,일의 본말에 대한 무능력과 영토의 급감에서 찾을 수가 있고 다양한 전략과 전술(반간계,힘을 기르면서 적을 피곤하게 하는 것,전쟁에 대한 무비유환의 정책 등)도 무시할 수가 없다.
진시황의 아버지는 장양왕으로 되어 있지만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역사자료가 신빙성을 더해 준다.장사꾼인 여불위는 수완이 좋고 여색을 밝히면서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고야 마는 전략형 리더였다고 보여지는데 여불위와 조희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사람이 진시황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사건이 그의 귀에 들어가면서 후폭풍이 불게 된다.영정인 진시황은 책사 이사를 신임하고 그의 아이디어,전략 등을 귀담아 들으면서 정책의 방향과 미래의 국가건설 등을 진행시키기도 했다.그런데 그가 중국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제를 폐지하면서 공천하(公天下)를 정치강령으로 삼는다.또한 군현제 실시와 도량형 통일 등 굵직굵직한 사회제도 개혁을 통해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있지만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같은 문화말살정책은 실정(失政)이 아닐 수가 없다.시경과 서경 그리고 수많은(460여명) 유학자들은 생매장했던 비극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왕리췬의 강연 내용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상앙,장의,한비,이사,여불위,인상여,조고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은 뛰어난 인재임에 틀림없지만 시대와 상관을 잘못 만난 탓인지 척살을 당하기도 하고 불화설로 인해 끝내는 권력의 쓴맛을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진시황 생전인 재위 35년(BC 212년)에 아방궁 건축을 시작했는데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동서가 500보,남북이 50장으로서 위에는 1만명이 앉을 수가 있고 아래에는 5장의 깃발을 꽂을 수가 있다는 점이다.나아가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일설에는 제나라에서 먼저 축조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거대한 역사(役事)에 징집된 남편이 주검으로 확인된 맹강녀는 울음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는 비극적인 전설로 흥미롭게 들린다.진시황은 영원히 죽지 않으려 수많은 방사들에게 거금을 주면서 불노초를 구해오라고 했지만 모두들 핑계를 댄다든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만다.인간의 수명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며,그는 형제자매들에게도 매정하게 정치권력에 손을 못대게 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냉혈한이 아닐 수가 없다.조고의 추천에 의해 호해의 동생인 자영(子婴)이 그의 뒤를 잇지만 한(漢)의 유방이 세력을 키워 함양에 진격하면서 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사기>,<진시황본기>,<여불위열전> 등을 바탕으로 진시황 강의를 세세하게 전해주고 있는 이 글은 권력의 본질과 무상함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인재라도 위정자의 눈에 벗어나는 언행은 어느 시대에서든 권력자의 구미와 탐욕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제대로 재주와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것이 정치권력의 속성이 아닐까 한다.현대정치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들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파벌을 조성하고 이합집산을 하면서 자신들의 사복(私腹)만 채우려는 위선적인 행동은 일반인의 시각으로 볼 때씁쓸하기만 하다.지금은 당파,지역갈등,계층과 세대간의 갈등 등을 뛰어 넘는 상생의 정치를 펼쳐 주기만을 갈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