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들의 귀환 - 1636년 고립된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3
허수정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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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역사에서 임진왜란은 혜안이 약했던 당시의 무능력한 국왕과 국론분열의 상징인 사색 당파로 인해 민심은 흉흉하고 자연재해 등으로 기근과 아사가 끊이지를 않았다.나라의 살림은 뒷전으로 놓고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려는 약삭빠른 관료들과 사대부들 그리고 국난을 대비하여 병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뜻있는 자들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대응하다 왜군이 물밀듯이 난입하고 국왕은 의주로 몽진을 가는 등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뭍에서는 곽재우장군을 비롯하여 권율장군,수상에서는 이순신장군이 일본과 맞서 치열하고 지리멸렬한 전투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전쟁이 길어지고 패색이 짙어가던 일본은 화의를 내세우지만 결렬되면 재차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서(정유재란) 조선의 산하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버리고 백성들은 삶의 방향을 잃은 채 간난신고의 세월을 살아야만 했다.게다가 왜군에 의해 무고한 백성들이 무참히 강간,도륙,살해를 당하는 등 그 수모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특히 한반도 삼남지방(경상,전라,충청권)의 왜군에 의한 피해는 삶의 기반을 모조리 빼앗아 갔으니 한치의 앞길도 보이지 않는 도탄에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쳐 정묘호란,병자호란 등에 걸친 조선사회의 단면을 연쇄살인사건으로 명명하여 보여 주고 있는 <망령들의 귀환>은 난리가 지나고 미처 일본으로 귀화하지 못한 일본병사와 무사들이 조선인으로 둔갑하면서 조선의 한 마을을 죽음의 공포,도가니로 빠지게 하는 희귀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되면서 등장인물간의 소소한 얘기와 일본색깔이 물씬 풍기는 신관과 성황당(일본식 신사 즉 도리이인데 신사 윗부분에는 까마귀 형상이 있음)이 공간배경을 띠고 있으며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과 사건의 배후 등을 탐문하는 탐정 등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글이 팩션성격을 띠고 있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가공되었다고 하며 첫부분부터 을씨년스럽고 처연함을 맴돌게 하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팔공산 마을 입구 석조여래좌상 부근에서 시신이 발견되고 육신은 새들에 의해 쪼아 먹은 탓인지 상당히 부패하여 민심이 흉흉하기만 하다.

 

 이 베일에 짙게 드리운 연쇄살인사건을 총지휘하는 감영소속의 김경덕을 비롯하여 조선의 탐정인 박명준과 오카다가 등장하게 된다.야음을 타면서 산길을 걷다 승냥이떼에게 죽을 뻔하다 낭떨어지로 넘어져 윤성호라는 사람에 의해 구조가 된다.연쇄살인사건이 터진 산골의 외딴 마을에는 촌장도 있고 자치규약도 있지만 마을의 자치권을 장악하기 위해 일본의 신관이 안향조(安享組)를 설치하는 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누구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읽어 가는데 한국에서는 까마귀가 길조가 아니어서인지 까마귀마저 산속 촌동네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우짖곤 한다.망령,혐오스러운 과거의 잔재인 귀신이라도 출몰했다는 말인가? 이러한 가운데 연못에서 이기성이라는 사람이 살해가 되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촌장의 아들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나고 감영에서 온 김경덕나리도 피살되는 등 촌동네가 완전 뒤집히고 만다.탐정 명준은 관수인 장수봉을 찾아 연쇄살인사건 등에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사건의 배후를 조종하고 파악하고 있는 자는 장수봉일 것이라고 강한 추측을 내비친다.그리고 창고지기인 촌장의 아들이 두부(頭部)가 잘린 채 처참하게 살해가 되고 신출귀몰하는 망령들을 쫓기 위해 허겁지겁 걸음을 옮기지만 망령들의 행방은 묘연한 채 살인사건의 실체는 묘연하고 만다.

 

 사건의 진범은 도요도미히데요시의 하수인인 양씨에 의해 자백을 받게 되고 부산 동래 왜관에 있던 교토야의 아베는 명준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그간의 사정을 모두 털어 놓게 되면서 산골 마을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일명 마약이고 환각제인 오석산(五石山)을 채취하여 일본에 반출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그의 상행위 그리고 무고하게 죽어나간 촌민들의 억울하고 원통한 사정을 읽다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충격적이기만 하다.미스터리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일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가고도 남는 슬프고 기막힌 일이다.탐정 명준이 교토야를 나오니 하늘은 맑고 세 마리의 까마귀가 비상하는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지혜롭고 현명하고 냉철한 명준 덕분에 망령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산골마을의 연쇄살인사건도 다시는 생기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 한 켠에서는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지난 시절 외세의 침략에 의해 무고하게 죽어갔던 무명초들의 가련한 삶이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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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충성 - 충성과 배신의 딜레마
에릭 펠턴 지음, 윤영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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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忠誠)이라는 한자어를 하나 하나 풀이해 보면 충은 마음의 중심이고 성은 스스로 내뱉은 말에 대해 지킨다라는 말이다.아울러 사전적인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되어 있다.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충성이라는 말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쓰이는 빈도보다는 군대와 사회조직 속에서 더 회자되고 있다.즉 상사,상관의 말과 지시,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집체적이고 강요당하는 느낌이 강한 억제된 단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내 군대시절의 군의 거수경례가 '충성'이었는데 내가 과연 고참,상관들에게 자발적인 충성을 했는가 되돌아 본다.겉으로는 충성을 하지만 괴롭히고 보기 싫은 고참 및 상관들을 만나면 '충성'으로 예의를 표하지만 뭐 하나 꼬투리 잡힐 것이 없나 하고 잔뜩 긴장을 하게 되는데,무사히 지나치게 되면 '충성'이라는 말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곤 했다.

 

 인간은 가족이라는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서로 믿고 배려하고 존중해 나가는 관계에서 삶의 질은 한층 더 고양되고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을 통해 자부심을 넘어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면서 이성적인 생활태도,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이타적인 행위 그리고 한층 더 높은 환희와 평화라는 단계에 이르는 의식을 갖게 되리라 생각한다.바로 인간의 의식작용에 따라 내가 타인과 주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가 달라지는데 우선 가정,학교,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어떠한 학습을 거쳤는냐에 따라 개인의 의식작용은 달라질 것이며 이것이 감정이라는 것으로 승화되어 개인의 성격과 인간관계가 지속되어 가리라 생각한다.좋은 환경과 학습을 통해 개인이 타자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 사회는 보다 건실하고 사회구성원간의 융화와 신뢰도는 제고되어 삶의 질도 높아져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지식과 관념과는 다르게 충성의 의미를 '믿을 수 있는 상태의 미덕'으로 바라보고 있는 에릭 펠턴의 이 글은 궁극적인 문제는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어떠한 믿음의 기제를 갖고 나아갈 것인가를 되돌아 보게 하는 인문학적 사유의 글이다.매일 마추치고 대화하며 살을 부딪히며 살아가는 부부부터 가족,일과 관계되는 사람들,그리고 믿음 속에 내포되어 있는 기제인 정의와 이상,욕망이 제대로 신뢰할 만한 수준인가를 때론 수용과 때론 이성의 기제로 판단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돈과 물질이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적인 삶보다는 자신을 기준으로 이해관계를 더 저울질하는 세상이기에 믿음이라는 문제는 어찌보면 세속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고려하는 경향이 다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상이라고 생각한다.혈연,지연,학연 나아가 동일민족이라는 말들은 겉으로는 포용하고 배려하며 챙겨주는 힘이 저절로 나올 법하지만 깊게 들어가 보면 진정한 믿음 위에 관계가 성립되는 경우가 있겠지만 실제로는 '동상이몽'의 경향이 더 많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생각이고 판단이다.

 

 근자 항간(巷間)에서는 정의를 부르짖고 사회부조리,국가의 정체성 등에 대해 설왕설래를 하고는 있지만 국가의 지도자들이 깨우치고 실천하지 않는 한 정의구현의 사회는 지체될 수밖에 없다.한국사회가 아직까지는 돈 많고 권력있는 소수층들에 의해 사회제도와 시스템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믿음이라는 의식은 보편적으로 볼 때에는 좋은 현상이고 실현해 나가야 할 과제로서 우선 자신의 의식부터 바꿔 나가는 용기와 실천의 자세가 중요하리라 생각한다.국가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사회구성원의 의식구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도자의 의식수준과 역사관,국가발전을 위한 비전제시 등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사회전반의 믿음이 제대로 작용되어 가리라 생각한다.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개인의 교육수준,의식은 발달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사회가 돈과 물질에 의해 개인을 평가하고 속그룹 단위의 집합체가 강한 사회이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은 이성과 합리성에 맞춰 고수하되 남에게 속임과 배신을 당하지 않는 냉정하고 통찰력 있는 마음가짐도 매우 중요하다.정의로운 사회,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가 이상적이고 살기 좋은 사회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사회의 상류층에 있는 힘과 권력의 소유자들이 개인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모습을 보여서는 진정한 믿음은 안개 속으로 묻혀 버릴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의식 속에는 사랑과 환희,평화라는 감정의 기제가 있고 이를 갈망하기도 하고 실현하기 위해 열정에 가득차 있기도 한다.이것은 결국 자신의 삶과 미래를 위해 타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의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마음 가운데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믿음은 평화스러운 시절보다는 역경과 위기의 시기에 진정한 우정과 믿음을 찾을 수가 있다고 하는데 인간의 삶의 길이가 매우 유한적이고 운명에 의해 의식작용이 어느 정도 지속되기에 돈과 물질이라는 현실에서 좀 더 나은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믿음을 쌓아 나가는 연습으로 달라진 자신의 자화상과 위상을 알게 모르게 심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한 번 배신당하고 버려지는 자신은 상처와 절망의 비극적인 불행의 경험을 안아야 하면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보는 '믿음'은 공허할 말로 들리고 모래알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풍요로운 시절은 저울이 될 수 없다.역경만이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저울이다."

  - 플루타르코스,본문 -

 

"불안한 시절에 진정한 친구가 나타난다." - 엔니우스,본문 -

 

 내가 알고 있는 또 하나는 빈천지교불가망(貧賤之交 不可忘)이다.살림이 가난하고 천한 신분일 때 사귀었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된다(후한서)로 풀이하는데 진정한 믿음은 삶이 어려운 시절에 자신을 돌보고 챙겨주는 친구가 아쉽기만 하다.며칠 전에 읽은 <통도유사>에는 구하(九河)스님의 예화가 나온다.일제강점기 시절 그는 외친내독(外親內獨)을 보였다.겉으로는 친일행각을 했지만 속으로는 대한독립을 갈구했다.독립지원금이 부족한 지사들을 보호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애국행동이 아닐 수가 없다.믿음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국가의 안위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현대사회에서 진정한 믿음을 마음과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아직은 아닌 것 같다.믿음이라는 문제는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정성과 열정,희생의 각오까지를 포함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의 척도라고 생각한다.또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낮은 감정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도 평소에 갖춰 나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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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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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가난의 되물림은 후손들에게 육체적,정신적인 시련과 고통이 뒤따를 것이기에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것이 고된 부역과도 같을 것이다.'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선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이 삶의 우선 순위이었던 시절에는 조상들의 애환은 말도 못했을 것이다.'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듯이 의지 가지 없었던 사람들은 정처없는 유민(流民)과 같이 부유(浮遊)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인간에게 삶은 생명력을 바탕으로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식이 있기에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의 삶은 신산하지만 생명력은 강인하면서도 꿋꿋하게 지탱해 나갔던 것으로 생각한다.

 

 1980년대,1990년대 중후반의 한반도의 산하를 10년 간 다니면서 5년 간의 긴 원고작업 끝에 탄생한 이 글은 작가의 섬세하고 꼼꼼한 필치에 아련한 기억과 추억을 끄집어 내게 한다.이렇게 가난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상대대로의 가난이라는 되물림이 주요 원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오붓하게 산과 내를 두르고 있는 전통적인 한국의 시골 동네의 모습과는 다르게 외따로 살아 가던 '외딴집'을 비롯하여 외주물집,독가촌,막살이집이 나오고,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기관격인 분교,간이역,차부집,여인숙 등이 소개되고 있다.나아가 1960년대 후반 도시개발에 따른 미관주택,시민아파트,문화주택 등이 순서대로 소개가 되고 있다.이는 개인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투영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여 한국현대사의 가난하게 살아 가던 이들의 가옥구조부터 소규모의 기관들 속에 그들의 애환이 강퍅하기도 하고 인정이 살아 있기도 하다.

 

 조선 후기 철종 이후 유민의 증가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산골 깊은 곳에는 주인 없는 땅을 불사르고 그곳에 화전을 일구어 살아가는 화전민들이 늘어나는데 이들은 외딴집의 형태를 띠면서 살아 갔다.그리고 조림사업을 한다는 차원에서 외딴집들을 듬성 듬성 모아 놓은 독가촌 그리고 탄광촌에 주로 자리잡은 외주물집(길가에 놓인 연립형식 집들)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산골마을의 분교(간이학교)와 간이역은 그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묻어 난다.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면소재지의 중심이었기에 분교 형태는 아니었지만 면의 면적이 크다 보니 학교에서 10여키로 떨어진 산골 마을의 어린이들에겐 면소재지 학교로 통학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1970년대 두 개의 분교가 생겨나게 되었다.모교에서 가르치던 교사가 분교로 발령받아 아침이면 자전거로 출근하던 교사의 수수한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선연하다.

 

 1968년 북한 공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한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발언과 울진 삼척 공비 침투 사건 그리고 김신조에 의한 박정희 암살 미수사건을 통해 '도서벽지(島嶼僻地)'주민을 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하기 위해 화전정리사업이 대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그것은 외딴집의 집단화 및 분교 교육의 전면적 개편이었다.1970년대 초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면서 초가에서 슬레트집으로 바뀌고 돌담에서 벽돌담으로 바뀌게 되는데,도회지 대로변은 양옥집 형태의 미관주택이 늘어나게 된다.도회지의 주택의 경우 1968년 창전동에 시민아파트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되는 사태가 빚어지게 된다.박정희 군사정권은 무허가 건물 세대를 서울 인근으로 집단 소개(疏開)시키게 되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나면서 과밀한 서울도시를 분산하기 위해 베드타운(일산,분당 등)을 건설하면서 대형아파트 건설붐이 내집마련의 꿈과 맞물려 번창해 가고 있다.지금은 이미 지어 놓은 아파트가 남아 돌아 건설업체는 온갖 사탕발림으로 주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장소에는 단연 간이역과 차부집의 향수가 있을 것이다.벽지에는 자주 오지는 않지만 시내로 나가는 시내버스 그리고 각역마다 정차하는 비둘기호 등이 있었다.간이역에는 산과 들이 있고 청정한 공기의 내음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차부집은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또는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해 잠깐 차부집 안으로 들어가 주인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군것질거리도 사기도 한다.간이역과 차부집은 세상살이와 더불어 사람들간의 정담과 소통 그리고 소소한 정보를 교환하는 중개지점이기도 하다.그리고 내가 대학시절과 신혼초에 살았던 문화주택은 (일본식)붉은 기와장과 붉은 벽돌담 그리고 대문 옆에 자리잡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정해진 날에는 똥물을 수거하는 차가 '딸랑딸랑'신호를 보내면서 약간의 법석이 일어나곤 한다.인간의 몸에서 배설된 똥물이 잠시 인상을 찌푸리게 하며 그 내음은 몇 시간 가기도 했다.

 

 이제는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게 된 외딴집,외주물집,독가촌,차부집,막살이집,문화주택(지금도 일부는 남아 있다) 등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향수와 추억이 새롭기만 하다.사람과 사람간의 교류와 소통이 줄어든 아파트 주거는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높여주고는 있지만 어린시절의 공동체적인 의식은 사라지고 이기적인 편의위주의 삶이 가속화되고 있다.지금보다도 더 개인주의로 흘러 갈 후세대들은 물질은 풍요로워지고 문명은 더욱 발달해 가겠지만 후세들의 삶의 질과 사회구성원간의 화합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하나의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가난한 이들의 삶은 누구를 해코지 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 들이면서 힘들었지만 인간의 정을 나누면서 살았던 이들의 삶이 현대인의 삶과는 크게 대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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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말 -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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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일본 유학시절(변발을 자른 후의 모습)

 

 중국현대문학사에 있어 루쉰은 문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비평가로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19세기 후반 저장성 샤오싱에서 태어난 그는 사회적으로 부패한 관료와 무능한 정치판을 목격하기면서 청년기를 보내던 중 그의 진로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의사의 길로 가기 위해(그의 동생도 마찬가지) 일본 도호쿠대학에 진학을 했다.학교에서의 수업시간에 보았던 '환등기'사건 일본인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인의 학살장면을 보고 그것이 구경거리라고 방관하던 중국인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사의 길을 접고 무지몽매한 중국인과 사회부조리를 개혁하고자 그는 문예를 통해 계몽활동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몇 년 전에 루쉰[본명 저우수런(周樹人)]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婴)이 쓴 <나의 아버지 루쉰>을 통해 루쉰의 일생과 삶의 이력을 살펴 보았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일반인의 관점에서도 환등기 사건은 커다란 충격이고 의분이 일어날 법한 사건으로 그에게는 썩어 빠진 청국의 실상을 글로서나마 간접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사상가로서도 마음에 싹이 트였던 것이다.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과 사회적 리더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해 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본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귀국한 루쉰은 1918년 문학혁명이 끝나면서 아Q정전과 광인일기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편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광인일기의 경우에는 피해망상광에 걸려 있는 한 중국인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강박관념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비록 부랑자와 같은 모습의 주인공이지만 실상 그는 지식인으로서 사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묘사했고 당시의 중국사회가 어떠했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었던 작품이었다.루쉰은 1920년 이후 북경대 여자사범대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고 중국 현대교육계의 거장 차이윈페이와의 교류도 있었는데 반정부 지식인에 대한 탄압으로 아내인 쉬광핑과 광둥지역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청말,신해혁명,중국대장정을 목도했던 루쉰은 무지몽매한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지지대가 되어 주고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계몽사상가적인 언행을 꾸준히 발표했다.이 글이 바로 그가 생전 사회와 중국인민들에게 보내는 절규와 같은 주옥같은 어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깼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아직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이다. - 본문 -

 

 특히 인상적인 글은 그가 타계하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죽음>이라는 글에서 그는 "장례 때 조의금을 받지 마라.","어떤 기념행사도 하지 마라".'"나를 잊고 자기 생활을 돌아보라."를 남겼다.루쉰다운 정신이 그대로 담겨져 있고 대쪽과 같이 지조가 있는 분으로 다가온다.12개의 항목으로 나뉘어진 루쉰의 어록은 짧은 쪽지와 같기도 하고 시(詩)와 같기도 하지만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그는 중국사회 및 인민들에게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펜으로나마 경종을 울렸으리라 생각한다.사회는 보수라는 썩고 고인 물이어서는 아니된다.맑게 졸졸 흘러 가는 물이어야 하고 그 물이 강과 강이 만나 대양으로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또는 후학들에게 충고하는 멘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국가와 사회는 다르지만 개인의 삶에 견주어 루쉰이 남긴 어록을 깊게 참고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지침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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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 버림 - 내 안의 위대함을 되찾는 항복의 기술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박찬준 옮김 / 판미동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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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은 호흡을 내뱉고 인간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의 총합인 의식작용이 있기에 다양한 감정의 무늬를 갖고 있다.감정은 태어나면서 가정과 학교,사회생활,인간관계,그리고 직.간접적인 경험이 모여서 개인의 감정이 생성된다고 본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희노애락애욕정이라는 감정에다 더 세세하게 들어가면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이 있다고 보는데 부정적인 감정이 몸과 마음 속에 쌓일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면서 행복과 평화라는 인류의 지향점은 더욱 멀어져만 가리라 생각한다.인간의 의식작용 안에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개인의 성향과 체질,상황에 따라 잘못 조절을 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이제는 고인이 된 데이비드 호킨스 세계적인 영적 스승이고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얼마 전에 그가 쓴 <의식혁명>을 통해 작은 자아를 초월하여 참 자아를 발견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을 감정의 단계를 통해 나의 감정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이번 <놓아버림>은 몸과 마음,개인과 사회에 해(害)가 되는 감정의 상태를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감정의 상태로 고양시키는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어린이와 같은 작은 자아는 덜 익은 벼와 같다.흔히 구상유취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입에서 젖내가 난다라는 말이다.즉 본능적인 감정,개인이 외부에 의한 삐뚤어진 감정이 부지불식간에 마음 깊은 곳에 침잠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그 감정은 그대로 나타나게 마련이다.특히 현대사회가 돈과 물질을 숭배하다 보니 돈과 물질에 의해 개개인을 평가하고 사회 구성원간의 위화감,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다만 국가 및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이 어떻게 되었든 개인의 인성과 좋은 감정은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거꾸로 말하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돈과 물질이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법은 없다.이렇게 돈과 물질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사회구성원간의 화합과 배경,존중의 정신일텐데 문명은 발달하는 반면 정신세계는 온통 까칠하기만 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겉으로 드러난 돈과 물질도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내적 자유와 진실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다.정신적인 내면 세계를 지금보다 더욱 고양시키고 높은 삶의 질인 '행복'과 '평화'를 위해 개개인의 감정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감정의 척도부터 높은 단계의 감정의 척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수치심(20)-->죄책감(30)-->무의욕(50)-->비탄(75)-->공포(100)-->욕망(125)-->분노(150)-->자부심(175)-->용기(200)-->중립(250)-->자발성-->받아들임(350)-->이성(400)-->사랑(500)-->환희(540)-->평화(600)의 순이다.어떠한 이유로든 수치심부터 평화에 이르는 감정의 척도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구체적으로 이러한 항목에 대해 서술을 할 수는 없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도태되고 소외되는 계층과 실연과 이혼으로 인한 절망,경제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우울과 자살에 이르는 불안정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개인 및 사회적 손실도 크기에 사회안전도 및 행복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대개 수치심부터 자부심에 이르기까지의 감정이 어떠한 계기로든 발생할 수가 있지만 이러한 감정들을 마음 속에 담고 산다면 수명도 짧아질 터이고 인간관계,일적인 면에서도 신명이 나지 않는다.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이러한 위기에 놓인 개인의 감정을 '놓아버림' 즉 항복해 버림으로써 정신적,육체적으로 활기를 띠고 재기의 삶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다고 한다.마음에 응어리 또는 어혈과 같이 뭉쳐있는 것들이 일시에 소멸될 수는 없겠지만 감정의 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조속히 제거하고 한단계씩 놓은 감정의 척도로 계단 밟듯 올라가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삶의 태도일 것이라고 본다.명상,요가,사침,운동,등산 등도 나쁜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다만 이러한 나쁜 감정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노력 및 의지,그리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유대관계 등도 감정의 척도를 제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이것은 제2의 천성이기에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내일이 나의 마지막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쁜 감정을 버리고 새롭고 맑은 정신,에너지로 충만된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억압과 억제된 나쁜 감정을 스스로 놓아버리게 된다면 자신의 잠재력과 자신감,자발성과 자가치유능력도 발달하여 감정의 정점인 사랑과 평화는 그리 멀리 있지 않는 감정의 기제라고 본다.인간은 말로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불립문자와 같은 경지,자신이 먼저 상대방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고 가까워지려는 진정한 사랑의 정신은 현대사회인이 더욱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또한 우주 만물은 인간의 마음을 포함한 다른 만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홀로그램 패러다임'은 인간의 의식과 과학 간의 관계가 하나의 분야를 형성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분야이기도 했다.경제적인 결핍,인간관계가 결핍 등으로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이들의 감정의 척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결핍된 자들에게 높고 위대한 정신적 감정을 놓아버리고 상생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앞장서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더 나은 삶의 질,위대한 삶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나는 어떠한 단계의 감정의 척도를 갖고 있으며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자발성,수용,이성,사랑,환희,평화와 같은 감정의 기제인 '큰나'를 향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깊게 생각하고 실천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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