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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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작가의 영감은 어디에서 나올까.작가를 낳아 준 부모님의 문학적 DNA가 발양되어 그에게 전해졌을까.아니면 다양한 독서와 체험을 통해 나름대로의 정리와 연습을 통한 결과물일까.당연 작가의 부단한 노력과 출판과 관련한 분들의 조력에 의해 산뜻하면서 알차게 포장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다.글은 백면서생과 같이 주구장창 책만 읽어 내려 간다고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주제와 소재를 찾기 위해 깊은 산 속,넓은 바다,길 위의 사람들,사색을 더해 주는 자료들과 만나야 할 것이다.

 

 특히 시를 쓰는 시인은 마음이 섬세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 및 존중,생명력을 중시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나아가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객체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서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다채로운 감정의 무늬를 압축시켜 나감으로써 시적인 리듬과 운율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시인은 드넓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자신의 가슴 속에 끌어 안으려는 대담함과 포용력이 있어야 비로소 시가 시답게 구현되리라 생각한다.

 

 시인이 길위에서 만난 장소,사람,사물 등과의 소통과 교유를 마치 어린이가 일기장을 펼쳐 놓은 듯한 감성과 미적 감각을 전해 주고 있다.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 는 질문에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곽재구작가는 시인으로 등단한 지 30여 년이 지난 중진급시인이면서 문체가 매우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감성을 자극하게 하는 힘이 스며져 있다.습작으로 쓴 시를 몇 번이고 다듬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를 반복했을 것인데,작가의 뒷담화를 들어 보니 그러한 한우물 파기식의 시쓰기 연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신의 정원을 빚는 일과 같다고 한다.보편적이고 진부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누구나 한우물을 쉼없이 몇 십년 간 계속하다 보면 신의 경지,도사,전문가로 거듭날 수가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된다.

 

 이 글은 곽재구작가가 이곳 저곳을 발품을 팔면서 디딘 타지 사람들과의 대화와 소통,탐색의 결과물들이다.시인의 어린시절의 고향과 학교 주위의 아련한 추억과 생각의 편린들,순천만의 와온(臥溫) 길,여수 바다에 대한 향수,작가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들이 바로 이 글을 장식하고 있다.일상은 각박하고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서민들의 땀과 피가 고스란히 배여 있는 현장감 넘치는 곳이다.한가하게 길을 나서면서 생경한 이들에게 말을 걸어 보는데 세상을 많이 살아 본 사람은 연륜과 경험,세상사를 깨우친 듯 친절하게 대꾸를 하지만 일부 한량이 못마땅한 사람은 극도의 불만을 떠뜨리고 만다.작가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생의 한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을 오롯히 쏟는 이의 심정을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름도 없고 누군가 기억하지도 않는 허름한 풍경들이 서로 손가 마음을 내밀어 나누는 고요하고 따스한 인사가 내겐 시인 것이지요. - 본문 -

 

 시인은 시의 소재를 찾기 위해 조급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바람과 구름,산과 바다,하늘과 땅,사람과 사물 등과의 조우 및 교유를 느긋한 자세로 응시하면서 생각과 감정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켜켜히 저장해 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사물은 그 자체로 시인을 맞이해 주겠지만 사람은 그때 그때 생각과 감정이 다를 것이다.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시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가 그리 척박하지는 않을 것이다.자국을 떠나 타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다만 타국민의 국민성,문화,역사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려는 넓은 아량을 보임으로써 자연스레 친해지고 그 안에서 시의 소재,시다운 씨가 시인의 마음 속에 들어올 것이다.

 

 지난 날 아름다웠던 시절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산업화,도시화 이전의 삶은 공동체였기에 이웃과의 빈번한 만남과 교류가 있었을 것인데 현대사회는 내밀한 공간과 밀도로 인해 현대인은 각박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한다.그렇다고 삶의 길이가 길지만은 않기에 복닥복닥 살 필요가 있을까.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 생각과 행동은 자신에게 커다란 손해이고 재앙이다.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모든 일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평안과 안정,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삶의 질은 풍요로워질 것이다.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지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나의 욕망과 탐욕을 내려 놓으면서 자신의 영혼을 맑게 하면서 사랑과 평화가 넘치리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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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2 - 순수한 모순의 사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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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은 고독하고 쓸쓸한 그림 그리기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그가 홀로 되어 안타깝게 생계를 꾸려 가는 것을 안 공예학원장 및 화우 등의 주선에 의해 통영으로 몸을 옮긴다.부산 초량진,범일동,아카자키 수용소와 같이 떠들썩하고 지저분하며 숨막히는 곳이 아닌 마음의 위로,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 통영은 그가 그림 그릴 곳으로는 적지였다는 생각이 든다.문득 고향이 통영인 박경리의 소설의 무대이기도 했던  <파시>의 작품이 시대적 배경과 흡사하여 잠깐 그 시절로 푹 빠지는 듯 했다.외고집과 순수한 열정으로 그림에 열중했던 그를 구상 시인은 정신적 멘토이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무엇을 바라고 지원하는 것이 아닌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존경했던 분이기에 구상 시인은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본다.

 

 그렇게 통영에서의 그림 그리기 작업을 하던 이중섭에게 구상시인은 아내 이만덕과 자녀를 만나러 가라고 선원증까지 만들어 준다.아내 이만덕은 인편에 한국으로 일본도서를 보내서 이를 판매한 돈으로 방 한 칸이라도 얻을 요량이었는데 국내 경기도 좋지 않아서인지 제 값을 받지 못한 채 일본에 있는 아내,자식을 만나러 간다.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일전에 장모될 사람,처형될 사람에게 반은 퇴자를 맞았기에 입성이라도 제대로 차리고 가는 것이 상례이건만 그는 작업복에 가까운 복장과 후즐그레한 용모로 장모를 뵙게 되는데 상견례는 커녕 등을 돌리고 마는 장모,중간에 끼인 아내 이만덕은 그래도 남편 이중섭의 장래를 생각해서 좋은 쪽으로 말을 한다.자전거가 갖고 싶고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던 아내 이만덕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서울,대구 등지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게 된다.미도파 백화점에서 열었던 <이중섭 개인전>이 대체적으로 잘 끝났지만 군동무(群童舞)》가 춘화로 오인되어 대구 전시회마저 정신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서 그는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림 그리기에 대한 평소의 견해를 피력한다.

 

 "작가의 본질은 어떤 대상을 어떻게 조형화 하느냐에 그 자리매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같은 그림을 다른 풍의 그룹전에 출품했다고 해서 양다리 걸치기라든지 지조 없는 놈이라고 매도하는 건 작가의 발목을 묶는 거나 다름없어요." - 본문 -

 

 

해방후 이념과 사상의 대립으로 그림 그리기마저 그것에 휩쓸려 가는 것에 환멸을 느낀 이중섭은 무한한 자유를 얻으려 남으로 피난을 오고 제주 서귀포에서의 단란하고 화목했던 1년 정도의 기간이 그의 삶에서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외롭고 고독했던 이중섭은 아내 이만덕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사랑과 (다시 만날)기약 등으로 몇 날 며칠을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수많은 편지왕래를 통해 그가 이만덕을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던 것이다.술과 담배,공복으로 생을 살다 갔던 그는 죽어서도 아내 이만덕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다만 사대 대장부로서 자수성가를 하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식구들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한다.아내 이만덕 역시 남편의 부음을 편지로나마 접했음에도 불구하고,그의 절친 구상시인의 부음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인과 같은 따뜻한 정리(情理)는 부족했다고 본다.

 

이번 글이 이중섭의 미망인 이만덕여사가 지유텐 작품전에서 이중섭이 태양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받은 팔레트를 서귀포시에 증정하면서 이 글은 탄생했다고 본다.오밀조밀하게 완성도 높은 이중섭의 삶을 조명하고 해석한 최문희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아련한 여운과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감명을 안겨 주었다.'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격언을 새삼 상기하게 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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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 - 게와 아이들과 황소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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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시대적 배경,사회적 환경을 잘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을 이중섭화백의 생을 통해 절감케 하고 개인의 기질과 성격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사회적 영향도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이중섭화백은 그러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유복한 가정에서 오냐오냐 하면서 자랐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형 중석 아래에서 성장한 이중섭은 천성이 활달하지를 못하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식물과 동물들을 마음으로 품으면서 소중하게 여기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이중섭에게는 한국의 토종소인 황소를 어린시절부터 눈여겨 보면서 소가 상징하는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면을 그의 마음 속에 담았던 것이다.풀밭에서 풀을 뜯는 황소를 응시하면서 소의 생김새,특성 등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화폭에 담아 냈던 이중섭화백의 작품에는 소와 관련한 화제(畵題)가 대부분일 정도이다.유복한 가정이어서인지 그는 청년기에 일본 문화학원으로 유학을 가고 일본 동경 지유텐에서 주최한 작품전에서 태양상을 수상하게 된다.그곳에서 부인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만덕)를 만나게 되면서 둘은 깊은 연애를 하게 되지만 사랑의 리드는 이중섭이 아닌 이만덕이 적극적으로 대시하게 된다.특히 이만덕은 이중섭의 순수하고 민족적인 면모에 반하게 되지만 이만덕의 친정 엄마와 언니 둘은 이중섭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대화가도 아니고 생활기반도 없는 조선인에게 자신의 딸,자신의 여동생을 줄 수 없다는 마음의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일본강점기가 끝나갈 무렵 이중섭은 애인인 이만덕을 떼어 놓고 고향 원산으로 돌아와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게 되지만 해방이 되면서 남과 북은 이념과 사상의 벽으로 이중섭의 그림에 대한 평가에도 날이 서게 된다.스탈린의 초상화에 수염이 없다든지 김일성의 초상화가 엄숙함이 결여되어 있다든지 등에 대한 이념적인 잣대에 의한 평가이고 부농이라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그의 형 중석은 처형된다.말주변과 적극성이 부족한 이중섭은 일본에 남겨진 이만덕이 그를 찾으러 원산에 올줄 누가 알았겠는가.그와 그녀는 극적으로 만나게 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원산에서의 삶은 풍전등화와 같이 아슬아슬한 하여 한민걸의 도움을 받아 화물선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피난을 오게 된다.

 

 피난민들로 들끓고 아수라장이 되었던 부산 초량진,범일동에서의 구질구질한 짧은 삶을 뒤로 하고 제주 서귀포의 현씨 집의 허름한 곳에서 1년 정도를 살게 되지만 그림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다.그에게는 친동생과 같은 구상시인 등이 정신적,물질적으로 지원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노력에 의한 대가가 아닌 만큼 그의 속내는 괴롭기만 하다.하물며 젊기에 낭만이 있어야 할 신혼생활이 가렴주구와 진창과 같은 수용소 생활이 자녀들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했던 아내 이만덕은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아들 둘과 함께 송환선을 타고 니이가타로 간다음 도쿄 친정으로 간다.

 

 <난설헌/다산책방출간>을 쓴 최문희작가의 이중섭 1,2는 한국의 굴절된 현대사와 예술인에 대한 푸대접과 경시현상이 빚어낸 안타까운 시대였다는 것을 가슴 먹먹하게 느끼게 되었다.최문희작가는 정치(精致)하게 시대적 상황과 인물의 내면심리를 잘 직조하고 있다.박진감은 없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체에 현재 및 과거의 에피소드를 잘 융합해 주고 있다.1권은 이중섭이 아내 이만덕을 남겨 놓고 홀로 귀국하여 막노동과 그림 그리기로 생계를 꾸려 가는 애달픈 삶의 이력이 잘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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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걷기
이상국 지음 / 산수야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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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도서를 작고하신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보지는 못했지만 들었던 얘기를 시대적 상황과 그 분들이 어렵게 살아가던 시절을 생각하며 읽어 갔다.지금의 길은 시골 구석구석까지도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흙내음을 맡을 수 있는 길의 공간이 많지를 않다.골짜기로 들어가야 어릴적 밟고 지나가던 길의 모습이 남아 있을 뿐이다.포장되지 않은 길,오랫만에 듣는 예스럽고 그립고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적 배경이다.

 

 내가 들은 예스러운 길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할머니와 외할머니께서 들려 주시던 시집올 때의 길은 평지가 아닌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고개길이었다고 한다.아직 철도 들지 않았을 열네 살,열다섯 살 소녀티가 물씬 풍기던 시절 시집으로 가기 위해 오르고 넘던 고개길에는 낭군님과 오래도록 함께 해로한다는 즐거움과 기대보다는 고된 시집살이로 점철되어 있었다.특히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일제강점기와 맞물리고 증조할아버지께서 허랑방탕 사시다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고된 삶을 인내와 끈기로 살아가야만 했다.젊은 시절 양식을 구하기 위해 땔감을 리어카에 싣고 할아버지는 끌고 할머니는 밀면서 도회지까지 걷고 걸었던 것이다.이십리(8키로) 길을 새벽이슬을 맞으며 시장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해가 중천에 달리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얼굴과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땔감을 팔아 보리쌀과 쌀을 팔아 다시 집으로 돌아 오셨다고 한다.당시 작은아버지께서는 국민학생이었는데 아침밥을 굶고 책보를 허리에 차고 학교를 다녀 오는데 실과 같은 가늘고 긴 오솔길을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그리도 짠하다고 생전 심심하면 내게 들려 주셨다.

 

 사람이 걷지 않는 곳은 풀밭이었을 것이다.무슨 목적이었든 뭇사람들이 가고 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풀들이 소금에 절인 배추와 같이 풀이 죽으면서 풀밭은 맨들맨들 길로 변했을 것이다.평지이든 비탈길이든 언덕이든 고갯길이든 길은 사람들의 두 발로 인해 생겨 났을 것이다.사람이 다니는 길이기에 길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이렇게 길에는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곳이다.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는 못 올 곳이기도 하는 곳이 길이다.길 속에는 다양한 의미와 에피소드가 다겨져 있는데 이 글에는 조선시대의 지식인과 선녀와 악녀,조선인이 고려의 개경을 걷기,고려 콤플렉스 탈출 등이 시대와 인물,심리묘사 등으로 잘 엮어져 있다.

 

 주로 조선시대의 예화들이 예스러우면서도 해학적으로 다가온다.과거를 보러 평지와 고개길을 걷고 또 걷던 예비생원들과 벼슬에 올라 임지로 가는 갈,금의환양하는 길,천 리 먼 길로 유배를 떠나는 일,사랑을 받고 사랑에 굶주린 여인들의 농밀하지만 종말은 비극으로 끝난 여인들의 처절하기만 한 이야기,그리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이 세워지고 다시 고려의 개경을 찾아 가는 이야기,송도삼절이라 일컫는 황진희,서경덕,박연폭포 등이 차례대로 등장하고 있다.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해석을 읽다 보니 시대가 남녀간의 사랑을 가로 막았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남녀간의 연애와 사랑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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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런 - 뉴욕 파슨스대 최고 명강의
에린 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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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런은 '남보다 앞서 나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아웃런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평범함,진부함,관습적인 것에 빠져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도태되고 마는 세상이다.특히 조직의 최고자인 CEO는 집안살림을 꾸려 가기 위해 큰 물기를 제대로 간파하고 통합하며 분석하는 냉철한 판단력을 지녀야 한다.이것은 비단 CEO만이 가져야 할 경영의 덕목은 아니다.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을 비롯하여 조직의 책임과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남보다 한 발 아니 열 발이라도 앞서 가려는 노력과 의지가 중요한 시대이다.

 

 이렇게 평범함과 진부함,관습적인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와 혁신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치이고 밟히면서 결국은 냉엄한 사회,경영환경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어제의 것이 구태가 되고 오늘의 것이 언제 새로운 것에 밀릴 지 모르는 초스피드한 상황을 요구하는 시대인 것이다.교육수준과 경제여력,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높아진 소비자의 니즈는 하루가 다르게 변덕스럽기만 하다.이러한 소비자의 욕구와 갈망을 맞추어 나가려면 기괴하고 괴짜처럼 보일지라도 독특한 창의성과 차별화만이 소비자의 시선을 자극하고 소비자의 지갑을 벌리게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한국에서는 하루에만도 제품에 대한 특허가 쏟아져 나오지만 시장에서 오래도록 살아 남는 비율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환언하여 한국이 이제는 IT(Information Technology)의 첨단국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그 자리에는 단연 초슬림형 반도체와 통신분야라고 할 수가 있다.그 중에 스마트폰은 미국의 애플과 쌍두마차가 되어 시장에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데 소비자의 시선을 집중케 하고 구매욕을 당기는 것은 크기와 중량감을 넘은 독창적인 디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故)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애플 제품이 국내산과 엇비슷하지만 단연 iPAD를 비롯한 iPHONE 등에 나타난 심플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이 아닐까 한다.그래서 전세계 소비자들이 애플에 대한 반응과 관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 MBA 스타일의 기업 전략에서 벗어난 '디자인적 경영전략'을 활용하고 보다 창의적이고 지속력 있는 혁신법에 대해 설파하는 한국계 미국인 에린 조저자의 '아웃런'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시대의 흐름과 소비자의 요구를 경시한 채 경영자의 안일한 경영방침에 끌려 가면서 변화와 혁신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지 못한다면 결국 시장에서의 승자는 변화와 혁신,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조직과 회사만이 생존의 사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자명한 진리이다.더 나아가 지구온난화,생태계 파괴,식량문제 등이 핫이슈가 되고 있는 근자에는 지구생태계의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경영을 일궈가는 조직이 이 시대의 진정한 아웃런이 아닐까 한다.

 

 혁신에는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서서히 전개하는 점진적 혁신과 일거에 내리치는 듯한 급진적 혁신을 들고 있는데 이 두개는 양날의 검(劍)과 같다.성공한 벤처기업의 경우를 보면 자금운영이 어려울지라도 사전에 조사와 연구,예리한 통찰력으로 승부를 겨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지금은 예전의 대기업마냥 차때기식으로 제품을 시장에 풀어 놓는 식으로는 타사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재고는 쌓이며 자금회전은 되지 않아 부도와 같은 막장을 맞이하기 마련이다.전문성과 창의성이 충만한 전문가가 소비자의 눈으로 보고,느끼고,경험하며 답을 구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본다.가치사슬의 관점에서 보자면 앞으로는 디자인적 경영환경 조성도 중요하지만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기에 친환경적인 기업과 제품형성도 소비자에게 강한 긍정과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4R이라는 소비 원칙은 버리는 양을 줄이고(Reduce),고쳐서 사용하고(Repair),필요치 않은 것이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고(Reuse),버리게 될 경우 재활용할(Recycle) 수 있도록 상품을 디자인하고 유통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다. -소비자로서 되새겨 볼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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