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십자가 2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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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대장경의 판각에 즈음하여 "천 년의 지혜를 천 년 뒤의 후학들에게 남겨 주기 위한 일"이라고 설파한다.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고려는 불국토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데 대장경 및 갑옷,돌 등에서 십자가 문양이 나왔다는 것은 논쟁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특히 종교계의 지도자 및 교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경교에 관한 비석이 증거물로 남아 있다.선덕왕 2년 781년에 세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가 바로 그것이다.

 

 대진국 즉 로마시대에 네스토리우스는 신모설로 불리던 마리아를 반대하면서 이집트로 망명하게 되고 그의 종교적 이념과 사상을 이은 후계자들이 대소국(이란)으로 옮겨 가지만 당시 이란은 이슬람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기에 네스토리우스교와 마찰과 갈등을 빚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후 그들은 중앙아시아,인도,당나라로 전전하면서 그들의 종교적 이념과 사상을 전파하게 되었다.다행스럽게 당나라 태종은 타국의 종교와 문화를 포용하는 정책을 썼고 당나라에 유학을 갔던 신라인들에게 경교를 전파했을 것으로 보여진다.고구려,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온 네스토리우스교는 경교로 불리워지고 해인사 대장경 및 몽고군의 갑옷,통일신라시대의 돌 조각품에 십자가 문양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초조대장경이 불태워지고 남해의 정안 처사 및 일연 스님을 중심으로 재조대장경 판각사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된다.한편 지밀 승경은 각수장이 김승을 만나게 되면서 초조대장경이 소실되던 때를 지밀 승경에게 담담하게 들려 준다.최이 집정관을 중심으로 하는 무인들은 개경에서 강도로 천도를 단행하면서 타락한 불교계와 의기투합을 보이면서 팔만대장경 판각사업을 진행해 가는데 이는 당시 고려가 무신이 득세했기 때문이며 팔만대장경 사업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디까지나 정권 연장을 획책하기 위한 술수가 아니었을까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사항으로서 여몽연합군과 삼별초와의 항쟁,여몽연합군의 1,2차에 걸친 일본 정벌 등을 머리 속에 그릴 수가 있었다.고려시대 몽고에 의해 산하가 쑥대밭이 되고 황권은 허수아비인데다 무신과 불교 승려들이 타락하여 이권과 권력을 쥐락펴락하니 결국 못 살겠다고 들고 일어난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게다가 몽고는 고려왕조가 항복하자 부마국으로 대우를 하고 매국노 홍다구를 이용하여 군함을 건조하게 한 후 여몽연합국으로 무장하여 일본을 정벌하지만 결국 태풍과 군의 사기저하로 퇴각하고 만다.고려는 쿠빌라이의 치밀한 전략에 샌드위치가 되고 만다.국가의 힘은 강력한 지도력과 민.관의 합심단결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신의 아들이며 부활 승천했다는 세존의 상징 예수와 철저한 자기 수행을 통해 해탈의 길을 얻는 불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종교 이데올로기는 타력 구원과 자력 구원의 문제로 볼 수가 있다.지밀 승경은 가온과 탁연이 정리한 복음서라면 대장경 목록에 넣어 볼 수 있다고 김승에게 제안한다.김승이 지밀 승경에서 보여 준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은 대진국의 총독 미란타와 천축국 학승 나가세나가 벌인 논변을 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 경전은 문명 교류의 흔적을 담고 있소이다.천축국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노장 사상과 만나 통섭하여 수많은 경전이 쏟아졌지요." -P233

 

 이 글을 읽으면서 종교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다가왔다.기본 교리와 이념이라는 경전을 중심으로 약간의 이견을 보이는 교도가 새로운 갈래를 형성해 나가고,다시 새로운 종교와 문화를 포용하는 이들과 접선하여 융합해 나간다는 사실이다.불교가 자력 구원이라면 기독교는 타력 구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1232년 몽고군에 의해 초조대장경이 소실되고 재조대장경이 만들어졌다.고려대장경,해인사대장경 등으로 불리는 대장경은 "천 년의 지혜를 천 년 뒤에 후학들에게 남겨 주기 위한 일"이라고 의천 스님은 말했다.또한 국난이 있을 때마다 부처의 가르침과 기원으로 극복하려 했던 고려시대의 대장경 속에는 판각수들의 노고가 담겨져 있고,붓다의 십자가 문양과 발견을 통해 고구려,통일신라,고려에 이르기까지 대외관계가 왕성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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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십자가 1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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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소설을 읽어 가면서 느끼는 점은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역사적 사료와 증거물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역사학습이 가능하다는 점과 작가마다의 지난 역사에 대한 해석과 풍부하고 서정적인 감성과 상상력이 글 요소요소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개인적으로는 TV 및 영상물을 거의 보지 않다 보니 역사소설을 읽어 가면서 한 편의 역사극을 관람하는 것과 같은 몰입과 착각지경으로 빠져 들곤 한다.그리고 역사소설을 읽어 왔던 경험은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인물과 사건,대외관계 등이 주가 되었다.문명이 발달되지 않았던 한 세기 이전의 조선시대의 왕조와 신권,사회상을 엿볼 수가 있어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이번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접하게 되었는데 역시 작가의 탄탄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역사적 사료와 증거물,관련 사건에 대한 청취 등을 바탕으로 전개하고 있는 <붓다의 십자가>는 놀랍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다.그만큼 김종록작가의 빼어난 스토리텔링이 두드러졌다는 점이고,고려시대의 정치,사회상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가 있어 역사학습적인 면에서도 손색이 없었다.또한 친절하게도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실어 놓고 있어 등장인물의 역할과 성격,특징을 머리 속에 그려 가면서 읽는 재미와 곧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도 가능했다.김종록작가는 처음이라 생소하지만 어투가 동향(同鄕)말이 간간히 섞여 있어 마치 지인의 글을 읽는 듯한 감각마저 들게 했다.

 

 고려시대는 문인보다는 최씨 무인정권이 강했고 대외관계에서는 거란과 몽고의 침입이 잦았던 시대였다.최충헌의 시대가 끝나고 최이가 그 뒤를 이으면서 고려는 몽고의 침입으로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수도 개경에서 강도(江島)로 천도를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백성들의 삶은 문자 그대로 도탄에 빠져 버렸다.불국토라 일컬어지던 고려시대에 무인과 승려는 무능한 황권을 제치고 그들의 힘과 권력,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다.특히 불교의 중심교리가 중생구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승려들은 수많은 토지를 갖고 백성들에겐 도지(賭只)의 형식으로 논과 밭을 경작하게 한다음 일종의 약간의 싹을 주고 나머지는 수탈해 갔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런고로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기는 커녕 가물,재해로 인해 흉년이라도 들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고 이에 비분강개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1232년 몽고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초조대장경이 불태워지면서 재조대장경 사업을 진두지휘하던 지밀 승경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강화도 선원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놀라운 것은 초조대장경이 불태워지던 광경을 목도했던 각수장이 김승은 대장경에 새겨진 십자가 모양을 보았을 것이기에 지밀 승경은 그를 찾아 곰소항(지금의 부안 변산)으로 가는 모습과 <동명왕편>을 쓴 이규보와 <삼국유사>를 찬술한 일연 스님도 소개되고 있다.아울러 몽고군에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인 여옥과 어린 예수의 화신인 가온이 등장함으로써 밋밋하고 건조한 역사극에 윤활유를 부어 넣는 듯한 로맨스 요소가 살아나 가독성이 배가 되었다.

 

 일본 후쿠오카 겐코(元寇) 사료관에 전시된 몽골군 갑옷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경주 불구사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돌에 십자가 문양이 발견되고 있는 점 그리고 초조대장경상에 교열한 흔적(已極諸悉-->已極 谙悉,이미 아주 잘 익히고 모두 다-->이미 아주 잘 익히고 다 기억하면)을 통해 불국토 나라인 고려에서 십자가의 형상과 그에 대한 의문은 작가의 해석을 통해 쉽게 이해가 갔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대장경 및 갑옷,돌에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그것은 당나라에서 들어 온 자료를 통해 알 수가 있다.<지현안락경>,<서청미시소경>,<경교삼위몽도찬>,<존경> 등이다.당나라는 화려한 실크로드 역사를 통해 서역국과 왕래가 잦았는데 대식국(이란),대진국(로마)과도 교역이 있었기에 그들을 통해 예수 및 마리아를 믿는 경교(景敎)가 당나라에 들어 오면서 자연스레 고구려,고려에도 경교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불국토를 삼으면서 대장경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려 대장경을 만들었던 고려는 몽고의 침입으로 인해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지만 지밀 승경에 의해 재조대장경 판각사업을 이루어 나가려던 당시의 상황을 풍부한 상상력과 통찰력 있는 문체로 독자들의 호기심과 가독성을 이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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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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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이제 명실공히 법치국가이고 3권(입법,사법,행정)이 분리되어 있는 나라이다.3권이 분리되어 나라를 다스리다 보니 각 부마다 고유의 영역이 있고 업무와 사안에 따라서는 공조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나름대로 든든하다.그런데 소송을 제기하여 심리절차를 거친 후에 언도하는 판결과 형량을 보면 과연 법치국가가 맞는가 라는 회의가 들 때가 많이 있다.법률가와 법관 이를테면 의원,검사,변호사,판사의 직업을 갖고 있는 법률가 및 법관들이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공정한 법의 이론과 절차에 따라 판결을 내렸는가에 대해서는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일면 사법계가 정치역학의 흐름에 맞춰 판결을 내렸다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

 

 세상이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 보니 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법학도도 아니고 법의 이론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법률가도 아니지만 현대생활이 거의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흔히 공권력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을텐데 이는 국가의 법질서 및 사회안전을 위해 국회가 법을 만들고 행정권 및 사법권에서 이를 심사,조정,해결해 가고 있다.법을 너무 잘 알아서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고지능범도 있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상식의 수준에서 법을 지키려는 양심과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면 법의 잣대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법 현실주의자로서 형식주의 법학의 추상성과 폐쇄성을 비판하고 있는 프레드 로델저자는 1939(32세)에 쓴 글로서 법은 사실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하는데,법을 운영하고 관리하며 심판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속임수에 의해 억울하고 통탄할 심판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법의 이론도 난해하지만 용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어휘적인 면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내게도 법률용어를 들여다 보면 쉽게 인식이 안되고 연상도 안된다.한국의 법률용어가 독일에서 들어와 일제강점기 일본어로 옮긴 법률용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 유학파들이 증가하다 보니 미국식 법률용어,법의 이론과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구세대들은 일본유학파일테고 현 소장파들은 미국 법학을 많이 참고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법률 용어가 명쾌하게 전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용어가 빈번하다는 것은 법률 용어 및 이론이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법률 용어 및 법해석,법의 절차 및 판결문 등은 일반인들에겐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냥 어디론가 따라가야만 하는 꼴'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 글에서도 사례로서 언급하고 있지만 동일한 사건.사고일지라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법의 해석과 심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법률가 및 법관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형량을 누구에게 적게 내릴까? 라는 의문을 갖어 본다.법관,법률가도 신(神)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보면 거리감이 들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좀 과장해서 말하면 천하의 최고라는 자부심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사용되는 영어 가운데 법의 언어만큼 공허하고,혼란스러우며,그 담겨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법률 언어는 모호함과 전적으로 이해 불가능함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P197

 

 법학자로서 법현실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프레드 로델이 미국 법률 단어의 모호함과 이해 불가능함이 이렇다고 한다면 일반인에게 다가오는 법률 용어,법률 이론은 얼마나 어렵겠는가.한국에서의 법관,법률가들은 대부분 몇 전(轉) 몇 기(起)의 고난을 딛고 사시등용문에 합격하고도 연수원 생활,법률가 시험이라는 몇 차례의 난관을 뚫어야만 했기에 그들에게는 힘과 권력이라는 자부심과 우월감이 몸과 마음 속에 똘똘 뭉쳐져 있을 것이다.법의 이론과 해석,그리고 경험에 의한 법의 심판이 공정하고 상식에 맞게 이루어져야 마땅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최종 심판을 내리는 판사에게 (보이지 않고 알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숨긴 상태에서) 가까운 피고인이 있다면 판사는 과연 피고인에게 어떠한 형량을 내릴 것인가? 그리고 돈과 물질을 장악하고 있는 재계의 수장이 혐의 및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판사는 과연 피고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오늘날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세태이다 보니 법의 해석과 절차,판결도 실용성과 경제성에 맞춰져 있다고 보여진다.공정한 법의 룰에 따라 법의 이론과 해석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매끄럽고 확실하지 못한 법의 심판으로 인해 사법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원성과 불만이 가중되어 가고 있다.한국도 이제는 정치공학적인 법의 심판을 지양하고 사법계가 독립적인 존재로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엄격함과 공정함,신뢰감을 형성해 가기를 바란다.특히 돈에 매수되고 돈에 현혹되어 물의를 빚는 법관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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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로트레크 -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 시공아트 61
버나드 덴버 지음, 이윤희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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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대중문화 방면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문화수준의 척도가 국가의 경쟁력이고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는 것이다.음악,미술,춤꾼과 같은 예술의 삶을 살다간 예인들은 저마다 '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예술의 길이 예나 지금이나 어디 쉬운 일인가.엄한 스승을 만나 눈물이 찔금 나올 정도의 매서운 교육을 받아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연후에 빛나는 결과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또 하나 생전에는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사후에 그 가치와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아 뒤늦게 명성을 떨치는 인물도 있다.

 

 동양의 미술이 먹과 벼루,붓의 농담에 있다면 서양의 미술은 단연 다채로운 유화에 있다고 생각한다.종교적 색채를 띤 그림부터 인물,정물,풍경 등이 있으며,사조로는 인상파,입체파,신조형주의,다다이즘,추상표현주의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그중에 19세기 프랑스 알비에서 태어나 37세에 요절(夭折)한 툴루즈로트레크(Toulouse-Lautrec)화가의 그림 인생을 살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백작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4세에 다리 골절상을 입으면서 신체부자유를 겪게 되고 18세가 되면서 그림 그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보통 서양인이라면 장신을 연상하게 되는데 툴루즈로트레크는 단신에다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남부럽지 않은 귀족가문에다 성격도 꽤 활발한 편이었던 그는 기본적인 미술교육은 샤를 삼촌에게,전문적인 내용은 프랭스토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미술 인생은 보나의 영향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여진다.소년시절 그는 스케치북에 주로 말과 관련한 그림을 주로 그리게 되었는데 샤를 삼촌의 영향이 컸다.그가 시작한 그림은 드로잉으로 시작하여 풍경화,인물화 등을 빛과 대기의 감각을 살린 인상주의적 색채가 짙었다.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게 된 인상파의 사조는 모네,반 고흐 등의 그림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났던 것이다.인상파는 사실주의와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탄생되었던 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또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철학은 문학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문학가가 에밀 졸라이다.

 

 나아가 그는 회화와 드로잉의 토대 위에 석판화와 포스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만능형의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활발한 성격이다보니 캬바레와 사창가 출입이 잦았던 만큼 물랭가(街)의 사창가 및 창녀,무용수,여점원 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많이 그렸다.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인상파 화가들의 관심 분야였던 것으로 보여진다.그 가운데 드가에게서 기술적,도상적 영감을 지속적으로 얻었다고 한다.로트레크는 창녀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창녀들의 벌거벗은 육체.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마치 수도사가 수도원에 있는 듯 안식을 찾았다고 한다.화가로서의 그의 취향은 매우 독특하기만 할 뿐이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로트레크는 선천성 유전병으로 신체적 부자유를 겪어야만 했다.그러나 그는 이러한 문제는 괘념치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을 다양하게 그려 나갔다.다양한 화가들과의 교류,인상주의의 그림을 묘사하기 위해 캬바레,사창가,카페 등지를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 세계를 좌절하지 않고 멋지게 그려 내고 있다.흠이 있다면 그는 알코올 중독자일 정도로 늘 술을 입에 달고 다녔을 정도라고 한다.그게 화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일찍 운명을 달리했다.로트레크의 그림 인생을 살펴 보면서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사회적 혼란까지도 간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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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박종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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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삶의 질은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하기만 하다.경제소득이 받쳐 주는 부류는 험악한 광풍지대에서도 끄덕없지만 소득이 낮은 부류들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국가에서 이들에게 내놓는 일자리,복지정책도 아직은 걸음마 수준일 뿐이다.이에 반해 경제적 수입이 괜찮은 부류들은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이 호화롭고 여유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자본주의 국가에서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겠지만 사회구조가 갖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갖지 못한 사람은 삶의 방향을 놓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어려운 삶을 꾸려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정에서 아이를 낳아 사회인이 될 때까지 들어가는 양육비,교육비 비용이 1인당 평균 3억을 넘는다고 한다.가정을 꾸려 나가다 보면 양육비,교육비만 들어 가겠는가.다양한 생계형 비용(고정비용)과 비고정비용(예상치 않은 비용 등) 등을 감안하면 부부의 수입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게다가 1인당 가계빚이 6,000만원을 넘는다고 하니 경제적 위기가 회복되지 않고 침체된 상태를 이어간다면 말그대로 국가의 총체적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양육비,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부모의 뼈빠지는 수고도 그렇지만 더욱 비극적인 문제는 젊은층들이 아예 연예,결혼,출산(3무)을 꺼리고 혼기가 다가와도 선뜩 결혼할 마음이 없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젊은층이 연애,결혼,출산을 꺼리는 내막에는 국가가 청년층에게 내놓은 일자리가 거의가 비정규직에 알바로 이어지는 질낮은 삶을 강요하는 데에 있다.탈산업화의 시대에서 대부분이 힘든 노동보다는 손님을 상대로 한 감정노동이 주가 되다 보니 산업계도 전체적으로 비상이 걸렸다.특히 중소기업은 현장의 생산직 및 생산관리 등에서 인력이 절대부족한 상황인데 중소기업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이 청년층이 중소기업으로 발길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래서 다국적 노동인력을 유치하여 아쉬운 데로 생산현장인 공장을 굴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악덕업체에 의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비인간적 처우와 산재 문제 등이 조속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젊은층과 노년층간의 갭이 크다는 점이다.두 세대간의 소통과 대화는 단절되어 '모래알과 같은 형국'이다.고령화의 추세는 글로벌 문제로 비화하고 있어 어느 나라이든 국가적인 이슈로 삼을 정도이다.고령화가 지속되면서 한국 역시 발등에 불이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늘어난 수명에 자연스레 찾아 오는 노환으로 인한 병원비 등은 경제적 수입이 절대부족한 노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국가에서는 국민연금,기초노령연금 등 각종 호혜성 제도를 내놓고 있는 반면,청년층에게는 이렇다 할 정책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선거공약에는 늘 '청년층의 일자리 구축'이라는 대슬로건이 나돌지만 실상 청년들이 바라보는 미래상은 문자 그대로 암울한 터널 속이다.부모는 자식들에게 사회인으로서 제구실을 하라는 의미와 바램에서 힘들게 교육지원을 했건만 자식들이 안정된 직장과 질높은 삶은 '그림의 떡'과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늘어만 가는 노인들을 위한 갖가지 복지정책은 힘없는 노인들에게는 여생에 있어 그나마 위안과 안정이 될 수도 있다.다만 노인들을 위한 복지정책도 중요하지만 청년층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보다 더 심도있게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청년층에 대한 이러한 소극적이고 구태의연한 정책만 내놓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어두울 전망이다.국가의 문명과 생산을 이어가려면 그에 맞는 경제력 인구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인구감소는 개인의 삶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또한 청년층들이 느끼는 미래에의 불안감과 상실감은 해외에서 석.박사급의 고급인력의 유출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선결과제로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청년층과 노인복지문제를 균형있게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전세계가 안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 2030 VS 5060 세대간의 마찰과 갈등은 똑똑한 경제관료가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단기적인 경기 부양책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대간의 문제를 해결할 해법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국가마다 세대별로 안고 있는 문제점과 실행책 등을 크로스 체크하면서 읽어 가다 보니 미국과 독일이 청년층을 끌어 들이기 위한 정책이 잘 정착되어 있고 남유럽과 일본 등은 한국과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이 시선을 끌었다.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가중화,세대간의 갈등과 복지문제 등을 거시적으로 궁리하고 만족할 만한 정책을 국가가 내놓아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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