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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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일저자에 대해서는 귀동냥과 눈요기를 많이 했기에 저자에 대한 감(感)은 어느 정도 갖고 있었던 셈이다.약간은 이단아적인 인상이지만 문제의식과 비판의식이 강한 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언론매체에서 그에 대한 프롤로그식 소개와 삶의 역정을 살펴보니 중졸의 학력에 독학으로 문학의 길을 걸어 오고 있다.삶의 목표가 뚜렷하기에 뚝심과 집념으로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어찌되었든 그의 작품을 늦게나마 접할 수가 있어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흔히 그가 남긴 작품들을 두고 일상을 일탈한 이단아,반항아적인 경향이 짙다고 하는데,일반인의 시각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크든 작든)거리를 두고 예리하게 해부하고 분석해 내는 힘은 깨어있는 시민의식의 발로이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기득권층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모순되고 부조화를 보이는 사회제도 및 사회현상에 대해서 불편한 의식을 드러내어 짐짓 모르는 체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환기 및 각성을 시켜 주고,사물,사건 등에 대해 단편적이고 단면적인 것에만 추종하는 이들에게는 사회체제 및 사회현상이 안고 있는 다양성과 부조리함을 공유하자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어느 나라이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주류 이데올로기 계층에 의해 사회 및 국가의 흐름이 흘러 가고,때론 시대를 역행하기도 한다.기득권층이 소수계층이면서 돈,명예,권력,물질의 수혜를 절대적으로 받으면서도 다수계층과의 괴리감과 불협화음이 크기도 하다.다행히도 지난 한국 역사 속의 인물들의 행적을 쫓다 보면 잘못된 사회 제도,민중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분연히 일어서기도 하고,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희생의 면모를 보여 주었던 분들이 참으로 많다.그러한 면에서 장정일저자의 이번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세 번째로서 그가 읽고 느끼는 단상들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읽었던 칼럼 형식 내지 서평형식으로 되어 있는데,마치 밥을 앉히기 위해 쌀을 씻기 전에 체에 뉘와 모래 등을 건져 내는 정성이 담긴 서평과 같은 감각이다.인지도가 높고 전문적인 글쓰기 작가이다보니 각출판사에서 따끈따끈한 신간들이 우편물로 전해지는 것 같다.수많은 도서를 읽다 보니 저자의 머리 속에는 도서의 장르,내용 등이 연대,시대,인물,사조,유파 등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고,신간을 받아 보게 되면 어떻게 서평을 전개할 것인가에 댛 이성과 논리의 잣대가 저자의 뇌리를 냉철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 글을 읽다 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사회현상 및 시사문제,내가 이미 읽었던 도서와 겹치는 경우도 꽤 많았다.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갖고 있는 시각과 대동소이한 면도 있고,내 생각과 논리의 한계를 뛰어 넘어 논객의 면모를 그대로 들려 주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부동산 거품이 꺼진 상태에서 하우스 푸어로 살아 가는 계층의 고충,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과 대화의 부재로 인한 괴리감,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보수.진보층의 개념,성(性) 표현에 대한 시각의 차이,역사 교과서에 나타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개인과 사회의 안정적인 문제점 등을 비판과 이성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으며,나 또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자연스레 모아졌다.특히 한국상아탑 안에서 인문학자들의 유형 네 가지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대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부고발자적인 시각이 이 글의 중점내용이고 특징이 아닐 수가 없다.

 

 인문학자의 네 가지 유형 다음과 같다.

 

통찰가형(천재),소크라테스형(혹은 비판가형),사변가형(전문가.기술자.분석가로 불리지만 해설자나 추종자형이라고 해도 무방함),저널리스트형

 

 저자는 현재의 대학 교육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이를 극복할 조언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소크라테스형이 인문학으로서 가장 적당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이 든다.소크라테스형은 진리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비판의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의 본류(本流)라고 여긴다.그런데 실상은 저널리스트형을 닮은 사변가형이 많다는 점이다.그것은 최신 유행을  학문으로 오도하고 있는 대학 강단의 저급하고 속성주의의 단면이 아닐까 한다.미국도 1950년대 이전까지는 소크라테스형이 많았지만 현재는 전문적이며 사변적이고 반(反)소크라테스적인 것이 우세하다고 한다.특히 자신의 전문 영역에 함몰된 전문가주의나 신비평과 같은 현미경주의적인 인문학은 현시대의 가치관과 신념,윤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본령(本領)에 미치지 못하는 체제 순응적인 학문이라는 점을 힘주어 비판하고 있다.

 

 한 권의 책,한 권의 잡지,한 편의 칼럼을 읽되 겉에 드러난 의미와 가치보다는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속뜻을 빨리 찾아 부조리,불균형,모순점 등을 비평하고 통제하고 감시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진실된 역사 만들기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선다.그러한 사회의 부조리,위악성 등을 건전하게 비판하고 깨우친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방관자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쉽고 편안 길을 추종하려는 자세에서 나와 사회,국가를 위해 좀 더 고민하고 사유하려는 사고를 유지하는 것이 가깝게는 다수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멀게는 인류의 삶까지 개선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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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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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무신론자,불가지론자 등의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종교를 갖지 않고 신앙심이 없다든지,신의 존재를 알 수가 없다고 논하는 자 정도의 의미일 것인데,각종교가 본래 갖고 있는 고유의 교리와 교조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육체적,정신적 나약한 인간에게 구심점 및 든든한 의지가 되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대부분의 나라가 종교의 자유가 있어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찾아 신앙심을 기르고 다가올 내세를 든든하게 대비하려는 경우도 있다.종교가 없어도,신의 존재를 믿지 못해도 자신의 생활가치관을 굳건히 믿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의 경우에는 살아가면서 환란이 닥쳤을 때 정신적인 고통과 혼란을 느낄 것이다.특히 죽음의 순간이 가까워졌다고 자각할 경우에는 돈과 물질,명예,권력보다는 그간 인간적인 면에서 주위와 불협화음을 이루고 인적자산인 인간관계를 크게 소홀히 했다면 살아 온 지난 시절을 크게 성찰하고 남게 될 유족들에게 회한의 심정을 토로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을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게 산 것도 아닌 나이이다보니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태어날 때는 기쁨과 축복을 받으며 세상의 빛을 받지만 죽음의 순간은 의식,기억도 없는 무의식의 명부의 세계로 누구나 가게 마련이다.태어나는 순간은 단초롭지만 죽음은 하나의 의식을 치뤄내야 하기에 유족들은 망자를 위해 경건함 속에서 장례를 치뤄야 하는 것이 의식상 대조가 된다.시간의 문제이겠지만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은 막연하게 두렵기만 할 것이다.삶의 과정이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야 하듯 죽음이라는 문제도 초연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정신적.의식적인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그래서 죽음은 삶과 하나이다 라는 것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자신이 믿는 종교,신앙이 있다면 그 종교,교리에 순명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울 것이다.불교에서 말하는 '안심입명'의 경지에 이르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학자,저널리스트,비평가,탁월한 논쟁가의 수식어가 붙는 고(故)크리스토퍼 히친스는 '100인의 지식인' 5위에도 오른 인물이다.그는 생전 실존적인 입장에서 신의 존재에 관한 도서를 여러 편 출간을 했으며,사회부조리,타락한 이념.사상의 문제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열띤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그중에 《논쟁》을 읽은 적이 있는데,의심스러운 것을 의심하는 깨우친 지식인이었다.또한 그의 방대한 지식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과도 같은데,과거와 현재의 폭넓고 다양한 정치,문화 이슈들을 사랑,혐오,따스함,권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세상의 그늘에 드리워진 것들을 밖으로 들어내는 용기와 결단력,솔직함을 넘어 (그의 얘기 속에는)유머와 연민의 정까지도 함축되어 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2011년 12월 식도암으로 운명을 달리하기 직전 팔,손,손가락의 통증을 줄여준다는 주사를 맞은 직후에 삶의 단상을 성찰 형식으로 그려 내고 있다.비평가로서,논쟁가로서,학자로서,저널리스트로서 종횡무진하게 활동하던 히친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식도암이 찾아 오면서 그는 누구도 견뎌내기 힘든 35일 간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피를 너무 많이 뽑아 온몸이 시퍼렇게 멍자국으로 가득했던 히친스였지만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꼭 살아 돌아가 삶의 의지와 투지로 인해 살아 왔노라고 투병일지를 기록하겠다고 간절히 소망하기도 했다.또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이 든 그는 기독교 성경 구절 및 신의 존재,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즉 기독교의 신은 전지전능하다,신도들은 신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필사적으로 필요로 한다 등이다.암투병을 하는 환자 및 그에 상응하는 중증 환자들에게 희미한 기억,의식이 붙어 있는 한 곁에서 병수발을 하는 보호자 및 병문안을 하는 지인들은 환자에게 최대한 평안과 미소,따스함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사랑과 감사,영생의 뜻도 전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백 번 천 번을 들어도 싫지 않은 변치 않은 소중한 진실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마태복음 16장 26절>일 것이다.요즘 건강 관련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어 건강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있는데,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규칙적인 생활 습관,올바르고 균형잡힌 식습관,적절한 운동 등이 건강과 행복을 챙겨주지 않을까 한다.돈,권력,명예가 아무리 좋고 달콤해도 죽어지고 말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생전 비평의 시각으로 거침 없고 당당했던 크리스토퍼 히친스였지만 죽음을 자각하고 죽음의 경계에 선 순간,그는 자신이 못다한 말을 성찰하는 심경으로 죽음을 순명으로 받아들였다.이 도서는 그의 유작이고 삶과 죽음에 대해 강한 긍정과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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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한 밀실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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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에 따라 집중과 몰입을 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가벼운 듯 조각난 퍼즐을 맞춰갈 수 있는 내용 설정을 할 때도 있다.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 즉 동.서양의 고전 추리소설부터 현대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다양하게 읽지를 못했기에 추리 소설계의 유파를 나눈다든지 작가의 문체와 내용 전개는 대략 어떠할 것이다 라고 분석을 할 수 있는 힘은 아직은 없다.그런데 트릭과 추리가 담긴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작가의 성향 및 능력을 어느 정도는 발견할 수가 있어 스토리의 전개 방향을 예측할 수 있고,내가 예측하고 상상했던 것과 거의 흡사하다든지 동일하게 흘러가면 작가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뿌듯함과 즐거운 착각을 누려 보기도 한다.

 

 히가시가와도쿠야(東川篤哉)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웬수같은 이웃집 탐정을 읽었는데,글의 제목이 호기심을 부풀게 한다.구체적인 내용은 전부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분명 독특한 소재와 내용 전개와 탐정의 추리력이 돋보인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얼마 전에 읽었던 《웬수같은 이웃집 탐정》의 경우는 소설집으로서 일본인의 민간신앙과 전설,제의가 담겨져 있어 일본 민속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어 주었고,히가시가와작가의 독특한 스토리 전개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글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뒤늦은 감탄을 자아내어 기억에 남는 작가가 아닐 수가 없다.

 

 이번 어중간한 밀실은 다섯 편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앞서 읽었던 얘기들과는 글의 소재 및 무게감,추리의 정도,트릭 등은 빠져 나간 썰물과 같은 휑한 양상이고,등장인물들 역시 극히 평범한 인물 중심이어서인지 내용이 밋밋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소설집이다보니 글의 길이가 짧은 탓도 있고 소재의 진부함마저 느끼게 되어서인지 기대한 만큼의 몰입과 집중은 덜 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다섯 편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니 나름대로 생각과 상상,추리를 하기도 하면서 개연성도 들지만 약간은 오바(Over)했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검은 복면을 쓰고 성범죄,성폭행 사건과 테니스 코트에서 부동산 회사 사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어중간한 밀실,오봉을 맞이하여 남쪽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우연찮게 남자의 전라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남쪽 섬의 살인,고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발견한 '대나무 위에서 목매단 노파의 시체 발견'이라는 표제가 붙은 대나무와 시체,화백이 10년 전에 아틀리에에서의 죽음을 두고 자살이냐 타살이냐로 설왕설래하는 10년의 밀실.10분의 소실,경마를 관람하려던 중 누군가가 후두부를 가격하고 도망쳐 진범을 찾으려는 아리마 기념 경주의 모험,이렇게 다섯 편이 나온다.앞의 네 편은 대학생 또래들이 사건.사고를 둘러 싸고 추리를 해 나가고,마지막 경마장에서의 사건은 경찰이 동원되는 상황으로 엮어져 있다.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10년의 밀실.10분의 소실과 같이 유산을 노리고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또한 이중인격자들이 많다 보니 백주에는 사업을 하고 야간에는 복면을 쓴 폭행범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추리를 접하다 보니 돈과 물질,한탕을 노린 사고가 많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그중에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대나무와 시체 부분이다 노파가 대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사건과 관련하여 대나무의 생장 과정과 노파의 시체를 매단 대나무의 성장에 관련한 이야기이다.미소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형식과 내용이 묵직하지는 않지만 간결하고도 즐거운 추리를 읽어 갈 수가 있었다.이것이 히가시가와 도쿠야작가만의 글의 구성이고 특징이 아닐 수가 없다.개인적으로는 히가시가와작가의 장편소설도 선을 보였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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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진화론 - 창작의 원리에서 도구까지 위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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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글쓰기와 관련하여 작가의 피나는 글쓰기 연습의 노력과 경험담에 관해 읽었던 바 공감이 컸다.무엇을 쓸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자료수집부터 소재발굴,현장 취재,탐문 등이 모티브가 되어 글을 써 내려 갔다고들 한다.작가에 따라서는 아침형 글쓰기가 있는가 하면 올빼미와 같이 저녁형 글쓰기가 잘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작가는 쓰고 고치고 버리고 다시 쓰고 고치고 버리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마음 졸이면서 기다리던 글이 완성이 되어 출판사에 보내지고 다시 편집자에 의해 약간의 손질을 거치면서 글이 시장에 선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현대 작가들은 컴퓨터 문명의 이기와 축적된 글쓰기 노하우와 경험에 의해 원하는 글,전달하고자 하는 형식과 내용을 잘 직조하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글쓰기는 독서문화의 저변화 및 개인의 창작의욕의 고조와 함께 뜻있는 사람들은 계층을 불문하고 글쓰기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창작의 열기가 높아지고 불특정 다수가 이에 참여하다 보니 그 안에는 옥석이 있을 것인데,이왕 글쓰기로 승부로 보려면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개인적인 소양과 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글은 어떠한 사건을 풀어 내면서 이것을 읽어 줄 독자들과의 얼굴을 맞대지 않고 행하는 간접적인 대화,소통이기에 글쓰는 사람이 위주가 되는 것 보다는 수많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평가를 받는다는 마음가짐이 우선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글의 내용과 전개는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인물,사건,시.공간적 배경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구성 단계를 잘 풀어내야 할 것이다.글을 읽다 보면 글의 활력과 탄탄한 내용전개를 위해 적절한 인용구 및 배경설명도 글이 갖고 있는 생명력이라고 본다.

 

 이인화저자에 의해 쓰여진 《스토리텔링 진화론》은 인지과학과 컴퓨터 공학이 발달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 이를테면 소설가를 비롯하여 드라마,영화,에니매이션 등과 관련한 작가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데이터베이스화된 스토리헬퍼가 잘 지원해 주고 있다는 점을 중점내용으로 삼고 있다.현대사회의 매체 환경 변화와 발달에 힘입어 스토리를 생산하는 방법도 상전벽해와 같이 바뀌어 가는 마당에 우려스러운 점은 어느 분야든 개인의 창작력이 과연 살아 꿈틀거릴 것인가이다.현시대가 디지털 문명의 정중앙에 놓여 있어 무엇이든 쉽고 빠르게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고 특징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짧은 노력과 시간으로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의한 글쓰기 작법을 통해 작품다운 작품이 탄생하고 작가의 혼과 정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을까에 대해 기우가 든다.

 

 스토리텔링은 사건에 대한 진술이 지배적인 담화 양식이다.사건 진술의 내용을 이야기라고 하고 사건 진술의 형식을 담화라 할 때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담화,이야기가 담화로 변하는 과정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P15

 

 이인화저자는 좋은 스토리의 판단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스토리는 먼 곳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고 이것을 원방성(遠方性)이라고 부르고 있고,스토리는 청자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의도를 갖는 기억유도성이라고 하며,스토리는 오랜 시간 전달 내용의 생명력과 유용성을 유지하는 장기지속성을 띠고 있으며,스토리는 사건,사물과 함깨 그것을 체험한 사람의 흔적을 전달하는 화자성(話者性)이라고 말하고 있다.

 

 좋은 스토리의 요건을 염두에 두고 사건 전개를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상태인 가능성,개연성,잠재성,필연성이 있다. 글쓰는 사람이 처해 있는 시대와 사회의 상황을 비롯하여 어떠한 대상,어떠한 사건을 잘 배합하여 전개,위기,절정,결말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를 다양한 각도로 고민하면서 글을 풀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네 가지 상태 위에 진정한 창작의 힘은 무엇인가도 기본지식으로 알아 놓아야 한다.인지적 활동,정교한 기획 요구,분석적,묙표와 계획과 관습 등의 제약 요건 고려,자유로운 정신의 상상 행위이 창작의 공통의 법이라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시대를 사는 현대 작가들은 삶이란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아서 인간의 의식과 언어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대단히 복잡다단하고 모순적이며 악의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예술적 재현에는 일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어떠한 경우에도 예술은 일정한 형식에 따라 삶에 대해 신중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P49

 

 

 외적 인격을 의미하는 페르소나를 놓고 저장 서사가 서로 다른 만큼 서사 수용 방식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그것은 독자에 따라 특정한 경험을 추구한다든지,목적을 달성하는 방식,독자의 태도 및 고려 사항에 따라 독자를 유형화하고 있다.몰입형(카타르시스)독자,공감형(연민)독자,추수형(애석)독자,성찰형(소원:疏遠)독자로 나누고 있다.구체적인 수용 유형을 보면 몰입형 독자는 감정 전이,공감형 독자는 체현적 공감,추수형 독자는 서사적 공감,성찰형 독자는 관조적 수용으로 나뉘고 있다.서사의 수용을 거쳐 표상 순환,표상 추출과 표상 재기술,이야기를 만드는 모티브로 이어진다.표상 추출을 위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창작 연대기 12가지 과정이 잘 소개되어 있고,서사 명제,배경-상황,사건-행위를 담고 있는 스토리의 205개의 모티프와 돈,사랑,영생,명예,권력이라는 분류 체계를 읽다 보니 그간 보고 듣고 읽었던 각종 작품들의 면면이 파노라마,주마등과 같이 스쳐 지나갔다.

 

 1990년대부터 탈고전 서사학의 구도가 정보화 혁명의 물결과 더불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혁명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서사적 창작은 개인의 노력 및 학습에 의해 터득되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이렇게 인지학습의 발달과 컴퓨터 공학이 소프트화 되면서 이젠 창작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뜻과 노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창구로 다가 서고 있다.이것은 학습과 표현의 민주주의화이고 창작자와 수용자의 상호작용의 촉진은 물론 다양하고 참신한 스토리가 속속 출현하는 계기가 구축되어 가는 시대가 아닐 수가 없다.문화산업 육성 차원에서 한국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비해 그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첫삽을 떴기에 시대의 변화,창작 열기가 맞물리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축적된 DB와 함께 모든 인간이 작가의 시대를 맞이했다는 기대감이 앞선다.(www.storyhelper.co.kr 참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생각도 들었다.또한 이 글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해 다소 전문적인 내용과 잦은 도표 제시 등에 의해 흥미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글쓰기에 필요한 형식과 내용이 알찼기에 필요할 때마다 읽고 또 읽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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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검은숲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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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소설을 꾸준히 읽어 오고 있다.지명도가 있는 작가의 작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정도이고 추리,스릴러물도 언제부터인지 묘한 마력에 이끌려 읽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이 앞선다.추리소설의 경우에는 주로 밀실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위주가 되었던 것 같다.잔잔한 트릭과 반전의 묘미가 제법 흥미를 돋우웠던 셈이다.스릴러물 역시 작가에 따라 글의 소재와 구성이 상이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톡톡 빠르게 흘러가는 전개력은 흡인력마저 안겨 주게 되어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현대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각종 사건.사고는 의학과 기술 산업의 발달과 함께 소재도 그에 상응하는 것들이 많아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도 하는 반면,일본과 일본인의 의식 속에 오랜 세월 내재되어 오는 신화,역사,문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학습적인 효과,글의 구성,추리와 스릴의 묘미를 동시에 느낄 수가 있어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일천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나에게는 유익함이 배가 되어 준다.

 

 

 

 

 

 

 일본 난보쿠쵸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시작된 전통 연극의 형태인 노가쿠(能樂)를 기본 소재로 다루고 노가쿠의 종가로 거듭나고 있는 한 집안의 비극사를 다루고 있는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은 노가쿠에 얽힌 사건과 사건의 전말을 집요하게 파고 드는 순수한 탐정 그리고 일본 나라현 요시노와 덴카와를 공간적 배경으로 스토리가 개연성과 긴장감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꼈다.우치다야스오작가의 작품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는 살인사건 시리즈를 제법 많이 출간하고 있는 노작가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주로 일본 역사 안에서 문제가 될 만한 사건과 인물을 내세워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 점에서 반향과 기대를 한껏 부풀게 한다.

 

 무로마치 시대 아시카가요시미츠(足利善滿)의 권장에 의해 간아미,제아미가 육성.발전시킨 노가쿠는 나라시대 중국 산악(散樂)에서 전해져 온 흉내,가무,곡예 등이 노가쿠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현재 노가쿠는 세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어린시절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관람한다고 하는데,요근래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젊은층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노가쿠는 표정이 거의 없는 가면을 착용하는데 주로 주연급인 '시테'만 착용하고 조연 이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착용하지 않는다.노가쿠의 가면인 멘(面)에 얽힌 사연과 죽음의 내막에는 어떠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탐정과 주변 인물들의 행각은 어떻게 흘러갈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이 글은 일본 지방도시의 영업소장 대리의 의문사로부터 시작된다.그런데 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신령스러운 방울이었다.이것은 덴카와 신사의 신체(神體)로서 어떻게 이 물건이 죽은 영업소장 대리의 손에 넘어 갔는지를 두고 르포라이터이면서 자칭 탐정인 아사미가 덴카와로 가고 그곳에서 노가쿠 종가로 있는 가즈노리와 우연히 조우하게 되지만 다음 날 그는 요시노 산자락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이를 두고 아사미는 종가의 죽음과 연루된 것으로 몰아 가면서 위기에 빠지게 된다.경찰측의 일방적인 억측과 강박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고 그의 친형이 형사국장으로 재직하고 있기에 쉽게 방면된다.한편 종가의 손녀인 히데미가 덴카와로 급파되어 할아버지의 비보를 듣게 되고,영업소장 대리의 딸 치하루마저 방울의 출처를 알기 위해 덴카와를 찾아 오면서 분위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런데 노가쿠 종가에는 기묘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히데미의 오빠 가즈다카는 히데미의 친오빠가 아닌 유복자로서 장차 노가쿠 종가를 계승할 자손으로 모두들 예상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탈 중에서 가장 영예로운 아메후라시 탈을 쓰고 열연을 하다 급살했다는 점이 심상치가 않고,영업소장 대리가 오사카 출장을 간다고 했다가 도쿄에서 독극물에 의해 죽었다는 점을 두고 탐정 아사미는 재빠르게 그의 학창시절 연인을 알아 내고 그녀의 행적을 수소문한다.또한 친자식이 아니면서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원한과 증오의 세월을 살아온 히데미의 어머니에게도 의혹의 시선이 쏠린다.아사미는 개인의 전재산을 털어 노가쿠 학원을 운영하는 다카사키를 찾아 가는데 그는 "모든 것은 사라졌다"는 쪽지를 남기고 행방을 감추게 된다.아사미는 경험에 의한 직관에 의해 덴카와를 다시 찾는다.그런데 히데미의 이복 오빠 가즈다카의 친모인 나가하라가 덴카와 계곡에서 탈을 옆에 놓고 자살을 하고 만다.결국 미즈카미가의 종가인 가즈노리의 괴이한 죽음,종가를 이을 가즈다카의 노 무대에서의 죽음,그리고 그의 친모 나가하라의 죽음을 놓고 인과관계가 성립하고 미즈카미가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어렴풋하게나마 추리해 볼 수가 있었다.

 

 일본 전통 예능인 노가쿠와 그와 관련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가문의 비극적인 비극사를 잔잔하고 애잔하게 그리고 있는 우치다 야스오작가는 노가쿠에 대해 전문가적인 소양은 없었지만 이 작품의 구상을 위해 나라현 요시노 마을과 노가쿠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열심히 쫓아 다녔다고 한다.또한 가즈다카와 같이 활동중인 전통 예능인을 모델로 하여 이 작품을 써내려 갔는데 탈고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델로 삼은 인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고 한다.개인적으로는 일본 전통 예능인 노가쿠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무엇보다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우치다 야스오작가의 '전설 살인사건'시리즈가 이 작품 이외에도 이미 출간되었기에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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