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살아 있는 한 존재의 독방에서 온전히 빠져나갈 수는 없어요.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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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체
이규진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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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조의 친부 사도세자는 생전의 행적과 미욱함 그리고 노론과 소론의 정쟁으로 인해 뒤주 속에 갇힌 채 비운의 생을 마감해야 했다.정조의 나이 열 두어살 무렵 친부가 조부에 의해 뒤주에 갇히는 꼴을 보고 죽음까지 목도했으니,그가 조부 영조의 뒤를 이으면서 국정을 이끌어 간다 해도 억울하게 죽은 친부 사도세자의 원혼을 어찌 잊을 것인가.정조는 친부 사도세자의 묘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으로 명명을 했다.묘를 이장하면서 수원을 국제도시로 만들려는 정조의 의지도 대단했고,신분제를 없애려 노비추쇄법도 제정했던 인물이다.조선의 국정을 이끌어 갔던 왕이면서 친부에 대한 그리움과 원혼을 달래기 위해 축성(築城)을 하고 서장대,방화수류정까지 만들게 하는 등 수원을 새롭게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파체》는 '눈물을 거두다'라는 의미로서 1796년 수원 화성 축조와 관련하여 스토리를 풀어 가고 있다.역사소설은 사료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작가의 의도에 의해 어느 정도 상상력과 각색이 추임새를 띠면서 스토리는 딱딱하지 않고 과거의 상황을 개연성 있게 재현해 주고 있어 읽는 재미와 역사학습의 묘미를 살려 주고 있기에 우선 싫증이 나지 않는다.이규진작가의 작품은 《파체》가 처음이지만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시종일관 등장인물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갈지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가득찼다.수원 축성이라는 국가사업이 주류라고 한다면 당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이교도인 서(천주교)에 대해 정조의 관대하고 암묵적인 허용이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이야기꾼이 되려다 과거 시험에 급제하지만 호적문제로 관료생활을 못하게 되는 태윤 그러나 그는 우연찮게 정조대왕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정조는 그를 재주와 능력이 있는 인재로 도청(道廳)의 책임자로 맡기고,무사의 기질에 원리원칙으로 일관하는 정빈 그리고 갓난아이 시절 진사댁에 맡겨져 양육되다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하면서 무원당으로 오게 되는 유겸이 파체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이야기꾼이 되고 싶어 했던 태윤은 말그대로 총명하기도 하지만 늘 입이 간지러워 못견디는 성격이고,정빈은 무사답게 꼿꼿하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유겸은 정빈의 하인으로서 바늘과 실처럼 일과 행동이 착착 맞는다.그런데 정조는 태윤에게 윤소혜라는 여인의 행방을 찾아 내라는 숙제를 내주고,정빈은 혼사가 가까워지면서 도승지인 친부 차원일은 좋은 규수감을 물색하게 되는데 강릉 여인인 영신과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치르게 된다.그러나 정빈은 혼인 첫날 밤도 치르지 않고 각방을 쓰게 되는데,영신은 혼인의 목적이 비록 가난의 설움에서 벗어나고자 혼인을 했지만 남편이라는 작자가 도무지 잠자리를 갖으려 하지를 않으니 영신의 속병은 날로만 늘어간다.

 

 태윤,정빈,유겸 그리고 노역꾼들에게 의해 화성이 축조되고 서장대,방화수류정까지 만들어지니 수원은 명실공히 중국과의 무역거점으로 거듭나고 영조는 친부 사도세자를 명당에 다시 모시니 마음이 흐믓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정조가 찾던 윤소혜라는 여인은 바로 정조가 사랑했던 궁녀였다.정조의 도덕과 윤리면에서 흠이 날까 먹고 살 돈을 충분히 주어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냈던 것인데,알고 보니 전주에 있는 이진사댁에 유겸을 맡겼던 것이다.그리고 정빈은 어찌된 일인지 아내 영신과는 내내 각방을 쓰게 되고,서학인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인이고 서학을 신봉하던 태윤은 옥살이에서 방면되고,정빈과 유겸은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게 된다.태윤이 그들이 갈 만한 곳을 찾아 나섰으나 이미 둘은 한몸이 되어 죽어 있는 상태였다.즉 정빈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고 평소 행동를 놓고 볼 때 남색이라고 불릴 만큼 유겸을 좋아하고 아꼈던 것이다.정조는 신유박해(1801년)의 폭풍이 일어나기 전 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천주교에 대한 서적,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탄압이 조대비에 의해 거세어지고 세도정치가 시작되기도 했다.비록 픽션이 많이 가미되었지만 정조의 휴머니즘과 개화정신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몰입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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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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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사월 초파일 무렵이 되면 깊고 짙푸른 산속 사찰에 알록달록 드리워진 화려한 연등 모습이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정화시켜 준다.개인과 가족의 안녕과 축원을 담은 연등은 하해와 같이 넓기만 한 부처의 중생구제를 연상케 한다.어느 종교이든 교리가 있겠지만 부처(Budha)의 가르침 탐욕을 멀리하고 무소유의 정신으로 해탈을 깨닫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부처의 상징인 싯타르타의 일생을 되짚어 보면서 속물근성으로 가득찬 중생의 한사람으로서 미망(迷妄)에 빠진 '나'는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해 보는 시간을 갖어 본다.

 

 《마하 바라따를 참고로 하여 싯타르타의 삶을 서사적이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사람의 맨발은 싯타르타가 세속의 탐욕을 모두 벗어 버리고 홀로 맨발로 고행을 하는 과정을 개연성 짙은 필치로 들려 주고 있다.부처의 생애에 대해서는 어설프게 알고 있었지만,불교와 관련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 향기로운 불교색채가 좋아한 나머지 이번 한승원작가의 작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싯타르타가 탄생할 무렵의 인도 왕조와 신분계급,사회상을 어느 정도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으며,왜 싯타르타가 힘과 권력,명예가 대대손손 누리고도 남을 왕족 출신인데 왜 출가를 하여 사서 고행을 했을까.그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싯타르타의 눈에 비친 신분제도 즉 카스트(Caste)제도 중에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들의 비천하고 노예과 같은 삶을 보면서 싯타르타는 왕족이라는 신분,기득권 등을 훌훌털어 버리고 중생구제를 위해 유리걸식,탁발과 같은 비천한 생활을 하게 된다.

 

 왜 사람들에게는 계급이 있을까.왜 계급 높은 사람은 게급이 낮은 사람을 꾸중하고 모질게 구타를 할까.

 -P46

 

 태자로서 부왕인 슈도다나의 뒤를 이을 싯타르타는 룸비니아 동산에서 태어난다.어머니 마야 왕후는 제왕절개를 한 끝에 어렵사리 싯타르타를 낳게 되지만 출혈이 심해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하고,프라자파티에 의해 양육과 훈육을 받게 된다.또한 태자 교육청에서 무사와 제왕학에 대해 스승을 두고 엄격한 교육을 받기도 한다.모두가 싯타르타를 차기 왕으로 상정해 놓은 상태이고,전륜성왕(轉輪聖王:통치의 바퀴가 굴러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성스러운 왕)을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싯타르타는 농사대전에 참가하여 농부들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서,양치기,밀,뽕나무,양잠,잠실을 직접 관장하면서 명주 도시를 조성하기도 했다. 기존 사회의 무질서와 비인도적인 행태와는 거리를 두고 출가를 하기로 결심한다.싯타르타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많은 번민을 했을 것이다.신분제도가 신의 뜻이라는 점도 그에게는 매우 회의적이었고 불가촉천민들이 살아 가는 양상은 헛간에 사는 짐승만도 못한 토굴이 거처였으며,그들끼리의 암투와 살벌한 몸싸움은 흉악하고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그의 뇌리에는 자신부터 탐욕을 벗어 버리고 모두가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찬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세 명의 부인을 둔 싯타르타는 야소다라 가장 마음에 들었다.이목구비를 비롯하여 자신을 챙겨 주는 마음 씀씀이 등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아,둘 사이에서 낳은 자식 라훌라가 있었다.그리고 제정대신이면서 장인인 다리나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잠시 싯타르타는 연금생활을 하기도 했다.그는 전륜성왕을 뿌리치고 중생을 사랑과 화평으로 구제하며 일반 백성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그 고통을 몸소 느껴보고자 고행길을 마다 하지 않는다.부왕 슈도다나를 비롯한 궁궐에서는 그의 출가에 대해 걱정과 우려의 나날이었지만,마부를 비롯한 두 스승이 환궐을 강권하기에 잠깐 부왕과 왕비,아들,장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출가후 그가 깨달은 해탈을 몸소 실천하면서 80세에 가까운 나이가 들면서 사라나무 숲에서 제자들의 종신을 받으며 열반에 들어 가게 되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혼자서 헤쳐 나가는 실존,그 절대 고독의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났다.세속의 모든 욕망,모든 착취와 탐학,모든 전쟁,모든 시기 질투와 복수,모든 질병과 모든 죽음의 공포에 찌들어 있는 중생들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그것은 해탈(解脫)이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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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와 마르케스 - 20세기 두 전설적 인물의 권력과 우정
스테파니 파니첼리 외 지음, 변선희 옮김 / 예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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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체 게베라 평전》,《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를 읽으면서 쿠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미국 마이애미 주(州)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리브해에 면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1960년대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쿠바 혁명이 성공하면서 2008년 피델 카스트로가 국회평의회 의장 및 국가원수직을 사임하기까지 쿠바의 사회는 '사회주의'라는 이념과 이해관계에 의해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의 일선에 있을 때에는 체 게베라도 동지로서 그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피델 카스트로는 체 게베라에 대한 신뢰도 컸던 만큼 콩고 독립투쟁을 위해 체 게베라는 혁명가로서 열과 성을 다했다.당시 소련의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방편과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1965년 체 게베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하면서 카스트로의 소련식 신제국주의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면서 볼리비아 게릴라 준비에 돌입했던 것이다.

 

 카스트로(이하 피델)가 쿠바 혁명의 전설적 인물이면서 정치적인 동지요 영원한 우정을 보여 주고 있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이하 가보)은 카스트로가 혁명과 사회적 문제 등에 늘 조언과 중개역할을 하면서 동지로서 때로는 결의형제와 같은 관계로 이어져 갔다.콜롬비아 출생인 피델은 장교 집안에서 출생하여 전쟁과 영웅담에 관한 얘기와 책을 많이 읽으면서 훗날 피델과의 정치적 파트너로서 함께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또한 가보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우리에게는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가보는 결국 피델에게 있어서 미운 정,고운 정이 시간과 세월 만큼 진하게 농축된 관계라고 생각이 든다.특히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쿠바와 그의 주변국가 즉 미국 및 엘살바도르,에콰도르와의 관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으례 가보가 특사와 같은 협상가로서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민완(民腕)의 대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가보는 자국인 콜롬비아가 정치적 부도덕,부조리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추구하려 콜롬비아를 떠나 멕시코,쿠바 등지를 떠돌았던 것이다.중등학교 시절 가보의 역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훗날 사회주의 활동과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했던 동인(動因)이 아니었을까 한다.

 

 "좋은 소설이란 현실을 시의 언어로 바꿔 놓은 것이라는 점이고,또 하나는 인류 최후의 운명은 사회주의라는 것이었다." -P31

 

 가보는 피델과의 만남이 있기 전,푸에르토리코의 독립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또한 칠레의 아엔데 좌파 사회주의정권이 출범하면서 그와의 만남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렇다고 피델과 가보의 진한 우정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즉 빛과 그림자와 같다.피델이 자신의 정적들에게 무참하게 자행하는 정치보복과 같은 형태는 결코 수용할 수가 없었다.쿠바의 지식인 파디아의 자아비판에 대한 분노가 극치에 달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불길을 식기도 했다.칠레 아옌데가 쿠데타에 의해 자살을 하면서 피노체트를 비난하고 급진 좌파 잡지 《대안》에 참여하기 위해 다시 쿠바 여행길에 오르면서 피델과의 재회가 성사된다.이를 기점으로 가보는 피델과 쿠바의 사회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주장하는 반면,미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봉쇄조치를 맹렬히 비난한다.

 

 한편 가보는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족장의 가을 등을 준비하기 위해 독재자들이 누린 절대적이고 고독한 권력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권력자들의 자서전 혹은 그들을 모티브로 한 소설,고전 작품들을 찾아 읽기도 하며,현역 권력자들에 대한자료를 참고하면서 작품 구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11페이지 분량의 단편을 위해 5백 페이지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작가의 작품을 위한 고뇌와 열정은 가히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쿠바의 아바나 시민들은 가보에 대한 찬사와 열렬한 환영을 아끼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쿠바의 민간인이 해상에서 미국 비행기를 납치하면서 피델은 납치범(민간인)을 즉각 처형한다.어떠한 재판 절차도 없는 가운데 총살형에 처하고 마는데,가보는 이에 대한 코멘트가 없다.가보가 피델의 정치적 동반자이고 협상 파트너라고 한다면 당연 이에 대해 "사형제도를 반대하고,불필요하고 선동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라면서 말을 맺는다.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와 바르가스 요사는 지식인으로서 쿠바 피델이 정치적 보복에 대해 맹렬히 규탄한다.카스트로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주석직을 인계하고,마르케스는 얼마전(2014.4.17)에 타계했다.혁명의 동지로서 때로는 편안한 인간적 우정의 관계로서 카스트로와 마르케스가 보여 주었던 정치적 공생관계는 때로는 천군만마를 얻는 장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고,때로는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식이었을지도 모른다.특히 마르케스는 비록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카스트롤를 대신하여 국가급 원수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그가 갖고 있는 정치적,문학적 사상과 견해를 충분히 밝혔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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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과 수리공 - 과학을 뛰어넘은 엔지니어링 이야기
권오상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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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의 서열이 있었다.사는 선비사(士)로서 학식이 높은 양반가문과 관료를 지칭하는 것이었다.그러한 신분의 서열이 500여 년 아니 지금도 사(士)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어야 안정적인 생활과 신분보장을 누릴 수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이것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성원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한다.직업의 귀천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직업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지금은 사농공상보다는 사상공농 정도가 아닐까 한다.그러한 차원에서 직업의 귀천은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층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것이 인간의 신분을 규정짓기도 한다.안정적이고 신분이 보장되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우월의식이 강한 것도 부인할 수가 없는데,직업에 의해 개인의 서열을 매긴다는 것이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도 뿌리 깊게 박힌 직업 서열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마저 든다.

 

 이 글은 그러한 관점에서 과학과 엔지니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흔히 과학 및 과학자는 아무도 발명하지 못한 것을 최초로 발명해 낸 창조자의 이미지가 강렬한 반면 엔지니어는 뭔가를 만지고 두드리고 용접하는 기능공과 같은 이미지를 강하다.그런데 권오상저자는 과학이 우선이고 엔지니어가 종속적이다 라는 사회적 인식과 주장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과학자든 엔지니어든 두뇌를 짜내고 손을 활용하여 뭔가를 생산,창출해 간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는 없다며,엔지니어의 위치와 역할이 과학에 앞선다는 점을 역사의 사례를 들면서 들려 주고 있다.평소 과학과 엔지니어에 대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읽어 가다 보니 두 가지 영역 모두 과학문명사에서 위치와 역할의 비중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에 대해 서열을 매기고 있는 현상을 바로 잡자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져 있다.즉 과학이 엔지니어링을 이끄는 것이 아닌 엔지니어링이 과학을 이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5개의 챕터를 나열하면서 저자는 과학과 엔지니어의 관계,역할을 담담하게 들려 주고 있다.즉 과학은 이론에 집착하고 과학은 원인이 아닌 결과물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엔지니어링의 도움 없이는 과학도 탄생할 수가 없다고 본다.IT산업과 같은 최첨단 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도 엔지니어링의 참신하고 창의성 있는 기획하에 최종 결과물인 과학의 발명으로 연결되듯 기술,연구와 개발 등은 엔지니어링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라이트 형제의 항공역학,뉴턴역학과 토목 엔지니어링,양자역학과 원자폭탄,천체물리학과 NASA의 달 착륙 등은 엔지니어링의 두뇌에서 기인한 것들이어서 현대사회에서 엔지니어링의 위치와 역할은 과학자보다 더 높은 위상과 자부심을 갖어도 좋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은 무언가를 만들에 세상에 해결책을 내놓는 주체적인 사령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엔지니어링은 창조하는 행위이다.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시대의 기술.예술.과학,예술과 기술은 모두 아트(Art)이다.설계,디자인,경험의 가치와 실패의 교훈,건축 및 건조물,안전계수와 중복설계 등은 모두 엔지니어링에 관계되고 실패를 통해 더욱 기술의 축적이 공고화된다.자동차의 탄생은 말의 분뇨로 인한 악취 해결을 위해 탄생했고,그외 극초음속 비행체,코일건,메타물질은 엔지니어링의 힘에 의해 탄생했다.나아가 한국역사 속의 화포를 만든 최무선,거북선을 건조한 이순신도 장군이면서 엔지니어라는 것이다.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시대의 혁신을 주도한 진정한 엔지니어라고 볼 수가 있다.현실성이 없는 공상과학을 쓴 쥘 베른의 《달나라 탐험》 및 《지구에서 달까지》등은 세월이 흘러 엔지니어들에 의해 아폴로 11호를 만들어 현실화했던 것이다.그만큼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본 엔지니어의 위치와 역할은 과학자 이상의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묘한 방식에 의해 신화가 생산,재생산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과 엔지니어링의 위상의 문제를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 보았다.특히 요근래에는 ~공학이라는 말이 많다.그만큼 엔지니어링의 위치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심지어는 금융공학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말이다.설계하고 디자인하여 부품을 조립하여 시제품을 테스트하기를 반복하는 엔지니어링의 일련의 과정은 문명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는 탁월한 영역이고 기제가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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