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스트로와 마르케스 - 20세기 두 전설적 인물의 권력과 우정
스테파니 파니첼리 외 지음, 변선희 옮김 / 예문 / 2011년 5월
평점 :
쿠바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체 게베라 평전》,《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를 읽으면서 쿠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미국 마이애미 주(州)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리브해에 면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1960년대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쿠바 혁명이 성공하면서 2008년 피델 카스트로가 국회평의회 의장 및 국가원수직을 사임하기까지 쿠바의 사회는 '사회주의'라는 이념과 이해관계에 의해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의 일선에 있을 때에는 체 게베라도 동지로서 그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피델 카스트로는 체 게베라에 대한 신뢰도 컸던 만큼 콩고 독립투쟁을 위해 체 게베라는 혁명가로서 열과 성을 다했다.당시 소련의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방편과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1965년 체 게베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하면서 카스트로의 소련식 신제국주의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면서 볼리비아 게릴라 준비에 돌입했던 것이다.
카스트로(이하 피델)가 쿠바 혁명의 전설적 인물이면서 정치적인 동지요 영원한 우정을 보여 주고 있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이하 가보)은 카스트로가 혁명과 사회적 문제 등에 늘 조언과 중개역할을 하면서 동지로서 때로는 결의형제와 같은 관계로 이어져 갔다.콜롬비아 출생인 피델은 장교 집안에서 출생하여 전쟁과 영웅담에 관한 얘기와 책을 많이 읽으면서 훗날 피델과의 정치적 파트너로서 함께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또한 가보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우리에게는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가보는 결국 피델에게 있어서 미운 정,고운 정이 시간과 세월 만큼 진하게 농축된 관계라고 생각이 든다.특히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쿠바와 그의 주변국가 즉 미국 및 엘살바도르,에콰도르와의 관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으례 가보가 특사와 같은 협상가로서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민완(民腕)의 대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가보는 자국인 콜롬비아가 정치적 부도덕,부조리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추구하려 콜롬비아를 떠나 멕시코,쿠바 등지를 떠돌았던 것이다.중등학교 시절 가보의 역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훗날 사회주의 활동과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했던 동인(動因)이 아니었을까 한다.
"좋은 소설이란 현실을 시의 언어로 바꿔 놓은 것이라는 점이고,또 하나는 인류 최후의 운명은 사회주의라는 것이었다." -P31
가보는 피델과의 만남이 있기 전,푸에르토리코의 독립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또한 칠레의 아엔데 좌파 사회주의정권이 출범하면서 그와의 만남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렇다고 피델과 가보의 진한 우정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즉 빛과 그림자와 같다.피델이 자신의 정적들에게 무참하게 자행하는 정치보복과 같은 형태는 결코 수용할 수가 없었다.쿠바의 지식인 파디아의 자아비판에 대한 분노가 극치에 달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불길을 식기도 했다.칠레 아옌데가 쿠데타에 의해 자살을 하면서 피노체트를 비난하고 급진 좌파 잡지 《대안》에 참여하기 위해 다시 쿠바 여행길에 오르면서 피델과의 재회가 성사된다.이를 기점으로 가보는 피델과 쿠바의 사회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주장하는 반면,미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봉쇄조치를 맹렬히 비난한다.
한편 가보는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족장의 가을》 등을 준비하기 위해 독재자들이 누린 절대적이고 고독한 권력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권력자들의 자서전 혹은 그들을 모티브로 한 소설,고전 작품들을 찾아 읽기도 하며,현역 권력자들에 대한자료를 참고하면서 작품 구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11페이지 분량의 단편을 위해 5백 페이지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작가의 작품을 위한 고뇌와 열정은 가히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쿠바의 아바나 시민들은 가보에 대한 찬사와 열렬한 환영을 아끼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쿠바의 민간인이 해상에서 미국 비행기를 납치하면서 피델은 납치범(민간인)을 즉각 처형한다.어떠한 재판 절차도 없는 가운데 총살형에 처하고 마는데,가보는 이에 대한 코멘트가 없다.가보가 피델의 정치적 동반자이고 협상 파트너라고 한다면 당연 이에 대해 "사형제도를 반대하고,불필요하고 선동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라면서 말을 맺는다.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와 바르가스 요사는 지식인으로서 쿠바 피델이 정치적 보복에 대해 맹렬히 규탄한다.카스트로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주석직을 인계하고,마르케스는 얼마전(2014.4.17)에 타계했다.혁명의 동지로서 때로는 편안한 인간적 우정의 관계로서 카스트로와 마르케스가 보여 주었던 정치적 공생관계는 때로는 천군만마를 얻는 장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고,때로는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식이었을지도 모른다.특히 마르케스는 비록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카스트롤를 대신하여 국가급 원수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그가 갖고 있는 정치적,문학적 사상과 견해를 충분히 밝혔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