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겐스테른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제2차 세계대전은 3국동맹국인 독일,일본,이탈리아가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피제국국들에 끼친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끔찍하여 전율감이 저절로 생긴다.대표적인 예가 이시이 시로가 주도했던 만주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독일 나치하 게슈타포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화생방 실험 및 무차별 살육은 결코 잊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고 상처이다.전범이었던 히틀러,도죠히데키 등의 말로는 자살과 교수형으로 사라지고 일반인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즘하 게슈타포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수인 302번을 달고 있던 에이탄 모르겐스테른은 극적으로 게슈타포를 탈출하여 이웃나라 폴란드로 가게 된다.십대소년이었던 에이탄은 SS대원과 맞서 싸우기도 하는데 지하 레지스탕스와 연결되어 전투능력을 쌓았던 것이다.그후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에이탄 모르겐스테른은 과거의 전투능력과 초인적인 힘이 반영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 정보국(모사드)요원이 되어 미국 뉴욕 맨해탄에 나타나 그의 프로젝트인 권력과 지배욕에 가득찬 화이트칼라 계층을 노린다.

 

 에이탄에게는 적수가 있었다.그는 바로 인간사냥꾼 카를-하인츠이다.에이탄을 가리켜 "아리안 인으로 변신한 유대인이 유대인들 대신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을 창조해 준 전범들을 뒤쫒는다고"니 조소를 날린다.에이탄은 입양소년 엘리를 비롯하여 의사 아비,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생체실험을 통해 부를 축적한 다국적 컨소시엄의 탐욕에 대항하여 재키,제레미 부부를 포섭하여 십분 활용한다.에이탄은 다국적 컨소시엄과 같은 비인간적이고 물질에 눈이 먼 인류의 결점을 개선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그러면서 스토리는 에이탄이 게슈타포에서 폴란드,영국으로 이동하는 과거와 뉴욕 맨해튼에 상륙하여 벌어지는 다국적 컨소시엄과의 일전이 숨가쁘게 전개되어 간다.이것이 바로 스릴러의 정수가 아니겠는가.

 

 에이탄은 전자파에 노출되어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부하요원들은 침착하게 인간애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생기를 불어 넣는다.에이탄은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팔팔한 몸과 초인적인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에이탄에게는 자신을 아버지로 여기는 야누시와 카롤이 있어 프로젝트 작전에 커다란 자극과 힘이 되기도 했다.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홀연히 부하요원들 곁을 이슬처럼 떠나면서 막을 내린다.총,칼로 인명을 살육하고 재산을 파괴하는 세계적 전쟁이 이제는 다리를 절단한 당뇨병 환자의 의족을 만들겠다는 경제적 실리추구가 이 글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모르겐스테른 프로젝트의 전편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를 읽지는 않았지만 나치하에서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이 겪었던 생체실험이 한쪽에서는 돈벌이가 되었다.이 연장선상에서 다비드 카라 작가는 현대사회의 속성과 상업윤리를 꼬집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지에 피어난 꿈 - 전주 한지 이야기 한국의 재발견 1
한영미 지음, 강화경 그림 / 개암나무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지로 만들어진 벽지,창호지를 사러 시내에 갔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벽지,창호지는 고급벽지,우드타일 & 원목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이는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다 보니 소비자의 취향 및 선호도도 자연스레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오늘날 벽지,바닥재가 고급화되고 최신설비에 의해 자동생산되면서 빠른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바램과 판매자의 신속한 서비스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격세지감을 느끼지만 한지와 오늘날의 벽지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나는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서 자라온 것이 정서적,심리적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한지의 원료인 닥나무는 녹음방초의 여름날 수수와 조가 심어진 밭 가장자리에 일렬로 죽 늘어져 성장해 나가고,늦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잎사귀는 떡갈나무 잎사귀마냥 누렇게 물들어 가고 줄기는 녹색에서 짙은 갈색으로 숙성한다.가을날 지천에 깔린 닥나무는 한국 전통 한지의 원료가 되는데 손길이 많이 가는 것이 단점이지만,한지를 만들기 위한 농부,업자들은 노력과 정성을 아름다운 체념으로 삼고 기다림과 인내를 감수했다.

 

 한지와 관련하여 에피소드를 술회하려고 한다.돌아가신 선친은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생존해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부창부수가 되어 이 고을 저 고을을 다니면서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으셨다.비록 밥보다는 술을 너무 좋아한 점이 흠이지만 지나온 시간을 회고하면 아버지 얼굴 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아버지의 노고는 숙연해지곤 한다.아버지께서는 닥나무를 농부들에게 싸게 매입하여 한지업자에게 팔아 넘기곤 했다.농부들이 잘라 묶어 갖어 온 닥나무를 커다란 가마에 물을 붇고 닥나무를 떡시루에 떡을 앉히는 것처럼 차곡차곡 채운 다음 밤새도록 불을 지폈다.쪄낸 닥껍질을 말랑말랑하여 벗기기도 수월하였다.닥은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기까지 셀 수 없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벗긴 닥껍질은 다시 물에 불려 닥칼로 일일이 벗겨내어 이를 건조시킨 후 닥나무 뿌리에서 나오는 황촉규와 혼합하여 한지공장에서 수공업으로 한지를 만들어 낸다.나는 닥나무를 찌고 닥껍질을 벗기는 작업까지는 직접 경험을 했다.

 

 전통 한지를 잘 보존하고 있는 전주 한지 이야기는 내 고향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것 같아 향수와 추억이 다시 돋아나게 한다.안영미 작가의 고향이 전주 쪽인지는 모르지만 전주말을 맛깔스럽게 재현하고 있으며,이야기의 배경이 전주 흑석골이다.지금은 흑석동으로서 이곳은 제 작은 아버지께서 신혼시절 거주했던 곳이고 흑석동 근처에는 공수내 다리가 있었다.친근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또한 닥껍질을 건조시키는 곳이 고덕산 계곡 자락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고덕산이 그 부근에서는 최고봉이며 그 주위에는 남고산성 등 문화유적도 많은 곳이기도 하다.

 

 대대로 닥나무를 찌고 한지를 만들어 가계를 이어 오는 지호네 집안의 얘기를 잘 들려 주고 있는데,우선 한지를 만들기 전에 한지 산신제를 지내는 의식부터 시작된다.지호는 초등학생으로서 할아버지가 닥나무를 찌고 껍질을 벗기고 말리며 잿물 및 황촉규에 닥껍질을 담그는 장면과 흑피,백피에 이르는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내면서 친구들에게 널리 알린다.또한 조선왕조실록을 재현할 한지 만들기 대회라 지호 할아버지는 보통 때보다는 더 신경이 쓰이고 정성을 기울이는데,이웃 누군가가 닥껍질에 약품을 섞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마음의 병이 나고 만다.'이웃이 돈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딱 떠올랐다.이에 지호 아버지가 할아버지 대신 한지를 만들게 되고,부족한 일손은 이웃들이 와서 십시일반으로 거들어 주면서 지호네는 조선왕조실록 한지 만들기 대회에서 일등을 거머쥐게 된다.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전통한지 체험관이 있다.그곳에는 한지로 만든 다양한 제품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어린이들을 위해 한지로 제품 만들기 체험도 있다.한지는 수공예성,장기 보존성,습기 흡수성 및 통기성이 좋다.또한 한지로 만든 제품은 동양적 특성이 돋보이는 특색도 있다.현대화에 밀려 차츰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골동품이 될 수도 있는 한지는 비록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한국의 전통과 가치를 되찾고 세세손손 보존해 나갈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는 것을 새삼 일깨우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패의 사회학 - 실패, 위기, 재앙, 사고에서 찾은 성공의 열쇠
메건 맥아들 지음, 신용우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기에 사고,실수,재앙을 맞는다.보편적인 얘기이지만 사고,실수,재앙을 통해 얻는 값진 교훈은 다가올 일에 대해 대비하고 훈련함으로써 사고,실수,재앙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개인의 부주의와 태만,탐욕과 과욕에 의한 사고,실수,재앙은 미리 예견된 것일 수 밖에 없다.이러한 좋지 않은 일들이 아무 일 없이 넘어갈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는 이와 유사한 사고,실수,재앙을 초래하리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나아가 개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집단,국가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리라 생각한다.그래서 일반적이고 정상적으로 매사를 준비하고 꾸려가는 가운데 발생하는 실수,사고,재앙을 통털어 실패라고 한다면 일의 과정에서 삐그덕거리며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다음에는 이러한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성적,경험에 의한 직관을 발휘하는 것이다.이러한 행위는 통상 인간이 위험과 실수,재앙,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어심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맛보는 고배이면서 내일에 대한 방어책이고 교훈일진대,실패의 종류는 다양하고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개인의 삶,사회적 현상,국가의 기강 및 국민들을 위한 민생의 질 등을 바라보면서 실패의 대소를 떠나 이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향방이 달라지리라 생각한다.실패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기 마련이다.특히 사랑하는 부부간에 이혼,사별의 상처를 입는다든지,구조조정을 당해 장기 실직상태로 있다든지,(국가적 차원에서)인플레이션,알코올 중독,자연 대재앙을 겪게 되는 경우 개인부터 모든 사회구성원이 한동안은 상처와 고통의 트라우마를 겪게 마련이다.무한경쟁 시대를 달리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신분서열과 경제적 수입의 격차로 인해 사회에서 배제되었다는 소외감과 혼자가 되었다는 자포자기의 상태로 나락하면서 개인과 사회는 정신적,물질적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사회가 각박하고 삶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나를 알아주는 인맥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인맥을 잘 활용하여 실패의 늪에서 거듭나는 삶으로 전환해 갈 수도 있다.실패라는 암울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자포자기,우울증,알코올 중독,심하게는 자살이라는 극단의 행위를 할 염려도 있다.

 

 실패는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같은 행위를 되풀이한다면 자신의 삶을 통제 내지 관리를 못하는 '멍청한 삶'에 다름 아니다.자신의 삶을 똑부러지게 챙기고 일구어 나가되,사회는 말그대로 공동체적인 삶,자신보다 못한 소외된 계층들과 함께 산다는 상생적인 의식을 갖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내 소견이다.현실은 매우 각박하고 치열하다.하루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구걸,폐품수집과 같은 밑바닥 인생부터 고급관료에 이르기까지 삶의 유형은 다양하기만 하다.겉으로 보이는 경제적 소득과 신분차이는 극과 극을 달리지만 힘이 있는 계층이 힘없는 계층에게 보다 더 도덕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공공선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그러한 사회모습이 진정으로 뿌리를 내려 간다면 삶의 낮은 질,소외.배제된 이들이 사회.국가에 대한 신뢰와 존경의 염이 싹이 틀 것이다.권력층은 일자리를 창출해 주고 경제부양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생계비,의료비,교육비 등을 보편적 복지차원에서 지원해 주어야 삶의 실패를 내딛고 힘을 얻어 새 삶을 꾸려 가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의 저자 메건 맥아들은 자신의 실패 경험담과 실패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균형과 조화를 맞춰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정당한 실패는 용인하되 이를 거울로 삼아 다시는 어리석게 동일한 실패,재앙,실수,사고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취지이다.역사 가운데에도 실패는 무수하게 발생했다.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개인과 사회,국가는 부강한 나라를 이룩했고 그러지 못한 나라는 뒤늦게 깨달으면서 힘겨운 나라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흥미로운 것은 유럽의 농부는 사업적 위험을 농부의 관점에서,미국은 사냥꾼의 간점에서 사업적 위험을 받아들인다.전자는 열심히 일하고 좋은 계획이 있을 때 성공의 결과가 생기기에 전적으로 개인에게 모든 것을 돌린다.반면 미국은 사냥꾼의 관점에서 사업적 위험을 받아들이기에 결과는 불확실성이 높고 기회와 운이 작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실패를 딛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더 좋은 회사,더 좋은 정책,더 좋은 삶을 이루고자 하려면 성공 가능성을 우선 순위로 객관적인 사실,자료,경험,직관을 충분히 살려 나가야 한다.실패와 같은 폐허 속에서 꽃을 찾는 건 과연 누구인가? 바로 똑똑하되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가열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 최악의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한국의 관료들
최동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한국사회는 총체적인 난국이다.아니 모두가 주인인냥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착 책임과 사표(師表)를 보여야 할 인물들이 밀실에서만 앵앵 소리를 내고 있는 판국이다.소위 힘과 권력을 갖은 계층들이 대다수 국민들을 볼모로 온갖 권력과 패악을 저지르고 있다.사법국가이면서도 과연 사법이 문자 그대로 공정과 엄격함으로 관장되고 있는가.어렵사리 쟁취한 1986년 정치민주화는 어언 30여 년이 가까워지면서 정치민주가 성숙단계에 이르렀을 법도 하지만 빛깔만 정치민주일 뿐 유신 및 군사독재시절의 정치행태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지역주민과 국민들은 민생과 국가안전을 위해 기대만한 언덕이다 라고 믿고 선출해 주었건만 작금 방귀깨나 낀다고 하는 권력층들은 밥그릇 다툼과 명예,달콤한 권력의 맛에 취해 있다.

 

 대학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1990년대 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자마자 IMF금융위기가 찾아 오고 이를 조기수습하면서 나라살림이 잘 될거라고 생각을 했건만,불필요한 뱃살을 감량한다는 차원에서 기업 구조조정,비정규직 양산 등 신자유주의를 확실하게 편승하고 말았다.나아가 부동산 거품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더니 미국발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던 부동산 가격은 자전거 바퀴 바람빠지듯 '쉬쉬이' 하고 쭈글쭈글해졌다.그래서 하우스푸어가 속출하고 실직 가장이 거리로 배회하는 등 사회적 결핍 증상이 심화되어 갔던 것이다.게다가 사회구성원의 소득은 개발도상국과 같은 전형적인 피라미드 상황으로 바뀌고 중산층은 쓰나미의 직격을 받으며 이슬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들어 대형참사가 많이 터지고 말았다.그 근본 원인을 알아 보니 역시 관료와 기업가 간의 주고 받는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의 배임과 수뢰라는 거래가 있었던 것이었다.그러하니 건축물 공사가 제대로 될리가 있겠는가.내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IMF를 맞이하여 비교적 가격이 낮은 분양에 의해 입주를 하게 되었는데 '역시 싼 게 비지떡이더라'라는 것을 실감했다.초기 입주해 보니 작은 화장실 문을 비롯하여 있어야 할 것들이 미흡하여 입주자들이 건설업체에 대거 항의하게 되니 마지 못해 수긍을 하면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던 것이다.그런데 성수대교 붕괴,삼풍백화점 붕괴,대구 지하철 폭발사고 등은 시민과 소비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공기(工期)단축과 열악한 자재 즉 내구성이 떨어지는 자재를 사용했던 결과 이러한 참사가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똑똑한 관리자는 영악한 비즈니스맨에게는 당할 이력이 없었던지 아니면 이러한 대참사를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안일하고 무감각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이러한 대참사는 사전에 튼튼한 자재,제값을 주고 수주하여 공사를 정상적으로 했더라면 과연 참혹하고 부끄러운 국난을 초래했겠는가.

 

 2014년 4월 16일세월호(歲月號)가 진도 팽목항 근처에서 표류하다 침몰하고 말았다.너무 가슴 아프고 막막하여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내 자식들이 고교생이다 보니 더욱 애통함과 연민의식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세월호 선적이 인천항에서 떠나던 날 밤 누군가에 의해 찍힌 사진을 보니 배가 30도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또한 영업을 위해 적재량을 초과하여 중량이 나가는 물체들을 싣다 보니 당연 배가 기울고,세월호는 그 중량을 못견뎌 침몰해 갔던 것이다.일일이 말할 수는 없지만 세월호 사건은 꿈과 희망,설렘으로 가득찼던 무고한 청소년들 및 여객들의 희생은 미리 예견되었던 인재였음에 틀림없다.해경의 초동 구출부터 정부고위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그날의 행적은 묘연하고 의혹투성이로 가득하기만 했다.게다가 세월호의 영수격인 세모그룹회장부터 가족 및 관련자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은 손발이 맞지 않는 관계를 연출했다.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막대한 세금을 이러한 곳에 낭비하다니,이러한 곳에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어찌하오리까.똑똑하지만 관료들로 채워져 있는 한국사회 고급인력들은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왜 사건.사고만 터지면 책임질 사람은 흑막에서 인형조종하듯 묘연하고 애꿎은 말단만 사고팔고(四苦八苦)해야 하는 것일까.그것은 한국사회가 오랜 세월 수직문화 및 군대문화에 깊게 젖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하나의 사안을 기획하고 진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셀 수 없는 몇 단계의 품의(稟議)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족관행이 공무원을 비롯하여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대동소이하다.말단이든 중견이든 최고급 임원이든 각자의 신성한 영역이 있어야 하고 소신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풍토조성이 아직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설상가상으로 군 병사의 폭행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유가족들은 자식을 군에 보낸 죄인이라고 스스로 자책과 허탈감으로 세상을 원망하다 지치고 쓰러지고 만다.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태하고 무책임한 해경을 해체한다는 관(官)피아를 선언하면서 쇼크독트린(Shock doctrine)효과를 기득권층은 확보하고 누리는 것이다.이것이 정치공학이 아닐까 한다.

 

 정부조직 개편은 어느 정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풍경이지만 정부조직을 개편해서 과연 고위공직자들의 업부행태가 신선한 충격을 줄 만큼 바뀐 적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답은 아니올시다 이다.최동석저자는 이 글의 제목과 똑같은 도서를 오래 전에 발간했는데,세월호 사건을 목도하면서 다시 한국 고위관료들의 문제점과 대책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21세기는 정보와 지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시대이다 보니 먼저 지식과 정보를 만드는 사람,섭취하는 사람은 고위관료보다는 지식과 교양을 갖춘 수준 높은 시민들이 아닐까 한다.그래서 군사문화 시절과 같이 솔선수범하지 않고 상명하달식의 관료행태는 더 이상 통용이 되지 않는다.고위관료뿐만 아니라 힘과 권력,명예를 갖고 있는 정.관.사.언측의 인사들 모두가 이번 기회를 통해 거듭나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세월호 특별법이 여당의 당방침과 이익상충에 따라 지리멸렬되고 있다.세월호 희생자들의 목숨은 바로 자신의 소중한 목숨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경시풍토는 추호라도 있으면 안될 일이다.게다가 자본주의의 상징인 신자유주의가 부익부빈익빈,승자독식,약육강식과 같은 지배착취의 패러다임이 강하기에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사회통합,복지문제를 실천하겠다는 노력과 의지를 불살라야만 한다.그렇지 않고 '화장실에 갈 때와 나올 때'의 이중얼굴(야누스)을 국민들에게 보여 준다면 상처와 고통,실망과 원망으로 가득차고 의식이 있는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에 대해 관심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땅에 내팽겨칠 것이다.

 

 최동석저자는 미국유학파가 아닌 구라파 유학출신으로서 다년간의 한국은행 근무이력과 리더십개발에 관해 연구,교수(敎授)중이다.국가의 지도자급인 고위관료 및 정치가는 능력의 유무보다는 과연 적합한 인물인지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이것은 관료,정치가들이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무대 위에서 뽐내는 예능인이 아닌 수많은 지역주민,국민들의 삶의 질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참 머슴에 다름아니다.저자는 황당하고 아찔하며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고위관료들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파악.지적하고 있다.

 

 인간과 조직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인간의 풍요로운 삶(민생)을 위한 조직을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고,그런 원인을 파악하는 '생각하는 힘(사고력 나아가 실천력)'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P5

 

 상명하달식의 조직문화에서 수평 분업화한 조직문화로 바뀌어 가야 하고,선량이 된 정치가들은 기를 쓰고 들어갔지만 이 힘과 권력을 아전인수식으로 자기세력화하여 본령보다는 무책임,부정.부패의 연속으로 일관해 나간다면 한국의 미래는 썩은 고인 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개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 정의와 상식을 벗어난 가치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왜냐하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너와 나가 모두 공동체적인 삶으로 전환해야 하는 당위적이고 시대적 소명 속에 있기 때문이다.어찌하오리까? 생각과 발상을 바꾸면 안될 일은 없다.영원한 권력도 영원한 적도 없다.현재진행형의 국난을 풀어나가고 극복해 나가려면 빛이 들어 오지 않은 실내에서만 일하지 말고 현장으로 걷고 뛰면서 한국사회의 상처와 고통을 진실로 위무해 주어야 한다.그것이 똑똑하며 지혜로운 관료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착한 인류 - 도덕은 진화의 산물인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오준호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선과 악의 양면을 갖고 있다.보편적인 선은 공공선이라고 하여 성장과정,사회적 학습과 경험에 의해 체득되어 간다.선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서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억제하고 타자와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내면의 정신작용일 것이며,반대로 악은 해서는 안될 일로서 타자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일 것이다.인류가 시작되면서 문자가 발명되고 문명이 발전되어 오면서 인간은 놀라울 만한 삶의 질을 높혀 왔다.이러한 급속한 문명의 발전은 개인을 비롯하여 사회,국가에 이르기까지 지식과 힘은 커졌지만 도덕적 가치관은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기만 하다.

 

 인간의 도덕적 기원 및 가치관을 종교의 가르침에서 찾고 그것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무신론자 및 신을 경원시하는 부류에게는 도덕과 종교의 가르침을 동일시하지는 않는다.나 역시도 각 종교의 가르침과 신성시되는 신의 존재 및 위대함은 마음으로 믿게 된다.다만 종교가 정치적 세력화하고 물질적 숭배에 앞장서다 보니 본래 종교의 가르침을 애써 외면하고 비난하기까지 하고 있다.또한 종교간 이념과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에는 고질적인 종교분쟁을 넘어 테러와 학살이 자행되기도 한다.그래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덕적 가치는 비단 종교의 가르침에 기인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고대시대,중세봉건시대 그리고 근대산업화와 도시개발화가 이루어지고,경직된 이데올로기가 누그러들면서 현대사회는 흑백논리보다는 경제이익과 개인의 창달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한국인은 오랜 세월 유교문화에 익숙해져 있기에 남녀간,노소간의 언행과 예절 등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특색이다.포스트모더니즘과 남녀평등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다소 희색된 것은 사실이다.586세대인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우리 세대가 조상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라는 것을.우리 세대가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면 후세들의 도덕적 가치는 무엇으로 계측할 수가 있을까.신자본주의 세대에 태어난 현재 청년층들은 과연 미래의 삶과 도덕적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살아갈 것인지 미래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과연 착할까,아니면 환경과 학습,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사익과 영달에만 몰입하다 보니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하고 경쟁의 논리에 치중하다 보니 삶이 각박해지면서 정작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이러한 현상을 두고 과연 도덕적 인간이다 아니다 를 논할 수는 없다고 본다.개인은 국가의 개체 내지 분자로서 사회질서,사회시스템에 맞춰 삶의 목표를 정하여 사회질서와 사회시스템에 종속되어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개인과 개인간의 도덕적 문제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가치관은 속으로 묻어두고 타자을 위하고 집단과 사회를 위하도록 강요당하는 비의도적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착한 채 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프란스 드 발저자는 <착한 인류>에 대한 문제를 유인원(類人猿)인 침팬지와 보노보를 관찰,연구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 있다.침팬지는 수컷이 강하고 보노보는 암컷이 우세하다.인간과 견주어 보면 침팬지는 남성우월의식과 지배의식이 강한 반면,보노보는 평화와 평등,배려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침팬지와 보노보가 동료 및 새끼들에게 위협에 닥쳤을 때 본능과 유전자에 흐르는 보호본능에 의해 어느 정도 감싸는 모습이 포착되고,자웅이 성행위를 하는 경우 그들만의 괴성을 지르는 모습에서 말은 못하지만 인간의 행위와 비슷한 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무리 속에서 동료와 함께 있을 때 먹이감을 옆의 동료에게는 많이 주고,자신에게는 맛이 있는 것을 적게 주었을 때 질보다는 양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 영리한 동물이다,보노보도 감정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그런데 유인원 보노보보다 인간은 더욱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존재로서 애정과 도움,(그룹과 조직 속에서)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껍데기와 알맹이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덕적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저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가정의 환경과 진화론적인 생물학적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종교는 인간의 나약함과 거듭남을 강조하고 설득하기 위해 예정설,원조.원초적 타락을 되풀이하면서 거론하고 교인들에게 주입하고 있다.성경 문구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가슴에 와닿고 명심해야 할 말씀들이 참으로 많다.그렇지만 오늘날 각 종교의 행태를 보면 돈과 물질의 유혹에 집착하고 정치화,경제세력화하려는 사탄적인 교단들이 많음에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개인적으로 생각컨대 인간이 상실한 도덕성을 회복하려면 공맹사상을 들먹거리는 것보다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공동체적인 삶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즉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물질적인 삶을 경제민주화,사회통합,복지문제로 실질적 전환을 해 나가는 동시에 인성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유년 시절부터 강조해 나가는 국가 개조작업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도덕이 인간의 그릇된 본성을 덮어 씌운 미봉책으로 보여진다.근본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집에서는 부모,학교에서는 교사,사회 및 국가는 리더자가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착한 인류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