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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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행복을 돈으로 사고 팔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행복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닌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하는 무형의 감정기제라고 생각한다.행복은 살아가면서 원하는 물질이 채워져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자신이 원했던 삶의 목표가 성취되었다고 느끼기도 한다.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친지,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오래도록 원만하게 유지될 때도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근자에는 힐링,치유,행복과 관련하여 일반인들의 관심이 애정이 고조되고 있다.그런데 심신의 고달픔,외로움,소외된 것에 대한 힐링과 치유를 추구하고 행복을 찾기 위해 자신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이다.왜 자신이 상처를 받았는지,자신에게 결격사유는 없었는지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내면과 소통을 해야 한다.그러한 연후에 치유가 가능하며 자신의 삶의 목적을 하나 하나 이루어가면서 행복의 샘물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습니다.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죠.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운명과 마주하는 '맷집'이 길러지는 겁니다. -서문-

 

 당연 행복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돈으로 살 수도 없는 무형의 감정물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소소한 것부터 묵직한 것에 이르기까지 집중과 몰입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소소한 성공,커다란 만족과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이것은 나와 세상을 알아 나가기 위한 노정이기도 하기에 분명한 삶의 물음과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왜 나는 이 길을 가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면서 전진해 가면서 자신이 비로소 우주의 중심이고 우주의 주체자로 거듭날 수가 있는 것이다.인간은 타자와의 소통과 관계를 떠나서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자신의 일을 우선으로 하되 타자와의 소통,관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인간의 삶 자체가 타자와의 만남과 헤어짐이기에 인간관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치열하게 살고 사회적 성공을 거둔 17인의 인생 이야기는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의 내면을 추스리고 삶의 목적을 뚜렷이 정한 후 한 길을 걸어오고 있는 인문학자들의 교향곡을 만났다.꽤 눈에 익은 분들이 많아서인지 삶의 파편들 속에는 상처와 고통이 선연하게 배여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또한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면서 세상과 밀도 높은 소통과 대화를 이끌고 있기에 주체성 없이 이리 저리 배회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삶의 멘토,삶의 자극,삶의 용기가 되어 준다.

 

 동양사상,뇌과학,전통 건축,천문학,심리학,과학철학,미학,역사의 울림,동양신화,자연의 순리,시(詩),아이들의 미래,정약용의 실학,영화로 읽는 불교,공부의 즐거움,일하는 기쁨,생태계의 경이로움 등이 이 글 속에 학자들의 삶과 지혜,통찰력이 잘 담겨져 있다.학자들의 연령대는 40대 중반부터 70대까지로서 경륜과 지혜 면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삶의 미와 향기가 쉼없이 흐르는 물과 같이 도도하고 천의무봉과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작용했다.17인 17색 한자리에 모여 행복으로 가는 길에 대해 생각과 감정,지식과 지혜를 빛깔곱게 진열해 놓고 있다.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삶을 다시 한 번 속깊이 들여다보면서 성찰을 시간을 갖어야겠다.일 속에서 상처를 받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인문학적 교양지식을 부단히 쌓아가고 원만한 인간관계,프로와 가까운 일처리,남이 나를 따라오도록 리드하는 리더십을 한층 더 고양시켜 나가려 한다.그리고 삶은 맑은 날보다는 흐리고 폭풍이 일며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들이 많기에 삶의 지혜와 직관력을 활용하여 생이 다하는 날까지 변치않는 노력과 의지를 유지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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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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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등평등,여권신장이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갈등과 반목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것은 정치적 역학,민족적 우월성,종교적 이념 대립에 기인하는 현상이라고 본다.전세계는 글로벌을 앞세우면서 가까운 척 하지만 내막은 강국의 힘의 역학에 의한 냉정하고 치밀한 계략이 숨겨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이것이 현실이니 힘을 길러 약소국에서 강대국으로 가는 길 밖에는 없지 않은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차별과 편견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본다.한국과 같은 좁디 좁은 나라 안에서도 어느 지역 출신,어느 학교 출신,가방끈의 길이에 따라 개인의 신상을 재단한다.나아가 돈과 물질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고 성장과 삶이 보장되었다는 반증이다.소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일부 계층들은 기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좁은 울타리 속으로 진입할 수가 있다.반면 일반인의 경우에는 부모의 고단한 노력에 의한 경제적 수입을 초과하는 교육투자가 있어도 이미 정해 놓은 고위층 자녀들과는 출발선부터 격차가 난다.하물며 미국과 같이 다민족이 섞여 사는 곳에서는 인종,민족,종교문제가 얼마나 크겠는가.차별을 하고 차별을 당하는 당사자 간에는 수면 위에 둥둥 뜬 기름과 같이 서로 융합할 수 없는 비극의 연속이 아닐 수가 없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여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주와 능력을 발휘했던 고(故)마야 안젤라 여사의 에세이이면서 소설과 같은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 지 나는 아네>는 바로 마야 안젤라 여사 자신을 말하고 있다.1928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오빠 베일과 함께 남부 아칸소 주 할머니 밑에서 성장을 하게 되고,8살 때 뭇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해 실어증을 걸리기도 했다.그녀는 열여섯에 흑인여성 최초로 차장을 했으며 동년 미혼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야 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솔직담백하게 그려 내고 있다.그런데 에세이와 같이 그녀의 삶의 이력을 나이대별,사건별로 술회하면서도 읽다 보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이는 안젤라 작가의 수준 높은 문학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것이기에 안젤라 작가의 청소년기를 접하면서(1930년대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미국사회상과 그녀가 겪었던 인종차별,성차별 등이 두드러지게 전해지고 있다.

 

 그녀가 새장 속에 갇혔다고 하는데,새장은 우리 눈에 보이는 투명한 새장이 아니다.어두컴컴하게 베일에 가려진 몇 곂으로 가려진 새장 속이다.인종차별,성차별,교육기회의 차별 등이 안젤라 작가에게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젤라 작가는 인종차별의 벽을 뚫고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을 당당히 해 나가는 의지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다양한 이력을 겸비하게 되었던 것이다.가수,작곡가,연극배우,극작가,영ㅇ화배우,영화감독,영화제작자,여성운동가,흑인 인권 운동가,저널리스트,역사학자,대학교수,교육가,강연가 등 그녀의 감투는 신이 내린 축복과 같이 미국사회의 영향력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또한 오바마 현직 대통령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그녀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내 할머니 곁에서 성장하다 잠깐 친부,친모를 만나기도 하고 친부와 함께 멕시코 땅을 밟기도 하며,친모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카드 놀이,도박장에서 포커 게임 딜러 일을 하기도 하지만 안젤라는 그에 기죽지 않고 샌프란시스토에서 흑인여성 최초로 차장도 해보고,우연히 만난 남자와 만나 아이를 갖게 되지만 미혼모로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마음 고생은 컸으리라 짐작이 간다.그리고 소녀 시절에 책을 탐닉했던 것이 후일 작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자유와 평화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는 미국이지만 미국 내면에는 아직도 인종차별,성차별,민족차별 등이 엄연히 도사리고 있다.특히 유색인종인 흑인,황인종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미국 사회가 대국적인 면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가 없다.안젤라 작가의 솔직담백하고 인간미 넘치는 자전적 성장담은 한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미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다시 되짚어 보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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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
온다 리쿠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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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문명,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워졌다.이와 병행하여 교육수준,교양,의식수준도 제고되었다.인간은 과학과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성에 의해 사리판단을 한다.반면 인간의 내면은 불안하고 여리기 일쑤이다.완전하지 않은 불안전한 존재이고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그래서 삶이 안정되고 영혼이 맑아지기를 기대하는 의미에서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때로는 무속신앙과 같은 토착신앙을 믿기도 한다.토착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적인 존재를 향해 무탈과 안녕,행운을 비는 의식작용이다.

 

 나 역시 정해진 종교는 없는 무교인이다.자주 사찰에는 예불을 하러 가지는 않지만 불교색채에 가까운 윤회사상을 믿는 편이어서 불교 서적 및 스님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일상과 삶에 대해 조용히 관조하고 겸허하게 살아가는 편이다.그런데 종교인이든 종교가 없는 일반인이든 우리 내면에는 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즉 백일몽과 같은 개꿈도 있고 접신을 하여 신기가 있는 사람도 있는데,이는 욕구와 욕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채 뇌리에 저장되어 이리 저리 흩어져 있다 어느 날 밤 꿈으로 나타나게 된다.꿈의 내용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가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가까이 가고 싶은데 가까워지지 못하는 애절한 상사병 또는 평소 갈등과 대립이 잦았던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었던 존재들이 각인되어 꿈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몽위관음(夢違觀音),이는 불길한 꿈을 꾸었을 때 이 관음보살님께 기원을 올리면 좋은 꿈으로 바꿔 준다는 민간 신앙에 따라 서민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P495

 

 백주에 유령을 보았다는 주인공 히로아키의 이야기가 마음이 허약한 사람에게는 으시시한 분위기 속으로 휩쓸려 가리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백주에 육교에서 한 여자를 보았던 히로아키는 도서관 복도를 따라 유령을 쫓으려 하지만 실루엣만 어른거릴 뿐 얼굴 윤곽은 안개처럼 묘연하기만 하다.유령의 정체는 이미 고인이 된 여자 친구로서 고토 유이코이다.히로아키가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내내 그의 마음 한켠에 사라지지 않았기에 백주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이리 저리 흔들었던 것일까.고토 유이코는 예지몽(預知夢)으로 인정받은 일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G(아마 기후현이 아닐까?)현 산기슭 초등학교에서 집단 식중독이 발생하고 학생들이 대거 행방불명이 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히로아키는 유령인 고토 유이코를 연상하게 된다.집단 식중독 발생과 억측이 난무하는 유이코의 불길한 꿈과 연계를 시켜야 하는 것일까.히로아키의 형의 약혼자이기도 했던 고토 유이코가 생전 히로아키와 가까워지면서 유이코의 정령이 히로아키에게 전해졌던 것은 아닐까.특히 히로아키는 꿈 해석사로서 고토 유이코의 주박(呪縛)을 뒤에 달고 다니기에 그 앞에 유이코가 유령으로 우뚝 나타났다 사라졌던 것은 아닐까 한다.또한 히로아키는 꿈 해석사로서 데이터 영상을 통해 꿈을 해석하는 몽찰(夢察)을 보게 된다.히로아키 자신이 꾸었던 꿈과 집단 식중독에 걸린 어린이들이 꾸었던 꿈이 일치하는 현상과 유이코가 남긴 초자연적인 현상,안개,음악,향기 등이 신기롭게도 맞물린다.히로아키는 유이코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나는 이곳에 없어"라고.또한 집단 식중독을 조사하던 가마타,이와시미즈는 히로아키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데 가마타는 히로아키와 유이코와의 애틋한 멜로 설정을 하는 반면,이와시미즈는 끔찍한 재앙을 초래하는 '빅 브러더 식'으로 몰아가려 한다.

 

 몽위는 온라 리쿠의 작품으로서 내게는 처녀작품이다.미스터리 작가로서 일본에서는 꽤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데 이제야 이 작품을 만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또한 옮긴이 양윤옥의 꼼꼼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간결한 번역이 내게는 크게 와 닿았다.실제 몽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고가이기에 대중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화재사고로 죽은 유이코의 신출귀몰하는 초인적인 행각에 수사관을 비롯하여 히로아키는 발길을 나라현 요시노 산자락에 자리잡은 긴뿌센사,와카쿠사산 등으로 옮긴다.나라지방 길가에서 식중독으로 행방불명되었던 어린 학생들 모습이 나타났다든지,유이코 친척의 얘기를 통해 알게 된 유이코 집안이 궁사였다는 얘기 등을 종합하면 유이코는 신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해 본다.얼마 전에 우치다 야스오 작가의 <덴가와 전설 살인사건>의 공간배경이 나라현 요시노 지역을 그리고 있었던 만큼 나라현 요시노 지역은 미스터리 공간의 소재로 자주 활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원망(願望)하고 생각하는 사물,사람이 꿈 속에 나타나기도 하고,거꾸로 내가 타자의 꿈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서양식 정신분석 이론(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들어오면서 꿈이란 억압된 심리나 욕망이 나타난 것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면서 꿈은 무의식의 투영이다.뭔가를 원하기 때문에 꿈에 보이는 것이다 라는 점은 누구든 꾸어 보았을 법한 것이고 그렇게들 생각하기 마련이다.또한 집단 식중독에 걸린 어린 아이들이 유이코의 유령이 나타나 유령의 의도에 따라 집단의식을 표출(칼 융의 집단무의식)하기도 한다.

 

 결국 온라 리쿠는 히로아키와 유이코와의 애절한 만남을 성사시켜 준다.일본 나라현 호류지(法隆寺)의 몽전이 있는 사당에서 극적인 해후를 하게 된다.비록 얼굴은 뚜렷하지 않은 환상이었지만 유이코가 좋아했던 감미롭고 달콤한 꽃향기가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정원을 빠져 나갔다.누구나 평범한 꿈을 꾸면서 다음 날 일진을 점치기도 한다.불길한 악몽일 경우에는 다음 날 최대한 조심과 근신을 하는 것이 후회가 없을 것이다.나도 할머니께서 작고하신 뒤 며칠 지나지 않은 여름날 자취집에서 문을 열어 놓고 설핏하게 눈썹이 아래로 처질 때 할머니의 유령이 방문을 열고 들어 오는 것을 감지하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당시 내가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한 것도 사실이지만 할머니께서 혼자 밥끓여 먹고 회사에 다니는 손주가 안스러워 나를 찾아 온 것은 아니었는지 나름대로 꿈 해석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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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비행학교 - 내 삶이 곧 내용이 되는 나다운 글쓰기 글쓰기비행학교 실전워크북 1
김무영 지음 / 씽크스마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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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는 쉬운 작업이 아닌 것 같다.글쓰기에 소질이 있어 어릴 때부터 갈고 닦은 기량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된다든지 자신의 진로를 문창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꾸준하게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자신이 쓴 글이 유명세를 타면서 세인의 관심과 애정을 오래도록 받는다면 글쓰기의 본령을 넘어 작가의 존재감,권위 그리고 독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일취월장하리라 생각한다.

 

 우선 전업작가로 꾸준하게 글을 발표하고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는 분들은 존경심이 생긴다.글을 써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분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글이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기 때문이고,작가의 심혈이 오롯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수많은 시간과 노력,쓰고 버리기를 되풀이 하는 고민의 번민의 결과가 신예작가로 우뚝 섰을 때 그간의 작가가 되기 위한 노고는 한방에 기쁨과 환희가 될 것이다.이를 계기로 글쓰기의 기초를 넘어 본질로 파고 들어 가고 더욱 자신을 탁마의 정신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비로소 자신다운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보다 더 나다워지는 것,나답게 말하고,나답게 글 쓰는 것,나는 이런 것들이 진짜로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P17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예비지식이 필요하다.충분한 훈련과 연습이 우선 기본 자세일 것인데,한국인으로서 한국인답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초 어휘,문법이 몸에 배여야 하고,어느 독자층을 위해 글을 쓸 것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개괄적인 이야기의 구성에 대해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소재와 주제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글의 전개 배치를 교묘하고 탄탄하게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인용구 및 과거.현재의 객관적인 사실 또는 설화적 요소를 끼워 넣어 살아있고 공감이 가며 완성도 높은 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이 다르듯 글의 체질도 제각각이기에 자신의 색깔을 일관성 있게유지하는 것이 자신다운 글이 될 것이고 자신의 삶을 간접적이나마 글로 독자들에게 전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심혈을 기울여 탈고한 글의 첫독자는 작가 자신이지만 이 글을 밖으로 내보내면 이미 자신의 글이 아닌 독자들의 시선과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 되고 말기에 자신의 글이 널리 읽혀지기 위해서는 비록 탈고가 되었더라도 재삼재차 작가와 독자 간의 상호작용이 매끄럽게 이루어지도록 첨삭의 유무를 신중하게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학 전에 글쓰기를 시작한 김무영 작가는 일반인과 거의 비슷하게 취업,결혼,육아,공부를 돌고 돌다 작가 내면에 꿈틀거리는 글쓰기에 대한 꿈과 미련을 살려 대필작가가 되고,작가다움과 살아있음을 깨닫고 2013년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다>를 펴냈다.현직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의 글쓰기 모임인 <용감한 작가들>과 페북에서 <책벌레 글쓰기>모임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김무영 작가는 글쓰기는 자신다움과 살아있음을 발견해 나가는 길이라고 글쓰기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염두에 두는 사항이겠지만 우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쓰는 훈련과 연습이 기본일 것이다.또한 대자연과 타지에의 풍부한 여행경험도 글쓰기에 불가결한 요소이기에 여력이 닿는 한 역사문화 기행 및 타지인들과의 빈번한 교류와 소통을 글로 생생하게 옮기는 것이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케 하고 살아있는 글로서 공감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근자에는 글쓰기에 대해 일반인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온.오프라인 모두 글쓰기에 대한 모임과 강좌가 성행하고 있기에 자신의 수준에 맞는 글쓰기 모임,강좌에 귀를 기울이면서 글쓰기 훈련과 연습에 치중하고 올인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結果)를 성취하리라 생각한다.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한국인의 독서시간 및 권수/년는 OECD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스마트폰 인구가 늘면서 독서보다는 스마트폰과 놀기가 대세이다.하루 평균 3.4시간을 스마트폰과 놀기에 여념이 없으니 독서력의 저하도 개개인의 인문학적 사고배양 면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좋은 글을 베껴 반복 쓰기 연습을 한 것을 자신이 쓰고 싶은 글에 이입시키며 글이 어느 정도 후반부에 이르면 처음부터 끝까지 수정할 사항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초심자의 경우에는 전문가의 첨삭 조언을 듣는 것이 유용할 것이며,글이 다 되었다 해도 다시 고칠 곳이 한 두 곳이 아닐 것이다.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쓰고 나서 39번이나 다시 고쳤다고 하니,글쓰기 초심자의 경우에는 쓰고 고치기의 반복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좋은 글을 쓰고 인정을 받게 되면 정말 마음에 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양 오그라진 가슴이 활짝 펴져 설레임과 희망으로 가득찰 것이다.첨언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집중과 몰입이 필요하기에 방해가 될 요소는 철저하게 담을 쌓는 것이 좋은 글이 탄생하기 위한 글쓰기 법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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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트
대니얼 H. 윌슨 지음, 안재권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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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소설은 재미와 흥미를 안겨 주면서 무한한 상상력까지 발휘할 수가 있어 좋다.비록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을지라도 참신한 소재,내용을 기본으로 등장인물들이 엮어 나가는 스토리의 전개,반전,스릴의 묘미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나아가 초기 SF소설이 당대에는 허무맹랑하여 한낱 흥미본위였지만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현실화된 것을 보면 SF소설이 반드시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이것은 인류의 문명발달과 더불어 연계되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선견지명 즉 통찰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요근래에는 지구과학을 활용한 SF소설이 자주 소개가 되고 있는데 그중에 첨단과학문명을 활용한 SF소설은 현대사회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문명의 이기를 성취하려는 목적과 부합하여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놀랍게도 신경이식장치와 이식수술을 받은 앰프를 다룬 글로서 의학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신경과학을 확장시켰다는 점이 특색이다.일명 뉴럴 오토포커스로서 뇌이식장치를 주입한 것이다.이 글에서 말하는 일반인인 레지보다 더 우수하고 진보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앰프들은 순수인간시민협회의 압력을 받으면서 주인공 오웬은 에덴지역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앰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제니스,플러스 알파까지 이식받았다고 의심받으면서 오웬은 에덴지역 이동주택으로 옮겨간다.특히 앰프는 퇴역군인들을 대상으로 뇌이식수술을 많이 받았다.한편 대법원 판결에 의해 뉴럴 오토포커스 이식업은 폐쇄에 이르게 된다.뇌이식장치의 용도는 간질,주의력 결핍 장애,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강박 장애 등 현대인이 겪을 법한 정신 신경치료였지만 컴플레인도 속속 접수된다.이식을 받고 감정의 변화,우울증,조증과 같은 증상을 보인 것이다.이에 오클라호마 지역의 경관들은 앰프를 받은 앰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한 검거작전이 펼쳐지면서 오웬 역시 감옥에 잡혀 들어가게 된다.폭풍전야와 같은 형국에서 오웬은 탈옥을 결행하게 된다.이와 거의 동시에 미국 각지역에서는 앰프들의 공격에 의해 폭발사건이 터지고 미정부는 조직화된 테러 공격이라고 단언하기에 이르면 미대통령이 담화문까지 발표하게 된다.몸과 기계의 궁극적인 조화를 강조한 것이다.

 

 망막,달팽이관 등을 통해 말을 거는 앰프들은 분명 정상은 아니지만 남보다 특별하게 우월의식을 갖고 살아가려는 일부 소수계층들의 특별한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인간의 이기적 속성과 첨단 기술문명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기도 한다.대니얼 H.윌슨 작가는 로봇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답게 첨단과학기술을 잘 붓터치하고 있다.등장인물들이 펼쳐 나가는 스릴에 가까운 아수라장의 장면도 볼 만한 대목이다.참신한 소재와 개연성 넘치는 미래의 모습 그리고 소재와 관련한 자료,미정부 및 언론기관이 내놓은 발표내용 등도 이해력을 높이는데 매우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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