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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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다가도 모를 일이 남녀 관계이다.남자와 여자의 생각과 감정이 다른 것도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살아 가다 보면 흔히 말하는 '바람 피우기'는 남자 쪽이 많고 여자 쪽은 방어적이고 피해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그런데 간혹 드센 여자인 경우에는 맞바람을 피우며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영원할 것 같이 백년해로를 언약했던 두 남녀가 살다 보면 성격,사고방식,취향,생활태도의 문제로 티격태격할 터인데 요조숙녀와 같이 가정교육을 잘 받아 살림을 잘 꾸려 가는 아내를 두고,남편이 다른 여자와 놀아나고 아이까지 생겼다면 풍파가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요시다 슈이치 작가는 비교적 여성의 관점에서 생각과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했다.대화체는 짧막짧막하지만 여성들의 말과 행동 묘사는 군더더기 없을 만큼 현장감을 자아내게 한다.독자인 내가 바로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그런데 특이하게도 남편의 불륜에 맞서 이혼 및 위자료를 요구하기 보다는 아내는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그 주된 인물이 남편 마모루 아내 모모코 그리고 내연녀 나오이며 모모코의 시부모 및 친정 식구,애묘 삐돌이가 나온다.도쿄 하세가(家)의 불륜 문제는 아내 모모코가 남편 마모루와 전화 통화 속에서 들려 오는 '바스 타월'이 모모코를 불안의 늪으로 빠지게 하면서 이야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게 된다.

 

 남자는 단순하면서 고지식한 면이 강한 반면,여자는 관계 및 감성을 중시하는가 보다.특히 여자는 직감력이 고단수이다.물론 밖에서 직장생활의 연장선에서 만난 여성과의 접촉을 아무리 지우려 해도 아내는 육감으로 알아 차린다.좀 더 심할 경우에는 세탁물 검사,남편의 통화내용,뒷조사 등까지 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남편 마모루는 결혼 생활 8년이 지나도록 아이도 없고 집에 오면 신나는 일도 없다 보니 결혼생활에 매너리즘이 생겼나 보다.게다가 모모코는 비고의적이었지만 아이를 한 번 유산한 경험까지 있기에 시집생활은 더욱 조신하지 않았나 싶다.모모코는 수제비누 만들기 강사로 채용되어 부정기적으로 문화센터에 출강하면서 따분한 가정생활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자기계발에도 충실하고,시부모님께도 늘 정성과 성의를 당하는 보기 드문 현대여성이다.일본식 안채와 별채로 나뉘어진 하세가에 모모코는 별채에 살고,시부모는 안채에 산다.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에는 시어머니의 수고를 덜어 드리기 위해 모모코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마모루는 이십대 중반의 여성과 깊은 관계에 빠져 들면서 2세까지 갖게 하면서 모모코와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모코는 남편의 행선지를 뒤쫓아 가면서 내연녀의 거주지를 알아내게 되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커다란 회의를 갖게 된다.설상가상으로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모모코는 시어머니와 교대로 병문안을 가기도 한다.그런데 마음은 늘 허전하고 불안하기만 하다.수제비누 강좌가 끝나고 핑계 삼아 내연녀의 집에 불시 찾아간다.즉 뱃속에 있는 아이를 떼고 마모루와 다시는 만나지 말라는 것이다.본부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이다.내연녀 나오는 아이를 유산시키게 되었지만 차마 마모루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마모루는 나오가 유산한 사실을 모른 채 새로운 삶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고,모모코에게는 한사코 이혼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모모코는 내연녀와의 관계를 끊고 다시 가정을 시작하자고 호소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좀 아쉬운 점이 남는다.마모루와 모모코가 당면한 애정문제를 집안문제로 국한시키다 보니 권위 있는 제3자의 사정청취와 심판이 이어졌으면 스토리가 더욱 긴장감과 스릴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모모코는 남편의 불륜과 외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 잡아 다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는 모습에서 남편 마모루는 과연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연민의식을 느낀다.모모코는 시어머니와의 오해를 풀고 새로운 모습으로 하세가를 잘 꾸려 가리라는 점에서 마음 든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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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 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이야기
민홍규 지음 / 글로세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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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설 연휴 때 숭례문이 남자 노파에 의해 대거 소실되었다.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심장이 철썩 내려앉는 것 같았다.1398년 조선 태조 때 준공된 숭례문은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이 현판을 쓰고 화기를 제압하는 방법으로 '세로 현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를 근거로 옮겼다고 한다.화기를 누르는 현판으로는 수(水)를 위로 화(火)를 아래로 갖춘 현판 형식이 숭례문에 맞는 형식이고,주역 63번째 수화기제(水火旣濟) 괘를 살렸다고 한다.숭례문을 세울 당시 정도전은 염준의 힘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주역의 풍수지리 사상은 각종 건축물을 지을 때 막힌 기운을 풀어내어 대길지로 터를 잡을 때 각별히 신경을 쓴다.터를 잘못 건드리면 말 못하는 터에도 영령이 살아 있어 그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개인,사회,국가의 미래에 좋지 않은 흉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할 땅,돌 등을 건드리면 땅의 기운이 좋지 않은 염준으로 변해 세상을 시끌시끌하게 만들고 만다.개발논리,행정편의주의적인 잣대로 인해 땅의 좋은 기운을 빼앗아 가는 일이 불과 몇 년 전에 발생하고 그 직후 가족의 비극,사회의 대재앙이 찾아 왔다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좋지 않다고 하는 금기사항은 기계로 파헤치고 훼손하여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쓴 민홍규 저자는 4대 국새를 만들어 3년간 아무 문제없이 사용해 오다 별안간 사기꾼이라는 누명을 쓰고 3년 동안 영어 생활을 하다 출소한 뒤 좋은 터를 찾아 다니다 대길지 터를 찾았다고 한다.경남 산청군 금석명의 '금석면 특골'이라는 곳인데 금석면의 지명은 오행으로 토생금을 부르는 곳이다.토생금의 금은 물기운을 살리는 곳이고,이 물기운은 금석면의 석(바위)으로써 막힌 기맥을 처방하는 바위가 놓일 터임을 예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바위의 성향인 물, 즉 수(水)가 젊은(火) 생명을 살린다는 기운(水生木)과도 연결되어 금석면 특골의 의미는 특별히 쓰일 곳이라고 예견했다.이 터의 지명에서 보듯 이 땅의 운기를 살릴 수 있다고 보고 산중에 깊게 묻힌 거북바위를 들어 올려 풍수사상에 적합한 터에 배치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저자는 세불이 국새를 산청을 터로 삼아 석경,귀감석,복석정,등황전과 지붕의 삼족오 치미(雉尾),산과 산,전각전과 굴뚝이 지닌 예술적 매력에 흠뻑 빠지고 터를 조성하는 대역사(大役事)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세불은 등황전 위로 길을 내어 팬션타운을 지으려 산을 파내면서 동티가 나고 말았다.해당군에서는 이해관계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하고 팬션 허가를 내 주는 바람에 생명의 지기가 흐트러지고 땅의 저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세불은 땅이 무언으로 뿜어내는 응징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하고 징역살이까지 하였으며 가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산청군에서 세계전통의약엑스포에 열렸는데 등황전을 동의전(東醫殿)으로 현판을 바꾸어 버렸는데 황(皇)의 자원이 흰 옷 입은 왕이라는 의미로 흰색은 우주의 빛,황은 하늘의 빛 즉 천지의 이치를 깨달은 왕이라는 의미를 간과하고 극히 현실에 맞게 현판을 개조했던 것이다.등황전에 담긴 '진리를 깨달아 세상의 빛이 되는 자'라는 깊은 의미를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 갈 지라도 고래로부터 전해져 오는 풍수지리사상의 놀라운 영험력은 실로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순리를 알고 이에 따르는 것이 재앙을 예방하는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가 없다.

 

 땅의 회전입자들이 자연의 모든 형상에 드러나 생명을 키우고 붕괴하기도 하며 '지자기의 극대화'가 맺힌 곳이 혈처이다.입자세계가 요동치는 곳이 힘있는 혈처가 된다고 한다.긴 혈맥으로 긴 세월 흐르다 몇 개의 산에 지자기를 두르기도 하며,집터나 묘자리 혈처로 쓰이는 급수도 있다고 한다.혈처에는 우주의 거울자리와 같은 명혈,기맥의 기운이 큰 용을 꽈배기처럼 꼬아 두르고 진행하고 합세된 힘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통파혈,바위와 관계하는 사람의 기혈로서 활처럼 휘어버린 탄파혈처가 있다.혈처를 잘못 건드렸을 때에는 기가 미쳐서 관계된 사람 또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숭례문 소실 사건,세월호 침몰 사건은 혈처를 잘못 건드려 생긴 국가의 대재앙은 아닐까 싶다.풍수지리에 입각한 좋은 터는 국운의 융성과 민복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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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면 풍경 -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유민호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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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 자신은 일본의 내면 즉 속살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그리 폭넓게 알고 있지는 않다.파편적이고 오류에 가까운 지식일지도 모른다.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어를 자학자습하여 원서 해독 및 일본인과의 소통은 가능하지만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일본의 정세에 대해서는 내가 살아가는 여건상 적극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다.다만 근자 일본을 대표하는 아베 총리의 우경화 조짐은 단발적인 아닌 시대의 요청을 타면서 장기적으로 일본인의 의식 구조에 깊게 천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이것은 현재 풀리지 않은 한.일 역사문제,영토문제를 넘어 지난 20여 년 간 잃어 버린 일본 경제의 새로운 부활의 조짐이고 군사대국을 향해 가려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사실 일본에 대한 감정은 일본을 가기 전과 가고 난 뒤로 나뉜다.가기 전에는 단지 일본인과 대화를 나눌 정도의 일본어 능력을 갖추었을 뿐 일본의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일본역사 지식과 일본인의 의식 구조 및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경제 등 각종 영역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고,일본인의 정신,사고법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했다.현재 고급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당연 일본어 지식을 전수하는 차원을 넘어 일본의 역사,일본인의 의식 구조,정치행태 및 경제 위기,사회적 문제,과거,현재,미래에 대한 한.일관계를 알지 않고서는 일본어 수업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틈틈이 일본 포탈 사이트,요미우리 신문 등 인터넷 기사를 펼치곤 한다.이러한 일본 알기의 과정은 조금씩 일본의 속살과 연계짓게 되면서 한국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 등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흔히 일본인은 단결심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다 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절대 피해를 끼쳐서는 안된다.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속내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등이 일본인들의 공통된 마음자세이고 의식 구조의 형태이다.반면 한국인은 부모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따라 자녀들의 성장과정이 달라진다.사회질서 및 타인에 배려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줄서기를 잘하여 신분보장과 경제적 여력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 스킬에 무척 강하다.그렇다고 일본인이 신분보장,경제적 문제에 둔감한 것은 아니다.한국인은 거의 개인위주로 흘러가고 일본인은 집단 속의 개인을 생각하는 것이다.'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듯 특출나게 두드러진 존재는 일본 사회에서는 자칫 사회적 이지메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한 일본은 넓지 않은 국토면적이 자원이 협소하다 보니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세 불리기를 수없이 도모했다.그것이 한일 역사 속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임진왜란,정유재란,구한말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일본의 영토확장욕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남는다.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을 비롯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이 꾸몄던 대동아 공영권,그리고 무모한 진주만 공격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구한말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한국,중국,남양군도 등을 식민지화하면서 만주지역까지 약탈해 갔던 것이다.그것도 모자라 아마모토 이소로쿠에 의한 미드웨이 침공은 미국의 군사역량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불장난으로 끝나고 나가사키,히로시마가 미군의 원폭으로 인해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을 받아냈던 것이다.일본의 영토확장욕은 무사시대의 상징인 에도 막부 사무라이 정신에 기인하고 있다.명령에 복종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죽음(자살)으로 문제의 근본을 유야무야 시키고 만다.

 

 

 

 

 

 

 2011년 일본 동북지방의 쓰나미(해일)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잃어 버린 버블 20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일본 사회지도층 및 정치가들은 우향우로 나아가고 있다.그런데 일본의 우향우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위안부 문제,독도문제,교과서 왜곡문제로 한.일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경색되고 소통채널을 끊긴 상태라 그들의 우향우 움직임의 내면을 면밀하게 연구.분석해 나가야 할 것이다.IMF 경제위기로 일본도 그 직격탄을 받았다.그런데 침체된 경기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민심마저 좋지 않은 이 때에 아베라는 극우 인사가 일본의 건설적인 미래발전을 위해 강한 일본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것이다.위안부 문제에 대해 고노는 담화문에서 위안부는 존재했고,위안부 동원이 일본군의 강제적 행위 하에 이뤄졌다고 시인을 했지만 아베는 객관적 증거를 내세워 강제적 행위는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속된 말로 그러거나 말거나이다.위안부 문제는 만방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외교 채널을 상시 풀가동하게 된다면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쿨하게 사과할 것이다.

 

 현재 일본 사회를 리드하는 세대는 4050이다.단카이 세대로서 1970,80년대 대학을 다니고 1980년대부터 사회생활을 했던 세대이다.이 세대들은 버블 경제의 꿀맛을 보았다.엔화가 강세이던 시절 해외여행의 중심세대였다.지나간 과거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그들은 엔화가 고공을 향해 가던 시절 고급 브랜드에 열광하고 심취했던 세대이기도 하다.그래서 이들은 경제위기에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위기를 일본 전국민이 다시 합심하여 회사라는 조직문화로 나아가자는 의도가 강하다.그것이 아베노믹스와 일맥상통한 것이다.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국수주의 부활 등의 단편적인 지식과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지만 일본은 이제 미국의 힘을 등에 지고 중국과 맞서면서 경제실리를 다시 한 번 맛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한국인이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만행과 비극에 대해 사과와 보상을 감정적이고 강경한 태도로만 나선다면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락할 것이다.일본의 강점이 무엇이고 일본이 추진하려는 소프트 파워는 어디에 있는가를 치밀하게 연구.분석해 놓아야 할 것이다.역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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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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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 대한 지식은 극히 일부분이다.그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읽은 것이 고작이고,(1962년)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정도이다.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전 생애를 그리고 있는 글을 접한 것은 문학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의미와 가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글로 먹고 사는 사람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가 없다.헤르만 헤세는 수많은 글을 남기고 작가의 로망인 노벨 문학상의 권좌에 올랐지만 그의 전 생애는 굴곡으로 점철된 삶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1899년 헤세의 가족 사진

 

 

 헤르만 헤세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게 되는데,집안이 지식인 성향이 가득하며 경제적으로는 유복하지만 훈육법이 엄격한 편이었다.특히 정신적 영향은 어머니 마리아으로부터 받은 것이 컸다.19세기 후반 독일은 대부분의 가정과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하듯 헤세의 집안도 대대로 이어져 오는 인습이 지배적이었는데,기독교적 신앙의 가르침이 컸다.헤세가 남긴 <낭만적인 노래들>이 출간되고 어머니 마리아가 이를 보고 따끔한 지적을 했는데 "만일 네가 신을 찾았다면,신이 주신 아름다운 재능을 온전히 그에게 바쳐야 하는 거란다"라고 헤세는 이 지적이 매우 거슬렸던 것 같다.게다가 헤세는 늘 약골 기질로 병을 달고 살았던 탓에 신경질적이고 진득한 기미가 없었다.문학적 재능과 감수성은 천재로 불릴 정도였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스스로 구속을 받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은 가정을 갖고 있는 가장(家長)이 집안 일은 남 일로 생각하고 떠나고 싶은 곳,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 했던 그야말로 매우 자유를 즐겼던 흔치 않은 자유인이었다는 생각을 한다.그는 그를 마음으로 사랑했던 세 여인과 가정을 갖게 되었지만 불협화음을 조장한 그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가정 생활은 삐거덕거렸고 쓰라린 파경의 경험을 맛보기도 했다.불안정한 성격과 당돌하게 변하는 그의 성격은 언제 어떻게 흘러갈 지 아무도 예측을 못했던 것이다.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베르누이(1903년경)

 

 

두 번째 부인 루트 벵거(1929년경)

 

 

 

세 번째 부인 니논 돌빈(1927년경)

 

 

 헤세는 상기 그림과 같이 세 부인인 마리아,루트,니논과 가까워질 듯 말 듯 하다 헤세의 편집증적이고 괴팍한 성격 특히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탓에 부인들은 헤세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면서 파경을 맞이하게 된다.싫든 좋든 헤세의 마지막 삶까지 함께 했던 부인은 니논이다.첫 번째 부인은 그보다 아홉살 많은 연상의 부인이었던 마리아는 얼굴형이 현모양처 그대로이다.남편인 헤세가 창작의 모티브를 얻기 위해 외유(外遊)를 즐기고 집안 일을 소홀히 해도 싫은 내색 하지 않는다.오히려 헤세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를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부인이다.마리아 부인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진기술을 갖은 사진사로서 헤세 및 헤세 가족의 사진을 많이 찍어 기록으로 남겼기에 후일 당시 헤세의 가족의 일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어 다행이다.두 번째 부인 루트는 첫 번째 부인과 소원해지면서 우연찮게 만나게 되지만 마리아와의 관계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이고 헤세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루트의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서 오래 가지를 못한다.정신 질환 상담사인 헤세의 친구 랑 박사와 루트가 가까워진 것도 헤세와의 혼인 생활을 길게 이어가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마지막 세 번째 부인인 니노는 헤세의 작품에 매료되고 그를 마음으로 흠모했던 스무살 연하의 여인이다.그녀는 고대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리스 고대문화에 대해 다년간의 연구를 했다.학자풍의 면모를 갖은 셈인데 세상에 그녀의 작품은 아쉽게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헤세도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면서 그의 죽음을 예견했는지도 모른다.그가 남긴 마지막 시는 <부러진 가지의 삐걱거리는 소리>로서 삶에 대한 희망 담고 있다."그의 노래가 딱딱하고 거칠게 들러온다./고집 세고 비밀스럽고 불안스럽게 들려온다./또 한 번의 여름./또 한 번의 겨울 동안."-P522 그리고 시를 지은 다음 날 그는 세상과 하직한다.신경쇠약,우울증 등은 아버지의 DNA기질을 많이 닮은 것으로 보이며,다독과 다상량,다작을 하다 보니 안구질환까지 찾아 왔던 것이다.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두었지만 양육권 문제로 마리아 부인과 원만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작가들은 매우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다만 작가를 남편으로 둔 부인은 작가의 직업특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작가인 남편은 이왕 좋아하고 사랑하여 결혼을 했다면 집안 일을 어느 정도는 책임감을 갖어야 하는 것이 본연의 자세이다.인세와 판매량,인지도에 따라 작가의 수입은 들쭉날쭉할 것이다.문화로 먹고 살기라는 것도 직업정신이 없다면 오래 가지를 못할 것이다.헤세는 자신이 세 여인에게 먼저 대쉬한 것이 아닌 세 여인들이 그에게 먼저 다가가고 그와의 혼인을 고집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래서인지 헤세는 겉으로는 물만난 물고기마냥 자기 세상이었지만 심리 기저에 놓인 그의 편향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은 세 여인 아무로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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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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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침체된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일반인들의 활력이 사라져 버렸다.삶이 재미가 없다고 하소연 한다.더욱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절망을 느끼는 동시에 무기력증까지 더해져 삶의 방향타를 잃은 사회구성원이 많아졌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감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아무리 개인의 잠재 능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류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질서,제도,시스템이 대다수를 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잘못된 제도,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사회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도서는 1950년대 절망의 사회를 그린 희곡 작가 존 오즈번의 도서 제목에서 기인하고 있다.60여 년 전의 영국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한 사회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데,현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공감이 충분히 간다.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기에 노력 여하에 따라 대가와 보상을 예측할 수가 있다고 보지만,능력과 가능성이 있어도 돈과 물질적인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세도 성공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현 주류 이데올로기는 사회통합,경제민주화,복지문제 실현 등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양극화,소득 불균형,자살률,삶의 질 등은 최악으로 보인다.이러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인간의 내면에는 욕구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기본적 삶의 조건이 욕구라고 한다면 욕망은 이를 뚸어 넘어 뫼비우스의 띠마냥 끝이 보이지 않는 괴물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욕구는 기본적 생리 요건인 먹고 자고 배설하며 생식을 이어 가는 것과 같이 본능에 가까우며 욕망은 인간의 탐욕과 같이 정해진 기준이 없는 무한의 경지라고 할 수가 있겠다.인간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되어 온 생물이지만 욕망,탐욕과 같은 조건은 진화할 수가 없나 보다.특히 교육수준,경제적 수준,의식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자유는 이기주의로 변하고 공동체적인 삶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대신 돈과 물질이 개개인을 평가하면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도덕적,윤리적 소양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게다가 사회안전망마저 부실하면서 세월호와 같은 대형참사를 빚게 되었던 것이다.이것은 돈과 물질이 우선 순위이다 보니 생명존중의 정신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면서 가장 비극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총체적인 난국을 수습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가면을 쓴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온갖 사회적 문제가 터지고 나면 늘 '사후약방문'격으로 수습하기 바쁘다.발본색원은 하지를 않으려 한다.입바른 소리로 내지 않는다.그것이 올바른 처세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해방후 한국 사회는 말그대로 굴절의 연속이다.인위적으로 정권을 찬탈하는 것도 모자라 뭇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세뇌화 시켰다.반공,승공통일 등 안보를 내세워 정권에 맞서 발언,행동을 하던 용기있는 인사들,운동권 학생들은 서슬퍼런 취조와 고문을 당하며 정치민주화를 이룩하기도 했다.그리고 IT산업이 발호를 보이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정치이데올로기보다는 돈과 물질을 더욱 향유하려는 본능과 욕망이 거세져 가고,IMF를 맞이하면서 대단위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기업의 유연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비정규직,파견직 등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공공요금을 비롯하여 교육비 등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자식을 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허리가 휘고 있다.경제적 능력 없는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또 한 번 기가 죽는다.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입지도 당연 좁아진다.가정에 경제적상황이 악화되면서 가족 해체,미래에 대한 비관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시대는 소수계층을 위한 잔치임에 틀림없다.대다수는 절망과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으며,유례없는 정신질환자들이 늘고 있다.그래서 힐링,치유,행복이라는 단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 또한 현혹되면 안된다.근본적으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 나가야 대다수가 안고 있는 절망과 무기력증이 해소될 법한데 사회 주류층은 철옹성과 같다.요지부동이다.게다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의 부재도 큰 문제이며,대다수가 힘들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려는 마음은 있되 대부분은 냉소적이고 관망적인 소극적 자세에 머물고 있다.특히 야당 정치인들마저 자기 밥 줄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기댈 언덕이 없는 사람들은 절망 아닌 무념무상의 밑바닥을 기는 삶이 지속되어도 누구하나 위로 한 마디,희망 넘치는 연대의식을 보여 주려는 사람도 없다.즉 소통 없는 불통의 일방통행만이 최선인 사회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현대 한국사회에 내놓으라 할 만한 8인의 인문학자들은 진실로 절망을 이기는 법이 무엇인가를 밑바닥 생활을 한 사람의 심정으로,고통과 상처를 직접 느껴본 사람의 심정으로 그 해결법이 무엇인가를 다양한 각도로 경험과 인용,지혜를 모아 들려 주고 있다.시대의 상징이면서 아픔이기도 한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분명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음에 그나마 마음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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