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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덕수궁 ㅣ 인문여행 시리즈 10
이향우 글.그림, 나각순 감수 / 인문산책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남존여비,사농공상,주자학과 유교의 정체성,사색당파,수렴청정,탐관오리 등으로 점철되었던 조선시대는 말그대로 앞날을 한치도 예측하기 어려운 '풍전등화'와 같은 형국이었다고 생각한다.조선을 이끌어 갔던 왕과 신하,왕족과 사대부 등 당대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계층들은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것보다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학문과 국가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나날이 발전해 가던 외국의 선진문물에 대한 무관심 및 거부감,대외개방 압력에 대한 철통같이 빗장을 걸어 잠근 쇄국 정책도 무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이다.요즘으로 말하면 대외관계상 힘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몰랐던 무능함의 소치가 아닐 수가 없다.
이향우 저자가 조선시대의 애환이 서려 있는 한양의 전각과 궁궐,문화와 유적 등을 답사하고 그 여정을 그리고 있다.이번 궁궐로 떠나는 여행은 덕수궁 편인데 그간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덕수궁내 전각과 궁궐을 되돌아 보면서 당대 왕조들의 국정운영과 대외관계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덕수궁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이 정(貞)릉에 묻혔다 해서 후일 정동으로 명명되고,조선중기 광해군에 의해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그후 광해군과 인목대비의 악연과 인조반정 등이 덕수궁 안의 궁궐과 깊은 사연을 안게 된다.그런데 불행하게도 경운궁은 1904년 누군가에 의해 화마로 휩싸이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또한 구한말 명성왕후가 일본제국에 의해시해되고 고종마저 신변이 위협을 받으면서 러시아 공관으로 이어하게 된다(아관파천).
고종은 석조전에서 업무와 귀빈을 맞이하고 침전은 함녕전이었다.
대한문으로 일컬어지는 덕수궁의 안과 밖에는 미처 몰랐던 조형물과 전각 등이 많다.대한제국 원년 원단을 세우고 황제로서 하늘에 제를 올린 환구단이 있다.일제강점기에 의해 크게 훼손되고 황궁우 기단의 삼문 정도만 남아 있다.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시청앞 거리 맞은편에는 덕수궁 입구인 대한문이 자리해 있다.대한문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 조선시대의 잔영이 두터운 세월의 흔적과 함께 빛바랜 상태로 남아 있다.금천교,하마비,중화전,석어당이 있다.석어당은 고종이 머물렀던 집으로 사계(四季)의 풍정이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자태와 운치를 더해 준다.석어당 옆에는 중명전이 있고 함녕전,덕홍전(내외 귀빈이 항제를 알현하던 편전)이 있다.낙락장송과 같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조선산 소나무를 배경으로 차 향기가 물씬 풍기는 서양식 건물 정관헌이 한국 속의 서양풍을 드리우고 있다.그리고 덕수궁의 모태격인 즉조당과 준명당이 일자(一字)형으로 배치되어 있다.이곳은 즉조당은 선조,인조,순종이 즉위했던 곳이고,준명당(浚明堂)은 내전의 하나로 황제가 업무를 보던 곳이다.
즉조당과 준명당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와 인연이 깊은 곳이고,이복 오빠 영친왕,순종 황제 등 제국말기 불우한 삶을 살았던 황족들의 비애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준명당 뒷길로는 아담하지만 고즈넉한 산책길이 펼쳐져 있다.현재는 미술관으로 쓰이는 석조전은 한때는 고종 황제의 침실,서재,황후의 거실,귀빈 대기실 등 요즘 청와대의 쓰임새를 연상하면 좋을 것이다.이제 덕수궁 안을 벗어나 밖으로 빠져 나오면 덕수궁 돌담길이 펼쳐진다.19세기 후반 외교의 중심지였던 정동길에는 구한말 외국 공사관들이 밀집되어 있던 곳이다.공사관을 비롯하여 성당,교회,학당 등이 전해져 온다.경운궁이 소실되면서 고종은 중명전에서 편전으로 사용하는데,그곳은 바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곳이다.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를 전했건만 당시 일본과 우방이고 영향력이 컸던 영국은 특사들의 친서를 묵살하고 만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황혼의 대한제국이 처했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을씨년스러울 정도로 굴욕적인 을사늑약을 비롯하여 황제와 신하,황족들의 아슬아슬하고 무기력한 삶이 마치 풍전등화와 같았다.이를 현대사회와 견주어도 틀림없는 사실이다.한반도가 정치.군사적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구한말과 같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상황에서 외세에 먹히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그렇게 하려면 개개인이 개인주의,이기주의적인 발상과 행동에서 국가의 존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