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김하인 지음 / 스토리3.0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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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콩깍지 씌이듯한 사랑하는 관계를 갈라 놓는 일을 접하노라면 애잔하게 가슴이 울컥할 때가 있다.'너 아니면 난 못 살아'라고 맹세해도 길든 짧든 언젠가는 세속의 연이 끊기는 때가 온다.이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될 것이다.순망치한이라는 말이 있듯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고 남은 이는 얼마간 슬픔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이다.깊은 상처일수록 새살이 차오르는 시간이 길어지듯 그때까지 마음을 잘 다스리고 견뎌 나간다면 마음의 상처가 아물면서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 상처와 고통이 빨리 아물면서 회복탄력성을 증가시킬 수 있으리라.

 

 나는 선친이 생전 중환자로 몇 년을 고생했는데도 불구하고 간병다운 간병을 못해 너무 죄스럽기만 하다.당시 나와 아버지 사이는 그리 원만하지 않은데다 내 사회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던 까닭에 마음의 여유와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선친은 젊은시절 운동보다는 술을 주로 드시고 끼니를 많이 걸르셨다.부실한 몸관리,부실한 식습관 및 생활습관이 늙으막에 대사성 질병이 찾아와 당신은 물론 어머니,남동생이 곁에서 병수발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그에 비하면 나는 체면치레상 명절,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에만 찾아 가는 비자발적이고 불효막심한 자식이었다고 스스로 자탄한다.

 

 이 글의 주인공 미주,승우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꽁깍지가 씌이듯 서로 좋아서 연을 맺은 관계이다.영사관 집안인 승우와 부모가 교사인 미주의 집안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데 부모의 눈은 더 높은 곳에 있게 마련이다.대학시절 영상 연합서클에서 만나 필이 꽂히면서 둘은 관계를 좁히게 된다.후일 영화감독으로 뛰는 미주와 라디오 방송국의 DJ로 주가를 올리는 승우 그리고 미주의 절친 의사 정란이 있었다.승우는 샤워하고 나온 미주의 몸에서 발산하는 향기가 늦가을 함초롬히 피어오른 국화꽃 향기와 같다고 늘 되뇌인다.국화의 꽃말이 지혜,절개라는 의미가 있듯 승우에 대한 미주의 마음은 한결같고 언행이 지혜롭기만 하다.그래서 미주는 국화꽃 향기에 부합하는 것 같다.

 

 이야기 전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위암 3기 판명을 받은 미주는 늦깎이로 결혼을 하고 몇 년 간이나 아기가 생기지 않아 마음 고생이 컸는데 다행히 자궁에는 태아가 정상 착상되면서 새 생명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그런데 미주의 절친 의사 정란은 종양 덩어리가 악성으로 판명되면서 미주의 장기를 절제하는 수술을 권하지만 미주는 의료행위를 한사코 거절한다.이러한 사실을 남편 승우한테 감춘 채 강원도 산골 폐교(廢校)로 내려가 태아가 무사히 산도를 뚫고 세상에 나오기를 기원한다.시간이 흐르면서 승우는 미주의 근황에 대해 정란으로부터 듣게 되면서 라디오 DJ를 그만두게 되면서 미주와  승우는 산골 폐교에서 생활을 이어나간다.승우는 정란에게서 간단한 진료수업을 받고 남자 간호사로 자처하면서 미주을 실시간으로 간병을 한다.어느덧 미주는 몸이 산(山)만해지면서 동통이 심해지면서 병원으로 이송하게 된다.이제 미주는 의료적인 행위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극과 극을 오간다.그러한 미주의 몸상태에서도 태아는 무럭무럭 자라준다.산부인과 의사의 집도에 의해 태아는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의 빛을 받게 된다.

 

 미주는 자신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삶을 체념하게 된다.오로지 남편 승우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미주는 자신의 육신은 재가 되어 구천을 떠돌지라도 땅에 남은 승우,딸 주미 그리고 둘도 없는 정란이가 행복하게 살아가 주기만을 바란다.딸 주미는 엄마의 몸상태가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살아서 이 땅의 새싹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미주의 진실되고 고귀한 사랑의 정신,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국화꽃과 같았던 향기는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죽음을 앞둔 몸으로서 삶에 대한 미련을 불식하고 새생명을 지키려는 모성애 그리고 남편과 진실된 관계,사랑의 끈을 잇기 위해 자연을 벗삼아 산골 폐교에서 지내던 지순한 순간들은 몸과 마음을 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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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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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없는 남자들》이란 소설집을 읽었다.미처 결혼을 하지 못한 결혼을 했지만 사별을 한 남자들의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공감을 사게 했다.내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세파(世波)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다.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응하고 더 나은 삶을 꿈꿔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작가 초년병 시절 쓴 소설집을 접하게 되었다.《중국행 슬로보트》라는표제를 시작으로 총 7편의 소설들이 소개가 되고 있다.이립(而立)인 15세를 좀 지난 나이에 쓴 글들인지라 세련되고 융숭 깊은 맛은 좀 떨어진다.인생의 경험과 연륜의 폭에 따라 글도 오묘한 맛이 날 것이다.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떠올리면 남.녀간의 본능적인 사랑과 성애 그리고 아련한 추억을 연상케 한다.이번 글에 소개된 7편은 화자인 주인공이 10대 후반으로서 이성과의 만남과 사물에 대한 관조,이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재들도 매우 이색적이다.현실 속에서 일어날 듯한 허구적인 이야기를 예상했는데,그 예상을 뛰어 넘어 눈에 아르거리는 환상(幻想)적 요소,사춘기에 있는 청소년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을 때 느끼는 성충동,미지의 그늘진 골목을 탐방하기도 하고 사립탐정을 내세워 독자들에게 흥미를 돋구려는 작가의 처녀 소설내음이 짙게 전해지고 있다.

 

 십대 초반에 만났던 중국인들의 기억을 반추하고 있다.도서관,모의고사 시험장,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지의 세계로만 알고 있던 중국,중국인을 만나게 된다.특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된 중국 여학생과는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가까워지는데 그만 연락이 끊기고 만다.풋풋한 감성과 짜릿한 설레임은 청춘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중국행 슬로보트>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행위를 글로 검증해 보려 시도했다는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는 주인공의 등에 무명의 삶에 찌든 가난한 아주머니를 엎고 삶을 지탱해 나간다.이름도 형태도 없는 아주머니,겨울이 되면 사라져 버리는 몽환적인 요소가 짙다.계속 이어지는 <뉴욕 탄광의 비극>도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고 있다.자해,유전사고,심장발작,교통사고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카세트 테이프 소설로 썼다는 <캥거루 통신>은 백화점 불만 접수처 담당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작가는 백화점에 대한 불만,클레임을 제히하는 작업에 몰두한 경험이 있었기에 글의 서술이 수월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후반부로 넘어가게 된다.<오후의 마지막 잔디>는 정원의 잔디를 깎는 주인공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정원의 주인은 죽은 남편이 끔찍하게 잔디를 관리했다는데 잔디 깎는 청년과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좁혀져 온다.금방이라도 베드신이라도 연출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결혼 전에는 세상이 핑크빛만 같을 것이다.비가 내리는 리조트호텔의 정경 그리고 개의 시체를 정원에 매장하는 정경,한밤중에 점 비슷한 것을 치는 정경은 작가와 관계가 있었고 신경을 집중해서 타자의 기척을 더듬어 끌어당기기라도 하면 몸의 진이 다 빠져 나간다고 한다<땅속 그녀의 작은 개>. 이 에너지를 소설 쪽으로 돌리기로 했던 것이다.끝으로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는 그린의 시드니의 음산한 뒷골목 풍경과 사립탐정을 내세워 재미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초기 소설작품으로서 시험무대였던 것으로 보인다."상실과 붕괴 뒤에 무엇이 오든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말했던 작가의 말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시사를 안겨 주고 있다.새겨 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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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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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IMT외환위기에서 잠시 벗어나는듯 싶더니 설상가상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사건)로 한국경제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많이 썩고 있다.서민들의 주머니로부터 돈이 좀처럼 나오지를 않고 있다.성장 일변도로 달려 왔던 한국경제도 서방 선진국과 같이 성장률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이렇게 저성장 속에서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봉급자들의 급여는 제자리 걸음이니 소비가 탄력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작금 소비자 물가를 살펴보면 세계 톱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데,과연 어느 계층을 중심으로 한 물가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장바구니 물가가 천정부지이다.소득은 늘지 않고 지출은 많아지면서 서민들은 삶이 팍팍해질 수 밖에 없는게 실정이다.

 

 지금처럼 도시화,산업화가 덜 발달되었던 시대에는 비록 돈이 없어도 이웃간에 공동체적 삶이 상존하고 있어 따뜻한 정과 배려고 삶을 이어나갈 수가 있었다.게다가 계획경제 시절 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힘든 노동을 통해 돈을 모으면서 미래를 대비했던 것이다.부모들은 먹을 것,입을 것조차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식과 미래를 위해 희생을 했다.그 덕분에 한국사회는 고도의 성장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것이다(외형적으로나마).그런데 1973년 석유파동을 거치고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가 발현되면서 한국사회 풍조도 어느덧 성장에서 소비위주의 생활패턴으로 전환되어 갔다.

 

 나아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전자상거래가 발달하고,거리의 상점도 골목상권에서 대형마트 내지 24시간 운영체제인 편의점이 우후죽숙격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또한 1980년 중.후반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에 의해 다자간 무역 협정에 체결되었다.이로 인해 외국산 농산물이 전면 개방되면서 한국 식탁에는 정체불명의 외국산 농산물,축산물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꿔 놓았다.가격이 비록 저렴할지 모르지만 농산물,축산물 속에는 철저하게 검역을 받지 않은 인체에 해로운 각종 화학성분,농약 잔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현 시대는 소비자가 똑똑해야 한다.특히 먹는 것에 대해서는 쌍불을 켜서라도 감시하고 방어해야 한다.오랜 세월 길들여진 한국인의 입맛을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질병의 원인도 제공하고 있으니 더욱 감시,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이면서 소비자 제1세대로 자처하는 히라카와 가쓰미 저자가 쓴 《소비를 그만두다》 는 저자가 살아오면서 일본의 경제동향,소비동향 그리고 자신이 몸소 운영했던 '소상인'의 경험을 되짚고 있다.한국경제 역시 일본과 거의 비슷한 형국이다.신자유주의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저성장,고임금이라는 모순된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다.특히 국경없는 글로벌 경제사회로 돌아서면서 싼 물건이 판을 치고 있다.대형마트의 할인공세와 24시간 편의점은 겉으로는 일반인의 삶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질낮은 물건,건강에 이롭지 못한 제품(밀가루 식품,인스턴트 식품,튀긴 음식,편의점 식품,육류 등)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렇게 건강에 해로운 식품들을 자주 섭취하면 인체에 독소가 쌓이면서 자가치유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먹을 것,입을 것,갖고 놀 것 등이 풍성하다 못해 낭비로 인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소비사회가 만연하면서 돈이 최고인 화폐만능 사회,자신만 알고 이웃과 단절하여 고립되고 있는 도시사회로 접어 들었다.이것은 예견된 현상일 것이다.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이기도 하다.사회적으로는 주5일제와 노동자 파견법 시행,편의점 출현은 노동에서 소비사회로 한층 더 가속시켰던 것이다.주지하다시피 현대사회는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개인의 가치관,사회적 위치,신분까지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다.그래서 저자는 본래 의미의 인간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즉 '탈소비'라는 삶의 방식을 내걸고 있다.이름하여 단샤리(斷捨離)라는 것인데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깎아냄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하나의 시도다.

 

 현재 한국은 스마트폰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을 정도이다.웬만한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쇼핑,놀이,소통,업무처리까지 실행하고 있다.스마트 폰 역시 소비를 부추기는 문구와 그림들로 꽉 차 있다.모든 일이 지나치고 중독되면 아니한 만도 못하다.정신적 건강이 나빠지고 살림에 대한 나쁜 영향도 뒤따를 것이다.개인은 자신의 수입과 분수에 맞게 소비능력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자신의 삶과 노동,소비를 정상적인 순환궤도로 올려 놓기 위해서는 일본 요가명상에서 말하는 단샤리(끊고,버리고 집착에서 떠나기)를 작심하고 이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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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방석 -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따듯한 세 편의 가족 이야기
김병규 지음, 김호랑 그림 / 거북이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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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옹색하고 비위생적인 불편한 삶이라고 생각되는 시절이 불과 1세대 전에는 농촌이나 도회지나 흔히 볼 수가 있었다.농촌은 스레트,알록달롱 양철지붕이 있었고,도회지 변두리는 문화가옥이라하여 진주황색 기와집이 즐비했다.당시의 문화생활은 TV,전축이 최고였다.개인과 개인간에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통신매체는 전화,전보,편지가 주류였던 시절이었다.군대에 있을 때에 얄팍한 편지지에 정성이 담긴 안부편지,연애편지는 혹독한 추위,엄격한 훈련 가운데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화롯불과 같았다.안부가 궁금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지 깨알같은 글씨로 마음을 담아내던 시절은 이제는 화살보다 더 빠른 SNS시대에서 콩볶아 먹는 것과 같이 생각할 시간마저 없는 즉석식 묻기와 답변만이 매체와 미디어를 달구고 있다.

 

 삶은 어떠한 문화환경일지라도 이어져 나간다.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가 첨단 기기가 대신해 주는 시대와 같아 마음 한켠 지난 예스러운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핸드폰,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을 그린 《꽃방석》은 추억과 향수를 달래주는 이야기로서 눈을 감고 생각과 의식을 1세대 이전으로 턴 백 시켜 놓아야 융숭하고 따뜻한 인간의 정을 느낄 수가 있다.

 

 꽃방석의 주인공은 달풍이와 달분이이다.달풍이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글로서 시골에는 할머니,도회지에는 부모와 오누이인 달풍이와 달분이가 살고 있다.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은 달풍이의 가족은 도회지에 살고,할머니는 시골에 거주하고 계신다.달풍이 어머니는 학교급식 영양사로 일하고 아버지는 화물회사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달분이와 달풍이는 잔잔한 풍파를 일으켰다.달분이는 엄마가 학교급식 영양사로 일하는 것이 못내 부끄럽다는 생각을 갖는다.급식 시간이 되어 맛있는 것이 나오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 엄마는 달분이에게 양을 더 얹어 준다.달분이 도시락에선  엄마가 학교에서 만들고 남은 급식 냄새가 진동하면서 급우들은 달분이 엄마가 영양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결국 달분이는 급식실에서 엄마의 정체를 알리게 되고 마는데...

 

 

 달풍이는 달분이와 비교하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달풍이와 달분이에게 제대로 양육과 훈육이 어려울 것이다.달풍이는 평소 자주 다니는 서점에 들러 눈에 들어오는 책을 읽다 보니 서점 주인 눈치가 보여 읽던 책을 마저 읽고 갈까,아니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만 자신의 가방 속에 집어 넣고 만다.달풍이는 꼼짝없이 서점 주인에게 걸려 아버지가 서점에 불려 오고 책값 이상을 배상했다.후일 서점 주인과 아버지가 만나 화해를 하는데,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달풍이는 아버지께 책을 훔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

 

 

 한편 시골에는 할머니가 홀로 계신다.오랜 시절 구멍가게를 이어오고 계시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할머니 가게는 하꼬방과 같이 버스가 쉬고 떠나는 정류장이다.자가용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객지에서 시골을 찾아오는 손님과 차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할머니 가게 물건을 사주어 돈을 제법 모았는데 요즘에는 차를 기다리고 차에서 내리는 손님이 적다 보니 물건을 사주는 손님이 적어 한산하기만 하다.그런데 할머니 사연이 예사롭지 않다.할머니는 달풍이와 달문이의 친할머니가 아니시다.한국전쟁 가운데 난리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으로서 달풍이 아버지가 할머니를 키워주시는 어머니로 모시면서 살았던 것이다.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통장과 보험증서를 남기신다.직접 피를 나눈 부모 자식간도 아니고 오갈데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인 할머니를 외롭고 쓸쓸하지 않게 가족으로 받아들인 은혜를 갚으려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죽음이 다가오면서 생전 꽃방석 두 개를 만들었던 모양이다.하나는 양아들 하나는 며느리에게 전해 주려 했다.꽃방석 안에 고이고이 숨겨 놓았던 보험증서와 통장은 할머니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이 담겨져 있다.오랜 세월 한 푼 두 푼 모아 양아들 가족들이 살림에 보탬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그것은 뭔가를 기대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담아 냈던 보물이었던 것이다.돈과 물질이 인간을 저울질하는 시대에서 할머니와 같은 온후하고 넉넉한 마음씨는 깊은 울림과 귀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이것은 이기주의,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소나마 순화(醇化)시켜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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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까지 7일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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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마주치고 잔소리하고 부대끼면서 한지붕 아래 살고 있는 가족으로서 설렘과 기다림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돈과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사회이다보니 가족 구성원간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도 많이 퇴색해지고 있다.속된 말로 돈이나 주면 헤헤 하고 원할 때 주지 않으면 몸부림을 치고 짜증을 낸다.돈을 주더라도 그 효력은 며칠 가지도 못하고 다시 돈돈돈 한다.그렇다고 늘 관심과 애정으로 자식들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현재 사춘기이고 반항심이 클 때이지만 어른으로서 할 얘기는 꼭 한다.물질도 필요하지만 정신적 자양분도 채워 넣어야 인간다운 인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가족의 소중함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까.집집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평소 진심으로 대하고 아끼고 배려해 주려는 마음자세를 많이 보여주어야 어려울 때 가족의 힘이 나타난다는 것을 느낀다.타고난 개인의 성향을 바탕으로 살아온 날들이 올곧은 길이었냐에 따라 슬럼프에 빠질 때 위로와 격려를 많이 보내지 않을까 한다.지지난 달 혈관질환으로 대수술을 받고 입원하면서 가족들이 내게 찾아와 건네주는 말과 위로는 실의에 빠진 나에게 삶을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병이 나지 않았던 평상시 자식들에게 서운하게 대하고 미흡하다고 여겨졌던 점들을 차분하게 소회하는 시간이 되고,인생의 선배로서 자식들이 장차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은가를 경험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 간략하게나마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당장 가슴에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시간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본인들도 깨달을 때가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또한 아내의 간병이 무엇보다 고맙기만 했다.

 

 아프면 가족 밖에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어떠한 질병이든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알 수가 없다.살다 가노라면 좋은 일도 있고 궂은 일도 있을 것이다.가족의 애환을 다룬 《이별까지 7일》은 하야미 가즈마사 작가가 직접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쓴 병상일지로서 내가 입원했던 병동의 모습이 연상된다.주인공 레이코를 중심으로 남편 가쓰아키,고스케,슌페이 두 아들과 미유키,아즈사 두 며느리,손주 겐타가 가족으로 등장한다.평범하기 그지없던 레이코 부인에게 실어증 비슷하게 찾아 오면서 알츠하이머병은 아닐까 하고 병원에 찾아가 진찰을 받은 결과가 뇌종양으로 판정을 받게 된다.뇌종양이 원발성인지 장에서 전이된 전이성 종양인지는 큰병원에 가서야 알게 된다.레이코는 남편 가쓰아키와 나이트 클럽에서 만나 30여 년을 살아 오던 중 마이홈에 대한 욕망으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게 된다.남편이 하는 일이 하향세를 타게 된다.엎친데 덮친격으로 대부업계에 진 빚과 고정지출금과 생활비는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 딱하고 안스럽기만 하다.레이코가 찾아간 병원은 3류급 병원으로 의료시설이 부족하여 진단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다.그래서 둘째 아들 슌페이는 어머니를 위해 치쿠지 암센터를 찾아가 MRI를 찍고 결과가 나오는데 악성 림프종으로 확진을 받는다.그런데 (병원마다 다르겠지만)입원.치료비를 퇴원할 때 받는 것이 아닌 정해진(1주,10일 간격으로) 기일마다 내야 하기에 레이코의 병원비를 감당하기에 남편 가쓰아키는 신음을 토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다.다행히도 레이코는 만일을 위해 암보험을 가입해 놓았던 터라 병원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긴 병에 효자없다고 병원비 걱정으로 큰 아들 고스케는 엄마가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병원측에서 1주일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레이코 가족들의 관심과 애정에 힘입어 삶의 의지를 더욱 불사르게 되면서 퇴원을 하게 된다.과연 레이코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조마조마했는데 참 다행이다.종양은 퇴원을 해도 계속 전이여부를 체크해야 하기에 통원치료를 해야 한다.그리고 레이코가 퇴원하고 세월이 흘러 손주 겐타가 네 살이 되는 시점에서,레이코가 진 빚 1,200만엔(1억1천만원 정도)은 고스케가 벌어 갚게 되면서 빚없는 몸이 된다.노름,낭비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던 가쓰아키 집안에 청천벽력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 온식구가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지만 가족이 똘똘 뭉쳐 부인이고 어머니인 레이코에게 끝없는 관심과 애정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환자에게 관심과 사랑만큼 더 좋은 약은 없는 것 같다.입원한 환자에게는 위로와 따뜻한 말이 가장 소중한 생명수이다.이에 힘입어 보다 더 강하게 살아가려는 삶의 의지가 내면에서 싹트게 되는 것이다.레이코는 자신의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앞날을 위해 현명하게 생보에 가입한 것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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