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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현재 살아계신다면 팔십이 넘으셨고 살아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보이지 않는 정신적 지주,지탱이 되어 주고도 남을 것이다.아버지께서 오랜 노동과 제대로 되지 않은 몸관리,음식 섭취가 기나긴 당뇨와 폐렴으로 이어져 생전 몇 마지기의 논과 집을 장만하고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는 몇 년간의 생활비를 병원비로 충당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이 글을 읽어 가면서 안타깝고 애틋하며 잘 해 드리지 못한 점만 자꾸 마음을 후빈다.
누구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든 나쁘든 존재할 것이다.대개가 부모의 욕심과 기대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인간사일 것이다.내 자신을 추켜 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초.중.대학시절의 성적은 꽤 괜찮았다.늦게 찾아온 사춘기가 고교시절이었는지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공부와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가 뇌리에 들어 오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아버지 역시 갈팡질팡하는 내게 거의 자율적으로 맡기다시피 해서 내 자신의 몫은 내가 챙겨야 했던 고교시절이었지만 결코 아버지에게 불만은 없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에 늑장부리는 것을 못본 채하고 넘어가질 못하는 아버지는 공부와 가사일을 반반으로 나누어 해주기를 바랬고 나는 나대로 공부가 최고이고 공부 잘 하는 급우가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성적이 떨어지는 과목은 '개인 과외'를 받고서라도 성적을 올리고 내가 원하는 대학,과에 들어가기를 바랬지만 그 희망은 성적에 따라 대학과를 지망해야 했으며 지방국립대학을 원하셨던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서울의 주요대학에 가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가 관철은 되었지만 당장 먹고 잘만한 곳이 마뜩치 않아 대학초년 시절은(2개월 정도) 인천에서 총각으로 살고 있던 이종형 집에서 먹고 자고(쌀은 시골에서 올려보냄) 했다.형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세탁과 취사는 내 몫이 되어 가고 몸에 익숙치 않은 대학생활이 따분하고 낭만적이질 못했다.부모님이 해주시는 밥과 사랑을 받으며 본가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좋았을테고 당시 할머니가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도와 주시는 바람에 몸은 편했지만 생활비는 나름대로 신문배달을 통해 악착같이 생활을 이어나갔다.
1958년생인 작가 옌롄커(阎連科)는 누나 둘과 남동생을 두면서 둘째 누나가 공부를 잘하는 것을 시샘으로 여기고 자신도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지만 대학진학에 대해 중국 정부가 개방의 문을 열자 그는 벼락치기 공부로 중학과정을 섭렵하고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데 작문 시험의 제목이 "내 마음은 마오주석기념당으로 날아가네"였다고 한다.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모범 농촌마을로 평가되는 자신의 고향 산시성 시양(昔陽)현에서 멀리 떨어진 톈안먼을 바라보면서 마오주석의 위대함과 영광을 생각하며 작문을 했다고 한다.
마오쩌뚱의 '대약진 운동'과 '3년 자연재해'는 농촌을 피폐화 하고 촌부들의 삶의 도탄지고에 빠뜨리는 등 힘들고 험악한 생활이 이어지지만 삶과 생계를 위해 학생신분인 작가도 풀을 베고 소를 먹이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등 본업과 부업의 구분이 없는 어수선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내 아버지 역시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어머니와 함께 객지에 나가셔서 그릇장사,건채물 장사,과수재배를 하시면서 두다리 쭉 뻗고 편안하게 생활을 못하셨다.오로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묵묵히 일만 하셨던 분이기에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철이 없었던 것도 이 자리에서는 인정해야겠다.작가의 아버지도 죽도록 일만 하고 자식들에게 토담으로 된 기와집을 한 채씩 장만해 주시는 등 자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던거 같다.
작가의 큰아버지,아버지,넷째삼촌,아버지의 세대의 삼형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될 비와 햇빛도 중요하지만 뜻하지 않는 비바람 앞에서도 꿋꿋히 견뎌내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성숙하고도 알찬 내면의 세계와 부모님의 커다란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효심과 생명의 존엄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멈추지를 않고,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한문이 떠오른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중국 대지의 아들로 태어난 작가 옌롄커는 중국의 중견작가로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이 작품은 그의 자식세대인 팔링허우(八零後) 즉 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에게 전하는 진솔한 생존의 기록이고 살아있기에 기억을 하고 그 기억은 역사의 한 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