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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시간과 세월은 바쁘게 흘러가기만 한다.학창 시절을 거쳐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갖게 되면서 육아,교육 문제,(막연한)노후 대비 등으로 이어지면서 낭만적이고 애틋한 추억 등이 하나 둘 빛바랜 앨범 속의 사진들과 같이 다가온다.누구는 살아 있으니까 이런 일,저런 일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맡고 느끼고부딪혀 갈 수가 있어 기쁘고 의미있는 삶이 아니겠냐고 한다.그런데 살아가는 자체가 힘겹고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먹고 자고 교육시키고 쇼핑하고 여행하는 모든 과정이 돈과 물질이라는 수단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극히 현실적으로 자문자답해 본다.
이번 안도현의 시집이 한 편 한 편이 시간과 공간은 달랐지만 같은 세대로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세상 모든 일이 나를 닮은 그림이고 잔잔하게 다가오는 추억의 시편들이기에 가슴이 뭉클해진다.7,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농촌과 도시의 풍광들이 구름이 흘러가듯 유유하기만 하다.중학교까지는 산골에서 자라고 고교시절부터 도회지로 몸을 옮기면서 산과 들,고샅길과 초가집,넉넉한 공동체 생활과 나눔의 생활이 혼탁하고 매마른 정서로 가득찬 도회지의 모습은 정반대이다.세상의 문명이 나날이 발전해 가고 지난 시절은 골동품과 같이 여겨지겠지만 그 옛날 함께 호흡을 맞추고 살아가던 때의 기억과 추억은 오래도록 남으리라 생각된다.
요즘 젊은 시인들한테서 만나기 어려워진 전통적 서정을 전통적 기법으로 보여 주고 있다.촌스럽고 케케묵은 7,80년대 사람과 마을,거리와 분위기가 첨단산업과 유흥문화과는 극히 대조적이기에 때론 순박하고 때론 한가롭게 다가오는데 사람은 추억을 먹고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회귀성 동물이 아닌가 싶다.현재도 몇 십년이 흐르고 되돌아 보면 잊혀지지 않을 과거일텐데 이 시집의 시귀들은 이해타산에 찌들어 사는 가련한 현대인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가까스로 저녁에서야,마음의 풍경,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등 4부로 이루어지고 총 48편을 시인의 노트에 베껴 놓은 것을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들려 주고 있다.좁고 길게 뱀 형상마냥 드러워진 골목길에서 언니와 두 여동생이 함박 웃음을 짓고 수줍게 시멘트 담벽에 등을 기대고 수줍게서있는 소년의 대조적인 모습,돈을 주고 이발관에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자르는 것이 아까웠는지 할아버지가 손주 녀석에게 앞마당에서 머리를 밀어 주는 정겨운 시간,부모님이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간 사이 부모님 대신 연탄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언덕 길을 묵묵히 올라오는 담대한 모습,집 안에 있기가 답답하여 바깥 바람을 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한 노파의 쓸쓸한 뒷모습이 매우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우주,세상에 있는 미미한 사물일지라도 자세한 관찰과 통찰력으로 시인의 언어로 다가오는 한 편 한 편의 시들은 조잡하고 난해할 때도 있지만 이번 시집은 서정적이며 잊혀진 기억을 들추어 내게 하는 묘한 운율이 살아 있다.
아버지는 새 봄맞이 남새밭에 똥 찌끌고 있고
어머니는 어덕배기 구덩이에 호박씨 놓고 있고
땋머리 정순이는 떽끼칼로 떽끼칼로 나물 캐고 있고
할머니는 복구를 불러서 손자 놈 똥이나 핥아 먹이고
나는 나는 나는
몽당손이 몽당손이 아재비를 따라
백석 시집 얻어보러 고개를 넘고 - 서정춘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 -
시대와 의식 구조가 변해도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아무 근심없이 10개월을 살아가던 시절마냥 사람의 마음 속에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평안,그리고 그리움과 추억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이 순간이 힘겹고 고통스럽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나날이 올지라도 어릴 적 고향의 친구들,산과 들,물과 구름,공기 속에서 휘젖고 뛰어 놀던 시절을 생각하면 삶의 활기와 신진대사가 새롭게 돋아나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