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유럽에서 반유대인 움직임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이 스위스 바젤에 모여 제1차 시온주의자회의를 개최한다. 조국시온(팔레스타인)의 언덕으로 돌아가 새로운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바젤계획을 채택하고 민족주의 운동을 펼쳐 나간다.
1915년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 편이던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 내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했다.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1915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런 내용이 담긴 서한을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에게 10여 차례 보내, 그 대가로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독립국을 세울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맥마흔 선언으로 불린다.
1917년
벨푸어 선언이 나왔다. 영국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는 미국내 유대인의 환심을 사 미국을 제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시오니즘 운동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던 영국계 유대인 로스차일드 경에게 서한을 보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했다.
1920년
영국은 산 레모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 요르단과 함께 자신의 위임통치 아래 편입시키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오는 유대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폈다. 이때부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대규모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이 된다. 이를 피해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자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소유 토지가 늘어났다. 때문에 아랍 민족들 사이에 반유대인 운동이 촉발되어 아랍 민족과 유대인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이 자주 일어났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도 끝났다. 팔레스타인은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로 편입되었다.
1947년
미국과 소련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넘기면서 이 지역 분쟁은 국제문제가 되었다. UN은 아랍세력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나누는 분할 독립안을 가결한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했다. UN,의 분할 독립안을 거부하는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해 제1차 중동전쟁이 터진다.
1949년
UN이 중재에 나서 전쟁이 끝났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영도 70%를 차지했고, 팔레스타인인 8만5천여명이 강제 추장되었다.
1956년
이집트 총리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운하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겠다며 군사작전을 전개한다. 이것은 제2차 중동전쟁으로도 불린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요충지를 점령했다.
1964년
5월 29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즉 PLO가 창설된다.
1967년
시리아와 이집트가 군사동맹을 맺고 이스라엘 공격을 준비했지만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을 해 제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끝났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서안 지구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했다. 11월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 242호를 채택한다.
1969년
제5차 팔레스타인미족평의회에서 파타 자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PLO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수에즈 지대 이스라엘군을 기습 공격한다. 제4차 중동전쟁으로 불린다.
1974년
UN이 팔레스타인인의 독립과 자결권을 인정한다. PLO는 옵저버 자역을 얻어 팔레스타인 대표 체제로 공인받는다.
1977년
5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하고, 우익 연합 정권이 들어선다. 11월에는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가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1978년
미국 대통령 카터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는다.
1979년
3월, 이집트가 아랍 국가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1980년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과 제4차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동예루살렘과 가자 지구 및 골란 고원을 1981년까지 이스라엘 영토로 공식 합병한다.
1981년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가 암살된다.
1987년
이스라엘 점령 지역에서 이스라엘군 지프차가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태운 트럭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다가, 팔레스타인 청년 1명이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숨졌다. 시위는 순식간에 점령지 전역으로 퍼져나가 제1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로 번진다. 이 무장봉기는 1993년까지 계속돼 팔레스타인인 천여 명이 희생되었다. 한편 1987년 말 아사드 야신이 반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 단체 하마스를 창설한다.
1988년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를 통해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선포하는 한편, 서방 외교를 강화해 60여개국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승인받는다.
1991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중동평화회담에서 팔레스타인 대표를 비롯한 아랍 국가 대표들이 이스라엘 대표와 처음으로 만난다. 이 교섭은 1992년 워싱턴에서 마무리 된다.
1992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해, 라빈페레ㅡ 정권이 들어선다. 중동평화회담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협상에 반대해 온 하마스 지도부가 레바논으로 추방된다.
1993년
제1차 인티파다가 계속되자 팔레스타인 문제가 세계적인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다. 이스라엘은 PLO를 합법적인 팔레스타인 정부로 인정하고, PLO로 이스라엘의 존재 근거를 인정하면서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곧이어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를 위한 원칙 선언에 서명하면서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일부가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가 되었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에 반대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공격을 감행한다.
1995년
9월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은 팔레스타인인의 자치를 요르단 강 서안에 있는 7대 도시로 확대하는 협정에 서명한다. 그 해 11월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한다.
1996년
1월 20일 팔레스타인 첫 총선이 열려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우익 성향의 네타냐후가 총리에 당선되면서 평화 정착을 위한 그간의 노력을 후퇴시키는 강경 정책을 펼친다. 이 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자살테러가 일어난다.
1998년
이스라엘과 PLO는 오슬로 협정의 실천 방안을 담은 와이 리버 협정에 서명한다.
1999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노동당 후보 에후드 바라크가 총리로 당선된다. 와이리버 협정을 일부 수정한 이른바 와이2 협정이 체결된다.
2000년
당시 야당 당수였던 샤론이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하면서 제2차 인티파다 일어난다. 이 일을 빌미 삼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를 다시 점령했다. 한편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를 천명하지만,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PLO와 아라파트는 더욱 고립된다.
2001년
강경파 샤론이 이스라엘 총리로 당선된다.
2002년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서 유혈 충돌이 격화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 테러를 막겠다며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보안 장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한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출범 지지를 선언한다. 이 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UN이 후원해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중동 평화 로드맵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2003년
팔레스타인 쪽에서 온건파인 마흐무드 압사스 총리 체제가 출범하면서 이스라엘은 6월부터 북쪽에 있는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자치 지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압바스와 샤론은 중동 평화 로드맵에 합의 한다.
2004년
샤론 총리는 가자 지구 21개 정착촌 철수 계획을 발표한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인사들에 대한 표적 암살을 공식 선언한 뒤, 3월 하마스 창시자 야신이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목숨을 잃는다. 후임 지도자 란티시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표적 살해된다. 새 지도자가 된 칼레드 마샬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망명했다. 한편 11월에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이 사망한다.
2005년
마흐무드 압바스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으로 취임한다. 샤론과 압바스는 상호 적대 관계를 끝내기 위해 이집트 샤름 엘셰이크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평화 선언을 채택한다. 9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및 주둔 병력을 모두 철수한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38년에 걸친 가자 점령을 끝낸다.
2006년
샤론 총리가 뇌졸중으로 뇌사 상태에 빠져,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체제가 열린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출범 후 두번째 총선에서 강경파 하마스가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레바논 이슬람 무장 운동 단체)가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했다며 레바논을 침공해 제2차 레바논 전쟁을 일으킨다.
2007년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자 봉쇄 정책을 더욱 강화한다. 9월에는 시리아 핵 의혹 시설을 공습한다. 11월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배제한 채, 압바스 수반 진영과 팔레스타인 자치 국가 수립을 위한 협상 재개에 합의한다.
2008년
6월 19일 이집트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휴전협전을 맺는다. 하지만 그 뒤로도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었다. 12월 27일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과 포격을 가하고, 지상군을 투입했다.
2009년
1월 12일 현재까지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사상자가 5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 결의안마저 거부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 서경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307~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