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유럽에서 반유대인 움직임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이 스위스 바젤에 모여 제1차 시온주의자회의를 개최한다. 조국시온(팔레스타인)의 언덕으로 돌아가 새로운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바젤계획을 채택하고 민족주의 운동을 펼쳐 나간다. 

1915년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 편이던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 내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했다.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1915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런 내용이 담긴 서한을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에게 10여 차례 보내, 그 대가로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독립국을 세울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맥마흔 선언으로 불린다. 

1917년  

벨푸어 선언이 나왔다. 영국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는 미국내 유대인의 환심을 사 미국을 제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시오니즘 운동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던 영국계 유대인 로스차일드 경에게 서한을 보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했다. 

1920년 

영국은 산 레모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 요르단과 함께 자신의 위임통치 아래 편입시키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오는 유대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폈다. 이때부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대규모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이 된다. 이를 피해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자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소유 토지가 늘어났다. 때문에 아랍 민족들 사이에 반유대인 운동이 촉발되어 아랍 민족과 유대인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이 자주 일어났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도 끝났다. 팔레스타인은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로 편입되었다. 

1947년 

미국과 소련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넘기면서 이 지역 분쟁은 국제문제가 되었다. UN은 아랍세력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나누는 분할 독립안을 가결한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했다. UN,의 분할 독립안을 거부하는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해 제1차 중동전쟁이 터진다. 

1949년  

UN이 중재에 나서 전쟁이 끝났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영도 70%를 차지했고, 팔레스타인인 8만5천여명이 강제 추장되었다. 

1956년 

이집트 총리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운하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겠다며 군사작전을 전개한다. 이것은 제2차 중동전쟁으로도 불린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요충지를 점령했다. 

1964년 

5월 29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즉 PLO가 창설된다. 

1967년 

시리아와 이집트가 군사동맹을 맺고 이스라엘 공격을 준비했지만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을 해 제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끝났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서안 지구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했다. 11월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 242호를 채택한다. 

1969년 

제5차 팔레스타인미족평의회에서 파타 자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PLO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수에즈 지대 이스라엘군을 기습 공격한다. 제4차 중동전쟁으로 불린다. 

1974년 

UN이 팔레스타인인의 독립과 자결권을 인정한다. PLO는 옵저버 자역을 얻어 팔레스타인 대표 체제로 공인받는다. 

1977년 

5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하고, 우익 연합 정권이 들어선다. 11월에는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가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1978년 

미국 대통령 카터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는다. 

1979년 

3월, 이집트가 아랍 국가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1980년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과 제4차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동예루살렘과 가자 지구 및 골란 고원을 1981년까지 이스라엘 영토로 공식 합병한다.  

1981년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가 암살된다. 

1987년 

이스라엘 점령 지역에서 이스라엘군 지프차가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태운 트럭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다가, 팔레스타인 청년 1명이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숨졌다. 시위는 순식간에 점령지 전역으로 퍼져나가 제1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로 번진다. 이 무장봉기는 1993년까지 계속돼 팔레스타인인 천여 명이 희생되었다. 한편 1987년 말 아사드 야신이 반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 단체 하마스를 창설한다. 

1988년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를 통해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선포하는 한편, 서방 외교를 강화해 60여개국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승인받는다. 

1991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중동평화회담에서 팔레스타인 대표를 비롯한 아랍 국가 대표들이 이스라엘 대표와 처음으로 만난다. 이 교섭은 1992년 워싱턴에서 마무리 된다. 

1992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해, 라빈페레ㅡ 정권이 들어선다. 중동평화회담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협상에 반대해 온 하마스 지도부가 레바논으로 추방된다. 

1993년 

제1차 인티파다가 계속되자 팔레스타인 문제가 세계적인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다. 이스라엘은 PLO를 합법적인 팔레스타인 정부로 인정하고, PLO로 이스라엘의 존재 근거를 인정하면서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곧이어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를 위한 원칙 선언에 서명하면서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일부가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가 되었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에 반대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공격을 감행한다. 

1995년 

9월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은 팔레스타인인의 자치를 요르단 강 서안에 있는 7대 도시로 확대하는 협정에 서명한다. 그 해 11월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한다. 

1996년 

1월 20일 팔레스타인 첫 총선이 열려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우익 성향의 네타냐후가 총리에 당선되면서 평화 정착을 위한 그간의 노력을 후퇴시키는 강경 정책을 펼친다. 이 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자살테러가 일어난다. 

1998년 

이스라엘과 PLO는 오슬로 협정의 실천 방안을 담은 와이 리버 협정에 서명한다. 

1999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노동당 후보 에후드 바라크가 총리로 당선된다. 와이리버 협정을 일부 수정한 이른바 와이2 협정이 체결된다. 

2000년 

당시 야당 당수였던 샤론이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하면서 제2차 인티파다 일어난다. 이 일을 빌미 삼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를 다시 점령했다. 한편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를 천명하지만,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PLO와 아라파트는 더욱 고립된다. 

2001년 

강경파 샤론이 이스라엘 총리로 당선된다. 

2002년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서 유혈 충돌이 격화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 테러를 막겠다며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보안 장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한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출범 지지를 선언한다. 이 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UN이 후원해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중동 평화 로드맵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2003년  

팔레스타인 쪽에서 온건파인 마흐무드 압사스 총리 체제가 출범하면서 이스라엘은 6월부터 북쪽에 있는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자치 지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압바스와 샤론은 중동 평화 로드맵에 합의 한다. 

2004년 

샤론 총리는 가자 지구 21개 정착촌 철수 계획을 발표한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인사들에 대한 표적 암살을 공식 선언한 뒤, 3월 하마스 창시자 야신이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목숨을 잃는다. 후임 지도자 란티시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표적 살해된다. 새 지도자가 된 칼레드 마샬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망명했다. 한편 11월에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이 사망한다. 

2005년 

마흐무드 압바스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으로 취임한다. 샤론과 압바스는 상호 적대 관계를 끝내기 위해 이집트 샤름 엘셰이크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평화 선언을 채택한다. 9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및 주둔 병력을 모두 철수한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38년에 걸친 가자 점령을 끝낸다. 

2006년 

샤론 총리가 뇌졸중으로 뇌사 상태에 빠져,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체제가 열린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출범 후 두번째 총선에서 강경파 하마스가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레바논 이슬람 무장 운동 단체)가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했다며 레바논을 침공해 제2차 레바논 전쟁을 일으킨다. 

2007년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자 봉쇄 정책을 더욱 강화한다. 9월에는 시리아 핵 의혹 시설을 공습한다. 11월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배제한 채, 압바스 수반 진영과 팔레스타인 자치 국가 수립을 위한 협상 재개에 합의한다. 

2008년  

6월 19일 이집트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휴전협전을 맺는다. 하지만 그 뒤로도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었다. 12월 27일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과 포격을 가하고, 지상군을 투입했다. 

2009년 

1월 12일 현재까지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사상자가 5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 결의안마저 거부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 서경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307~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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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저렇게 영국이 관여하게 되었군요. 몰랐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24 18:04   좋아요 0 | URL
또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재일 조선인 역사도 권말에 있는데 옮길까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막아보려고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에 침략했을 때,미국과 소련이 손잡고 저지했지요.참 외교라는 게 묘하더라구요.그때 냉전기라 미국과 소련이 으르렁댔거든요.이데올로기로만 본다면 미국은 영,불 편을 들어야 했잖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6 10:44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는 위정자들이 국민을 설득할때만 사용하는거 같아요 --;;

비로그인 2009-02-26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목요연하네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6 10:4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참 좋았습니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4
서경식 지음, 송현숙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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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교수와의 대담집 만남에서 서경식은 고통을 통해서 가장 폭넓게 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은 고통이 무엇이며 우리가 기억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서경식은 스스로 묻는자라 한다. 한일 양국 모두에서 소수자로 그는 대답하지 않고 다수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한다.  

다수자에게 너무나 당연한 모어, 국어의 차이를 말하고, '기본 인권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는 일본의 헌법은 국민이 아닌 서경식과 같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철학은 질문하는 학문이다. 서경식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 한다. 

'생명은 선이고 죽음은 악'이라는 일견 당연한 명제도 그에게는 서민에게 더 살아봐야 나아질 희망이 없는 현실에서 노동력 착취를 지속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해석한다. 

루신에서 희망을 얘기한 부분이 인용되어 있다.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란 본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위에 난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말이지 길이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기는 것이다' 

희망소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 그래도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희망이다. 그래도 걷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걷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배자 다수자의 이데올로기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절망과 희망의 공통점은 "두가지 모두 거의 없다'는 점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절망속에서의 희망을 이야기 한다. 요즘 처럼 어두운 시기에 묘하게 위안이 된다. 

이 책의 권말에는 팔레스타인 분쟁사와 재일조선인 역사를 연표로 권말에 정리해 두었다. 이것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소장할만한 훌륭한 책이다.  

진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폭력과 차별을 분별해내고 고쳐나가려는 것이다. 여기 소수자이자 예민한 감성의 서경식이라는 숫돌에 나의 관념들을 갈아 날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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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09-02-23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 한겨레에서 글 연재하실 때 많이 봤었는데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느껴지더라구요. 근데 외모만 보고 스님인줄 알았는데..ㅎ 출판사 이름이 알흠답네요 ㅋ

무해한모리군 2009-02-24 08:53   좋아요 0 | URL
그분 스스로가 소수자이시니 그렇겠지요 ^^

푸하 2009-02-25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은 하면 할 수록 괴롭지만 질문하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도 큰문제가 될 거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5 08:10   좋아요 0 | URL
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 바른 질문을 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테니까요.

비로그인 2009-02-2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소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 그래도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희망이다. 그래도 걷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걷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영화 <스틸 라이프>의 마지막 장면인 조심조심 외줄을 타고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삶의 터전은 파괴되어 사라져 가지만 결국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말이죠.

무해한모리군 2009-02-26 10:46   좋아요 0 | URL
예전에 환경운동과 관련된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왔습니다. 우린 이미 늦은지 모른다. 그래도 노력해야하는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게 자명할지라도 사랑한다면 조금이라도 그 순간을 늦추기 위해 허망한 노력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끔 이 무슨 바보같은 짓을 내가 하나 싶다가도 사랑하니까 라는 진부한 이유로 돌아오곤 합니다.
 

선배의 일을 훔쳐보다 바우처제도를 생각해 본다.

바우처제도란 사회복지서비스를 돈이 아닌 이용권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식으로 사회복지제도도 소비자가 골라서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이런 바우처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이용할 곳이 많지 않아, 소비자가 선택한다는 장점은 많지 않고, 괜히 이용권 들고 갔다가 무시와 불쾌를 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가보다. 또 경쟁심화로 노인도우미 같이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단다.   

많은 진보단체에서는 바우처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는데, 내 생각엔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바우처라도 하는게 좋을듯도 하고, 어설프게 시행해서 이용하기도 어렵고 개인부담분만 늘어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런데 바우처 관련 자료 정리 때 보니 파워포인트 2007은 사용방법이 너무나 많이 바뀌어 혼란스럽더라. 도대체 예전 기능은 그대로 사용가능하면서 추가를 할일이지, 표편집 방법이나 이런게 마우스 위주로 싹 바뀌어서 1시간 작업할 걸 두시간은 한거같다. 2003 사용자인 나로서는 엑셀은 상위버전 파일이 하위버전에서 아예 열리지도 않는다니 팔아먹으려고 혈안된 걸로 밖에 안보인다 우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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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2-23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띠가 벌써 40인가요???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2-24 08:54   좋아요 0 | URL
아하하 나비님의 이 반응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

2009-02-24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4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25 18:03   좋아요 0 | URL
아치님은 하시 환영하겠습니다 ^^

1515 2015-11-0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실무자로서 말하는데 개인부담이 느는게아니라 부정에 쩌들은 오너로 인한 제공인력의 부족함이 원인이지요 나라에 도둑놈들이 많아요.
 

장에 나가보니 벌써 봄동이랑 냉이가 나왔다. 

냉이를 살짝 데쳐서 
집된장에 양파랑 고추 총총 썰어넣고, 
들기름, 깨, 조청 조금 넣어서
조물조물 무쳐먹어야지. 

남들은 다 쉽다는 겉절이인데,
나만 매번 실패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소금을 잘못 사용한거 같다는데,
배추를 소금물에 담그는게 다인거 같은 절이기도
나같은 멍텅손에 걸리면 영 실패다. 

할수 없이 봄동은 밥에 쇠고기 쌈장 얹어서 먹어야지. 

야, 이만해도 벌써 봄은 왔다. 

그런데 날이 풀려 좋은 마음 한켠에선 올 겨울이 춥지 않아,
올해 농사 작황이 좋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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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2-21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이랑 봄동 올려진 밥상, 너무 좋은데요. 휘모리님의 냉이무침 방법으로 저도 한번 무쳐봐야겠어요. 전 그냥 냉이국 끓여먹었거든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06   좋아요 0 | URL
혼자사니까 뭐 한번 사면 온갖걸 다해먹어야 안버립니다.
독신의 비애랄까요 ^^

hnine 2009-02-21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장보러 나가면 정말 봄동을 쌓아놓고 팔더군요. 해본적이 없는 저는 그냥 구경만 하며 지나고 있지만요.
겉절이는 정말 절이는 단계가 생명일 것 같아요. 어디까지나 '감'에 의존해야하니까 더 어려워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06   좋아요 0 | URL
봄동은 정말 보는 순간 사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여요.
제가 재주가 없어 그렇지 어렵지는 않은가봐요 ^^

후애(厚愛) 2009-02-21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냠냠냠~~~입안에 군침이 마구 도네요.^^ 저도 봄나물 사러 장에 가고 싶어요.~ㅎ 왜 이곳은 봄나물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09   좋아요 0 | URL
그곳 친구들은 우리식 나물이 아니라 샐러드에 들어가는 그런 녀석들을 먹나보지요? 하긴 여기도 하우스를 많이 하니 제철음식이라는 느낌이 많이 사라진듯 합니다.

[해이] 2009-02-2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처음에 시를 쓰신줄 알았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09   좋아요 0 | URL
하하하 다음엔 해이님을 본받아 요리 문학 장르를 한번 개척해 봐야겠네요.

이쁜하루 2009-02-2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봄 내음이 한가득 밀려오네욤 ^^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10   좋아요 0 | URL
이쁜하루님께 봄 내음을 드렸다니 저도 기쁩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Mephistopheles 2009-02-2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송국에서 전화올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요리프로 진행 맡으라고...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10   좋아요 0 | URL
겉절이도 실패하는데요 뭐..
제 요리의 주제는 '최소한의 재료로 인간이 먹을 만한게' 입니다 ㅎㅎㅎ
 

어제 모처럼 북을 두드리며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서편제에서 아버지와 눈먼 딸이 북을 치며 길떠나는 대목에서 부르는 그 아리랑 말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나네
아~리랑 흥흥흥 아라리가 나네~ 
만경창파에 배떠나 가고
어야디어라 어야디어차 노를 저어라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나네
노다가세 노다가세
이네 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가세~~ 

혼자서 참 그년 소리도 잘헌다며 손발짓 해가며 신명이 한참 오르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친구 왈.. 

'야 니가 전라도 민요하면 늘 뭔가 이상했거든.. 오늘 이유 알았다'  

아니 이것이 멀쩡하게 잘만 부르는구만 뭐가 이상하다는 거여!!  

친구의 결정적 한마디

'니 전라도 민요 가락에 경상도 사투리로 불러' 

그렇다 경상도 꼴촌놈인 나는 전라도 민요를 경상도 사투리로 불러 재끼고 있었던거다.. 

사투리는 태에서 부터 타고 나는게 틀림없다. 

오호 나름 완벽한 바이랭규얼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  

역시 신명은 모어로 해야 풀리나보다.  

그러니 절절히 자신의 땅 아일랜드를 사랑하면서도  

지배자의 언어로 시를 써야 했던 예이츠는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서울살이 십년에 이젠 희미해져만 가는 경상도식 은유직유법을 되살리고 싶구나.. 

생각날때 마다 한마디씩 적어둬야겠다.  

======================= 

그러나 시는 상관없는 연애시로 ^^

A deep-sworn vow      

Others because you did not keep
That deep-sworn vow have been friends of mine;
Yet always when I look death in the face,
When I clamber to the heights of sleep,
Or when I grow excited with wine,
Suddenly I meet your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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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2-2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얼마전 너무나 태연하게 서울 어조로 '혹시 가새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당황했다죠. 전 사람들이 왜 못 알아들을까 갸우뚱했다가 제가 가새라고 말했다는 증언에 깜짝 놀랐다는.

무해한모리군 2009-02-20 10:41   좋아요 0 | URL
음허허 가새 ^^;;
사투리도 수집해 놓아야해요.
저희 어머니가 쓰시는 속담이나 욕은 정말 너무 절묘하거든요 ㅎ

후애(厚愛) 2009-02-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인마트에 가면 처음 본 사람들도 서로 인사를 하게 되지요. 한 아줌마와 인사를 하다가 그 아줌마가 고향이 경상도가 아니냐고 물으시기에 저는 놀라서 어떻게 아셨냐고 여쭈어 보니 말 속에 사투리가 조금씩 들어 있어서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투리가 들어갔나봐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0 16:19   좋아요 0 | URL
전 열이면 한 아홉명은 모르는거 같아요.
그런데 경상도 사람들은 알죠. 단어 사용이나 이런걸 보고 ^^

꿈꾸는섬 2009-02-2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라도 민요를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부르는 건 어떤걸까요? ㅎㅎ
전 경기도 사람이라 사투리가 거의 없다 생각했는데 조선인님 같은 경우 저도 있었답니다.
물을 엎는걸 저흰 '물을 깝질렀다'고 하거든요. 제가 그렇게 말했다가 친구들 배꼽잡고 한바탕 웃었다니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11   좋아요 0 | URL
오호 깝질르다.. 어감이 너무 재미있어요.
독창적인데요.. 이것도 등재해 두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전주 대사습 놀이에서 남도 창 부문 우승을 경상도 사람이 차지해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특히 창이나 판소리는 전라도 억양을 해야 어울리는데 경상도 사람이 우승하니 놀랐나봐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12   좋아요 0 | URL
억양은 전라도인데 모음이나 단어 사용할때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정치가 진하게 베어나온다고 할까요 ㅎㅎㅎ
제가 전라도 녀석이랑 오년을 같이 자취해서 한때 고향 전라도냐는 물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근데 소리할때 신이 나니까 저도 모르게 그랬나봐요 ㅎㅎ

Kitty 2009-02-21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ㅎㅎ 저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구별 못하는 유니링구얼입니다 -_-;;;
예전에 대구에서 온 친구가 "언니가 애기를 놓았어" 그러길래
애기를 어디다가 놔? 그랬던 일이 기억나네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13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럼 아를 안놓고 서울에서는 어쩐디야?

노이에자이트 2009-02-23 21:59   좋아요 0 | URL
요즘은 방송을 통해서 낳는다를 놓는다로 하는 발음이 꽤 널리 퍼졌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4 08:56   좋아요 0 | URL
요즘 방송이 무슨 말을 어찌 발음해도 하나도 신기할게 없습니다.
어디서 단체로 혀라도 자르고 나오는지 --;;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어째어째 댓글 달기를 누른다는게 삭제가 ㅠ.ㅠ
용서해주세요~~
다시 달아주세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ㅏ'를 발음하기 쉬운 'ㅗ'나 'ㅡ'로 발음하는 것은 모든 사투리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인듯 합니다. 흑흑

노이에자이트 2009-02-23 22:00   좋아요 0 | URL
엥...이런 일이...여기서는 이럴 때 "워매 어째야쓰까잉..."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24 08:55   좋아요 0 | URL
흑흑 제가 수전증인지..
술 끊어야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2-2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술때문에 수전증까지...농담이죠?

무해한모리군 2009-02-25 08:11   좋아요 0 | URL
그게 음 ^^;;
술을 줄이려고 노력중인건 사실이고, 수전증은 농담이고 그렇습니다 흐흐

부산人 2009-08-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라도에서 특히 전북은 사투리 안써요..그래도 억양을 들어보면 전라도사람인거 알지....

무해한모리군 2009-08-13 10:46   좋아요 0 | URL
글쿤요.. 오호..
왜 제주변 전라도 사람들은 다 사투리를 많이 쓸까..
전남에서들 왔나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