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라도 

나도 한때는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자식이고자 했네.
그렇게 세상에 도움도 주리라 믿었네. 

평생의 끄트머리에 이른 마지막 바람은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되는 것.
나를 무는 모기며 쇠파리 한마리에도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네. 

<녹색평론 106호 中>
=============================== 

녹색평론에 실리는 시들은 참 정겹다.
청년기엔 무언가를 위해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그저 내가 남의 것을 너무 많이 빼앗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만 든다.
이 도시에서 살면서 남에게 '단 하루라도' 누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배병삼 선생 말대로 '나'는 어짜피 남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니, '우리'를 위하는 길, 함께하기의 길에 나도 뭔가 한자락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젊음다운 욕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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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녹색평론 106호 中 민중본위의 통일은 가능한가? - 박노자
    - 함석헌의 통일론으로 비추어 본 통일과정의 현실

 박노자씨는 함석헌의 씨알 사상을 인용해 최근의 관주도의 통일운동방식과 동등한 통일이 아닌 이북을 내부 식민지화 하는 불평등 통일로 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p97
함석헌이 이야기한 양쪽 체제 지양은 결국 현실적인 차원에서 북한주민들과 같은 약자를 포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의 건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회투자형 국가, 복지국가로 개조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독일의 통일을 성공으로 보기어려운 이유들이 많지만, 적어도 통일 이후 구동서독 지역 사이의 불균형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동란이 없었던 근본적 이유는, 아마도 동독지역 주민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돼 그 불만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린 서독의 복지제도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이와 같은 길로 간다는 것은 국가, 사회의 기본적인 형태를 본격적으로 바꾸는 일을 의미할 것이다. 

결국 함석헌이 예언적으로 종교적으로 이야기한 '참된 하나됨의 길'이란 사회과학적인 언어로 풀이하자면 개개인의 경제적 이해 이상의 공동체적 가치와 신뢰의 분위기가 확립된, 과거의 문제점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한 화해를 이룬,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를 '유토피아'라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와 같은 '유토피아'를 지향하려는 노력없이 우리가 결국 '디스토피아'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큰 것이다. 

p102
'사람의 하나됨'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폭력조직인 국가의 '힘키우기'만이 의제화되는 것이다. 이 흐름을 과연 돌이킬 수 있는가? 돌이키기가 매우 힘들더라도 진보를 자칭하는 이들이라도 함석헌이 일찍 이야기해주었던 '회개, 믿음, 양쪽 체제 지양, 유기적 전체'의 이상에 기반한 '씨알의 통일', 북한 민중들의 주체화와 인권보호를 위주로 하는 '사람을 위한 하나됨'에 힘썼으면 좋겠다.

2.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 정수일  

정수일씨의 책을 읽어보면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저자는 역사학자 답게 1천여년의 민족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민족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서 통일을 말한다. 민족배타주의와 우월주의, 허무주의가 아닌, 나라와 겨레라는 실체가 현실에서 존재하는한 민족공동체를 수호 발전시키려는 공동체 지향의식으로서의 '민족'의 유의미함을 강조한다. 

p79~80
주관적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 구성원들이 상호일체감과 연대성을 발휘하여 민족공동체를 수호, 발전시키려는 공동체 지향의식이오. 바꾸어 말하면, 하나로서 함께한다는 마음가짐이오. 민족은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실체요. 민족 사랑이나 민족공동체 지향의식 같은 보편적 가치는 시대가 변해도 달라질 수 없는 것이오. 고리삭아서 버려야 할 것은 이러한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민족배타주의나 우월주의, 허무주의 따위인 것이오. 세상이 제아무리 '초민족' '초국가'를 표방한다고 해도 아직은 한낱 허상이고 가설에 불과하오. 적어도 인류가 차별없이 공존공영하는 이상적인 문명시대를 열 때까지는 나라와 겨레라는 실체가 엄존하고 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요구될 것이오. '민족'하면 무턱대고 진부한 개념으로 치부하는 세태에서 민족의 참된 의미를 한번 짚어보는 것은 대단히 유의미한 일 같소. 

3. 만남 - 김상봉 서경식 대담

 재일조선인으로서 서경식씨는 민족성의 강조가 아닌 제국주의 폭력 이전 상태로의 회복으로 통일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일본사회의 약자로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주의의 효용을 긍정했다. 김상봉씨는 과거 사회로의 복귀나 한쪽 체제로의 일방적인 편입이 아닌, 꼭 한민족 만이 아닌 이땅에 살고 있는 모든 민중과 재외한국인들을 포괄하는 열린 공동체로서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으며, 소외되는 이가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말하고 있다. 

p404
서경식 : 반대로 조선인들의 경우는 항상 국가나 민족을 강조해야 했던 맥락이 있겠지요. 국가가 없고 국민이 아니면 인권이, 존재 자체가 위태롭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안전지대에 몸을 둔 채로 '너희들은 너무 민족주의적이야'라고 비판하는 건 저항해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저항을 해체시키는 폭력이 될 수 있어요. 이건 제가 일본에서 항상 주장하는 겁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민족적 통일성이나 민족의식을 필요로 해온 조선인들이 무엇을 계기로 스스로를 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p407~408
(중략)
김상봉 :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로 되돌아가서 말씀드릴게요. 타자성 속에서의 자기상실이 문제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은 타자가 하나가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타자성 속에서의 자기상실이죠.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분단 상황이라고 저는 해석해왔습니다. 크게 두 개의 세계관 속에서 자기를 상실한 것이고, 그 결과가 정치적 분단으로 나타난 것이니까요.(중략)그것을 극복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것이죠.(중략) 

'하나 된다'는 것이 '복원'이냐 혹은 '획일성'이냐? 둘 다 아닙니다. (중략)복원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어서 시원이 문제가 되고 자기중심적인 것이라면 획일성은 위계적인 것입니다. (중략)어떻게 그것이 국수주의적인 복원도 아니고 전유된 보편성이나 위계제로서의 획일성도 아닐 수 있는가가 문제죠.(중략) 

그래서 지금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사유할 때,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하는데 더불어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주체성을 형성해야 하는데, 그때 척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서경식 : (중략)
정치적으로 볼 때는 분단 상태야말로 부자연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는 데는 저도 무척 공감합니다. 일본에서는 '굳이 통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통일'을 말하면 사람들이, 일본인이든 재일조선인이든, 국수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비판 합니다. 오히려 저는 통일이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과정이고 구체적으로 장벽을 넘어서는 행위라고 항상 주장하지요.

4. 시사인 

★ 시사인의 2008년 9월 52호 - 독일 통일동이는 분단을 잊었다.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81 

통일이 아니라 재통일이라는 인식이 새로웠다. 분단 상황 하의 우리가 가지는 제약들은 분단상황하에서 태어난 나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대륙의 연결되지 않은 섬이 되었고, 국가보안법 색깔론이 선거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정도가 다다. 제국주의적 폭력에 의한 분단을 극복한지 20년이 되는 독일의 사례를 보면서,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분단으로 인한 부자연스러움이 무척 많을 것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 시사인의 2009년 5월 89호 - 북한 문제라는 짐과 진보 정치   

시사인 5월 30일자의 고종석님이 쓴 시사에세이도 시사점이 있다. 최근호라 인터넷에서 전문이 제공되지 않아 내가 간략히 요약해 본다. 

북한이라는 존재가 북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우리 진보진영 내의 해방이후 큰 부담이 되어왔으며, 북한체제로의 통일이 불가능할 것이 거의 자명한 지금에 있어,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남한식의 체제의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봤다. 따라서 현재의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진보진영은 북한 문제로 물어뜯고 싸울 일이 아니라 남한내 진보 이슈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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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내 진보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한 짧막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단락씩 옮겨 보았다. 

자명한 것은 민중에게 남식의 신자본주의 체제도, 북한 체제의 통일도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민중이 두루 살기 편한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노력 속에 통일 지향 만이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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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5-2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만 생각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이상을 꿈꾸지 않아요.

제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우리도 독일처럼 망하면 어떻게 하느냐'
'부자인 큰형님이 가난한 동생을 돌봐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가난한 동생이 돌봐달라고 협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형님이 돌봐주는 은혜를 전혀 모른다'
'북한 사람들 무서워요ㅠㅠ'
이럽니다..

정치인들은 둘째치고서라도 대부분의 대중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게 참 무섭지 않습니까?
당연히 우리체제로 흡수통일을 해야하고(남한이 돈이 더 많으니까), 모두가 통일을 하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것에 세뇌당해있는 것 같아요. (제가 독일은 서독의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해 있어서 동독 사람들에게까지 그 사회보장제도를 다 적용시키다보니 경제가 크게 흔들렸던거라고, 우리나라는 사회보장제도가 허접이라 절대 그런 일 없을것이라 해도 귓등으로도 안듣습니다.)

통일에 대한 인식을 새로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6 10:08   좋아요 0 | URL
세상만사를 돈으로 보는 세상에 사는데, 통일문제인들 사람이 보이겠습니까.

진보진영 역시 서로 다투며 분명한 통일에 대한 상을 제시해 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진보진영 역시 지배층의 관념을 그대로 가지고 와 통일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경제논리니 애국이니 이런 걸 가져와 해보려고 하니 잘 안맞아서 삐그덕 거리고, 공감도 불러일으키기 어렵습니다. 사실 치고받고 싸우는 사람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우리 차이는 수구랑 비교해보면 차이도 아니거든요. 참 그런 생각들을 하면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비로그인 2009-05-26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일비용에 대한 공포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분단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은 생각 안하나봐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7 08:34   좋아요 0 | URL
'지금이대로!!' 너무 만족스러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봐요.. 실상 우리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데 --;;
 
한낮의 달을 쫓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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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리쿠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 작가다.
특히 일상의 풍경 속에서 특이하거나 생경한 풍경들을 뽑아낼 줄 알고,
(달밤의 으스스함과 은밀함 처럼)
가까운 사람 사이의 미묘한 균열이나 감정의 교류를 세밀하게 표현할 줄 안다. 

그런데 이 작가 딱 거기까지다.
그래서 뭐?
아무것도 없다.

내가 읽은 작가의 다섯번째 작품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 이제 그만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너무 익숙해진 작가의 분위기, 끊임없는 자기복제(잘 알다싶이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간략이 소개되었던 주제로 다음 작품을 쓰는 걸 즐긴다.), 허무감이 밀려든다. 

이 책은 온다리쿠가 쓴 나라 지방의 여행 홍보기쯤 된다.
지방의 분위기와 관광지를 온다리쿠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잘 뽑아내었다.
딱 그만큼.
내 느낌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밤의 피크닉이나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미치지 못한다. 

<책 속의 몇 구절>

p16
아마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에게 자유는 꽤 괴롭다. 

p28
차창 밖으로 건물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는 늘 신선한 놀라움을 느낀다. 사실은 자기 쪽이 움직이는데도 세계가 움직이는 듯 보인다는 사실에. 과거에 왜 달님이 늘 내 뒤를 따라오는 걸까, 하고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던 생각이 났다.

지그재그로 잘린 오피스가의 하늘은 포근하게 개어 있었다. 

p47
"분명히 혜어지는 이유를 확인하겠지"
그녀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좋아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헤어지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거든. 아니면 끝낼 수 없잖아."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너무나도 지당한 의견이었다. 

p93
나는 평소에 늘 그런 여자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자신이 여자라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는 여자. 회사 탈의실에서 돌려 보는 통신판매 카달로그에서는 어김없이 세상 대다수 여자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고르고, 레슨 선생님에게 얼마를 드려야 할지 넌지시 의논할 수 있는, 느낌이 좋고 손톱 손질을 잘하는 여자들을.

p159
이렇게 보면 헤어진 그와의 사이에는 드라마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도, 책략을 쓰지도, 수라장을 벌이지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리 드라마를 철저하게 연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에 전혀 맞지 않았다. 자기들 인생에서조차 주역이 되기를 겁냈다. 

p203~204
"와타베 말로는 동화랑 민화는 거의 대부분이 '상실'이 테마래"
(중략)
"백설공주도 그렇지, 빨간 두건도 그렇지, 일단 죽어 목숨을 잃었다가 그 뒤에 재생돼서 부활하잖아. 잃고, 찾아, 되찾는다. 그게 인간이 만드는 이야기의 주된 테마래."
(중략)
"산다는 게 뭔가를 잃는다는 거니까요."
(중략)
"아니, 그보다 현실적으로 잃어버린 걸 조금씩 돈으로 치환시켜 가는 거겠죠. 시력이 감퇴되면 안경을 사고, 체력이 감퇴되면 돈내고 차를 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시간이랑 노력까지 돈으로 사게 되고요. 그런 식으로 잃은 걸 벌충하게 되는 거예요." 

p269
남자의 등을 보는 것은 싫지 않았다. 등을 보면 늘 왜 그런지 아아, 이 사람은 남자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이 실감나곤 했다. 

p338~339
어느 바람이 쌩쌩 불고 추운 날 밤, 절벽 동굴 안에서 한 촛불이 떨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초였습니다. 다른 초들은 벌써 끝까지 다 타버렸거나 바람이 불어들어 꺼졌기 때문에 작은 초는 외톨이였습니다. 여기서 자기가 다 타버렸다가는 사방이 캄캄해지고 추위에 얼어버릴 것입니다. 초는 먼저 꺼져버린 친구를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열심히 어둠속에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몹시 차가운 바람이 불어들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불꽃을 흔들어 바람을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아침 햇살을 보고 바깥 경치를 보고 싶다. 초는 오직 그것만을 바라며 긴긴 밤을 견뎠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이 지나고 마침내 아침이 되었습니다. 동굴 밖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밝은 세계가 있었습니다. 작은 초는 환한 아침 햇살 속에 날아다니는 새와 밝은 색으로 움트는 숲을 보았습니다. 초는 문득 먼저 간 친구들의 촛농이 동궁안에서 썩어버린 짐승의 뼈를 덮어 자기 주위에 작은 벽을 만들어 준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 타버린 그들이 작은 초를 바람으로부터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초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아아'하고 부르짖고는 다 타버렸습니다.
아침의 동굴에 환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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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네코무라 씨 하나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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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린 누구나 네코무라씨를 필요로 한다.
네코무라씨는 집안일의 명수이고,
티브이 프로를 보며 함께 낄낄댈 수 있는 친구이며,
생긴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고양이이다.
최적의 하우스메이트라 할만하다. 

네코무라씨는 부모도 포기한
삐뚤어진 십대를 위해 몇 일씩
정성을 다한 밥상을 준비해
마음을 돌릴 줄 아는
세심한 고양이 이기도 하다. 

마음씨 맵씨 솜씨를 갖춘 고양이 네코무라씨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그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된다. 

올 상반기 내가 만난 최고의 만화다.
거기 외로운 당신에게 특히 강력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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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죽다 Medusa Collection 10
찰리 휴스턴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나의 이상형은 아주 어려서 부터 강동희, 현주엽, 김동주로 이어져 왔다.
이들의 공통점.. 음.. 다소 듬직한 곰돌이과?
어쨌든 이건 다 레이먼드 챈들러 때문이다. 

주정뱅이, 마약쟁이, 깡패, 총칼 어찌보면 죽음 앞에서도 냉소적이기 그지 없는,
그러나 여자와 어린아이들 앞에 부드럽다 못해 쩔쩔매는 필립말로류의 사내 케릭터가
어쩌다 내 마음에 들어와 버렸냐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 일찍 부터 거리로 뛰어나와 거친 삶을 살다,
어쩌다 보니 뱀파이어가 되었는데,
그나마 뱀파이어 조직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이 조직 저조직에서
조금씩 의뢰해 오는 일을 맡는 떠돌이 해결사로 살아가고 있다.
담배와 위스키를 입에 달고 사는 그닥 열심히 사는 것도,
그렇다고 목숨을 끊을 열정도 없는 냉소적인 190에 90킬로쯤 되는 사내. 

이 책의 매력은 뱀파이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뱀파이어를 에이즈처럼 하나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본다.
강자이기 보다는 하나의 핸디캡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뭐 원해서 뱀파이어가 된 건 아니지만,
원해서 지금의 나가 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지금의 나와 함께 남은 인생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이 책은 총 5부작이고, 현재 미국판은 4부작까지 나왔고,
우리나라엔 시리즈의 처음인 이 책이 이제야 번역되어 나왔다. 

시리즈의 시작인 만큼 앞으로 여러 사건의 배경이 될
뱀파이어 사회와 여러 주요 케릭터들도 세밀하게 묘사된다. 

뱀파이어 바이러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 조직간에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조직은 '뱀파이어 바이러스 피해자'인 자신들이 일반인과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혁명을 꿈꾸기도 하고, 또 어떤 조직은 적극적이지만 비밀리에 일반인들의 이권사업에 개입하면서 조직원들의 피를 공급받고, 세력을 키우는데 골몰한다. 또 어떤 조직은 뱀파이어 바이러스를 자기 각성(한계를 뛰어넘는 것)의 매개로 보고 수양을 하기도 한다. 

다른 한쪽 배경인 미국의 맨허튼의 노숙자, 마약쟁이, 창녀들의 바닥사회와
여피, 부자, 권력자들의 업타운도 묘사해 나간다. 

이 책은 말그대로 하드보일드 하다.
첫 열장부터 남의 머리를 깨고 뇌를 파먹는 장면이 나오고,
온갖 살육이 난무한다. 

그러나
좀비보균자와 집나간 부잣집 아가씨를 추적하는 과정의 스토리의 탄탄함과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매력만으로도 꽤나 멋진 소설이다. 

작가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의식하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런 만큼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애호가들에게 강추하고 싶다. 

다음편이 어서 번역되어 나오기를, 그리고 시리즈가 중단없이 출간되기를 바란다.
시리즈의 닻이 올랐다. 어서 올라타시라. 

<책 속의 몇 구절>

p339~340
내 삶을 들여다본다. 부족한 것이 많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이다. 매일 조금씩 벼랑 끝으로 다가가는 느낌이다. 언젠가는 발밑의 땅이 꺼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상관없다.
내 인생이라고 남들과 달라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필립 말로. 저자가 집필시에 염두에 두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간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알콜중독 탐정 필립말로의 사건해결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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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5-2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말로'라는 이름 때문에 왠지 웃음이 나와서 말입니다.^^
제가 새벽에 쓴 리뷰, 책 속의 주인공도 필립 말로의 골수팬이거든요.(웃음)
우연치고는 '하드보일드'라는 단어가 공통되는 것도 재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