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대학 동아리 친구들을 모처럼 만났습니다.
대학시절 원수처럼 지냈지만, 지금은 그저 둘 밖에 없는 동기가 되었지요.
(유학가고 결혼하고 해서 나머지 녀석들과는 간혹 전화통화나 하는 수준이니까요.)
술처먹고 새우깡을 면전에 던지며 싸우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그녀석도 결혼을 한다하니 마음이 이상합니다.
그녀석의 '내가 너무 어려서 미안했다'는 말..
나의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완고했다'는 말..
그렇게 우리의 스물은 안주거리가 됩니다..
내가 불러서 끌려나온 고시공부 중인 꽃미남 후배녀석은 스무일곱해 만에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을 한다하여 나를 놀래키고, (영원히 그 녀석은 마음이 여려서 그런거 못할듯 했는데.. 어른이 되다니 ㅎㅎ) 나의 동기녀석은 후배놈과 내가 커플 커밍아웃 하는 줄 알고 '어떠한 역겨운 꼴을 보더라도 싸우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고 나왔다 하여 나를 웃겼습니다 ㅎㅎㅎ 더 자주 보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토요일
처음으로 영어 학원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거의 5년만인데 선생님께 오랜만에 하는 것치고는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뿌듯 ㅎㅎ
알라디너 영화모임에 나가서 평소 공포영화는 무서워라 하는데, 더럽고 웃기기도 한 엽기 공포영화를 한편 보았습니다. 보고나니 마음 한켠이 꽤나 찝찝한것이 괜찮은 영화인듯 싶습니다.
몇 분 뵙지 않았지만 알라디너들의 미모는 정말 놀랍습니다. (심지어 순오기님의 저 나이를 잊으신듯한 사진하며~~) 어리고 예쁜 알라디너들에게 기죽어서 다정한 유부남 승주나무님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승주나무님의 자기일에 대한 열정이 참 보기 좋았고, 곧 개봉될 2세 사진도 기대해 봅니다 ^^
일요일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반대' 플랑을 등뒤에 달고 새벽 4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지리산을 등반했습니다. 전에는 크게 힘들다는 생각없이 다녔던 곳인데 하산길 1.8킬로를 남겨놓고 어찌나 힘들던지 이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체력이 전만 못하네요.
정부는 '장애인과 노인분들이 산을 쉽게 즐기시라'고 케이블카 설치한다 하는데, 장애인과 노인분들이 도시에서 일상생활을 무리없이 하는 일에나 더 신경 썼으면 합니다.
산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산은 그곳에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의 것입니다. 주인이 살기 좋아야지 어쩌다 한번 다녀가는 객들 좋자고, 주인들 목숨을 위협하는 짓을 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강산을 파헤쳐야 이놈으 정부는 속이 시원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지리산에서 이게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제 마음은 정반대로 더욱 어두워 집니다. 많은 분들께서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월요일
지리산 산행의 무리로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돌쟁이 아가와 놀고 있을 선배네 집에 모처럼 방문 합니다.
감자조림, 오이무침, 멸치견과볶음을 조금씩 해서 선물로 가져갑니다. 특별한게 없는 반찬이라 손이 부끄러워 아이 인형이라도 사갈려고 했더니, 월요일 백화점이 문을 닫아서 그냥 갑니다.
선배네 귀여운 연수는 감기투병중. 저의 등장에 시큰둥합니다. 어느새 어엿한 주부티가 나는 선배가 제눈에는 마냥 아직도 신기해 보이기만 합니다. 당찬 선배가 당찬 주부가 된것이 나도 덩달아 자랑스럽지 뭡니까.
수박에다 키위, 비빔국수를 잔뜩 얻어먹고 한숨 자고 다섯시경에 일어나 나옵니다.
그리곤 최근에 결혼 7년만에 임신 소식에 잔뜩 들뜬 선배 오빠와 맥주 한잔을 합니다. 근 일년반만에 서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가 싫다더니 '솔직히 너무 신기하고 기쁘다'는 들뜬 표정을 보니 제가 다 행복해 집니다. 내년 일월이면 이 고모를 보러 세상에 나올 이녀석도 기대해 봅니다. 엄마 닮아서 머리가 작아야 할텐데..
선배오빠는 "임마, 평범하게 살고, 조직안에 있어라. 넌 너무 자유로와서 테두리가 필요해'합니다. 저도 그러려고 늘 노력하는데 세상살이가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원래 그런 것이겠지요?
집에 와 누우니 천둥벌거숭이 같은 선후배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가지는 것이 참 신기하고 존경스럽고, 나만 너무 밍숭하게 세상을 사는듯해 서글픈 마음도 살짝 듭니다. 그래도 여기 내가 선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 좀 다르지만 틀린 답은 아닌 나의 삶도 나타나겠지요?
4일간의 주말일기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