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달째 글이 잘 읽히지 않는다. 
한 열권쯤 되는 책들을 찔끔찔끔 읽어가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아쉬운 건 아무래도 새사람을 만날 기회가 드문 것이라 하겠다.  
왠지 새로운 일을 벌리기에도 시간은 빠듯하고 그남아 남아있던 관계도 앙상해져 간다. 

금요일엔 정말 모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새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음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내얘기는 적당히 해야지 
하지만 또 만나보면 반갑고 즐거워서 너스레를 떨게 된다. 
수다쟁이~~ 역시 천성은 변하지를 않은지.. 
모처럼 꽤나 즐거운 술자리였다. 

토요일엔 최규석 작가 싸인회를 다녀왔다. 

그 복잡한 코엑스 복도에 차려진 싸인회 장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두고 오기가 마음이 아프더라. 도대체 왜 그런 곳에 싸인회장을 만드는가. 혹여 사람이 적기라도 하면 작가는 동물원에 원숭이처럼 멀뚱멀뚱 황당할 것이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메탈을 들으며 싸인을 해야하느냐 말이다.  

어쨌거나 사람많고 시끄러운 걸 잘 못버티는지라 좋아하는 작가를 등뒤에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참 최작가는 실물로 보니 더욱 꽃미남이긴 한데.. 마침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최작가의 분신인 케릭터와 너무 닮아서 웃음이 나오더라. 어쩜 옷차림새까지 똑같은지.. 거기다 새련된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스런 다정함까지 ㅎㅎ 최작가가 더 좋아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가끔 알라딘에 들어오시는지 '아 fta반대휘모리님이시죠~' 라고 아는체를 해주셨다 ㅠ.ㅠ 알라딘을 사용한 것이 어찌나 뿌듯하던지~~ 감동 감격

그리고 오늘은 별일 없는 하루~  

 오늘 읽은 책 속의 한구절 (p156~157쪽) 

 "습관이 결국은 모든 걸 망쳐놓지. 그렇지? 어쩌면 우리가 찾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인지 모르지 - 습관에 의해 희석되지 않은 욕망 말이세."

(중략) 

"'낯설게 하기'일세. 이것이 문학의 취지라고 그들은 생각했네. '사물, 옷, 가구, 아내, 전쟁에 대한 공포... 이 모든 것을 습관이 집어삼킨다. 예술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말했지." 

"책이 나에게 만족을 주었던 때가 있었네만 나이를 먹어가며 그것으론 충분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네"

서른하나에 권태라니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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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6-2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아무래도 힘들어지죠. 만나는 사람이야 많지만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거나 이런 생각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늙어가는거같아요. 그래도 아직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설레임을 간직한 휘모리님은 아직 권태 아닌것 같은데요. ^^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4   좋아요 0 | URL
일전에는 마음에 드는 앤없는 36살 먹은 총각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든 첫생각이.. '왜 아직 혼자지.. 뭔가 문제가 있나?' 였답니다~~
아 슬퍼요 ㅠ.ㅠ

머큐리 2009-06-21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말은 인용인가요..독백인가요.. 서른 하나에 권태라니...정말 제길..인데..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5   좋아요 0 | URL
요즘 좀 울적하고, 매사 열의가 없고 그러네요 아~~ 심심해~~

마늘빵 2009-06-2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하나에 권태라니 제길 2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6   좋아요 0 | URL
혹시 당신도?

[해이] 2009-06-2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하나에 권태라니 제길 3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7   좋아요 0 | URL
오 해이님의 서른 하나는 나와 다를 것이야~~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난 원체 인간이 설렁설렁 살아왔더니 그런지..
이제 그만 놀까봐요 ^^

무스탕 2009-06-2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하나..
좋을때다~~ ( ")

무해한모리군 2009-06-22 11:45   좋아요 0 | URL
저도 좋은 나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저의 현실이 ㅎㅎㅎ

다락방 2009-06-2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최규석 작가를 만났다니, 게다가 휘모리님을 알아봐주기까지 하셨다니!
부러워요 부러워요 완전 부러워요.
저 요즘 외로워서 그런지...완전 미친듯이 부러워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6-22 14:2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 요즘 완전 외롭습니다 --;;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다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 입이 근질근질 해졌다. 사실 가난한 음주기와 가난한 여행기야 말로 나의 이십대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개의 기둥인데, 이런 얘기를 쓰면 '저녀석 저러니까 아직 애인도 없이 혼자지'라는 얘기를 들을 게 뻔해서 안해왔는데, 이 책의 저자의 솔직함에 고무되어 나도 몇 자 끄적거려 본다.

★ 관공서야 말로 삥뜯기 가장 좋은 장소다.

주변에서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기를 올리라고 하지만 왠지 국내에서의 궁상기를 해외로 퍼트리는듯해서 말하기 찜찜하지만 몇 가지만 나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나는 쫌 산다하는 나라에 가면 무조건 그 나라 구청이나 시청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잘곳이 없다'라고 말하면 보통 쬐끄만 동양여자애가 길에 다니다 칼맞은 시체를 치우기 싫어서인지 적당한 숙소를 소개해 준다. 공짜거나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 곳도 있는데 YWCA숙소 같은 곳은 거의 1/5 가격 정도면 머물 수 있다. (심지어 이동비까지 대주는 곳도 많다!!)  

이건 국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데, 급히 차비가 떨어졌다거나 할 때 동사무소나 구청을 방문하면 예비비로 교통비를 지급해준다. 어짜피 연말까지 남겨봐야 구청장 가구 바꾸는데나 쓸 돈 급할 때 종종 이용해 주자. 

★ 공짜 공간은 도처에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가지 노숙의 기술을 이야기 하지만 여성에게 노숙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하다. 그러나 때로는 늦은 밤 차가 끊기기도 하고, 도리 없이 떠맡은 주정뱅이를 처리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이렇다. 

3~4시간 정도 시간을 때울 량이면 동네마다 있는 파출소가 아주 유용하다. 전경 총각이 타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시민 편의를 위해 설치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뭐 시설이 열악하거나 주정뱅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안전하고 공짜고, 다리펴고 누울 수 있는 긴 의자도 있으니 아주 훌륭한 공간이다. 

다음으로는 의식이 없는 주정뱅이 친구가 있을 땐 응급실이다. 당연히 정식 수속을 밟는 건 안되지만, (정식 수속을 밟고 들어가서 슬쩍 도망나와도 된다.) 일단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 언니를 불러 굴러떨어지지 않게 안전하게 침대에 묶어주는 안전장치도 해준다. 그리고 아침에 자연스럽게 나와버리면 된다 ^^ (수차례 해봤지만 의외로 한번도 걸리지 않았다) 

또 대낮에 특별히 갈 곳이 없다면 실업센터야 말로 천국이다. 편안하게 앉을 자리와 음료와 인터넷도 공짜다. 가장 좋은 곳은 종로에 있는 곳인데, 종로에서 명동으로 걸어가다 힘이 들때면 자주 이용하곤한다. 동네의 무슨무슨 센터들도 복사나 인터넷을 이용하기 좋지만 주말에 일찍 닫는 통에 별로 이용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인사동과 삼청동 일대에 흝어져 있는 조그마한 전시공간들을 누비는 것도 큰 기쁨이다. 공짜고 분위기도 좋고 감성도 자극해주고 말이다.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대학 역시 노숙과 노식이 가능한 최상의 공간이다. 나는 충청도 모 대학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다정히 라면을 끓여 먹은 적도 있고, 나의 모교만 해도 5~6군데 편안하게 밤을 보낼 장소들이 있다. (여학생 휴게실, 동아리방, 학과 사무실, 생활과학 도서관 등) 최근 올레길로 유명해진 천주교 피정의 집처럼 종교기관에서 제공하는 숙소나 방학중 학교소유 기숙사나 콘도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물론 나는 주로 친구들 집에서 많이 자는 편이고, 밥 먹으러 갔다 공짜로 잠 잘 곳을 얻는 등 온정에 호소하는 편이다)

★ 우리 편이 하는 곳에 많이 많이 가주자. 

이 책의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없이 사는 사람일수록 단골은 중요하다. 돈을 좀 벌기 시작하면서 촌놈의 본능대로 단골을 만드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동네 떡뽁이 아줌마, 세탁소 아저씨는 물론이고 걸어서 삼십분 정도 거리 안이라면 '우리편'이 하는 가게를 가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편이란 큰 자본 없이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들의 가게다. 우연히 다니게 된 가게 주인 분들 중엔 여성운동 하셨던 분도 있고, 70년대 데모하시다 신학교를 그만두신 분도 있고 재미있는 얘기가 끝도 없다.  

★ 나의 꿈  

나는 동네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공방을 하나 만들면 참 좋겠다 싶다. 돈이 많이 드는 재봉틀이라든가 이런저런 공구들을 동네사람들과 공동으로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이드님 같은 분이 뜨게질도 가르쳐주고, 휘모리도 인형 만드는 법 같은 것도 알려드리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한텐 점찍어 놓은 공간도 있다. 각 동네마다 있는 해병대 전우회 콘테이너다. 그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간단한 도서관 공간으로 꾸며도 좋고 저런 공방을 만들어도 얼마나 좋겠는가. 필요도 없는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나실 게 아니라 아이들하고 놀아주셔도 좋고 말이다.   

이대통령께서는 일찍이 서울 시장때 시청 1층이 칙칙하다며 커피숍을 유치하셨다고 하는데 이런식으로 공공공간이 자꾸만 상업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걸 우리 가난뱅이들이 눈 똑바로 뜨고 지켜야 하는 법니다.

아~~ 오늘은 개인편이라 이쯤 해두고 2탄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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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난뱅이의 역습
    from 으악! 2009-09-13 22:52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직접 해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했던 작전들을 소개해준다. 책에 나와있는 오프라인 작전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 작전들은 평화적이면서 재미도 있어보이고 사람들 사이의 정도 느껴지는 것 같아서 따라해보고 싶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이거다. (p.201)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만 하는 것이..
 
 
Mephistopheles 2009-06-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이...혼자인 이유....감 잡았다는...

무해한모리군 2009-06-20 23:49   좋아요 0 | URL
이런 반응 나올 줄 알았다는 --;;
1/5만 말했는데~~ 어떻게 공짜술을 만드나 이런 얘기는 시작도 안했다구요 ㅋㄷ

Mephistopheles 2009-06-21 00:37   좋아요 0 | URL
그 이유가..혼자서도 너무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아서...인데유??

무해한모리군 2009-06-21 00:56   좋아요 0 | URL
혼자서도 이 정돈데 옆에 누가 있어보십시요~~
매일 저렴한 이벤트를 퍼레이드 처럼 펼쳐줄텐데요~~
이 재능을 썩히는게 너무 애석합니다 ㅎㅎㅎ

카스피 2009-06-2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휘모리님 대단한 기술이시네요^^ 근데 해외여행 많이 다니셨나봐요.넘 부럽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21 00:31   좋아요 0 | URL
그냥 기술이 아니라 얼굴이 두꺼운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09-06-21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는 제가 정말 가난뱅이라서 돈없이도 잘 개긴다고 생각했는데 휘모리님한테는 명함도 못내밀겠슴다....^^;;
2탄 기대하고 있어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21 21:04   좋아요 0 | URL
가난뱅이의 역습의 핵심은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난다는데 있는거겠죠 ^^
2탄은 개인적인거 말고 떼로 하는 걸로 해보겠습니다 ^^

머큐리 2009-06-21 0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렇게 하고 다니고 계심을 뵙고나서 더욱 더 신실하게 믿사오며...비오는 어제는 고생 안하셨는지...ㅎㅎ 그나저나 제발볼땐 휘모리님이야 말로 제대로된(?)가난뱅이 남자들의 이상형인데 말입니다...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21 21: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생활력있지 집안 유복하지 걸리는게 하나도 없는데~ 왜 유부님들은 이렇게 지지를 해주는데 좋다는 총각은 없을까요 ㅎㅎㅎ 좀 더 여성스럽게 해다녀볼까요?

비로그인 2009-06-2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쾌한 글이네요.
골목골목 까지 장악한/장악하려드는 프랜차이즈나 체인점 이용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겠죠.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2   좋아요 0 | URL
무엇보다 마트가 가장 큰 문제인듯 합니다.
마트하나면 온갖 가게들이 박살나는데다, 아휴 그 지독한 교통체증까지~~

바라 2009-06-22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2탄도 기대되요. 공감되는 것도 있고 별찜하고갑니다 ㅋ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3   좋아요 0 | URL
어머 바라님이 놀러오셨네요~~ 반갑습니다 ㅎㅎ

별족 2009-06-2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운대 호텔들 앞에 벤치가 흉물스럽게 변해있어서 그제야-아, 저기 노숙하기 정말 좋았겠군- 생각했답니다. 나무 벤치 중간에 금속 막대기를 구부려 세워놓았더라구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2 11:39   좋아요 0 | URL
아 악랄한데요~
좀 자면 어떻다고 가운데 금속 막대기를 박아두다니..

깜소 2009-06-24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아 달수가 없군요....저도 노숙의 생활화..ㅋㅋㅋ 요즘은 촛불 드느라 좋아하는 산행/도보 가본게 언젠지~~ 가물거리지만 말입니다..저 같은경운 남자다보니 그냥 노숙을 주로하구요..ㅋㅋㅋ 돈 떨어지면 아니 있어도 파출소는 종종 가줍니다..ㅎㅎ 차 잡아달라고 그러고 냉수도 받으러가공..겨울철엔 각지역 마을회관이나 노인정..학교숙직실등..아~~ 다시 길을 나서고 싶어지네요^^ 반갑습니다~~~ㅎ

무해한모리군 2009-06-24 08:04   좋아요 0 | URL
오 깜소님~~ ^^*
전 주로 집에서 생활하고 가끔만 길에서 생활합니다.
본격적인 노하우를 공개해주세욧!!

다이조부 2009-09-1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공서야 말로 삥뜯기 좋다?

와 정말 이런 실용정보는 처음이네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15 08: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매버릭꾸랑님 믿으십시요~

다이조부 2009-09-1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례지만 주인장님 혹시 창영동 사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9-15 18:45   좋아요 0 | URL
아니요 ^^
관악구 삽니다만~
 

 

김종철 : 제가 예전에 읽었던 <뉴스위크> 기사가 생각나네요. 일본이 한창 장기 불황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을 때 였던 것 같아요. 그 무렵 <뉴스위크> 동경 특파원이 쓴 기사를 봤어요. 불황 가운데서 일본의 샐러리맨들의 뜻밖에도 그동안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풍요로운 인생을 누리고 있다고요. (중략) 우리가 뭣 때문에 회사에 죽도록 충성을 바치고, 돈벌이에 매달려서 온 인생을 탕진하느냐. 사실 그렇게 살다보니까 죽을 때는 참 억울하죠. 안 죽으려고 난리들이죠. 죽음을 인정을 못하죠. 그래서 인공적인 생명연장장치에 매달려 발버둥치다 죽어가요. 한번도 관조의 삶을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죽는 방법도 몰라요. 우리들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요. 그런데 이제 이런 식으로 정신없이 질주하던 인생이 정지됐으니까 춤을 춰야지요. (중략) 

(외할머니의 가난함 속에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것을 이야기 하고) 

이게 무슨 힘인가. 이 강인한 정신과 에너지, 이게 어디서 나온 걸까요. 사람 간의 관계에서 나온 힘이에요. 그때는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해도 아직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살아있었고, 그 공동체의 상호부조적인 관계망 덕문에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지금 경제상황이 어려워진다고 하니까 다들 왜 당황하고 죽는 소리를 내느냐 하면 공동체가 없어서예요. 

공동체란 토대가 없으면 아무리 물자가 풍부하고 높은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항상 불한해요. 그러니까 결국 좋은 삶이란 뭔가? 관계예요. 인생은 관계입니다. 에콜로지라는 것도 근본적으론 관계잖아요.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공생해야 한다,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중략) 

이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살다가 죽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자본과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내 이웃들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돌보면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살 수 있는 협동과 연대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런 관계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그러죠. 금융자본, 부동산 자본, 현금자본, 이런 게 아니고, 인간관계라는 사회적 자본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제일 중요한 자본입니다. 이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면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중략) 

인생이란 게 기본적으로 이야기거든요.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예요. 좋은 인생을 사느냐 못 사느냐는 내가 얼마나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만들거나 기억하느냐에 달렸어요. 문학적 감수성이라는 것도 그렇게 해서 함양이돼요. 책을 보는 거, 그건 이차적인 거예요. (중략)

(관계망이 협소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삶은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책으로 밖에 들을 수 없는 젊은 세대의 불행을 이야기 한다.) 

가난이란 게 절대로 배척해야 할 악이 아니란 말이예요. 받아들여야 해요. 사람에게 제일 소중한 재산은 타인이에요. 나는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내 인생이 풍부하다는 것은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가 윤택하다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그래서 풍성한 이야기도 만들어지는거죠. 그렇잖아요? 진리중에 진리입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너희 가운데에 있다. 개인 하나하나의 마음속이 아니라, 이웃들 사이의 관계 속에 있다는 얘기예요.(중략) 

(서울 서대문 농협박물관 앞 비석에 윤봉길 의사가 쓴 농민독본 인용을 얘기하며) 

일제시대에 윤봉길 의사는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하면서 자신도 농사를 지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농민들을 위해서 책을 만들었어요. 근데 그 1930년대에 쓴 <농민독본>이 거의 유실되고 그 내용의 극히 일부가 남아있는데, 그중 한구절이 거기 씌어있죠. 우리나라가 아무리 공업국가가 되더라도 그래 설사 나중에 세계시장에서 쌀을 사먹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의 어디엔가는 반드시 농민이 있어야 된다, 농민은 인류의 생명창고를 쥐고 있다 그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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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1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 진보신당 대변인 김종철 씨 인가요?
저희구에 출마했을 때 우연히 마주쳐 악수 한 번 해봤네요.

나무처럼 2009-06-18 00:31   좋아요 0 | URL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진보신당 김종철이나 한겨레신문 김종철보다 훨씬 유명한 분인데^^ 물론 제 주변에서는 말이죠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18 08:0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오해하실 수 있군요..
나무처럼님께서 말씀을 잘해주셨습니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시고 요즘엔 시사인에도 객원으로 종종 글을 쓰신답니다.

머큐리 2009-06-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가난이 악이 아니고 받아들여야 할 것' 이란 말에 얼마나 사람들이 공감할까요? 이미 화폐로 인간관계가 짜여져 있는 지금에 말입니다...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6-18 13:43   좋아요 0 | URL
이렇게 계속 소비하면서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니까.. 우리가 불행한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계속 말해야겠지요.. 사람들이 많이 받아들인다고 적들의 언어로 말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건 '재개발' 논쟁에서 진보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선거에서 보임으로서 명분도 실리도 모두 놓친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드래그 미 투 헬 - Drag Me to He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솔직히 나는 공포영화를 잘 못본다.
유혈낭자하고 잔인한 걸 두눈 뜨고 못보는고로, 전쟁 영화도 별로다.
나와 유사한 분들은 이 영화를 안심하고 보셔도 좋다.
좀 더러워서 그렇지 전혀 끔찍하지는 않다. 

이 영화의 공포씬이래봐야 스카프 한장이 날라다니다 주인공의 얼굴을 가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주인공을 패대기치고,
귀신들린 사람의 눈알이 튀어나올듯 하다 마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래봐야 불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통에 다시 웃기고 말지만 ^^) 

나머지 장면들은 무섭기 보단 더럽고 황당하다.
코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승진줄을 쥐고 있는 상사에게 튄다거나,
똥파리가 주인공의 코나 입으로 들락 거린다거나,
구더기가 주인공의 입으로 쏟아지기도 하고,
틀니가 빠지기도 하고,
여하간 더럽고 황당한 장면들이 퍼레이드 처럼 이어진다. 

그래서 이영화가 나빴냐고?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나름 깜짝깜짝 놀래기도 했으며,
이 예쁘장한 주인공의 삼일간의 발버둥이 귀엽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거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인 마음이 찜찜하지 뭔가. 

겨우, 승진하려고 소득 없는 할머니 대출연장 신청 거절 한번 했다가
영혼이 지옥불에 지글지글 끓어야 한다면,
단언컨데 내 영혼은 이미 구제할 길이 없다.
인간이란 그렇고 그런 존재가 아닌가..
안당해 본 일에 대한 이해력이란 형편 없다.

그래도 또한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자기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도
다른 인간에게 선뜻 그 형벌을 넘겨주지 못하는 그런 마음도 함께 있기 때문이리라.. 

여하튼 나는 이 황당한 B급 영화가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이런 감독이 좋다.
아직 안본 이들에게 추천은 못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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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6-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화가 스파이더맨을 만든 샘 레아미 작품인가요?
전혀 무섭지 않다니 샘 레아미 같지 안네요.그의 초기 작인 이블 데드 1,2는 굉장히 하드 코어였던걸로 기억하는데(이블 데드3는 코메디로 빠졌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06-18 08:02   좋아요 0 | URL
그 냥반이 맞는 듯 합니다.
평소 이쪽 장르가 제 취향이 아니라서 소견이 없는지라 딱 대답을 드릴수가 없네요. 일단 제겐 무섭지 않았습니다 ^^

Forgettable. 2009-06-1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2탄이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ㅋㅋ

코피가 입에 들어갔냐고 묻던; 상사의 말이 무지 황당했어요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6-18 08:03   좋아요 0 | URL
그 장면이 가장 웃긴 장면중에 하난듯. 다락방님도 그 장면을 말씀하시더군요 ㅎㅎㅎ

비로그인 2009-06-1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래닛테러도 재밌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6-18 08:03   좋아요 0 | URL
이 감독 영화를 많이 만들었군요!!

다락방 2009-06-1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악령이 춤출때 완전 자지러지게 웃었어요. 그런데 저는 휘모리님과는 다르게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다지 생각이 나질 않더라구요. 대출승인 거절로 인해 3일동안 저주를 받았다는 소재 자체는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데 오히려 극장을 나올때는 그다지 영화에 대한 말을 하게 되질 않더라구요. 전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달까요.

눈알이 튀어나와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건, 이블데드에서도 본 기억이 있어요. 하하하하

무해한모리군 2009-06-18 09:17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저 포스터도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ㅎㅎㅎ

머큐리 2009-06-1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면 볼 뻔한 영화였는데...못보고 말았지만 못봐서 아쉽지 않은 영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18 13:43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사실은 영화가 마음에 안드셔서 안나오신것 ㅋㅎㅎ

머큐리 2009-06-18 13:58   좋아요 0 | URL
천만에요...무슨 영화 볼지도 몰랐는걸요...이 영화 봤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ㅋㅋㅋ

Alicia 2009-06-2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방 저에요. 아, 찜찜한 영화가 좋다니.
휘모리님- 그래서 저는 휘모리님이 좋아요. :D

무해한모리군 2009-06-20 23:23   좋아요 0 | URL
하하 허접한 후기에 추천을 해주시다니 알리샤님은 천사라니까 ^^

Alicia 2009-06-21 22:11   좋아요 0 | URL

엄훠감사!^^ 알리샤더러 천사라고 해준분은 태어나서 휘모리님이 첨이에요
최근에 성질머리가 장난이 아니라는 둥 절에가서 혼자살라는둥 말은 들어봤어동ㅎㅎ

마음이 묻어나는 글이 잘쓴글이죠..
글의 얼굴빛 꾸미지 않고, 아는것이상으로 아는체하지않고.
이 글엔 휘모리님 마음이 찐하게 묻어나 있어요^^
저는 글을 잘써야 한다는 부담보다도 밝게, 유쾌하게 써야한다는 부담이 커요 이곳에서는.

무해한모리군 2009-06-22 11:47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은 글을 잘쓰니까 그렇죠!!
전 어짜피 뭐~~ 십년전에 읽은 정치경제학 상식을 하도 우려내 먹어서 이제 맑은 물만 나오는데다가, 잡다하게 읽은 글들 이어붙이기를 하는데 그것도 누구말인지도 헷갈리는 지경이예요 --;;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사랑스러워~~
내가 만나본 여성알라디너 다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
 

 녹색연합 웹사이트는 여기

 http://www.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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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6-1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와대에서 4대강 사업은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하던데요.

무해한모리군 2009-06-18 09:35   좋아요 0 | URL
어제 건설하는 친구가 이건 미친짓이라고 울부짖더군요..
남의 말좀 들었으면..
조그마한 건물 하나 올리는데 환경검사도 6개월은 걸리는데 도대체 무신 짓인지.. 할 수 있는데까지 물고늘어져 봐야겠죠.. 흠..

그러나 땅값이라면 그저 무조건 입을 다무니.. 얼마전엔 바퀴벌레가 들끓는데도 집값 떨어질까봐 쉬쉬한다는 글을 작은책에서 읽기도 했는데요.. 휴.. 저도 회의적이긴 합니다.

머큐리 2009-06-18 16:18   좋아요 0 | URL
흔들림없이 추진하는게 이 정부의 좌우명 아닌가 합니다...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