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일을 쉬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한달에 한번 강제로 연차를  쉬게 하거든요. 

아 입을 크게 벌리고 한시간 치과 치료를 받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피해 잠깐 찻집에 들립니다. 

젖은 양말은 가방 위에 널어두고  

라주미힌님이 '어서 읽어보시라'며 강추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뽑아 듭니다. 

어떻냐구요? 

치과까지 가는 전철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내릴 역을 지나치고 말았답니다. 

한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책과 나만 남아 있는 시간..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과 함께 있는 시간 같지요? 

첫번째 단편은 '바빌론의 탑'입니다. 

바빌론 탑이 완공되는 순간,  

하늘의 천장을 뚫는 광부의 이야기 입니다. 

대체 역사라고 하던가요? 

무척 흥미로우니 여러분도 읽어 보세요.   

제 마음에 남았던 한구절을 옮기면서  

저는 다시 하루의 휴식을 즐기러 갑니다. 

비와 커피, 멋진 책 좋은 하루입니다.

개개인은 모두 비극적인 꼭두각시 인형처럼 보인다. 개별적으로는 살아서 움직이지만 보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그물에 결박되어 있다. 원한다면 저항할 수도 있지만 그러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p90, 이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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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7-14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 양말~!... ㅋ.ㅋ 오렌지향이 날 것만 같은.. (무슨 헨타이 버전같넹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7-14 23:16   좋아요 0 | URL
생일날 한컬레 보내드릴까요 ㅎㅎㅎ

뷰리풀말미잘 2009-07-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동하면서 읽는 중. 좀 더 빨리 알았으면 뭔 일 있어도 저자 강연회에 가는건데 그랬어요. ^^

무해한모리군 2009-07-14 23:16   좋아요 0 | URL
5천원 내면 들어갈 수 있는거 같던데요?
뷰리풀한 말미잘님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머큐리 2009-07-1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갑자기 라주미힌님이 부러워지는군...읽게 만드는 글인데...이러다 읽고 싶은 책만 쌓아놓는 것 같아 영~~ 그나저나 헨타이 버전...ㅋㅋㅋ 짱입니다...댓글 추천...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7-14 23:16   좋아요 0 | URL
행복하게 책읽는 건 전데 왜 라주미힌님이 부러우세요~~

헨타이는 또 뭡니까?
(현대?)

라주미힌 2009-07-1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알고 있기가 아까운 책이 있고, 혼자만 알고 싶은 책도 있고..
근데 저건 많이 유명해져서 뭐.. 이젠 ㅋㅋㅋ
이거 한권 더 주문했잖아용... 토욜에 사인 받아서 나중에 귀한 사람에게 선물이나 해야겠음당

무해한모리군 2009-07-14 23:18   좋아요 0 | URL
귀/한/사/람..
기회를 노려서 라주미힌님 책과 슬쩍 바꿔치기 할 방법을 노려야 겠군요..
근데
이번엔 한권만 받으시는거 맞습니까..
혹시 저번처럼 가방 한가득 아니시고?

Arch 2009-07-15 15:48   좋아요 0 | URL
슬쩍하면




되는겁니다. 부추겨야지^^

무해한모리군 2009-07-15 18:14   좋아요 0 | URL
두개 슬쩍 하도록 노력해볼게요 아치님 ^^;;

머큐리 2009-07-16 08:07   좋아요 0 | URL
소중한 사람이 아니고 귀한사람 이니까....귀(여운)티가 좀 나야하는건가요?아님 귀(찮은)티가 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건가요...흠..열라 귀엽게 조르면 혹시...

무해한모리군 2009-07-16 08:23   좋아요 0 | URL
진짜 귀여웠던 스물에도 오빠 밥 사줘 한번 안해봤슴다~
갑자기 노선 변하면 안되죠 ㅎㅎㅎ

Arch 2009-07-16 09:23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심각해지셨다. ㅋ
그럼요. 귀는 여러개고, 노선을 급작스럽게 바꾸면 탈나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6 10:59   좋아요 0 | URL
나 안심각해안심각해~~

비로그인 2009-07-1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옆에 있는 잔은 소주잔인가요?
노란 양말 귀엽네요 ㅅㅅ

무해한모리군 2009-07-14 23:15   좋아요 0 | URL
소주잔.. 음? 음!!
아 제가 알라딘에서 이미지 구축을 확실하게 했군요 ㅎㅎㅎ
찻집이라 물잔입니다.
담에 꼭 커피랑 소주랑 저리 한번 마시면서 책 읽어 보겠습니다~

후애(厚愛) 2009-07-15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 양말이 예뻐요.
그래서 자꾸 노란 양말에 눈길이 간다는 겁니다. ㅎㅎㅎ
비오는 날에 찻집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 책을 읽는다...
분위기 너무 좋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5 08:03   좋아요 0 | URL
사실은 비엄청맞고 다 젖어서 굉장히 궁상맞았습니다 ㅎㅎ

비로그인 2009-07-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이책 너무 괜찮잖아요 휘모리님! 아, 너무 힘들어요. 요샌 어느 집에 가도 구매의 유혹이 심해서..

무해한모리군 2009-07-15 09:36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또 그것이 우리의 낙 아니겠습니까~

치니 2009-07-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보관함에 담고, 강제라도 한달에 한번 꼭 연차 쓰라는게 부러워서 약간 한숨 쉬고. ^-^;;

무해한모리군 2009-07-15 09:35   좋아요 0 | URL
사실 간이 배 밖에 나온 저 같은 인간은 막 놀고, 처자식 딸린 사람들은 돈은 까고 출근하고 --;;

다락방 2009-07-15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지난달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두꺼워서 출퇴근용으로는 포기했어요. 집에서 읽으려니 잘 안읽혀서 지금 [당신 인생의 이야기]까지만 읽고 스톱중예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5 10:47   좋아요 0 | URL
아 연약한 다락방님 두껍지만 가볍잖아요 ^^

다락방 2009-07-15 12:04   좋아요 0 | URL
연약할리가 없잖아요 --;;


가볍기는 가벼운데 지하철안에 서서 읽을 때 두꺼운 건 꽤 불편하거든요. 근데 또 한번 멈추고 나니 다시 집어들게 되지를 않네요. 허허, 이것참. 아직 침대에 있기는 해요..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7-15 16:53   좋아요 0 | URL
하긴 전 앞사람한테 혼난 적도 있어요. 제 책 모서리에 몸이 찔린다면서 --;;

저도 들고다니지 못하는 책들은 집에 한챕터씩 읽고 싾여가고 있슴다~

다락방 2009-07-16 09:06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어떤 아저씨한테 혼났더랬어요. 책 똑바로 들고 다니라고. 모서리에 찔렸다고 ㅠㅠ
 

출근길엔 자주 시집을 뽑아든다. 

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오직 한손에 잡힌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전날 속이 좋지 않아 거의 굶다싶이 한 빈 속에 

와인 한병을 쏟아부은 뒤에 따라온 아침, 

꽉 끼는 전철은 이내 시집한권 들고 있을 공간도 사라진다. 

'전날 벗어 놓은 바지를 바라보듯
생에 대한 미련이 없다' 

는 이 시집은 출근길 고행이 내게 일깨워주는 삶의 남루함과 어찌이리 잘 어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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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1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제가 잘은 모르지만...남루해 보이진 않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3 13:05   좋아요 0 | URL
월요일 아침에 저를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십니다 ^^
열심히 먹고 살아야 되는데 전 참 게으른 직장인인거 같아요..

Mephistopheles 2009-07-13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와인으로 위장을 '소독' 하신 거군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3 13:04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술 삼킬때 목이 따끔따끔 한건 그래서였나 ^^
지금은 속이 편합니다~~

아 일요일밤은 정말 자기가 싫구요~
예쁜 승기얼굴 보면서 달콤한 화이트 와인이 먹고잡지 머예요 ㅎㅎ

머큐리 2009-07-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왜 이리 잠잠하신지...뭐하시나???

무해한모리군 2009-07-14 18:54   좋아요 0 | URL
오늘 연차휴가라 잠깐 외출나갔다 왔어요 ^^
아 머큐리님이 이리 그리워하시니 멀리 갈 수 없어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와 빗소리가 어우러진 오프닝. 

홈비디오로 찍은 듯이 영상은 흔들리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도 흔들린다. 

페미니스트 작가로 이름을 날리며 정계에 첫발을 내딪는 아가테, 고향에 휴가차 애인과 내려온 10일간의 휴가도 제대로 보낼 수 없을 만큼 삶은 팍팍하다.   

그런 그녀 앞에 '성공한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두 남자가 나타난다. 그 중 나이든 이혼남 미쉘은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20년간 제대로된 작품하나 내 놓은적 없이 남의 잔치집 홈비디오나 찍어주는 신세다. 또 다른 한남자는 터키계로 재능을 가졌지만 그저 호텔카운터나 지키며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흔들리는 유부남이다. 

이 담담하고 소소한 영화는 삶의 많은 고충들이 잘 잡혀있다. 자식에게 냉담당하는 아픔,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상처, 잘나고 강한 사람이라며 의존하려고만 하는 주변 사람들, 재능이 있어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기회.  

영화에서 처럼 비가 내린 후에 맑은 날도 올까?  

삶도 영화 같기를..

꽤나 두툼한 책을 뽑아들었다.  

전통적인 정치활동이나 수직적 조직에 참가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삶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갈까?  

나 같은 소시민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실천적 이야기들이 제시되어 있을까? 

겨우 세 장을 본 소감은 좋은 이야기들이지만, 내가 참고할 내용은 별로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집 살이 하며 월급받아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변화의 필요성을 설명해내고, 그 저항의 방식을 창조적으로 일상에 접목한 사례들을 읽는 것은 분명 의미 있다.  

두껍지만, 쉽고 개괄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민운동들을 설명해 놓았으니 일독해도 좋을 듯 하다. 

언제나 처럼 주말에는 단골 만화책방에 들린다.  

장기를 소재로한 3월의 라이온 2권이 나왔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나는 왜 십대에는 이런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하고 살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그때 조금 철저하게 고민했다면 이제 와서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을텐데.. 

첫사랑에게 14년 전에 장기를 배웠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다시 한번 둬 볼까? 

왜 잊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 

아버지가 그렇게 동경하던 장기의 세계에, 

서 있지 않은가...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이렇게 중요한 것을

한참 일을 하고 있다보면 우린 왜 내가 처음에 이걸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곤 한다. 

그저 권태만 기억될 뿐.. 

사랑도 일도 처음 시작할 때 틀림없이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아...  

이런 생각을 하면 뭐하나.. 

일요일 밤은 내일이 오는게 싫어서 늘 우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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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7-1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왜 십대에는 그런 고민들을 충분히 하지 못했을까 심히 생각해요. 그나저나 저도 일요일밤은 내일이 오는게 싫어서 우울하답니다. 휴..

머큐리 2009-07-12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일요일 밤은 정말 싫습니다....

[해이] 2009-07-1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인 볼거에요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7-1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머큐리님/ 역시 직장인은 월요병을 피할 수 없겠지요?

해이님/ 네 보세요 괜찮았어요 ^^

웽스북스 2009-07-1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요일 밤 잠드는 거 싫어요- 저 내일 레인 보러가지요 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7-13 08:04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보세요~
참 바지런히도 다닌다 ^^

무스탕 2009-07-1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의 라이온은 그 유명한 '허니와 클로버' 작가의 작품이네요. 몰랐어요..;;;
경기도 살면서 젤 아쉬운건 저런 숨어있는(?) 좋은 영화들들 가까운곳에서 못 볼때에요. 꼭 서울을 나가야 한단 말이에요. 물론 제가 게으른게 제일 문제지만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3 10:53   좋아요 0 | URL
아휴 저는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오고 나서 확 줄었는데~~ 경기도야 휴 --;;

멀티플렉스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선택권은 줄어들기만 하는거 같아요.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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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체만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게릴라가 있을까? 
그의 일기장, 편지글, 자서전, 평전, 커피잔, 티셔츠의 그림, 술, 시계에 까지 박힌 그의 사진과 말들 우리는 그에 대한 정보의 과잉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만큼 팝스타처럼 광적인 지지자들도 거느리고 있으며, 힐튼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안티도 거느리고 있다. 

이 책은 더이상 뽑아낼래야 뽑아낼 것이 없을 듯한 체의, 그것도 그의 삶에서 어찌보면 가장 고달팠을 죽기 전 마지막 2년간 그가 가지고 있던 자필 필사 노트에 관심을 보낸다. 그 자필노트에 적힌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페의 시 69편을 통해, 광적인 독서가이자 시를 읽는 사람 체를 소개한다. 그는 무엇을 노래한 시를 삶의 마지막 동안 읽었는가. 

민중

   
 

채찍  
땀과 채찍
피에 물든
채찍,
주인에 의해
피에 물든 

니콜라스 기옌의 시 [땀과 채찍] 中, p83 

 
   

69편의 시의 많은 수는 당시 식민지 민중의 어려운 삶을 노래한 것이다. 체의 인생이 친구와의 오토바이 남미 전역 여행으로 크게 바뀐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그 여행중에 본 것은 아메리카 민중들의 비참한 삶이었다. 농장에서 착취당하던 흑인, 혼혈 노예들의 모습이다. 전세계에 무수한 베트남을 만들러 아프리카로 떠난 그가 이런 시들을 고른 것은 당연했으리라. 굶주림과 고난한 행군 속에서 자신이 누구의 편이며 누구를 위한 혁명을 하는지 한순간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라틴아메리카   

그가 필사한 시들 중에는 남미의 현실을 다룬 시들도 많이 있었다. 

끝없는 원주민 사냥과 백인 남성과의 결혼으로 대부분 정복자의 성을 달고 그들의 종교를 믿는 혼혈인 민중들, 정복자들은 내 조상의 살인자인 동시에 아비이기도 하다.   

   
  대사제님, 당신이 원하는 건 또 뭐예요?
우린 전쟁 뒤에 찬미가를 노래하고 또 뭘 계속해야 하나요?
우린, 신의 똥이에요!
자, 모두 반복해봐요, 똥이라고...... 또오옹!
 
레온 펠리페의 시 [역사의 이 거만한 대장] 中 p192
 
   

그래서 그가 필사한 시 중에는 기독교를 비판한 시들도 여럿있다. 일명 '기독교사업'이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았는지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또 백인들의 린치에 의해 죽음을 당한 15세 흑인 소년을 기린 니콜라스 기옌의 시 [에멧 틸을 위한 비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흑인과 혼혈인에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듯 보인다. 그런 애정이 결국 그를 아프리카로 향하게 한 것은 아닐까?

'나와 함께 오르자, 아메리카 사랑이여'로 시작되는 잉카의 고대도시 마추픽추를 노래한 파블로 네루다의 마추픽추4(p146)에서 체는 정복자들의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위대한 남미의 토착문명, 그 속의 순수한 정신을 통해 남미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느꼈다. 그곳에서 체는  비록 현재는 정복자들에 의해 억눌려 있지만, 남미인들의 힘, 혁명을 이룰 수 있는 민중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 군대를 향해 많은 승리를 만들어냈고 죽는 순간까지 저항했던 마푸체족의 영웅 라우타로를 그린 [센타우로에 대항하는 라우타로](p157)를 읽으며 그들의 저항과 승리도 기억했다.

사랑 

그러나 체가 온통 민중과 혁명이야기로만 자신의 노트를 채운 것은 아니다.  

   
 

파파 몬테로! 이제 알겠네 
그들이 산산조각 내버렸다는 걸 

오늘, 달이 종일 내 집 뜰 안에 떠 있어
날카롭게 땅을 파고들지 

그리곤 거기에 머물지
애들이 얼굴을 씻으며 달조각을 빼내려 하지만 
난 말이야, 이 밤, 베개 속에 넣어두려 하지 

니콜라스 기옌의 시 [파파 몬테로의 디너파티] 중 p110

 
   

 위의 시는 쿠바의 전설적인 춤꾼의 죽음을 기린 시다. 그 역시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풍류를 아는 남미의 사내였다. 

   
 

오늘밤 난 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난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가끔 날 사랑했습니다. 

이런 밤이면
난 그녀를 품에 안았습니다.
가없는 하늘 아래
한없는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 누구
그녀의 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눈망울을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파블로 네루다의 시 [스무번째 사랑의 시] 중 p123

 
   

또한 그는 누구보다 낭만적이고 생과 사랑에 대한 열망에 가득 찬 사람이기도 했다. 그 자신 몇번의 낭만적인 사랑에 빠졌고 그것이 훗날 그가 공격받는 개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낭만적 충동, 사랑에의 충동에 가득찬 사람이기에 안정된 길을 버리고 혁명의 길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옆의 한사람을 충만히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민중과 세상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우리는 숱하게 보며 살아왔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인간다운 삶은 대단한 풍요는 아닌 듯 하다. 나를 인정해 주는 열심히 일할 일터가 있고, 일이 끝나면 가족과 동료들과 함께 시 한자락 노래할 낭만이 있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시를 읽는 혁명가가 꿈꿨던 세상이 오늘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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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9-07-1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가능한 꿈을 가진 자만이 혁명을 가슴에 품을수 있나 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12 21:35   좋아요 0 | URL
모두가 당연시 하는 것에 '왜'라고 묻는 선지자들 덕에 역사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겠지요.

네꼬 2009-07-1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우리는 숱하게 보며 살아왔다."


아, 리뷰 너무 좋으네요.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12 21:36   좋아요 0 | URL
네꼬님 주말 잘 보내셨어요?
책은 좀 정리가 덜 된 느낌이었는데, 69편의 시들은 참 좋았습니다. 전편을 다볼수 있으면 좋을텐데 발췌라 아쉬웠답니다.

카스피 2009-07-1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는거지만 혁명가들은 일종의 낭만주의자들이지요.언제나 선두에 서서 혁명을 이끌어가지만 혁명이 완수되면 언제나 숙청되지요.일종의 토사 구팽이라고나 할까요 ^^;;;

무해한모리군 2009-07-12 23:51   좋아요 0 | URL
혁명은 중지될 수 없으니까요.
체제를 유지하는 몫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 아닐까요?

비로그인 2009-07-13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가들이 한달에 시집 한권만이라도 읽으면 세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3 08:04   좋아요 0 | URL
욕심이 더덕더덕 붙어서 시가 읽히기나 하겠습니까 ㅎㅎ
 
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이를 가지면 절대 직업 스포츠인이나 예능인이 되는 것은 반대하고 싶다. 

내가 내 일을 그닥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즐긴다기 보다 극한까지 자신의 한계를 체험해야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예술이든 스포츠든 그저 즐기는 정도까지만 하고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살았으면 싶다.  

이 책의 소재는 발레다. 화려해만 보이는 무대 뒤편에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멋지게 몸으로 표현해 내기 위해서 매일의 연습과 끝없는 다이어트, 결혼도 연애도 사랑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내어 놓아야 하는 것. 

두명의 화자가 책을 이끌고, 이어지는 죽음들에 사건은 복잡하게 엉켜든다. 이 와중에 이 무덤덤한 사내, 가가형사는 꽤나 적극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이야기에도 핵심은 '범인은 왜 이런 일을 했을까'라는 질문이다. 많은 힌트들이 흩어져 있지만 그걸 하나로 꿰어내기란 쉽지 않다.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그의 글의 장점이다.  

사랑도 일도 최선을 다하나 무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순간이 너무나 많이 있지만, 세상은 넓고 또 그렇게 소중한 것은 금새 다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온갖 사고로 가득찬 세상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때로 가질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왜 그게 말은 쉬운데 늘 실천하기란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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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7-1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가가형사' 시리즈는 구입을 벼르고 있는 중인데, 아직은 제게 그럴 만한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잘 나지 않네요... 휘모리님 덕분에 '군침'만 잔뜩 흘리고 갑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12 21:33   좋아요 0 | URL
책이 어디가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보시면 되죠 ^^

카스피 2009-07-1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 가가 형사 다 사셨나봐요^^
저도 총알좀 장전한후 사서 봐야겠네요.요즘 휘모리님 펌프가 넘 심한것 같아요 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7-12 23:17   좋아요 0 | URL
주말이라 좀 달려줬습니다~~
담 주말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