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속 삼십대 중반의 여자가 '나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걸 본다. 너무나 공감이 가서 서글프다. 괜찮다는 거짓말을 해낼 수 없을때, 우리 다수는 술, 담배, 섹스 뭔가 잊을 것을 찾기도 하고, 몇몇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하고, 더 적게는 죽어버리기도 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한다. 잘못된 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게 된 것도 아마도 뭔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원인을 알더라도 사실 바꿀 수 있는 게 많진 않지만. 매해 엄청나게 출간되는 자기개발서는 '니가 바꿀 수 있는건 니 마음 밖에 없어"라고 말하지만, 계속 계속 나오는 걸 보면 혼자 마음을 바꿔먹는 것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들어오지, 마에스트로. 애는 좀 혼자 내버려두라고. 우리가 열여섯 때 어땠는지 기억 안 나?" 릴이 말했다. "온갖 똥을 밟고 나서도 아직 이렇게 버티고 있잖아."


 온갖 똥을 밟고서. "열여섯 살 때 나는 줄리아드에 있었어."

 "그래?" 릴이 말했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됐는데?"

 그다음엔 될 대로 돼라였지. 조너선은 생각했다. 서서히. 너무 천천히 진행된 탓에 그렇게 되어가는 줄도 몰랐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잘못된 선택을 했지." 조너선이 말했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릴이 말했다. "다들 그러고 사는 거지."

 "그래, 간신히 버티고 있지. 하지만 그 애는 그렇게 살면 안돼. 우린 누구에게 본받으라고 할만한 인생들이 아니지."


 이야기는 끈적한 바닷바람이 부는 항구동네의 여름날에서 시작한다. 배경 그 자체가 이 책의 또하나의 주인공이다. 남루한 항구마을에 구멍가게, 동네 건달들이 드나드는 펍, 그옆의 식당 다세대주택과 어설픈 나쁜짓을 하며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너무 심심해서 단짝 친구와 동네바닷가에서 고무보트나 타볼까 했던 시시한 모험이 어쩌다보니 비극으로 끝이난다. 어쩌다 보니 그 순간 거기 있다 휘말리고, 후회로 자신을 탓하며 취해도 보고 숨어도 보면서 버텨낸다. 그러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세상으로 사람들 사이로 다시 걸어나간다. 

 

 읽으면서 말하는 순간 내가 정말 그런 인간이 될 것 같아서 입밖에도 낼 수 없던 실수들과 실패한 내모습이 부끄러워 만나지 못하는 소꼽동무들과 오래전 고향의 바다, 그 바다에 주저 앉아 마시던 술들이 떠올랐다. 젊기에 가지는 기회들과 바로잡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용서와 상처투성이인 스스로를 안아주는 방법을 말해주고 싶었다. 


엉망진창으로 살아온 내가 오늘 한 권의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고, 어제보다 좀 더 눈물 많은 사람이 된다면 내게도 미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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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1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말해주세요~~~~. 바로잡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용서와 상처투성이인 스스로를 안아주는 방법요~~~~!!

무해한모리군 2015-02-10 14:49   좋아요 0 | URL
그냥 이야기를 듣고 같이 울고 안아주고 그런거? ㅎㅎㅎ 현실에서야 뭐 체념 >.<
책속 주인공은 십대 소녀예요... 아유 나비님께는 제가 배워야지요.

Alicia 2015-02-1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보다 많은 눈물을 흘리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흘리게 되겠지만...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겠죠, 살얼음을 딛듯, 조금씩 조금씩...

무해한모리군 2015-02-10 16:35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어찌지내세요. 거긴 따뜻한가요?
딱하나 알리샤님은 현명한 분이시니까 잘해내가실거예요.
언제나 알리샤님이 행복해지는 길만 생각하시길.. 다른 것 다 무시해버려요!
 

 주인공인 경찰 로건 말이다. 내용을 떠나서 정말 피곤하다. 작전하다 실패해서 부하 하나는 목숨이 간당하고, 비열한 변호사에게 고소당하기 직전이고, 이에 따라 직장에선 간당간당에 루저팀으로 좌천도 됐다. 하나도 진저리 나는 상관 둘에, 그중에 하나는 로건을 발판으로 출세하고 싶(어 한다고 로건은 생각하)고, 손발안맞는 동료 뒷치닷거리 하느라 두시간씩 자며 일하니 집에 안들어온다고 애인은 그 상사와 로건 둘다 잡아 죽일려고 한다. 


 죽이는 얘기 나와서 말인데 이 동네엔 사람을 태워죽이는 놈, 저며죽이는 놈, 때려죽이는 걸로 쾌락을 느끼는 놈, 온갖 고문으로 사람을 죽이는 대다 마약 매춘 등등등 나쁜 것 몽창 다하는 깡패놈들까지 신규로 들어왔다. 누구 하나 죽여도 쉽게 죽이는 놈도 없다. 자기 때문에 목숨이 오늘 내일 하는 부하 병문안 한번 갈 사이 없이 허덕거리며 나쁜 놈들 뒷 꽁무니를 쫓아다니는데 숨이 턱 막힌다. 


로건은 재능있는 형사다. 그러니까 범죄에 대한 상상력이 있다. 그런데 더럽게도 일이 꼬여만가고,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상하게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동네 범죄자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곱게 죽이는 법이 없다보니 말이다. 


그런 책이다. 숨이 턱 막히게 주인공을 코너에 몰고, 헛방망이질처럼 보이는 사건의 파편들을 보여주다, 마지막 열장에 증거들을 연결해 좌르륵 해설해주는. 전형적이라고? 주인공 로건은 보기 드물게 힘겹다.


궁금한 점

1. 영국경찰노조가 엄청 힘이 세다는데 정말 저렇게 일하나요?

2. 정말 에버딘이 다른지역보다 강력 범죄가 많나요? 전혀 안그래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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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2-0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홀레보다 더 개고생하나요? 아놔, 주인공좀 작작 괴롬혔으면 ㅡㅜ

무해한모리군 2015-02-06 10:10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막상막하... 월급쟁이 동변상련으로 몸보다 심적 고통이 정말 심할거 같아요... 그냥 안자요 계속 일해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5-02-06 10:13   좋아요 0 | URL
다시생각해보니 해리홀레가 더 개고생이네요... 본인도 상하니 ㅎㅎㅎㅎ

하이드 2015-02-0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네스 뵈는 진짜 책도 징그럽게 긴데, 해리 맨날 반죽게 괴롭히고 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5-02-06 10:1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막판에 막판까지 괴롭힌다는게 =.=

라로 2015-02-0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휘모리님 글만 읽어도 지쳐요~~~ㅋㅎㅎㅎㅎ
해리 홀레를 뵈는 언젠가 죽이려는 속셈일까요????ㅠㅠ

무해한모리군 2015-02-06 18:01   좋아요 0 | URL
작가가 해리를 해체시키고 싶다고 이미 인터뷰한바 있습니다 =.=

라로 2015-02-07 02:2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인터뷰 읽었어요,,,잔인한 요네스 뵈~~~.ㅠㅠ
 

황제의 코담배갑 중

어른이 되지 못한 자들이 너무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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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웹툰이 대세라지만 그닷 스마트폰이랑 친하지도, 찾아읽을 만큼의 관심도 없다. 만화잡지만은 꽤 많이 사모았으나 느닷없는 폐간으로 끝을 알 수 없어진 이야기가 싾이니 어느순간 그마저도 안하게 됐다.


우연히 알라딘에 들어왔다 박희정 작가가 케덴독이라는 웹에 연재 완결한 작품을 올칼라 단행본으로 출간한 사실을 알게됐다. 퇴근길에 검색을 해서 실로 오랜만에 우리만화를, 웹툰을 읽었다. 그림체가 좋아했던 천계영 작가의 오디션이 생각났다. (천계영 작가가 박희정 작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했으니 당연한지도) 정략결혼한 두사람이 우여골적 끝에 정말 사랑하게 되는 그런얘기다. 삼각관계, 약간의 퀴어코드와 연예계 뒷얘기도 살짝. 그림체가 동글동글 예쁘고 멋진 남자가 잔뜩 나온다. 소감은.... 일찍이 나는 사랑할때 강아지처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한다는 주의인데, 내가 만화 여주인공처럼 생기지 않아서인지 그런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드물다는거. 그저 만고불변의 진리는 만화는 만화고 현실은 더 사랑하는 놈이 약자이며 곰보다 여우라는거지. 물론 만화여주인공처럼 생겼다면..... 하고 싶은대로 해도됨.

 

그나저나 권교정 작가가 어서 병석에서 툭 털고 일어나 셜록을 계속 연재하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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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1-1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더사랑하는 놈이 약자. 그런데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더 사랑해서 내가 스스로 약자라고 느끼는 순간을 덜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러니까 약자라는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해주는 사람과 사랑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말이 좀 횡설수설한데, 뭐, 그렇다는 말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1-16 10: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락방님. 그런데 한편으론 인간은 참 자만에 빠지기 쉬운거 같아요. 왜 드라마에 봐도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서 소중하게 대해주는건데, 남자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줄 알고 여자를 함부로 대하고 하잖아요. 저는 막 도시락도 싸주고, 온다는 소리 들으면 버선발로 나가고 이런게 하고 싶어도 내 사랑방식보다 그 사람이 편한 방식을 좀 더 생각하게 되는거 같아요... 어렵네요. 걍 책이 제일좋아... --;;

무스탕 2015-01-1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작가의 책은 `호텔 아프리카`만 제대로 봤네요. 미리보기 잠깐 봤는데 참 이쁘다.. +_+
혹시 휘모리님 관심밖의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BOGO` 라는 잡지에 김혜린님의 `광야`가 다시 시작됐어요. 제발 이번엔 완결지어 주십사 기도중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1-19 09:28   좋아요 0 | URL
오래간만이예요 무스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쁘지만 겁나 비싸네요 ㅎㅎㅎ

오호 김혜린 작가가 잡지에 연재를 하고 있고 bogo라는 잡지도 있군요!!! 관심 있습니다. 찾아봐야겠어요.
 

 조앤 롤링의 삶에 대해서는 제법 알려져 있다. 그녀가 28살에 아이하나가 딸린 이혼녀가 되어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해리포터를 써 일약 스타작가이자 갑부가 된 동화같은 얘기 말이다. (여기서 아이하나 딸린 그녀가 공부를 시작하자 먹고 살 보조금을 준 영국정부가 아니었으면 그녀의 이 멋진 소설은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근혜정부는 부실한 일자리 창출로 지표를 호도할 생각을 말고 인력 재교육에 투자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두가지 면에서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있다. 하나는 좀 덜 알려져 있지만 결혼전에 그녀는 국제기구에서 비서일을 했다. 그러다 창조적인 자신과 비서일이 맞지않아 포르투갈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글을 쓰게 된다. 이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은 탐정 코모란 보다 탐정의 임시 비서로 들어왔다 견습 탐정으로 변신중인 로빈이다.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라 마음속에 이는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아가는 주인공에서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두번째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출판업계다. 이 책에 묘사되는 작가, 에이젼시, 출판업자 누구하나 정상이 없다. 한명쯤은 정상인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빈한한 재능에 비해 넘치는 명예욕을 가진 작가들, 글은 잘쓰는데 창의력이 없었던 출판업자, 친구인척 서로를 글로 물어뜯는 글쟁이들, 주정뱅이 출판업자, 자의식 과잉에 남의 아내랑 자는 작가 등등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소설은 주변사람들을 우화적으로 비꼬아 쓴 책이던데, 과연 이 책에 등장하는 출판업 관계자들도 모델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조앤이 자신의 동료들을 이렇게 끔찍하게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이야기는 1부보다 더욱 더 전형적인 탐정소설의 모습을 보인다. 좀 색다른 점은 시리즈의 시작인 쿠쿠스콜링처럼 여전히 사건외에 로빈과 코모란에 대해 전체 분량의 절반정도를 할애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나간다는 것이다. 코모란과 로빈의 약혼자 매튜가 만나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로빈이 안정적인 일이 아니라 탐정일에 얼마나 끌리고 배우고 싶어하는지, 로빈과 코모란은 점차 어떻게 파트너가 되어 서로에게 기대게 되는지를 그려간다.   


책을 다 읽고 난 감상 : 사람의 배는 갈라 죽여도, 그 사람이 쓴 책은 어쩌지 못하는 먹물의 비애. 또 인터넷 이후 누구나 글을 쓰게 된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조앤은 일일연속극도 멋지게 해내겠다는 것 고로 이시리즈는 그녀가 원하는 만큼 길어질 수 있다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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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1-2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를 생각하면 조앤 롤링은 탐정소설도 잘 쓸거 같아요~
우리는 한달에 몇십만원 수입이 생기면 지원을 끊어버려서...지원 끊길까봐 폐휴지 줍는 것도 못하고 살게 하는 잔인한 복지정책!!ㅠ

무해한모리군 2015-01-23 16:4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조앤은 일일드라마를 잘쓸거 같아요...
정형적인 틀로 글을 쓰면서도 뭔가 인물을 실재감 있게 그리는 능력이 있어요...

복지야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