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절판


이 호빗은 아주 유복했고 이름은 골목쟁이네 빌보였다. 골목쟁이 집안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언덕에 살았고, 이웃들은 그들을 매우 점잖은 집안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부유할 뿐만 아니라, 모험이나 예상 밖의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목쟁이 집안의 호빗이 어떤 문제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지는 괜히 귀찮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 골목쟁이 집안의 한 호빗이 모험을 하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가 이웃의 존경을 잃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얻기도 했다. 글쎄, 그가 결국 무엇을 얻었는지 어떤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14쪽

오늘날에는 호빗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호빗은 매우 희귀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큰사람이라고 부르는 우리에 대해 매우 부끄러움을 타고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키가 우리 절반쯤 되고, 턱수염이 있는 난쟁이들보다 작은 인간이다. 호빗들은 턱수염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술을 거의, 아니 전혀 부릴 줄 모른다. 여러분이나 나같이 크고 어리석은 족속이 코끼리같이 쿵쿵대며 어슬렁거리면 1, 2킬로미터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듣고 조용히 재빠르게 사라지는 평범한 재주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배가 불룩 나오는 경향이 있으며, 보통 초록색이나 노란색 같은 밝은 색 옷을 입는다. 신발은 신지 않는다. 발바닥이 천연 가죽처럼 질기고, 머리카락과 똑같은 굵고 곱슬거리는 갈색 털이 발을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재주 많은 갈색의 긴 손가락, 선량한 얼굴, 깊고 풍부한 웃음 소리……. 가능하면 하루에 저녁 식사를 두 번 하고, 먹고 나서는 특히 큰 소리롤 웃는다. -14~5쪽

"나도 용사를 한 명쯤 찾아보려 했지만 용사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 싸우느라 바쁘고 이 근처엔 영웅이 귀하다네. 아니, 아예 찾을 수도 없지. 이 근방에서는 칼은 거의 무뎌졌고 도끼는 나무를 베는 데나 쓰이고 방패는 요람이나 접시 덮개로나 쓰이지. 다행히 용은 멀리 있으니까 전설적인 존재나 다름없게 되었지. 그게 내가 좀도둑 행각을 택한 이유라네. 특히 비밀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 다음부터 말일세. 그래서 우리의 작은 좀도둑 골목쟁이 빌보가 선택되고 선발되었지."-43쪽

참 이상하지만, 갖고 싶던 좋은 것들과 지내기에 쾌적하고 좋은 날들은 얘기할 것도 들을 것도 별로 없어서, 금방 이야기를 다 해 버리게 된다. 반면, 불안하고 가슴 두근거리고 심지어 무시무시한 것들은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어 어떻게든 길게 얘기하게 된다. -84쪽

소린이 난쟁이들에게 말했듯이, 무언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눈으로 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법이다. 직접 눈으로 보면 대개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찾으려 했던 게 아닐 수도 있다. 이번에 바로 그런 경우였다. -93쪽

여기 깊은 땅 속 검은 물가에 작고 끈적거리는 동물, 늙은 골룸이 살고 있었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마른 얼굴에 희미하게 빛나는 두 눈을 빼면 칠흑처럼 새까만 그가 바로 골룸이다. 그에게는 작은 보트가 있었는데 그 보트를 타고 아주 조용히 호수 위를 저어 다녔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호수였다. 호수는 넓고 깊고 몸서리쳐지게 차가웠다. 그는 양쪽으로 커다란 발을 늘어뜨리고 배를 저었지만 한 번도 잔물결을 일으키지 않았다. 절대로 말이다. 그는 창백한 등불처럼 생긴 눈으로 눈먼 물고기를 찾아다녔고 번개처럼 빠르게 긴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그는 살코기 역시 좋아했다. 잡을 수 있었을 때는 고블린도 맛있다고 생각했다.-112쪽

밤새 그는 자기 집 꿈을 꾸었고, 꿈에서 여러 방들을 모두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끝내 찾을 수 없었고, 그게 뭐였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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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3-01-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빗을 읽은지도 벌써 (거의)10년이 지났네요. ㅠㅠ 저도 씨앗판을 읽었는데, 나중에 대구 올라가면 책을 찾아봐야겠네요. ^^

이매지 2013-01-09 14:12   좋아요 0 | URL
영화 보기 전에 보려고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지네요. ㅎㅎ
<반지의 제왕> 읽는 것보다 부담스럽지도 않고 ㅎㅎ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2013년의 첫 영화(<아무르>)와 첫 책(『애도 일기』)이 모두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라 조금은 묵직하게 한 해를 시작했다. 평온하게 살던 노부부의 삶에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며 담담하게 진행되는 <아무르>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2년 간 써내려간 메모를 모은 『애도 일기』는 부부 간과 모자간이라는 관계의 차이, 죽음 이전이냐 이후냐 하는 시점의 차이 등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다른 점들이 있긴 했으나, 모두 죽음을 매개로 인간의 나약함이나 절망 등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을 직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었다. 

 

  『애도 일기』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지만 단순한 사모곡이 아니다. 롤랑 바르트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47쪽)이다. 과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어머니를 단순히 부모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가 떠난 뒤에도 그는 어머니를 "부드러움, 활기, 고매함, 선함"(205쪽)으로 정의하고, "아직도 마망과 '이야기를 한다'(현재형으로).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마음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나는 마음속에서 그녀와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존재하는 대화다: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는 그녀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려고 애를 쓴다: 그녀가 했던 것처럼 식사를 하고, 집 안을 정리하면서, 윤리와 미학이 하나가 되는 삶, 비교 불가능한 생활양식, 그것이 그녀가 일상을 보내던 방식이었다"(200쪽)라고 무결한 존재로 칭송한다. 물론 그의 말처럼 그의 어머니가 그런 존재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녀를 성역화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동시에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존재했었다"(26쪽)는 회고나 "나의 롤랑, 나의 롤랑"(50쪽) 같은 대화를 읽을 때면 둘이 단순한 모자간이 아닌 연인 같다는 생각도 슬몃 들었다.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가 없"(165쪽)는 사회 속에서 그는 '애도'를 통해 자기 자신의 죽음과도 직면한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 이렇게 절절한 감정에 휩싸여보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때로는 그의 이런 '애도'가 과도한 집착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니 결국 그의 이런 애도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매개로 자신의 죽음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 혹은 어머니의 죽음을 매개로 내재되어 있던 그의 죽음 지향이 발현된 것만 같았다.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216쪽)는 구절을 읽으며 "외롭고 싶지 않아"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외로움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처럼 한편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동경한 것이 아니었을까. 

 

  롤랑 바르트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텍스트를 직접 꼼꼼히 읽어본 적도 없고, 그의 삶에 대해서도 면밀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선행 작업(?)이 없이도 『애도 일기』를 읽어가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짤막한 메모가 이어져서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기 이전에 그에게 죽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는 그저 남에게서 빌려온(졸렬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철학에서 얻어낸) 것"(129쪽)이었다면 언젠가 이것이 "나 자신의 것"이 된다면 지금과 생각이 많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메모를 읽으며 때로는 경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드렁하기도 했지만,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등에 대해 다층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서 좋았다. 올 한 해를, 아니 남은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나 스스로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경험이 쌓이고 난 뒤 다시 읽으면 다르게 다가올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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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구판절판


누가 알겠는가? 그 어떤 귀중한 것이 이 메모들 안에 들어 있을지. -17쪽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런 존재가 더는 아니다. -18쪽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33쪽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 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47쪽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들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51쪽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다가오고 있는 모험이 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 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 시간의 연장, 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 지루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내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 -60쪽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그것도 대답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78쪽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 필요하다.-101쪽

이런 말이 있다(마담 팡제라가 내게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111쪽

마망이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죽고 없다는 생각과 확인("완전하게": 그 생각에 오래 머물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꾸만 하게 되는 그런 생각이 있다). 그건 정말 말 그대로 (말 그대로, 그러니까 동시적으로), 나 또한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죽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애도(지금 내가 겪고 있는 애도)의 슬픔은 래디컬하게 그러니까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길들이는 일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는 그저 남에게서 빌려온(졸렬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철학에서 얻어낸) 것이었다면, 지금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고통스러운 건 죽음의 의식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나의 애도 때문이다. -129쪽

모든 일들은 아주 빨리 다시 시작되었다: 원고들, 이런저런 문의들, 또 이런저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랑을 또 인정받기를) 가차 없이 얻어내려고 한다: 그녀가 죽자마자 세상은 나를 마비시킨다, 산 사라믕ㄴ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원칙으로. -157쪽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쪽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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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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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타로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스미코가 적절한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는 절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식욕보다 애정의 문제! 그래, 그거다.
'1인'이라고 적힌 열차 식당의 영수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도리카이 주타로가 막연히 미심쩍게 생각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남녀는 이제부터 자살을 하려고 멀리 규슈까지 가는 길이다. 애정은 평소보다 한결 깊을 것이다. 게다가 열차 안이다. 남자가 식당차로 가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같이 가서 커피 한 잔 정도 마시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좌석은 지정석이니까 두 사람이 비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뺏길 염려는 없다. 혹시 선반 위에 얹어둔 짐이 신경 쓰여서 여자가 남았을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주타로는 사야마와 오토키 사이에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44~45쪽

미하라는 노면전차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히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무작정 올라탄다. 행선지도 없이 탄다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생각이 막힐 때면 멍하니 노면전차에 앉는다. 느린 속도와 적당한 흔들림이 그를 사색으로 이끌어준다. 자주 멈추고 그때마다 덜컹덜컹 흔들리며 출발하는 전차 좌석에 몸을 기댄다. 이런 환경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생각의 흐름 속에 잠기는 것이다. -159쪽

그러니까 어디로 보나 이자의 범행이 틀림없다고 믿었으면, 몇 번이고 간에 밀어붙여 볼 일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모르는 사이에 선입관이 작용해서, 당연하다고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이 만성이 된 상식이 간혹 맹점을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당연한 상식이라도 수사에 임할 때는 일단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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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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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책에 밑줄을 긋는 자는 하나의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왜 하필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가?" 참으로 심플하고도 당연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왜 살아가느냐/사랑하느냐'에 맞먹을 정도로 한없이 존재론적인 질문이니까. 마음에 들어서? 멋진 문장이라서? 그건 마치 밥을 먹으니까 살고, 예쁘니까 사랑한다는 대답과 비슷하다. 물론 딱 떨어지는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또 밑줄을 긋는다.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으려는 마음이기도 하다. 읽어 넘기면 그만인 문장들에 줄을 그어 되새기고, 언젠가 다시 펼쳐 읽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낯모르는 이의 밑줄을 만났을 때,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차라리 사랑이 아닐까? 예쁘게 긋지 못하면 어쩌나, 내가 그은 선을 누군가 비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따위는 벗어버린 사랑, 말이다. -20~1쪽

전 지구가 하나가 된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책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란 그런 법이다. 외롭고 쓸쓸하다. 외롭고 쓸쓸해서 읽고 싶고, 읽을수록 외롭고 쓸쓸하다…. 외로워서 읽는가 읽어서 외로운가 하는 그런 질문은 나에게 하지도 말라. 뭐, 어쨌거나 결국 한 권의 책일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다.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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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12-2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해보았던 마음이 나와있네요
그래서 전 요즘 밑줄을 잘 안그어요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요

이매지 2012-12-27 13:0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잘 지내시죠? ^^
저는 한편으로는 기억의 매개물로 밑줄을 긋는 것도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