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뭘 주어먹어도, 아무데나 내놔도, 우리 아이는 건강하다. 라고 생각했던 거.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었을까? 주말에 아이와 친정에 내려갔다 온 게 아이에겐 강행군이었나보다. 다녀온 뒤로, 감기로 비실비실. 문제는 그 먹보가 도통 아무것도 먹으려 들지 않는다는 거.

어제밤도 나는 내내 설치다. 아이와 같이. 열이 심하고 계속 보챈다. 아침에 꼭 소아과에 데려가(게 해)야지! 밖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거.

서럽게 잦아드는 울음을 우는 아이를 등 뒤로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문밖 저멀리까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회사 도착했으나, 10분 지각.

오전은 동동거리며, 분주히 지났는데 오후가 되니, 피곤이 억만겁 몰려온다. 게다가, 아이도 걱정되고, 깡통 이유식을 사다 줄지언정 뭘 먹게 해 주고 싶은데, 해서 퇴근 시간 되면, 바로 집으로 향하고픈데. 남은 일은 누가? 집에 싸들고 가?

굉장히 불운하고,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퇴근 시간이 되었고, 오늘은 남편이 일찍 집에 들어가겠단다. 게다가 저녁이 되니 머리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한다. 남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불운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7-10-3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낮엔 계속 피곤하고 잠 오고 그러더니 지금 이 시각이 되니까 정신이
나네요.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ㅎㅎ

프레이야 2007-10-3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아이가 아파서 어떡해요? 일하는 엄마는 힘들죠. 힘내세요^^

2007-10-31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1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umpty 2007-11-0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불운과 비참이 왜 일케 서럽게 들리지?
철이 철인지라 마이클 찬도 감기에 걸렸구만요. 에구...

icaru 2007-11-01 16:09   좋아요 0 | URL
몸이 피곤해서..더 죽겠더라고~ 어제 오후는 말이지.
마이클 찬... 오늘도 병원 갔덩..

반디 2007-11-0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뭉클한 글.
아픈 아이를 두고 나올 때 만큼 힘든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 쾌차하길 빌어요. 그리구요..바빠서 자주 못와요. 죄송^^;

icaru 2007-11-06 08:37   좋아요 0 | URL
자주 보믄 조컷어요@@@@

잉크유령 in china 2007-11-05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슴이 찡하네요. 이곳 중국까지 전해지네요. 힘내시길....이런 분위기에서는 복돌언냐의 출현이 약발이 먹히곤 했는데...

icaru 2007-11-06 08:37   좋아요 0 | URL
복돌언냐는 뭐하고 잘 사나 몰라요! 궁금 한 가득
잉과장님,,, 중국 출장 중이시군요~ 어쩐지 안 뵈시더라~ 건강히 잘 지내다 오시얍!
그럼, 과장님 짜이찌에엔~~~!
 

아이는 머리를 잘 찧는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놀다가, 무언가 지지해서 기대어 있다가, 혹은 피아노 의자, 화장대 의자 따우는 등받이가 없기 때문에 그 위에서 놀다가 그렇게, 뒤로 발랑 넘어가기를 밥먹듯 ...아니 밥먹는 거 보다 더 자주 방바닥과 박치기를 해대는가 보다. 예전엔 머리를 그렇게 쿵야! 하면 5초 정도 숨을 안 쉬고, 얼굴이 빨개져라 울음을 터뜨렸는데,, 요즘엔 단련이 된건지, (아니라면, 아가 머리가...) 울어도 울음끝이 아주 짧거나, "아.야." 라며 지 짧은 팔을 들어올려 머리를 문지르다 만다.

우리 엄마가 어린 아이들 머리 보호대(?) 같은 것도 있더라... 라고 요즘 자주 말씀하시는데...

그걸 사줄까 싶다가도, 분명 무용지물이 될 거라. 아이는 모자 쓰는 걸 아주 많이 싫어하는데, 그런 보호대를 쓰려 할까?



이모 모자를 씌워 주었다. 짧은 순간을 사진기에 담아야 하기에,스포츠모드(?)로 해놓고, 그럼에도, 그럼에도 모자를 벗겨내려고 올라가는 진행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일단 세 개의 손가락...

 



최근 건진 걸작...나는 이런 진상떨며 우는 사진이 넘 마음에 든다. 이제 아이도 제법 커서 그냥 울음 그 자체를 울지 않고, 약간은 연극적*작위적 요소를 섞어 호소하듯 운다. 컸다는 거지..."우는 도토리" 찬이..

 




댓글(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7-10-24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걸작, 진짜 마음에 드는데요? 해람이는 울음 끝이 짧아 저런 걸작을 뽑아내는게 어려워요. 아주 배고플 때 정도?

잉크냄새 2007-10-2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서 머리가 단단해지는 겁니다.ㅎㅎ

icaru 2007-10-2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음 끝이 짧다니, 신퉁하네요. 왜 보통 보면, 뭔가 억울하면... 두고두고 상기시키잖아요. 잊은 있다가 생각난듯 울고, 자다가다도 또 생각난듯 인상쓰고 울고요. 헛..

맞아요~ 시간이 가니, 애들은 자라고 머리통도 야물어가요. 문득 신생아 시절 말랑말랑하던 대천문이 백일 조금 지나고 닫혔을 때, 신기해했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춤추는인생. 2007-10-2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카루님. 찬이한테는 야속한 말이지만. 두번째 사진보고 거의 쓰러지는줄 알았어요ㅎ
애들이 커가면서 말도 늘고 대충 상황파악도 할줄알면. 우는척도 하고 삐지는척도 하쟎아요.전 그게 너무 귀여워요. 아. 찬이~~~ 정말 예쁘네요.^^

icaru 2007-10-24 12:54   좋아요 0 | URL
오 실시간 댓글 되겠음다 ^^ 저도 웃을 때도 이쁘지만, 그보담 삐지고 울 때가 더 귀여워보이니 말이죠. 이러다 징징쟁이 되면 안 되는데..

미설 2007-10-2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걸작 사진의 또다른 제목, 가관 되겠습니다=3
봄이는 정말 딱 10초만 울어도 눈이 빨개져가지고 눈물이 범벅이되고 저 가관을 뛰어넘는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맨 처음 사진은 얼짱이에요, 이뽀요^^

icaru 2007-10-25 09:22   좋아요 0 | URL
ㅎㅎ-- 봄이 연기력이 또 볼만하지 않나요~ 애교도 작렬할 것 같고.. 헤헤.. 근데, 아이 우는 사진 넘 많이 찍어대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우는 자신을 달래지 않고, 셔터나 눌러대는.. 냉정한 엄마로 인식지 않을라나 어쩔라나 ㅋㅋㅋ

humpty 2007-11-0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우는 얼굴, 자꾸 비죽비죽 웃음만 나네. 그야말로 리얼 상황 포착!
모자 쓴 찬은 정말 아기모델 시켜야겠구만요.

icaru 2007-11-01 16:02   좋아요 0 | URL
ㅎㅎ.. 실은 찬이를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찬이처럼 안 생기게 나온 사진인데... 또 그게 젤 작품이니..원...ㅎㅎ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중략>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신화의 힘> 조셉 켐벨

 

마음을 잡아 끄는 경구이다. 근데,

작가가 쓴 것을 모조리 읽는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작가가 읽은 것까지 모조리 읽는다는 것.... 그럴 필요가 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7-10-1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서경식의 글이 그렇네요.
<소년의 눈물><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다가
책에서 언급된 쁘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찾아 읽으려고 준비중.

icaru 2007-10-12 14:48   좋아요 0 | URL
그니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또한 님께 좋은 책이었던 거네요~ 쁘리모 레비도 서경식처럼 두 나라의 혼을 담은 사람인가보네요~ 대충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참... 그럼, 서준식 님 책도 읽으시겠남요?
 

추석날 오후 1시 기차로 친정에 갔다가, 금요일 오후 3시 20분 도착 기차로 집으로 올라왔다.

원래는 토요일까지 띵가당거릴 계획이었으나, 마침 가지고 내려간 책도 다 읽어서 똑 떨어지고, 비오고 흐린 날이 하루이틀 이어지니, 외출도 어려워서, 이제는 제법 뻗대고 드센 아들녀석과 씨름을 하거나,  해주시는 밥먹고, 침대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게임이나 하는 것에 멀미가 난 거다. 예약한 기차표를 취소하고, 환불받고, 다시 예약하고...

서울 집에 도착, 현관문을 열었는데, 사나흘 비워 두었던 집안 공기가 심상치 않은거다.  매캐하면서도 좀 이상 야릇한....(3박 4일 동안 이 빈 집에서 뭔일이 있었던 걸까???) 

신발을 벗고, 들어선 거실 바닥에  갈색 젤리 같기도 하고, 묽은 피????처럼도 보이는 뭔가가 고여 있었다. 뭐야..!끔찍하군.

아이가 그 위로 철푸덕 앉아서 첨벙첨벙 하기 전에 냉큼 걸레를 집어들고 , 정체불명의 액체를 닦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이미 굳어서 지워지지 않는거다. 걸레를 집어던지고, 갈색 물줄기의 진원지를 쭈욱 따라가 보았다. 냉동실 문짝이 약간 열려 있었고, 사각의 생크림 케익 포장박스가 비죽이 튀어 나왔다.

아.씨.

3박 4일 동안 냉동실 문짝이 열려진 상태로 있었던 거고...

거실 바닥까지 주욱 흐른 것은 얼려둔 마늘과 생크림 케잌에서 녹은 초콜렛과 냉동칸에 들어 있던  고기들이 삼박사일을 천천히 녹고 녹아 만들어낸 혼합즙이었던 것...!

나는 누가(누구긴 나 아니면, 남편이지.) 냉장고 문짝이 열려진 걸 확인도 안 하고 나왔는가를 추궁했다. (나는 아니니까.) 

사건 당일,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찬이 아빠는 아들과 점심 대신으로 생크림케잌(23일이 내 생일이었다.) 조각을 먹고, 냉동실에 상자째 넣었다고 한다. 물론 한번에 꽉 닫히지가 않아서 다시 한번 밀어넣고 밀패된 걸 확인했다고 한다. (근데 다시 열릴 수 있는건가???) 평소 침착하고 살림에도 소질이 약간 있는 남편이라 믿었는데...

우리집 냉동실에 잔뜩 쟁여져 있던 고기는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그렇다. 나는 집에서 하는 고기 요리를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니다. 고기 상태가 아주 좋지 않고서야, 내가 요리를 하면 맛과 향취를 살리기가 어렵다 보니, 우리 가족은 정 고기가 먹고 싶으면, 밖에서 해결한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후부터는 쇠고기를 정기적으로 사둔다. 이유식할 만한 약간의 분량만!

 이유식 관련 육아 책마다 어찌나 쇠고기 안심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들 하시는지, 안 멕이면, 아이 발육에 큰 지장이 생길 것 같은 경각심이 불끈 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밖에 데리고 나가면, 개월 수에 비해 아이가 작네, 팔다기가 짧네.. 뭘 먹이네?? 어쩌네저쩌네... 말 많은 입들도 신경 쓰이고.

추석 바로 전주(금요일) 저녁에 모처럼 큰맘먹고 동네의 재래시장에 가서 아이 이유식으로 먹일 쇠고기 안심을 샀다. 매번 두 세번 먹을 정도로 손바닥의 반 만큼만 샀었는데, 그날은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명절 전날 기분 내려고 그랬는지,(명절 때면 선물 챙기고, 선물 받고 하는 문화를 보면서...유독 명절에만 먹고 죽자 하는 근성들이 있는거 같다고 쯧쯧대던 난데....) 두 손바닥 펼친 두께만큼 사서 다져달라고 했다. 집으로 가지고 와서 한번 해 먹일 분량만큼 등분을 해서 따로따로 얼려두었다. 

그런데 그 날 늦은 저녁 남동생이 회사에서 고기 선물 세트를 받았는데, 집에 내려갈 때 가지고 가야 겠지, 무겁겠지...하는 전화를 받노라니, 아차다 싶었다. 거기엔 양질의 안심과 갈비가 있다는 거다. 그 안심으로 찬이 먹거리를 해결하면 충분할텐데 생각이 들면서...

어차피 차례 지낼 떄 쓸 고기는 부모님 집에도 많다고 하고(그 와중에 전화로 고기 있냐고 여쭈는 나의 집요함) 있는데 또 가져 가는 거 보다는 무거울테니, 우리 집에 두고 내려 가라고 해서, 그 날 늦은 밤에 동생은 그 고기 세트를 들고 우리집으로 왔었다.  

속으로 좀 그런 생각도 했었다. (갈비는 몰라도 안심은 보내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아니 안심은 찬이 먹이고, 갈비는 요리도 자신없으니, 그거야 말로 보내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고기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뭔 욕심을 이리부리나 몰라......)

동생이 가져온 고기는 이 막눈이 보기에도 훈늉했다. 나는 어쩐지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갈비는 비닐로 진공포장이 되어 있었고, 안심은 그렇지 않은 비닐포장이었다. 냉동실에 두지 않고, 바로 구워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갈비는 냉동실로 직행하였고, 안심은 냉장실에 두었다. 그런데 어찌저찌하다보니, 못해먹고, 명절 전날과 당일날은 시댁에 있었고, 하여 안심은 다시 냉동실로 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냉동실에 둘껄 했지만, ,,,,  음냐...이래서 길에서 주운 돈과 쇠고기 안심은 그날 바로 처치하라는 옛말이 있나보다. (??)

내것은 아니었지만 내것이 된 추석 선물 고기를 두고, 그렇게 갖은 실랑이를 벌인 끝이었는데...

이미, 이유식으로 쓰려고 다진 고기를 넣어둔 팩은 검붉게 고기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절반이었다.... 저 지경이면 익혀서 지나가는 똥개에게 주어도 안 먹을 듯..

안심의 상태는 육안으로는 잘 모르겠다. 나는 냉동실 문단속 안 한 .. 남편에게 말없는 시위를 하면서...댓발나온 입을 해가지고, 그 고기를 몽땅 간장참기름마늘설탕양파로 양념을 만들어서, 재 가지고  팬 위에 올려 놓고, 구웠다.

갈비는 진공포장이니까. 일단 괜찮을거라 생각해두고.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니, 일단 먹음직스러운 향이 났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과일칸을 뒤져  배도 깎아 넣었다.

고기는 거의 익었는데 한 점 맛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편이 와서 한 점 집어먹는다.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한마디를 더 하는데, "찬이에겐 주지 말자!" 

뭐시야- 애도 못 먹을 정도면 나도 못먹지...

냉큼 나도 한점을 입에 넣었다. 처음 씹을 땐 육질도 쫀쫀하고, 게다가 들치근한 양념 때문에 고기맛을 잘 모르겠다가...뒤에 느껴지는 맛이 참 이상했다. 또 한 점을 집어 먹는다. 그런데 이건 확실히 맛이 구렸다. 웩...

어떤 조각은 먹어줄만했고, 어떤 조각은 심각한 상태였고,

겉보기로는 모른다. 뭐가 멀쩡한 고기 조각인지...

남편은 먹어도 괜찮은 고기라고 한다. 물간 생선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나지만, 고기는 다르다나... 썩은 걸 먹지 않는 한 인체에 해가 없다나...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먹어치우겠다고 한다.

자기가 어릴 적에 이런 경우가 많아서 잘 안다나.

냉장고가 작아서 고기 선물 들어오면 냉장고에 못 들어가는 고기는 베란다에 두었는데,,,

어떨땐 이런 맛을 내는 상태에 까지 이르기도 했다고.

흠... 실눈을 뜨고 남편을 가만히 바라보니, 어딘지 남편은 신나 하는 거 같다.

잡동사니를 버리고 물건들을 정리(정리가 아니라 처분...)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향이 있는 남편은 어느새 노란 음식물 종량 봉투를 들고와 냉동실에 있던, 남은 생크림 생일 케잌, 둔 떡들(받은 떡* 돌잔치할때 돌상위에 있던 거 챙겨온 것),얼렸다가 해동되면서 이제는 물렁물렁해져 썩을 일만 남은 인삼뿌리들과 얼려둔 콩비지,각종 먹거리들을 싹 주워 담아 넣어버린다. 마치 이런 날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뭐냐...

복잡한 심사를 눅일만큼 도수 높고 달치근한 술생각이 간절했다.

수유다 뭐다 해서 맥주도 500cc 두어잔 정도까지만, 소주도 2잔 이하 뭐 그랬는데,,, 이렇게 땡겨 보긴 정말 간만이었다.

마침 부모님댁에 선물로 들어온 6년근 홍삼주 한 병과 전봇대도 뚫어버린다는 복분자주 한병을 우리집으로 가져왔더랬다. (아버지는 술을 한 방울도 못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선물한 사람 센스도 없네. 술 못하는 아빠한테.. 이게 가당키나 하면서.." 포장 종이백채로 싸들고 왔다.

아이를 재우고, 고기와 그밖에 것들로 주안상을 폈다. 그리고 소주잔에 색깔도 고운 복분자주를 똘똘똘 소리나게 따랐다. 고기를 먹기 전에 한잔 원샷!

어머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술이 쎄진거냐. 달착치근하고, 알코올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거다.

병을 다시한번 살펴보다. 복분자....주가 아니라, 복분자 진액... (뒷병에는 마시기 전에 흔들어주시고, 1일 2~3회 1회 1~2잔을 드십시오. ) 약이었던 것이다.

다 먹겠다던 남편의 젓가락이 고기 접시에 가닿지 않는다. 나또한 어느것이 멀쩡한 고기일지 불확실함을 달게 감수하면서 고기를 먹을 용기가 쉽게 나질 않고...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거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속으로 직행하도록....개네들의 운명의 화살을 바꿔보고저,,,간장참기름마늘설탕양파 그리고 배.... 가스불...설거지만 만들어놓은 팬..

 

고향으로 내려갈 고기를 중간에서 삥 뜯었다가 이런 화를 당하고...

아버지 앞으로 온 약 선물을 술 선물로 착각하고 중간에서 착복했는데...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국, 복분자 진액에 보드카(몽골 울란바토르에 다녀온 지인이 준)를 섞어 마시다, 안되겠어서...남편에게 편의점에서 매취순 두 병과 포 안주를 사오라고 시켜 병을 비웠다.

기분이 그래선지... 술도 금방 확 깼다. 지금은 너무 멀쩡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9-29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7-10-02 09:04   좋아요 0 | URL
소설가 선생님께 소설 한 단락 운운은 굉장한 칭찬인거예요~ 그죠??
축하 고마심다~ 가족에게마저도...은근 챙김받기 애매한 날짜에 태어났지 뭐랍니까.
제가 주부가 맞나봐요. 이런 살림 손해 막심에 마음이 한없이 쓰이니까는 ^^

마냐 2007-09-29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란만장한 추석후일담. 왜 이렇게 남일 같지 않고 생생한지. 그리고 일이 터질라믄 꼭 평소 안하던 짓까지 더해 대박으로 터지는 건지..모쪼록 보드카에 매취순이 님의 마음을 달래주고,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깨달음이나 더해줬길 바람다. 뭐, 냉동고 청소 오랜만에 제대로 한 것에 위안 삼으시길.

icaru 2007-10-02 09:08   좋아요 0 | URL
마냐 님의 따끈따끈한 근황 글도 읽고 왔어요^^ 에고 독한 것-보드카,넘 쓰더라고요. 마냐 님의 이 길이 내 길인가, 라는 주제 의식의 글을 읽으면서 저또한 생각한답니다. 집어치우자! 하는 마음 다독다독 --

2007-09-30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umpty 2007-10-0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캬, 파란만장 연휴였구만요.
근데 난 저 상황이 눈에 그려지니 왜이리 웃기냐? ㅋㅋ

icaru 2007-10-02 13:40   좋아요 0 | URL
그지? 우리 신랑이 은근 신나 하는 모습이 보이지??
정말 탈많은 추석이었어. -- 찬이가 감기 때문에 열이 펄펄 끓어서-- 한바탕 정신 없었고-- 에긍~
 

내일이 주말이 아니었다면, 초저녁 잠을 자뻐리지 않았을 거구ㅡ 자정이 되어서 일어나 앉지 않았을 거구-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그럼 글도 쓰지 않았을거고.. 쓴 글이 별것도 아님서 아니, 별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다음날  부랴부랴 비공개로 돌리는 짓도 하지 않을텐데...

다음날 내가 이 글을 비공개로 돌릴 것이냐, 아니냐...단정은 하지 말자..... 당분간 인터넷 근처는 얼씬도 안 할듯허니까. (그냥 그대로 두겠지...)

알라딘서, 문학 베스트셀러 1000원 할인쿠폰 같은 걸 마구마구 쏠 적에, 여기저기서 입소문만 무성히 들었던 온다 리쿠의 작품 베스트 5라고 누가 뽑아준 목록을 죄 구비했었다.

 

 

 

 

삼월의 붉은 구렁을 기점으로,,, 다른 작품들을 곶감 아껴 빼먹듯 하나씩 읽었는데...

네버랜드나 밤의 피크닉처럼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작품보단... 그렇다. 흑과 다의 환상이 내겐 제대로다.

어릴 떄는 소심했고, 친구도 없었는데,,, '친구'를 바라지 않으면서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세쓰코에게, 심히 반한다.

"친구, 우리는 이 말에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고 살아왔을까. 이 악의 없고 진부한 말을 중얼거릴 때, 누구나 가슴 속에 복잡하고 씁쓸한 감정을 품을 것이다."라고 내레이션하는 세스코...

눈썹을 찡긋찡긋하면서 능란하게 대화를 뒷받침하는 세쓰코의 쾌활함....

그런걸, 나는 내가 바라는 내 모습으로 꼽고 있는 걸게다.

20대 후반인 친구들과 같이 일하는 30대의 나는 회사에서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그 친구들과 일적으로 말고도, 개인적으로도 의기투합하여 잘 지내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맞춰 주고, 잘 지내려 하다 보니, 매번 이 관계들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거... 항상 자존심과 질투 같은 게 숨어... 불확실하다는 느낌...이랄까.

담담하게 생각하기로 하니, 편해졌다. 의사 표현도 자유로워졌고, 회사에서의 친구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된다고 ...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30대이기 때문에... 그것도 30대 여자이기 때문에 ..   20대 여자들과.. 안 맞는 게 있을지도 라고...

다음은 건축가 김진애 씨의 글....  

 

30대 여자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하는 여자, 아이 기르는 여자, 출산 유보하는 여자, 아이 학수고대하는 여자, 결혼한 여자, 결혼 압력 받는 여자, 결혼 안 하겠다는 여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는 여자, 이혼해버린 여자,

 

사표 낼까 말까 고민하는 여자, 재취업에 고심하는 여자, 창업 고민하는 여자, 사표 압력 받는 여자, 남자에 지쳐 있는 여자, 아이 기르기에 지쳐 있는 여자, 친구 만나는 것도 잊은 여자, 친구 만나는 낙으로 겨우 버티는 여자, 너무 신나게 사는 여자, 너무 좌절되어 있는 여자,

 

피곤에 절어서 잠자리조차 싫은 여자, 쇼핑 중독증에 걸린 여자, 겉보기 여유와 달리 뒤쳐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여자, 24시간 내내 쫓겨서 자신에 대한 생각조차 못하는 여자 등등..

 

징그러운 것은 이런 다양한 상황의 대다수가 어느 여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30대 여자의 복합 상황이다.

 

한 가지도 고민되지 않을 수 없는데 수많은 상황이 교차하니 얼마나 복잡한가.

 

그러니 그 많은 갈래 속에서 '자아 분열적'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가 세상은 30대 여자에게 말도 많다.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집 장만해야지, 너무 늦었잖아, 너무 빠르잖아, 더 잘 해야하잖아, 그만 둬야잖아 등등..

 

20대 여자에게 주는 축복의 말, 격려의 말과는 달리 뭔가 침 돋은 말들이다. 찔리면 괜히 아프다. 괜히 찔리는 것 같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에서 샐리의 여자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말처럼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바로 이래서 30대 여자들은 푸근하기 보다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노처녀 증후군이 아니라 30대 여자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자아 분열적이 아니라 아예 진짜 분열할 지도 모른다. 물론 공격적인 것이 백 배 낫다. 좌절을 안으로 누르고 실망을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만 접어두는 것보다는 공격적인 것이 훨씬 건강하다.

 

내향 '내'보다 외향 '외' 할수록 진짜 분열할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공격적이라는 말이 싫으면 팽팽하게 바람넣은 공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의 30대도 그렇게 공격적이었따.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사방에서 내 뒷다리를 잡으려드는 것 같고, 내 머리를 쑤셔 박으려는 듯 싶었고, 폐기물 처리하려는 듯 싶기도 했고,

내가 조금 움직임이 느려지면, 금방 표가 나는 게 보여서 피곤했고,

주위에서 외형만 조명하려 드는 게 못마땅했고,

사회에서의 내 자리가 어디인가 고민했고,

몸과 정신과 마음이 다 팽팽한 긴장 상태였다.

 

그렇게 팽팽했던 30대를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실제로 30대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아주 괜찮은 마흔살 성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고 보면 말이다.

 

사십대에는 조금 푸근해져보자 하고 생각했고, 하기는 실제로 사십대에는 나름대로 푸근해졌다. (고백하자면 아주 조금..)

 

이런 자아 분열적인 30대 여자에 대해서는 아예 품평을 하지 않는 것이 맞을 듯싶다.

"괜찮지, 싹수 있어, 멋져, 당당해, 근사해?"

과연 어떤 말로 품평을 할 것인가.

 

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30대 여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30대 여자를 품평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이다.

 

근사한 40대로 넘어갈 만큼 될성부른가?

 

"40대에 일하지 않고 있지 않으면 전혀 일을 안 한 것이나 마찬가이다"라는 소신이 뚜렷한 나다운 협량한 기준이지만 혜량해 주시라.

('일'의 정의는 물론 넓다.)

 

자식의 미래에 목을 맬 것 같은 여자는 질색이고,

자기 남자의 진짜 인생에 무관심할 것 같은 여자는 정말 싫다.

땀흘려 일하는 귀중함을 모르는 여자, 자기 얼굴과 분위기 그대로에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여자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남편과 자식 얘기밖에 못 하는 여자는 괴롭고,

자기 소신대로 사회 평론 한 가닥 못 뽑는 여자는 재미 없다.

(이런 징후가 30대에는 드러난다.)

 

30대 남자보다 30대 여자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 방송인, 영화인 등..

사회에서 30대 여자를 일부러라도 주목해준다.

 

감사해야할 변화인지 아니꼽게 봐야할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월 좋아진 것으로 치자.

 

하물며 여자 35살이 되어야 비로소 매력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우리도 성숙해진 것 아닌가.

 

잊지 말자.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물론 그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여자 30대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남자는 주어진 '중심'이 있기에 흔들리지만, 여자는 자신의 중심을 만들어 가기에 비록 분열적인 상황에서 훨씬 더 괴롭지만 훨씬 더 창조적이다.

 

다중의 압력 속에서 여자 30대는 지나간다. 10년이 긴 것 같은가?

쏜살같다.

화살 같은 30대를 꾸려 가는 당신의 비결은?

 

'늦기 전에' 누드집을 만들건, 더 늦기 전에 '성공 스토리'를 쓰려 하건, 또는 일찍 창업을 하려 하건,

 

30대 여자여, 당신의 '외향 외' 공격성은 위대하다.

 

                                                           -건축가 김진애씨의 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7-28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5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