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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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팀만 받는 식당이 있다. 예약한 손님을 위해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고 손님에게 맞는 음식을 준비하는 식당 주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은 그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까. 맛이 다르다.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는 음식이 된다.

 


십여 년 전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었더니 기억에 없는 내용이었다. 마치 처음 읽은 것처럼 감동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요리에 집중하는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하다. 주로 따뜻한 소설을 쓰는 오가와 이토의 첫 소설을 다시 읽으며 음식과 요리,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다.




 


링고로 불리는 린코가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도착했을 때 집이 텅 비어 있었다. 현관 매트도, 냉장고도, 요리 도구도. 인도인 남자 친구까지 사라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링고는 할머니가 만들어 준 겨된장만을 겨우 찾아 엄마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졸업식을 한 날에 도망쳐 온 그곳으로 말이다. 충격으로 말을 잃은 링고는 단어 카드를 사용해 대화하기 시작하고, 엄마 집의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가 구마 씨를 다시 만났다. 구마 씨의 도움을 받아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기로 했다. 창고를 개조해 하루에 한 팀만 받는 식당을 열었다. 음식 재료는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제품을 사용했고, 예약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그에 맞는 음식을 만들고자 했다.

 


링고의 진심이 통했을까. 링고의 달팽이 식당을 찾은 사람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짝사랑에 빠진 소녀, 특별한 날의 게이 커플, 일 년 내내 상복으로 지내는 할머니, 엄마의 애인이라 여겼던 네오콘, 구마 씨 모두 링고에게 음식을 먹었던 사람이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아이를 데리고 떠났던 구마 씨의 시뇨리타가 찾아온 것이다. 또한 짝사랑했던 상대와 함께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은 커플이 되었다.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고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음식이 가진 귀한 힘이다. 음식에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다.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이유 또한 명확하다. 요리에 진심인 사람이 세상과 화해하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다소 더디긴 하지만 진심이 담겨있으므로 알지 못했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으리라.


 

나는 새로 열 식당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한편으로는 난생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 동굴 같은 장소. (67페이지)






 

사람은 가까운 사람보다 오히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마련이다. 링고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 맞지 않다고만 여겼는데 나중에서야 엄마의 진심을 알았다. 때로는 진실을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된다는 게 문제다. 그렇지만 진심이란 어떠한 경로로든 전달되기 마련이다. 너무 늦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요리를 만든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 내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황홀해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169페이지)


 

타인을 위해 요리하는 링고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링고의 음식을 먹은 사람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정성을 다해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달팽이처럼 느릴지라도 한번 방문하게 되면 또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음식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달팽이 식당의 링고처럼.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리워졌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세심한 손길,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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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재수사 1~2 - 전2권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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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첫 문장, ‘나는 병든 인간이다 …….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소설 전반에 걸쳐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내용과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주축이 되어 흐르고 22년 전의 사건을 수사하는 한 형사와 22년 전의 살인자의 고백이 한 챕터씩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살인자를 좇는 경찰의 제도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고, 살인자의 마음에 갇힌 정의와 불의 그에 따른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상기시키는 소설이다.

 


첫 장부터 살인자의 고백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독자는 나름대로 살인자를 유추해보게 된다. 점점 생각지 못한 인물에게 다가설 것임을 암시받게 된다. 22년 만에 재수사를 하게 된 연지혜 형사가 여성이 갖는 예민함으로 사건을 좇고 수사 방향을 이끌어간다. 22년 전에도 해결하지 못했던 살인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사건 기록과 증거품, DNA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까가 관건이다.




 


살인자를 좇는 경찰에게 가장 큰 희열은 사건의 범인을 잡았을 때일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은 지난할 것이나 어느 순간에 의심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며 이야기를 듣다가 어긋나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22년 전에 사건 관계자로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이 새로운 조사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듯한 그의 발언과 고백은 많은 단서가 된다. 그 단서를 좇다 보면 그들이 쫓는 인물에 한발 다가서게 된다. 그때의 희열과 흥분이란 형사와 독자가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될 것이며 교감의 한 형태가 된다.


 

미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를 통해 형사사법시스템을 돌아본다. 22년 전에는 사건에 관계되지 않았으나 형사 특유의 예리함으로 관계된 인물을 유추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밤늦도록 살펴본 일에서 형사 특유의 감을 엿보게 된다. 재수사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피해자 민소림이 도스토옙스키 독서 모임이었다는 걸 알게 되며 독서 모임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만나며 전환점이 된다. 지금은 사십 대의 인물이 된 그들은 자기의 자리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있을 나이대다. 그들에게 민소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까워지는 듯하나 연지혜 형사는 사건에 관계된 인물들로만 본 것인지 가까워졌다고 여겼던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다만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건 미세하게 어긋나는 지점을 기다렸던 것 같다.

 


살인자를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기다림은 중요할 것이다. 연지혜가 본마음을 숨기며 아이고를 내뱉었던 그 지점을 살펴보면 된다. 독서 모임에 참가했던 한 인물이 연지혜처럼 마음을 숨기며 이야기했던 것처럼. 연지혜는 그걸 기다리지 않았을까. 살인자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릴 것이다. 경찰의 사법제도의 변화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언제든 체포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려 마음을 숨기는 표현을 해야 했으리라.





 

사실 신촌 여대생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와 사건의 관계자로 부각된 도스토옙스키 독서 모임의 인물들로 구성된 이야기로만 구성되었어도 작품에 문제는 없었으리라. 살인자의 독백으로 된 챕터는 살인자가 갖는 사회제도의 부조리와 철학에 가깝다. 지루한 면이 없잖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강력범죄수사대의 활약을 열렬하게 응원하다가 공허와 불안으로 가득한 살인자의 독백은 어쩐지 죄와 벌,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가로 짓는 것 같았다.

 


22년 전에 살해된 민소림은 백치의 주인공처럼 죽었다. 소설이 가진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결말을 아는 자만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함께 읽었다면 느낌이 더 강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게 좀 아쉽다. 장강명 작가의 변화는 반갑다. 한국의 사회적 제도와 살인자를 좇는 미스테리를 표방한 소설적 재미가 뛰어났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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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읽어도 된다 - 50에 꿈을 찾고 이루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23
조혜경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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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을 읽는 습관의 좋은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애써 강조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자꾸 다짐하게 되는 습관이기도 하다. 출근길 대중교통에서 책 읽는 사람은 드물다.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거야말로 좋은 습관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터인데 우리는 책 이외의 것들에 눈을 돌리고 만다. 물론 책보다 다양한 경로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많다. 어떠한 지식을 유튜브로 배웠다는 경험은 자주 들려오는 소식이기도 하다.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있는 요즘에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현재 예스24 블로거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책이다.

 


나이 쉰이 넘어 늦깎이 번역가를 꿈꾸는 평범한 여성의 독서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경험이자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은 좋은 책을 선별하는 것과 글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순전히 책을 읽는 게 좋아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에 가깝지만 말이다.





 

단순히 읽은 책의 목록과 책의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 점과 저자가 꿈꾸어왔던 일본 작품 번역가를 향한 노력이 돋보였다. 언어를 잘하는 것과 번역자가 되는 것은 여러모로 다르다. 좋은 작품을 선별해 읽어야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파고드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저자가 특히 매력을 느끼는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소세키의 여러 책을 읽었다. 이른바 전작주의의 시작이었다. 독서를 좀 한다는 사람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좋아하는 작가의 전작을 읽는 거다. 나 또한 제인 오스틴을 비롯해 작가의 전작을 살피는 일이 허다하다. 깊이 빠지고 깊이 사랑하게 된다. 저자의 경험과 함께 전작주의자가 되는 팁이 수록되어 있어 독서의 습관을 기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살펴보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경험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전작주의가 그랬고, 완독의 경험과 실패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었다는 문장 하나에 매력을 느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시작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표현에 압도되어 완독하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가졌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화자의 회상은 읽기는 읽었으되 무슨 내용인지 앞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이었다. 어떻게든 읽어보겠다고 4권까지 구매했을 뿐 책 읽기도 4권에서 끝났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내용은 마들렌을 먹었던 그 장면뿐이다. 직장에서 해방된 1년 동안에도 끝내 읽지 못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종종 독서의 확장을 경험한다. 교류하는 블로거나 인스타 팔로워의 글에서 관심이 가는 책을 발견하는 것이다. 저자가 건축가 김진애의 글에서 정희진 작가의 여자의 독서를 만나는 부분이 그렇다. 꼭 완독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나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경로를 통해 들은 바지만, 집중력을 높이는 독서법 중의 하나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일이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실행에 옮겨 봤지만 오래도록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꺼운 인문 서적을 읽어야 할 때 소설이나 에세이와 함께 읽는 경험은 해보았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법과 집중력을 높이는 법, 꼬리를 무는 독서법 등 다양한 독서법을 제시했다. 저자의 독서에 도움이 되는 108배 운동법은 특별했다.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운동법이 필요하다. 점심시간 3~40분의 산책이나 일주일에 세 번 요가를 꾸준히 하는 내 운동법과도 비슷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비슷한 습관과 대처법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책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 된다고 본다. 소설이나 인문 서적을 읽든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궁금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것부터 책을 읽고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독서로 시작한 저자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에 대한 노력이 꼭 결실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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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10-3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블루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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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며 내 욕심껏 바라고 다그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자 다짐했었으면서 막상 부모가 되니 자꾸 무언가 되길 바랐다. 하나를 잘하면 둘을 잘하기를 바랐다. 그게 내 욕심이었다는 걸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이들이 내 손길을 떠나 자기만의 삶을 향해 나아갔을 때 말이다. 너무 늦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달라졌을까. 달라지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증조할머니의 기억이 떠올랐다. 심윤경 작가의 할머니처럼 쪽진 머리에 마른 체형을 가진 분이었다. 엄마 시집살이를 많이 시켰던 분으로 기억되는데, 아마 작가의 할머니처럼 말을 아낀 분이었다면 그 기억으로 자식들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무관심이 아닌 무심한 이해를 주었던 사람으로 말이다. 자식 일이라면 왜 불안해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마다 각자 개성이 있는데 어느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가 말이다.




 


작가 할머니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마음속으로는 많은 감정이 오갔겠으나, 무심하게 건네는 한마디에서 심사숙고한 할머니의 마음이 엿보였다. 말을 아낄 필요가 있다는 거를 다시 배운다. ‘저런이라니. ‘저런에 담긴 그 모든 마음이 짐작되었다. 염려와 공감의 언어였다. 우리가 하기 힘든 언어들이다. 해가 갈수록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본인 알아서 잘하련만,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게 된다. 부모의 기대와 염려라고 일컫고 싶겠지만 조바심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작가 친구의 아버지가 했던 말도 배워 실천하고 싶다. 뒤늦게 공부하는 딸에게 등록금을 해주겠다며 했던 말이다. ‘거 뭐 될 필요는 없다.’라는 말. 보통 부모가 하는 말은 열심히 해서 꼭 뭐가 되어라라고 하지 않나. 그 말을 들은 자녀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작용할 터다. 방송에서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꼭 뭐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 자식 걱정에 자기 밥벌이를 하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꼭 뭐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오늘을 살 수 있다. 충분히 만족할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지 않았던 사람이 대학 졸업 후에도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일의 어떤 순간에도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도 있었지만, 훗날 막막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억나는 건 할머니의 단순하고도 짧은 언어였다. 할머니의 언어를 기억해내고 나의 감정을, 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

 


작가의 작품을 꽤 여러 편 읽었다. 할머니의 애틋한 기억이 떠올랐던지 어렸을 적 저자와 함께 있는 할머니의 사진은 익숙하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할머니의 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 또한 수많은 순간에 떠올랐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려 그 기억을 글의 형태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 속에 빛나는 할머니의 언어가 선물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영원히 남아 있을 언어는 기대와 염려로 가득한 우리에게 무심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무심한 듯 이해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대와 염려를 포장한 조바심을 뒤로 하고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을 아끼고, ‘저런처럼 짧은 언어에서 내포하는 수많은 감정을 다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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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0-2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 책이 나왔구나!
얼른 검색해보니까 에세이군요. ^^;;;
 
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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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의미가 크다. 최선을 다하여 일해도 경계선 밖의 끄트머리에서 여전히 헤매는가 하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유유자적한 사람들이 있다. 그 차이의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의 행동은 다르다.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복수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 반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용기를 내 찾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 여성을 보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응원하게 된다.

 


정희는 1092일 전, 46개월 12일을 산 아들 경준을 잃었다. 이후 우울증과 신경쇠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아이를 잃은 후 남편과는 데면데면했고, 경제 활동을 남편 혼자서 책임지고 있었다. 정희는 일자리를 찾았다. 중고생 수험 참고서를 만들었던 경험으로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을 만드는 회사에 지원했다. 면접을 마치고 오랜만에 남편 회사 앞으로 가 기다렸다. 동료들과 나오던 남편이 자기 눈앞에서 실종되었다.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약해진 여성이 남편이 납치된 후 세상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치밀하게 계산된 상황에서 자기의 뜻대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곁에는 의지할 가족 하나 없었다. 남편을 둘러싼 상황들이 점점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한편 정희는 갇힌 세상에서 스스로 빠져나와야 했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돈과 비틀린 욕망에 혼재되어 나타나 전반적인 흐름이 된다.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계곡살인사건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왜 비틀린 욕망으로 점철되었는가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자기 눈앞에서 경험한 사건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자기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돈을 위한 대상으로 보았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냉정한 자였다. 약해빠진 정신으로 슬픔 속에서 허우적댈 거로 여겼던 여성이 한발 한발 다가오자 가차 없이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여성이었기에 쉽게 당하지 않는다. 슬픔을 이기는 동류의식이 정희를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을 주체적으로 내세운 작품이 많이 나온다. 여성이 남성 뒤에서만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낸 작품이 좋다. 남자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일하는 것보다 궁금한 것은 자기가 알아보고 그 이유를 알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을 가지는 게 좋다. 남편이 실종된 후, 남편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 지애의 남편이 찾아오자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희는 강해질 터였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울 거였다.

 


테두리 안에 있는 인물들보다는 테두리 밖에 있는 인물들을 그렸다. 돈이 없어 아이의 심장 수술하지 못했고, 탈북자의 힘겨운 삶을 나타냈다는 점이 독특하다. 꿈과 희망을 좇아 한국으로 왔지만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것을 새로 배워 살아야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정적일 것이다. 북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녔더라도 말이다. 누군가의 유혹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속닥거리는 말은 또 얼마나 의심을 났는가 말이다.

 


사람은 때로 자기를 뛰어넘는다. 뭔가에 빠졌을 때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말도 하고 저런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40~41페이지)

 


다양한 인물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 우리 주변에서 울고 웃는다. 인식하지 못했을 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죽기도 한다는 것을 아프게 바라보게 된다.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이 한없이 울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서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나온다는 건 꽤 반가운 일이다. 새로운 작가를 안다는 것의 묘미가 있고 작품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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