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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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하나를 사려고 하면 고민을 많이 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놓친 물건도 있다. 대신 내 물건이 되면 애틋한 감정을 갖는다. 오래도록 사용하는데 어떤 물건은 십 년 넘게 사용하는 것도 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정리할 시점이라는 거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쉽게 버리지 못하겠다. 미니멀하게 살고자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사는 마음, 하면 살아가는 마음, 물건을 사는 마음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살다(live)’사다(buy)’라고 표현했다. 살아가며 필요한 물건을 사고, 물건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다. 추억이 있는 물건이어서 버리지 못하고, 영혼이 깃든 물건이어서 애지중지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사는 동물을 가리켜 반려라고 지칭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 온 물건을 우리는 반려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반려 물건을 보자면 아버지의 책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번역가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 이윤기가 썼던 책장이다. 튼튼하고 무겁지만 이제는 보내야 할 물건이다.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에게 바이올린은 무척 소중한 물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이고 대체할 수 있으며 사라질 수도 있다고 표현한다. 엄마의 찻잔이 대표적이다. 워낙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손이라 결혼할 때 엄마가 준비해주신 찻잔이나 그릇들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엄마가 해준 찻잔을 당근에 내다 파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서운할 테고. 그러나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나도 못하고 있는 터라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사지 않기,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을 사기,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 가만 보니 이 원칙은 새 인연을 만들 때도 쓸 수 있겠다. 특히 폐기가 쉽지 않은 인연을 맺으려는 사람들은 꼭 참고 바란다. (107페이지)


 

겨울 초입, 트렌치 코트 디자인의 다운을 하나 보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좋아하는 브랜드와 그다음 브랜드에서 장바구니에 넣어두고는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좀 비싸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구매했다. 클래식한 디자인이라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닌가 보다. 저자가 트렌치 코트, 일명 바바리를 구매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은 우리 모두와 같았다. 무리해서라도 사고 싶었던 바바리가 드디어 세일을 시작해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구매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왕 사는 거라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결국 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물건이라는 게 그렇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구매하기 전까지 온통 그것만 눈에 들어온다. 오죽하면 지름신이라는 게 있을까.

 


예뻐서 구입한 부츠가 있다. 지퍼가 없는 부츠인데 오래 걸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발 볼이 넓어 한 사이즈 큰 신발을 사야 하는데, 운동화 사이즈로 잘못 샀기 때문이다. 올해 한 번도 신어보지 않았다. 이런 건 버려야 하는 거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는 아마 일 년 정도는 버려야 할까 버리지 말아야 할까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성공한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두려는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마치 여성 해방이 온 것처럼 욕망하고 성취하면서 동시에 여성 해방이 여전히 멀고먼 현실을 살아 나가야 한다. 그래서 여성의 삶은 때로 앞뒤가 안 맞는 모순투성이일 수 있다. 잔소리를 극히 싫어하는 내가 젊은 나에게 딱 한 마디 잔소리를 한다면 바로 그 모순을 견디면서 나만의 삶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다. (241페이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사준 책상, 비록 현재는 수납장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만 추억과 영혼이 배어있는 물건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울러 책상을 구매했을 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살아오는 매 순간 함께 해왔던 물건인 경우는 특히 그렇다. 텃밭에서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정원처럼 가꾸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늘도 장미 묘목을 심고 왔다. 식물을 가꾼다는 건 온 마음을 주는 일이다. 잡초가 자라면 잡초를 뽑아주고 때에 따라 나무를 잘라 줘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사람과 동물, 혹은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돌보는 물건들도 우리를 돌보고 있었다. 서로가 돌보는 존재가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아울러 수많은 물건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묻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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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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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은 장르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나에게 좋은 소설이면 된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 다른 사람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소설. 이 책을 건네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그런 책. 나에게 천선란은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다. 랑과 나의 사막을 읽고 작가의 세계관이 궁금해졌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보다는 미래의 어느 한 부분을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이 좋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작가는 마음이 움직이는 소설을 쓴다. 천 개의 파랑이 왜 사랑받는가, 무수히 많은 소설 중에서 나에게 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경주마가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기수가 가벼워야 한다. C-27로 불렸던 콜리는 여러 나라에 들어온 부품으로 조립된 휴머노이드다. 다만 다른 휴머노이드와는 달리 소프트웨어 칩이 잘못 끼워져 탄생했다. 콜리는 천 개의 단어를 알 수 있었다. 경주마 투데이와 호흡을 맞추어 달렸다. 경주마는 빨리 달려야 판돈이 올라간다. 어딘가 아프기라도 하면 버려지는 건 당연하다. 콜리는 달리는 도중 손을 놓고 말에서 떨어져 다른 경주마들에게 밟혀 하체가 부서졌다. 투데이를 위해서였다. 폐기될 위기에 처했을 때 연재의 눈에 띄었다.

 


연재는 가진 돈을 다 털어 콜리를 고쳐주고 싶었다. 콜리는 세 명의 외로운 존재들이 감정들을 숨기고 사는 공간으로 들어와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던 보경은 사고로 소방관이었던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감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아마비로 걸을 수 없게 된, 은혜를 위한 다리를 포기하고 버겁게 살아가는 중이다. 연재는 휴머노이드를 고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연재와 은혜는 서로의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관계였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지 않았던 보경은 콜리와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콜 리가 건넨 한마디가 보경의 마음을 움직였다. 보경의 딸인 연재와 은혜, 은혜와 민주, 연재와 지수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된다. 인간들의 감정을 전부 이해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인간들과 어우러져 생활하는 휴머노이드도 호흡을 함께 맞추었던 투데이를 달리게 하고 싶다. 비록 빨리 달릴 수는 없겠지만 주로에서 뛰게 해주고 싶었다. 달릴 수 있는 한 마음껏 달리게 하고 싶다.

 


휴머노이드와 감정을 나누지 못했던 인간들도 점점 마음을 열고 대하기 시작한다. 인간과 휴머노이드, 동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의 사회는 이보다 더 많은 존재가 어우러져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존재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과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니 연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 (113페이지)

 


SF소설이 이렇게 따뜻해도 되는가. 휴머노이드와 경주마, 인간이 타인 혹은 다른 존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는 건 환대 혹은 연대의 한 형태인 것 같다. 빨리 달리는 게 목적이 아닌 느리더라도 자신이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릴 수 있다는 게 행복인 거다.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기 시작한 투데이의 떨리는 호흡에서 행복해하고 있음을 느꼈다.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오늘을 살 수 있다. 비록 그 존재가 인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마음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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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 우리가 사랑이라 말하는 모든 것들 날마다 인문학 4
정지우 지음 / 포르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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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사랑에 아파하고 웃고 했던 때. 지금의 나는 사랑에 대하여 특별히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영화나 소설에서만 사랑을 접하는 것 같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여전히 소설 속 사랑에 목말라하고 영화의 사랑에 마음 졸인다.

 


사랑을 정의 내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관계가 다른 법이다. 저자는 사랑을 글로 배우고 머리로 알기 위한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을 글로 배운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랑도 글로 배울 수 있는 거였다. 수많은 책에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알지 못했던 때부터 우리는 사랑을 글로 배우고 있었다. 훗날 어떤 사랑을 할 거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기다리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범주를 부수고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가? 그럼 그건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의 전화를 기다리고 만남을 기다리는 일. 나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을 자꾸 확인하고자 하는 그것. 저자는 사랑의 기다림을 내 안의 상상에 대한 욕망과 가깝다고 표현했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수많은 상상. 사랑은 관계를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안의 편견과 싸우게 되면서 범주가 무너지는 순간, 범주 바깥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것, 사랑이다.

 


사랑의 면모 중 참으로 멋진 측면을 하나 꼽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인생에 한 번쯤은 자기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바꾸거나 수정하고 재창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69페이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집에 온 데이지가 화려한 셔츠를 만지며 기뻐하는 장면이 있었다. 데이지가 바란 건 돈이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데이지의 눈길에 닿는 자기 재산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가치의 재산정하는 느낌. 사랑은 각자의 가치를 의심하면서 둘만의 가치를 창조해 가는 일이라고 했다.

 


그들의 삶을 보고 나서 우리의 삶은 그에 비해 얼마나 쓸데없을 정도로 복잡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들처럼 삶의 핵심만을 살아낼 수는 없는 걸까? 왜 그저 사랑하는 채로 머무르고 그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그렇게 평생 동반자의 곁을 지켜주다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걸까. (101페이지)

 


이 책의 좋은 점이 영화 속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내용이 훨씬 풍부해졌다. 보았던 영화에 대한 공감과 보지 않았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생 영화라고 할 만큼 <내 사랑>을 좋아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 영화가 더 빛났다. 관절염에 절뚝거리는 모드와 무식한 생선 장수 애버렛의 관계는 처음엔 조화롭지 못했지만, 그들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결국 우리가 인생을 알아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완벽함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와 세계가 일치했던 완벽한 나날들에서 벗어나는 것, 나이듦이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단계임을 받아들이는 것, 삶에서 찾아오는 결핍의 순간들을 의연하게 인정하는 것이 성숙이다. (219페이지)

 


사랑을 글로 공부했다고 하면 좀 웃길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은 글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운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가 서서히 사랑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사랑, 만들어가고 싶은 사랑을. 사랑에 관한 상상이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거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인용한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문장은 우리가 왜 사랑에 목말라하는지 알겠다. 사랑이 있어 오늘을 버틸 수 있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삶의 모든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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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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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끄는 표지를 보고 책의 내용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표지를 선택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 이미지를 줄까 고민하는 것이리라. 또한 한 장의 포스터 때문에 영화를 보기도 한다. 수많은 이유와 핑계가 존재하지만, 그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소설은 영화 포스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영화 소개를 보고는 원작 소설이 궁금했다. 궁금함에 도착하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너무 빨리 읽어버렸다. 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원작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소설과 진행이 같아서 소설을 두 번째 읽는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또한 궁금했던 습지의 장면이 아름답게 표현이 되어 감탄하며 보았다. 영화 매체가 가진 매력이 한껏 돋보였다.





 

영화와 소설의 시작이 같다. 습지 속 늪의 한구석, 체이스 앤드루스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방망루에서 떨어진 거로 보였다. 체이스와 가까웠던 습지 소녀 카야가 용의자로 떠오른다. 1969년의 체이스 앤드루스의 죽음과 1952년의 어린 카야네 가족의 상황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행복했던 기억을 뒤로 하고 엄마가 떠나던 날 아침, 뒤돌아보길 기다렸으나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던 엄마처럼 언니들과 오빠들이 하나둘 집을 떠났다. 술에 취하면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때리는 아빠 곁에 어린 카야 만을 남겨두었다. 얼마 뒤 아빠마저 사라지고 카야는 황무지의 습지에 남겨졌다. 습지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카야는 보트를 타고 나가 홍합이나 굴을 따 흑인 점핑의 가게에서 먹을 것과 바꾸었다.

 




소설과 영화의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떠난 습지의 판잣집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카야가 안타까웠다. 카야는 방문자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숨겼으나 새의 깃털을 가져다주는 테이트로 인해 마음을 열었다. 글을 가르쳐주고 자연과학과 생물학에 관심을 두는 카야에게 책을 가져다주며 조개와 새의 표본과 그 과정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했다. 카야는 자연사박물관에 가까울 정도로 수집품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습지 쓰레기라 불리며 무시와 멸시를 당했다. 어느 상황에서건 돕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갈린다. 카야에게도 그랬다. 카야를 위해 변호를 해주겠다는 톰 밀턴과 아무도 몰래 감방에 고양이를 넣어주기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습지에 홀로 사는 소녀의 성장과 사랑,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 형식을 취하면서 자연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찬 소설이었다.




 

보트로 습지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꽤 아름답다. 한 손으로 보트를 조종하며 몸을 숨길 수도 있는 습지의 세계. 습지를 지키는 사람과 습지를 보호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인해 오늘의 습지가 유지되는 것이리라. 습지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자연의 보고다. 습지에서도 삶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인간의 삶이든, 동물의 삶이든.




 


얇지 않은 책임에도 흡인력이 좋아 금세 읽는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중간에서 멈출 수 없다. 영화 또한 러닝타임 2시간임에도 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언어의 세계, 자연의 아름다움, 누군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외로움에 지친 한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마음이 이해되어서, 테이트를 잃고 체이스를 기다렸던 그 마음이 이해되어서 안타까웠다.

 


신분과 차별이 존재하는 시대였다. 습지 소녀라고 무시하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하여 멸시하는 시대였다. 가족이 없는 카야에게 아버지가 되어준 점핑의 친절, 그 작은 친절과 배려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 된다. 마음이 외로울 때 이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었다면 영화도 꼭 함께 보길 권한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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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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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소설가는 자신의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글로써 나타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 작가가 숨겨왔던 완벽한 거짓말에 대한 완벽한 진실. 열다섯 권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지만, 작가에게는 단 한 명의 친구도, 가족도 곁에 없다. 무엇이 작가를 외롭게 했는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말해야 하는 작가에게 이제 시간이 없다. 단 삼 개월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작가는 4년 전 남편을 죽였다고 고백했다. 남편과 사랑해 마지않던 아이의 죽음이 작가를 고통 속으로 침잠하게 했고, 넓은 저택에서 작업실과 딸 베서니의 방만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진실을 파헤치는 소설인 동시에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에게 필요한 대필 작가와의 우정이 주제인 소설이다.




 


이야기의 힘은 이처럼 놀랍다.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이라 이야기는 더 빛을 발한다. 겨우 서른세 살의 헬레나 로스가 은퇴를 발표한다. 죽기 전에 진실을 말해야 한다. 자기의 문체와 비슷한 마르카를 대필 작가로 선택하여 글을 써야 했다. 화려한 미모를 뽐내던 마르카 반틀리가 아닌 다른 거칠고 늙은 남자 마크 포춘이 헬레나를 직접 만나겠다며 찾아온다.

 


아무도 믿지 않았던, 심지어 엄마조차도 믿지 않았던 헬레나의 변화가 나타난다. 사랑이 시작되었던 사이먼과의 첫 만남, 목숨처럼 지키고 싶었던 베서니를 향한 사랑을 말하며 과거의 기억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고통과 그리움이 혼재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나 보다. 엄마의 방문을 거부하고 타인을 거부하며 죽음을 앞둔 헬레나가 과연 마지막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도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이 있으면 가족이 불행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헬레나는 고통에서 허우적거린다. 곁에서 헬레나가 되어 글을 쓰고 보살피는 사람이 대필 작가인 마크 포춘이다.


 

행복했던 기억들, 찬란했던 아이와의 순간들. 죄책감에 고통스럽다. 드러난 진실은 추악하다. 헬레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에서 헬레나를 응원하게 된다. 엄마라면 헬레나처럼 행동했을 거라는 생각과 어떤 순간에는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 용기에 감탄하게 된다.


 

생각보다 밋밋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이 시작될 무렵 절정의 순간이 휘몰아친다.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의 실수였을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을 거였다.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니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때로는 이처럼 모든 여성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어 사회가 돌아가는 것 같다.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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