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에도 조금씩 다가오는 봄처럼 분주하던 학기 초의 일더미 속에서도 조금씩 안정된 일상은 다가온다. 학기 초부터, 아니 작년에 썼던 교단일기 공책이 내 손에 들어와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다시 읽었던 그 때부터 올해도 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쪽지를 건냈는데 무려 여덟 분이 연락을 해 줘서 조금 놀랐다. (또 작년처럼 옆에 계신 짝지 선생님을 끌어들이는 선생님도 계실 테고…… 함께 쓰는 분이 열 분이 넘으면 공책을 두 권 돌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 일기장이 선생님들의 마음을 잇는 끈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올해는 이 공책 쓰기에 더욱 재미를 붙여야겠다.

   작년 3월엔 모처럼 담임이 아니었지만, 담임만큼 마음이 쓰이는 -내 기질이나 성격에는 정말, 안 어울리는-전교조 ‘분회장’이었던지라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어떻게, 어떻게 1년이 지나가서, 올해는 그 분회장이라는 짐도 벗어서 한결 마음이 가볍다. [OO샘 미안!] 그렇지만 올해 수업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하다. 3학년 9시간, 2학년 8시간. 3학년은 입시 준비라는 허울에 한쪽 눈 딱 감고 문제 풀이만 하고 있는지라 아무 문제가 없지만-사실, 이것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서 좀 있다가 설명하려고 한다- 2학년 수업이 문제다.

   작년에 1,2학년을 대상으로 수업했던 ‘독서’수업은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올해는 ‘안 해야지’했는데, 어쩌다보니 나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2학년 ‘논리학’ 수업 22시간 중에서 14시간은 이OO 선생님께 맡기고, 나는 8시간을 맡았다. 작년에도 이 일기장에 줄기차게 썼지만, 이 ‘논리학(독서)’ 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 - 교재가 없다는 것과 시험을 안 친다는 것.(^^;; 장점이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다.) 선생님이랑 서로 번갈아가면서 학습지를 만드는데 내가 학습지를 만들 차례가 되면 한 사나흘은 머릿속에서 계속 조각글들이 둥둥 떠다닌다.(이번 주가 그렇다.)

   올해 들어 좀 당황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3학년 보충수업 수강신청이 끝나고 강좌이동 기간에 내 반에 들어와 있던 학생들이 무더기로 다른 반으로 옮겨간다며 쪽지(변경신청서)를 들고 찾아왔다.(아마 순위제 신청이라서 내 강좌는 후순위에 대충 넣은 것이리라.) 음……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기분이 참 묘했다. 씁쓸한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니까 다시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결국 몇 명이든 나랑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르는 내 생각의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구구절절 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를 되돌아 볼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일도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무거운 이야기만 잔뜩 썼네. 올해는 선생님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설렌다. 작년에는 일기 쓰는 샘들이랑 밥 한 번 먹자고, 먹자고 해 놓고 결국 못 먹었는데 올해는 먹을 수 있을까?

   몸이 둔해지는 것 같아서 몸무게를 좀 줄이기로 결심했다. 며칠 전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은 구민운동장을 걷는다. 이제 시작했지만, 역시 목표는 거창하다. 운동으로 줄어 들 올해 말의 몸무게를 10년 동안 유지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몸을 위해서는 이렇게 신경을 쏟지만 정작 정신을 위한 운동에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이래 살아서 되려나?

   꽃들이 앞을 다투어 필 꽃철이다.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도 기어이 꽃은 핀다. 그래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철이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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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1-03-2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처럼 올해도 선생님들과 일기를 쓴다. 이름은 좀 딱딱하지만, 그냥 돌아가면서 일기도 쓰고, 생각도 나누고, 서로 댓글도 다는... 공책 한 권에 쓰는 아주 소박한 일기다. 올해 다른 학교로 가신 샘들도 있지만 새로 오신 분들이 네 분이나 함께 해 주신다고 해서, 아홉 분이 함께 일기를 쓰기로 했다. 아마, 올해도 이 일기장으로 행복해 질 수 있을 듯!

양철나무꾼 2011-03-30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은 선생님도 학생들도 다 분주한 계절인가 봐요.
앞 다투어 필 꽃들도 분주하고~^^

'결국 몇 명이든 나랑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신 님, 좀 멋지십니다.
님 같은 멋진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느티나무 2011-03-30 01:12   좋아요 0 | URL
네... 학기 초는 좀 바쁩니다. 애들도 샘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사람이 바뀌면 환경이 다 바뀌는 것이니까요.
고맙습니다....만 저, 그다지 멋진 교사는 아닌데요... 늘, 말이나 글이 제 행동을 앞서 나갈까봐 노심초사하는 소심쟁이랍니다. 근데, 다른 학교도 다 비슷하겠지만, 열심히 가르치시는 선생님들도 정말 많더라구요.
 

   '예쁘고 착하신’ 이OO 선생님께

   선생님, 저는 진복이 아빠입니다. 가끔씩 알림장에다가 진복이의 일상에 대해 흔적을 남긴 적이 있는지라 짧은 편지글 쓰는 일이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선생님께 저의 ‘참’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이렇게 씁니다.

   진복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 내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집에서야 저 혼자니까 할머니들과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는데 익숙해져 있는데, 어린이집이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니까 선생님의 관심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나 싶었거든요. 더구나 녀석이 태어나기를 힘들게 태어난지라 인지 발달도 조금 느리고, 몸도 약하고, 체격도 무척 작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부모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며칠이 지나니까 녀석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을 아주 신나하더군요. 행복반 친구들도 좋아하고, 특히 선생님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마음이 푹 놓이는 게, 아 녀석,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복을 타고 났구나, 싶었답니다.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 속에서 즐겁게 보내는 경험만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제 복은 제가 타고 난 셈이지요. (저희는 복이를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었거든요.)

   복이가 처음에 밥을 먹다가도 식판에 토한 적도 있고, 똥오줌을 못 가려서 바지에 묻히기도 하고, 말도 어눌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어서 제대로 활동하기도 힘들었는데, 어린이집에 다닌 1년 동안 스스로 밥도 떠먹고, 스스로 응가도 하고,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고, 달리기도 씩씩하게 잘 하는 어린이로 자랐습니다. 복이가 이렇게 자라는 데는 선생님의 넉넉한 배려와 따뜻한 사랑이 절대적인 힘이 되었겠지요?

   우리 복이가 앞으로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무수히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복이가 제 일생에서 만난 첫 번째 선생님을 무척 따르고 좋아하고,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니까 앞으로 만날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기대감도 무척 큰 듯 합니다. (선생님은 좋은 분,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나 봅니다. 복이는 제 주변에 다 좋은 사람들만 있는지, 세상에 ‘악당’이 없대요. 싫은 사람도 없고……)

   선생님께서 행복반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한 사랑을 듬뿍 주시고, 다양하고 신기한 활동 많이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복이가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 만든 거 자랑도 많이 하고 가지고 잘 놉니다.(비록 녀석이 만든 게 아주 형편없더라도 자기는 좋아하더라구요.) 그 때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거 계획하고 준비하려면 선생님께서 들이시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날 텐데……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1년 동안 알림장에 써 주시는 글 읽는 재미도 좋았고, 카페에 들어가서 행복반에 활동 사진 올려진 거 보는 게 제 일상의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행복을 누리기가 어렵게 됐네요. 그래서 ‘또래또’를 떠나는 복이뿐만 아니라 저도 무척 아쉽습니다.

   OOO 선생님!

   일 년 동안 복이를 잘 보살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진복이와 저희 가족은 앞으로 오래도록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또래또어린이집, 행복반 진복이 아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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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1-03-2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복이는 어린이집 사정으로 3월부터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닌다. 지난 2월에 그 동안 아껴주신 진복이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드렸다.

2011-03-24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8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권력의 법칙, 제목만 보고 정치 권력에 대한 속성에 대한 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인간 관계에 대한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흔히 말하는 처세술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들이 비웃으려나? 아무튼 나로서는 무척 생소한 내용의 책이었다. 처세술이나 이런 분야의 책은 거의 읽어 본 게 없어서... 평가하긴 좀 어려운데 재밌는 것도 있고, 밑줄 친 내용도 좀 있다. 그치만 직장 생활이 저런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살벌한 곳이라면 사는 게 참 피곤하겠다,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권력의지란 게 아예 없는 인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어둠의 불은 같은 작가의 수도원의 죽음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고른 책이다. 양철나무꾼님의 서재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수도원의 죽음에 나오는 등장 인물도 있고, 주인공도 같은 사람이고 그래서 읽기에 좋다. 이제 한창 소설의 중반부에 돌입. 역시나 이런 소설은 읽는 맛이 좋다. 읽어 본 추리소설이 전무했는데, 대지의 기둥을 비롯해서 한 두권 늘어나고 있다.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와 갈보 콩은 모처럼 리뷰를 썼다. 근데 쓰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예전에 썼던 리뷰는 꼭 '한글'에 썼다가 알라딘에 옮겼는데, 이번에는 그건 것도 없이 그냥 바로, 써서 올렸다.(왜 그랬지?) 아무튼, 교사로서 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자극을 주는 책은 언제나 좋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께 권해 드려야지. 

   갈보 콩은 리뷰에도 썼지만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깔깔거리며 읽었다. 이렇게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 문학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투리 표현으로 따진다면 '한티재 하늘'의 경상북도 사투리 표현과 함께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근데 킬킬거리다가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싸해지는 게 팍팍한 농촌의 현실도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래서 내가 읽을 다음 소설은 감은빛 님께서 귀뜸해 주신,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이시백)이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집에 굴러다니던(?) 책이다. 돈 얘기라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안 읽고 있었는데, 의외로 내용이 가벼워 보여서 집에서 멍하게 있을 때 짬짬이 보게 되었다. 음... 돈을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수유+너머>가 단순한 연구실이 아니란 사실도 엿보게 되었고... 그 공동체의 모습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열하일기를 읽을 때 잘 느껴지지 않던, 저자의 생기발랄함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2월에는 더 재미난 책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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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진복이의 이모할머니께서 무선조종 장난감을 선물로 보내셨다. 진복이의 취향대로 주황색의 날렵한 스포츠카를 총모양의 무선조종기로 조종하는 장난감이다. 장난감을 보자마자, 신이 난 녀석은 내가 건전지를 끼워넣자마자 벌써 집안에서 조종기를 잡고 차를 앞으로 뒤로 제 맘대로 굴려본다. 그러나 좁은 거실이니 금세 차가 이리 쿵, 저리 쿵 곳곳에 부딪힌다. 

   진복이가 자동차를 저렇게 조종하는 모습을 보니 슬슬 걱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꽤 지난 일이긴 하지만 녀석은 전에도 제 이모에게서 비슷한 장난감을 선물 받았는데, 첫날부터 오늘처럼 아무 곳으로나 몰고 다니다가 벽에 세게 부딪힌 다음에는 작동이 되지 않아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장난감은 고이 모셔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짜 몇 번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비싼 장난감을 방치해 둔 경험이 있는지라 진복이가 또 저러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저렇게 서툴게 조종하다간 오늘 또 바로 고장나 버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녀석을 살살 꼬셨다. "복아, 우리 이 자동차 가지고 밖에 나가서 놀까?" "응, 좋아. 아빠, 그런데 어디 가지?" "응? 글쎄, 구민운동장 갈까, 아냐, 거긴 걸어가기엔 좀 멀어. 그럼 우리 지하주차장 넓으니까 거기 가 볼까? 차가 들어올 수도 있지만 조심하면 돼"  "응, 좋아. 아빠 가자" 녀석이 조종기를 잡고, 내가 자동차를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주차장에 자동차를 내려놓으니 녀석은 신이 나서 자동차를 이리저리 조종한다. 그런데, 이 자동차 바퀴가 똑바로 설정된 게 아닌지 약간 삐뚤하게 달린다. 그러니까 자동차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바로 가지 않고 주차장 이곳저곳의 벽이나 자동차 바퀴 받침대를 또 들이받는다.  

   그런데 그걸 잠깐 보고 있는 내 속이 또 터진다.  어휴, 이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아니 진복아, 이렇게 핸들을 돌리면 옆으로 피해갈 수 있다구, 진복아, 이거 한 번만 더 부딪히면 고장날지도 몰라. 좀 조심해서 운전해 줘, 진복아 저기 자동차 들어온다. 어서 피해! 나도 모르게 10초 간격으로 계속 진복이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진복이도 지지 않고 꿋꿋하게, 내가 알아서 한다구, 아이~ 아빠는... 알았어. 조심할게, 아빠 이거 안 돼, 도와줘. 이렇게 받아치거나 넘긴다.

   결국 30분을 계획하고 나온 우리의 지하주차장 자동차 놀이는 무선자동차 앞바퀴가 빠지면서 20분도 안 돼서 끝나고 말았다. 올라오면서도 다시 이어지는 잔소리. 진복아, 그렇게 아무데나 세게 부딪히게 하니까 결국 자동차 앞바퀴가 빠져버렸잖아! 이거 집에 가서 다시 고쳐야 한다구. 결국 같이 놀려다가 잔소리만 실컷 퍼붓고 만 셈이다.  

2004년 알라디너 진/우맘님께서 써 주신 나의 심리검사 결과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CP13. CP는 비판적인 어버이로서의 자아입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가, 얼마나 비판이나 체벌, 또는 규범을 중시하는가를 알려줍니다. 13점이라면 그다지 관용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굳이 표현하자면 '지배적'이라고나 할까요. CP가 높으면 이상 또한 높은 편이지만, 타인을 부정하는 성향 때문에 자칫 주변으로부터 독선적이다, 완고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욕심이 많아 자주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게 될 수도 있구요. 13점이라면 심하게 극단적인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관대해지자>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NP16. NP는 양육적인 어버이로서의 자아입니다. 이 점수가 높은 분들은 대개 착하다는 평을 듣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며 타인에게 잘 공감하는 편입니다. 짝짝짝...가장 이상적인 점수는 16점이라는 견해가 있거든요. 16점, 완벽한 점수네요.^^ 게다가 아까 CP가 좀 높은 경향이 있었기에 더욱 바람직합니다. CP는 <타인 부정>, NP는 <타인 긍정>이라 요약할 수 있거든요. 약간 높았던 CP 점수를 NP가 보완해줄 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세요, 혹여, <잔소리꾼>이라고 구박받을 수도 있답니다. 바라는 기준은 높고, 그러면서도 꼭꼭 챙기고 싶어하니까 말예요.^^ 참,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과보호에 주의하셔야 하구요.

   아주 오래 전에 받은 결과지지만, 검사 내용이 감추고 싶은 내 속내를 그대로 뒤짚어 낸 듯해서 뜨끔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잊지 않았다. 그러다 요즘은, 진복이를 대해는 내 태도를 보면서 스스로 되짚어 보게 된다. 자, 조금 더 너그럽게...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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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1 0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 배움이 있는 수업만들기
사토 마나부 지음, 손우정 옮김 / 에듀케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수업이 바뀌면 학교를 바꾼다를 읽었다. 아마, 순대선생님이 쓴 리뷰를 본 게 기억에 남아있어서 고른 책이 아닐까 싶다. 230쪽 정도의 두껍지 않은 분량, 게다가 책의 크기도 보통 책보다 적고, 또 직업이 직업인지라 작심하고 읽으려 했다면-더구나 요즘엔 더더욱- 한 이틀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그만큼 확 와 닿지는 않았단 얘기. 그러면서도 끝까지 읽은 걸 보면 뭔가 마음에 흔적이 남았단 얘기도 되겠다. 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하면서 마음에 닿은 이야기와 내 마음을 비켜간 이야기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  

   우선 내용 정리부터, 이 책은 학교라는 조직은 '외부에서 쉽게 바꿀 수 조직이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럼, 학교를 바꾸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를텐데,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정답을 일러주고 있는데, 바로 수업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학습만 이뤄지고 있는 교설 수업을 진정한 '배움' 이 있는 수업으로 바꿔야 한다.(1부) 수업 공개를 상시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공개연구회를 개최한다.(2부) 국가나 교육청 단위의 주어진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배움'의 과정에서 파생할 수 있는 총합학습을 중심으로 일상적 교육과정을 구성한다.(3부). 주장을 담은 내용은 여기까지고 4부에서는 1,2,3부의 학교 개혁의 성과가 있는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먼저 내 마음에 닿은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첫 번쨰로 1부에서 교실 수업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 의식에 공감이 갔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배우기면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기 보다는 '배움'에 대한 교사의 방향성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수동적 능동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적절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자기주도적'학습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름은 그럴싸한데, 이게 뭐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 는 옛말의 최근 유행 버전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결정적으로 '무엇'을 배울 것이냐, '어떻게' 배울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배움에 '무엇'과 '어떻게'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교사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움'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관계'이다. 교사가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일제식학습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아이들의 목소리까지도 거기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이런 수업이야 말로 진정한 '배움'이 싹트는 수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말하기'보다는 '듣기' 활동에 대한 강조도 인상 깊었다. 나도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소모임 활동을 몇 년째 해 오면서 항상 강조하는 게 '듣기'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앉아서 듣기만 한다는데, 동아리 활동을 해 보면 모두들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남의 이야기에 정성껏 귀를 기울이는 학생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모든 '배움'의 출발은 '듣기'이고, '듣기'야 말로 사실, '배움'의 주된 활동이 아닌가? 정말, '말하고 쓰는' 시간은 아무리 상호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수업시간이더라도 그 비중이 '듣기'보다 많을 수는 없을 것 같다.(어쩌다 1~2시간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세 번째는 연간 수업 공개를 상시적으로 운영하자는 데도 공감이 간다. 수업 공개를 통한 학교의 변화는 아마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는 아마 최고의 제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수업 공개 방식이나 제도가 1회적이고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건 두번 말하면 입 아픈 사실! 그래서 수업공개를 교과 동료교사들끼리 상시적으로 열어두고 모든 교사들이 수업 공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하자는 제안은 좋다. 사실, 최근에 들어서 현장에서는 점점 이런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지만 전 교사 수업공개(동교과 교사 참석)는 기본이고, 학부모 수업 참관 주간 설정에다가 작년에 도입된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위한 수업공개까지... 이젠 적어도 수업 공개 활동이 교사들에게 '왜?'라는 의문을 품어야 하는 낯선 활동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네 번째는 총합학습에 대한 관심도 좋았다. 총합학습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은데, 교사나 학생이 관심을 가지게 된 특정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깊이 연구해 보는 교육활동 정도로 이해하는 정도다. 주제 중심의 교육활동이라고 해야하나? 예를 들어, 초등 저학년 정도의 수업이라면 연필을 주제로 정했다면, 연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필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연필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이런 것들을 범교과학습으로 묶어서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고등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창의적체험활동'이라는 과정을 한 주에 4단위(주당 4시간) 개설된다. 이 창체시간 안에다가 계발, 자치, 행사, 적응활동을 포함시키서 운영한다. 이 시간을 학교현장에서 새로운 수업 모델로 운영할 수 있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총합학습이 운영대로 저자의 기대대로 교과학습의 변화까지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이 책에서 말한 '총합학습'이라는 개념이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학기에 계발활동으로 지역사회탐구반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지역내 여러 공공, 사회단체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계발활동 1시간으로 운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뒤에 이어지는 보충수업시간을 함께 묶어서 운영해 볼 결심을 했다. 학교에서는 진학공부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일에 튀는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제는 그 정도 눈치주기는 슬쩍 외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까. 결심이 섰을 때 자신감 있게 한 번 시도해 보자.  

   이제는 이 책의 내용 중에서 내 마음을 비켜간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 본다면 대부분의 사례가 초등학교 중심이고 중학교의 사례도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일본의 사정도 우리와 비슷할텐데, 초중학교는 대학입시의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니까 다양한 형식의 수업모델의 개발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특히 고등학교는 모든 수업 방법이나 내용이 입시를 떠나서는 유명무실해 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은 개별 교사의 책임도 있겠지만 제도의 책임이 더 크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입시 체제를 그대로 두고는 다른 어떤 처방이나 아무리 좋은 선진 시스템을 도입해도 학교 현장에 처방과 시스템이 적용될 때는 왜곡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교육개혁의 실패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수업 공개를 연간 운영한다고 할 떄 어쨌든 교사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일텐데...일반 학교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책에서 소개된 소규모 학교거나 정말 학교의 변화해야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면 모를까?) 단순히 수업의 공개 운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수업을 통해 자신의 수업 상황도 함께 반성적으로 성찰해서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럴려면 모든 교사들이 이 수업 공개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할 것이다. 이는 어떻든 구성원 모두가 간절히 필요하다고 느껴야 가능한 일이다. 역시나, 어려운 문제!(물론 책에서는 교사들이 수업 공개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교장이 교사의 '잡무'를 다 없애버리는 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이야 말로 혁명이다.) 

   마지막으로, 총합학습의 '배움'이 교과학습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총합학습은 기본적인 시수가 교과학습에 비해 훨씬 적지만, 이 수업방법을 통해 일반 교과학습에도 총합학습의 방법이 적용되어 실질적인 교육과정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인데, 내 경험상으로는 실제 결과는 그 반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당 2시간 정도의 수업으로 전체 30시간  교과학습의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다. 교과학습의 틀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총합학습도 교과학습의 구태를 답습하다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 지적들이 이 책을 쓴 의도와는 한참 벗어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전제에서 말한 것처럼  수업(배움)을 통해 학교를 바꾸고,  다시 학교를 통해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는 듯 하고, 내 지적은 기본적으로 지금과 같은 학교 틀에서는 어떤 일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몹시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할 시점, 매끄럽지 못한 번역문이 좀 거슬리나 얇은 책이 던지는 시사점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 대상이 초중등학교에 한정되어 있을지라도 교직에 있거나 교육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덧붙임 -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교사들을 중심으로 시도하고 있는 학교모델이 '혁신학교'라고 알고 있다. 이제 변화가 시작되었는가? 어쨌든 그 변화의 바람이 공교육의 벽을 뚫고 들어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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