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라고 다 같은 소나무가 아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 따라 모양과 때깔이 다르다. 종자에 따라 뻗어나간 기상도 다르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자라는 금강송. 국내 소나무 가운데 금강송과 견줄만한 소나무는 없다. 제 아무리 아름다움을 뽐내는 소나무라 하더라도 금강송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싱싱한 놈은 껍질도 붉고, 거죽을 벗겨낸 몸통도 붉다. 그래서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불렀다. 이 소나무는 굽을 줄을 모른다. 오로지 하늘을 향해서만 쭉쭉 뻗어 올라간다. 배롱나무처럼 실실 허리를 꼬며 자라는 경주 삼릉의 솔숲과는 견줄 수 없는 품격이 있다. 금강송과 마주하는 순간 자연에 대한 존경과 경이로움이 몰려온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지존의 포스가 느껴진다. 오죽하면, 조선의 황실에서는 금강송 군락지는 함부로 벌채할 수 없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궁궐을 짓거나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만 베어다 썼을까.  


 

 

생태경영림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고의 금강송 군락지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는 금강송 군락지 가운데 최고로 꼽는 곳이다. 낙동정맥의 깊숙한 품에 자리한 이곳은 늘씬하게 하늘로만 치솟은 금강송이 산과 숲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다. 헌걸차게 치솟은 금강송의 자태도 자랑거리이지만 이처럼 규모 있는 숲을 찾아보기 어렵다. 워낙 깊은 산속이라 일제와 한국전쟁 등 근대화의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자행된 벌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의 면적은 2247ha. 수령 500년이 넘은 보호수 두 그루와 350년 된 미인송, 200년 이상의 노송 8만 그루 등 총 1,284만 그루의 금강송이 이곳에 자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1959년부터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금강송 군락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6년. 남부지방산림청이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 에코투어’란 이름으로 일반에 개방했다. 이로써 과거 조선 왕실부터 봉산으로 지정돼 신비에 싸여 있던 이 숲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소광리 금강숲을 둘러보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임도와 산책로를 따라 짧게 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도를 따라가면서 종일토록 금강송을 찾아다니는 방법이다. 대부분은 2시간이면 충분한 탐방코스를 선택한다.   

 

매끈하게 뻗어나간 금강송의 자태. 금강송은 젊고 싱싱한 것일수록 몸통의 껍질이 붉다.

500년을 살아온 할아버지송에서 풍기는 세월의 무게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주차장에 도착할 때부터 솔향기가 가득하다. 주차장을 감싼 숲이 모두 금강송으로 빼곡하다. 사람들은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주차장 주변에 심어진 금강송은 후계림으로 조성된 것. 고작해야 연차가 20~30년 밖에 되지 않는다. 100년 이상 묵은 진짜 금강송들은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산책로는 임도를 따라 조성됐다. 부드러운 흙길이라 걷기 좋다. 물론, 길 좌우로 금강송이 사열을 하듯 서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길은 가볍게 굴곡지면서 계곡을 향해간다. 100년 전에 낙동정맥 고개를 넘는 길이 그랬을 것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그 길을 따라 600m쯤 가면 길 한 켠에 우람한 덩치의 금강송과 마주보게 된다. 첫눈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젊고 패기 넘치는 여느 금강송과 달리 만고풍상을 다 겪은 눈치다. 이 나무가 할아버지송이다. 

   할아버지송의 나이는 무려 500살. 조선 9대 임금인 성종 때 태어났다. 할아버지송은 여느 금강송과 달리 몸통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두껍다. 굵기만 두꺼운 게 아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용 모양으로 가지가 심하게 뒤틀렸다. 몸통을 감싼 딱지는 거북의 등짝처럼 두껍고 단단하다. 할아버지송 곁에 금강송과 일반 소나무의 속살을 비교 체험할 수 있는 안내소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금강송숲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할아버지송을 지나면 길이 아주 조금 가팔라진다. 임도 좌우에 도열한 금강송의 호위는 여전하다. 왼쪽은 후계림 조성 구역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금강송이 드문드문 서 있다. 그 빈자리에는 갓 식재된 어린 금강송이 자라고 있다. 어린 금강송은 100년이 지나면 여느 금강송처럼 우람한 청년이 될 것이다.  

   금강송이 군락을 이룬 숲은 초록바다를 연상케 한다.  

초록이 물든 숲에 붉은 기둥처럼 금강송이 수직으로 가르며 서 있다.

   할아버지송에서 400m쯤 가면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탐방로는 왼쪽 계곡으로 든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타고 가며 금강송을 감상한다. 산책로는 임도를 따라 걷는 것과는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 아주 깊은 솔숲에 든 것처럼 금강송 사이사이를 빠져 다닌다. 길의 기울기도 가팔라진다. 임도를 따라 편히 오던 것과는 달리, 가파른 계단에 가쁜 숨을 토하게 된다. 그러나 금강송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신한 기운이 몸속 깊이 파고들어 생각만큼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 길은 전망대에 닿는다. 임도 갈림길에서 10분 거리다. 2시간 탐방 코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자 주변의 금강송을 조망하는 포인트다. 360도를 돌아봐도 금강송의 바다다. 젊고, 싱싱한, 붉은 빛이 선명한 나무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을 훔치면서도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전망대에는 금강송을 잘라 만든 쉼터가 있다.  

임도에서 다시 계곡으로 들면 지름 120cm 금강송이 기다려 


   전망대에서 두어 걸음이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이곳에서는 오른쪽으로 돌아내려간다. 왼쪽으로 가면 끝도 없이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를 따라서 200m 내려오면 길은 다시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정표도 있다. 편한 길을 걷고 싶다면 계속 임도를 따라가도 된다.

   계곡을 따라서도 여전히 금강송 군락지다. 그 중에 하나, 아주 우람한 덩치의 금강송이 길을 막아선다. ‘여러분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를 안고 기념촬영하세요’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 이 나무의 높이는 35m. 아파트 10층 높이다. 가슴둘레의 지름은 120cm. 어른 둘이 껴안아도 쉽지 않을 만큼 두껍다.

   ‘포토 스팟’을 지나면 작은 계곡을 가로질러 다시 임도 위로 올라선다. 임도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처음 금강송 숲으로 들던 갈림길이다. 올라오던 길도 그랬지만 돌아가는 길도 발걸음이 편안하다. 여전히 임도 좌우의 숲에는 학처럼 고고한 자태의 금강송이 긴 목을 빼고 작별 인사를 건넨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로 나와 영주 시내를 거쳐 간다. 영주~봉화~울진으로 이어진 36번 국도는 춘양까지 4차선으로 확장됐다. 춘양부터 울진까지는 2차선이다. 서면 쌍전리 통고산자연휴양림 지나 3km 가면 왼쪽으로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917번 지방도가 나뉜다. 주차장까지는 917번 지방도를 따라 13,5km, 약 30분쯤 가야한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고, 폭우가 내리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대중교통은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시내버스가 없어 불편하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

문의 : 울진군청 문화관광과(054-785-6393)

   걷는 길은 특별히 어렵지 않다. 다만 전망대로 올라서는 곳만 조금 가파를 뿐이다. 또 등산로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말뚝을 박아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곳이 중간중간 있어 자칫 긁히는 상처를 입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임도만 따라서 산책을 하면 노약자도 어렵지 않게 갔다 올 수 있다.

숙박
   금강송 군락지로 들어가는 길에 민박과 펜션을 하는 곳이 두어 곳 있다. 금강송 군락지 주차장에서 1km 아래에 ‘T131’(054-781-6693)이라는 오토캠핑장이 있다. 오프로드 동호회에서 즐겨 찾는 곳으로 캠핑 여건이 좋다. 통고산자연휴양림(054-783-3167)의 산막과 캠핑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902/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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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은 잘 치고? 이제 고통의 밤은 지났고, 어제 밤은 편하게 잘 잤나? 또 시험기간에는 또 시험만 끝나봐라 이러면서 버텼던 건 아니었나? 그런데 정작 시험이 끝난 후에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지? 좀 허탈하기도 할 테고, 아쉬울 수도 있고, 무덤덤할 수도 있겠지. 사실 모든 일이 그래. 마냥 좋을 것 같은데, 정작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대부분이지. (사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단다.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친구들도 동아리에 들었다는 그 기쁨의 순간은 잠깐이고, 공부하다 보면 마냥 좋기만 할 수도는 없겠지?)

   시험의 결과는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면 된다. 노력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억울해 할 필요도, 은근히 결과가 잘 나왔다고 안도할 필요도 없다. 그 억울함은 다음에 보상을 받을 것이고, 그 안도감은 다음에 되갚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을 경험으로 깨우치게 된단다. 어쩌면 이런 걸 인생이라고 하는 것일까?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다시 모이는 글밭 나래, 우주인은 거의 새롭게 시작하는 모임이다. 지금까지는 문학을 중심으로 해서 읽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활동을 계속해 왔는데, 앞으로는 방향을 약간 바꾸어 사회과학 책을 텍스트로 삼아 나와 사회와의 관계를 파악해 보는 활동을 해 보려고 한다. 그러니 게으름 부리지 말고 더욱 정진해서 괄목상대할 수 있도록 애써주렴. 이제부터는 뒤처지면 다른 친구들과의 차이가

   이번에 고른 책은 ‘신문 읽기의 혁명(손석춘)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된단다. 또 우리가 당연하다가 여기는 많은 사실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아래는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읽고 썼던 리뷰.

   …… 신문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전해 줄 수 없기에 중요한(사실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신문이 등장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로 ‘누구에게 중요한가?’와 ‘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가?’의 문제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면 ‘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모범 답안이 될 테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너무나 모범 답안이기에 신문사의 어느 벽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액자’로 고이 모셔진 글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 (중략)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신문사의 사정을 잘 모르면 모든 신문이 다 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자세히 보면 신문의 논리적 어조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다. 우리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가 신문을 읽는 행위는 ‘여론’으로 포장되고, 거기에 따라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 하나 읽는 것에도 세심한 주의와 선택이 필요하다. 이렇게 신문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를 현명한 독자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 기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소식을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을 때나, 갑자기 신문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오직 신문에 나왔다는 걸로만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나, 청소년들에게 신문이 객관적인 진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꼭 필요하고도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주변의 신문들이 좀 다르게 보일 거다. 어느 신문이 좋다, 나쁘다 같은 단순한 관점이 아니라 모든 신문이 각자의 관점에서 사실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진리를 알 수 있다. 그  신문사의 관점이 곧 내 관점이 되는 게 문제겠지만…… 그래서 너희들이 직접 신문사의 입장을 드러나는 기사를 분석해 오는 작업을 해 오는 게 이번 활동 내용이다. 어떤 사건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는 두 신문사의 입장이 드러나는 사설을 찾아서 그 차이를 분석해 오렴. 모임할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거든 언제든 찾아와서 물어도 좋다.

   새로 온 친구들 모두 환영한다. 그럼, 다음 주 수요일 모임(도서실)인 거 알지?

-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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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09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조선일보'문제에 엄격한 이유는 '조선일보'문제를 대단한 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기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을 수 있어.그러나 사람에겐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본이라는 게 있고 '조선일보'와 상종하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야.'조선일보'에 글 쓰는 놈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야.

김규항의 한구절이 생각나서 옮겨봤어요.
전 이글을 읽고나서 주변의 신문들이 좀 다르게 보였거든요~^^

느티나무 2010-10-10 00:35   좋아요 0 | URL
사람이 아니,라는 말... 충격이었죠. 근데 왜 우리는 그 기본조차 안 되는 건지? 참... 근데요, 요즘 학생들 집에서 부모님이 보시는 조중동을 많이 봐요. 그러면서 조금 똑똑한 척을 하기도 하죠^^;; 그럴 때면, 참 곤란하기도 합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아무튼 다음주 수요일에 모임하면 재미도 있을 겁니다.ㅋ
 

   선자령(1,157m)은 대관령을 지나 북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에 솟은 봉우리다. 산이라 부르기가 어색할 만큼 펑퍼짐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산세가 소의 등짝처럼 부드럽다. 이는 선자령만 그런 게 아니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을 거쳐 황병산에 이르는 구간의 산세가 모두 그렇다. 1972년 동양 최대 규모의 삼양목장이 조성된 것도 이 같은 지리적 여건 때문이었다. 삼양목장의 넓이는 1,983만m². 여의도 넓이의 6배나 된다. 이 드넓은 초원이 아늑한 구릉 사이로 펼쳐져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여기에 최근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졌다.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바람을 이용해 청정에너지를 생산하자는 것. 또한 초원의 풍경과 풍력발전소가 어울려 특별한 감동을 줄 것이라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백두대간 마루금에 풍력발전소를 세운 것이 오히려 자연미를 헤치고 있다는 논란이 있다. 

 

 

목동이 되어 목장 길 따라 걸어가는 길

   선자령은 대표적인 눈꽃 트레킹 명소다. 대관령에서 이어진 산길이 부드럽고 평탄한데다 적설량이 풍부하기 때문. 그러나 선자령 트레킹의 진정한 묘미는 가을이다. 높고 푸른 창공 아래, 하늘만큼 넓은 삼양목장의 초원이 펼쳐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목장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알퐁스 도데의 소설 []에 나오는 목동처럼 순박한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길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지 않아 거의 평지를 걷는 것처럼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트레킹은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에서 시작한다. 선자령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 대관령휴게소에서 곧장 시작하는 코스는 양떼목장을 거쳐 백두대간의 7부 능선을 따라 선자령으로 간다. 이코스는 하산 길로 이용하는 게 좋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향해 가면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국사성황당으로 가는 길이 있다. 또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가는 길도 있다. 두 갈래 길은 국사성황당 위의 잘록한 안부에서 만난다. 따라서 어느 길로 가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대관령휴게소에서 국사성황당까지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국사성황당에서 오른쪽으로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대간 마루금에 선다. 마루금을 따라 KT통신중계소까지 시멘트포장도로가 나 있다. 등산로는 KT통신중계소 입구에서 왼쪽으로 빠진다. 초입에 지도가 있는 커다란 안내판이 있다. 

동해를 가슴에 품는 새봉 전망대의 탁 트인 조망

   갈림길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산허리를 가로질러 가는 길 주위에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야생화가 만발한다. 야트막한 구릉 같은 산줄기 너머로는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바람개비 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길은 대부분 숲 그늘 속으로 나 있다. 키가 높지는 않지만 활엽수가 이룬 숲은 제법 깊다. 그 숲을 요리조리 헤치며 길이 이어진다. 

    KT통신중계소에서 10분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새봉의 옆구리를 타고 가는 길이다. 동해의 전망을 보려면 오른쪽 길을 택해 새봉 정상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새봉 정상은 멀지 않다. 숨이 조금 가빠지려고 하면 하늘이 툭 터지면서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새봉 전망대는 동쪽을 향해 반원형의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 서면 동해바다가 남김없이 펼쳐진다. 대관령 아래 첫 고을 강릉시를 필두로 동해 해안선의 아늑한 풍경이 시원하다. 겨울에는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바람이 거센 곳이기도 하다.  

 

 

   - 선자령에서 바라본 북쪽의 백두대간 능선.  

풍력발전기가 주릉을 따라 이어지고, 목장의 도로도 아스라하게 이어졌다.  

   새봉을 지나면 길은 다시 숲으로 든다. 활엽수 숲은 생각했던 것보다 깊다. 한낮에도 어둑어둑할 만큼 우거졌다. 그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 새봉 전망대 전에 나뉘었던 길과 다시 합류한다. 두 길이 만난 후부터 다시 산길은 평온을 되찾는다. 이제부터 크게 힘들일 것 없이 선자령을 향해 가게 된다. 전망대에서 선자령까지 2.5km이지만 30분이면 충분할 만큼 길이 좋다. 그 사이 풍력발전기들은 성큼 다가왔다. 

   선자령을 1km 앞에 두고는 목장 길을 따라간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동쪽은 급경사의 벼랑, 서쪽은 아늑한 구릉이다. 따라서 목장은 정확히 백두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서쪽에 있다. 동쪽의 벼랑은 일부러 목책을 설치 않아도 될 만큼 자연적인 울타리가 된다. 목장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은 상쾌하다. 목초들은 무릎을 칠만큼 많이 자라 있다. 풍력발전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목장 길을 따라 크게 우회해서 가면 선자령 정상이 코앞이다. 펑퍼짐한 정상부에는 ‘백두대간 선자령’이라 새긴 거대한 표지석이 있다. 여기서 온 길을 돌아보면 KT통신중계소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북쪽으로는 삼양목장을 따라 끝없이 도열한 풍력발전기의 행렬이 인상적이다.


선자령에서 7부 능선을 따라 돌아오는 호젓한 산책 길

   선자령에서 대관령휴게소로 돌아가는 길은 두 갈래. 하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삼양목장으로 내려서다가 백두대간 7부 능선을 타고 가다 계곡과 만나서 길이 이어진다. 주릉을 따라 왔다면 하산로는 이 길로 택하는 게 좋다. 

   선자령에서 북쪽으로 넘어서면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그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목장을 관리하는 비포장도로와 만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간다. 등산로를 안내하는 이정표도 있다. 도로를 따라 300m 가면 다시 도로가 둘로 나뉜다. 여기서 곧장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제부터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왼쪽에 두고 내려간다. 길은 꾸준한 내리막이다. 초입에는 선자령을 향해 걸었던 초원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길은 숲으로 든다.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시작된다. 쫄쫄 흘러가던 계곡의 물줄기는 밑으로 내려올수록 제법 덩치가 커진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1km쯤 내려오면 짧은 오르막이 시작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치솟은 낙엽송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고개에 오르면 길이 둘로 나뉜다. 왼쪽은 국사성황당, 오른쪽은 양떼목장으로 가는 길이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20분 뒤에는 대관령휴게소에 닿는다. 갈림길에서 국사성황당은 200m 거리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다. 횡계IC로 나와 대관령면소재지를 향해 우회전하면 면소재지 입구에 사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좌회전, 구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간다. 갈림길에서 6km 가면 대관령휴게소다. 양떼목장 입구에 주차 후 트레킹을 한다. 국사성황당에도 20여대의 주차공간이 있다.

숙박
   대관령휴게소로 가는 길에 펜션이 여럿 있다. 대관령가는길(033-336-8169), 대관령품안에(033-335-0830). 용평리조트(1588-0009)는 호텔과 콘도 등 숙박시설과 워터파크, 스키, 골프 등을 즐길 수 있는 종합 리조트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겨을

주소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3시간30분 

문의 : 평창군청 문화관광과(033-330-2753)

   대관령휴게소(860m)에서 선자령(1157m)까지의 고도차는 약 300m. 백두대간 능선이 완만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그러나 날이 궂으면 산행을 하지 않는 게 좋다. 바람이 심한 날은 능선길보다 7부 능선과 계곡을 따라 오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겨울의 눈꽃산행도 백미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916/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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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 앤 스터디에서 인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전국 100개 학교에 무료로 보급하고 있는 인문학 강좌 신청을 했더니 선정되었다는 메시지를 이렇게 보내왔다. 고맙고 고마운 일. 학교 선생님들께는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드렸고, 이젠 학생들에게도 알려서 강의를 좀 듣도록 해야 하는데, 수행평가 말고는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 아무튼 올해는 나부터  좀 열심히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요즘 읽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아우슈비츠에서 내가 살아남은 것은 '고전과 교양' 때문이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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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움 같은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모름지기 글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내 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김규항, 리더스하우스, 2010년) 19쪽 

   김규항의 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읽는 내내 예의 마음 속에 불편함은 그가 주로 비판하고 있는 '나쁜 사람'의 모습이 꼭 내 사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책을 계속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이렇게 좌 편향된(?)-이 말을 그는 좋아할 것 같다- 자극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양심이라도 건사하고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의 책이 말하는 내용은 새삼스러울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겹다거나 고리타분하지는 않다. 예수전을 읽었을 때 뭔가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고,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었을 때는 그에게 궁금한 몇 가지가 떠올랐고, 이번에는 그 궁금함이 구체적으로 몇 가지 떠올라 메모해 두었다. 앞으로 이 책에 리뷰를 쓰게 된다면 그 질문을 중심으로 써보고 싶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남은 글은 다름아닌 책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나의 문장론'이었다. 그 중에서도 위의 밑줄 부분.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터 일기장 같은 알라딘에도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늘 그대로일텐데, 글로 정리하지 않으니 김규항의 지적처럼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그냥 흘러가 버린다.  

   나의 걱정-이대로 정체 상태가 계속된다면 교사로서의 내 미래가 없을 것 같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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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4 1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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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4 1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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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0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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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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