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착하신’ 이OO 선생님께

   선생님, 저는 진복이 아빠입니다. 가끔씩 알림장에다가 진복이의 일상에 대해 흔적을 남긴 적이 있는지라 짧은 편지글 쓰는 일이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선생님께 저의 ‘참’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이렇게 씁니다.

   진복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 내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집에서야 저 혼자니까 할머니들과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는데 익숙해져 있는데, 어린이집이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니까 선생님의 관심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나 싶었거든요. 더구나 녀석이 태어나기를 힘들게 태어난지라 인지 발달도 조금 느리고, 몸도 약하고, 체격도 무척 작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부모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며칠이 지나니까 녀석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을 아주 신나하더군요. 행복반 친구들도 좋아하고, 특히 선생님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마음이 푹 놓이는 게, 아 녀석,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복을 타고 났구나, 싶었답니다.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 속에서 즐겁게 보내는 경험만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제 복은 제가 타고 난 셈이지요. (저희는 복이를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었거든요.)

   복이가 처음에 밥을 먹다가도 식판에 토한 적도 있고, 똥오줌을 못 가려서 바지에 묻히기도 하고, 말도 어눌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어서 제대로 활동하기도 힘들었는데, 어린이집에 다닌 1년 동안 스스로 밥도 떠먹고, 스스로 응가도 하고,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고, 달리기도 씩씩하게 잘 하는 어린이로 자랐습니다. 복이가 이렇게 자라는 데는 선생님의 넉넉한 배려와 따뜻한 사랑이 절대적인 힘이 되었겠지요?

   우리 복이가 앞으로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무수히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복이가 제 일생에서 만난 첫 번째 선생님을 무척 따르고 좋아하고,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니까 앞으로 만날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기대감도 무척 큰 듯 합니다. (선생님은 좋은 분,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나 봅니다. 복이는 제 주변에 다 좋은 사람들만 있는지, 세상에 ‘악당’이 없대요. 싫은 사람도 없고……)

   선생님께서 행복반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한 사랑을 듬뿍 주시고, 다양하고 신기한 활동 많이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복이가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 만든 거 자랑도 많이 하고 가지고 잘 놉니다.(비록 녀석이 만든 게 아주 형편없더라도 자기는 좋아하더라구요.) 그 때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거 계획하고 준비하려면 선생님께서 들이시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날 텐데……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1년 동안 알림장에 써 주시는 글 읽는 재미도 좋았고, 카페에 들어가서 행복반에 활동 사진 올려진 거 보는 게 제 일상의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행복을 누리기가 어렵게 됐네요. 그래서 ‘또래또’를 떠나는 복이뿐만 아니라 저도 무척 아쉽습니다.

   OOO 선생님!

   일 년 동안 복이를 잘 보살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진복이와 저희 가족은 앞으로 오래도록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또래또어린이집, 행복반 진복이 아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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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1-03-2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복이는 어린이집 사정으로 3월부터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닌다. 지난 2월에 그 동안 아껴주신 진복이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드렸다.

2011-03-24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8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권력의 법칙, 제목만 보고 정치 권력에 대한 속성에 대한 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인간 관계에 대한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흔히 말하는 처세술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들이 비웃으려나? 아무튼 나로서는 무척 생소한 내용의 책이었다. 처세술이나 이런 분야의 책은 거의 읽어 본 게 없어서... 평가하긴 좀 어려운데 재밌는 것도 있고, 밑줄 친 내용도 좀 있다. 그치만 직장 생활이 저런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살벌한 곳이라면 사는 게 참 피곤하겠다,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권력의지란 게 아예 없는 인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어둠의 불은 같은 작가의 수도원의 죽음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고른 책이다. 양철나무꾼님의 서재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수도원의 죽음에 나오는 등장 인물도 있고, 주인공도 같은 사람이고 그래서 읽기에 좋다. 이제 한창 소설의 중반부에 돌입. 역시나 이런 소설은 읽는 맛이 좋다. 읽어 본 추리소설이 전무했는데, 대지의 기둥을 비롯해서 한 두권 늘어나고 있다.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와 갈보 콩은 모처럼 리뷰를 썼다. 근데 쓰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예전에 썼던 리뷰는 꼭 '한글'에 썼다가 알라딘에 옮겼는데, 이번에는 그건 것도 없이 그냥 바로, 써서 올렸다.(왜 그랬지?) 아무튼, 교사로서 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자극을 주는 책은 언제나 좋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께 권해 드려야지. 

   갈보 콩은 리뷰에도 썼지만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깔깔거리며 읽었다. 이렇게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 문학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투리 표현으로 따진다면 '한티재 하늘'의 경상북도 사투리 표현과 함께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근데 킬킬거리다가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싸해지는 게 팍팍한 농촌의 현실도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래서 내가 읽을 다음 소설은 감은빛 님께서 귀뜸해 주신,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이시백)이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집에 굴러다니던(?) 책이다. 돈 얘기라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안 읽고 있었는데, 의외로 내용이 가벼워 보여서 집에서 멍하게 있을 때 짬짬이 보게 되었다. 음... 돈을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수유+너머>가 단순한 연구실이 아니란 사실도 엿보게 되었고... 그 공동체의 모습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열하일기를 읽을 때 잘 느껴지지 않던, 저자의 생기발랄함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2월에는 더 재미난 책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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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진복이의 이모할머니께서 무선조종 장난감을 선물로 보내셨다. 진복이의 취향대로 주황색의 날렵한 스포츠카를 총모양의 무선조종기로 조종하는 장난감이다. 장난감을 보자마자, 신이 난 녀석은 내가 건전지를 끼워넣자마자 벌써 집안에서 조종기를 잡고 차를 앞으로 뒤로 제 맘대로 굴려본다. 그러나 좁은 거실이니 금세 차가 이리 쿵, 저리 쿵 곳곳에 부딪힌다. 

   진복이가 자동차를 저렇게 조종하는 모습을 보니 슬슬 걱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꽤 지난 일이긴 하지만 녀석은 전에도 제 이모에게서 비슷한 장난감을 선물 받았는데, 첫날부터 오늘처럼 아무 곳으로나 몰고 다니다가 벽에 세게 부딪힌 다음에는 작동이 되지 않아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장난감은 고이 모셔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짜 몇 번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비싼 장난감을 방치해 둔 경험이 있는지라 진복이가 또 저러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저렇게 서툴게 조종하다간 오늘 또 바로 고장나 버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녀석을 살살 꼬셨다. "복아, 우리 이 자동차 가지고 밖에 나가서 놀까?" "응, 좋아. 아빠, 그런데 어디 가지?" "응? 글쎄, 구민운동장 갈까, 아냐, 거긴 걸어가기엔 좀 멀어. 그럼 우리 지하주차장 넓으니까 거기 가 볼까? 차가 들어올 수도 있지만 조심하면 돼"  "응, 좋아. 아빠 가자" 녀석이 조종기를 잡고, 내가 자동차를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주차장에 자동차를 내려놓으니 녀석은 신이 나서 자동차를 이리저리 조종한다. 그런데, 이 자동차 바퀴가 똑바로 설정된 게 아닌지 약간 삐뚤하게 달린다. 그러니까 자동차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바로 가지 않고 주차장 이곳저곳의 벽이나 자동차 바퀴 받침대를 또 들이받는다.  

   그런데 그걸 잠깐 보고 있는 내 속이 또 터진다.  어휴, 이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아니 진복아, 이렇게 핸들을 돌리면 옆으로 피해갈 수 있다구, 진복아, 이거 한 번만 더 부딪히면 고장날지도 몰라. 좀 조심해서 운전해 줘, 진복아 저기 자동차 들어온다. 어서 피해! 나도 모르게 10초 간격으로 계속 진복이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진복이도 지지 않고 꿋꿋하게, 내가 알아서 한다구, 아이~ 아빠는... 알았어. 조심할게, 아빠 이거 안 돼, 도와줘. 이렇게 받아치거나 넘긴다.

   결국 30분을 계획하고 나온 우리의 지하주차장 자동차 놀이는 무선자동차 앞바퀴가 빠지면서 20분도 안 돼서 끝나고 말았다. 올라오면서도 다시 이어지는 잔소리. 진복아, 그렇게 아무데나 세게 부딪히게 하니까 결국 자동차 앞바퀴가 빠져버렸잖아! 이거 집에 가서 다시 고쳐야 한다구. 결국 같이 놀려다가 잔소리만 실컷 퍼붓고 만 셈이다.  

2004년 알라디너 진/우맘님께서 써 주신 나의 심리검사 결과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CP13. CP는 비판적인 어버이로서의 자아입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가, 얼마나 비판이나 체벌, 또는 규범을 중시하는가를 알려줍니다. 13점이라면 그다지 관용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굳이 표현하자면 '지배적'이라고나 할까요. CP가 높으면 이상 또한 높은 편이지만, 타인을 부정하는 성향 때문에 자칫 주변으로부터 독선적이다, 완고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욕심이 많아 자주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게 될 수도 있구요. 13점이라면 심하게 극단적인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관대해지자>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NP16. NP는 양육적인 어버이로서의 자아입니다. 이 점수가 높은 분들은 대개 착하다는 평을 듣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며 타인에게 잘 공감하는 편입니다. 짝짝짝...가장 이상적인 점수는 16점이라는 견해가 있거든요. 16점, 완벽한 점수네요.^^ 게다가 아까 CP가 좀 높은 경향이 있었기에 더욱 바람직합니다. CP는 <타인 부정>, NP는 <타인 긍정>이라 요약할 수 있거든요. 약간 높았던 CP 점수를 NP가 보완해줄 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세요, 혹여, <잔소리꾼>이라고 구박받을 수도 있답니다. 바라는 기준은 높고, 그러면서도 꼭꼭 챙기고 싶어하니까 말예요.^^ 참,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과보호에 주의하셔야 하구요.

   아주 오래 전에 받은 결과지지만, 검사 내용이 감추고 싶은 내 속내를 그대로 뒤짚어 낸 듯해서 뜨끔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잊지 않았다. 그러다 요즘은, 진복이를 대해는 내 태도를 보면서 스스로 되짚어 보게 된다. 자, 조금 더 너그럽게...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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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1 0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밤에

   방학이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지만 그 아련해서 더욱 좋았던 기억 한 자락을 남기려고 한다.  

   동아리 여름캠프(금정산 학생교육원) - 우여곡절(태풍으로 하루 연기됨) 끝에 무사히 끝났다. 어설픈 준비과정이었으나 큰 욕심 없이 "즐기자"는 마음으로 진행됐으니, 모두 즐겁게 잘 놀았다.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재미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교사로서 요렇게 노는 게 난 즐겁다.  

   가족여행(덕유산-오도산휴양림) - 역시나 폭우 속에 다녀온 여행길. 특히 오도산에서 바라본 구름의 향연은 장관이었다. 오도산 일출은 합천호 때문에 생기는 구름 때문에 늘 멋진 모습이다. 더구나 오도산까지는 중계소가 있기 때문에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다. 구름이 산을 타고 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면서 "유연해야 넘는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2학기 개학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항상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그대로... 수업 준비를 좀 더 알차게 꼼꼼하게 해야지. 동아리 아이들이랑 더 즐겁게 책을 읽어야지,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지, 내가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지, 전교조 분회를 위해 성의껏 노력해야지... 책을 열심히 읽어야지, 교사로서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항상 마음은 가득한데, 문제는 항상 몸이다. 하, 몸이란 녀석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예민한지라 마음이 조금만 방심하면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늘 의식하면서 조금 더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다.  

   저번 분회 번개 모임에 진복이를 데려간 이후에 조OO 선생님이 성장클리닉과 작업능력 평가를 권하셨다. 항상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조마조마해서 차마 못 가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부추기니 용기를 내서 지난 주 화요일에 성장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화요일에 알려 준다고 한다.) 

   마음이 두 갈래인데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있어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아 키나 몸무게가 "표준치"에 이르렀으면 하는 것이랑, 아무 문제가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하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일단 문제가 해결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아무튼 이진복이라는 녀석 - 참 사연이 많은 녀석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언제나 -네가 필요하다고 할 때까지 - 지켜보며 응원해 주리라 다짐해 본다.  

   (요즘 EBS에 방송된 "아이의 사생활" 탐독 중! 어렵고도 놀랍다.) 

   2학기에 작은 목표가 있다면, 이 은밀한 일기를 읽는 사람들이랑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것! D-데이는 12월 15일 밤. 장소는 지리산? 다들 시간 비워 놓으실 거죠?  

 

   2010년 9월 27일, 월요일 

   진복이 병원은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2박 3일) 겨울 방학으로 미뤘다. 암튼 겨울 방학 때 이 일 때문에 조금 바쁠 듯. 그 전에 녀석이랑 신나게 놀아야겠다.  

   연휴가 무려 엿새간이었다. 처음부터 사흘은 '명절'답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나머지 사흘은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고른 곳이 경북 울진. 지난 여름 방학 때 가려다가 아내가 아파서 못 갔던 곳인데, 이번엔 결국 다녀왔다. (예약을 8월 1일에 했었다.) 통고산자연휴양림은 말 그대로 깊은 숲속에 있었다. 덕구온천 스파월드에서 물놀이하면서 놀았고(난 음식이 그런 것처럼 온천물도 좋은 거, 안 좋은 거 잘 구별하지 못한다.) 

   히말라야에서의 밤 이후로 가장 맑은 숲에서 이틀밤을 잤다.  

   울진이 자랑하는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은 거기에 오랫동안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았다.(스님이 되어 암자를 짓고 혼자 산다면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 집을 지으리라.)차로 비포장 도로를 30분 이상 달려야 하는 험한 곳이었지만 2시간을 보낸 그곳의 솔향기가 지금도 아련하다. 

   불영사 계곡과 불영사, 민물고기체험관, 울진 엑스포공원 등도 예상보다 훨씬 알차게 꾸며 놓았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또 이 모든 곳이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적하고 평화로웠다는 사실. 신나는 여행은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요런 스타일의 여행이 신난다. 보너스로 일요일에 걸었던 휴양림 안에 있는 산책길도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앞으로 또 당분간은 휴양림 주변 여행에 꽂혀 있을 것 같다.(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사실, 다음 여행지로 '영덕'을 생각하고 정보 탐색 중이다.  

   독서 동아리 회원을 새로 뽑았다. 이제 열두 명이다. 뽑아 놓고 보니, 학교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이제 교육청에서 지원받은 돈은 책을 두 번만 사면 없는데, "사교육 없는 학교" 관련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면 큰일이다. (교감샘께서는 항상 애매하게 말씀하신다. 결정권자가 아니시니 어쩔 수 없겠지만...) 

   지난 번 동아리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나눈 이야기는, 내 인생을 풀어주는 키워드. 이걸 퀴즈쇼 형식으로 문제를 내면 다른 사람들이 맞히는 거였다. 나는 다섯 문제를 내고 100원-200원-500원-1000원-2000원을 각각 상금으로 걸었다.(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문제의 정답은 <땅끝마을><베트남><神><책><인큐베이터>였다. 다 내 인생을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말이다. 참고로, 베트남은 내가 꼭 가 보고 싶은 곳. 스페인의 산티아고, 페루의 마추픽추와 함께 죽기 전에 꼭 보겠다고 결심한 곳이다. (소박한 꿈!)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취미는 <책 사 모으는 것-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이다. 이번 달엔 무슨 욕구 불만이 있었는지... 좀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핑퐁><카스테라><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사춘기><난 빨강><나는 유령작가입니다><맑스주의 역사 강의><4월 3일의 사건><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휴전><나비 넥타이><월든><가난한 사랑 노래><경제학-철학 수고><로드><자발적 복종><지금이 아니면 언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이걸 어쩐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운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글은 끊임 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리더스하우스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김규항의 글을 읽고 일기, 비슷한 글을 블로그에 써 둘까 싶었는데, 역시나 쉽지가 않다. 몸은 정말 예민하고 철저해서 늘 편안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직 일기를 시작도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 글은 쉽게 잊혀지가 않는다. 그나저나 김규항은 읽으면 읽을 수록 불편한데 왜 계속 읽는지 모르겠다. 자학... 비슷한 심리인가? 

   "독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울분을 토하거나, 학생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이면 어땠을까 싶지만 내가 목격한 모습들을 최대한 그 온도 그대로 담고자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좀 애매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목 놓아 울 만큼 극단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슬픈지 모를 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인생 찌질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맨날 그렇게 웃고 떠든대? 찐따 같이..." 

   "낄낄 은지, 나이스~" 

   "그... 그렇다고 울기도 좀 그렇잖아? 하아...하..." 

   "그게 말이지, 나도 그래서 한 번 울어볼라고 했는데... 이게 뭐랄까 참..."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웃거나 울거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화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 

   "누... 누구한테요?" 

   "그게 문제지" 

   -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사계절 

   만화를 그리는 고등학생들 이야기. 제목처럼 뭔가 좀 애매하다. 하긴 현실이라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몹시 슬프지도, 몹시 기쁘지도 않은 '그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는 두리뭉실함. 양면성이 늘 존재하는 상황!  

   엉거주춤한 상황이 대부분인 현실을 살아가는 고딩들 얘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과 소통을 꿈꾼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점점 불통의 벽은 높아지고 내가 노력으로 뛰어넘기엔 힘이 부친다. 아이들의 무심한 표정이 자꾸 눈에 밟힌다. 기운이 쭉 빠진다.  

   "너의 장미꿏이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다" 나는 이런 충고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삶에서 무엇인가가 소중하다면 그것은 정녕 내가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진땀흘리고 눈물 흘리며 비틀거리던 시간들 때문이다. " 

- 쾌락의 옹호, 이왕주, 문학과지성 

   아이들과 함께 읽기 위해 산 책. 저렇게 멋있는 문장들이 참 많다. 저 글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고민하며 진땀 흘리며 눈물 흘리며 비틀거렸던 시간이 있는가?<여기까지 쓰고 김OO 선생님의 쪽지(시낭송 대회 참가 안내)가 와서 급하게 동아리 시극 대본을 옮긴다.> 

   그래 문제는 결국, 나 자신이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그런 시간들이 더욱 필요하다. 문제는 이 생각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겠지. 어휴~ 나만 어려운가? 다들 삶이...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노래를 듣고 있다. 디어 클라우드라는 인디 '록'(여기서 '록'인지, '락'인지, '롹'인지 몰라서 국립국어원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록=로큰롤, 으로 나와서 '록'으로 썼다.) 밴드의 "그 때와 같은 공간, 같은 노래가"라는 곡. 3집까지 나온 밴드인데, 노래가 하나 같이 슬프고, 우울하다. 끝 모를 우울함. 그래서 '좋다'고 느낀다. [이런 게 좋으니 좀 이상한 사람인가?] 

   그래 놓고 보니 영화도 흥행이 될 만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창 영화를 봤을 때도 흔히 말하는 '대박 흥행' 영화는 이상하게 안 보게 되더라.(예전에 '영매'라는 다큐 영화는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 나 혼자- 극장에 아무도 없는- 본 적도 있다. 

   나의 어떤 생각이 이런 취향을 만들었는지, 이런 취향의 결과가 내 생각을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주류적인 취향(이런 걸, 마이너리티 감수성이라고 해야 하나?)을 가진 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가리켜 "이상한 샘"이라고 말했었다. "뭔가 좀 다른 샘"이라는 말도 흔하게 듣는 말이었다. 칭찬도, 욕도 아닌 가치 중립적인(?)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늘 애매했다. 씩, 웃으며, "뭐가?" 이렇게 되물으면, 항상 "그냥요. 좀 이상해요." 이런 반응! 조금 더 어릴 때는 늘 '내가 뭐가 이상하지?'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도 시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낸다.  

   이렇게 무덤덤하게 지내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못난 모습까지도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순간, 다른 사람의 못난 모습에서 내 못난 모습이 함께 보였으니까, 사람을 말할 때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이러다 영 물러터진 인간이 돼 있지나 않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랑해야 할 내 모습이겠지. 내가 아니면, 그 누가 나의 못난 모습을 사랑해 줄 것인가? 

   디어 클라우드의 노래가 꼬리를 물고 불러 온 내 생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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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쓴 모둠일기장에서 내가 쓴 일기만 따로 기록해 둔다. 어찌 되었든 내 삶의 소중한 흔적들... 사랑할 수 있을까?

  2010년 4월 5일, 월요일 아침에 

   며칠 전부터 심하던 감기가 좀 가라앉는다. 다행이다. 이번 주말과 휴일은 특별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났다. 어제는 구민운동장에 나갔는데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요새 북구청에서 관리하는 구민운동장 때문에 사연이 좀 있었다. 나의 민원 제기에 구청의 답변이 무성의와 거짓말로 일관해서 게시판에 글 좀 썼다.) 난 운동장을 산책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간. 이 여유로움이 지금 내 삶의 사이클에서 중요한 활력소이다.  

   어제 보니까 꽃이 피기 시작했다. 반갑다. 역시 지금 이 맘 때가 일 년 중에 가장 보기가 좋다. 올해는 이 시기가 너무 늦게 왔다. 그래서 몸살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몸도 낫고, 꽃도 피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학교에서의 일도 슬슬 자리가 잡히고(교무기획 담당이 일이 많다는 건 선입견!) 수업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수업은 여전히 헛발질을 하고 있다.) 보충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바로 귀가! 진복이와 병원에 주로 갔다와서 저녁을 먹는다. 녀석과 대충 놀고 있으면 아내가 와서 가족이 모인다. 녀석의 재롱에 잠시 웃다가 씻기고, 먹이고, 재운다.(물론 주로 아내가 하는 일이지만...) 이런 일상이 좋기 때문에 가능하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까 점점 인간 관계의 폭이 좁아진다.  

   요즘은 책도 좀 읽는 편이다. '네팔 트레킹'에 대한 책을 시작으로, 등산에 대한 책도 손이 가고, 1Q84도 읽었고, 지금은 '사람은 따뜻한 시선으로 자란다'라는 육아 일기(?) 책을 보고 있는데, 그렇게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그나마 트레킹이 가장 나았다. 좀 재미있는 책을 만났으면 싶다. 

올해 개인적인 바람 

- 입시 부담이 없는 과목(진로와 직업)이니 수업이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 전교조 분회에 활기가 넘치고 조합원들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 이 일기장이 1년 동안 잘 굴러갔으면 좋겠다.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보강 시간에 

   이 일기장의 놀라운 회전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그냥 일주일(아니, 6일이네)을 묵혔다. 뭔가 마음 속에 고이기를 기다리기도 할 겸.(근데 여전히 마음이 텅 비었다.) 그 동안에도 평온한 일상이 계속 되었다. 크게 보면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고, 작게 봐도 좀 지루한 수업, 아이들과의 소소한 실랑이, 행정적인 업무 처리, 분회 알림 쪽지, 심드렁한 독서까지. 집에 가서는 별로 하는 일이 없으면서 기운이 쭉 빠진 채로 녀석과 잠시 눈을 맞추고 놀아 주기. 주말엔 늦잠과 점심, 저녁이 이어지고 다시 한 주의 일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한 주를 떠올린다. 그나마 주말엔 산책할 수 있으니까 좀 낫지만... 

   일상이 참 무서운 게 내가 의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쭉 계속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의 평온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아이러니한 얘기일지 몰라도 한 때는 "빛나는 일상으로"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3월에 생각하기를 바쁜 업무만 대충 정리가 되면, 4월엔 수업을 같이 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리라고 했건만 아직 시작도 못 했다. 그러니까 아직 아이들과도 데면데면하다. 이런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좀 서글프다.(현재 내 마음 상태를 볼 때 이 계획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어제 mp3를 하나 샀다. (기계치라 얼리 어댑터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노래를 좀 담으려고-난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세대별 선호곡(100곡)을 봤는데, 깜짝 놀랐다. 심지어 50대들이 선호하는 노래 상위 순서에도 '걸 그룹'들의 노래가 많았다.(그 중에 내가 아는 곡은 서너곡 정도?) 갑자기 '내가 뭘 하면서 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갑자기 이상한 반발심에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는 인터내셔널가와 Bella ciao라는 노래를 다양한 버전으로 줄곧 들었다.(참, 내가 생각해도 성격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 제 이름을 느티나무로 지은 이유 : 고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무가 느티나무겠지요?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시원하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은 별명 "느티나무"(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고 싶답니다.) 

 

   2010년 5월 10일 교무실에서, 공책을 받자마자 흔적을 남긴다. 

   어찌 보면 여유로운 일상인데 여유로움을 충분히 즐기지 못 한다. 이 여유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무언가 빠트리고 있는 것이 있어서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정작 중요한 건 '행동'인데, '마음'으로만 그치는 일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연구 수업에 대한 압박도 상당하고 독서동아리 활동도 그렇고, 수업 준비도  머리 속은 복잡한데, 거기서 모든 일이 그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 지금껏 생각하면 의지로 한 일은 손으로 꼽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 늘 시간이, 상황이 내 결정과 행동을 지배해 온 듯 하다.  

   일단 머리속에 든 잡생각은 여기까지 쓰고! 

   자동차를 샀다. 주문을 오래 전(작년)에 했지만 한 달 전에야 나와서 지금은 아내의 출퇴근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지만. 그 전에 15년이나 된 자동차가 있었는데, 길에서 여러 번 멈춘 적이 있어서 아내는 늘 불안해 했다. 그 차를 폐차시키는 날, 내 마음이 뻥 뚫렸다. 기계가 생물처럼 느껴졌다. 늙고 병들면 저렇게 "용도 폐기" 되는구나 싶었다. 아직도 쥐색 소나타 2만 보면 마음이 아리다. 여전히 새 차는 낯설고! 그런데 아내가 아파트 기둥에다 차를 박아서 문짝이 움푹 패였다. 아, 심란하여라, 내 마음이여! 

   일상이 안정화되어 간다는 것은 마음이 평정심을 찾아간다는 것일까? 여간한 일에는 분노하지 않으며, 또한 처음의 기쁘고 설레던 마음도 모두 집어삼키는 것이라면 안정된 일상은 좋은 것인가? 아닌가? 좋고 나쁨을 떠나 일상은 숙명적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무서운 것이다.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서를 강조하던 홍세화 선생님의 글이 생각난다.)  

   설레는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 고마운 마음이 조금 더 오래갔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는 동물은-물론 나를 포함해서- 영악하거나 간사한 거 같다. (쓰고 보니 좀 과한 표현같지만...) 일기장만 펼치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쓰고 나면 금방 잊어버릴 생각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에 

   오늘은 약간 피곤하다. 어제 부대 '넉넉한터'에 있었기 때문에... 늦게 올라갔지만 공연은 더더더 늦게 끝났다.(11시 16분?!) 부실한 저녁에 간식을 사 먹으려고 어슬렁거리다가 동인고에 계시는 '김호룡선생님'을 만났다.(역시나 '도인'의 풍모를 하고 다니신다.) 집에 오니 벌써 12시다. 모처럼 늦은 귀가. 오면서 월요일 아침에는 꼭 분회 쪽지를 보내야지 했는데...(그렇게 했고) 내일이 모임이다. 

   1,2교시는 수학여행 잔류학생 지도로 약간 바빴다. 3교시는 1-8반 보강. 줄넘기를 하고 싶다는 애들을 주저 앉혔더니 불만이 폭발했다. 살살 달래다가 결국 "빽"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지금은 다시 4교시, 잔류학생들과 앉아서 글을 쓴다.  

   생각해 보니 시간이 참 허망하다. 사흘 간의 연휴를 앞두고 잔뜩 들떠서 이것저것 궁리도 하고 계획도 세웠는데, 시간이 하수구에 물 빠지듯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그 시간이 언제였나 싶게도 아련하다.(그러니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진리인가 보다.) 앞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다가오더라도 견뎌나가면 그 또한 지나가고 마는 순간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내가 괴로운 순간을 버티는 힘이다. 그러니 위화의 이야기에 끌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눈물과 고난의 강을 건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눈물과 한숨으로 건넌 강의 끝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강을 건너왔다는 사실만 남을 뿐! 그런데 왜 우리는 눈물의 강을 건너야 하는가? 그야,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뿐이라고 한다. 그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쓸데 없이 심각하네. 근데 글 쓰는 순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자기와 마주하는 글쓰기의 순간이 되면... 이렇다.) 

   분위기를 바꾸는 의미에서 , 어제 김제동 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복권에 미친 한 사내가 있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온갖 신에게 밤마다 기도를 했다고 한다. 꼭 한 번만 일등에 당첨되고 해 달라고 잠들기 전에 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드디어 이 길고 긴 기도에 감동한 신이 그 사내의 꿈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자 꿈에서 이 사내가 감격해서 드디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줄 알고 눈물을 흘리는데, 신이 그랬단다. 

   "제발 사고 기도해라" 

   웃음 속에 뼈가 있는 얘기였다. 행동하란 얘기였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은 선거가 좀 걱정이다.(음, 이게 내 문제가 된 거다.) 예전에는 부모님만 어떻게 해 보려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이곳저곳 친구들에게 연락을 좀 했다. 나름대로 최선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하고 있다.ㅋ 결과야 뒤에 문제고, 이대로 주저앉기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 

   오늘은 보충수업이 없으니 4시 30분에 집에 왔다. 가능하면 진복이가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는 걸 맞으려고 서둘렀지만 이미 집으로 들어간 뒤였다. 이렇게 일찍 오면 꼭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구민운동장이나 대천천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한 시간일 수 없다. (아, 오늘은 대천천 다리 아래서 담배 피우는 고딩을 불렀더니, 인근 학교 체육복을 입고는 우리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녀석도 참, 운이 없는 놈이다. 또 다른 다리 아래에서 중학생들이 모여서 돈을 주고 받길래 또 불렀다. 뭐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 놓았지만, 예방 차원에서 딴 데 가서 놀라고 했다. 이 모든 걸 복이를 안고 했다는 사실. 또 한 편으로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너무 간섭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리저리 좌충우돌해서 집에 오니까 벌써 6시. 아내는 9교시 수업이라 좀 늦는다고 한다. (근데 참 집에 오면 몸이 천근만근이라 괴롭다. 아, 마음대로 몸이 안 움직여지니까 집에서 슬슬 눈치를 보고... 몸은 무겁고, 마음도 무겁고...)  

   녀석은 눈물이 참 많다. 내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나도 눈물이 참 많다. 드라마(거의 안 보지만)나 책을 읽다가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찔끔거린다. (녀석은 내 성격을 닮은 것 같다.) 요즘은 어떤 단어만 들어도 자동연상으로 마음이 뭉클한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많은 녀석에게 울음이 적은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열심히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록, 강 건너엔 아무 것도 없을 지라도... 녀석이 또 살아가야 하니까.

 

   2010년 7월 26일 

   우와, 진짜 오래간만에 돌아온 일기장이네. 한 번 건너 뛰었더니 까마득하네. 앞으로는 빼먹지 않고 잘 써야지. 앞에 일기를 읽으니 다들 힘들고 지친 1학기를 보내거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에 대한 하소연이 많은 거 같다. 뭐 나도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 이 범주에서 크게 다를 게 없었던 듯. 그래도 1학기를 되짚어 보니 좋았던 일도 많았다. 우선 그 기억을 떠올려서 기력을 회복해 봐야 겠다. 

   당연히 첫 번째는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칼퇴근족이라는 사실.(우헤헤) 칼퇴근족은 심리적 여유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재충전이 (충분히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되기 때문에 수업에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나의 수업은 '진로와 직업'. 사실, 이게 마냥 쉬웠던 건 아닌데, 시험 문제 출제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했다.(난 '그 분'이 안 오시면 문제를 못 내고, 나의 '그 분'은 항상 마감일 새벽에 오시는지라...아직도 나의 '그 분'이 누구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귀뜸하자면, 그 분은 출제의 신!) 

   독서동아리도 늦게 시작한 것 치고는 녀석들이 잘 따라와 주는 것 같아 재밌다. 호기심이 많고, 학습 의욕이 높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모든 수업시간이 이럴 수는 없는 걸까?) 

   전교조 분회를 위해 하는 자잘한 일들도 아직은 즐기면서 하는 편이다. 쪽지나 서명, 자료 배포, 모임 준비... 이런 일들이 별 무리 없이 꾸려지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자극을 일깨우는 것 같아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을 하면서 좋은- 말이 통하는- 사람의 속내도 가끔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분회가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갈등 없이 좋았다. 주변에 앉아 같이 일하는 분들과 큰 마찰 없이 즐겁게 일해 온 것도 운이 좋았다. 아주 친해진 건 아니지만, 적당한 '선'을 잘 지키고 있으니 이것도 좋은 일이었다.  

   집에서야 녀석이랑 잘 지낸다. 쑥쑥 크는 녀석을 볼 수 있어 무척 기쁘다. 아내와도 큰소리는 잘 나지 않고 일상을 지내며 주말엔 나들이를 다닌다. 장인 어른이야 돌아가셨지만, 장모님, 부모님 아직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시니 크게 근심할 일은 올해 없었다. 아니, 하나하나 또 따지고 들면 불만, 걱정 투성이겠지만 여기에서 멈춰야겠다.  

   방학해도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이다. 음 1시에 집에 가는 애들을 보면서 진짜 학교는 이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매일 한다. 우린 너무 많이 공부하고 너무 많이 일한다. 당연한 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이상한 나라, 이상한 학교. 아무튼 지금이 보충수업이 아니라 학기 중 일과가 되는 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 그런 날을 살아서, 꼭 보리라. 아, 그런 학교에서 근무해 보고 퇴직하리라. 남들이 그런 학교를 위해 싸울 때, 적어도 뒷배경은 되어 양심에 부끄러움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아, 이런, 또 일기가 심각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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