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기와 1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새움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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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소설을 읽을 때의 생경함과 성장 소설을 읽을 때의 익숙함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빨간 기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낯설음은 금방 사라져 버렸고, <빨간 기와>에서 공부하는 이 녀석들이 '큰 탈 없이' 빨리 어른이 되기를 마음 졸여가며 이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은 '임빙'과 그의 친구들의 유쾌하지만 아릿한 성장통에 관한 소설이다.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중인 중국에서 '유마지중학교'에 다니는 임빙과 그의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 학교에서의 사소하지만, 또 아주 중요한 일상이 11개의 단편으로, 각각의 단편들은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지역을 넘어, 세대를 건너뛰어서 만난 '임빙'과 그의 친구들은 까까머리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의 행동이나 생각과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쉴 새 없이 짓궂은 장난을 치도,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욕을 해대고, 매일 운동을 하고, 할 일도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좋아하는 여학생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그러면 옆에서 친구들이 놀리고, 그러다 또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엇갈려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소심하고, 장난끼 많고, 생각도 많은 '임빙'도 매력적이지만, 아버지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감추며,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임빙의 친구 '마수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에서는 장난도 심하게 치고, 늘 거울을 들여다보며, 아무 대책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마음먹은 대로 해버리고, 친구들에게는 늘 돼지머리고리를 사 주는 물주(物主)이고, 집에서는 할아버지를 '부려먹으며' 심술궂게 살아가지만, 자기가 어릴 때 자살해 버린 어머니가 심어 놓은 감나무에 기대어 해가 지는 강을 한없이 바라보는(혹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그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허한 것인지, 그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얼마나 사랑에 목말라 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청소년 시절, 늘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이 부글부글 끓는 시절, 스스로를 어찌할 줄 몰라 방황하는 시절에 대한 아릿한 향수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우리 청소년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어른들에게, 외국문학에 정서적인 공감을 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중국문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중국 문학을 읽어본 기억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까만기와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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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 고침판
서정홍 지음 / 보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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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들과 가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 예전에는 '최신곡'도 몇 곡 알아서 노래방에서 가끔 연습도 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최신곡'을 부르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너무 빨리 나왔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최신곡의 유행 주기도 그렇고, 요즘 노래 자체의 빠른 템포나 가사 등을 소화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같은 나이에도 언제나 최신곡을 준비해 두었다가 자랑스럽게 부르는 동료를 부러워 적이 있었다. 나만 이렇게 세상의 흐름을 좇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은근슬쩍 불안하기도 했다.

   서정홍의 <58년 개띠>를 읽으면서 누구나 '노동'에 대해, '우리말'에 대해, '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수 십 년 기름밥을 먹고 등골이 빠지도록 일하였으나, 여전히 가난한 노동자 시인이 담담하게, 그래서 더욱 서늘하게 다가오는 '노동'에 대해 말한다. 이 시인의 노래는 나에게 그냥 철지난 '옛노래가' 아니라 애창곡이 되어 마음을 푹 담글 수 있게 하였다. 가끔씩 '너무 단순한 도식성에 빠진 것이 아닐까?'-가난한 사람(노동자)은 착하고, 부자(사용자)는 나쁘다-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시집 뒤편으로 갈수록 돋보이는 현실감 있고 생생한 일상의 묘사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모처럼 진짜 노동자의 눈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시집이다.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시들은 '우리말 사랑' 연작시들이다. 쉬운 우리말의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는 시인들이지만 우리말의 고마움을 모르는 시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또 어느 시인의 시집에서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쉬운 우리말로 이야기하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고 있는가? 서정홍 시인처럼 이렇게 분명하고 쉽게,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시인도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애수니 비애니 그러지 말고/그냥 슬픔이라 쓰세요./환희니 희열이니 그러지 말고/그냥 기쁨이라 쓰세요'라고 말하는 시인은 이 시집 전체에서도 자신의 말대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거짓된 것으로 꾸미지 않고 말하고 있다.

   결국 '시인이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우리 삶의 현실을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시인의 노래집을 시집이라고 한다면 '서정홍'은 '시인'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이고, '58년 개띠'는 그의 노래집인 것이다. 일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고달픔이나 기쁨을 이야기하는 노동 문학이 어찌 1980년대만의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고, '현실의 달라짐'을 말하기 전에 본질적으로 인간은 일하는 동물이 아닌가? 그러기에 노동 문학은 흘러간 '유행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집을 읽고 나니 노래방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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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지만
고등학생 48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 보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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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일요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 밥을 먹고 집에 있는데 아버지께서 나보고 수건에다 찬물 좀 적셔오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이마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불덩이였다. 어머니께 아버지가 열이 지금 아주 많이 난다고 말을 하였더니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약을 찾아서 드시게 하시고는 아버지께 안마를 해 주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많이 편찮으신지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이쪽저쪽으로 가끔씩 뒹굴었다.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아버지께 안마를 좀 해 주고 같이 있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께 안마를 해 주려고 다리를 만졌다. 그런데 너무나 야위어서 그런지 내 팔보다 더 얇게 느껴졌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앉아 혼자 울었다. 우리들 때문에 고생하시다 병을 얻은 아버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나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 한 번도 잘해주지 못 하고 철없이만 굴었던 나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처음이었다.'

- 2000년 5월 14일 2학년 용덕


   <날고 싶지만>을 읽고 몇 년 전 우리반 용덕이의 학급일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학기초에 '반장'하고 싶다고 우겨서 겨우 당선되고, 성질 급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에게라도 덤벼들고, 자기보다 약한 학생들을 가끔 때리기도 하던 '꼴통' 반장 녀석이었다. 담임인 내 속을 무던히 썩였던 녀석이었는데, 어찌어찌 졸업은 해서 군대가기 전에 가끔 술 사달라고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래도 지금은 어엿한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가끔은 '대학 갈라믄 무슨 공부해야 됩니꺼?'라며 자기 방식으로 안부전화도 하는 기특한 놈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놈한테 해 준 게 무엇일까? 가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담임교사로써 특별히 해 준 일은 없는 거 같다. 꾀병부리면 귀에도 안 들어갈 잔소리나 잔뜩 하고, 말썽부리거나 약속을 안 지키면 매를 들기도 하고, 학교에 안 나오면 전화해서 꾸중하고, 다른 친구들 괴롭히면 벌도 주고, 다신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고... -아마도 이런 말하긴 쑥스럽지만- 그 해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게 다르다면 달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용덕이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어도 학교에서 부적응 행동을 보이면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내가 그 녀석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걸 그 놈도 학년말에는 알아줬던 게 아니었을까?

   옆에서 지켜 본 우리 고등학생들은 정말 고민이 많다. 어른들이라면 안 해도 될 고민들을 제 생애 전부를 걸고 하기도 하고, 세상이 청소년들에게 덮어씌운 고민을 안고 끙끙대기도 한다. 때로는 고민이 깊어지면 상처받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고민과 방황과 상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건강한 것이기도 하다.

   어른들은-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기억력이 나쁜지 자기들도 겪은 청소년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 한다. 고민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쓸 데 없이'라는 무관심한 말로 무질러 버린다. <날고 싶지만>은 청소년들이 사는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어른들이 보면 사소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써 놓은 책이지만, 그 시기, 그 시절에는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가족, 학교, 친구들의 세계를 전부로 고민하는-그래서 더욱 건강한- 우리 청소년들의 삶이 속내들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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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조촐한 것들이 - 내일을 여는 시 32
안준철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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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효산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는 안준철시인의 두번째 시집 <세상 조촐한 것들이>를 읽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처럼 그 동안 이 맑은 시집의 존재를 몰랐던 것일까?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의 빛깔이 약간 누랬다. 그와 어울려 겉표지 안의 시인도 촌스러운 모습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도 몇 달 전에 사 둔 시집을 이제야 손에 잡게 되었고, 보통은 아껴서 읽는 시집을 오늘 단숨에 읽어 버렸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참 '소박하고 솔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때로는 왜곡된 교육현실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교사의 입장으로, 가끔은 '아귀' 같은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남편의 목소리로, 한편으로는 허리 통증을 앓는 환자의 모습으로 시인의 속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낸 시가 시집 곳곳에 서 제 몫을 하고 있다. 시인의 관심은 낮고, 작고, 느리게 흘러가는 주변의 사물에 대한 것이고, 시인은 이 사물에 대한 애정을 진하게 담아서 표현하고 있으며 자신의 일상에서 얻은 소박한 깨달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시집은 시인이 보통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나누며 생활하고 쓴 체험시들이 많고, 그러기에 대부분의 시들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란한 수사보다는 진솔하고 소박한 표현으로 독자들의 눈높이로 낮추고 있는데 이것이 이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집은 말만 요란해서 빈 껍데기 같은, 매끄럽게 잘 포장된 시집의 홍수 속에서 약간 빛바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자신의 단아하고 소박하고 진솔한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래서 쉽게 덮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시집이다. 자기 주변의 작고 소박한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준철 시인의 일상에 대한 깨달음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이 모두 그렇겠지만, 이 책처럼 독자를 행복하게 하는 책은 지은이의 성실한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증거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쓴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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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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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에도 단 한마디의 기도조차 생각해내지 못하고 오직 차갑게 의심만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더할 나휘없는 두려움과 절망을 느껴야 헸던 것이다. 이 구제받을 길 없는 자의식 과잉. 나를 둘러싼 이 철갑처럼 무겁고 두터운 껍데기. 신이 지금 내게 형벌을 내리고 있다면 바로 그것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가슴 태우며 욕망하지도 못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하늘등'중에서

   소설가 이창동의 92년 발표 작품집인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읽다가 마지막 즈음에 이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꽉 막혔다.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90년대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이념의 시대를 마감하지 못한 작가의 고민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집이다.작품에 등장하는 주인물들은 주로 확고한 이념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으로, 끝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고민형의 인간이다.(대표적인 경우가 하늘등의 '정신혜'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신념에 찬 인물들의 삶과 주로 대비되고 있는데, 결국 소설은 서로 대비되는 인물들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 공감대를 느끼게 되는 구조로 짜여진 것 같다.

   80년대를 관통하고 있는 소설을 읽고 있으니 '아! 우리 사회가 이랬었지!'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투박하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마는,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고, 사회가 무척 건강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지하고 고민이 많은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 시대로 80년대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고 성실한 고민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치지 않는 이창동 장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욕심일까? 현실적인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하는 곳이며 홍선생의 삶의 보람인 아파트가 있는 곳인, 시적인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 도리어 비현실적인, 그리고 똥이 많은 녹천에서, 저 멀리 반짝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별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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