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다 동료교사들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뻔한 사실을 의뭉스럽게 아니라고 우기는 인간들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슬퍼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가 못 하다.

   결혼식에 주례를 봐 주신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불의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불쌍하게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이 다시 한 번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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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우리 모임에서 학급운영을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소박한 연수를 했다. 오신 분은 모두 열 한 분이셨는데,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맡은 부분은 그 연수 중 한 꼭지, 신규 교사의 3,4월 나기였는데, 저번에 써 둔 글을 모아서 발표를 했다. 이 글은, 컴퓨터를 뒤져서 나온 글!!

 

3월, 그 멋진 출발선 앞에서!


느티나무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둔 녀석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새 학교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잠은 제대로 못 잤을지도 모르지요? 자기 전에는 내일 벌어질 모든 일들이 궁금했을 겁니다. ‘나는 어느 반이 될 것이며, 내 짝지는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겠지요? 그 생각의 한 쪽 끝에는 ‘우리 담임은 어떤 선생님일까?’하는 것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담임선생님이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랑 친했으면 좋겠다.’, ‘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기도 했겠지요.

  새 학교에서 새로 담임을 앞둔 한 달 전, 저는 마치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된 교사처럼 집에서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야지,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지, 내 꿈이 아이들보다 더 커지지 않도록 해야지, 우리 반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온기가 있고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야지……. 한 번 생각을 하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제일 먼저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외워야지, 개별 상담도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지, 모둠 활동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학급일기장도 써 보고, 생일잔치는? 학급행사는 어떤 게 좋을까? 반응이 좋았던 체육대회와 비빔밥 먹기, 수박 먹기 대회는 꼭 하고…… 그날 어디까지 생각을 하다가 잠을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설렘과 기대로 시작했던 지난 3월을 지금 되돌아보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별다른 일 없이 지난 듯도 하고, ‘야, 이 녀석들 만만치 않구나!’하는 푸념을 늘어놓을 일만 벌어진 것도 같습니다.


  첫날 어설픈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에게 1년 동안 잘 지내자고 당부하고 학교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라고 일렀습니다. 오늘만큼 초롱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첫 일주일은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고, 출석부에 이름표 붙이고, 학급 청소, 학급 당번과 사물함 배정하고, 건강기록부 챙기는 등 잡무를 하며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익히려고 애를 썼습니다. 학교가 낯설 것 같아서, 처음으로 돌아온 학급회의 시간에 오리엔테이션을 겸해 모두 데리고 학교 구석구석(여긴 행정실이야, 여긴 매점이지, 이곳은 도서실…)을 돌아다니며 학교 구경을 했습니다.

  둘째 주에는 학교 일정에 따라 학급의 반장을 급하게 뽑아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기 소개서를 나눠주고 자기 사물함에 붙이라고 일렀습니다. 3일 후에 반장 후보자 등록을 받았습니다. 등록기간을 연장해도 후보자는 달랑 한 명. 제대로 선거를 치러보려던 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다소 김빠진 후보자 찬반 투표를 거쳐 우리 반 반장을 뽑았습니다.

  담임을 할 때마다 겪는 아주 난감한 일 중의 하나-(담임을 난처하게 하는 또 다른 경우는 도난 사고 생겼을 때겠지요? 저는 수첩에 한 달에 한 날을 정해 기록해 도난사고 방지를 위해 주의를 줍니다. 도난 사고 일어나면 찾기 힘드니까, 자기 돈은 잘 간수하라고 하지요. 주번에겐 문단속 꼭 하고, 큰돈은 저에게 맡기라고 합니다.)-가 학비감면 대상자를 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신입생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대략적인 가정환경 파악도 안 되었는데, 막무가내로 학비감면 대상자를 선정해 달라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첫 주에 써내는 가정환경조사서를 조금 꼼꼼한 서식으로 바꾼 것도 도움이 되지만, 정말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요즘에는 행정실에서 서류를 꼼꼼하게 챙기기 때문에 정확하게 안내를 해 주고, 서류를 갖출 수 없는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찾아오라고 부탁해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셋째 주, 학생부에 올라갈 사진을 걷으면서 이제 대체로 아이들의 이름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학급일기장을 쓰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그게 뭐야?’, ‘우리가 초등학생이야?’, ‘……’) 저야 이런 반응에 익숙한지라 더 이상의 반발을 허용하지 않고, ‘학급일기장 써 보면 재미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아직도 마련하지 못한 일기장을 빨리 마련해야겠습니다.

  넷째 주에는 개별 상담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사실 학교 일과 중에 학생들과 상담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실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인 터라, 결국 점심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한 녀석을 지명-우리 반에서 제가 가장 상담하고 싶었던 학생-하고, 다음 상담 학생은 그 학생이 지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담을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 이야기를 꺼내면서 할 수 있습니다.

  개별 상담을 할 때,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하면 좋습니다. ‘교사가 꼭 그렇게 해야 하나?’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만, 아이들에게 이 상담 시간이 특별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저의 진심을 전달하고 싶기 때문에 부드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노력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만나면 편안해지지 않습니까?) 아이들이나 저나 점심을 먹고 만나니, 과일 한 쪽도 먹고 싶을 테고, 이제 날이 더워지면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면 더 좋을 듯합니다.

  새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놓고 마음 졸이실, 학교 문턱이 아직도 어렵기만한 대부분의 부모님들을 위해 가정통신문을 써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가정통신문에는 저의 학급 운영 방향에 대한 소개, 제 시간표, 전화번호, e-mail 주소를 적어 드렸습니다. 제가 수업이 비는 시간을 알고, 필요하실 때는 언제든 전화해 주십사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대략 이 정도로 저를 그토록 설레게 했던 새 학교의 3월이 끝날 듯 했으나, 사진 내라고 말한 지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 사진도 안 찍었다는 녀석이 나오지를 않나-학교에서 단체로 찍는 건 싫다던 녀석이었는데 말이죠.-날마다 지각생은 늘어나고, 수업을 들어가시는 선생님들을 통해 우리 반이 가장 산만하다는 말씀도 들려오고, 야간자율학습에 도망가는 녀석도 생겨났습니다.

  역시 새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가 한 달 만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듯이 아이들에 대한 저의 설렘이 한 달 만에 많이 가셔서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를 기대하던 그 때가 까마득한 옛날이었나 싶습니다. 마음으로 그려보는 아이들과 현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차이가 크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각이야 그렇다고 쳐도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벌써부터 도망가는 녀석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어떻게 적응을 하려는지 걱정이 앞서서 따끔하게 혼을 냈습니다. 어떻게 혼내냐구요? 일상적으로 하듯 위협과 협박, 읍소 작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게 며칠 갈 때도 있고, ‘맞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생글거리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 같은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저와 1년을 함께 살아야 할 녀석들인데…….


  이렇게 저의 봄날은 가는가 봅니다. 그래도 좋은 걸 어쩌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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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운영의 방향을 고민하며


느티나무(OO고등학교 교사)



Ⅰ. 담임,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1. 시작하며-실패를 통해 배우다.

 

  학교 밖에서 교원 평가를 둘러싼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마음이 허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라 저도 며칠 고생을 좀 했습니다. 더구나 학교 안을 둘러보면 그 광풍을 자초한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알게 되는 탓에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그래도, 아직…’ 이라며 제 마음을 다잡게 해 주는 분들이 계신데,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선생님들이 그러시고, 특별한 주제로 아이들의 일상적인 삶과 만나고 계신 분들도 그러시고, 참신한 학급행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급운영에 대해 그렇게 놀라운 능력을 보이시는 분들을 보면, 저 분들은 어디서 저런 열정이, 이해심이, 참신한 생각이 나오는지 반성하게 되고, ‘환경 탓만 하며  불평만 늘어놓고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학급담임으로 아이들과 수도 없이 많이 부딪치면서 실패를 겪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시 고민하면서 다른 방법을 궁리하고, 또 실패하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저는 낙동고등학교에서 1학년 3반을 맡았는데, 올해도 제가 담임을 맡은 반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선생님들 앞에서 말씀드리게 될 썩 괜찮은 이야기들이 저와 우리 반 아이들의 교실에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는지 물으신다면, 제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여러 번의 반복된 실패 속에서 서서히 아이들이 제 마음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실패를 되짚어보면서 아이들의 상처에 눈길이 가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면서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조금씩 맞추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발령받았을 때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졌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고, 주고 싶은 게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자주 보고 싶은 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싫어질 때까지 담임을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 만약에 제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면, 그냥 실패에 주저앉았다면, 해마다 맡게 될 학급 담임의 자리가 설렘이 아니라 왠지 모를 무거움과 두려움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거듭된 실패도 영 버릴 건 아닌가 봅니다.

 

2. 거짓 혹은, 진실

  최근 들어, 교과 학습 방면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성과 능동성, 창의성과 자발성을 존중하는 흐름들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정작 이런 능력들이 일상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곳인 학급에서는 그렇게 활발하게 펼쳐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3,4월에 웃고 다니면 애들이 담임을 만만하게 봐’, ‘반장을 잘 뽑아야 담임의 1년이 편해’, ‘애들은 초반에 꽉 휘어잡아야 해’ 뭐, 이런 수준의 담론들이 교무실의 구석에서 은밀히, 때로는 공개적으로 떠돌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늘 새로운 수업 방법을 고민하는 동료 선생님이 있다고 합시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그 선생님을 보면서 ‘이렇게 늘 하던 대로 하면 편하다’고 충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함부로 말씀하실 수 없겠지요? 오히려 같은 교과의 선생님이시라면, 곁눈질로 자극도 받고, 호기심도 생겨 수업 자료도 챙겨 보실 것이고, 자기 수업을 되돌아보기도 할 것입니다.  수업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지, 편안함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교사가 편하게 지내려고만 든다면 더 이상의 연구와 고민은 없어도 됩니다.

  학급운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급운영에 대해 편안함을 기준으로 들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모임의 선생님들이 맡은 학급운영의 기준은 학생들과 선생님의 행복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행복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학교에서 행복해지는 것이 우리 학급운영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래야 편하다’라는 교무실의 쑥덕거림은 귀를 열어두고 있으되, 그냥 흘려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거야 누군가에게 듣지 않아도 제 자신이 학창 시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 이니까요.

  비록 교사 양성 과정에서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이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 일상 공간인 학급의 운영도 교과 학습처럼 교사의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그러니 학급 운영을 편리함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학급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과 정신적인 만족, 의도한 결과이든 그렇지 않든 배우게 될 아이들의 잠재적 학습의 결과에 대해서 담임도 함께 고민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Ⅱ. 학급운영, 어떻게 할 것인가.


1. 진정성과 시간이 열쇠다.

 

  저는 아이들과의 행복한 공동체를 학급목표로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저와 더불어 공동체 생활의 기쁨을 맛보며,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해진 규칙이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학급활동의 방법에 대해, 학급행사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구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법이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것들입니다. 조례와 종례시간을 새롭게 활용하기(노래, 시, 신문 등을 학생들이 소개하기), 모둠 일기 쓰기, 모둠 활동하기(비빔밥 해 먹기, 식물 키우기, 모둠 노래자랑 대회, 방학 중 모둠 모임……), 학급회 시간을 이용하여 학급행사 꾸리기(학급체육대회, 학급노래 배우기, 편지 쓰기, 세밀화 그리기, 뒷산 오르기, 목욕탕 가기……) 학기 초에 하는 집단상담, 학기 중에 하는 개인상담(학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해서 선생님께 들려주는 상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성공했다고 말씀드릴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돌이켜 보니, 짧은 경험이었지만 저의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학급운영 방법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굳어진 상처 자국을 싹싹 문질러 빨리 지워내려고 서둘렀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굳어진 응어리는 따뜻한 물에 담기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처럼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저의 마음에 ‘진정성’이 담겨있는 걸 느낀다면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때야 저와 학생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급을 운영해 보신 선생님들께서는 이미 이 말을 마음에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말인지 잘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머리와 귀에는 많이 들어왔으나 진정 우리의 가슴으로까지 내려가지 않는 그 말, 아이들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다음 이야기를 같이 읽고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가 교사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주문인지 모두 공감하시겠지요?


  상치를 심었는데 그 상치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은 그 상치를 비난하지 않는다. 당신은 상치가 잘 자라지 않는 이유를 찾아본다. 거름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물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햇볕을 가려 줄 필요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을 비난한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안다면 그들은 상치처럼 잘 자랄 것이다. 비난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농부 말하길,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의 어려움은 첫째, “농약과 화학비료에 익숙해 있던 작물들이 유기농법에 스트레스를 받아 죽는 경우도 생긴다,”라는 점이고, 둘째, “다른 농부들은 농약을 치는데, 나만 농약을 안치면 다른 논밭의 벌레들이 모두 내 논밭으로 와서 농작물에 해를 끼친다.”라는 점이다.


  교사 말하길, 학생 스스로 자기를 절제하는 방법을 깨닫도록 상담 교육하는 것의 어려움은 첫째, “체벌과 강제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이 상담교육에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는 경우도 생긴다.”라는 점이고, 둘째, “다른 교사들은 체벌하고 강제하는데, 나만 안하면 수업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버린다.”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무엇일까?


  첫째, 기존 농작물이 체질개선을 하는 동안 벌어지는 아픔과 괴로움을 잘 버티어 결국 튼튼한 유기 농작물로 거듭나길 기다리는 것처럼, 수동적인 학생이 능동적인 학생으로 변화하도록 인내해야 한다.

  둘째, 다른 농부들에게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농사하도록 권유하는 것처럼, 다른 교사들에게 체벌과 강제만을 고집하지 말고, 상담 교육하는 데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인내의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아이들과의 생활은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을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은 거의 형벌과도 같은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 하나지만 그 순간에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야 다음에 학생들이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물론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선생님들의 좋은 의도가 학생들의 행동 교정으로 이어질 것인가?’하는 점에서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습관이나 잘못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복합적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단순한 훈계보다 우리의 믿음과 관심이 학생의 ‘바람직한’ 선택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 자신에게 맞는 학급운영의 계획과 실천입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가진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색깔이 어울려서 빚어내는 학급운영의 색깔은 또 어떨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보여준 학급운영의 모습은 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낸 독특한 색깔일 뿐이지요.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학급활동, 평소에 관심 있었던 학급활동,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학급활동을 계획하시고, 아이들과 의논하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계획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저 이런 거 잘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학급운영은 단지 실패를 줄이기 위한 참고자료로 필요할 뿐입니다.

 

3. 믿음으로 한 걸음씩!

  이 모든 학급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데 밑바탕은 결국 아이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떨어지는 공은 아무리 받쳐 올리려고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떨어지는 공을 받쳐 올리려다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 공이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반작용으로 튀어 오를 때 힘껏 밀어 올려 주십시오. 결국 우리는 공이 튀어 오르려는 시기를 알고 도와주는 게 필요하지요. 또, 이런 비유도 많이 듣게 됩니다. 라면국물 한 사발을 희석시키려면 물 다섯 욕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와 좌절, 적개심을 없애려면 어쩌면 일 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겁니다. 차분히 한 걸음 한 걸음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가갔으면 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바라보실 때 오래 마음에 담아두셨으면 하는 시 한 편 드립니다.


      들풀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 안준철(순천 효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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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고 또 옳은 소리들입니다.
학급 운영이야말로 학교의 중심이고, 교육의 핵심이 아닐까요?
그런데, 교과 협의회도 있고, 전체 직원회도 있지만, 학급 운영에 대한 연구는 너무도 일천하지요.
사실 우리 교사들이 모이면 나누는 이야기가 학급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저도 내년엔 <학급 운영>에 관한 사업을 해 볼까 구상중입니다.
혼자만 하는 학급 운영 말고, 함께 하는 학급 운영 말입니다.
어쩌면... 지부 사무실에서 만나게 될는지도...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느티나무 2005-11-2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당연한 말만 늘어놓아서 읽는 사람이 재미가 적지요 ^^ 학급 운영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학급 운영>에 대한 사업이면 어떤 걸? 궁금해 지는데요. 지부 사무실에서 만나뵈면 뻘쭘~~! 하겠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졸업앨범(CD) 만들기 

 

1.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

  2004년 3월,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긴장감으로 맑은 눈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책 속에만 얼을 파묻고 있는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같이 1년을 보내야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관심의 폭이 좁은 입시생들이라 저와 친밀해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로 점차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그들과 행복한 연애를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학교 곳곳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보게 되는 예쁜 표정을 사진으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맑은 모습들이었거든요. 꽃처럼 피어나는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작 본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입시라는 이름의 비정한 경쟁체제에 내몰려 마음까지 얼어붙은 아이들이지만, 그 나이에 당연하게 꿈틀대고 있는 삶의 생기는 어쩌지 못하는 법이거든요.

  그러다가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컴퓨터에 담은 사진을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서 더욱 열심히 찍었습니다. 제가 기분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지 신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게 한 장 두 장 모이다 보니,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진 모든 아이들을 다 찍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이 나중에는 더 부풀어서, 내가 연애(戀愛)하고 있는 녀석들이 졸업을 할 때 의미 있는 선물을 해 보자는 생각까지 발전한 것입니다.


2. 시작은 어떻게 했을까?

 2.1 사진 찍기

  아마도 4월초부터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사진기는 대체로 챙겨갔습니다. 물론 수업시간에 꺼내는 건 아니었구요. 쉬는 시간에 먼저 다가오는 녀석들부터 한 장 한 장 찍었습니다. 늦은 시간, 언제나 아이들 교실을 둘러볼 때는 손에 사진기를 챙겨갔습니다.

  저는 사진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사진을 찍어 본 적도 별로 없습니다. 잘 찍는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고, 그냥 표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뿐이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소박한 바람대로 얼굴의 표정이 잘 드러나게 대상에 근접해서 주로 찍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사진 찍는 것에 협조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단호하게 거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냥 다음 기회로 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도 그런 학생들은 본인이 싫다는 데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이 앨범은 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들어있는 건 아닙니다.) 나중에서 졸업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니, 마지못해 승낙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중간에 사진 찍은 걸 현상해서 한 장 씩 선물로 주면 받아든 학생은 뿌듯하고, 다른 학생들은 부러워서 사진 찍으려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진은 정말, 아무 때고 아이들이 보일 때마다 취미로 생각하고 찍으려고 들었습니다. 교실, 운동장, 식당, 체육관 학교 안 어디서라도 찍을 상황만 되면 가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야 뭐 하는가 싶어서 의아해하다가도 나중에서 아이들도 ‘그러려니’하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수능도 끝나고 지금까지 찍어 둔 사진을 담아 CD에 담아주려고 하다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3학년 담임선생님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으면 좋겠다 싶어서 방송부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녀석들도 기쁘게 받아들여 캠코더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학교의 모습도 담긴 사진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찾았습니다. (사진을 구한 게 너무 늦어서 정작 앨범에는 담을 수 없었습니다.)


2.2 사진 편집과 CD 만들기

  먼저 저와 같이 작업할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비디오 촬영은 방송부 재학생들에게 부탁했고, 찍어 온 비디오 편집은 졸업하는 방송부 학생이 맡았습니다.(이 학생이 공CD도 300장이나 사 왔고, 졸업앨범의 전체적인 기획을 담당했습니다.) 전체적인 편집 과정에 대한 방향과 조언은 졸업생 두 명이 도와주었습니다.

  우선 컴퓨터에 담긴 사진을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분류하여 사진 파일에 이름을 적었고, 동영상 파일은 따로 폴더를 만들어 분류했습니다. 다음은 공CD를 300장을 마련해서,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활용해서 표지 디자인을 만들었습니다. CD 표지용 라벨은 시중에 팔기 때문에 칼라프린트로 인쇄만 하면 됩니다. 거기에다 CD 라벨을 정확하게 붙일 수 있는 펀칭기가 있어서 작업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막판까지 앨범이 부실하다는 느낌이 들어, CD를 나눠주기 전날까지 학교 근처의 아파트까지 올라가서 학교의 모습을 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졸업앨범CD를 만들면서 얻은 멋진 추억도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늦게까지 도서실에 앉아 서너 대의 컴퓨터로 CD를 굽고, 구운 CD를 케이스에 담고, 또 반별로 분류하며 두런두런 나눈 이야기는 저에게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졸업앨범을 만들면서, 정(情)은 교사와 학생이 마음을 열고, 서로의 삶에 한 걸음 더 다가설 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졸업앨범을 받을 학생들을 누구보다도 부러워한 학생들은 사실, 2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자기들 졸업앨범도 만들어 주고, 딴 학교로 가라고 하더군요. ^^;;)

  졸업을 하는 날에는 반장을 통해 졸업앨범을 나눠주도록 부탁했습니다. 이 졸업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했었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없어도 아이들이 이해하리라고 믿었습니다. 한참 후에, 도서실과 교무실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녀석들도 많았고, 그 날 저녁에도 기쁨에 들뜬 메시지를 꽤 받았습니다.


3. CD를 받은 아이들의 반응

  처음에 이것을 만드는 선생님을 봤을 때 ‘3학년 담임선생님도 아니신데 왜 이렇게까지 수고하실까, 학기 중에 애들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부터 이 생각을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놀랍기만 했다. 졸업식 전 날까지 몇 아이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만들면서, 아이들이 받으면 좋아하겠지? 애들이 어떤 반응일까? 하며 기대하시고, 걱정하시고, 설레어 하시던 선생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이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보면서 그때 애들 사진을 찍으시느라 수고하셨던 선생님 모습과, ‘선생님! 이 아이 사진 꼭 찍어주세요~’ 하며 부탁하던 아이들이 생각이 났고, 행복했던 고3 시절이 떠올랐다.
  사실 앨범을 졸업 후 자주 보게 되진 않았는데, 어느 날 책상 정리하면서 발견한 CD를 보고 웃음이 절로 났다. 비싼 졸업앨범보다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고 우리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이 CD가 더 애착이 간다. 세월이 지나 어떻게든 CD를 발견했을 때 ‘어, 이거~’ 하면서 잊고 지냈던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이 떠오를 테고,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가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뒤를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물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늘 마음속에 세상을 비추는 빛을 가지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 말을 되새기면서…….

(화명고 졸업생, 오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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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학생의 날에 교무실 앞에 붙인 게시물과는 별개로 수업 시간에 나눠주는 국어 학습지의 여백을 이용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전달해 준 학생의 날의 의미에 대한 글입니다. 혹시 내년에도 쓰일까 싶어서 나의 보물창고인 알라딘에 올려둡니다.

 

 

2005년 11월 3일은 제 76주년 학생의 날!


광주학생운동과 학생의 날

 - 우리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11월 3일은 학생의 날입니다. 1953년 10월 문교부령으로 이 날을 학생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하게 된 계기는 일본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 30분경, 광주를 떠난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해서 학생들이 개찰구를 걸어 나가고 있을 때,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인 여학생의 댕기를 잡아당기며 희롱하였습니다. 이를 본 조선인 남학생이 꾸짖자, 곧 조선인 학생 30여명과 일본인 학생 1백여 명의 집단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우리 민족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어, 일본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때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열차에서의 싸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사들이 모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조선인 학생들만 꾸지람을 듣게 되어, 분노의 감정이 더욱 쌓여만 가던 차에 11월 3일, 이 날은 일왕의 생일이었고 음력으로는 개천절, 드디어 누적된 민족 감정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여학생 학생 희롱 사건에 대해 광주고보생을 일방적으로 꾸짖는 기사를 실었던 광주일보사를 습격, 편파 보도에 항의하고 신사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 1.2차에 걸친 대대적인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학생들만 일방적으로 처벌을 받자 광주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으니, 이것은 단순히 광주의 학생 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전국적인 학생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광주 학생 운동은 통학 열차 안에서의 우연한 충돌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한 분노가 그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 넓게는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올바른 정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날을 정한 것도 단순히 11월 3일의 광주 학생 의거만을 기념하자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항상 깨어 있으면서 민족을 올바로 이끌어 왔던 젊은 학생들 모두를 기억하고 그러한 젊은 학생들의 자기희생 정신을 길이 계승하기 위한 의미로서 학생의 날이 정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4년 6월 10일, 전국의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광주 서중학교(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광주 학생 운동 기념탑’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말을 새기었습니다.

《우리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학생의 날에 느티나무가 여러분들에게

◇ 제 76회 학생의 날을 여러분과 함께 축하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을 비추는 빛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러분들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여러분과 제가 서로 함께 배우고 가르쳐서 더불어 숲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005년 11월 3일 학생의 날에... 느티나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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