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운영의 방향을 고민하며
느티나무(OO고등학교 교사)
Ⅰ. 담임,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1. 시작하며-실패를 통해 배우다.
학교 밖에서 교원 평가를 둘러싼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마음이 허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라 저도 며칠 고생을 좀 했습니다. 더구나 학교 안을 둘러보면 그 광풍을 자초한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알게 되는 탓에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그래도, 아직…’ 이라며 제 마음을 다잡게 해 주는 분들이 계신데,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선생님들이 그러시고, 특별한 주제로 아이들의 일상적인 삶과 만나고 계신 분들도 그러시고, 참신한 학급행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급운영에 대해 그렇게 놀라운 능력을 보이시는 분들을 보면, 저 분들은 어디서 저런 열정이, 이해심이, 참신한 생각이 나오는지 반성하게 되고, ‘환경 탓만 하며 불평만 늘어놓고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학급담임으로 아이들과 수도 없이 많이 부딪치면서 실패를 겪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시 고민하면서 다른 방법을 궁리하고, 또 실패하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저는 낙동고등학교에서 1학년 3반을 맡았는데, 올해도 제가 담임을 맡은 반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선생님들 앞에서 말씀드리게 될 썩 괜찮은 이야기들이 저와 우리 반 아이들의 교실에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는지 물으신다면, 제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여러 번의 반복된 실패 속에서 서서히 아이들이 제 마음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실패를 되짚어보면서 아이들의 상처에 눈길이 가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면서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조금씩 맞추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발령받았을 때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졌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고, 주고 싶은 게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자주 보고 싶은 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싫어질 때까지 담임을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 만약에 제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면, 그냥 실패에 주저앉았다면, 해마다 맡게 될 학급 담임의 자리가 설렘이 아니라 왠지 모를 무거움과 두려움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거듭된 실패도 영 버릴 건 아닌가 봅니다.
2. 거짓 혹은, 진실
최근 들어, 교과 학습 방면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성과 능동성, 창의성과 자발성을 존중하는 흐름들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정작 이런 능력들이 일상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곳인 학급에서는 그렇게 활발하게 펼쳐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3,4월에 웃고 다니면 애들이 담임을 만만하게 봐’, ‘반장을 잘 뽑아야 담임의 1년이 편해’, ‘애들은 초반에 꽉 휘어잡아야 해’ 뭐, 이런 수준의 담론들이 교무실의 구석에서 은밀히, 때로는 공개적으로 떠돌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늘 새로운 수업 방법을 고민하는 동료 선생님이 있다고 합시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그 선생님을 보면서 ‘이렇게 늘 하던 대로 하면 편하다’고 충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함부로 말씀하실 수 없겠지요? 오히려 같은 교과의 선생님이시라면, 곁눈질로 자극도 받고, 호기심도 생겨 수업 자료도 챙겨 보실 것이고, 자기 수업을 되돌아보기도 할 것입니다. 수업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지, 편안함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교사가 편하게 지내려고만 든다면 더 이상의 연구와 고민은 없어도 됩니다.
학급운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급운영에 대해 편안함을 기준으로 들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모임의 선생님들이 맡은 학급운영의 기준은 학생들과 선생님의 행복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행복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학교에서 행복해지는 것이 우리 학급운영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래야 편하다’라는 교무실의 쑥덕거림은 귀를 열어두고 있으되, 그냥 흘려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거야 누군가에게 듣지 않아도 제 자신이 학창 시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 이니까요.
비록 교사 양성 과정에서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이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 일상 공간인 학급의 운영도 교과 학습처럼 교사의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그러니 학급 운영을 편리함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학급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과 정신적인 만족, 의도한 결과이든 그렇지 않든 배우게 될 아이들의 잠재적 학습의 결과에 대해서 담임도 함께 고민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Ⅱ. 학급운영, 어떻게 할 것인가.
1. 진정성과 시간이 열쇠다.
저는 아이들과의 행복한 공동체를 학급목표로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저와 더불어 공동체 생활의 기쁨을 맛보며,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해진 규칙이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학급활동의 방법에 대해, 학급행사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구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법이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것들입니다. 조례와 종례시간을 새롭게 활용하기(노래, 시, 신문 등을 학생들이 소개하기), 모둠 일기 쓰기, 모둠 활동하기(비빔밥 해 먹기, 식물 키우기, 모둠 노래자랑 대회, 방학 중 모둠 모임……), 학급회 시간을 이용하여 학급행사 꾸리기(학급체육대회, 학급노래 배우기, 편지 쓰기, 세밀화 그리기, 뒷산 오르기, 목욕탕 가기……) 학기 초에 하는 집단상담, 학기 중에 하는 개인상담(학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해서 선생님께 들려주는 상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성공했다고 말씀드릴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돌이켜 보니, 짧은 경험이었지만 저의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학급운영 방법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굳어진 상처 자국을 싹싹 문질러 빨리 지워내려고 서둘렀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굳어진 응어리는 따뜻한 물에 담기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처럼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저의 마음에 ‘진정성’이 담겨있는 걸 느낀다면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때야 저와 학생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급을 운영해 보신 선생님들께서는 이미 이 말을 마음에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말인지 잘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머리와 귀에는 많이 들어왔으나 진정 우리의 가슴으로까지 내려가지 않는 그 말, 아이들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다음 이야기를 같이 읽고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가 교사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주문인지 모두 공감하시겠지요?
상치를 심었는데 그 상치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은 그 상치를 비난하지 않는다. 당신은 상치가 잘 자라지 않는 이유를 찾아본다. 거름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물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햇볕을 가려 줄 필요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을 비난한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안다면 그들은 상치처럼 잘 자랄 것이다. 비난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농부 말하길,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의 어려움은 첫째, “농약과 화학비료에 익숙해 있던 작물들이 유기농법에 스트레스를 받아 죽는 경우도 생긴다,”라는 점이고, 둘째, “다른 농부들은 농약을 치는데, 나만 농약을 안치면 다른 논밭의 벌레들이 모두 내 논밭으로 와서 농작물에 해를 끼친다.”라는 점이다.
교사 말하길, 학생 스스로 자기를 절제하는 방법을 깨닫도록 상담 교육하는 것의 어려움은 첫째, “체벌과 강제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이 상담교육에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는 경우도 생긴다.”라는 점이고, 둘째, “다른 교사들은 체벌하고 강제하는데, 나만 안하면 수업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버린다.”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무엇일까?
첫째, 기존 농작물이 체질개선을 하는 동안 벌어지는 아픔과 괴로움을 잘 버티어 결국 튼튼한 유기 농작물로 거듭나길 기다리는 것처럼, 수동적인 학생이 능동적인 학생으로 변화하도록 인내해야 한다.
둘째, 다른 농부들에게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농사하도록 권유하는 것처럼, 다른 교사들에게 체벌과 강제만을 고집하지 말고, 상담 교육하는 데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인내의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아이들과의 생활은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을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은 거의 형벌과도 같은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 하나지만 그 순간에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야 다음에 학생들이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물론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선생님들의 좋은 의도가 학생들의 행동 교정으로 이어질 것인가?’하는 점에서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습관이나 잘못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복합적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단순한 훈계보다 우리의 믿음과 관심이 학생의 ‘바람직한’ 선택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 자신에게 맞는 학급운영의 계획과 실천입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가진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색깔이 어울려서 빚어내는 학급운영의 색깔은 또 어떨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보여준 학급운영의 모습은 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낸 독특한 색깔일 뿐이지요.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학급활동, 평소에 관심 있었던 학급활동,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학급활동을 계획하시고, 아이들과 의논하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계획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저 이런 거 잘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학급운영은 단지 실패를 줄이기 위한 참고자료로 필요할 뿐입니다.
3. 믿음으로 한 걸음씩!
이 모든 학급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데 밑바탕은 결국 아이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떨어지는 공은 아무리 받쳐 올리려고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떨어지는 공을 받쳐 올리려다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 공이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반작용으로 튀어 오를 때 힘껏 밀어 올려 주십시오. 결국 우리는 공이 튀어 오르려는 시기를 알고 도와주는 게 필요하지요. 또, 이런 비유도 많이 듣게 됩니다. 라면국물 한 사발을 희석시키려면 물 다섯 욕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와 좌절, 적개심을 없애려면 어쩌면 일 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겁니다. 차분히 한 걸음 한 걸음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가갔으면 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바라보실 때 오래 마음에 담아두셨으면 하는 시 한 편 드립니다.
들풀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 안준철(순천 효산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