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언어 영역 공부와 책읽기


송승훈선생님 (광동고)


   수능 언어 영역에서는 교과서에서 글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해진 지식을 외우는 정도를 살피는 시험이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이어서 그렇다. 종종 국어 공부를 한다면서 참고서와 문제집에 나온 단원 요약을 열심히 외우는 학생을 보는데, 잘못하는 것이다. 그런 공부는 한 인간으로 사는 데도 도움이 안 되고, 입시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공부가 필요하다.

   중학교 때는 국어교과서가 한 종류이지만, 고등학교는 여러 종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국민공통교육과정이라고 해서 국어를 똑같이 한 교과서로 배우지만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국어생활, 작문, 독서, 문학, 화법, 문법, 이렇게 여섯 가지나 된다. 과목마다 교과서가 한 권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권씩 있어서, 이 가운데서 선택해서 배운다. 문학 과목은 교과서가 열여덟 종류나 되어서, 가까운 진역에 있는 다른 학교에서 같은 교과서를 쓰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학교마다 쓰는 교과서가 다르기에 교과서에서 수능 문제를 내려고 하도 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기에, 입시에 성공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구나 수능 언어 영역 문제는 지금 60문제가 나오는데,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 가운데 20% 정도나 정해진 시간 안에 그 문제를 다 풀까, 대다수는 문제를 다 풀지도 못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교과서 바깥에서 처음 보는 글이 나오고, 외워서 푸는 문제가 아니라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이기에 짧은 시간에 문제집을 여러 권 푼다고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준비로는, 일찍부터 책을 많이 읽어두는 수밖에 없기에, 책읽기가 강조된다.

   그러나 아무런 책이나 무조건 읽는다고  해서 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책을 제대로 읽어야 도움이 된다. 이때 제대로 된 책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에 따라 공부는 성취가 크게 달라진다. 대표적인 실패는 중학교 때부터 일제 시대 단편소설을 읽히는 시도이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좋지만, 그 책들이 그 나이 때의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서 권해야 한다. 학생들이 무슨 이야기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는데, 이름난 책을 읽었으니까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그런 책읽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는 몇 마디 물어보면 금방 확인된다.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은 학생에게 ‘그 소설을 읽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면 좋겠니?’하고 물어보자. 어떤 대답이든지, 우리가 들어서 말이 되는 말이면 그 책읽기는 온전히 되었다고 할 테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생들은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작품에 대해 참고서에서 외운 주제를, 그것도 ‘인간 본연의 속성으로서 애정’과 같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대답한다. 이러면 그 책읽기는 별로 얻는 게 없다고 보면 된다. 어떤 책을 읽고 나서 자기 언어로 그 의미를 정리하지 못하면, 그 책읽기는 수박 껍질만 훑은 것이다.


자기 주변의 삶을 이해하는 책을 읽자


   자신의 책읽기를 돌아보자. 혹시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비슷한 이름으로 된 책을 사다놓지 않았는가? 그런 책은 입시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지만, 사고 나면 막상 읽는 데 자체에만 의미를 두지, 읽으면서 사색하는 일은 잘 되지가 않는다. 시험에 나올 만한 글을 뽑아두었다는 선전을 보고 그 책을 사서 읽기에, 시험이라는 말에 눌려서, 인생이나 세상에 대해 도무지 생각이 펼쳐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대체로 그 책들은 학생들이 공감하며 생각거리를 얻어 생각을 키울 수 있는 글을 성의껏 뽑아놓았다기보다, 이름난 작품을 대충 모아둔 책들이어서 감동이 있기 어렵다.

   그런 입시용 책을 사서 읽고 자신이 감동을 느꼈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 사람은 5% 안쪽의 드문 경우에 속하는데, 자신이 하던 방식대로 계속 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책에서 책읽기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고달픈 심정만 느낀 다른 95%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책에서 벗어나자. 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가면 이때까지 나온 수능 문제를 공짜로 내려 받을 수 있으니까 살펴보라. 그런 책들에서 실제 수능 글이 몇 편이나 나왔는가. 살펴보고 나면 무시해도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글을 읽으며 생각이 흔들리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책은 읽으나마나이다. 줄거리만 기억하는 책읽기, 읽었다는 확인만 남은 책읽기, 단편적 정보만 외운 독서인증제용 책읽기는 아주 작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생각이 움직이는 책을 먼저 찾아 읽기를 권한다. 그런 책은 대체로 자기 주변의 삶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하는 책인 경우가 많다. 이게 입시에 나오니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맨 처음 시작할 때는 힘을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책읽기를 지속하는 힘이 되기는 어렵다. 자기 삶의 주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들을 찾아 읽으면, 자기 주변과 책 내용을 견주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머리가 좋아지고 능력이 높아져서 생각이 깊어지고 입시에도 성공한다.

   눈이 뜨이고 깨닫는 느낌이 있는 책읽기라야 재미가 붙는다. 이 때 재미는, 말초신경을 자극한다거나 억지스러운 연출로 황당한 웃음을 자아낸다거나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는 데서 얻어지는 매혹이 아니라, 우리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데서 얻어지는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책 대여점에서 주로 학생들이 빌리는 영웅 이야기나 연애 이야기를 담은 오락용 책에서 얻는 즐거움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고 달래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책읽기는 우리를 지치게 하는 세상이 왜 그런 모습인지를 알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문제를 풀어가도록 우리 자신을 튼튼하고 지혜롭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설탕과 같아서, 적당히 쓰면 삶이 편안해지지만, 지나치면 환상에 취해서 삶이 무기력해진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그래서 우리의 머리를 저절로 쓰게 하는 책을 몇 권 적는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괴롭힘 당하는 이야기를 담은 <말해요, 찬드라>,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와 같은 소수자의 사연을 담은 <다르게 사는 사람들>, 방황하며 자기 길을 찾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못난 것도 힘이 된다.>, 가난한 처지에서 여러 가지 사고를 치며 고민하는 아이가 나오는 <푸른 사다리>, 차별에 대한 단편만화를 모은 <십시일반>, 지난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애쓴 이들의 오늘날 모습을 담은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 사형수의 이야기를 감동 깊게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찾아보기 바란다.

   책을 한 번 읽고 다 끝났다며 책을 저편으로 물리는 사람은 어리석다. 다 읽었다면 그 책을 만지작거리며 책 내용과 세상을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이 책읽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사색하라. 글을 읽기만 하는 책읽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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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6년을 이렇게 살고 싶다.


느티나무


* 2006년 나의 학급운영 계획

  -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이다.


1.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 무엇을 하느냐보다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다는 마음 갖기

  ․ 아이들에게 두려움이나 위협을 느끼지 않게 하기

  ․ 아이들의 장점 찾아서 넉넉하게 칭찬하기

  ․ 마음의 평상심 유지하기

  ․ 거리와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판단하기


2. 아이들과 해 보고 싶은 일들

  ․ 학급신문, 학급문집/학급앨범 만들기

  ․ 학교 밖 나들이 가기(소풍 말고, 그냥 우리끼리 자유롭고, 재미있게)

  ․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기


* 2006년 나의 문학교과 운영 계획

 - 열심히 준비하고 재미있게 수업한다.


  ․ 학교생활에서 수업준비를 제 1순위로 여기기

  ․ 수업시간에 친절하기

  ․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을 때도 있다는 마음을 이해하기

  ․ 수업시간마다 한 번씩은 꼭 웃어주기

  ․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많이 외우고 부르기

  ․ 수행평가, 잘 활용하기


* 2006년 참실 발표 준비 계획

1. 범교과 학습동아리 ‘글밭 나래, 우주인’ 운영

  ․ 스스로 공부하려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기

  ․ 생각하는 능력 키우기

  ․ 마음이 맞는 아이들과 마음 터놓고 지내기


2. 글밭 나래, 우주인

  ․ 2주에 한 번, 책 읽고 독후활동하기

   - 마음나누기, 토론하기, 연극하기, 요약발표하기, 연관 지어 생각하기

  ․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독후활동으로 책을 읽는 기쁨과 책 읽은 습관을 가진다.

  ․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고, 적극적인 자세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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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삼월 첫 날을 몹시 쌀쌀하게 시작해서 움츠려 들게 하지만 새 달, 새 마음, 새 학년...
이런 단어들은 우리에겐 언제나 설레임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 아이들에게 베풀어 주신 노고에 감사드리며,  선생님을 통해 저는 긴장하고 살고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음도 고백합니다.
긴 수식어를 붙여도 결국 알맹이는 '고맙습니다'로 귀결될 것입니다.ㅎㅎㅎ
이제 내일부터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생활에 적응하면서 지낼 우리 아이들과 함께 수고하시겠군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3월 1일

OO이 엄마 올림



 OO이 어머님께

   완연하진 않지만 그래도 오늘은, 봄날이라고 말해야 할 듯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날씨도 처음부터 온전히 제 모습을 다 드러내지는 않네요. 그래도 봄이 오는 건 분명한가 봅니다.

   사실, 뜻밖의 메일을 받고 무척 고마웠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을 전하는 게 이렇게 늦은 이유는 바빴다는 핑계로 저의 게으름을 변명하고자 했던 안일한 마음 탓입니다. 하기야, 학교의 3월은 진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빠르게 돌아갑니다만 꼭 말씀드려야 했다면 못 했을 것도 없는데 이렇게 답신이 늦었습니다. 아직도 못 해놓은 일도 많은데, 더 미루면 어머님께 글 한 줄 쓰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짬을 냈습니다.

    어머님을 두세 번 뵙고 나서 OO이가 여느 아이와는 달리 조금 더 바르게 생각하는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아주 컸으리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내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으시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무척 고맙고 또, 반가웠습니다.

   원래는 학부모 모임 자리가 교사에게 편하기만한 자리는 아닌데, 되돌아보니 작년에는 그래도 서너번 있었던 모임이 나름대로 유익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학부모와 학생의 현재를 놓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흔하지는 않거든요.

   OO이는 새로운 반에 들어갔는데, 담임 선생님이 아주 훌륭한 분이시라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 걱정은 안 하셔도 될 듯 합니다. 저도 반이 갈라지고 나니 새삼 작년에 좀 더 잘 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 올해 맡은 반 아이들과는 정말 행복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저는 학교가 지금보다는 평화롭고 아이들의 행복을 고민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제 고민을 낭비라고 여기지 않으시고, 소중하게 여겨주신 어머님의 관심을 오래 간직하며 교단에 서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한 일이 가득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2006년 3월 9일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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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6-03-09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듯하사겠습니다,,

물만두 2006-03-0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느티나무 2006-03-0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자랑질을 더욱 뿌듯하게 해 주시네요. ㅋ 괜히 부끄럽습니다. ^^

해콩 2006-03-09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언제 이런 자랑질 한 번 해볼 수 있으려나..

느티나무 2006-03-0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무슨 말씀!! 샘이 동학년해서 쫌 긴장되는데...ㅜㅜ 괜히 잘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모두들 잘 하시니까, 그냥 ^^ 나도 괜히 뒤질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어쩜 그렇게 참신한 이벤트를 생각하셨나요? 나는 그런 거 생각도 못 했는데...

해콩 2006-03-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작년 [학교에서 행복해지기] 자료에 있거덩요.
서로 주고 받는 칭찬 좀 간지럽기 하지만..샘은 저런 편지, 충분히 받을 만한 담임이세요. 30초마다 한 녀석씩 보내기.. 다음 모의고사 칠 때 저는 서편계단으로 보낼랍니다.

이쁜하루 2006-03-1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멋진 학부모님에 멋진 선생님이십니다. 저도 나중에 아이낳으면
꼭 느티나무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느티나무 2006-03-1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저런 날도 있다는거지, 사실, 멋진 선생님은 못 되는데요...^^;; 가끔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학부모님은 계신데, 아이들은 저 보면 힘들어한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내 어린 ‘친구’들에게 띄우는 편지


OO고등학교 교사 느티나무


1. 연어, 강으로 돌아왔어요.


  참, 묘하더군요. 2월 찬바람이 쌩쌩 불던 날, 새롭게 일하게 될 학교를 알게 되던 날의 기분 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어요. 새 부임지로 정해진 곳이 지금의, 우리 학교인 OO고등학교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말이지요. 그러나 이 기분은 누구나 겪는 낯선 환경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은 아니었어요.

   그 날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본다면, 우선 약간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저에게 우리 학교는 그리 낯선 곳만은 아니었거든요. 어렴풋하게나마 제가 여러분들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걸 그 때 이미 알았다고 할까요? 두려움에 대한 느낌도 이런 것이었지요. 아직 제 자신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불안감, 그런 제 자신을 제가 좋아하게 될 여러분들 앞에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곤혹스러움이 마음을 눌렀어요. 

  아무튼 전보발령을 받던 날은 제가 한 마리의 연어가 된 날이었어요. 오랜 바다 여행을 끝내고 다시 그 바다로 나가기 전에 살던 강의 상류로 되돌아가는 한 마리 연어 말이지요.


  우리 학교에 온 첫 날, 제 눈길을 가장 먼저 잡아끈 것은 운동장에서 볼 때 중앙 현관 왼쪽에 있는 목련입니다. 제가 어쩌다 우리 학교를 생각할 때면 늘 그 목련이 잘 있을까, 지금쯤 목련꽃은 하얗게 피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목련을 떠올리면 어느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 전일인데도 무척 기억이 또렷해요. 그 때가 아마 사월쯤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끝에 창밖에 활짝 핀 목련꽃을 무연(憮然)한 표정으로 내다보시며 ‘그 때도 저 목련은 저렇게 피었을 테지……’하셨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때 하신 말씀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말씀을 하신 것과 그 때 선생님의 표정은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분이셨거든요. 엄혹했던 시대, 눈물과 고난이 필요했던 시절을 외면하지 않고, 몸으로 견뎌 오면서도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은 참 따사로운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저 교탁에 서서 반짝거리는 눈빛을 가진 아이들의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저는 예전에 그 선생님께서 서 계셨던 교실에서 창문 밖으로 목련을 건너다 봤지요.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지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내 학창 시절이 떠올리며, 학생들을 사랑하겠다는 것,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것,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한다는 것 등의 첫 마음의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다짐해 보았습니다.


2. 사랑에 빠진 사람을 위한 ‘해명’


  저는 여러분들을 만나던 첫날부터 여러분들이 좋았습니다. 그냥, 좋았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딱! 내 스타일이구나 싶은 거. 사람은 누구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노력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의 능력이 부족함이 아니라, 저의 게으름을 지적할까 싶어 늘 조심했습니다. 저의 지난 1년의 삶을 여러분들이 보고 겪어서 느낀 대로 받아들이는 건 여러분들의 자유지만, 제 행동 너머에 담긴 의미까지 읽어낼 수 있는 여러분들의 혜안을 기대해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분들의 행동에 따라서 제가 모질게 야단을 쳤을 수도 있고, 부드럽게 타일렀을 수도 있고, 틀에 박힌 잔소리를 퍼부었을 수도 있고, 짐짓 무심한 척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도 여러분들을 이해하려고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은 적은 없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가끔 저의 잔소리 같은 꾸지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집니다. 저의 진심을 몰라주는 야속한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이런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옛날에 동네에서 온갖 나쁜 짓을 일삼던 어느 양반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동네 사람들은 그 아버지의 위엄 때문에 아들의 ‘못된 짓’을 나무라지 않고 모두들 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늘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던 아버지만이 그 아들을 불러다가 타이르고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고 아버지만 그르다고 하시는데, 대체로 소원1)한 자는 공정하고 친한 자는 사정을 두는 법입니다. 어째서 남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데 아버님께서는 도리어 저를 나무라신단 말입니까?"


  그러자 그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아들에게 말합니다.


   "공정하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 취급을 안 해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미2)가 너무도 참혹하지 않느냐. 사사로운 정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행여나 뉘우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롭지 않느냐. 네가 한번 생각해보아라. 세상에 부모 없는 자에게는 훈계해주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3)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아들의 못된 버릇을 혼내 주었다지요. 그때서야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후회했다고 하네요.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저의 따끔한 꾸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3. ……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가끔씩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그 때마다 여러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히려 ‘선생’인 제가 부럽다고 했지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라 저는 정말로 여러분들이 부러워요. 한줌도 되지 않는 내가 가진 것이 혹시 여러분들의 부러움을 샀는지 알 듯 말 듯 하지만, 여러분이 가진 가능성에 비하면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거든요. 가능성은 불안정이라고요? 두렵다구요? 맞아요, 그래요. 그런데요, 그래서 더 아름다워요. 부디 여러분들이 가진 그 가능성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에게, 흔하디흔한 ‘잔소리’ 같은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이 ‘잔소리’를 내가 2005학년도에 만난 여러분과의 짧은 인연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여러분들은 ‘리차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을 테지요? 우리는 그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의 놀라운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우리도 더 멀리 날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는 했습니다, 그렇지요? 조나단이 겪게 되는 시련과 따돌림마저도 높이 날게 된 결과 앞에서 얼마나 멋있어 보이잖아요. 거기에 반해서 조나단을 비웃고 배척하는 다른 무리의 갈매기들을 여러분들이 비웃어 주게 되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조나단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를 거예요, 아니 우리는 어쩌면 조나단처럼은 아니더라도 조나단을 핍박했던 갈매기의 무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짚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의 삶을 지켜보는 눈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들과 저는 금세 조나단을 비웃는 갈매기로 살아가기 쉽거든요.

  또, 우리는 괴롭더라도 항상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별과 같은 존재거든요.(수업 시간에 제가 항상 강조하는 ‘학습목표’와 같다면 이해가 빠를까요?) 비록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결국 그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진실로 인간됨의 괴로움을 알고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오래도록 자기 마음에 선한 꿈을 품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사람, 학교라는 존재가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공간이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시 한 편 같이 읽으면서 내 마음을 담은 짧은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한때나마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인 여러분들의 이름과 존재에는 오히려 둔감하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방학 잘 보내세요. 새 학년에, 다시, 맑은 얼굴로 봅시다.


들풀4)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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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1-06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교지에 담을 글 한 편을 썼다.(엄연히 원고 청탁이다.ㅎㅎ) 작년에 썼던 내용을 좀 보태고 깁고 해서 쓰다보니 내용도 스타일도 항상 좀 비슷하다. (그게 좀 불만이다.)

* 참고로 연어 이야기는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내가 다닌 고등학교이기 때문이다. 공립학교에서는 흔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해콩 2006-01-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느낍니다. 한/수/위!! 아마도 영원히 그렇지 않을까? 글 쓰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으세요. 저는 도저히 진짜~ 진심으로 저런 마음이 될 수는 없던데... 비결이???

해콩 2006-01-0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퍼갑니다. 혹시나 저도 나중에 저런 마음이 될 날이 있을까... 하여..

BRINY 2006-01-0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졸업한 학교에 교사로 돌아가시다니!

느티나무 2006-01-0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지요. 한 수 위라니요?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그 정성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싶은데... 제가 많이 배워야 하는데요, 뭘!
BRINY님, 그래도 정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요.
 

   최근 한 달 사이에 공짜 영화표가 두 번 생겼다. 그런데 한 번은 어쩌다 보니 날짜를 놓쳐 버린 셈이 되었고, 이번에 받은 것은 내년 1월 11일이 마감이니, 날짜가 넉넉해 여유가 있다.

   사실, 이번에 받은 공짜 영화표 때문에 나는 아주 기쁘고, 행복하다. 나는 공짜라는 말을 믿지 않으며, 따라서 당연히 공짜로 준다는 것은 무엇이든 다 싫어한다. 오죽하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건네는 '선물'조차도 받/는/ 걸/ 무척 싫어한다. 그러니까 나와 조금이라도 직업적 관련이 있는-예를 들면 학부모- 사람들이 보내는 어떤 '선물'도 단호하게 받지 않는다. 그런 걸 받고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튼 이 영화표는 좀 특별하다. 그 날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아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영화관 복도를 걸어오다 영화관 직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어~어~'하며 멈췄다. 이럴 때 내 머리 속은 재빨리 눈앞에 보이는 이 녀석의 기본적인 신상 정보를 찾느라 분주하다. 그렇지만 대체로 실패하고 미안하지만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그 날도 그랬다. 악수를 하며,

- 네 이름이 뭐더라?

- 성준이요.

- 성준이...? 아, 그 박성준!

- 예. 이OO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 너, 그 1학년 때 8반이던 그 성준이네. 우와~ 반갑다. 여기서 일해?

- 네. 군대 갔다와서 아르바이트 한 지 서너달 됐어요.

- 그래 훌륭하다. 혹시, 김OO 선생님과 연락은 하니?

- 아니요. 선생님, 잠시만요...

   그러다 완전히 그 녀석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발령 받은 첫 해에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녀석이다. 교무실 옆자리에 앉았던 처녀 선생님이 맡았던  반의 학생이었는데, 그 선생님을 제법 힘들게 했던 녀석이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손에서 영화표 두 장을 내밀었다. 순간, 말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 전해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뿌듯함이라고 해야할 듯 싶다.

   내 생활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어디를 가도 이처럼 내가 가르친 아이들을 곳곳에서 많이 만나게 된다. 아내와 점심을 먹으러 갔던 스파게티 가게에서도 그랬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그렇고, 수퍼에 들러도 그렇다. 내가 담임을 맡았던 녀석들은 주로 전화로 약속을 잡고서 '술집'으로 나를 부르지만, 내가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이 녀석들-이 녀석들은 아마도 내가 자기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꼭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금방 이름을 잊어버리기 싶다.-이 나를 보면서 먼저 인사를 건넬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내 손을 거쳐간 아름다운 보석이 세상 곳곳에 뿌려져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 영화표로 어떤 영화를 볼까 아내와 궁리 중이다. 어떤 영화면 어떠랴?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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