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친구’들에게 띄우는 편지
OO고등학교 교사 느티나무
1. 연어, 강으로 돌아왔어요.
참, 묘하더군요. 2월 찬바람이 쌩쌩 불던 날, 새롭게 일하게 될 학교를 알게 되던 날의 기분 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어요. 새 부임지로 정해진 곳이 지금의, 우리 학교인 OO고등학교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말이지요. 그러나 이 기분은 누구나 겪는 낯선 환경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은 아니었어요.
그 날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본다면, 우선 약간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저에게 우리 학교는 그리 낯선 곳만은 아니었거든요. 어렴풋하게나마 제가 여러분들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걸 그 때 이미 알았다고 할까요? 두려움에 대한 느낌도 이런 것이었지요. 아직 제 자신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불안감, 그런 제 자신을 제가 좋아하게 될 여러분들 앞에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곤혹스러움이 마음을 눌렀어요.
아무튼 전보발령을 받던 날은 제가 한 마리의 연어가 된 날이었어요. 오랜 바다 여행을 끝내고 다시 그 바다로 나가기 전에 살던 강의 상류로 되돌아가는 한 마리 연어 말이지요.
우리 학교에 온 첫 날, 제 눈길을 가장 먼저 잡아끈 것은 운동장에서 볼 때 중앙 현관 왼쪽에 있는 목련입니다. 제가 어쩌다 우리 학교를 생각할 때면 늘 그 목련이 잘 있을까, 지금쯤 목련꽃은 하얗게 피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목련을 떠올리면 어느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 전일인데도 무척 기억이 또렷해요. 그 때가 아마 사월쯤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끝에 창밖에 활짝 핀 목련꽃을 무연(憮然)한 표정으로 내다보시며 ‘그 때도 저 목련은 저렇게 피었을 테지……’하셨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때 하신 말씀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말씀을 하신 것과 그 때 선생님의 표정은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분이셨거든요. 엄혹했던 시대, 눈물과 고난이 필요했던 시절을 외면하지 않고, 몸으로 견뎌 오면서도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은 참 따사로운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저 교탁에 서서 반짝거리는 눈빛을 가진 아이들의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저는 예전에 그 선생님께서 서 계셨던 교실에서 창문 밖으로 목련을 건너다 봤지요.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지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내 학창 시절이 떠올리며, 학생들을 사랑하겠다는 것,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것,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한다는 것 등의 첫 마음의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다짐해 보았습니다.
2. 사랑에 빠진 사람을 위한 ‘해명’
저는 여러분들을 만나던 첫날부터 여러분들이 좋았습니다. 그냥, 좋았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딱! 내 스타일이구나 싶은 거. 사람은 누구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노력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의 능력이 부족함이 아니라, 저의 게으름을 지적할까 싶어 늘 조심했습니다. 저의 지난 1년의 삶을 여러분들이 보고 겪어서 느낀 대로 받아들이는 건 여러분들의 자유지만, 제 행동 너머에 담긴 의미까지 읽어낼 수 있는 여러분들의 혜안을 기대해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분들의 행동에 따라서 제가 모질게 야단을 쳤을 수도 있고, 부드럽게 타일렀을 수도 있고, 틀에 박힌 잔소리를 퍼부었을 수도 있고, 짐짓 무심한 척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도 여러분들을 이해하려고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은 적은 없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가끔 저의 잔소리 같은 꾸지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집니다. 저의 진심을 몰라주는 야속한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이런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옛날에 동네에서 온갖 나쁜 짓을 일삼던 어느 양반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동네 사람들은 그 아버지의 위엄 때문에 아들의 ‘못된 짓’을 나무라지 않고 모두들 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늘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던 아버지만이 그 아들을 불러다가 타이르고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고 아버지만 그르다고 하시는데, 대체로 소원1)한 자는 공정하고 친한 자는 사정을 두는 법입니다. 어째서 남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데 아버님께서는 도리어 저를 나무라신단 말입니까?"
그러자 그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아들에게 말합니다.
"공정하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 취급을 안 해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미2)가 너무도 참혹하지 않느냐. 사사로운 정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행여나 뉘우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롭지 않느냐. 네가 한번 생각해보아라. 세상에 부모 없는 자에게는 훈계해주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3)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아들의 못된 버릇을 혼내 주었다지요. 그때서야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후회했다고 하네요.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저의 따끔한 꾸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3. ……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가끔씩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그 때마다 여러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히려 ‘선생’인 제가 부럽다고 했지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라 저는 정말로 여러분들이 부러워요. 한줌도 되지 않는 내가 가진 것이 혹시 여러분들의 부러움을 샀는지 알 듯 말 듯 하지만, 여러분이 가진 가능성에 비하면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거든요. 가능성은 불안정이라고요? 두렵다구요? 맞아요, 그래요. 그런데요, 그래서 더 아름다워요. 부디 여러분들이 가진 그 가능성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에게, 흔하디흔한 ‘잔소리’ 같은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이 ‘잔소리’를 내가 2005학년도에 만난 여러분과의 짧은 인연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여러분들은 ‘리차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을 테지요? 우리는 그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의 놀라운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우리도 더 멀리 날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는 했습니다, 그렇지요? 조나단이 겪게 되는 시련과 따돌림마저도 높이 날게 된 결과 앞에서 얼마나 멋있어 보이잖아요. 거기에 반해서 조나단을 비웃고 배척하는 다른 무리의 갈매기들을 여러분들이 비웃어 주게 되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조나단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를 거예요, 아니 우리는 어쩌면 조나단처럼은 아니더라도 조나단을 핍박했던 갈매기의 무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짚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의 삶을 지켜보는 눈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들과 저는 금세 조나단을 비웃는 갈매기로 살아가기 쉽거든요.
또, 우리는 괴롭더라도 항상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별과 같은 존재거든요.(수업 시간에 제가 항상 강조하는 ‘학습목표’와 같다면 이해가 빠를까요?) 비록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결국 그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진실로 인간됨의 괴로움을 알고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오래도록 자기 마음에 선한 꿈을 품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사람, 학교라는 존재가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공간이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시 한 편 같이 읽으면서 내 마음을 담은 짧은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한때나마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인 여러분들의 이름과 존재에는 오히려 둔감하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방학 잘 보내세요. 새 학년에, 다시, 맑은 얼굴로 봅시다.
들풀4)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