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소위 말하는 자가용차라는 걸 몰고 출퇴근을 한다. 음, 9년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최근 두 달처럼 자가용차를 몰고 다닌 적은 없다. 퇴근이 늦어서 편리하기도 하고, 출근엔 아내와 함께 하니까 또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은 늘 빨리 처분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버지께서 폐차를 부탁한 차이기도 하다.)달리 운동도 안 하니까 더 자꾸 몸이 불어다는 느낌이다.

   며칠 전에 차를 대고, 몇 걸음 걷다가 화단으로 눈길이 스윽 같다. 나와 눈이 딱 마주친 꽃-구절초. 순간 움찔했다가 내처 몇 걸음 더 걸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서 구절초 앞으로 다가갔다. 보라색꽃이 참 예쁘장하게 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살풋, 소리 없는 웃음도 나왔다. 거기다가 코를 킁킁거리기까지. 손을 내밀어 꽃을 살짝 꺾었다. (이런 적은 거의 없다.) 내 책상에 있는 책 위에다 올려두고 하루를 보냈다.

   9년전이었으니까 첫발령을 받고 공고에서 근무할 때였다. 마음만 가득했지 모든 게 서툴고 미숙했다. 내가 지낸 학창시절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더 그랬을 거다. 아이들에게 매로 말하면서도, 그게 부끄러워서 책상에 꽃병을 올려두고 장미꽃을 사다고 꽂아두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장미는 드문드문 꽂히고, 그 대신 자주 들꽃이 꽂혀있곤 했다. 그 때 꽃병에 가장 많이 꽂혔던 꽃이 바로 구절초(아니, 쑥부쟁이)였다.

   누가 이렇게 예쁜 꽃을 꽂아두지?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친한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도 이렇게 맘이 예쁜 학생이 있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 샘이 일찍 와서 몰래 들꽃을 내 꽃병에 꽂아두고 가는 학생을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선생님께는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비밀로 해 달라는 그 얘기도 마음이 너무 착하다며 나에게 다 해주셨다.

   '졸업하고 그 애를 한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여러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서 같이 저녁을 먹은 것 같다. 이후에 메일이 한 두 번 오고 갔었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지 오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참 마음이 순수했던 그 녀석, 그 때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어제 구절초(아니, 쑥부쟁이였나)를 보면서 그 녀석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책상에 꽃병을 올려두지 않는 나를 생각하고, 나에게 꽃 한송이를 꺾어다 놓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지금, 그들과 나의 먼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란 참 무서운 것인가 보다. 영원할 것 같은 그 무엇도 시간 앞에서는 서서히 무너져내린다.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것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달라진 때가 아닐까? 그래서 더욱 무섭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7-10-0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글을 심한 자랑질로 오독하시는 분이 없었으면 싶다. 현재, 우울한 상태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 쓴 글이니까...

2007-11-13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벌써 연휴가 턱밑입니다. 늘 바쁘시지만, 요즘은 더욱 그러시지요? 그래도, 먼저 간 태풍도 오늘쯤에 올라온다는 태풍도 우리 지역에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태풍도 가고, 이제는 정말 풍성한 잔치를 준비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드리는 다섯 번째 편지입니다. 늘 일에 치여서 살다 보니 이렇게 편지를 쓰는 시간도 빠듯하긴 합니다만 얼른 우리 반 녀석들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방학동안 긴 보충수업을 끝내고, 우리 반 모두가 아무 탈 없이 학교로 돌아와서 저는 아주 기뻤습니다. 더구나 우리 반에서 여섯 명은 이미 전문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이제 이 친구들은 2학기에 조금 더 여유로운 학교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대학에 진학할 준비를 해 나갈 것입니다. 이 학생들이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꼭 관리해 주셔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개학을 하고 바로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수시 2학기 접수에는 3학년 1학기 성적까지만 반영됩니다.), 그래도 중요한 시험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반 애들 모두 나름대로 애써서 시험을 잘 치뤘습니다.

  중간고사 다음 날에는 바로 평가원에서 주관한 모의 수능평가 시험도 있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긴장해서 시험을 보고, 끝나고 나서도 이어지는 언론매체의 보도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봐서 여간 신중한 게 아니었습니다.(결과는 9월 28일에 학교로 통보된다고 하니 부모님께서는 28일이나 29일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꼭 학생의 성적통지표를 확인해 보십시오. 간혹 둘러대며 시간을 끌어서 관심을 돌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바로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9월 7일부터는 부산 경남지역을 비롯한 전국 대학의 수시 2학기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일부 대학은 수시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접수 전에 담임과 상담을 원하시는 학부모님께서는 전화를 주십사고 문자메시지로 말씀을 드렸는데, 열 대 여섯 분이 기간 내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기대하신 학부모님께는 제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제 컴퓨터에 들어있는 자료를 함께 보면서 조금 더 꼼꼼하게 설명해줬습니다.(올해 대학의 수시 2학기 모집 정원이 대폭 늘어나서 우리 반 학생 중에서 열 두서너 명만 빼고는 대부분 이번에 지원했습니다.)

  이제 수시 2학기 접수는 대부분 끝났고, 앞으로는 대학에 따라서 진행될 논술, 면접(실기)고사, 적성검사 등을 날짜별로 꼼꼼하게 챙기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접수가 끝났으니 수시 2학기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수능시험에만 집중해서 두 달 정도 남은 시간동안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중하위권의 일부 대학도 수능 최저등급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수시에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수능시험의 최저등급에 미달하면 불합격 처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연휴 기간에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를 개방합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학교에 와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학교에 나오면 됩니다. 연휴 후에는 10월 5일부터 4일간은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고등학생으로서 치는 마지막 시험이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말시험 후에는 10월 10일에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가 있습니다.

  연휴와 이어지는 빡빡한 시험일정이 모두 끝나면 수능시험이 겨우 삼십 여일 앞으로 다가옵니다. 이때부터는 학생의 학습 태도에 특별한 변화를 주기보다는 평소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이 코앞이라고 무리하게 공부하다 보면 리듬을 잃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밤에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는 거 좋은 게 아닙니다. 스트레스는 담임인 제가, 학생들에게 충분히 주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괜찮다고 계속 응원하고 격려해 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한가위, 보름달 보면서 비는 소원이 모두 이뤄지시기를 빕니다. 저는 10월 중순에 다시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애정 어린 격려와 따뜻한 관심 때문에 지금까지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07년 9월 20일, 3-O반 담임 느티나무가 드립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7-09-2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 여정의 중요한 지점에 닿아 계시는군요. 느티나무님의 글을 보면서 제 마음이 다 따스해집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셔요~

느티나무 2007-09-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로 안 중요한데... 아이들이 중요하니까, 저도 덩달아 약간 조바심이 나는가 봅니다. 글에 잔뜩 묻어나지요? 마노아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고맙습니다.
 

   지난 금요일도 보충 수업 때문에 학교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2학기 인사이동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이 모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났고, 중학교에서 근무하시던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새로 교감으로 오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새로 오신다는 그 분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내가 아는 분이셨다. 벌써 20년이나 된 기억인데, 어쩌면 그게 단박에 떠오를까, 신기할 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수학 선생님이셨다. 사실 별다른 기억은 없고, 눈매가 날카롭고 무척 무서웠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우리 학교에서 젤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소문이 나서 3학년에 올라갈 때 제발 그 선생님 반만 안 되기를 모든 학생이 빌었다.)

   다음날 아침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다. 일단 새로 오시는 교감샘과 '사제'관계로 묶이는 게 싫었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공적인 조직 관계에 사적인 관계가 얽히는 것 자체를 아주 싫어하고, 교감이라는 직책상 교사와 갈등 요소가 많을 수 밖에 없으며, 내가 20년 전에 배웠다는 것만으로 아직도 나를 지금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처럼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경험도 있었기에,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뭐, 그래도 나름대로 경험이 있으니까 잘 정리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동시에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직접 겪어볼 밖에. 첫날에 가서 먼저 인사를 드리고 사실대로 밝혀야겠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내 머리 속에서는 엉뚱한 방향을 진화하여 며칠동안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교감선생님이 지금 오십대 초반이라고 하시니까 20년 전에는 삼십대 초반이셨을거다. 그러면 그 당시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왔으면 교직 경력이 별로 많지는 않았을 '초보 교사'였을텐데...그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긴 게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봤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젊은 남자였으니까), 무지막지한 체벌과 긴장된 분위기의 수업 시간 때문에 항상 그 선생님 앞에서는 움츠러들었던 기억 밖에 없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젊은 교사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해 볼만한 다양한 교육 활동, 새롭고도 신선한 발상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서는 마인드... 교육 경력이 짧은 교사들에게 기대하는 교직에 대한 열정과 함께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든다. 삼십대 초반은 이미 지났는데, 이제는 면피할 수 있는 초보교사 딱지도 다 떨어져 가는데, 삽십대 초반에 나를 만났던 아이들은 20년 후에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누구처럼 내가 무엇이 안 되어 있을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내 좋은 모습이 하나도 없을까봐 진짜 두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드디어, 오늘이 방학입니다. 언제나 아이들은 예쁘고 사랑스러울 때가 많지만, 힘주어 ‘드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들이나 저나 이번 학기는 자기 인생에서 나름대로 무척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이제 1학기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우선, 그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베풀어주신 애정과 관심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6월 27일에서 30일까지 4일 동안 1학기말 고사가 있었습니다. 대입 내신 성적에 중요한 시험인지라 모두 열심히 준비했었습니다. 능력에 따라 모두의 결과가 다르겠지만, 준비 과정에 최선을 다한 모습도 잊지 않으시고 결과를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결과는 동봉해 드리는 성적통지표를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바쁜 중에 잠깐 틈을 내서 우리 반 대청소를 했습니다. 책걸상을 모두 밖으로 내놓고, 사물함도 다 치우고, 바닥을 세제로 문지르고, 물을 부어 씻어내니까 교실뿐만 아니라 마음의 묵은 때와 쌓인 먼지도 함께 씻겨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후로는 교실에 먼지도 좀 덜 날리는 거 같고 기분도 아주 상쾌해졌습니다.

  7월 12일부터 7월 20일까지는 일부 대학의 수시 1학기 모집기간입니다. 소위 말하는 주요 대학은 1학기 모집을 실시하지 않고,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1학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우리 반에서도 대략 7-8명 정도가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진로 탐색 과정을 탄탄하게 준비해 온 학생이 많아서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습니다. 학부모님께서 한 번 더 학생들과 의논해 보시고, 1학기 수시 모집의 응시 여부를 확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부터 방학입니다만, 아쉽게도 3학년은 방학 내내 학교에 나오게 됩니다.[물론 본인이 원하지 않고, 학부모님께서 허락하신 경우는 예외로 했습니다.] 방학생활에 필요한 정보는  함께 보내 드리는 가정통신문을 꼭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아울러 학생들의 방학생활이 원래의 리듬을 잃지 않도록 함께 챙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학교에서는 3학년 학생들이 언제든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정독실과 일부 교실을 개방(밤 11시까지)해놓고, 저녁식사도 신청하면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고비입니다. 앞으로 한 달 보름 남짓의 여름방학이 무척 중요합니다. 특히나, 평소보다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무척 많기 때문에,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후의 학생 성적에 큰 편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9월에 있을 2차 수능모의평가에 바로 나타날 것이고, 본 시험인 수능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학부모님께서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방학 끝까지 신경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2학기 중간고사는 개학하자마자 9월 1일에서 5일까지(중간에 휴일이 있습니다.)입니다. 2학기말고사는 10월 중순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학교에 고등학교의 생활기록부(성적표)를 보내야하는데, 그 기한이 10월말경이라서 2학기 시험일정이 빠릅니다.] 9월 6일에는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2차 수능모의평가가 있습니다. 9월 시험에 실수를 해서 성적이 낮으면 학생이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 즈음에는 가정에서도 격려와 배려를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학기에는 보충 수업이 1시간 줄어들고 자율학습 시간이 1시간 더 많아질 예정입니다.(그래도 마치는 시간은 10시입니다.) 수능이 두 달 정도 남은 상황에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서 배우기보다는, 지금까지 자기가 익힌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체계를 잡아나가야 하는 시기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날 뜨거운 땡볕을 다 받아들이고 속으로 묵묵히 미래를 준비해 온 열매들만이 가을에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 때서야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모두 이 한여름 태양빛을 묵묵히 견뎌내기를, 그래서 올곧게 커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7년 7월 18일, OO고 3학년 O반 담임 느티나무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벌써 날이 무덥습니다. 교실의 선풍기가 바쁘게 움직입니다. 아이들은 선풍기로 성에 차지 않은지 에어컨, 에어컨 노래를 부르지만, 아직 그 정도 더위를 아닌 듯 싶어 학교에서도 잠시잠깐씩 시험 가동만 하고 있습니다.[곧 에어컨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다시 한 달 만에 세 번째 편지를 보내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 반 녀석들이 사는 얘기 좀 해드리겠습니다.

  5월에 이어진 학교의 여러 행사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11일에 있었던 체육대회 때에 아이들이 ‘우리 반 티셔츠’를 맞춰 입자고 하기에(사실, 거의 모든 반이 그렇게 하거든요.), 제가 모두가 다 맞춰 입으면 오히려 모두 똑같아 지고, 체육대회 당일은 우리 반이 결승에 올라간 종목도 없기 때문에 멋 부릴 일이 없다고 얘기해서 그냥 평소 체육복을 입고 지냈습니다. (아이들은 속으로 무척 아쉬웠을 텐데, 담임 말을 잘 따라준 녀석들이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스승의 날은 휴무일이었는데, 그날에도 우리 반의 몇 녀석은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하더라구요. 저도 오전에 잠시 나와서 봤는데 자랑스럽고 기특했습니다. 19일에는 토요일 자율학습을 마치고 희망자들만 모여서 ‘우리 반 삼겹살 파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해 준 녀석들이 고마워서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지요. 학원이나, 과외, 또 개인적인 약속 때문에 참석 못한 녀석들도 많았지만, 스물서너 명, 모인 학생들은 아주 즐겁게 많이 먹고, 건전하게 잘 놀았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3학년만 휴무토요일이나 공휴일에 학생들이 나와서 자습을 하는데, 부처님 오신 날에도 우리 반 녀석들이 다른 반에 비하면 잘 나왔습니다.(비교적 우리 반 학생들이 성실하게 잘 나오고 있는 편입니다.) 다만 너무 늦게 오는 경우만 없으면 더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담임인 저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학교에 나와서 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5월 하순 무렵에 중간고사 성적표를 학생 편으로 전달했습니다. 보셨는지요? 중간고사 성적은 기말 성적과 합산해서 학기말 성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확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적에 대해 별다른 말씀을 드리지 않고 가정통신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번 학기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수능 모의고사가 지난 6월 7일에 있었습니다. 모두들 긴장한 가운데서 시험을 봐서 그런지 그 날은 교실 분위기가 아주 팽팽했었습니다. 최선을 다 해서 시험은 보았지만, 막상 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해 본 결과, 모두가 성과를 낸 건 아닌 듯싶습니다. 영역별로 성적이 조금씩 오른 학생들도 있지만, 지금껏 열심히 해 왔는데도 성적이 더 떨어진 친구도 있어서 본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의 실망감이 큰 학생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험의 결과야 말 그대로 연습의 결과일 뿐입니다. 정확한 성적표가 공개(29일에 학교에 도착할 예정입니다.)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모의고사 결과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공부 방법을 세우고, 진학 전략을 짜는데 필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뿐입니다. 아직은 섣부른 비관도, 낙관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은 기간 동안에 학생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지금껏 해 온 대로 오직 정성껏, 최선을 다하고 겸허하게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가정에서도 열심히 깨우쳐 주십시오. 저도 성적표가 나오는 날부터 학생들과 진학상담을 새로 해 볼 계획입니다.

  6월에는 27-30일까지 기말고사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에 들어간 녀석들도 꽤 있을 것입니다. 갈고 닦은 실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가정에서 관심의 끈을 놓치지 말아 주십시오. 여름방학 보충수업 계획을 짜고 있는데, 불참하겠다는 학생도 제법 있습니다. 따로 문자 메시지를 드렸습니다만, 다시 한 번 학생과 상의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방학 때도 보충수업 후에는 학교에서 5시까지 자습지도를 할 계획입니다.

  간식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토스트는, 정말 감동이었어요. 앞으로 우리 반 학생 한 명 한 명이 조금 더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7월에는 제가 학교로 학부모님을 초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3학년 4반 담임인, 느티나무가 드립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aviana 2007-06-1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가정통신문을 받으면 정말 일년동안 아무걱정없이 학교 보낼수 있겠어요.
전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육아휴직 마치시고 돌아오셨다고 해서 아이책 2권(겨우,달랑)을 보내드렸더니 직접 전화까지 주셨어요. 전화받고 제가 얼마나 고맙던지....아마 선생님반 학부모님들도 저랑 같은 기분일거에요.

마노아 2007-06-1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느티나무님, 오늘도 짜안한 기분에 감동 먹고 돌아갑니다. 늘 많이 배우게 되어요^^

느티나무 2007-06-1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모두 고맙습니다. 응원해 주시니,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엔리꼬 2007-06-1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학교입니까? 당장 달려갑니다. ==33
그런데, 이걸 끝까지 읽지 않을 학부모도 있을 것이라는 엉뚱, 불길한 생각이...

느티나무 2007-06-1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실까요?? 잘 전달이 안 될 거 같아서 미리 문자 메시지로 보냈지요. 오늘 가정통신문 보냈다고...잘 읽었으면 좋겠어요. 서림... 임꺽정의 모사,이신가요?

엔리꼬 2007-06-1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꺽정의 모사? 설마요... 제가 딸을 낳으면 서림이라고 이름을 짓고 싶어 '서림'이라 닉네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성명학적으로 성이랑 이름이 맞지 않아서 딸을 낳았지만 다른 이름으로 짓고 말았네요... 그래서 알라딘에서는 책의 숲을 이르자는 뜻으로 서림을 계속 쓰고 있어요..

느티나무 2007-06-1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심각한 오독이군요... 책의 숲이라~~!! 멋지십니다. 우리 애기 이름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인데! 좀 미안해 지는 걸요.ㅎ 아무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근데, 우리 처음 인사하는 거 맞지요? ^^;;)

2007-06-14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7-06-1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내일, 공부 모임(미술치료) 마지막 날이라...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