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느티나무의 서울 나들이
- 전국교사대회에 다녀왔다.
음.. 또 6시 반까지 모이라네? 요즘 고속도로 잘 뚫렸는데, 너무 일찍 가는 거 아냐? 일곱 시 출발도 너무 빨라, 라는 불평으로 늦게 잠들었더니, 토요일 아침, 내 몸이 늦게 반응한다. 서둘러 짐 챙겨서 마트 앞으로 나가 버스에 올랐다. 늘 봐서 밍숭맹숭한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이런 버스에서 보면 한 번 더 웃음이 난다. 정한철 샘네는 가족들이 다 왔고, 박상철 샘네도 사모님과 아들, 딸이 같이 왔다. 강성희샘, 최병희샘, 김현숙샘도 벌써 오셔서 자리 잡고 계셨으니까 우리 분회에선 내가 제일 늦었다.
버스는 7시 10분에 출발! 청도휴게소에서 지회별로 차를 옮겨 타니 분회장 정관모샘, 최희정샘, 양인숙샘께서도 우리 차에 합류하셨다. 거기서 간단히 김밥 한 줄 먹고, 지회에서 챙겨준 간식거리도 받아들고 다시 서울로 고고씽! 이후 나는 버스 안에서 헤드뱅잉을 좀 많이 해 줬다. 그러다 청원 휴게소에서 정신을 차렸더니, 내가 탄 버스도 그 때쯤에서야 슬슬 활기가 도는 듯 싶다. 이어지는 교육선전 - 5.24교사대회의 의미, 교사대회 이후에 이어질 투쟁 계획 , 쇠고기 수입 파동-도 익숙한 주제지만, 싸우러(?) 가는 차안에서 들으면 지겹지 않다. 이어서 학교별로 참가자 소개. 분회장이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 학교 참가자들을 소개하고 선생님들도 얼굴을 알렸다.
부산은 계속 비가 내린다는데 중부지방부터는 날이 맑았다. 어제 흐리다는 일기 예보에 내심 데모하기에 좋은 날씨군, 했는데 우리나라 일기예보 역시 믿을 게 못 된다. 오후 한 시 10분쯤에 여의도 시민공원 도착. 버스에서 내리니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가 확 올라온다.(다시 일기예보를 원망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일기예보가 뭔 죄가 있을까마는! 예보가 땡볕일 겁니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평소엔 널찍하고 한가로웠을 공원에 사람이 이미 빼곡하다.
난 점심 도시락을 늦게 받아든 탓에 집회가 시작되어도 공원 한 구석에서 밥을 먹으며, 다시 한 번 밥의 무서움을 생각한다. 삶의 근본으로서의 밥. 그러니까 데모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서 나는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된 정부가 우리들이 먹을 ‘밥’ 을 빼앗아 배가 터지도록 잘 먹고 사는 자기와 자기 친구들의 밥상을 더욱 푸짐하게 차리려는 술수에 분노한다. 이 싸움의 본질은 내가 먹어야 할 ‘밥’을 지키는 싸움이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최소한이나마 누려야 할 ‘밥’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다.
맨바닥에 앉아서 두 시간 동안이나 집행부에서 준비한 대회사, 투쟁사, 연대사, 문화 공연을 듣고 본다. 엉덩이가 심하게 아팠지만 혼자 일어나서 뭣해서 꾹 참았다. 아스팔트의 열기는 정점으로 오르는데, 내 몸이 점점 무겁다. 사실, 연설은 귀에 잘 안 들어오는데, 역시 이야기가 있는 문화 공연이 가장 재미있다.(모처럼 정태춘 씨의 노래도 들었다.) 보통 이런 공연을 보면 준비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어제 본 문화 공연은 ‘공연하는 지금이 진짜 힘들겠다’는 마음이 들어 미안할 정도로, 한마디로 공연자들의 진을 빼는 공연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본다면, 돈 내고 보는 연극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좋았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교사대회는 4시를 좀 넘겨서 끝났다. 같은 자리에서 민주노총 공공연맹이 주최한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날 저녁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앞둔 강기갑 의원의 연설을 들었다. 이어지는 결의 대회……
집회장을 정리하는 마음이 무겁다. 서울에 왔다가 내려갈 때면 참 해야 할 일이 많구나, 하는 생각! 꼬박꼬박 챙겨든 전단지, 선전물을 챙기니 벌써 한 보따리다. 이게 사람의 마음을 든든하게 하면서도 묵직하게 누른다. (이렇게 무거운데 왜 서울엔 꼬박꼬박 오는 거야, 하는 생각이 다시 슬쩍 든다.) 앞으로 1년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겠단 생각도 들지만, 학교에서 아이들과 가르치는데 집중해도 내 생활을 제대로 꾸리기가 쉽지 않은 이 판국에, 이렇게 데모까지 하러 나서야 하나? 그러면서도 6월엔 또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많나, 하는 걱정이 더욱 앞선다.(음, 행동으로 잘 옮기지는 못하지만 머릿속은 늘 복잡하다.)
교사대회에 있던 많은 분들이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가신다고 하시고, 상경한 김에 볼 일도 본다는 분도 계셔서 내려오는 버스 안은 조금 한산하다. 차가 비교적 수월하게 서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나는 단조로운 속도에 졸음이 쏟아진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더니, 돌아오는 차에서도 북부지회에서 준비해 준 다양한 먹거리(유기농임)를 펼치고 가까운 자리에 앉은 분들끼리 얘기를 나눈다. 이후 천안휴게소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다시 버스 안, 하루를 보람차게 보냈다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다들, 환한 표정으로 신바람을 내면서 이야기한다. 나도 그 속에 슬쩍 끼어든다. 이때부터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다.
자정을 넘긴 12시 15분. 롯데마트 앞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 휴게소에서 다른 지역에 사시는 샘들은 다른 차를 타셨고, 또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차가 가까이 지나갈 때 내리셔서 버스에는 몇 명 남지도 않았다. 거의 마지막으로 차안에서 내리니 밤공기가 상쾌하다. 어두운 밤도 항상 나쁜 것만 아니군, 하는 위험한(?) 생각을 하며 집까지 걸었다.
나의 교사대회 참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으나, 조금 더 내 생각을 벼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신의 울창한 숲속을 즐겁게 걷다 온 기분이다. 피톤치드가 마음속에 가득하니 당분간은 행복하게 지낼 것이 틀림없다.
이건 사족 같은 말이지만! 아, 역시 나는, 투쟁보다 투쟁가가 더 좋더라.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아직도 내 마음을 흔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