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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 역사 인물 찾기 13
알리스 셰르키 지음, 이세욱 옮김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누구 말처럼, 지금은 혁명에는 냉소적이면서도 혁명가에게는 열광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체 게바라'에서부터 시작된 이 혁명가들에 대한 열광은 그들의 실천적인 삶과는 거리를 둔 관심이라는 점에서 이미 한계점이 분명하다. 또한 독자의 현실 세계 속에서의 안온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순진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탈출구가 없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대리만족으로 혁명가를 '영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시대의  '혁명가 읽기'는 가늠할 수 없는 유행처럼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 그 유행이 일회적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상품'인 것 같다.
    책 속의 혁명가들은 그들의 꿈을 실현 여부와는 상관없이 아주 멋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책 속에서 꿈을 이룬 혁명가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혁명에 실패한 혁명가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다가 현실의 벽에 막혀 멋지게 좌절하는 인물이 된다. 책 속의 상황은 '가상'의 공간이며 멋진 인물에다가 읽는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투사해서 그와 '생각과 행동'을 함께 하다 보면 책을 읽을 때마다 책 속의 혁명가는 게임의 내가 설정해 둔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것 같다.

   괜히 그런 상품과 캐릭터의 이미지가 싫어서 혁명가에 관한 책을 멀리했지만, 이번에는 우연히 프란츠 파농을 읽게 되었다. 사실, 프란츠 파농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파농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조심스럽다. 파농이라는 사람이 누구냐를 말하려고 한다면 그의 다양한 모습 중에서도 '흑인', 프랑스의 '마르티니크 출생', '작가', '정신과 의사', '혁명가'일 것이다. 
   파농은 2차 대전에 자유 프랑스를 위해 2차 대전에 참전했으며, 블리다의 정신 병원에서는 당시로서는 아주 혁명적인 정신과 치료방법이었던 '사회요법'을 실시한 정신과 의사였고,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에서 "한 언어를 말하는 것은 한 세계와 그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백인이 되고 싶어하는 앤틸리스 사람은 언어라는 문화적 도구를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더욱 쉽게 스스로를 백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라며 지배자의 담론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주체의 무의식 형성에까지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에 흑인의 문제를 흑인이 설명하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저작이었다.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통해서는 알제리 해방의 의미와 해방 이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해방의 조건에서는 식민지배의 상처를 씻기 위해서 식민통치의 폭력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선언해서 프랑스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탁월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해방을 위해서는 줄곧 프랑스와의 협상이 아니라 줄곧 무장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으며, 실제로 튀니스에서 무장투쟁의 대오에 합류하기도 했던 전사이자 혁명가였다.
    한편으로는 알제리의 독립투쟁의 과정을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일부 군인들의 태도에 실망감을 나타내며, 해방 이후의 알제리 사회의 모습을 끊임없이 모색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순회대사 시절에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단결을 통해서 '아프리카합중국'을 꿈꾸었던 '이상주이자'이기도 하다.
    이런 파농의 비타협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를 여러 사람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그의 놀라운 열정과 사심 없는 태도, 그리고 탁월한 예지력 등은 알제리 해방 운동의 정파를 초월해서 신망을 받게 된다. 그는 결국 알제리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떠났던 미국에서 삶을 마치게 되었지만-그는 유럽의 식민주의를 아주 싫어했고, 미국은 그런 유럽보다 더 심한 식민주의 정책을 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의 주검은 '해방된' 알제리-당시 무장투쟁군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에 묻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쉬운 점도 좀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약점은 파농의 모습이 읽은 이에게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파농의 삶에 집중해서 읽을 수 없게 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서술자와 인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서술자의 주관적인 개입이 잦은 것 아쉽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그는 과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 후 파농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그렇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다'는 식의 문장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또 '파농'의 행동 반경이 일생 동안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데-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프랑스와 알제리 등의 지도가 책의 앞뒤에 소개되어 있지 않아 파농이 어디에서 어디로 갔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점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지적한다면, 각주의 설명이 너무 길거나 복잡해서 본문을 읽을 때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덜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한 인물을 역사 속에서 만났고, 책표지에 있는 그의 서늘한 눈매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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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4-09-0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시대의 '혁명가 읽기'는 가늠할 수 없는 유행처럼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 그 유행이 일회적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상품'인 것 같다." 공감되는 말이예요. (개콘이라는 프로에서 운동권 학생을 희화화하는 것을 보며 서글퍼했던 기억!) 그치만 '유행'조차 되지 않고 역사 속에 묻혀버리는 것보다는 '상품'이라도 되는 것이 의미있지 않을런지.. '상품화'하는 사람들의 이속과는 별개로.. 그런 의미에서 '일회적 상품'은 아닌 것 같아요. 한 번 써먹고 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는 사람도 많을 테니...
혁명가들의 치열한 삶이 너무 가벼워지나요? 역시 서글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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