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100년 동안의 최악의 인물은 누구인가?
* 금요일 글밭 나래, 우주인 모임의 독토책은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2'였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할 숙제로는 우리 역사 100년 동안의 최악의 인물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였다. 이 글은 책을 읽고 고심 끝에 해 간 나의 숙제다.
최악의 인물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를 불행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던 장본인을 말하는 것일텐데, 글쎄, 나라의 불행이 어느 한 개인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가라는 논쟁도 충분히 가능할 듯하지만 그 문제는 또 따로 다루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일단 주어진 숙제를 충실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선뜻 떠오르는 인물들을 정리해 보면,
우리나라를 일제에 팔아넘긴 매국노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히는 이완용, 역사적인 격동기에 '황제'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제대로 나라를 이끌지 못하고 나라를 잃은 책임이 있는 '고종황제', 일제 강점기 당시에 우리나라 사람의 혼을 친일화 하는데 앞장 선 이광수, 해방 이후 쿠데타를 일으키고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독재 정치를 펼쳤던 박정희, 박정희가 죽은 후 터져나온 민주주의의 열기를 역시 쿠데타로 누르고, 이에 저항하던 광주시민들을 총칼로 진압한 전두환, 그리고 민족해방을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 때문에 죽은 수백만 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이 있는 김일성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우리 역사 100년의 최악의 인물'에 이 사람을 앞서 말한 사람들의 앞자리에 두고 싶다. 최근에 어느 신문에서는 이 사람을 나라를 세운 '국부(國父)'라고 하던데, 내가 생각하기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승만은 외세에 의한 독립운동을 주장하여 미국에 독립청원서를 주임무로 했다. 임시정부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임시정부 요인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여러 사람들은 이승만이 있는 임시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임시정부를 떠나기까지 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 세력이 단합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두 번째로는 미국/소련이 남북을 분할 점령한 후 정부 수립을 논의하던 중,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주장하고 나서 4.3항쟁과 남북한 분단의 책임이 있다. 단독 선거에 반대한 제주도민을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중들도 많이 희생되었다.(사망 추정자는 약 3만 명)
세 번째는 정부 수립 후 호전적(好戰的)인 통일관으로 남북한의 긴장 관계를 강화하였고, 결국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전쟁까지 가게 되었다. 이승만의 통일관은 북진 무력 통일로, 전쟁을 하면 '평양에서 점심을,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으나 정작 전쟁이 시작되자 도망가기에 바빴다.
네 번째는 정부 수립 후 독립운동 세력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한 이승만은 친일파 인사들을 정부관리로 대거 등용하였다. 친일파 인사들도 당연히 이승만 정부에 적극 협조하였고,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친일 부역자 청산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반민특위'의 강제 해산이었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부역자 청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예민한 문제로 남아 있다.
다섯 번째는 자유로운 민주 정부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독재와 전횡을 일삼았다는 점이다. 대통령직 유지를 위해 헌법을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부정 선거를 주도했으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총칼로 진압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4.19항쟁에 의해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 다섯 가지가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내가 최악의 인물로 이승만을 선정한 이유다.
일제 강점기 때의 친일 논란의 핵심이었던 이광수 문제를 두고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짧은 토론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그 당시의 상황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논리라면 '친일부역자'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역시나 토론은 흥미진진하고, 생기가 돌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