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숨겨진 비밀을 밝히다
장장년.장영진 지음, 김숙향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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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척 재미있다. 알고보면. 하지만 학창시절의 내게 역사는, 아니 국사 과목은 장애물 경기와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할 것들이 줄줄이 나타났으니까. 간혹 생각해본다. 그때 역사가 이렇게 재미난 건줄 알았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하고.




‘잠들어 있던 위대한 역사를 깨워라’는 부제가 붙은 <세계역사, 숨겨진 비밀을 밝히다> 이 책은 한 권의 재미있는 역사서다. 사소한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새로운 방식의 역사서...라고 서문에서 밝혔듯 역사 속에 숨겨진 비밀이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예를들어 인도의 갠지스강이 시체나 화장하고 남은 재가 매일 버려지는데도 생각만큼 오염도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나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에서 오줌처럼 나오는 재료를 명절이나 경축일엔 맥주로 대신하는데 그 이유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 고대 그리스의 인물조각상은 왜 모두 나체인가...하는 것들은 어찌보면 몰라도 그만인 것들이다. 하지만 알아두면 맛깔난 양념처럼 생활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 같다. 일단 사람들과의 대화 소재가 풍성해지니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들도 많았다. 인도 타지마할의 대리석을 영국군이 훔쳐서 본국에 팔려고 했지만 인기가 없어서 그만뒀는데 그 덕분에 타지마할이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과 타지마할의 순백색이 어떻게 유지될까...그동안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답도 찾았다. 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도저히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도 아닌데 지상에서 25미터의 높이에 정원을 짓다니...그러고보니 타지마할과 공중정원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왕비를 지극히 사랑한 왕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그 외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영국의 문화재 약탈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며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특히 바그너를 열렬히 숭배한 히틀러가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는 순간에도 바그너의 음악을 틀었다는 것. 물론 이 책에선 그 음악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알려진 바로는 유태인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들어야 했던 음악은 바로 ‘숭고미’ 넘치는 선율의 탄호이저 중, ‘순례자의 합창’이다. 그 기억 때문에 유태인들은 탄호이저 서곡을 들을 때마다 공연히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다.




이렇게 <세계역사, 숨겨진 비밀을 밝히다>에는 새롭고 재미있는 역사 속 얘기들, 결코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얘기들, 잔인하고 참혹한 얘기들을 10개의 소제목에 맞게 잘 배합되어 있다. 하지만 만족할 만큼의 내용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숨겨졌던 비밀이 이제야 속을 드러내겠구나...하고 잔뜩 기대했는데 포장을 벗겨보니 웬걸? 알맹이가 많이 부실한 느낌이 든다.




예를들어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내용, 2차 대전이 종전되고 난 후 일본 천황에게 전범의 죄를 묻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하는 대목에선 그 당시 일본 천황이 맥아더와 1:1 대화를 나눴는데 그때 천황에게 호감을 느낀 든 맥아더가 천황의 체포를 반대했다는

정도로만 언급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 삽입된 자료사진이 적갈색톤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을뿐더러 부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기술해놓았다. 이슬람 국가에서 [코란]을 외우면 감형이나 석방을 해줬다는 대목에서 1998년이 1988년의 내용보다 먼저 소개되어 있고 모나리자가 해외에서 전시될 때의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1963년 -> 1954년 -> 1951년의 순서로 서술되어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설명할 때도 길이, 넓이가 일치되지 않고 혼용되어 있다. [모나리자]의 경우 길이를 세로, 넓이를 가로의 의미로 표현했는데 [최후의 만찬]에선 길이를 가로, 넓이를 세로로 쓰고 있다. 그냥 가로, 세로로 제시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이 책은 세계역사의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다. 본문에 언급된 내용의 가짓수도 너무 많았다. 2차 대전에 관련해 유태인이나 히틀러에 대한 것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몇 번 언급이 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역사 속의 숨겨진 비밀을 밝힌 게 도대체 뭔지...저자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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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인생수업 - 모범생을 뛰어넘는 39가지 성공 습관
박성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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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 대상의 책을 연이어 봤다. 요즘 아이들의 생각을 알고 느끼고 싶었으니까. 나의 이런 얘기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큰애가 이제 겨우 초등학교 입학했는데, 벌써 중고등학생들 책을 읽을 필요가 있나? 너무 앞서가는 거 아냐?”




정말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앞서간다는 게...하지만 이담에 사춘기로 접어들고 중학생이 된 큰아이가 방황할 때 곁에서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려면 내가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의 생각이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글은 머잖은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8살인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지금 내 곁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모범생을 뛰어넘는 39가지 성공 습관’이란 부제가 붙은 이 <중학생 인생수업>은 그야말로 중학생을 맞은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주옥같은 말들을 모아놓았다. 이 책은 나를 찾아라 ‘호연지기’, 인생에서 배우기 ‘ 타산지석’, 성공의 기술 익히기 ‘실용주의’, 세계를 품어라 ‘호연지기’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그 소주제에 맞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서 얘기하고 있다.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 책을 쓴 작가에서부터 한 나라의 수상, 위대한 지도자, 유명 영화배우, 운동선수...등 어려운 고난을 이겨낸 이들의 얘기를 짤막하고 쉬운 문장으로 풀어놓아서 읽기에 무척 수월했다. 그 중에서도 가수 비, 박정아,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10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 스타들의 오디션 실패담을 예로 들었던 것이 아이들의 공감대 형성에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끝날때마다 ‘박성철 선생님의 책이야기’ ‘ 박성철 선생님의 영화 이야기’ 해서 저자가 권하는 ‘책’이나 ‘영화’ ‘클래식 음악’ ‘테마 박물관’을 소개해놓았는데 난 이 부분이 무척 좋았다. 이담에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영화를 함께 봐야지..이 박물관으로 여행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이 책은 곳곳에 삽화를 넣어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는데 삽화와 그에 곁들여진 짧막한 문장이 양념처럼 이 책을 맛깔나게 한다. ‘습관’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코끼리가 자신을 묶고 있는 습관의 사슬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부분이 섬뜩하면서도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정신에 곰팡이가 핀다’고 책읽기의 중요성을 다룬 부분에 있던 책나무!!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중학생을 위한 인생 길잡이, <중학생 인생수업>이었지만 이 책은 내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자꾸만 한자리에 머물려고하는 나를 일깨워주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려고 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라고 내 손을 끌어당겼다.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을 위해 식어가는 열정에 뜨겁게 달구라고 부채질했다.




이 책은 물론 중학생을 위한 책이다. 하지만 그 전에 부모들이 먼저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아이의 상황에 맞는 대목을 골라내어 아이방이나 거실(화장실도 좋다)에 발췌해서 붙여두거나 학교가는 아이에게 짧막한 메모나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열정은 작은 씨앗이다. 가슴 속에 심어두고 자주 보살피면 훗날 네 인생을 가장 크고 푸른 소나무로 만들어줄 작은 씨앗말이야. 지금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열정이라는 작은 씨앗을 심는 네가 되기 바란다. -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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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하트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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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온다 리쿠!! 그녀의 책은 한번 손에 들면 24시간을 넘기기 힘들다.




내가 그녀의 책을 처음 읽었던 건 <밤의 피크닉>이었다. 작년 여름 휴가때 들고 갔다가 집에 돌아오기도 전에 다 읽어버렸다. 그녀의 짧고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 속을 드러내지 않는듯 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대사,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모든 것에 매료되어 버렸다.




이 책 <라이온 하트>는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도 끝난 자정 넘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땐 이른 새벽, 창밖은 밝아지고 있었다.  한창 로맨스 소설에 몰두하는 사춘기 소녀도 아닌 두 아이의 아줌마가 사랑이야기가 담긴 소설로 밤을 새다니. 내게 아직도 소녀적 취향이 남아있는건가? 그럼 정말 좋겠지만...그건 아니다.




“11월 27일. 런던대학 법학부 명예교수인 에드워드 네이선과 연락이 두절된 지 2주일이 지났다.” 이렇게 시작되는 부분을 읽는 순간, 누구나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에 포로가 되고 그들의 행적을 쫓는 추격자가 되고 만다. 에드워드가 남긴 단서, ‘from E. to E. with love'라고 수놓인 하얀 레이스 손수건과 분위기가 서로 다른 다섯장의 그림, 방 안 가득 남아있던 로즈 티의 향기...이 세가지를 가지고 출발해보자.




이 소설은 5개의 장으로 이뤄져있다. 또 그 각각의 장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이 다르다. 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다.




나타날 때마다 나이는 제각각 다르지만 속은 모두 같은 인물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겉모습은 미묘하게 달라서, 많이 닮은 다른 사람같다. - 52쪽.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의 윤회를 떠올렸다. 지금의 생이 끝나도 다음의 생이 있다. 그렇게 수레바퀴처럼 돌도 도는 것...하지만 현생의 삶이 내생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들었다.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도 그런걸까?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유일한 사람, 유일한 사랑을 만나기 위해 평생동안 기다리고 또 다음생을 기약한다.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 항상 나를 사랑해준, 언젠가 만날 그 날만을 기다려왔던 사랑. - 85쪽.




데자뷰라고 했던가? 처음 보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느낌. 나도 그런걸 경험해본 적은 있다.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는 반복되는 꿈과 환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들의 만남에는 항상 이유와 목적이 존재한다. 때로 그들은 상대방을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건다.




우린 아주 짧은 시간 밖에 함께 있지 못해요. 반드시 어디선가, 각자의 인생 어디쯤에선가 만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찾아오는지는 수수께끼예요. -44쪽.




생을 거듭하며 다시 만난 그들에게 서로의 모습은 중요치 않았다. 12살의 어린 아이든, 여신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든 죽음을 앞둔 노인이든... 그 사람 속에 깃든 영혼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이윽고 나는 엘리자베스를 만났다. 늙기는 했지만 역시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혼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시간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 125쪽.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 그들이 만남을 반복하면서 서로에게 자신을 일깨우는 걸 보고 있으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전생의 기억을 현생에 갖고 태어나는 걸까, 예지몽이나 환상으로 미래의 일을 알게 된 걸까, 아니면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공간을 넘어서는건가?




우리는 몇 번이나 만났지만 맺어진 적은 없어요. 하지만 헤어진 순간부터, 다시 만날 순간을 한없이 기다려요.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이유같은 건 몰라요. 하지만 만나고 싶었어요. 안 그런가요? -146쪽.




그렇다면 소설의 첫부분에서 실종된 에드워드 네이선은 어디로 갔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찾아헤맸다. 어디 숨은거야?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만난 사람이 20세기의 그 에드워드인건가?




그렇다면 누구의 꿈일까. 나는 그걸 찾기로 결심을 했지. 오랫동안 수천 수만 명의 꿈을 떠돌다 우연히 당신의 꿈에 이르게 되었지...설마 당신일 줄은 몰랐어. 이름은 알았지만, 여기가 시작일 줄은 - 299쪽.




로맨스에 SF적 요소를 더하니 이런 묘미가! 치밀하고 탄탄한 온다리쿠의 스토리 전개에 감탄했다. 하지만 저자가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했던 탓인지 후반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알 수 없는 대목들이 나왔다. 문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난데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로켓발사장면!




누군가의 메아리,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의지가 남긴 잔영, 그런 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세계와 역사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 298쪽.




하지만 제일 마지막에 등장한 노인부부! 그들이 날 위로해주었다. 에드워드란 존재가 그럼 전생의 엘리자베스 동생이었나...하는 충격 속에 빠진 내게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불꽃이 꺼지기 직전 밝고 아름답게 빛나듯 지나온 날이 남은 날보다 많은 그들의 모습에서 운명을 느꼈다.




마음을 가득 채운 뜨거운 것이 몸 어디선가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나는 언젠가 꿈에서 보았다. 나의 연인을, 나의 운명을, 이렇게 온실에서 마주앉아, 역광을 받아 빛나는 그녀의 은발을. - 374~375쪽.




온다리쿠. 그녀는 러브스토리도 역시 독특했다. 그녀 특유의 강렬한 미스테리가 부족한 게 아쉬웠지만 가슴저린 사랑은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들었던 음악과 미술관에서 본 한 장의 그림,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그녀의 저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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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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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이 책은 첫인상부터 나를 압도했다. 55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표지엔 빛을 받아 섬뜩한 해골이 있고 그 해골 위에 깍지 낀 양손을 올리고서 얼굴을 괴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이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한술 더 떠서 방금 뚝뚝 흘린 것 같은 선명한 핏방울이 양각으로 도드라져 있다.




표지만으로도 미스테리 스릴러물임을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은 주검에서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는 여인, 베수비아 아델리아 라헬 오르테즈 아길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텔레비전 인기시리즈인 CSI 마이애미의 여자부검의 알렉스가 주인공인 셈이다. 하지만 CSI의 알렉스에겐 최첨단 과학장비가 있다면 아델리아에겐 오로지 수많은 해부경험이 있을뿐이다. 게다가 시대적 상황이 자칫 잘못하면 아델리아가 마녀로 몰릴 위험도 있다. 그 두 여인의 공통점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하고 주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중세 영국 케임브리지셔 지방에 아이들이 연이어 실종되고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그 사건의 범인을 유대인이라고 여긴 농부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유대인들이 성으로 대피하게 되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시칠리아왕은 해결사를 영국으로 보낸다. 법집행관이자  사건수사관이며 중재자인데다 정찰자인 나폴리의 시몬과 병을 고치는 도시 살레르노 의과 대학에서 병리학에 가장 조예가 있으며 죽은 자를 담당하는 여자의사 아델리아, 그녀의 하인 아라비아인 만수르. 그들은 떠돌이 약장수로 위장하여 사건이 벌어진 케임브리지로 향한다.




우연히 아픈 제프리 수도원장을 치료해준 것을 계기로 아델리아는 아이들의 시신을 조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살해되어 옮겨진 걸 알게 된 그녀는 석회지대인 원들베리링을 조사한다. 하지만 거기서 범인이 십자군원정을 다녀왔다는 것 외에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시몬은 농민들에게 희생된 부유한 유대인 카임의 금전관계를 조사하던 중 확실한 증거를 찾지만 그로 인해 살해당하고 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12세기 중세 영국이어서 다소 걱정을 했었다. 나의 세계사 지식이 얕아 책내용을 혹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책표지를 보니 저자인 아리아나 프랭클린는 중세의 필사본을 읽기 위해 라틴어를 배우고 성을 비롯한 수도원을 탐사하는 등 12세기 잉글랜드의 역사를 깊이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것들이 이 소설의 탄탄한 밑바탕이 되어 비교적 어려움 없이 카톨릭과 유대교, 유대인과의 반목과 대립을 비롯한 중세시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각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가 탁월했다.




# 영향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델리아는 다만 고통받는 한 인간만을 보았다.

# 그녀의 의술에는 환자 머리맡에서의 예절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잣대란 의학적인 것 밖에 없다. 그녀는 지금 수도원장에게 그가 죽으면 시신을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하려는 게 틀림없다.

# 학교의 시체안치소에서는 아델리아가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때란 오로지 죽었을 때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몇 개의 짧은 문장만 보더라도 아델리아가 오로지 의학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여인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시체에서 죽음의 원인을 추측하는 과정의 묘사는...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의 살레르노 의과대학!! 난 이 책을 통해 살레르노 의과대학을 처음 알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세계 최초의 대학에 살레르노 대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새롭게 알게된 놀라운 사실!!




의료실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깨면서 죽은 몸을 낱낱이 해부하거나 문제가 있는 태아를 여자의 몸에서 제거했고, 여자들도 외과수술을 할 수 있었으며, 수술하느라 살을 찢었다.




이렇게 탄탄한 이야기 흐름이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추리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막판 뒤집기! 전혀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건데...이 부분에 관해 이 책은 절반의 성공만 거둔 셈이랄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적도착증을 보이는 범인의 살벌한 심리묘사가 없었다. 그게 바로 추리소설의 백미인데...




또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범행을 저지른 공범을 밝히는 과정에서 주인공인 아델리아의 활약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헨리2세가 북치고 장구치고 있었다. 물론 중세란 시대가 여자가 여행이나 외출을 할땐 당연히 여자동반자가 있어야 된다고 할만큼 여자에게 제약이 많았다고는 하더라도 아델리아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꿀먹은 벙어리처럼 묘사하다니...이 부분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저자의 철저한 조사가 탄탄한 구성과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탄생시켰고 재미와 스릴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 그게 전부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바로 이것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인간은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간단다. 어떤 때는 천국을 향해 날아오르고 어떤 때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자신이 가진 악의 잠재력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자신이 솟아오를 수 있는 고귀한 장점에 대해 눈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둔한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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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봄핀아이들 글, 최숙자 엮음 / 사분쉼표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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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좋아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임인 ‘봄핀아이들’의 글 모음집인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표지엔 활짝 펼쳐진 커다란 책과 그 책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 생김도 옷차림도 제각각이다.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면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무슨 얘길하는 걸까.




재잘재잘 속닥속닥...중고등학생들의 재미난 수다가 가득하지 않을까...이 책을 읽기 전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청소년 대상의 영화를 보면 언제나 깔깔깔 웃다가도 짠하게 전해지는 감동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책장을 넘기자 그 속 내용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톡톡 튀는 감수성이 빚어낸 에피소드가 아닌 입시로 인한 아이들의 고뇌가 가득했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운다. 내신, 논술, 수능 이 세가지를 다 잘해야만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도 또다시 학원으로 직행,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 그들에겐 방학이 1.5학기란 또다른 족쇄가 되버렸지만 거부조차 할 수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쏟아진 모든 가족들의 기대를 알기에 차마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전쟁 속에 뛰어들어 한바탕 피를 튀기고 있는 동안 어느새 우리 엄마는 형편없이 짧은 단편영화 같은 나의 휴식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기사로 전락해 있었다.




충격이었다. 요즘 아이들의 입시가 예전과는 달리 그야말로 3차 전쟁을 방불케한다고 얘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여드름의 흔적은 내 성숙의 증거이자 어린 날의 통증의 대가란 대목이 그나마 가볍고 가장 애교스러웠다고 할까. 책장을 넘기는 손이 떨려왔다. 이 책에 몰입하면 할수록 마음이 자꾸 부대꼈다. 불편했다.




큰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입시란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입시제도가 완전히 탈바꿈을 하지 않는한 내 아이들도 언젠간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좌절하고 상처입을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사회는 청소년의 눈과 귀를 안대와 귀마개로 덮어버린다. 어릴적 나의 꿈은 크지만 현실은 나의 꿈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꿈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배꼽잡고 웃어야 한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인생의 승리는 아니라고 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공부나 해야할 일보다 꿈을 크게 키워야한다고 용기를 북돋아줄수 있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패배하고 있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닌가,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들다니..지금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슬플 뿐이다.




하지만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매끄럽지 않고 서툰 표현이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한가닥 희망으로 다가왔다. 이 책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데 큰 힘을 보태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내 또래의 학생들에게, 척박하게 되어버린 우리의 청소년기를 채울 취미를 하나씩 마련할 것을 권한다.....이 땅에서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 어렵지만 우리만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애증의 시간’이 아닐까. -프롤로그 중에서




얼마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놀라운 얘길 들었다. 요즘은 대여섯살 되는 어린 아이들 적성검사도 한단다. 어떻게? 하고 물어보니 아이의 손금을 보고 성격이나 어느 분야에 소질이 있는지 알아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이 검사받아보지 않겠냐고. 순간 망설이다가 “아니, 이제 입학했는데, 뭘 그런 걸~”하고 대답했다. “왜? 자긴 안 궁금해?”하며 그 아주머니는 못내 섭섭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아이의 미래를 편법을 동원해서 미리 알아내고 싶진 않았다. 지름길보다 좀 둘러가는 길의 경치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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