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장편 전집 Y 시리즈 세트 - 전4권 셜록 홈즈 장편 전집 Y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꿈꾸는 세발자전거 옮김, 시드니 패짓 외 그림, 박기완 감수 / 미다스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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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시즌2, 건물 옥상에서 추락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모두를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만든 셜록.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시니컬한 그가 한결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방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간파해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리켜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당당히 칭하는 그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군침 도는 음식을 탐하듯 시즌3를 섭렵하고 나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시즌4를.

 

 

지난 연말에서 올해 초로 이어지는 날들을 <셜록 홈즈 MINI> 시리즈와 함께 했다. 한 손으로 너끈히 쥘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책은 휴대하기가 좋아서 외출할 때마다 주머니에 한 권씩 넣어 다니며 읽었다.

 

 

그리고 얼마전 <셜록 홈즈 장편 전집 Y>시리즈를 만났다. ‘Why’의 발음과 ‘Youth’의 첫 글자에서 따온 말 <셜록 Y>시리즈는 이전에 읽었던 <MINI>시리즈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수록된 작품이 같고 붉은색의 수능 필수 어휘도 같다. 그럼, 뭐가 다르냐. 가장 큰 차이점은 <Y시리즈>시리즈에서는 각각의 페이지에 표시된 붉은색의 수능 필수 어휘를 오른쪽 페이지에 세로로 길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서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MINI 시리즈 중 주홍색 연구>에서 ‘나는 봄베이에 도착하자마자 제5연대가 산지 통로를 이용해 이미 적진 깊숙이 전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대목의 단어 ‘도착’과 ‘사실’을 <Y시리즈>에서는 각각의 단어가 어떤 뜻인지, 비슷한 말과 반대말, 영어 단어(발음기호), 어떤 한자로 표기되는지 등을 꼼꼼하게 짚어주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해당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필수어휘 심화학습’에서는 앞에서 나온 어휘들을 수능과 관련지어 다시 한 번 설명해 놓았는데 한자를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풀어놓은 부분이 눈에 띈다. 설명이 길어지는 부분에서는 ‘더 자세히 @@쪽’이라고 표시를 해두어 찾아보기도 수월하다.

 

 

내가 어릴 땐 본문 중에서 모르거나 헛갈리는 단어를 찾아 그 뜻을 조사해가는 속제가 종종 주어졌다. 당시 전과를 가진 친구들은 숙제를 쉽게 해결했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언니들이 쓰던 전과는 교과서가 바뀌면서 본문의 내용이 달라진 경우도 있어서 정말 난감했다. 그럴때면 단어의 뜻을 찾기 위해 전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뒤졌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힘들고 하기 싫었던 그런 것들이 어쩌면 국어를 공부하는 방법, 독해력을 기르는 기본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간혹 추리소설은 저급한 통속문학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추리소설을 뭐하러 읽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셜록 홈즈 Y>시리즈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처음엔 일단 흥미를 갖고 책을 읽고, 두 번째 모르는 단어나 어휘를 확인하고, 세 번째 각각의 단어와 어휘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통해 어휘와 올바른 독해력을 기를 수 있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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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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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무나 넓어서 내가 읽어야 할 책도, 만나야 할 작가도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시마다 소지.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점성술 살인사건>을 비롯해서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등 지금까지 유명한 작품이 많이 출간됐지만 정작 만나지 못했다. 일상 속에서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버리는 그릇된 습관이 몸에 배어서일까. 책읽기도 그랬다. 읽어야지,하는 책보다 읽고 싶다,는 책에 먼저 손이 갔다. 새해부터는 책 읽기의 패턴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고 그 다짐 덕분에 시마다 소지와의 인상적인 만남을 갖게 됐다.

 

짙은 밤안개가 내려앉은 날 밤. 낡은 자전거를 끌고 마을을 순찰하던 다나카 순경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로등에 방금 지나간 사람의 얼굴이 비쳤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한밤중에 검은색의 사각 고글을 쓴 것도 이상했지만 그보다 렌즈 속에 비치는 남자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는게 아닌가. 더욱 충격적인 건 고글 안의 피부가 마치 뜨거운 열에 녹아내려 검붉은 근육이 노출된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 기괴하고 괴이한 모습이지만 다나카는 그것이 짙은 안개로 인한 환상일거라 여기고 지나치고 만다. 하지만 담배 골목에서 벌어진 담배 가게의 주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그것이 환상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범행 현장은 포장이 벗겨진 새 담배들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빳빳한 5천 엔짜리 신권이 한 장 발견되는데 지폐의 위쪽에 노란색 줄이 그어져 있는게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 고글을 쓴 20대의 남자를 봤다는 목격자의 말에 다나카는 좀전에 자신과 마주쳤던 사람을 떠올린다. 수사팀은 담배골목의 나머지 두 가게에서도 노란 줄이 그어진 5천 엔짜리 신권을 발견한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듣는다. 비오는 날 유령이 담배를 사러 온다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노인의 말이지만 무언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유령은 뭐고, 지폐의 노란 색 줄은 도대체 무얼까.

 

한편 ‘나’는 중학교 때 인적이 드문 마을의 숲에서 의문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극심한 공포와 혐오감이 뒤섞인 일은 누구에게 알리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짙은 어둠에 잠식된 마음은 서서히 병들어가기 시작했는데 특히 안개가 끼는 늦은 밤엔 고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부분적으로 기억이 끊기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되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어느날 스미요시 화학연구소에서 푸른 섬광과 함께 핵분열의 연쇄반응에서 일어나는 임계사고로 인해 그는 물론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이 방사능에 노출되는 피폭을 당하게 되는데...

 

어디에나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어릴 적엔 공동묘지였던 곳에 학교를 지어서 비오는 날에는 귀신이 나온다거나 동네에 빈집으로 방치된 집 앞을 지날 때는 원통하게 자살한 원혼의 부름에 홀릴 수 있으니 귀를 막고 지나야 된다...등 상상할 수 있는 갖가지의 괴담들이 있었다. 그런 것처럼 소설도 마을에 떠도는 괴담에 검은 고글을 쓴 피부가 녹아내린 의문의 인물이 벌이는 미스터리한 살인이 아닐까 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줄곧 이것들이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문을 품었는데. 그런 것들이 조금씩 가지를 뻗어나가고 서로 연결이 되고 급물살을 어느새 소설은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읽는 내내 우울했다. 어딘가 질척한 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뜻 발을 빼고 싶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어 오도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당신은, 나인가?”하고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지만 이젠 인정해야겠다. 시마다 소지, 그에게 완전히 휘둘리고 말았다는 걸. 이 느낌이 사그라들기 전에, 그를 또 한 번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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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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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 눈 구경 한 번 못하고 겨울이 지날 모양이다. 사는 곳이 따뜻한 남쪽 도시인데다 바닷가와 가까운 곳이라 다른 동네에선 눈이 와도 하늘에선 눈송이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눈이 오더라도 잠깐 흩뿌리는 정도거나 밤새 조금 내리고 말아서 눈 내리는 날의 정취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은데. 눈과 인연 없는 동네에서 사는 것의 보상이라도 되려는지 요즘 읽는 책마다 눈, 눈, 눈이다. 이순원의 <첫눈>, 요 뇌스뵈의 <스노우맨>,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까지. 눈은 펑펑 내리다 못해 눈 무더기에서 뒹구는 격이 되어 버렸다. 이런 걸 대리만족이라고 해도 되려나?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보자. 저자는 히가시노 게이고.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사람의 심리를 절묘하게 파헤친 사회파 추리소설부터 일상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소설까지 저자의 이름 그 자체가 베스트셀러 보증수표다. 그가 겨울 분위기가 완연한 작품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질풍론도>. '질풍', 몹시 빠르고 거세게 부는 바람. ‘론도’, 자주 반복되는 주제부와 사이의 삽입부로 이뤄진 음학의 형식으로 경쾌한 춤곡에 쓰인다. 즉, 바람이 거세고 빠르게 리드미컬하게 분다? 이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소설은 눈이 내리는 고요한 날, 누군가 나무 밑동의 눈을 파서 무언가를 숨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묻은 것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작은 갈색 테디 베어 인형을 걸어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됐다는 걸 확인한 남자는 눈 쌓인 설원을 경쾌하게 활주한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 남자가 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한편 다이호대학의 국립감염증 연구소는 조용히 술렁이기 시작한다. 구리바야시 연구원이 연구소의 실험실 금고에 보관 중이던 생물병기가 일부 사라진 걸 알아챈 것. 같은 시각, 도고 부장은 자신에게 도착한 메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메일 발신자는 연구소에 근무하던 구즈하라. 그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생물 병기 K-55를 훔쳤고 그것을 의문의 장소에 감췄음을 밝힌다. 문제는 생물병기인 K-55가 지극히 적은 양으로도 호흡기로 감염되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탄저균을 초미립자로 가공한 것이다. 그래서 만약 외부에 노출될 경우 탄저균보다 더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그것을 구즈하라가 훔쳐내어 돌려받고 싶으면 3억 엔을 내놓으라고 만약 자신의 요구를 거스르거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물건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한다고 협박한다.

 

 

갑작스런 사태에 구리바야시와 도고는 당황한다. 자칫 잘못하면 대량 감염으로 번질 수 있기에 구리바야시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종용하고 도고 부장은 탄저균을 초미립자로 가공한 것 자체가 불법이기에 조용히 마무리 짓기를 원하는데. 그런 와중에 뜻밖의 연락을 받는다. 구즈하라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요구 금액을 낮춰서라도 구즈하라로부터 K-55를 무사히 건네받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기에 그들은 순간 당황한다. 이제 어떻게 찾지? 눈 쌓인 들판에 나무, 그리고 갈색 테디 베어가 찍힌 사진 몇 장, 이것만 보고 여기가 어딘 줄 알고?

 

K-55 보관용기가 섭씨 10도 이상 되면 깨어지는데다 위치를 나타내는 발신기의 밧데리조차 제한되어 있고 그 전에 K-55를 되찾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도고는 구리바야시에게 특명을 내린다. 어떻게 해서든 K-55를 찾아오라고. 과연 구리바야시는 K-55를 무사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사건이 터지자마자 범인이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방 한 도시의 스키장, 그것도 사람들의 통행이 제한된 구역의 드넓은 설원의 어딘가에 감춰진 K-55를 구리바야시가 어떻게 찾아낼지에 주목해서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추리소설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닥칠 대반전을 은근히 기대하며 읽기 마련인데 다소 느슨한 느낌이랄까? 문제의 생물 병기가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 인근 사람은 물론 더 먼 곳까지 퍼지는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긴장감을 갖게 하는 유일한 요소였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는 평이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이 겨울, 새하얀 설원을 스키, 혹은 스노보드를 타고 리드미컬하고 경쾌하게 활주하는 기분을 책으로나마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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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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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인 것 같다. 교과서로 알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조선의 모습을 만났다. 장터 투전판의 노름꾼에서부터 뒷골목의 폭력조직, 도둑, 기생, 특히 관료로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과거시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날 수능시험장이 최첨단 기기를 동원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그 옛날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명예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민초들,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들의 삶의 공간인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고 ‘야사’로 지나치고 말았을 이야기지만 정말 흥미로웠다.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조선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한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시작으로 저자 강명관의 책을 기회가 닿는대로 읽었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를 읽으면서 ‘조선’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난 책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내게 있어 ‘조선’이란 이름의 퍼즐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조각이 아닐까 싶다. 다름 아닌 ‘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진보를 향한 변화라면, 그 변화의 이면에 아주 복잡한 요인이 있다면, 책 역시 반드시 거기에 끼일 것이다.’ 즉, 인류의 역사는 책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방향을 결정짓는 요인이기에 ‘책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이 책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라는 제목이 곧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책의 역사를 다루기 이전에 저자는 고려시대의 출판, 인쇄는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당시 고려는 출판을 전담했던 관청에서 서적을 출간했는데 ‘내서성’에서 ‘비서성’ ‘비서감’ ‘전교서’ 등 관청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책의 인쇄와 보급을 맡았던 ‘서적포’, 왕과 신하들이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였던 ‘서적소’를 비롯해 주로 어떤 책을 만들었는지, 고려의 국가도서관과 거기에 구비된 장서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그런 다음 구텐베르크보다 88년 앞섰다는 조선의 금속활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세계 최초’를 강조하지 않는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일부 지배층에서 독점하던 지식이 대중화 되어 서구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에 비해 조선의 금속활자는 국가가 인쇄,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을 독점하면서 발전할 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는다.

 

1446년, 조선은 획기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한글이 창제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글로 쓴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글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한글로 쓴 책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고 그 이전에는 오로지 번역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왜냐면 조선 역시 고려와 마찬가지로 책의 인쇄, 출판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한 지배층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이로운 책만을 찍어냈다. 백성들을 위해 쓴 <삼강행실도>조차 한자로 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 그림을 덧붙였다 하더라도 길거리 아이들과 여염 부녀자들까지 쉽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후 저자는 책의 출판과 인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인쇄출판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읽고 유통되었는지, 책값은 얼마였는지, 책의 제작에 필요한 종이는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등 조선시대의 책과 관련된 다양한 궁금증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얼마전 읽었던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쾌’였다. 서적매매의 중개인으로 ‘책쾌’가 맡은 역할이 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세 나라 중에서 조선만 서점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서점이 등장했다고 짐작할 뿐.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산소가 혈관을 타고 온 몸을 골고루 순환해야 건강하듯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경험과 지혜, 지식을 글로 남기고 그 지식을 한데 모은 책이 나라 곳곳에, 백성 모두에게 고루 주어져야 하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갑갑했는데 그게 어쩌면 당시 지식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니 실로 안타깝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작한 나라’면 뭐하는가.

 

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자 문화의 역사다. 책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쌓아올린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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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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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 지난 과거의 중요한 사실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 때문에 새해 벽두부터 나라 안이 들썩였다. 지난해 친일파를 애국지사로 기록하고 일제 식민시대를 미화하며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방식에서도 문제점을 보이는 등 왜곡된 역사를 서술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대해 논란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다 일부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면서 해당학교의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여러 시민단체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에서 채택을 포기하면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은 0%대에 그쳤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관이 어떠한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정부에서 교과서를 직접 제작하는 ‘국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또 한번의 논란이 예견되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 연산군.

 

이런 차에 보게 된 책이 <역사 e 2>이다. 이 책은 EBS 역사채널e에서 제작된 <역사 e>를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인데, 한국사의 주요한 사건과 그 이면에 감춰진 기록과 인물들을 찾아내 영상과 함께 새롭게 조명해놓은 프로그램이다. 한 회당 방송시간은 약 5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속에 담아낸 내용은 실로 크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고리타분한 역사, 그마저도 박물관을 찾아야 만날 수 있었던 역사의 흔적과 단면들을 세련된 영상과 간략한 설명을 통해 보다 가깝고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 ‘세상에 버릴 사람, 없다’, 2부 ‘사라진 것들, 되살리다’, 3부 ‘시대의 맥박, 살아 있다’. 여기에는 각각 일곱 개, 모두 21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실제 방송 대본과 몇 장의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방송은 여기가 끝이었으나 책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각각의 주제마다 한정된 시간, 짧은 문장으로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제일 먼저 소개된 ‘책의 신선, 책쾌’는 서점이 거의 없었던 조선시대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유통시킨 서적중개상 ‘책쾌’에 관한 이야긴데, 책쾌가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책쾌로 인해 도서 대여점이 등장하고 여성들의 독서클럽이 생기기도 했다는 것, ‘조신선’이라 불리던 조생이 책쾌 중에서 특별했다는 것은 상세설명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가 끝날 때마다 참고자료를 소개해놓아서 관심 있는 부분을 더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해놓은 부분도 돋보였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늘 강조했던 것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것, 흐름을 파악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역사 e 2>는 달랐다. 울창한 숲이 아니라 그 속의 나무 한 그루, 가지 하나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숨겨진 뒷이야기, 누군가 일부러 들추지 않으면 사라지고 잊혀지고 말았을 야사(野史)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역사에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것은 책의 후반에 가서야 빛을 발한다. 초반에 새롭고 신선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묵직해진다. 도쿄 전범 재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들, 명문가의 자제로 독립운동의 자금, 에너지를 도맡았지만 그것을 알리지 않고 파락호라는 오명을 써야했던 김용환, 24살 꽃다운 나이에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윤봉길 의사....등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심오하고 원대한 의미를 가슴 깊이 심어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단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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