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동물 - 파국적 결말을 예측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
더글러스 T. 켄릭 외 지음, 조성숙 옮김 / 미디어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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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칼코마니’인가요? 물감을 칠한 종이의 가운데를 접었다가 펼쳤을 때 무늬가 좌우 대칭으로 나타나는 거 말이에요. 검은 옷을 입고 손으로 허리를 짚은 남자의 뒷모습이 좌우대칭으로 서 있는 책 <이성의 동물>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좌우대칭은 아니더군요. 뒤돌아선 남자의 얼굴 색깔과 그 주변을 둘러싼 물방울이 한 쪽은 빨강, 다른 쪽은 파랑. 정반대의 색깔이었거든요. 같은 모습이지만 정반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남자의 모습 위로 드리워진 글, ‘파국적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 왠지 모르게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인간인 나 역시도 모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습니다.

 

<이성의 동물>은 진화심리학의 선구적인 학자인 더글러스 T. 켄릭 교수와 마케팅겸 심리학 교수인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 이 두 명의 심리학자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진화심리학과 경영심리. 이것만 봐도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오랫동안 진화를 거듭한 인간에게 당시의 경제적인 욕구, 상황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인간의 심리는 어떠했을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죠?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버트런드 러셀, 오스카 와일드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이 ‘이성의 동물’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철학자들도 과학자들도 모두 동전의 한쪽에 초점을 맞춰 인간이 이성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쟁 대부분은 동전의 다른 한쪽인, 이성의 동물에서 ‘동물’ 부분을 간과했다. 이 책은 바로 이 동물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11쪽.

 

책에는 이성적인 인간의 ‘동물적인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아홉 가지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비이성적 선택과 케네디가의 저주’인데요. 이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된 바로 그 ‘케네디’냐고요? 아니지만 맞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 ‘케네디家’거든요. 25살의 나이에 미국 최연소 은행장이 되었고 주식거래로 엄청난 차익을 올려 행운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지닌 그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 자식들에게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미국 대통령이 된 차남 존 F. 케네디를 비롯해서 그의 아들과 딸은 암살이나 전사, 비행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는데요. 케네디家의 불행과 비극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의 손자들 역시 비운의 사고로 죽음을 맞으면서 ‘케네디가의 저주’라고 불리고 되는데요. 두 저자는 여기서 의문을 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인가, 아니면 허점투성이 바보인가. 치명적일만큼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담하게 일을 저지르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심리를 밝히기 위해 하나하나 추적해나가는데요. 그들은 그것이 모두 인간의 뇌가 어떻게 진화를 거쳐 왔는지에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하려면 뇌가 지금의 특정한 선택을 내리도록 진화해온 이유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48쪽.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항해 흑인의 인권운동을 펼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누구보다 도덕적이라고 칭송받던 그였지만 다른 여성들과 외도를 한 이력이 있다는데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 반대의 행동을 일삼는 원인이 바로 다중인격에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다중인격,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데요. 약 일곱 개에 달하는 자아가 각각이 어떤 상황에서 주도권을 갖느냐에 따라 인간의 결정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최고의 대학, 최고의 두뇌로 통하는 하버드 대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시험을 아마존 밀림의 한 부족, 그것도 문맹의 원주민들이 통과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밝혀내는 부분은 우리 인간의 미처 생각지 못했던 허점들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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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끝내는 논술 공부 - 구조를 알면 공부법이 보인다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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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책을 많이 읽어서 논술도 잘 한다고. 책을 좋아하면 뭘 해도 하니까 책 읽는 아이에게 굳이, 애써서, 억지로 공부시키지 말라고. 논술도 저절로 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A=B, B=C 고로 A=C'라는 삼단논법이 오래도록 뇌리에 박혀있는 걸까. 사실, 삼단논법이란 거, 명쾌하다. 단박에 정리된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A는 결코 C가 될 수가 없다. A와 C 사이에 끼어있는 B라는 녀석이 어떤 성질, 어떤 특성을 지녔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어려운 논제도 척척 해내는 아이들 중에 ‘일부’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을 뿐이다. 이게 핵심이다. 잊으면 곤란하다.

 

 

서울 강남의 대치동에서 오랫동안 논술강사를 했다는 저자가 <혼자서 끝내는 논술공부>에서 제일 먼저 꺼내는 얘기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논술에 대한 몇 가지 법칙? 그것들 모두 잘못된 오해에 불과하다고. 논술을 잘 하려면 우선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들은 독해력, 사고력, 창의력, 표현력을 평가한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대학으로서는 할 말을 정확히 다 한 것이다. 동서양 고전을 수백 권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없고, 신춘문예에 등단할 정도로 화려한 글 솜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없다. -15쪽.

 

 

논술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짚은 저자는 논제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지 못하면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글을 결코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다음 논술의 유형을 일러주는데 서울의 명문대부터 지방 국립대까지 논술 유형은 크게 다섯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주어진 글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내는 요약, [가]와 [나]를 어느 한 기준에 놓고 서로 다른 점이나 차이를 찾아내서 드러내는 비교,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개인적이나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풀어서 말하는 설명, 상대의 입장이나 주장, 견해에 대해 무엇이 잘못됐고, 왜 틀렸는지 전제, 근거, 이유를 말하는 비판, 주어진 쟁점에 있어서 어떤 입장을 지지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견해이다. 이런 것들을 모 대학의 모의논술이나 실제 논술에 나온 논제를 바탕으로 유형별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저자는 논술이 수험생의 글쓰기 능력이 아니라 ‘학문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했는지 가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견월망지(見月望指)’.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본다고 하는 것처럼 논술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도 바로 그렇지 않을까.

 

 

논술은 신비스러운 과목도 아니고 운이나 암기 지식으로 대처하는 과목도 아니다. 논술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글쓰기, 즉 주어진 논제를 해결하는 글쓰기다. -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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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토론 콘서트 : 사회 -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12가지 사회 쟁점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7
윤용아 지음, 문지후 그림 / 꿈결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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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지인 몇 명이 모닝커피를 하자고 했다. 내가 커피숍을 찾았을 땐 이미 두 무리의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뒤 테이블의 누군가가 ‘디베이트’ 얘기를 꺼냈다. 요즘 공부 좀 한다는 애들한테 국영수는 기본, 역사나 과학, 논술은 선택이라는 얘길 듣긴 했다. 이젠 여기에 ‘디베이트’도 추가가 된 모양이었다. 두세 개의 학원을 두고 열심히 비교하던 엄마들이 결국 실력 있는 과외선생님을 알아보자고 결론을 내리는가 싶더니 한 명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근데 디베이트가 뭐야?” 그러자 한 명은 “@@엄마, 토론 아냐. 토론!”, 또 한 명은 “토론? 토의 아니고?”. 잠깐의 침묵에 이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걸로 상황은 종료.

 

사실 토론과 토의. 언뜻 생각하면 혼동하기 쉬운 말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두 단어는 다른 말이다. 하나의 주제, 문제해결을 위해 형식이나 방법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것이 ‘토의’라면 ‘토론’은 어떤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서로 자기의 주장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먼저 정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눈다는 점에서 두 가지 모두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훈련하면서 쌓아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학원에서 해결한다고?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와 같은 책을 통해 청소년들이 인문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 책을 펴낸 꿈결에서 이번에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꿈결 토론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제목은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토론 콘서트>. ‘청소년들이 꼭 알아야할 12가지 사회 쟁점’을 주제로 어떤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지 매 주제마다 가상의 토론자를 등장시켜 토론을 진행하고 그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주제에 따라 관련 보도기사를 비롯해서 사진이나 도포, 그래프 같은 자료도 함께 수록해놓아서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도 있다. 일종의 [TV토론]을 책으로 만나는 셈이랄까.

 

책은 먼저 크게 3가지의 대주제(내가 선택하는/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국가가 움직이는 사회 쟁점 이야기)로 나뉘고 각각의 대주제마다 4개씩, 모두 12개의 쟁점을 다루고 있는데 토론을 다루고 있는 책이니만큼 토론의 형식과 절차를 엿볼 수가 있다. 해당 주제가 왜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데 책은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해놓고 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소개되어 있는 ‘성형수술 열풍 어떻게 봐야 할까요?’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모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문을 연 다음 번화가에 즐비한 성형외과에는 성형 기술의 선진국이라 통하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로 인해 또 다른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한다. 외모가 취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외모로 인해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때로 잃기도 하는 사람들. 책은 성형외과 전문의 이성형과 미학과 교수 박자연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외모 지상주의와 성형수술,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토론을 벌인다. 그런 다음 ‘생각 정리하기’에서 본문에 언급되었던 부분에 대해 독자가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인터넷 언어의 사용’ ‘길고양이에게 먹이주는 것’ ‘학교 안의 CCTV설치’ ‘교복자율화’ ‘양심적 병역거부’ ‘인터넷 실명제’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로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로 범위가 점점 크게 확대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주제인 것 같다. 게다가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본문 속에 12가지의 사회쟁점을 담다보니 핵심인 토론이 좀 더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그동안 무심히 넘겼던 사회의 쟁점들을 <토론콘서트, 사회편>을 통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한 번 깊이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출간될 <토론콘서트>에서는 어떤 것들이 다뤄질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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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멈춰 세우는 동유럽 1 In the Blue 3
백승선 글.사진 / 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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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여행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딘가를 여행할 계획이기 때문에 그 곳의 정보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여행서를 뒤적이지 않는 편입니다.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건 ‘번짐 시리즈’입니다. 몇 년 전 오렌지빛깔의 지붕을 한 집들이 동화처럼 펼쳐져 있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통해 만나게 된 번짐 시리즈에 단박에 반해 버렸습니다.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과 여행지의 풍광을 순간에 포착해서 그린 듯한 수채화, 간간히 만나는 이야기들... 그전까지 저는 여행서란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과 주변 지도와 맛집, 숙박지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요. 번짐 시리즈를 만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번짐 시리즈를 얼마전에 만났습니다. <나의 시간을 멈춰 세우는 동유럽 1>인데요. 동유럽국가 중에서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일 먼저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던 크라쿠프를 만나게 되는데요. 중세 유럽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많은 유적을 간직한 구시가지는 1978년 유럽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군요. 여행자가 방문할 수 없는 성 마리아 성당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성당의 첨탑 두 개의 높이가 왜 다른지 성당의 공사를 맡은 형제 건축가의 일화를 알려줍니다. 또 침입자를 발견한 파수꾼이 이를 알리기 위해 트럼펫을 불었지만 곡이 끝나기 전에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해요. 이를 기리기 위해 후세의 사람들은 매시간 파수꾼이 죽기 전에 연주했던 부분까지만 트럼펫을 분다고 합니다. 지하광산 비엘리치카와 지하 135미터에 위치한 소금예배당은 광부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든 곳이라고 하는데요. 땅 속 깊숙한 곳에 펼쳐진 경이로운 세계는 사진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만큼 신비로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때 도시의 85%가 파괴되었지만 재건에 성공한 도시 바르샤바. <피아노의 숲>이란 만화에서 ‘바르샤바는 곧 쇼팽’이라는 대목을 봤는데 그 이유가 쇼팽의 심장이 잠든 곳이 바르샤바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인 토룬과 약 150만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간직한 도시 아우슈비츠를 보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도시가 역사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구르트와 키릴문자의 나라 불가리아에서는 현재 불가리아의 수도이자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를 소개하는데요. 굴뚝과 굴뚝 사이의 오선지에 높은음자리 표와 음표로 베토벤의 [합창] 앞 소절을 펼쳐놓은 국립 미술관, 한국어학과가 있다는 소피아 대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해가 일찍 뜨는 곳인 릴라 수도원에서 침묵 수행하는 수도사들과 함께 박물관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목조 십자가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플로브디프의 거리는 거리 곳곳에 로마와 터키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과 유적이 남아있데요. 마치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더군요.

 

책을 읽는 내내 한여름의 무더위로 축 늘어진 기분에 일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했습니다.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때론 무작정 길을 떠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익숙한 장소,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느끼는 감흥이란 게 있으니까요.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인 것 같습니다.

 

여행은 마법이다.

공간 이동, 시간 이동이 가능한. ㅡ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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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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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사막 한 가운데로 헬리콥터가 날아듭니다. 도심에서 벗어나 휘황찬란한 불빛 대신 잡초만이 무성한 곳. 헬리콥터의 엔진 소리 외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방이 고요합니다. 헬리콥터가 지상에서 900미터 높이의 상공에 이르자 갑자기 문이 열리고 곧 이어서 한 남자가 밖으로 떨어집니다. 남자를 허공 속으로 밀어 떨어뜨린 헬리콥터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1030>의 첫 부분인데요.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첫, 도입부분이라고 하지요. 거기에 하나 더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주인공도 빼놓을 순 없습니다. 해서 작가들은 처음부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수단을 총동원합니다. 상투적이지 않은 신선한 도입, 되도록 빨리 주인공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스토리를 위해 고심한다고 하는데요.

 

 

<1030>의 도입은 의문으로 출발합니다. 표지를 펼쳐 두어 장 넘기는 동안 밝혀진 건 헬리콥터에서 인정사정없이 내쳐진 남자가 캘빈 프란츠인데, 당시 그의 양 다리는 모두 부러졌다는 것과 캘빈을 사막에 떨어뜨린 일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이번의 일이 처음이 아니라 비일비재 하다는 사실입니다. 희생자와 베일에 싸인 악의 무리가 드러나는 순간인데요. 이제 남은 것은 악의 무리를 처단할 ‘정의의 용사’, 일명 ‘해결사’입니다.

 

 

‘정의의 용사’, ‘해결사’라고 해서 바람에 망토를 휘날리며 짠~~하고 등장하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 남자, 찌질하기 짝이 없어요. 낯선 곳의 독신자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지내다보니 빈털터리가 된데다 행색도 초라합니다. 195센티미터의 키에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지만 쿨한 해결사라기보다 텁텁한 방랑자가 제격인듯 한데요. 그런 그가 ATM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려다가 순간 멈칫합니다. 통장에 자신의 예상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있었거든요. 정확하게 1030달러. ‘1030’이란 숫자는 잠자고 있던 그의 두뇌를 깨우는 스위치가 됩니다. 1030. 그것은 헌병들이 사용하는 암호화된 숫자로 동료들의 지원을 다급하게 요청할 때 사용하는 코드였거든요. 과거가 자신에게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에 이 남자, 순식간에 돌변합니다. 최고의 군인이자 최고의 특수부대원, 첩보인 잭 리처(Jack Reacher). 그가 드디어 눈을 뜨는 순간입니다.

 

 

이후부터 소설은 잭 리처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 옛 동료였던 프랜시스 L. 니글리를 추측만으로 찾아가고 그녀에게서 역시나 옛 동료이자 형제와 다름없었던 캘빈 프란츠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는데요. 그들은 한때 출신성분과 남녀, 계급을 초월해서 탁월한 능력과 끈끈한 전우애로 똘똘 뭉친 최정예 특수부대원들이었습니다. 리더인 잭의 지휘아래 생사의 순간을 넘나들면서 무수히 많은 임무를 함께 수행했습니다. ‘특수부대원들에게 덤비지 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지요. 잭과 니글리는 캘빈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과 처절한 복수를 위해 흩어진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서는데요. 그런 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솔직히 잭 리처는 이번에 처음 만납니다. 친절한 톰 아저씨로 불리는 톰 크루즈가 잭 리처 역할은 맡은 영화가 작년에 상영됐지만 미처 보질 못하고 놓쳤는데요. 엄청난 덩치와 카리스마를 내뿜는 고독한 방랑자 같은 거구의 잭을 단신인 톰이 어떻게 연기했을까. 책 읽는 내내 궁금했답니다. <1030> 외에 다른 잭 리처 시리즈와 함께 지금이라도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리 차일드에 의해 창조된 인물, 잭 리처. 그의 치명적인 매력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표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책을 내려놓기는 힘들다는 거. 약속이 없는 금요일 밤이나 다음날의 스케줄이 한가할 때, 잭 리처와의 만남을 시도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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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좋다 2014-08-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실망입니다.

몽당연필 2014-11-04 01:01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아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