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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평점 :
작은 아이가 즐겨보는 그림책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머나먼 우주에 ‘분홍별’이란 별이 있는데 그 나라의 여왕이 분홍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별을 온통 분홍으로 물들여버렸다. 그런 어느 날 소녀가 여왕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이 세상이 알록달록 빛깔들로 이루어져 있을 때 분홍이 더욱 돋보이지 않을까요?” 그 말에 번쩍 눈이 뜨인 여왕은 다시 주문을 걸어 세상은 알록달록한 빛깔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뜬금없이 웬 그림책 얘기냐 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거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것. 뜨거움이 있으면 차가움이 있고 긴 게 있으면 짧은 것이 있는 건 당연한 것. 만남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 즐겁고 유익한 만남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러면 만남의 순간은 무덤덤해지고 그 의미도 퇴색하고 만다. 이별이 있기에 만남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별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무수히 이어지는 만남과 이별, 그 가운데 이별의 순간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보냈을 때 우리는 더욱 성장하고 만남을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게 아닐까.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란 부제의 <이별리뷰>는 이별에 대해, 그것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이별이 아닌 사랑하는 그/그녀, 연인과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문학작품을 통해 이별의 순간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책은 이별을 크게 ‘이별의 전조와 실연의 정황’ ‘부정과 슬픔의 정황’ ‘사랑에 대처했던 우리의 자세’ ‘본노하고 애도하라’ ‘사랑을 말해본다’ 다섯 개의 단계로 나누어 그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신의 이별을 돌아보게 한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여러 가지의 이별을 보며 자신을 투영시켜서 눈물을 흘리거나 오히려 더욱 상처를 받고 아파하더라도 혹은 정반대로 그저 그런 반응을 보이더라도 그것은 곧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면, 그리고 이별을 했다면 당연히 미쳐야 한다. 우리가 사랑과 이별을 겪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어쩌면 미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약간은 미쳐서, 이별을 기억하지 않고, 다만 사랑만 더 아름답게 각색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이다. - 92쪽.
책에는 모두 32개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이청준 [이어도], 김승옥 [무진기행], 김훈의 [칼의 노래]처럼 많은 이에게 알려진 작품이 있는가하면 영화의 원작소설처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황순원의 [소나기]였다. 사랑이 무언지, 이별이 무언지도 모르던 때, 교과서에서 본 [소나기]는 어린 나를 한동안 가슴앓이하게 했다. 소녀가 죽음을 맞던 순간 남겼다는 말이 어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순간, 책 속의 순박한 소년처럼 나 역시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그리고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 이전에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깊이 사고해볼 수 있는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조만간 꼭 읽어야 할, 그것도 행간의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책이 되었다.
언제나 이별에 서툴렀다. 나는. 그래서 이별의 순간이 닥치는 걸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래선 발전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더디더라도 이별을 슬픔으로만 여기지 말자고 생각하게 됐다. 본문의 글자 크기가 다소 작아서 보기가 살짝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별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좋은 이별은, 좋은 사랑을 위한 희망이 된다. 사랑했다면, 그것이 이별로 끝난다 하더라도, 그 사랑에 대한 존중은 계속되어야 한다. - 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