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나라님의 '삼미 수퍼스타스..' 서평이 모티브가 되어 엮이기 시작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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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프로야구에 관심이 별로 없지만, 잠시 있다가 다른 이름으로 바뀐 '삼미'라는 이름에 더해서, '우리는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하리라는 거짓말에 너무 오래 속아왔다' 란 수니님의 말에 공감한다.

아직 학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중고생 - 대학 초기에 삼미그룹이라는 회사의 창업주의 아들이었던 회장과 그 가족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실은 우리 부모님의 지인이셨는데, 난 가족 모임이 있을 때 몇 번 본것 뿐이다. 

그 몇번의 만남, 그리고 그 후 언론에 난 인터뷰나 기사를 통해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느꼈는데, 그들은 재벌 2세로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었다.

그가 회장이었을 당시(그러니까 80년대 초) 그 집에 가보았다.

정원에는 수영장도 있었고(네모난 파란 것이 아니라 자연석이 깔린 세련된), 1층의 거실은 하도 넓어서 소파와 테이블 세트가 두세 세트 듬성듬성 들어갔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 방의 책상도 앤틱한 수입가구였고...

하지만,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회장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선대의 어른들, 창업 당시부터 고생해온 간부들, 인척들의 틈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것이 느껴졌다. 이화대학 메이퀸이었다는 부인도 어떤 것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건 그저 어른들이 잘 아니까 어줍잖게 아는 척 하지 말고 모른다 해야 한다'고 농담 반 푸념 반 말하는 것이었다.

김회장에 대한 인터뷰 기사에서 기자의 '이러이러한 학력에 이러이러한 경력이면 2세로서 손색이 없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그 질문 자체에 이의가 있다'면서 자신의 학력과 경력에 자신의 노력이 물론 담겨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요지의 대답을 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나의 느낌을 강화해 주었다.

역시 몇년 지나지 않아 회장직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한때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삼일 빌딩까지 파는 삼미 그룹의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그곳에서의 간단한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여러 책임에서 벗어난, 자연인으로, 가족 중심으로의 생활에 행복해 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본 이들의 모습에 이견을 가질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아 경제적으로 상당히 '잘 사는' 몇몇 가정들을 보아온 나의 경험으로, 진실로 이런 경제적 여유가 행복이라는 마음의 충족과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었다. 

어떤 가정은 그저 '성공한 장삿꾼'일 뿐이었고, 어떤 가정은 화려한 외양에 반해 내분으로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어떤 가정은 늘 바쁜 부모와 넓은 집 '덕'에 일주에 한번도 부모와 이야기할 기회가 없기도 했다. 부모가 아침 일찍 혹은 밤 늦게 출퇴근하는, 안방에서 현관으로 가는 짧은 순간을 그 길목에서 기다려야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작은 집은 마주치지 않을래야 마주칠 수 밖에 없겠지만, 큰 집에서는 일부러 나가 있어야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 이런 집에서 몇명의 가정부나 운전기사를 두고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집은 형제자매가 다 박사네 뭐네 해서 명문가로 이름났지만, 그중에도 떨어지는 형제가 받는 스트레스는 오죽할까?(난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도올 김용옥을 꼽는다. 그의 기이한 행적의 근저에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컴플랙스가 깔려 있다.) 

일부는 이런 계층의 '배부른 소리'를 오히려 증오할지도 모른다. 부자가 일단 되어 봐야 부자된게 별 소용 없다는 걸 확인하겠지만, 모두가 다 부자가 되어볼 수는 없기 때문에 증명될 수 없는 헛소리 처럼 들릴게다.

한편, 부자들은 피해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은 것 같다. 특히 요즘 국내 정세에서 말이다. '완전히 빨갱이 나라가 되었다'고 거의 패닉 상태에 있다. 오히려 경제는 20:80으로 부익부 빈익빈으로 갈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자신을 보호해 주는(?) '부'라는 울타리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하고 힜다.

이런 질시와 피해의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역시 '잘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라는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개개인이, 아이들의 교육 과정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곰곰히 생각을 모으는 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머지 않아 소비와 소득증대에는 한계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건 우리 나라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라는 별의 한계 때문이다. 정말 진지하게 성장 위주의 가치관에서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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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01-0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경제적인거야,,요즘 먹고 사는것은 자기 하기나름이고(그래도 노숙자나 정리해고..명퇴자들때문에 돌 맞을 소리인가?)....
지금은 너무 튀는 행동때문에 약간은 부담스러운 유시민씨가 쓴 '경제학 카페'를 읽고 우리가 더 많은 재화를 얻어도 우리의 욕망은 한이 없기에 결코 행복해질수없다는글에 너무나 많은것을 느꼈다..우리가 행복하기위해서는 욕망을 절제할수있는 힘이 필요한것이란다..
그때가 30대 초반...집장만한후에 더 많은 가구..전자제품 구입에 몰두하던 나에게는 정말 꼭 필요한 말이었다..그러나..실천이 안되서...아직도 이것 저것 구입한 할부금을 갚느라 허덕이는 나지만..약간이라도 끝없는 욕망에서 한걸음 뒤에서서 볼수있는 힘을 준글이다..
더큰집..더 큰차..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면 행복해지리라는것은 CF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살기에 필요한 기초적인것만 해결된다면 그후에는 마음 편한것이 제일이 아닐까?
이혼율 50%가 무슨 근거있는 수치인지 모르지만...요즘 부부들은 문제가 많아서 헤어지는것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져서 이혼을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가치를 소유나 겉모습으로 두느냐..인간존중에 두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다른거라고^^

마립간 2004-01-0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학교 선배님이 미국 예일Yale대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데, 얼마 전에 직장의 두 노老교수님이 비교되어 학교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한 교수님은 자녀들이 학창시절 공부를 매우 잘해서 의사와 변호가 되었는데, 자녀들이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 한꺼번에 모이는 일이 일년에 한번도 없다고 합니다. 한편 다른 한 교수님이 자녀들은 학창시절 공부를 (아주) 잘 못했지만 그 나름대로 직업을 갖고(예를 들면, 배관공, 자동차 정비 등 구체적으로 모름) 부모님 집 근처에서 사는데, 매주 토요일만 되면, 자녀,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등이 모여 즐거운 모임을 갖는다고 합니다. 현재는 뒤에 언급한 교수님이 행복하다고 여기지만, 한편으로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 못하는 자녀들이 비교당하는 생각하면 그 교수님도 꽤나 마음 고생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고등학생때부터 고대해왔던 마흔 살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마흔살이라고 하면 굉장히 나이가 많은건줄 알았다.
어느정도 세상도 좀 알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사회적으로도 초년 딱지를 떼고, 이 사회와 가정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참 그럴듯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20대 때도, 30대 때도 다시는 오지 않을 시절이라 최대한 살아내자 생각했지만, 그래도 40대에 대한 기대가 더 컸었다.

드디어 마흔이 된 지금, 이런 거창한 기대와 달리 지난 닷새동안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를 허둥지둥 보낸 것 같다.
1일(목) 낮 - 작년에 태어난 조카들 영세식 참석,
            오후와 저녁 - 우리 아이들 연수보낼 짐싸기,
2일(금) 새벽: 우리 아이들 3주간 연수 출발... 저녁에 퇴근해보니 집이 왜이리 썰렁한지..
3일(토) 저녁: 세계사회 포럼 참가자 준비모임이 대전에서 있어서 그 행사 준비 및 일부 진행.
4일(일) 로미 쥴리 목욕시키기, 집안대청소... 어째 좀 여유가 있는 날이었다.
5일(월) 오늘이네.

아침에 출근하니 바리바리 전화가 온다. 어제 보낸 파일들 번역을 했냐고.
파일이라니?
알고보니 어제 음성 메세지가 핸드폰에 왔었는데, 이걸 확인하는 방법을 몰라(이거 원시인 아니냐?) 어제 파일 세개 보내놓고 어제까지 번역해달라고 하는 메세지를 확인 못했었다. 세계사회포럼에서 우리 단체가 발제하는 내용을 홍보하는 파일들이었는데,  으아~~~ 오늘 점심까지가 현지의 홍보 신문 마감이란다.
월요일에다 겨울철이라 환자들도 많은데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부랴부랴 겨우겨우 시간을 맞추었다.

이뿐이 아니다. 근 보름을 병원을 비우느라 유동성 위기가 대두되는 재정도 신경써야 하고, 대진의도 구해야 하고, 보건소, 보험공단에 병원 비운다고 신고해야 하고(아마 다른 업종은 이런 시시콜콜한 짓 안할거다. 가게 문닫는것도 아니고, 잠간 남에게 맡기는 것도 신고해야 하다니..), 게다가 집을 비우게 되니 남편 심기도 신경 써야 하고... 아예 남편도 함께 가자고 꼬시는 중이다. 여기에서 또 가치관과 강제되는 역할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고...

내일부터는 세계사회포럼 직전에 열리는 세계보건포럼에서 발제할 내용(5분짜리 짧은거지만)과 발제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하는 내용을 포럼 자료집에 넣을 내용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냥 참가만 한다고 문의한 것이 어찌어찌 엮여서 우리 단체에서 사례발표를 두개나 하게 되었다.) 부족한 관련 어휘를 초치기로 익혀야 하고....
멋있게, 분위기 있게 맞이하려 했던 사십대를 이렇게 정신없게, 많은 고민 속에, 유동성 위기 속에서 맞이하게 될줄이야...

하지만 열심히 살아내자는 결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음주 월요일인 12일에 인도 뭄바이로 떠난다. 아마 18일 혹은 20일에나 돌아올 예정이다.
겨우 1주일여에 불과한 기간이지만, 나 자신의 의지로 국내건 국외건 행사에 이정도 오랜 시간 참석하는 것은 첨이다. 그것도 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서 결정한...
(출장 맘대로 다니는 분들은 복 받은 줄 아세요. 그 흔한 배낭여행 한번 못해봤으니... 이와 관련해서는 언젠가 또 푸념글 하나 나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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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1-0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세계사회포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좋은 경험, 의미있는 경험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산 2004-01-0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가능한 열심히 중계(?) 해보겠습니다.

nemuko 2004-01-0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앗, 서른이군"이네요. 저도 십년후엔 가을산님처럼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을거라 자위해보며...ㅎㅎㅎ. 몸은 늘 게으른데 마음만 급해서 절 언제나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을산님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전 지금 독감에 걸려서, 게다가 약 기운에 취해서 완전히 맛이 갔답니다.

ceylontea 2004-01-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잘 다녀오세요... 큰 기대를 하고 맞이하는 해인데... 바쁜 일상에... 그 의미를 느껴보실 틈도 없으신 것 같네요.. ^^
저도 어제 출근해서부터.. 정신을 차릴 수도 없고.. 스트레스 팍팍 받아서... 꿈에서까지 업무 연장이고....... ㅠ.ㅜ
빨리 일이 정리가 되서 정상궤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4-01-0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인도에 잘 다녀 오세요...아마 음식때문에 고생좀 하시겠는데요...하지만, 꾹 참고 드세요...다 몸에 좋은 향신료니까요... 저는 그 기간에 중국에 잠시 다녀오렵니다....그리고 사십이라는 나이...남으로 부터의 유혹에서는 물론이고 자신으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난다는 <불혹>인데....아마도 가을산님은 무늬만 사십이실것 같은데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루피 많이 쓰지마시고요...늦었지만...생신 축하드립니다...

sooninara 2004-01-0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전 서른만 넘으면 인생에는 도통하게되고 뭐든지 다알줄 알았는데..
스물이나..서른이나..마흔에 가까워져도 아직도 어릴때처럼 철없는 저를 보고 실망스러워한답니다..^^
그래도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긴것이 어릴때보다는 나아지는것이라 자위합니다

마립간 2004-01-0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덕분에 세계 사회 포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NGO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구가 비대해지거나 영향력이 생기면서 권력화하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이런 이야기 아세요. '천사가 악마를 이기기 위해 한참을 싸우고, 다 이긴 후에 자신을 돌아 보았더니 자신이 악마가 되어 있다.' 그리고 아마추어를 지향하던 올림픽도 과연 아마추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기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행 잘 다녀오십시오.
그나저나 WSF가 참가인원 75000명에 10개의 주제가 있는 forum인데, 2001년도 어떻하다가 만들어진 forum이죠. (바쁘신데 쓸데 없는 질문드려 죄송합니다. 다녀오신 다음에 여행기와 함께 답변주셔도 됩니다.)

가을산 2004-01-0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하... 아직 생일은 안되었어요. 어쨌든 수수께끼님 고맙구요, 중국서 싸~~스 조심하세요.
* 마립간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우리나라ngo들은 대부분 아직도 걸음마 수준입니다 - 재정적으로도, 회원 수로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내세울만한 것은 '무대뽀 정신'일 것 같습니다. 하하...
작년에 이라크에 구호활동을 다녀온 분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 일부 단체는 저도 통화를 했는데 - 세계의 내노라 하는 구호단체들이 정작 구호활동은 시작 못하면서 책상머리에 앉아 '안전! 안전!' 을 요구하고 현지에 가지도 않으면서 현지 상황을 리포트 하고 있었답니다.
구호 사이트에 가서 '무엇이 필요한지 (volunteer, donation)' 찾아보면 '돈'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좋게 말하면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테고, 나쁘게 말하면 '돈이나 내고 우리가 하는 걸 지켜봐라' 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name value는 있어 기부금은 엄청 들어오지요. 회원 하나가 '국경없는 의사회' 요르단 지회 사무실에 가서 (정작 의료진은 한명도 없는데...) 사무실 바닥에 대리석이 쫘악 깔린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아이들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의약품의 접근권에 관한 책이다. 

출간 전에  '생명이냐? 이윤이냐?' 쯤 되는 제목을 달려고 한다는 말과 함께 서평을 짧게 달아달라는 글이 있어서 그 글에 이미 비슷한 제목인 '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책이 출간되어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가 그만 서평을 써줄 것을 '찍히고' 말았다.

'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책은 국내 필진이 대중적으로 의료 및 의약품의 접근권에 대한 문제점을 부각, 어필하기 위해 출판된 책이다.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지만, 좀 치밀하지 못한 것, 대안의 부족, 국민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노동자'와 '자본가'를 가르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라는 책은 'Morts sans ordonnance(처방 없는 죽음?)'을 번역한 책이다. (이것도 제목이 잘못달린 리스트에 넣어야겠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가 산정 및 특허권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높은 약가 때문에 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개도국 국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회사가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특허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비난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처럼 절대적인, 일방적인 파워를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지, 이들이 제시하는 약가가 과연 합리적인 선인지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그리고 합리적인 약가마저 부담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대책 또한 필요하다.

이 책은 양측의 '전투' -- 이 책을 읽으며 이 단어가 떠올랐다. 치열한 전투. -- 를 상세히 보여준다.

이 책에 우리 나라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나라도 작년인가? 글리벡이라는 백혈병 치료제의 약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약회사와 다국적 기업들의 압력으로 복지부 장관까지 바뀌는 치욕을 겪었으니까.  우리 나라에도 백혈병에 걸리면 죽기 전까지는 글리벡을 사먹기 위해 매달 몇백만원씩의 약값을 부담해야 하는 환자들이 실재로 있으니까. 

글리벡의 보험약가는 한알에 23,045원이다. 환자들은 매일 네알에서 여섯 알(대략 매일 9-14만원)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건강보험이 약가의 반을 부담해준다 하더라도(이것도 보험이 안되거나 30%이던 것이 백혈병 환자들의 2년에 걸친 싸움으로 40%로 늘었다.)  매일 5만원에서 8만원 드는 이 약을 우리인들 얼마나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더 기막힌 것은 이 약의 원가는 1달라도 안된다는 것이고, 노바티스는 이미 이 약 발매 1년만에 이 약의 개발비를 다 벌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앞으로 14년간 더 특허권을 주장할 것이다. 그 사이에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은 약값으로 신음하고...

아고,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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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학생때는 책이 무척 크고 무거웠습니다. 

해부학 책 같은 것은 그 한권만도 3kg이 넘었는데 (크기도 크고, 사진이 많은 책이라 종이 자체가 무거웠음) 수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8교시 꽉 짜여 있으니 각 과목당 책 갖고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큰 가방에 넣기도 하고, 분책을 하기도 하고, 책을 사물함에 두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책 한두권은 들고 다녀야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또 잔머리를 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왼쪽의 손잡이 달린 책싸개였습니다. 매학년 배우는 과목 중 가장 중요하고 두꺼운 책을 저렇게 싸서 다녔답니다.

이 책은 내과책인데, 크기는 B4크기이고, 이런 책 두 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책싸개의 장점은, 손잡이가 있어 들고다니기 좋다는 것 뿐 아니라,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졸릴 때 책을 덮고 업드리면 베게 역할까지(!!) 해주었답니다. 좀 더 얇은 과목의 책들은 두권을 한꺼번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 책싸개가 한동안 잊혀졌다가 최근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이제는 책이 '무거워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책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읽는 책마다 비닐코팅이나 테이프로 포장하기가 귀찮아져서 다시 책싸개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다시 만든 첫 책싸개는 옛날 은사님 만나게 되었을 때 선물로 드렸구요. 아래의 사진은 요즘 만든겁니다.

평범한 것,  자크달린 주머니가 있는 것, 그냥 포켓이 달린것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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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cha 2003-12-2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기발한 아이디어네요.
이쁘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하고..
그거 아예 상품등록 해봐여~ㅎㅎ

ceylontea 2003-12-29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네요...
예전에 텔레비전에 쇼핑백으로 이와 비슷하게 책싸개 만드는 것이 나왔었는데..
그 아이디어가 혹 가을산님 것은 아니었는지...

sooninara 2003-12-3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달력이나 비닐로만 싸보았는데...
처음엔 무슨 퀼트가방인줄 알았습니다..
가을산님을 보면 의식의 대전환이라던지..사고의 유연성이란 말이 떠오른다는....
평소에는 무슨말인지 가슴에 안 와닿는데.가을산님 작품을 보면..
이말이 이럴때 쓰는말이구나 싶거든요^^

가을산 2004-01-27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두께에 따라 같은 크기의 책이라도 책싸개의 가로 길이가 달라집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책싸개의 한쪽 날개는 안쪽과 바깥쪽을 한꺼번에 박지 말고 아래위의 끝선을 따라서 아주 작은 똑딱이 단주를 여러개 나란히 달아서 책의 폭에 의한 가로 변화에 따라 길이를 맞출 수 있게 했습니다. 일일이 똑딱이를 달기가 힘들지만, 일단 달아놓으면 꽤 편합니다.
 

동짓날이었던 22일 저녁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인을 위한 추모제가 있었다.

2년 전, 한 노숙인이 사망한지 몇일이 지나서야 발견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된 행사인데, 그간 서울에서만 진행된 행사를 금년에는 대전서도 준비했다. 집계해보니 지난 3년간 길거리에서, 쪽방에서, 그리고 행려병자로 병원에서 죽은 사람들이 대전서만 모두 24명이나 되었다.

역전에서 이들과 함께 살면서 상담, 배식, 쉼터 제공, 진료 등을 해오던 여러 단체 사람들, 그리고 쉼터에 입소한 분들까지 함께 이 행사를 준비했다. 학생 노래패는 무보수로 노래를 불러주었고, 한 식당에서는 식이 끝나고 나눌 200인분의 팥죽을 기증해 주었다. 쉼터의 아저씨들은 작은 분향대와 컵에 담긴 초를 손수 만들었다.


행사를 한창 진행하던 중, 어떤 사람이(이 지역의 양아치중 한명) 진행자들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야 이곳에 늘 있었고, 이날도 어느정도 실갱이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니네들 다 돈 보고 이러는 거 안다. 자기돈은 딴주머니 차고 있을거다. 자기 자식들은 아파트까지 다 사주고 있을거다.' '니네가 이사람들에 대해 뭘알아!' '니네 부모형제가 죽었어도 차가운 길바닥에서 이러겠냐?' 등등..

모두들 갑자기 주목한다. 지난 3년간 쪽방지역의 진료센터에서 일해온 김간사가 이 사람을 말리고 식은 무사히 계속되었다.


 

그런데 생각거리는 이제부터다.

* 김간사, 열받다.

행사장 한쪽 구석에서 실랑이 하던 김간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아저씨! 이쪽으로 와! 이리와서 나랑 얘기해요!' 하며 광장의 변두리로 그 아저씨를 잡아 끈다.

-- 대전의 노숙자 쉼터 담당인 원목사는 스테파노 수사님과 달리 괄괄하다. 가끔씩 맞고함을 치기도 한다. 원목사나 이목사 같은 분들은 IMF 당시 2개월간 직접 노숙을 하기도 했다. 이곳의 상근자들은 늘 취하고 거친 이들을 상대해와서 평소에는 조용조용하지만, 필요할 때는 한끝발씩 한다. 여기서 원 목사만 남자지, 이 목사, 김 간사, 이*영 간사 모두 여자다. 물론 훌륭한 남자 간사들도 있었는데, 이들만큼 오래 버틴 사람들은 없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들도 번쩍번쩍 안아올린다. 누가 여자를 약하다 하는가?


* 아저씨가 소리친 이유

 

이분은 알고보니 고아출신이었다. 참가한 학생 한명이 행사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열받았던 것이다. 다음은 아저씨의 말.


'나 고아출신이야. 나 사진 신물나게 많이 찍었어! 손님 오는 날엔 원생들이 동원되어 청소하고, 새옷 꺼내 입고, 과자박스, 자전거 앞에 두고 사진 신물나게 찍었어. 그런데 다음날 보면 그 박스, 그 선물들 다 없어졌어. 원장이 다 착복한거야. 너희도 이거 사진찍어서 교회같은 데 대문짝만하게 붙여놓고 돈이나 얻으려는거 아니냐?" “후원이나 지원금을 바라고 하는 헛껍데기 행사는 집어쳐라.”

“니들이 고아가 되어본 적이 있느냐? 니들이 노숙을 해 본 적이 있느냐? 니들이 이사람들 심정을 어떻게 아느냐?”

이분은 어려서부터 전시성 행사, 사진찍기 위한 행사, 위선적인 선행등을 신물나게 겪어왔던 것이다.


* 그래도 좀 봐주라

 

- 우리가 대전역 광장에서 행사를 한 것은 노숙인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있는 이곳에서 한 것이다. 저 사람들을 보라. 저사람들이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느냐?

 

- 후원을 바라서 하는 행사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 이들의 죽음을 알리고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면은 있다.

 

- 사진을 찍은 것은 학생이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지, 선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아까 열낸 김간사는 이들과 3년간 동고동락 했었다. 이사람들을 모르면 이 근방에서 지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아까 부모형제라면... 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부모 형제마저 외면한 자들을 수발들고 있다.

 

- 난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들이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나부터도 함께하지 않는다. (교회 안다니는 것이 이럴 때 요긴하게 쓰이다니! --;; )

 

- 내년에 행사를 준비할 때는 아저씨의 지적을 반영해서 대외적인 내용보다 좀더 당사자들 입장에서 내실있는 행사가 되도록 하겠다. (실재로, 이날 불러진 노래들은 너무 '고상해서' 노숙인들이 따라부르기 어려운 노래들이었다. 내년엔 노래방 기기라도 빌려 아저씨들이 마음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라도 싫컷 부를 수 있게 해볼까 한다.)

 

- 처음부터 제대로 봉사하는 것은 힘들다. 오늘 처음 무보수로 노래해준 학생들도, 온지 몇일 되지 않은 이*행 간사도, 행사 내용에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한 우리도 완벽하지는 못하다. 당연히 노숙자들을 당사자들만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통해 한걸음씩 서로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어설프더라도 실수가 두려워서 나서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쪽도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좀 봐주라.


* 새 간사

 

김 간사가 지난 달 직장을 옮긴 후, 후임을 물색했는데, 일이 거칠고 주로 밤시간에 일해야 하는 것 때문에 지원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신학대학을 갓 졸업한 자가 지원을 해왔다.

두손들어 환영해도 모자를텐데 면접때 원목사님의 ‘왜 여기에 오려고 지원했나?’라는 질문에 ‘이론, 이상과 삶을 일치시켜보기 위해’라고 대답했다고 그만 원목사님이 퇴짜를 놓고 말았다.  --;;

몇일 후 다시 찾아와서 이번에는 ‘그냥 열심히 부딪혀 보겠다’고 했고, 이렇게 해서 이*행 간사는 진료센터의 새로운 간사가 되었다. 

 

이 간사,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이 났다는데..... 남자가 눈물났다는 것도 그렇고.... 눈물난 걸 내게 말하는 순진한.....  이 험난한 곳에서 얼마나 버틸지? 이간사 파이팅!


* 활동가

 

요즘은 간사를 활동가로 고쳐부른다. 나는 진지한 고민과 함께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존경한다. 아직 그들이 더 젊고, 경험이 적고, 생각이 짧더라도.

가진 시간과 재물을 전혀 나누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나 시간과 관심의 아주 일부만을 나누는 '독지가' 혹은 '지원자'들에 비해,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관심을 거의 모두 쏟아붇는다. 현장에선 가장 궂은 일들을 맡아 하면서도 가끔 얼굴을 내미는 '회원'이나 ‘지원자’들을 오히려 반가와하고 고마워한다. 이들의 열정이 없으면 많은 운동들이나 ‘꿈’은 그야말로 ‘몽상’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활동가로 그들의 꿈에 대한 첫 실험을 한다. 이들이 실험에서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기를, 너무 큰 희생을 강요받지 않고 꿈의 실현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서명

 

행사 한쪽에서는 노숙자들의 주거권을 청원하기 위한 서명을 받았다. 참가자나 행인들 외에 당사자들의 서명도 받았다.

그런데 또하나의 문제.

많은 분들이 한글로 이름과 주소를 적을 줄을 모른다. 눈이 나빠 적을 수 없다고도 한다. 한글을 안다 하더라도 주소난에 적을 주소가 없다!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들은 법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아니다.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 25번째?

 

추모제를 하는 중에도 광장 한쪽에선 노숙자 중에 머리를 다친 사람이 발생, 구급차가 왔다.(참 세상 좋아졌다!) 응급처치를 했는데도 의식이 혼미해서(다쳐서? 아니면 술취해서?) 응급실로 실어갔다. 그가 25번째 사람은 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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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3-12-2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곳을 빼먹었군요...일상과 생각이라는 타이틀을 왜? 그냥 지나쳤었는지...저 자신이 이해가 안되니 가을산님도 이해하시기 힘드시겠죠? 이제는 늘상 들러서 일상을 늘 점검하고 가겠습니다...

sooninara 2003-12-3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는 말이 있죠..성장기에는 나누기보다는 파이를 키우기위해서..
지금같은 불황에는 나살기에도 바빠서...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름만 선진이라고 하지말고 실천이 뒤따르는 나라가 되려면 얼마나 지나야할지...
애쓰시는 여러분..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