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숨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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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나의 책장파먹기는 계속된다. 이런저런 이유로(책을 주문할 때는 항상 정당한 이유가 있다) 구입해 놓은 책들을 보고 더 이상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을 때 미안해진다, 책에게도 작가에게도. 그럴 때는 어서 읽어내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하여 그 이유가 생각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읽길 잘했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책을 자꾸 주문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숨. 소설집. <국수>. 처음 만나는 작가에 선뜻 선택하지 않는 소설집. 게다가 표제작의 제목도 눈길을 끌만큼 특이하지 않다. 그래서 연휴 마지막 날 집어들고 단숨에 읽었다. 연휴 마지막 날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읽으면서 생각했다. 분위기는 어둡고 집요하고 한 번 읽어 쉬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작가의 의식에서 정제되지 않은 채 바로 끌려나온 이야기들 같았다. 6편의 단편들이 죄다 그렇다. 게다가 그 끈질김이라니. 다 읽고 나서도 이야기는 나한테 계속 달라붙어 곱씹게 만들었다.


   6편 이야기의 공통점은 '가족'이다. 어떻게든 가족이라는 단어로 집요하게 얽혀있어 숟가락으로 국수가락을 뚝뚝 끊어내 듯 잘라지지 않는 관계. 그 관계의 불안함과 아슬아슬함이 등장인물들의 의식 속에서 무질서하게 춤을 춘다. 독자도 그 속으로 빨려든다. 굉장히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들이다. 특히 그 중의 두 편은 결말이 식스센스급이다.


   표제작인 '국수'는 정말 묘사가 탁월하다. 아무 고명도 없고 간도 되어 있지 않은 국수 한 그릇에 양념장 하나. 여기에 담긴 인생이 상상이 되는가?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앞으로 국수를 끓일 때마다 김숨 작가의 이 작품이 부르르 끓어오를 것만 같다. 후루룩 면발을 빨아들이지 않고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내어 먹어야 할 것 같다. 6편의 모든 작품이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다. 나는 겪어보지도 않은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들어보지도 못한 말투가 귀에 익은 듯 한 느낌이다. 그니까 이 책이 왜 내 책장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잘 읽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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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대한민국 도슨트 13
이지상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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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년에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9번째 책인 <제주 북쪽>을 읽고 이렇게 좋은 책이 시리즈로 나온다며 좋아했었는데 그 이후로 도슨트 시리즈를 다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2년이 훌쩍 넘어 13번째 시리즈로 나온 <포천>을 읽었다.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의 출간 의도가 '더 늦게 전에 한국의 오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인만큼 일반적인 유행의 시류를 따라가는 그런 기행 도서가 아니다. 그 곳이 오랫동안 목격해 온 역사는 물론이고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포천'하면 떠오르는 건 막걸리와 이동갈비 그리고 38선이 가까운 곳 정도로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포천을 통과해서 어딘가로 가보기는 했었겠지만 포천을 목적지 삼아 간 적은 없었을 것이다. 포천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가볼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던 건 그곳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각 시리즈마다 저자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같은 시리즈라고 하더라도 글의 느낌이나 결이 달라진다. 포천은 38선과 가까운 곳이라 역사적 부침이 많았을터인데도 저자가 음악을 하는 분이라 그런지 문체나 어투가 <제주 북쪽>에 비해 무거운 느낌은 덜한 편이다. 거기에 더해 포천이 저자의 고향인지라 어릴 적 개인적 이야기들이 많이 포함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포천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줄 몰랐다. 역사에서 이름을 꽤 알린 이들도 많고 경치 좋은 곳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다. <제주 북쪽>에서도 느낀 거지만 책에 실린 사진도 예술이다. 글 한 꼭지를 읽고 나면 사진을 오래오래 보게 된다. 비둘기낭 폭포나 산정호수는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각종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많이 선택된다고 하는데, 저자가 TV에서 이런 곳이 나올 때마다 반색을 하며 상대방에게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다.


   역사적으로는 먼 옛날 후삼국 시대의 궁예부터 시작하여(물론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도 있긴 하지만) 무사 백동수, 봉래 양사언(이분이 국민시조라 할 수 있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를 쓰신 분인 줄 몰랐다!)에 얽힌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고 포천이 신유박해로 인한 죽임을 당한 천주교인들의 순례의 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포천이 그런 곳이었구나. 이제는 포천하면 막걸리만 떠올리지는 않을테니(막걸리도 포천의 엄청난 자부심!이다) 누가 포천에 한번 가볼래라고 한다면 너 그거 알아?라고 아는 척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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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미술 -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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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는 미술문화 책. 미술문화는 믿고보는 미술서적 전문출판사인데 재미있는 주제를 많이 다룬다. 이번 책은 제목 그대로 판타지, 마법, 동화, 신화, 종교 등의 영역을 다룬 그림들과 삽화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너무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접하게 되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해 끊없는 호기심을 보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왔는데 바로 그 상상이 다양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표출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도 미술은 인간이 어디까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접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신화나 판타지 그리고 SF 영역은 문학적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라 그림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아름답거나 몽환적인 그림들이 있는 반면 섬뜩하거나 괴기스러운 그림들도 있고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나 해석불가인 그림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 속에서 한번쯤은 접했을 법한 시각적 이미지였다.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삽화가들의 작품도 두루두루 다루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신비한 동물 사전>에서 튀어나올법한 생명체들이나 <에이리언>을 비롯 외계 생명체를 다루는 영화에 영감을 주었을법한 괴물들이 이미 누군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고 있었고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도 사실은 수많은 환상의 세계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읽었던 이야기들에 만약 그림이나 삽화가 하나도 없었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 앨리스 맞다)가 언니가 읽던 책을 보고선 했던 말에 공감이 간다. - "이야기도 그림도 없는 책을 무슨 재미로 읽는담?"


   내가 좋아하는 삽화가는 아서 래컴인데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여름밤의 꿈>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등 수많은 이야기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다. <환상의 미술>에서도 아서 래컴의 삽화가 몇 컷 등장하는데 이번에 텀블벅에서 펀딩한 <아서 래컴 빈티지 일러스트북>이 무척 기다려진다. 아마 환상삽화의 정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비현실적인 것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놓치면 아까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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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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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작가로만 알고 있던 어슐러 르 귄이 글쓰기 워크샵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글쓰기 관련 책을 출간했다고 해서 궁금해서 픽! 잠깐잠깐, 책 날개 작가 소개를 보니 세상에 1929년생! 2018년에 88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고 한다. 이 책은 1998년에 낸 책의 개정판. 80세가 넘어서도 글쓰기 워크샵을 진행했다고 하니 대단하심. 사실 이 책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지만 그러지 않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책은 작가들을 위한 스토리텔링에 관한 조언이기 때문이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 책은 '이미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서사 산문 작가'를 위한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재미있고 짧은 서평만이 유일한 글쓰기인 나에게도 작가들의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살짝 엿볼 기회가 되었다. 특히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여기서 기본이란 문법, 시제,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5장에서 지적한 과도한 형용사와 부사 사용에 대한 부분은 모든 글쓰기에도 적용될만한 조언인데, 너무 마음에 와닿아 인용해본다.

우리는 자라면서 공격적인 대화가 좋지 않다고 배웠기 때문에 단어를 부드럽거나 약하게 만들어주는 '좀', '약간' 같은 수식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대화에서는 그래도 좋다. 그러나 산문에서 그런 수식어는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와 같다. 보는 즉시 잡아내야 한다. 또 내가 성가셔하는 수식어로는 '어느 정도', 다소', '그냥'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가 있다. 


본문 p82-83


   위에서 언급한 진드기 같은 수식어는 아마도 서평 쓸 때마다 하나 이상씩 사용했던 것 같은데..바로 잡아내어 없애야 하는 진드기라니.. 헐..앞으로 이런 '진드기' 같은 수식어를 쓸 때마다 잠깐 멈춤! 하게 될 것 같다. 이 외에도 이야기를 하는 화자, 그러니까 '시점'에 관한 부분도 독자의 입장에서 동감할 수 밖에 없었다. 가끔 비일관적인 시점이나 시점이 자연스럽지 않게 변화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어 시점을 선택하거나 시점을 변경할 때 작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에서 끄덕끄덕.


   이 책의 볼거리 중 가장 최고는 저자가 인용한 작품들이다. 각 장에서 언급하는 주제에 맞는 잘 쓰인 예문을 기존 책에서 가져온 것인데, 대부분이 고전작품들이다. 이미 읽은 책들이라고 해도 인용된 대목에서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는데, 다시 한 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저자의 글들이 작품들의 원래 언어를 두고 이야기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번역본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 작품들의 훌륭한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있다. 어떤 부분은 영어를 그대로 옮겨 이해하기가 수월했지만 대부분이 원어가 없이 번역글로만 되어있어 쉽지 않았다. 예문이 원어와 번역어 두가지 모두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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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음식 여행 - 레시피가 있는 프랑스 집밥 이야기
배혜정 지음 / 오르골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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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는 영토가 굉장히 넓은 나라이다. 전 세계 중 유일하게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만큼 축복받은 자연환경을 지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다. 남프랑스 특히 프로방스 지역은 여러 이유로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곳인데 못가본 지 오래되어 다시금 추억을 꺼내보고자 선택한 책이다. 이야기는 대부분 저자와 남편이 프랑스 유학 시절을 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프랑스 레스토랑과 쿠킹 클래스를 운영했다는 것을 보면 프랑스 음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감각을 지녔던 것 같다.


   한꼭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 속에 당시 먹었던 음식들의 레시피가 더해지고 그와 어울리는 와인에 대한 추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맘 먹고 해야하거나 요리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들은 당연히 제외. 하지만 재료 손실정도의 성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간단한 샌드위치 정도는 사먹지 말고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1층 상가에 위치한 진짜 맛있는 빵집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책의 전반적인 톤이 잔잔하다. 저자의 강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실제 말하는 톤도 이렇게 조곤조곤 잔잔한 스타일이실 듯. 보통 우리가 프랑스 요리를 떠올리면 사치스럽고 엄청난 고급요리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물론 그런 요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정성이 들어가지만 소박한 요리들이 많다. 나는 특히 프로방스 지역 호텔이나 숙소들의 아침식사를 좋아하는데 갓 구운 여러 종류의 빵들과 다양한 잼과 버터, 계란과 샐러드, 여러 종류의 치즈, 그리고 커피와 주스, 요거트 정도인데도 풍성하고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동남아 호텔들의 엄청난 스케일의 보기만 해도 질리게 되는 조식과는 대조적이다.


   재료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재료도 있기는 하지만 책에 실린 대부분의 식재료는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른 음식을 만드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해본다. 모든 음식이야기가 담긴 책이 그렇듯 책을 읽고 나면 무척 허기진다. 1층 빵집에 가서 디종 씨있는 머스터드가 듬뿍 발린 장봉뵈르나 사가지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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