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행운
알렉스 로비라 셀마 외 지음, 이정환 옮김 / 에이지21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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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운을 쥔 맥스와 운만 있었던 짐

  어릴적 단짝이었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던 맥스와  그리고 부모로 부터 큰 공장과 많은 유산을 받아들었던 짐이 노년이 되어 정반대의 모습으로 공원벤치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크게 성공한 맥스는 대단한 운을 소유하였으나 파산해 버린 친구 짐에게 그의 삶을 이리 성공으로 이끈, 유산은 없었지만 지혜를 주었던 할아버지가 들려준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짐만큼 큰 운이 따라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삶에 행운을 불러들였던 마법의 네잎 클로버 이야기입니다.

2. 운명을 가른 네잎 클로버 이야기속의 교훈

  1)  모든 사람들이 행운을 움켜쥐려 하지만 정작 찾아나서는 사람은 없다. 

    마법사 마린로 부터 7일뒤에 매혹의 숲에 마법의 네잎 클로버가 피어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사들 대 부분은 이내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그 광활한 숲에서 그걸 찾을수가 없다고 지레 겁먹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흑기사 노트와 백기사 시드 만은 용감하게 그 길을 떠납니다.

  2)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행운을 움켜쥐려면 미리 준비를 해야한다.

     매혹의 숲에 도착한 두사람이 처음 찾은 사람은 대지의 왕자 노무입니다,  그리고 둘다 이 숲에는 그런 크로버도 없고 흙때문에 자라지고 못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노트는 그 말에 실망하고 떠나지만, 시드는 비옥한 땅을 준비하는 방법을 물어서 클로버가 자랄 수 있는 자신만의 밭을 준비합니다.

  3) 욕심만 앞세워서는 행운을 움켜쥘 수 없다. 행운을 부르는 한 가지 열쇠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들이 두번째로 만난 호수의 여왕에게소 숲에 물길이 없어 네잎클로버가 자랄수 없다는 말을 듣고 노트는 다시 절망감을 안은채 다른곳을 찾아나섭니다.  하지만 시드는 여왕의 고민거리인 호수 물이 넘치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물길을 그의 밭까지 만들어 흐르게 하는 것을 제안하고 실행합니다.

  4)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행운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새로운 일을 원한다면 그 시작이 분명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그들은  나무의 여왕 세코이어를 찾아갑니다 , 노트는 아직까지 어디에 마법의 클로버가 자라는지가 궁금해서 묻지만 답은 얻지 못하고 다시 한번 절망을 곱씹고 다른곳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시드는 햇볕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피곤함과 나태를 물리치고 나뭇가지를 잘라내어 그의 밭에 햇볕이 들게 준비합니다. 마법의 클로버가 지금은 없지만 자기의 밭에서 자랄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5)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 행운을 움켜쥐려면 모든 가능성에 눈길을 두어야 한다.

  다시 클로버를 찾아나선 노트는 근엄한 바위산의 스톤에게서 똑같은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마린에 대한 의심과 분노가 일기 시작합니다.  비옥한 땅, 물 햇볕, 모든것이 있는 듯하지만 시드는 혹시나 하여 높은 바위산에 올랐다가 땅속의 돌멩이를 치워야한다는 스톤의 말을 듣고 황급히 자신의 밭에 내려와 돌멩이를 골라 냅니다.

 6) 우연만을 믿는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을 비웃는다. 준비를 하는 사람은 우연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자란 클로버를 찾는 노트는 포기하고 성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이제 차림새가 기사가 아닌 농부가 되어버린 시드를 비웃습니다. 행운은 찾는 것이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말입니다.

  7) 행운을 미끼로 삼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 행운은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로버를 찾지못하고 절망하여 돌아가던 노트는 마녀 모르가나의 이간질에 속아넘어가는 이 모든것이 마법사 마린이 속임수라는 거짓말을 확신하며 분노에 가득차서 성으로 질주합니다. 클로버를 찾지 못한것이 그의 책임이 아니라 이제 마린의 책임이 된다는 듯이.....

  8)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면 초조해 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아야 한다. 반드시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달콤한 말 따위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시드는 마린과 자신을 이간질 시키는 마녀의 꾀임을 마린에 대한 믿음과 또한 자신이 준비한 땅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물리칩니다. 노트처럼 마녀의 말을 확신한다면 마린의 말을 믿어주지 못할 근거는 오로지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인 듯....

   9) 행운을 만들다는 것은 기회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를 해둔다는 것. 하지만 기회를 얻으려면 운이나 우연은  필요하지 않다. 기회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 행운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조건을 만든다는 것이다.

    드디어 운명과 운의 신 윈드가 하늘에서 뿌리는 푸른색 비 -클로버의 씨앗-가 내립니다. 하지만 노트의 갑옷에도, 성안에도, 매혹의 숲 어디에도 그 비는 뿌려졌지만 오직 한 곳, 시드가 준비한 밭에서만 그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풍성하게 자라납니다. 모든이에게 기회가 주어졌지만 기사들은 가버렸고, 노트에게는 준비가 없었습니다. 

  10) 행운을 맞을 준비는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준비는 누구나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시드도 확신하지는 못했겠지만 그는 오로지 클로버만을 찾아서 노트처럼 숲을 헤매지는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클로버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갔고, 그래서 남들과 똑같은 기회를 자신에게는 행운으로 자라게 하였습니다.

3. 행운의 네잎 클로버는 내 안에 있습니다.

  불우한 시절을 딛고 성공한 맥스와 많은 유산과 공장을 날리고 파산한 짐.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아마도 시드와 노트의 모습과 대비될 듯 합니다. 행운은 절대로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제공된다. 그 기회를 행운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준비된 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사람들이 노트처럼 내게 찾아오지 않은 행운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어리석음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짓밟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아서 세잎클로버 밭을 모두 짓밟아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나도 나만의 밭을 가꾸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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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안에 난 달라질 거야 -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아주 특별한 비법
김현태 지음, 송진욱 그림 / 미다스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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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게으름, 화, 무관심, 중독, 거짓말, 욕심,

 이 책이 다루는 일곱가지 이야기의 주제인데, 우리 아이들에게 한가지 정도는 붙어 있을 나쁜 습관 또는 태도입니다. 저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수리수리으르렁사자아싸수리'에 잡혀갈 처지에 처한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꿈이나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하지 못한게 한이 된다는 듯 순순히 그를 따라가지 않고 버티다가  '수리수리으르렁사자아싸수리'로부터 하루에 한명씩 일곱명의 아이를 도울 기회를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딱 7일간이라는 시간을 얻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아이들의 고민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마법의 주문 '수리수리으르렁사자아싸수리'도 얻게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차례로 아이들을 만나는데, 남 앞에서 책읽는 것이 정말 무서운 아이 은찬이 (자신감이 결여 및 그로 인한 긴장감이 문제), 방학숙제를 마지막 날 벼락치기로 하다가 결국 시간이 부족해 울고 있는 용희 (게으름), 뚱뚱하다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먼저 힘으로 대들다가 당한 호중이 (화), 심부름가는 길에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를 모른척 지나쳤다가 그 분이 외할머니였다는 사실에 자책하는 수지 (무관심), 컴퓨터게임이 하고 싶어 PC방 갈 돈을 훔치다 걸려 혼나고 있는 민우 (중독), 아빠의 귀한 난초화분을 깨뜨리고 동생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악몽에 시달리는 소라 (거짓말), 그리고 공짜라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었다가 배탈이 나서 결국 자기가 좋아했던 연극을 보지 못하고 훌쩍이는 준호 (욕심)입니다. 일곱아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섣불리 할아버지에게 하지 않지만 마법주문 덕분에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고민을 알아내고,그들에게 그걸 극복할 수 있도록 종이위에 빼곡히 적힌 정성이 담긴 쪽지 처방을 들려줍니다. 물론 그걸 받아든 아이들은 즐거워하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갑니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는 동화의 도입이나 다루는 주제 등에 대해서는 그럴듯 하다고 공감하게 되지만 일곱명의 아이를 도와가는 과정의 플롯이 한결같아서 단조로움을 느끼게 하고,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전해준 쪽지를 통한 처방이 과연 얼마나 아이들이 수긍하고 도움이 될까?하는 염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단점에 대한 것들을 뒤로 하고, 이 책이 다루고자 했던 일곱가지 주제는 아마도 우리 아이들 생활 곳곳에 한두가지 씩은 덕지덕지 붙어서, 그들의 삶을 갉아 먹고 있을겁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부모로서 진지하게, 아니면 독후토론 형식으로라도 자신에게 적용될만한 사례를 찾아보고, 아이가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과 할아버지가 준 쪽지 처방에 대한 아이 나름대로의 생각은 어떤거고 스스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것인가 등을 이야기 나누다 보면 책이 의도하는 바를 어느정도 달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이런 종류의 문제는 책만 읽어서는 해결될 것이 아니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를 만들어야 할 테니까요. 아무튼 아이들이 고치기를 바랐지만 방법을 몰랐거나, 또는 매번 아이들과 싸우는 것으로 끝나곤 하던 문제들에 대해서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 것만으로도 이 동화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동화속의 할아버지처럼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어려움과 아픔에 먼저 귀기울이고 시간을 내어 돕는 손길을 베풀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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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음모 1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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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증권 투기, 1720년 영국 남해 회사 버블사건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증권사기와 살인의 소용돌이.

 2000년대에 들어서 미국이나 우리 증권시장에서 나타났던 IT버블, 그런데 그런 사건이 실제로 영국에서는 1720년대에 처음으로 발생했나 봅니다. 그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이 없어서 할 말이 많지 않지만, 한장의 종이조각이 그동안 유통되던 은화나 금화등의 실질가치를 지닌 화폐를 대신하기 시작하던 시대가 이 소설이 시작하는 시기인듯 합니다. 현재는 주식이니 채권이니, 어음이니 하는 것들이 일상화되고 당연시 되는 시대이지만, 당시와 같이 단지 어떤 약속을 표시한 것에 불과하던 종이조각에 씌여진 숫자가 실질가치를 지닌 화폐의 역사를 대신하기 시작하던 시대에는 새로운 경제적인 신천지가 열리는 환희와 충격이 교차하는 시기였을 듯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 그 시장을 선점하고자 하는 세력, 그리고 음흉한 세력의 음모를 저지하고 건전한 시장을 형성하고자 하던 사람들간의 갈등이 있었을 듯한데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듯 합니다.

 유대인이며, 유망한 증권매매업자인 아버지를 둔 주인공 벤자민 위버는 한 때 복서로서 이름을 날리던 사내였는데, 부상으로 복싱을 그만둔 후에는 런던 뒷골목을 누비며 돈있는 의뢰자들의 유쾌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게 어느날 윌리엄 벨포라는 인물이 찾아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자신의 아버지 마이클 벨포와 우연히 마차에 치여 죽은 주인공의 아버지의 죽음사이에 엄청난 음모에의한 타살의 의혹이 있다며 사건의뢰를 받게 되고, 아버지와 등지고 살던 위버는 자신의 숙부를 비롯한 여러사람과의 만남, 친구의 도움, 증권골목의 커피하우스와 변두리 카페, 가택 침입 통한 증거수집 등 시공간의 활동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에 접근해 가는데...

 소설은 물고 물리는 인간관계의 속고 속임의 모습, 위선과 가식, 음모와 배신 등의 인간사의 많은 허물들을 들추고 폭로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움을 유발하지만, 끝까지 반전을 도모하며 한조각 종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금융업계의 사기와 살인, 음모와 폭력, 그리고 주식투기사건의 내막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스릴감은 그 흥미 못지않는 긴장감과 재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행해지는 주식이나 채권을 통한 속임수와 부침이, 이러한 경제적인 기초가 시작되던 시절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는 느낌입니다. 결국 인간사 모든것이 세월이 흘러도, 그리고 문명이 발전한다고 해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건가 봅니다. 그런의미에서는 이 소설이 당시보다 훨씬 종이의 음모(?)에 둘러싸인 우리에겐 현실적인 시각과 도움을 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그렇다면 누가 음모의 주범일까요? 저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찾아보실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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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소년 그리고… 여우
매튜 스위니 지음, 박미낭 옮김 / 아리솔(중앙교육진흥연구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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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후반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을 아실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할 가치나 덕목들은 유치원 다닐정도의 어린나이에 이미 다 배운 것들인데도, 실천의 문제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것이어서 어른이 된 뒤에도 전혀 생소한 가치들인냥 그런 것들에서 갈등하게 되는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을 통렬하게 지적했던 책이었습니다.

 <아저씨, 소년 그리고....여우>. 이 동화 -출판사 소개글에서는 성장소설이라고 하였지만-를 읽고 나서 문득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떠 올랐습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그것을 따뜻하게 품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방법도 이미 어린시절에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덕목이라는, 어른들이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그리도 복잡하게 따지고 돌려 말하고 합리화 하여 부정하거나 무시하곤 하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덕목들은 이미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배워 알게 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로 이사온,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시골소년, 제럴드가  자전거를 타고 동네구경을 처음 나간길에 보게된 여우와 빨간수염의 노숙자 아저씨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처음보는 여우로 인한 호기심이 마음속에 가득하지만, 처음에는 눈길도 마주치지 못했다가, 그 다음엔 눈길을 서로 주고 받고, 손을 흔들고, 그리고 나중에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사이가 되어갈 때까지 소년은 부모님께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은 그들의 기준으로 소년에게 만나지 말라고 제한을 가했겠지요- 학교에서 1주일간 정학을 당해서 집에 갇히게 된 때에도 소년은 여우와 아저씨에게 찾아갔고, 그들이 며칠씩 안보이자 기어이는 그들이 사는 쓰레기장까지 찾아 나섭니다. 서로 만나는 횟수가 늘수록 소년은 여우와 아저씨의 사는 모습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들 삶의 조악함-이것도 어른들 시선이겠지요-을 보게 되었지만 소년에게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듯 합니다. 그것보다는 아저씨가 하는 선원시절 세계여행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아저씨가 쓰레기장에서 모은 것들이 더 관심이 가고, 아저씨가 말하는 자기처럼 여행을 할려면 지리공부도, 국어공부도, 수학공부도 모두 열심히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더 수긍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선생님이 그리도 말로 잔소리하며 가르쳤겠지만 소년을 별로 변화시키지 못했던 일이 여우와 아저씨와 교류하던 소년의 삶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이란 것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게 됩니다. 아저씨의 소유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는그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하게 다루는 소년의 모습에서, 우리 삶에 모범답안같은, 그리고 모두가 소망하는 그런 삶의 모습이 있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고, 그런 삶이 항상 바른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의 만남의 한자락에서 발생한 아저씨의 폐렴은 결국은 죽음으로 연결되고 소년에게는 아저씨의 여우-아니 이제는 소년의 여우입니다-와 작은 수집품 몇개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년은 그 여우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아저씨를 생각하고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고달픈 삶이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이 동화는 노숙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이먼공동체에서 일한 원서기획자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부모가 아이를 혼내면서 노숙자의 트레일러로 보내버리겠다고 하는데 그 아이는 "지금 가도 돼요?" 라며 신나하는 모습에서 책을 출판하기를 결심했다는 원서기획자는 자신이 도왔던 사이먼 공동체의 거주자들로 부터 절망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품을 수 있는지, 가진게 없어도 어떻게 남을 도울수 있는지, 불행한 중에도 어떻게 즐거운 마음을 가질수 있는지, 모든것이 불가능해 보일때도 어떻게 하면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단조롭고 똑같은 일상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살수 있는지를 배웠다며, 그들에 대한 빚진자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마음이 제랄드라는 소년의 눈을 통해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누가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서로 마음이 통하는 진실한 관계의 끈을 튼튼하게 엮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결국은 이기적인 마음때문에 -물론 바쁘다거나, 다른 할일이 많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를 달겠지만- 놓아버리는 사랑과 진실이 엮인 인간관계의 끈이 그리도 열심히 찾아 헤매는 인간 행복의 조건이 아닐는지....  

 사이먼 공동체의 봉사자들처럼, 그리고 이 책의 원서기획자처럼, 어린시절 배웠던 가치를 어른이 되어서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낮은 곳을 향하여 손내밀고 진실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우리의 아이들도 제럴드처럼 낯선세계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삶을 개방할 수 있는 용기있는 아이들이 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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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40일 간의 낮과 밤 - 에베레스트.안나푸르나 트레킹 입문
김홍성.정명경 지음 / 세상의아침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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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산맥, 에베레스트 그리고 안나푸르나. 여기까지는 등산에 대해서 문외한이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초모롱마-에베레스트의 현지어입니다-, 쿰부, 텡보체, 아마다블람 등의 지명은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한 외계어처럼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친밀한 그 무엇인가가 그 안에 담겨있을 듯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그 이름들에도 사람의 정서가 담겨 있을 테니까요.

 에베레스트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고상돈 대원이 첫 태극기를 그 정상에 꽂던 장면입니다. 장엄한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인간에게, 우리나라 사람에게 정복당한 세계 최고봉, 이런식의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이 가는 길을 그런 정복자의 발걸음이 아닙니다. 경외스런 자연에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다가가서 자연속에 묻혀 들어가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고소부적응으로 힘들어 하는 과정에서 만난 설산과 강과 절벽과 산길과 사람과 마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순례의 기록입니다.

 도시 생활을 하다보면 -모든사람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출퇴근에 대하는 길과 풍경이 일상이 되고, 살고 있는 아파트이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커다란 마트의 진열상품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집어들고 계산대를 통과하는 것이 당연함이 될 때 쯤이면,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다른 세상도 결국은 비슷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음을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 여행을 간다고 해도 거기의 길이나 집이나 상점은 내가 지나고 살고 사용하던 곳과 크게 다를바 없는 모양일 듯하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간다고 생각을 해도 내 상상의 나래는 도시화된 공간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산과 들도 내가 어렸을 때 자라던 곳의 모습처럼 다정한 곳이 먼저 떠오르곤 하던 나의 상상력의 빈곤을 우스워하기라도 하듯이 이 책의 곳곳에 나온 사진들은 전혀 다른 세상, 친근한 산보다는 경외감을 주는 산, 그리고 꼭대기에 올라 야호하고 외치던 산보다는 바라보기만 하고도 엎드려 절을 할만큼 장엄한 산을 보여줍니다. 20여일간의 여정으로 돌아보는 쿰푸 트레킹과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아마도 그 안에 들어선 사람에게 도시화된 공간에서 살면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을 자연의 장엄함과 우아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겸손 등등의 수많은 가치있는 가르침을 전해 줄 듯합니다. 글이 없어도 사진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화려하게 꾸며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적어가도 인간에게 감동을 주고, 거기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하는 영혼을 울리는 한편의 시가 되는 듯 합니다. 또한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썼던 저자가 간암으로 이 세상을 달리 했다는 마지막 후기를 읽으며, 이 히말라야 트레킹의 기록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그들 삶의 기록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아려옵니다. '트레킹은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고 한 저자의 말처럼 내 삶의 한 과정에 저자들처럼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쿰푸를 순례하고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는 나름대로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해 집니다. 나도 그 곳에 가고 싶고,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습니다.

 <사족> 초모롱마, 이건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의 에베레스트의 현지어 이름인데 서구열강의 한 관리의 이름이던 에베레스트가 이젠 현지인들도 그 산을 부르는 일반적인 언어가 되었답니다, 돈과 권력이 산의 이름까지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린 그걸 모르니 당연히 에베레스트라고 하였지만, 저자의 말처럼 우리 백두산을 서양인들이 와서 엘리자베스라고 바꾸어 부르기를 강요한다면 어떨까?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안나푸르나. 이건 여신의 이름이라고 알려졌는데 실은 그 어원은 안나-곡식-, 푸르나-가득찬-이라는 의미로 '하얀 쌀밥이 쟁반에 가득 담긴 모양'이랍니다. 뭔가 마음속에 느낌이 오지 않나요? 저는 한참이나 그 경외스런 산을 두고 이런 의미를 담은 옛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결국 말로 못할 느낌만이 떠 오르고 말긴 한데.... 아미다블람. 히말라야의 보석이라고 하고 암벽에는 부처님의 좌상이 자연적으로 생성된 모습이 보인다는데, 개인적으로도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만든 아름다운 설산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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