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으로 오늘을 읽는다
이남희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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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거와 현재의 대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비롯된, 먹물을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곱씹었을 역사에 대한 간단명료한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 그 간단명료한 정의가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이 책이 그 말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고 할만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국역 조선왕조실록 CD-ROM>이 보급되고, 일반인들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면에서 어려운 한자속에 파묻혀 있던 조선의 생생한 역사가 우리곁에 다가섰는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역사와 우리가 대화하는 방식에 대한 한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방대한 자료에 대한 지식이 우선되어야 겠지만, 저자 자신이 그러한 과거속으로 들어가 구체적인 오늘의 현실을 비추어 보고, 답을 구하고자하는 진솔한 대화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과거 역사의 성공과 실패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질곡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는다는 것, 과거의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과 자각을 하게 합니다.

 조선의 법과 정치, 무역과 경제, 사회와 유교, 문화와 생활로 나뉘어진 내용은 각각 일곱 꼭지의 우리의 현재와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만한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일본의 독도에 대한 반복되는 영유권 주장과 잠시의 논란으로 끝났지만 미국의 독도에 대한 주권미지정이라는 애매한 태도로 인해 우리 온 국민의 혈압이 몇계단 올라간 사건이 있었는데, 사회와 유교편에 실린 '독도는 우리 땅 - 울릉도의 아들 독도'를 통해서 저자는 역사적 그리고 문헌학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타당성과 건설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사에 흥분하기를 잘하지만 정작 냉정하고 논리적인 대응에는 항상 미숙한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에 대해서, 역사의 논리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속에서, 잠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입이다. 또한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하여 백성들의 의견을 물어 청계천의 준설작업을 통한 백성의 구휼과 매년 물난리의 원인이 되는 하천 정비라는 두마리 도끼를 잡은 영조의 뉴딜정책, 선거 때면 매번 국민의 매서운 눈길을 명심하겠다고 절절하게 반성하고서도 선거가 끝나면 국민 무서운줄 모르고 개(?)판을 치곤하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비춰보았을 때 차라리 제왕의 권력을 가지고서도 신하들과 민심의 올바른 뜻을 따르고자 했던 성군들의 모습은 이야기 자체로도 많은 책망을 우리 정치인들에게 던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 성과 관련된 스캔들, 한양의 인구과밀과 택지개발, 탐관오리와 뇌물에 대한 징벌, 인사청탁에 대한 처벌, 조선에 귀화한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 인재선발에서의 지역별 할당제, 왕실의 웰빙 문화, 왕실의 한가위와 달구경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현재 사회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또한 적용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시대와 사람들의 의식수준, 정치체제와 도덕관 등의 차이로 인한 서로의 다름과 같은 사람 또는 민족으로서 여러면에서 서로의 닮음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다르지만 생각만큼 많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서, 역사를 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역사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의 또다른 색다른 재미들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오늘과 과거를 상관시켜 상고하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역사속에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교훈들의 다양한 모습을 새삼 깨닫게 되고, 멀게만 느껴지던 역사와 조상들의 모습이 현재의 생활이나 우리가 겪는 사실들과 닮아 있는 모습도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또한 살아있는 역사, 우리의 삶속에서 반복되는 역사의 의미에 대한 일면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디지털화 된 여파로, 요즈음은 다양한 조선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하여 더 다양하게 해석되고 각색된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에게 소개 되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단순한 재미를 위한 또는 화석화된 과거 사실들에 대한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아닌, 저자와 같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서 우리 삶속에서 살아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막힌 곳에 길을 열어주는 그러한 보고로서의 유산이 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또한 나를 비롯한 읽는 이들도 그러한 역사에 대한 열린 마음과 귀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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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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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의 누군가가 세종대왕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바로 역사에 남은 성군으로서의 세종의 이미지가 될 것입니다. 그가 이룬 업적과 그가 남긴 유물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가장 눈부신 훈민정음을 만들어 냈다는 찬사와 함께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세종에 대한 기억과 기록들은 많은 면에서 우리에게 본받고자 하는, 그리고 존경을 표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끔씩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듯, 그에 대한 몇몇 시비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들을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겠지요. 다방면에 걸쳐 그가 남긴 업적들이 너무도 대단한 것들이기에..... 금년 들어서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다방면에서 그를 조명하는 책들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세종실록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들에서 부터 시작하여, 우리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그의 삶과 업적들을 들여다 보고 배우고자하는 책들도 보이구요. 하지만 이런책들 역시나 대부분 역사에 기록된 성군으로서의 세종대왕에 대한 이미지를 간직한 채 그의 일생을 살펴보고 배울거리를 찾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이 책도 결론적으로 그런 세종대왕에 대한 이미지를 품고 있습니다. 조말생이라는 고위관료가 사형에 상응하는 뇌물을 챙기고 권력을 남용하였지만, 끝까지 그를 감싸고 다시 복직시켜 관직에 중용한 것은 세종의 개인적인 친분이나 선왕 태종의 충신이었다는 사적인 감정에서가 아닌, 능력있는 관료를 필요로한 세종이 그의 능력의 쓰임새를  미리 헤아려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정책으로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였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살피는 사건의 기록속에는 세종과 당시 관료들 사이의 감정이 뒤틀리고, 관료들이 전원 사직을 고할만큼 치열한 법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논쟁이 담겨 있습니다. 관료사회에 모범과 경고, 그리고 이제 기틀을 잡아가는 조선사회의 안정을 위해 법에 따라 당연히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법치를 내세우는 관료들의 원칙론에 정치적인 그리고 군사적인 경험과 능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한 리더로서의 세종의 현실적인 필요가 강하게 대립하는 모양새인데, 여기서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현실 정치속의 세종은 여러면에서 자질을 가진 훌륭한 임금이기는 했겠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성군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현실정치속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매순간순간 선택을 내려야하는 리더였고, 또한 국가의 장래까지도 크게 그리고 자신의 정책을 조율해 나가야 하는 현실 정치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대하는 신하들도 다양한 개성과 의견을 지닌 이들이었고, 조말생처럼 선왕 태종때부터 국가에 봉사하고 있는 경험있는 원로대신들과 대쪽같은 절개를 지닌 젊은 선비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겠지요. 그리고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조말생 뇌물사건은 그러한 현실속에 발생한 자신의 원대한 계획과 다양한 신하들의 요구를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와 대의와 명분을 지키기 위해 직언을 서슴치 않는 신하들간의 어떤 선택이 최선인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신하들은 법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이고, 세종의 입장은 부패척결도 중요하지만 능력있는 인재의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현실적인 필요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제한된 인재풀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능력을 지녔다고 판단되는 인재에 대한 선택으로 결과적으로는 대의명분을 살리는 것보다 더 귀중한 열매를 맺게 한 리더의 의지와 결단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였다고 하더라도, 결코 관리의 부패척결이라는 대의 명분을 위해 간언하는 신하들을 잘못되었다고 내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정치력안에서  녹아들게 만드는 부분도 또한 세종의 능력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이러한 현실정치속에서의 결단과 능력이 쌓여서 우리가 지금 느끼는 성군 세종의 이미지가 형성되었겠지요.

  조말생 사건을 통해 파헤쳐보는 세종의 모습은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리더의 리더십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한가지 모범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선택의 순간에는 옳고 그름이나 결과의 호불호를 판단할 수 없지만, 세종조의 신하들이나 세종대왕 모두 조선이라는 나라의 안위와 번영을 위한 대의명분과 현실적인 필요를 위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듯이, 우리에게도 그러한 자세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겠지요. 현실감각을 잃지않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리더와 조말생을 파직하든지 우리를 파직하든지 하라는 직언을 두려워하지 않은 신하들처럼 사심을 버리고 원칙에 입각하여 잘잘못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논쟁을 거쳐 뜻을 합하고 일을 이루는 선순환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사회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덕성은 상호이해와 존중이 아닐까 합니다. 매번 반복되는 정치권의 밑도 끝도 없는 의혹과 말싸움이나 지역주의나 이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열매없는 논란으로 시간을 지새울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조말생 구제방침에 들고 일어나서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신하들을 보며 세종은 융성해가는 조선의 국운을 한껏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감히 "신으로 하여금 이 직책에 있게 하시려면 말생을 내치시고, 말생으로 하여금 재상의 반열에 있게 하시려면 신을 파면하옵소서."라고 직언을 할 수 있는 신하를 둔 세종과 그러한 신하들을 감싸안고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는 그릇이 된 임금을 둔 신하들 모두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이들이었고 또한 행복한 이들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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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 이야기 동물원
심우장, 김경희, 정숙영, 이홍우, 조선영 지음, 문찬 그림 / 책과함께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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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동물원에는 6개의 동물관이 있습니다. 먼저 매표소에 들어서면 저자가 본 '지하철에서 만난 풍경소리'라는 게시판에 '선택의 갈림길에서'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던 양개선사와 한 스님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스님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고 개구리를 구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보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양개선사는 '자연의 질서도 깨뜨리지 않고, 생명도 저버리지 않는 길을 택해야지'라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선문답보다 더 난해하게 느껴지는 대답으로 가르침을 주는 내용인데,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까치의 보은>이라는 설화를 통해서 양개선사의 오묘한 대답의 의미를 짚어가고 있습니다. 까치와 구렁이와 나그네, 그리고 그 나그네를 향한 뱀의 아내의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준 것이 목숨을 내놓고 종을 울린 까치의 희생이라고 본다면 바로 이 설화속에 양개선사가 말하는 자연의 질서도 깨뜨리지 않고 생명도 저버리지 않는 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이 책에 소개되는 귀에 익은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동물관의 여러 동물들을 우리가 어찌 받아들이고 느끼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우리 앞에 던집니다.

 1관 <동물 유래관>에 들어서면 동물들이 그리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광어의 눈이 한쪽으로 몰리고, 메뚜기의 이마가 벗겨지고, 개미의 허리가 잘록하게 된 사연, 뻐꾸가 그리 구슬피 울고, 참새가 종종걸음을 하고, 새우의 허리가 굽게 된 이야기, 또 돼지가 '꿀꿀'거리는 이유 또는 돼지는 꿀꿀이 아닌 '꾹꾹'거린다고 우길수 있는 근거를 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모두가 사람의 세심한 관찰과 상상력이 빗어낸 흥미롭고 그럴듯한 이야기이지요. 2관 <야한 동물관>은 야하기는 하지만 19세 관람가 영화처럼 노골적인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부엌에서 밥을 먹이던 쥐가 남편으로 변신해서 남편보다 진짜 남편같아서 진짜 남편이 쫓겨났다가, 고양이를 데리고 돌아와 자리를 되찾은 진짜 남편이 그사이 쥐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보고 '부인은 쥐X도 몰라봤단 말이오!'라고 항변하는 이야기 속에서는 결국 서생원에게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쥐 뿔도 없는 그 남편과 쥐X도 몰라 보았던 부인의 행실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남종이 족제비에게 거시기를 물린 사연과 아낙네가 게에게 거시기를 물린 사연, 옛선인들이 자신의 부인의 거시기에 토끼나 사슴을 그린 은근히 야한 이야기도 함께 소개됩니다. 3관 <변신 동물관>에는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변신하는 동물들 이야기인데, 게으름뱅이가 소가 된 이야기나 구미호 이야기는 익히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쥐로 변해 콧구멍을 드나드는 이야기, 연모하는 마음이 뱀으로 변하는 상사뱀의 이야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4관 <신성 동물관>은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어 섬김을 받는 동물들의 이야기입니다. 구미호를 잡는다는 삼족구, 옛 탄생신화 뿐만아니라 여러 설화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김받는 백마, 산신령으로 추앙받던 호랑이와 신묘한 능력을 지닌 호랑이 눈썹, 십장생의 하나로 추앙받는 영묘한 사슴에 대한 전시관입니다. 5관은 비루한 강아지와 구백이라는 호랑이의 대결에서 시작하여, 지네와 닭, 고양이와 강아지, 수달과 호랑이 사이의, 서로의 자존심과 목숨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를 소개하는 <동물 대결관>이고, 6관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래도 선인들의 예리한 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설화에 등장하는 이나 벼룩, 지렁이, 거미 등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를 담은 <숨은 동물관> 입니다.

 이리 6개의 동물관을 다 돌고 나오면, 누구나 이 동물원에서 소개된 많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이미 우리가 자라면서 무수히 들어 귀에 익은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낯설지 않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우리가 전래동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그보다 더 전에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머리맡에서 우리를 재우려고 토닥이면서 한번쯤은 어린 영혼에 들려주었을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이리 저자들이 동물원을 짓고 다시 재배열해서 소개하는 동물원 이야기 속 동물들은 그런 단순한 이야기거리가 아닌 우리 조상들이 삶과 지혜와 해학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닌 여러 동물의 생김새와 습성을 고려하여 거기에 인간사의 여러 형상들을 푹 익혀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을 때는, 때로는 재미있는 소일거리로, 또 때로는 한두가지 교훈을 담은 이야거리로만 치부되고 말았던 것들인데, 저자들의 세심한 관찰과 각 설화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을 통해 다시 나뉘어서 전시된 내용들은,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 흘러내리고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동물원에서 만난 동물들의 모습속에는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이 동물원 구경은 단순히 이야기속 동물 구경이 아닌, 결국 수천년의 역사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의 원래 모습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 가끔 잘 만들어진 책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잘 만들어진 책에 대한 기준이나 느낌은 각각이겠지만, 주위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던 옛 이야기들을 이리 멋지게 해석하여, 우리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풍족하게 일굴수 있게 해준 이 책을 읽으며 참 잘 만들어진 책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긴 시간의 인내와 땀냄새가 느껴지고, 사람의 정성과 온기가 느껴지고, 또한 우리 문화와 우리 조상들에 대한 의미있는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참으로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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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집쟁이들
박종인 글.사진 / 나무생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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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쟁이'라는 말자체는 분명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또는 직업에 대해서 고집스럽다는 표현을 듣는다면, 거기서는 아마도 세상살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손해를 많이 본다거나, 세상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출세나 성공에 이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들여다 보면서도 문득 그런 이들의 삶을 생각하였습니다. 어찌보면 고집스럽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외로운 길을 걸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왠지 후자의 표현에는 능동적인 면보다는 수동적인 느낌이 많이 담겨서 그래도 책의 제목대로 그들이 삶이 고집스러운 것이었다는 말에 더 마음이 가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닌 곁길로 들어서서 자기 길을 고집해서 살고 열매맺고, 결국은 주류사회의 인정을 받기까지 그런 삶을 살아낸 23명의 기록-사진과 글-이 바로 이 책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공이나 출세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들의 삶이 결코 주류사회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이들의 삶의 기록이지요. 온몸의 화상을 딛고 교육자로서 불꽃처럼 살다 간  채규철 선생이나 식물원을 만든 한의사 이환용 선생처럼 어디선가에 소개되어 이미 낯익은 이름들도 몇이 있어 반갑기도 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그들이 삶이 소개되면 잠시 신선한 충격을 가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시간이 조금 지나면 찻잔속의 태풍처럼 성공과 출세-특히 물질적인-를 향해 달려가는 사회의 큰 흐름에 묻혀버리곤 한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움이 일곤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철학자보다 더 현실에 침잠하고 실천하는 농부, 다른 장애인을 위해서 하나뿐인 손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구두를 만들어 내는 장인, 이젠 지나버린 유행가처럼 시대의 뒤안으로 사라진 고전음악감상실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여인, 세상으로 출가한 스님, 대를 이어 엿을 만들고 파는 가족, 장애로 비틀린 손이지만 그 손을 이용해 맑은 영혼을 노래하는 청년 시인 등..... 23명의 모습이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먼, 호강하며 사는 것보다는 바닥에 더 가까운 곳의 삶의 모습들입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절망보다는 하루하루에 성실했고, 자신의 삶에 고집스럽게 충직한 모습들이었고, 결국 그러한 자세가 이리 하나의 이야기 꽃을 피워냈습니다. 각기 다른 향기와 빛깔과 모양을 가진 삶의 꽃을 피워낸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맡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 자신의 삶의 향기와 빛깔과 모양에 눈길을 돌리게 합니다. 저들의 향기와 비교했을 때, 나의 삶에서는 어떤 향기가 묻어나오는 걸까.......

 저자가 쓴 글과 사진속에 표현된 각자의 삶의 이야기는 생각만큼 깊이있게 다가오지 못한것도 사실입니다. 이부분은 아마도 기대가 컸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여하튼 좀더 깊이 있는 삶의 이야기와 감동을 기대했는데, 각자의 멋진 삶의 이야기는 밋밋하게 진행되고, 사진속 인물과 풍경에는 그들의 고집스런 모습보다는 일상에 가까운 또는 연출된 것이 훤희 보이는 것들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십여 페이지의 공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 한다는 것의 한계였겠지요. 한권으로 엮어도 모자랄 이야기들이 그들의 삶속에 가득하겠지만, 저자는 그저 그렇게 그들의 삶의 향기를 이야기 속에 슬쩍 묻혀 놓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그들의 인생 깊숙이에 담겨있는 삶의 향기는 결국 독자 자신들이 스스로의 삶속에서 묵히면서 찾아야 할 해답이라는 듯이 말입니다. 결국은 책에서 만난 이들의 삶을 조용히 대면하며 자신의 하루하루의 삶속에서 하나씩 만나며 깨달아가는 것이 이 책을 진정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하게 됩니다. 이 책의 내용을 진정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그들의 삶도, 저자의 필력도 아닌 가치있는 삶을 바라는 내 자신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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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버락 H. 오바마 지음, 홍수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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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지금은 낯설지 않은 이름이지만, 작년 처음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상당히 낯설음을 지녔던 이름입니다. 이제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서 힐러리 클린턴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고, 갈수록 그가 말하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외침이 힘을 얻고 있는 듯 -물론 그가 꼭 이길거라는 주장은 아닙니다-이 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중 누가 이기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거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미국 역사상 진기하고 의미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기 위한 도전이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지요.

 연임을 성공한 대통령의 부인, 르윈스키 사건을 이겨내고 가정을 지켜낸 현명한 여인, 그리고 상원의원으로서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여인.... 힐러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미국인이 아닌 내게도 당연스레 연상되는 생각들입니다. 바다건너 한반도에 사는 촌부에게까지 그녀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관록과 경력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언급되고는 하던 대세론의 대세에 해당되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대세를 막아선 것이 지금 이 책을 집필한 젊은 흑인 후보 오바마입니다. 그의 첫번째 책을 통해서 그가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이혼하는 바람에 나중에 커서야 겨우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하였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전에는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기도 하였고, 교육은 주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시는 하와이에서 받았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시카고의 빈민가에서 사회사업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리 자라기까지 백인과 흑인의 혈통을 물려받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또다른 혼돈스럽고 반항적인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담긴 진솔함과  삶에 대한 자세가 많은 부분 감동을 전해주고, 한 인간으로서의 가슴 아픈 성장사가 오바마라는 인물의 내면 깊은 곳까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공감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치인으로서의 오바마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에게 그가 호소하고 있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드디어 이 책을 통해서 그가 말하는 강대국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강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은 9가지 주제 -공화당과 민주당, 가치 체계, 헌법, 정치, 기회, 신앙, 국경너머의 세계, 가족-에 대한 오바마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물론 추상적인 생각들만 적어놓은 것은 아니고 그가 그러한 가치관과 태도하에 행했던 여러가지 실천이나 정책적인 결정,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 때로는 방송 인터뷰나 신문 기사를 인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오해 받거나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세심한 설명들도 담겨 있습니다. 그의 미국의 희망에 대한 생각의 근저에는 미합중국국이라는 기초를 놓고 헌법을 만든 건국자들에 대한 통찰력있는 이해-대화와 타협이라는-가 깔려 있고, 링컨 대통령이 보인 결단-남북전쟁이라는- 과 타협 또는 관용 - 이 부분은 실제 책의 내용을  읽지 않거나 그의 세밀한 정책을 알지 못한다면 알기 어려운 부분인데, 노예제에 대해서는 단호했지만 미합중국의 통합을 위해 작은 부분에서는 남부의 여러주에 양보를 주저하지 않았던 실용적인 면을 가르키는 듯 합니다- 의 정신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가 아홉가지 주제를 풀어가는 근저에도 자신이 미합중국의 자랑스런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대화와 타협이라는 틀안에서의 통합이라는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즉 이라크 전쟁, 낙태문제, 동성애 문제, 감세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 등 상대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붙들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현 상태의 대안으로,  서로 대화하고 그 가운데서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대립이 아닌 해결책을 찾아가자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이라크 전쟁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리더로서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하고, 그의 말에 충분히 귀기울이고 동의할 것은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는 그가 말하는 모든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에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어찌보면 그의 자세가 뚜렷한 자기주장없이 주변의 의견에 휘둘리는 듯하게 보일수도,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삶을 통해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길에서 보여준 진정성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가 많은 이들에게 분열되어있는 미국을 통합할 수 있으리라는 담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듯 합니다.

 아마 이 책에는 그가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로 경선을 하면서 말하고 있을 구체적인 정책이나 비젼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경제성장률은 목표가 얼마이고, 운하를 건설하니 마니 등의 구체적인 정책목표보다는 가치 지향적인 내용이 가득하다고 해야겠습니다.하지만,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등의 구호들이 주는 공허함을 품고 있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런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그가 삶에서 배운 희망과 절망, 분노와 고통, 기쁨과 슬픔 등을 잊지 않고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자세가 아니라 더디지만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게 있는 공통의 가치를 찾아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그 안에서 잃어버렸던 미국적인 전통의 회복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진정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열매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기에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그의 삶과 그의 정치적 행로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와 자세는 지난 수년과 갈기갈기 찢기고 나뉘었다는 분열된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한 사회가 희망을 품고 또한 그것을 이루어 가는 담대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있는 물음과 답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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