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근초고왕을 고백하다 백제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재발견 1
이희진 지음 / 가람기획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초고왕과 성왕. 삼국시대 -이렇게 부르는 것도 일각에서는 논란이 많은 것 같습니다-의 한 축이었지만 패망한 나라였기에 대부분이 잊혀지고 무시되곤 하는 것이 백제의 역사였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전성기를 이끌고, 부흥기를 이끌었던 왕으로서 낯설지 않게 기억되는 이름입니다. 물론 의자왕과 무녕왕은 다른 의미에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한 나라의 기초를 다지고 부흥기를 이룬 근초고왕이나 성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패자의 나라였던 백제의 희미한 역사를 우리가 얼마나 바로 알고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겨진 역사의 기록이 워낙 빈약하기에 이런 저런 형태로 남아있는 유물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문화 수준과 능력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곤 하는 나라가 백제이고, 실제로 많은 이들은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서 패망한 제국의 애처러운 뒷모습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앞서가던 웅대한 왕국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유물과 상상에 의존해서 하는 평가보다 빈약한 기록이나마 남겨진 역사 기록을 통해서 무시받던 백제의 역사에 최대한 다가서고자 한 이 책의 노력이 더 반가운 것은 바로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 나라의 역사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진지함, 미처 깨닫지 못하던 역사의 이면을 낱낱이 들여다보며 생각할 수 있는 안목이 담겨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최근 방영되고 있는 텔리비전 드라마 '근초고왕'의 내용에 대해서 우리의 백제에 대한 일천한 역사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일 뿐이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근초고왕을 '백제에서 간신히 정권을 잡아 나라꼴이나 갖추어 놓은 왕 정도로밖에 묘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실제로 당시 역사에서 근초고왕은 고구려에 대항해서 남방의 마한과 가야, 왜를 전략적으로 공략하여 자신의 영향력 하에 묶어놓은 전략가적인 면모를 갖추었던 왕이었고, 그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고구려와 함께 한반도의 한 축을 형성한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성왕에 대해서는 우리 대부분이 백제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의 지식이 없음을 지적하면서, 실제로 성왕은 근초고왕이 이루었던 '임나재건'을 앞세워 동아시아 남부의 맹주자리를 찾아 나아갔던 군주였고 그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백제의 중흥기를 이끌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이 두 백제왕의 업적을 찾아나서는데 사용된 기록이 기존의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빈약한 기록들이지만, 기존의 역사서들고 다른 면이라고 한다면 시대와 상황에 대한 고려를 통해서 그 역사 기록이 말하고 있을 법한 이면에 대해서 백제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입장이 실제와 다른 억측을 낳을 수도 있겠지만, 무시되고 생략되어 버렸을 백제라는 나라의 역사에 나름대로 생기를 불어넣고 더 많은 역사적으로 그럴 듯한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기록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절대 아니고, 또한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패망한 나라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잊혀진 역사에 살을 입히고 피를 돌게하는 나름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과 성왕의 전략적인 업적으로 들고 있는 것은 바로 고구려에 대항하여 남방 세력을 통합하여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의 성취를 통해 남방에서의 세력을 굳건히 함으로써 북쪽의 고구려와 대등한 위치에서 백제를 전성기로 이끌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에서 저자가 두 백제왕의 주된 업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근초고왕이 마한을 병합하고 가야에 '임나'를 설치하고 여기에 일본부까지 함께 묶어 자신의 영향력하에 복속시키는 과정과 성왕이 신라와 연합하면서도 '임나 재건'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부분적으로 성공하였던 과정에 대한 것들입니다. 일견 한반도의 남쪽 일부와 일본(왜)를 아우르는 작은 세력권을 형성하였던 것을 대단하게 취급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자의 관점은 강력하게 성장한 북쪽의 고구려에 대항하여 남쪽의 백제가 국제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국력을 키우고 국경을 넘어선 강자가 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근초고왕이나 성왕의 판단은 탁월했고, 그러한 전략을 성공시켜서 실제로 한반도의 강자로서 전성기를 이끌었던 두 사람의 업적은 백제와 당시 한반도의 상황에서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의미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 대해, 백제의 역사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근초고왕의 요서나 요동 경영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는 점이나 백제가 전성기에는 더 넓은 세력권을 형성한 해상왕국이었을 것이라는 사실 등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백제의 전성기의 기반이 되었던 세력의 역학관계에 대한 진지하고 세밀한 성찰은 백제의 역사만이 아니라 삼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임나'의 실체나 신라와 백제의 명운을 가른 것으로 평가되는 관산성 전투의 실체 등에 대해서 새로운 이해를 더할 수 있었던 것 등도 유익한 대목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고 했던가? 역사와 유물속에 언뜻언뜻 비추이는 사라진 백제의 흔적은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었다고 말하는 듯 하지만, 실제 우리가 배운 역사속의 백제는 한반도의 남서부를 700여년간 지배하고 있다가 쇠망한 나라의 쇠락한 모습 뿐인 듯 합니다. 누군가는 역사를 논하면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멋진 표현으로 역사의 기록을 옹호했지만, 백제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현재의 내가 과거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곧 승리한 자 또는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한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으니, 결국 쇠망하여 살아남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진 왕국과 문화는 그 영광과 찬란함에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동안 흔적마저도 스러져버리는 것이 당연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과거의 영광과 찬란함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수백여년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승자의 역사 속에는 그 영향의 흔적보다는 새로이 발전시킨 자신의 영광과 찬란함이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일 터이니 이 또한 과거의 쇠망해버린 왕국의 영광과 찬란함을 담은 이야기가 들어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이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대한 대륙을 향해 웅대한 기상을 펼쳤던 고구려,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의 역사에 가려져 삼국의 역사 가운데 유독 왜소하게 쪼그라진 작은 왕국, 그런 식의 백제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역사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의 비운을 그대로 느끼게 만듭니다. 금동대향로의 찬란함, 익산 미륵사지터의 웅대함, 그리고 역사의 구석구석에 조그맣게 기록되어 전해져 오는 중국 대륙과 일본을 아울렀던 해상왕국의 흔적들은 백제가 그런 왜소한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공적인 역사의 마당에서는 여전히 백제는 한반도의 남서부에서 잠시 번영하다가 사라진 작은 왕국의 역사일 뿐이니 말입니다. 

 이 책은 SBS, 대전방송 역사다큐멘터리 <대백제> 5부작의 방송 내용을 정리 보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단순하게 받아 들인 역사 속의 백제의 모습이 아니라, 찬란한 유물속에 담겨있는 '동아시아 최고의 선진 문물을 가진 문화강국'으로서의 백제와 역사서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까지 진출한 거대한 고대' 왕국으로서의 백제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비록 잊혀져 버리기는 하였지만 또한 역사에 흔적이 남겨져 있음을 기대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희미하게나마 흔적으로 남은 백제의 참모습을 찾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서문에 이러한 작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 고대사에 대한 사료 자체가 거의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과 '몇몇 남아있는 사료와 역사서들은 ..... 너무 어렵기 때문에 현대적인 -적절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백제가 우리에게 그리 왜소하게 인식되고 말았던 이유이기도 할 듯 합니다. 어찌보면 역사의 기록보다는 무령왕릉이나 미륵사지의 석탑의 발굴, 금동대향로의 발굴 등을 통해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 백제의 유물들이 우리에게 더 강력하게 백제라는 나라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작고 왜소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일깨우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유물들이 그 찬란함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승리자 또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에 머물러 백제의 역사를 그리 작게만 그리지 말고, 지속적으로 발굴되는 유물들과 백제인 자신의 기록과 현재까지 남은 흔적들을 꾸준히 찾아서 고대 왕국 대백제 모습을 웅대하게 그려보라는, 자신들의 비운을 위로하고 참모습을 찾게 도와달라는 초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조각조각 흩어진 역사의 조각을 연결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겠지요. 

 책의 내용의 바탕이 된 것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방송이기에, 아마도 역사적인 정확성이나 합의된 내용보다는 최대한 개연성이 있는 강력하고 찬란했던 백제의 모습에 대해서 그리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대 백제의 영토와 영향력에 대해서, 그리고 각종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서도, 또한 백제가 남긴 유물과 그 영향력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되는 일본의 기록과 문화와 천황가의 역사들에 대해서도, <대백제>라는 제목에서 걸맞게 어떤 기록이나 사실들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개연성을 가지고 백제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백제 역사의 실체에는 미처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리고 공적인 역사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왕국 백제의 광대함과 찬란함이 분명 숨겨져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을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이 더 지나 광활한 왕국으로 여기저기 기록된 백제의 모습을 환기시키는더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고, 또 다른 기록들을 더 찾을 수 있다면 그동안 우리가 백제의 역사에 대해 그리했듯이 이 책의 내용도 대백제의 실제 모습에 그렇게 관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이러한 기대가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의 내용이 전문적인 역사서로서의 세밀함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읽는 이에게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백제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남긴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2
김호동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화 시대'나 '지구촌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일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지구상의 가고 싶은 곳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누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계가 밀접하게 얽혀서 돌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현재를 사는 누구라도 그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어렵지 않게 인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누구나 당연시하는 그런 사실들이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생각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이리 당연하게 여겨진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님을, 그런 사치는 과학과 통신과 교통 수단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시간과 공간적으로 '하나의 지구' 또는 '하나의 세계'라는 개념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인터넷이나 미디어의 발전,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의 발전이 우리에게 안겨준 이동이나 정보 전달의 신속함에 함께 묻어오는 현실감이 중요한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생활 환경이 자연스럽게 그런 개념에 녹아들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세계사라는 측면에서도 그런 시간과 공간 개념의 확장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립된 각 지역의 개별적인 역사나 문명을 모아서 퍼즐 맞추기 식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세계(사)가  발전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고립된 각 지역이 '상대적인 고립성을 극복하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사)'를 이루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시기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이전과 그 이후는 분명 인류 역사에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앞에서 언급한 통합된 세계(사)의 시작을 몽골제국의 출현에서 찾고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수많은 나라와 문명, 제국들이 명멸하였던 역사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즉 유라시아 각 지역이 그 이전의 상대적인 고립성을 극복하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몽골제국의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견해에 대해, 실크로드와 몽골제국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몽골제국 영향하에서 이루어진 세계지도와 세계사의 출현 과정을 독자들에게 차분히 설명하며 설득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장에서는 실크로드를 '동서간의 단순한 교역로'서의 단선적인 면에서 파악하지 않고, 동서간의 교류와 더불어 '남북으로 유목민과 농경민 사이에 이루어진 역동적인 관계'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사 전개과정의 한 축으로서의 유목민-일반적으로 '군사적으로는 강력했지만 문화적으로는 후진적'이라고 여겨진-에 대한 정당한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칭기스 칸에 의한 몽골제국의 탄생과 응징과 약탈을 주로하는 유목국가의 성격에서 벗어나 초원지대와 농경지대를 정복하여 지배하는 제국으로의 변화, 그리고 제국의 급격한 팽창의 결과로 빗어진 제국의 분열 -저자는 전통적인 몽골제국의 4개의 칸국으로의 분열이라는 관점을 수용하지 않고 각 울루스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긴 했지만 '대몽골 울루스'라는 제국적 연대감과 일체성을 보존하고 있는 울루스들의 복합체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여 단일한 정치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동서 대교류를 '팍스 몽골리카'로 표현하면서, 그러한 방대한 교류의 근간이 된 역참제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민족을 등용하고 각 민족의 문화를 인정하고 소통을 위한 각 언어와 문자에 대한 사전 편찬 등을 통해서 유라시아 지역의 여러 전통들을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은을 근간으로 한 화폐경제의 통합하여 원거리 교역과 여행이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마르코 폴로, 랍반 사우마, 이븐 바투타 등의 동양과 서양으로의 대여행은 상대지역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4장은 세계사의 시작으로서의 몽골제국을 논하고 있는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등을 이루어 낸 '대항해 시대'의 시작은 팍스 몽골리카라는 몽골제국에 의한 동서 대교류에 편승하여 나타난 마르코 폴로 등의 '대여행 시대'에 의해 이루어진 세계관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공간적인 차원에서 세계관의 확대를 의미하는 정확한 세계지도의 출현과정과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세계관의 확대를 의미하는 라시드 앗 딘이 편찬한 '최초의 세계사' <집사>라는 책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유럽 또는 서양 중심적인 세계의 역사를 배우고 그러한 시각에서 씌여진 세계사를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는 그리스와 로마제국, 중세의 유럽과 신대륙의 발견, 근대의 산업혁명, 1차 및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근간은 모조리 서양 중심의 역사가 차지하고 있고, 중화를 기치로 삼는 중국의 역사마저도 세계사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변두리로 생각될 정도입니다. '역사는 승리한 자 또는 강한 자의 기록'이라는 냉정한 사실을 생각하면, 비록 한때 유라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현재는 겨우 나라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몽골제국의 역사를 아무도 세계사의 중심에 두고 합당한 대우를 해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자의 세계사의 시작으로서의 몽골제국의 역사에 대한 이 책의 고찰은 그리 경시되고 왜곡되어 온 인류 역사의 숨겨진 진실의 한 조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저자가 말한 모두 다가 사실인 것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또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시각을 잃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더 많이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유럽을 질적으로 도약시켰지만,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던 정화 함대의 원정은 아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세계사의 중심축을 유럽에 넘겨주고 말았던 엇갈린 운명 또한, 몽골제국의 지배와 제국의 소멸 이후 출현한 유목국가들과의 충돌과정에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륙지향적인 정책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다는 분석은 몽골 제국이 남긴 세계사의 가장 큰 명암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링컨
프레드 캐플런 지음, 허진 옮김 / 열림원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한 세기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은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의미심장하고 상징적인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 역사적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고통을 받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다가왔습니다. 긴 예속의 밤을 끝내는 환희의 새 아침으로 다가왔습니다.  - 1963년 8월23일, 마틴 루터 킹

 젊은이와 노인,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흑인과 백인과 히스패닉과 아시아계와 미국 원주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든 미국인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미국은 붉은 주 (공화당 우세 주)나 푸른 주 (민주당 우세 주)의 집합도 아니고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체도 아니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냈습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 언제까지라도 늘 우리는 미합중국인 것입니다...... 미국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었을 때 링컨이 말했듯이,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이고 동지입니다. - 2008년 11얼 4일, 미국 제44대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의 당선 연설에서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을 두고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의 산물이라거나 그가 노예해방 자체보다는 미합중국이라는 중앙집권적인 연방주의를 유지하는데 정치적인 목표를 두었다는 등의 논란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가 이룬 남북전쟁의 승리와 노예 해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은 위에서 인용한 글들처럼 미국이라는 역사속에 고스란히 살아서 숨쉬면서 굴곡된 역사 속에서도 꾸준한 인권신장을 이루며 강대국을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은 현재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정확히는 혼혈인-으로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만든 견고한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왕성한 독서욕과 지식욕을 바탕으로 시골(?)의 변호사에서 주의회 의원, 연방하원 의원, 그리고 연방상원 의원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입지전적인 일대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훌륭한 본을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이 책도 링컨 대통령의 그런 삶을 다룬 책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여러 책들이 말한 정치가나 입지전적인 위인, 또는 신앙인으로서의 링컨에 대해서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링컨 대통령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문학과 언어라는 측면에서의 그의 삶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가 지독히도 가난한 삶을 극복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여러 좌절스런 상황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성취한 원동력,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 해방이라는 위대한 일을 이루는데 바탕이 되었을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의 근원은 글읽기를 즐기고 또한 글쓰기를 즐겼던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길러진 '문학적 감성과 창의력'이 그 바탕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손에 들어오는 책은 모두 다 읽고 외우기를 즐겨했던 소년은 자라면서 셰익스피어를 만나고, 번스와 바이런을 읽고, 스스로 시를 쓰고 에세이를 쓰면서 자신만의 정직하고 다듬어진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길렀고, 정치가로서의 자신의 글과 연설문에 그러한 능력을 훌륭하게 담았음을 보여주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링컨 대통령의 위대한 삶의 바탕에는 바로 언어 - 올바르고 정직한 말- 가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읽기와 글쓰기와 말하기라는 측면에서의  링컨 대통령의 일생을 일관되게 추적하고 있다는 점, 그러한 논점을 통해서 링컨 대통령의 또 다른 면모를 읽는 사람들에게 설득하였다는 점, 그리고 현실에서의 정직하고 잘 다듬어진 언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다른 링컨 전기나 책들과 다른 신선함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과 글이라는 한가지 주제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서 그러한 주제에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마련인 한 사람의 삶을 너무 정형화시키려고 했다는 느낌이 드는 면이 있고,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저자는 링컨 대통령을 이신론자 또는 성경이나 하나님을 결코 믿지 않은 단지 자신의 정치적 성취를 위해 신앙을 이용한 사람 정도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인용되 글들을 대하다 보면 저자의 의향이 투영된 상당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읽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링컨 대통령의 삶이 현재 우리 대통령의 삶과 닮은 면이 있다는 면에서 관심이 갈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말이 권력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정직과 진실보다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런 저런 속임수와 말장난으로 얼버무려지곤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모름지기 한 사회를 통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능력으로서의 말의 정직성과 문학적인 감수성에 대한 모델로서의 링컨 대통령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 마더 데레사 탄생 100주년 기념 전기
레오 마스부르크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인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마더 데레사..... 

 이젠 이 이름에 다른 어떤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성녀,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노벨상 수상자, 사랑의 선교회의 창립자 등등 많은 수식어로 이 이름을 꾸밀 수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는 그냥 Mother Theresa라는 이름만으로도 그러한 많은 수식어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자신의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품안에서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소중함을 절절하게 느끼곤 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사람의 본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름도, 그녀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알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젠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또는 방송이나 여러 매체 등을 통해서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에, 더욱더 그녀의 삶에 담겼던 가치가, 그녀가 베풀었던 사랑이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지나간 과거만을 더듬을 수밖에 없기에 기억속의 그녀의 삶은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각인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지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마더 데레사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들과 책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은 데레사 수녀의 일생을 담은 전기라기 보다는, 그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쓴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기라는 것이 한 사람의 태어남과 자라는 과정, 뜻을 세우고 일을 이루어가는 일생의 사건들을 나름대로의 체계에 의해 기록한 공식적인 성격의 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격식의 중요함보다는 데레사라는 한 사람의 섬기고 보살피는 삶에 담긴 지칠 줄 모르는 사랑과 따뜻함에 초점을 맞춘 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용에는 딱딱하거나 틀에 매인 이야기들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데레사, 오로지 예수님만을 앞서 세우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의 삶이 온전히 하느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에 자족해하던 한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를 바라보는 글쓴이의 존경과 감사와 경탄이 그녀의 삶을 더 따뜻하고 의미있는 사랑으로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 자체가 곁에서 그녀를 보좌했던 신부였던 글쓴이를 그리 감화시켰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것 같습니다. 스물 세편의 이야기 곳곳에는 기차여행 중에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강렬한 부르심을 체험하고,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살기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와 인도를 완전히 신뢰하기로 결심하고 나섰던 육체적으로는 갸날프게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위대한 걸음걸이를 내디뎠던 데레사 수녀의 삶속에 담긴 우리-특히 신앙인들-를 향한,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온화하지만 강렬한 하느님의 메시지들이 담겨 있습니다. 데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하여 읽는 이들에게 전하는 여러 이야기-또는 가르침 또는 깨우침-들은 메마른 이론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제 삶속에서 생동감 넘치게 살아있었던 그녀의 삶을 훨씬 친밀하고 가깝게 느끼게 해주고, 곁에서 직접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은 데레사 수녀의 인간적인 면모 또한 진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아마 이러한 형식의 기록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의 제목 '마더 데레사는 살아있다'처럼 그녀의 모습은 지금 볼 수 없지만, 데레사 수녀가 행한 삶과 사랑은 여전히 그녀을 알고 배우고 함께 했던 수녀들과 사람들을 통해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속에 살아있는 데레사 수녀의 모습을 통해서, 또한 더 궁극적으로는 그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풀고자 했던 사랑을 통해서 더 많은 버려진 영혼들이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으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이룰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을 하느님의 연필이라고 여겼던 데레사 수녀처럼, 믿는 이된 나 역시도 하나님의 연필이 되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행할 수 있기를 ..... 

 -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는 정말 쉬워요. 저 아래를 보세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하는 일도 쉬워요.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니까요. 하지만 하느님의 겸허함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p72 

 -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거기 담느냐가 중요합니다. p85 

 - 여러분과 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시무시한 겸허함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너무 위대하고 놀라워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용해서 그분의 '위대함'을 보여 줍니다. 바로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단지 관들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흘러가게 하면 됩니다. p138 

 -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를 발견하기 위해 콜카타까지 올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분이 있는 바로 거기에, 그리고 아주 자주 여러분 자신의 가정 안에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서 사랑하세요. 그들이 여러분 삶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사랑의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 말이예요. p176 

 - 신부님, 하느님은 제가 성공하도록 소명을 내리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제가 충실하도록 소명을 내리셨죠. p219 

 - 신부님 우리가 하는 일이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은 그런 일을 하면서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p226 

 - 저는 천국이 어떨지 확실히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어서 심판을 받을 시간이 되면, 하느님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얼마나 많이 좋은 일을 했는지 묻지 않으시고, 얼마나 많이 사랑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2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