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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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혹은 자유

  아침이 밝아오는 동편 하늘 혹은 해질녘 서쪽 하늘을 물들인 빛의 산란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바늘 하나 꽂을 곳 없는 세상에 태어나 반복적인 일상과 힘겨운 생존의 몸부림. 모두 같은 꿈을 꾸는 세상은 불안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빛깔의 무지개를 그려보지만 만만치도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박민규는 이렇게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는 신현림에 말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몇 안 되는 지구인처럼 보인다. 스스로를 ‘무규칙이종소설가’로 규정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우리는 그의 일상과 내밀한 정신세계를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소설들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작가를 이해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한 개인에 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의 소설을 조금 더 잘 읽어보려는 의도이거나 작가가 말하는 세상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개연성 있는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문법임에도 불구하고 불가해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소설을 만나면 독자들은 불편하거나 극단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일탈 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명명된다. 현실 밖의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능적인 욕망이 아닌가. 현실에 발 딛고 비상(飛翔)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그 세계를 경험한다. 지극히 이성적인 일탈 혹은 몽환적 자유.

  박민규의 소설들은 ‘틀’을 버린다. 2010년 34회 이상문학상작품집 『아침의 문』은 ‘이상(李箱)’의 문학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이상문학상’ 수상작가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수상했던 어떤 작가보다 이 상에 가장 어울리는 수상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의 소설을 읽어 온 독자들은 그가 앞으로도 일탈의 환상과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일상의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힘들여 쓰지 않는 그의 소설을, 어깨를 긴장시키지 않는 그의 문장을 킥킥거리며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희망과 환타지 너머

  수상작 ‘아침의 문’은 자살사이트에 만난 사람들의 동반자살 실패가 시작이다. 물론 죽지 못한 한 사람이 문제다. 생을 긍정한 사람만이 죽을 수 있다.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삶의 끝에서 만나야 할 죽음을 꿈꾸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소설은 주제는 물론 그 이유를 찾는 데 있지 않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자살은 삶의 그림자 놀이?

  사람들은 오늘을 사는 이유가 내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짓이다. 외면하고 싶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때때로 우리의 목을 조른다. 아무생각 없이 매일매일 행복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박민규는 육하원칙에 따라 주인공의 일상을 명백하게 밝히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직업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비정규직은 아닐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채 불안하게 흔들리는 존재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이 생을 살다가 사라진다. 생명의 탄생만큼 신비한 죽음의 세계는 늘 우리의 곁에 머물러 있다. 외면한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박민규는 죽음의 입구에서 탄생을 바라본다. 그것은 생을 긍정하기 위한 상징이 아니라 비루한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위안이다. 자선 대표작으로 뽑은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가 바로 이 일상의 권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희망 없는 오늘을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민규는 희망 없는 희망은 가능한지 묻고 있다. 보이지 않는 혹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탈을 시도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차라리 눈물겨운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희망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위로와 공감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밖의 것들은 또 다른 소설을 통해 확인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시작이라고 소설 쓰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박민규의 문학적 자서전을 읽으며 ‘ㅋㅋㅋ’. 꿈없는 청춘, 희망 없는 일상, 3류 들의 고통을 즐겨 보여주는 박민규에게 희망이나 환타지가 아니라 그 바닥을 보여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어설픈 사회소설이 어울리지 않는 박민규에게 우리는 적나라한 현실과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기분이 든다. 조금 더 철저하게 혹은 더욱 더 환상의 세계를 보여 달라고 조르고 싶은, 박민규의 힘을 믿고 싶다. 우리에게도 박민규는 필요하다. 거기 그대로 머물러 달라.


주목할 만한 소설가들

  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단편 중 ‘통조림 공장’과 윤성희의 ‘매일매일 초승달’은 수상작으로도 손색없다. 소설적 완성도 면에서 이미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 듯 싶다. 독자들의 개인적인 취향이 있겠지만 소설의 다양성, 실험성을 고려하더라도 두 작품은 단연 돋보인다.

  전성태의 ‘이야기를 돌려드리다’는 이야기의 힘 즉 서사의 본질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문학적 감동을 선사한다. 김중혁의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의 실험성은 커다란 울림을 주지 못했고 손홍규의 ‘투명인간’과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는 일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평범한 단편으로 읽혔다.

  이상문학상이 갖는 권위에 눌려 호기심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평소 우리 소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통해 다같이 즐기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말에 방영되는 텔레비전의 각종 시상식의 절반만큼이라도 문학상과 책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삶은 얼마쯤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모든 작가들의 건투를 빌빈다.


100207-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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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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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온전한 사랑이라면, 환경과 거리상의 장애가 충분한 애정을 공급하는 걸 방해하여 애정의 굵은 선이 가는 선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말라비틀어진 상태에서도 감정의 동맥은 사랑을 끊임없이 담아 심장으로 옮기는 법이다. 그게 제대로 된 사랑의 운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 적어도 감정의 본질만은 손상되지 않는 바로 그런 사랑. - 『사랑에 관한 연구』(P. 38),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여자 그리고 사랑

  사랑은 본질적인 자아와의 만남이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를 벗고 내 존재의 심연과 마주하는 일이 사랑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근본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취향이 아니라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위태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소설가 정이현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통해 본능적으로 현실에 적응적인 여성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들의 이기적 욕망과 계산적 사랑에 대한 냉소는 작가가 만든 허구가 아니라 우리들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자화상일 지도 모른다. 김연수도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통해 사랑과 현실 사이의 비루함을 경쾌하게 보여준 바 있지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를 통해 사랑과 이상의 보편성에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수많은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랑은 이야기의 가장 풍요로운 주제가 되었으며 인간 삶의 가장 큰 바탕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물론 그러하다.

  고종석은 소설을 쓰고 시를 읽어주고 현실을 분석하다가 때때로 언어의 정밀함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고종석의 여자들』은 두 가지를 유의하며 읽어야 한다. 하나는 고종석이며 또 하나는 물론 여자들이다. 그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자이노파일(gynophile)은 여성애호 혹은 여성취향 정도의 뜻으로 해석된다. 고종석의 글들을 읽어온 독자라면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책을 읽으면 되겠지만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오해없이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또 한 하나는 여자들이다. 한 두 명도 아니고 34명의 여자가 고종석의 여자들이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가 들려주는 여자 이야기는 누구나 흥미 있게 들을 만하다. 취향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여자와 사랑, 참 어렵다.


섹스(sex) 혹은 젠더(gender)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와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는 이 책을 이해하는 관점이 된다. 여성은 남성보다 현실적이지만 이성적 사랑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그것은 우열과 선악의 가치 판단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차이일 뿐이다. 통상적으로 유전적 본능과 심리적 진화의 결과라고 본다. 하지만 사회적 성역할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교육과 사회화의 과정에서 여성으로 길러지고 내면화되는 여성성은 올가미가 되어 순종과 억압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섹스와 젠더의 차이는 고종석이 말하는 자이노파일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고종석은 생물학적인 섹스가 아니라 젠더로서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때때로 이분법적 구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자로 길러지는 과정에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시대 현실, 사회적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이었던 과거에는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이 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바로 그런 여성의 대표라고 볼 수 있다. 혁명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과 한없이 여성이 되고 싶었을 그녀의 삶에 대한 고종석의 연민어린 시선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도 작가의 관심은 여성성과 사회적 존재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여자들이 다수 등장한다.


고종석의 여자‘들’

  한 여자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을까. 이 책에 아니 고종석에게 선택받은 서른 네 명의 여자들은 흥미롭게도 윤심덕과 최진실을 제외하면 대중예술을 통해 환상과 꿈을 심어준 여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노래와 춤 혹은 연기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 여자 사이에는 그만한 간극이 있는 것일까. 특이한 두 명의 이야기는 ‘자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고종석의 여자들은 역사 혹은 사회적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여자들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호기심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책에 소개된 여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익숙치 않은 여성들도 있지만 측전무후, 임수경, 오프라 윈프리에 이르기까지 생존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자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시대와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삶에 대한 열정과 뚜렷한 신념을 가졌던 여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삶은 오히려 간결하고 단순하다.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를 뿜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인 능력의 유무를 떠나 삶의 자취에 향기가 묻어나고 열정의 깊이에 감탄할 만한 여자들이 소개된 책이다.

  또한 이 책은 그녀들을 바라보는 고종석의 눈을 빌려보는 데 의미가 있다. 고종석의 선구안과 문체는 고종석을 이해하고 그녀가 선택한 삶을 긍정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책이 작가의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객관적 시선과 보편적 정서를 끌어 낼 수 있다면 읽을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수필 형식의 짤막한 글들이 완성도 높은 전체 구성을 염두해 둘 수는 없다. 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책이 가진 한계가 서른 네 명의 매력적인 여자들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책의 말미에 고종석의 친구 황인숙과 강금실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어 반갑기도 했고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에 공감하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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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로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8
미하일 숄로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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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현실 사이 - 사회주의 리얼리즘

  삶의 진실에 가장 근접한 갈래는 소설이다. 인간 삶의 정수를 담아내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문학은 철학과 역사와 더불어 인류의 지혜를 전수한다. 다양한 인간 삶의 모습은 물론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문학은 어떤 학문적 성과나 객관적 사실보다 세계의 진실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세월을 이겨낸 문학의 고전들은 인류의 과거를 아프게 드러내며 객관적 진실을 보여준다. 모든 작가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몸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통찰력은 위대한 작가들이 가진 공통된 특징이다.

  객관적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사실주의(寫實主義realism)는 이상주의적 계몽주의와 환상적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로 19세기에 탄생한 문예사조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가 탄생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정점에 이른다. 소설은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문학은 현실이며 현실은 그대로 문학이 된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 위대한 고전은 이런 이야기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문학적 진실을 전해준 작품들이다. 러시아 혁명과정과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으면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이념이란 무엇일까.

  숄로호프의 소설은 우리에게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표피적 사실이 소설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 단편들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우리의 이야기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힌다. 이념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혹은 형이 동생에게 총을 겨누는 현실을 우리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사회적 통합을 방해하고 있다. 상식과 이성으로 풀어나갈 문제들이 색깔론으로 덧칠되고 좌우 이념 대립과 무관한 문제까지도 감정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숄로호프의 소설은 과거의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아픔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문학은 여전히 현실의 가장 고통스런 부분을 드러내고 작가는 그 고통의 원인과 상처를 극적으로 기록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숄로호프는 작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작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문학을 통한 미적 경험은 단순히 정서적 아름다움과 안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와 사회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느껴져야 한다. 그래서 한 권의 소설로 한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책을 고전이라 부를 수 있다. 


러시아, 아물지 않은 20세기의 혁명과 상처

  1917년 11월 7일 혁명에 성공하여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은 1992년 1월 1일 독립국가연합으로 해체된다.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붕괴한 것이 아니라 농업 국가였던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보여주었고, 현실적으로 자본주의의 승리를 증명해주었다. 20세기를 붉은 혁명의 성공으로 출발하며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으나 100년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반성과 고찰은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니다.

  숄로호프는 고향 돈 강 유역 카자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냈다. 참혹한 현실, 민중들의 삶이 숄로호프의 관심사였다. 고향의 이야기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6. 25를 통해 양산된 수많은 전후 소설들을 떠 올려 보자. 이념의 대립과 갈등 자체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비극을 설명할 수 있을까? 숄로호프도 가족과 고향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의 운명’, ‘배냇점’, ‘타인의 피’ 등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비극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이념과 전쟁으로 인한 모순과 비극 때문이다. 러시아 민중과 인류 전체의 비극이기도 한 20세기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읽어야 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들의 아픔은 역사적 친연성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불편한 감정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슬픔’에 대한 보편성 때문이 아니라 길고 지난했던 역사의 인과관계 때문이었다. 그 고리는 여전히 우리들 현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혁명은 성공했으나 좌절했고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숄로호프의 단편선』을 통해 전쟁과 상처, 야만과 폭력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뻔 한 대안을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 넓고 깊은 휴머니즘이 불가능하다면 숄로호프의 소설은 다큐멘터리 기록 필름에 불과할 것이다. 여전히 폭력과 광기에 사로잡힌 시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21세기의 현실을 돌아보자. 숄로호프의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 지도 모르겠다. 고전은 현실을 비추는 등불이다.


100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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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창비시선 309
이문숙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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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이 꾸준히 발행되고 팔리는 거의 유일한 나라, 아직도 출판사마다 시인들이 활발하게 시집을 찍어내고 고정 독자층이 확보되어 있는 특이한 양상을 보이는 나라 대한민국. 그것은 아마도 민족문학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근대문학 이전에 고전문학은 한시를 중심으로 시조와 가사가 주종을 이루었다. 시는 항상 지배층의 지적 우월성을 표현할 수 있고 학문적 깊이를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17,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이 창작되었지만 저급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소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내용과 어렵지 않은 전달 방식을 가지고 있다. 시가 가지고 있는 고급스런 이미지는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진 문예사조의 부침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그 위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문숙이라는 시인은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으로 처음 만났다. 시집을 읽는 동안 시가 가지고 본질적인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시의 기능과 효용에 대한 쓸데없는 상념들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이문숙의 시는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게 주변을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기교도 없고 특이한 발상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개성 없는 말장난이라는 뜻은 아니다.

악어 쇼

아무도 없는데 돌아보니
악어 한 마리 입을 벌리고 있어

빨간 타이츠를 입은 소냐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활짝 폈다가
주먹을 만들어
벌린 입속으로 집어넣어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불을 한입 달게 먹고는
또다시 울퉁불퉁한 이빨 사이로 넣어

무릎을 꿇고 천천히 윗몸을 들어올려
잘 휘어진 등 아래로
긴 머리카락을 몇 번 흔들다가
머리를 악어의 커다란 주둥이 사이로

나도 그 속으로 펜을 쥔 주먹을 넣었다 뺀다
(주먹은 잘라지지 않고)
나도 매일 부글거리는 머리를 넣었다 뺀다
(머리는 동강나지 않고)

악어가 입을 다물어 이빨들이 맞물리지 않는 한
악어 쇼는 계속되리라

포만한 악어는 절대 사냥감을 찾지 않는다
벌어진 입을 억지로 닫아주기 전에는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좋은 시가 아니다. 적절한 비유와 다양한 의미를 증폭시키는 상징은 시 읽는 즐거움이다. 이 시집의 서시 ‘악어 쇼’는 현실의 변주곡으로 읽힌다. 어쩔 수 없는 ‘쇼’는 계속된다. 두려움과 공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쇼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그것을 즐기고 박수를 칠 것이다.

  견고한 현실의 벽을 두드리는 듯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관찰하는 시인의 눈.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를 듣게 된다. 낯선 언어의 진경이 아니라 익숙한 말들의 투박한 이야기.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움직일 때마다 지팡이 땅을 그러쥔다
그 옛날 논골이었다는 이곳
논으로 흘러들지 못한 물소리 저만치 하수구로 흘러간다

그 남자 한 발짝을 들어올리는 동안

여기엔 그 옛날 작은 다랑이논들
물소리에 귀를 열어뒀으리라
왼손이 뒤틀리고 주먹 쥔 듯 오그라진 손을 치켜들고
그 남자

이제 다랑이논들은 노인정에 모인 그들의
이마에나 굵은 굴곡으로 남았다

겨우 그 남자 몸을 일으켜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지팡이는 땅으로 뿌리를 뻗고 새순 한 가지
쳐올릴 수도 있었으리라

갑자기 정자 기둥에 붙은 괘종시계가 울린다
무거운 시계추가 왔다갔다한다

치주염을 앓는 누런 이빨의 구름들
가는 귀먹은 노인들의 귓속으로
보공(補空)하듯 쑤셔넣는다


  쉽고 가볍게 읽히는 것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부호들의 나열도 아니다. 그녀의 시는, 우리의 삶은 어쩌면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찰나의 삶과 죽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시계추는 끝없는 왕복운동을 하고 모든 존재는 소멸한다. 그렇게 숨가쁜 세월이 지나가는 어떤 순간, 우리는 겨우 한 걸음을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아,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시 그리고 밤이다. “몇 번이라도 좋다. 끔찍한 생이여, 다시 한 번!”

그 많은 구두들은

어디로 갔을까
부서지는 바닷물에 쓸려갔을까
쏟아지는 흙탕물에 떠내려갔을까
진열장에 놓여 있던 가닥가닥 끈으로
발을 감싸는
양 창자를 꼬아 만든

삶이 막막할 때마다
숫양이 머리를 파묻고 울거나 애무도 받았을

(공원에서 여자의 배를 베고 남자가 누워 있다)
(여자의 보드라운 배를 베고 남자가)
(오목한 배 위에 머리를 대고)
(구불거리는 창자에)

그 발에 딱 맞는 구두들은 어디로 갔을까
동그란 뒤꿈치 뾰족한 발가락 감싸던 그 화려하고 보석 장식이 많은
구두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카메라가 붙잡은 물 위를 둥둥 떠내려가는
구두 한짝

예쁘고도 사나운
벗어 철썩 사내의 뺨을 갈기던
구두들은
그 폭약의 여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



10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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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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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시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느니라.”(6장 옹야편) - P. 34 


고전, 어떻게 할 것인가 ; 원전과 2차 저작

  책읽기에도 분산 투자가 필요하다. 신간의 숲을 헤매다 보면 고전을 놓치기 쉽다. 현재를 말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고전은 그윽한 향을 풍긴다. 시간을 견뎌낸 책, 고전은 가장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다. 실용적 목적만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역설적으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 대다수 신간은 고전에 대한 재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으로 전체를 통찰하고 싶다면 일단 고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안전한 책읽기는 검증된 고전만을 골라 읽는 방법이다.

  그러나 고전은 쉽게 도전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견고한 체제와 정교한 내용이 어우러져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 고전이다. 또한 고전은 기본적인 개념에서 촌철살인의 문장 하나에 이르기까지 칼날처럼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는 책을 일컫는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고전으로 수렴된다. 피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고전은 책읽기의 정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한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고전읽기를 통해 얻고 있다면 이미 고수의 길에 접어든 독서가이다.

  먼저 접근 방법을 살펴보자. 철학과 동양 고전의 경우 독학이 어렵다. 원전을 해석하는 것은 일반인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한문 전공자가 아니면 동양 고전의 원문을 읽을 수 없고, 철학 전공자가 아니면 철학적 용어와 개념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2차 저작을 통해 가볍게 몸을 풀고 준비 운동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고전이다. 지난 시대의 책, 어렵고 딱딱한 책,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는 고정 관념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클래식’ 시리즈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배병삼이 풀어 쓴『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는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적절한 2차 저작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시리즈의 여러 가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논어’를 읽어보자.

  2차 저작물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게 된다. 첫째, 원문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고 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인용과 편집이 이루어진다. 둘째, 원전의 뜻이 훼손될 수 있고 주관적 해석에 따라 오독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셋째,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내용에 집중하다보면 전체를 통찰할 수 능력을 얻을 수 없다. 넷째, 나만의 원전 읽기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이밖에도 2차 저작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는 더 지적할 수 있다. 고전의 해설서에 해당하는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자와 편저자의 관점이다. 앞서 언급한 전제 조건을 이해한 상태에서 2차 저작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원전을 읽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의 고전을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낸 여러 권의 2차 저작물을 참고한 후 원전에 접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의 2차 저작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각 출판사의 고전 읽기 시리즈를 참고해서 청소년에게 적합한 해설서를 골라보자.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논어’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쉽게 풀어쓴 고전,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를 통해 청소년들은 친근하고 재미있는 고전 읽기를 시작할 수 있다. 2,500년 전의 먼지 묻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배병삼은 논어 20장의 각 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가려 뽑아 알기 쉽고 친절하게 공자님의 말씀을 풀어낸다. 청소년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고전을 위해 어설픈 해설이나 단순한 요약본은 사라져야 한다. 진지하고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방법을 찾아 고전의 즐거움을 알려 줄 수 없다면 읽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은 ‘논어’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에게 읽힐 만하다.


논어, 현재적 유용성 : 정치와 교육 문제

  공자는 ‘관계’속의 인간을 꿈꿨다. 또한,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 공존의 가치를 체득하고 인과 예가 실천적으로 운용되는 세상을 그려냈다. ‘논어’는 바로 그러한 공자의 사상을 담아낸 책이다. 한 두 마디로 논어를 요약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 배병삼의 주장이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있어서 공자와 맹자의 말이 자주 인용되기도 하고 비판받기도 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고전이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한 김경일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읽는다면 색다른 고전읽기가 될 것이다.

  공자를 보는 관점과 논어를 읽는 방법에 따라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일단 논어를 알고 접근해야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고전을 읽는 즐거움에 해당한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관해 논어를 해석하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현재의 관점으로 공자의 시대를 해석할 수도 없지만 시대와 상황 맥락만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공자가 가진 이상과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현재적 유용성을 가지느냐의 문제는 2차 저작자의 관점과 원전을 통한 확인 그리고 독자의 판단이 선행된 후에 논의될 수 있다.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읽힐 만한 책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공자의 의도 파악, 논어의 관한 해박한 지식, 시대를 고려한 논어에 대한 통찰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각론이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과 중립적 자세가 아쉽지만 논어에 대한 저자의 애정까지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청소년들이 공자의 시대와 ‘논어’에 관심을 갖고 ‘논어’를 살아있는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학생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육자로서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자. 

공자 말씀하시다. “첫째, 나는 학생이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 둘째, 학생이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틔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모퉁이를 들어 보여 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에겐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7장 술이편) - P. 118

공자 학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는 열린 학교로서의 면모요, 둘째는 엄격한 교육 과정이요, 셋째는 질문하여야만 대답을 내리는 교육 방식이다. -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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