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
프랑수와 다고네 외 22인 지음, 신지영 옮김 / 부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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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시를 위한 논술이 계속되는 한 올바른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어보인다. 대학에서는 아무리 뻔한 정답을 적어내는 틀에 박힌 답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하지만 논술평가의 객관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논술 평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제시문을 분석하고 논제에 따라 글을 쓰는 형태의 현행 대학 입시 논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관식 시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논술시험에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지문 독해 능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출제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다양한 배경지식과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 싶지만 평가 척도와 객관성 확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철학 논술 시험의 형식도 완고하다. 이성 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철학 교습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철학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본다. 프랑수아 다고네를 비롯한 22명이 철학적 질문들에 답하는 책 『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은 자유로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바칼로레아에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스스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말에서 20년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옹프레의 이야기는 새겨 들을 만하다. 현행 프랑스의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에 관한 분석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옮긴이 신지영은 “철학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이미 주어진 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을 비판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자기만의 답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판과 자기만의 답을 찾는 여정이 철학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결국은 철학은 우리들 삶의 과정이며 목적을 고민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일률적인 형식이나 내용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한다. 텍스트의 형식뿐만 아니라 시, 만화, 단편 소설 형태 등을 통해 철학과 비철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예술가의 행위와 철학자의 행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한다. 이런 화두들이 책머리에 소개된 후 철학적 주제별로 글들이 모여있다. ‘자연과 문화’, ‘의식, 무의식, 주체’, ‘언어, 의사소통’, ‘시간, 존재, 죽음’, ‘기술’, ‘예술과 아름다움’, ‘이성과 감성’, ‘의견, 지식, 진리’, ‘논리와 방법’, ‘신화, 과학, 철학’ 등 열 개의 주제가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이 한 개 혹은 여러 개 모여있다. 글의 형식은 앞서 설명한 대로 전통적인 철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주제를 해명하기 위한 다양하고 신선한 시도들이 선보인다. 시, 사진, 만화 등 예술의 다양한 형태가 동원된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가 예술가의 것이든 철학자의 것이든 그 고민의 깊이와 표현의 방법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어가 모든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인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텍스트에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화가, 작가, 교사, 유전학자, 철학교수, 연출가, 번역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모았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고 소략하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바칼로레아’를 이해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제시하는 문제점의 개선 방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에 선보이는 다양한 형식과 자유분방한 내용들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습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칼로레아를 위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모두 대학 입학 자격 철학 시험에서 제시되는 것들이지만 시험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형식과 조건들로 가득하다. 철학가의 사상과 이론을 암기하는 것은 죽은 철학이다. 살아가면서 철학에 대한 욕구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낡아빠진 형식에 대한 도전, 기발하고 독창적인 방식, 세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이 책의 지향점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바칼로레아의 주제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논술 주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토론하며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주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실제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과 거리가 먼 시험용 논술 대신 늘 생각하며 토론하고 책 속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대학 입시 논술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책읽기와 글쓰기가 곧 철학이며 삶의 한 방법임을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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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 사계절 지식소설 2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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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만날 때면 호기심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왕창세일’이나 ‘점포정리’같은 식상함으로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사라진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지만 저절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권으로 끝내는~’ 자극적인 책들은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건 가전제품의 매뉴얼 밖에 없지 않은가?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도 같은 맥락에서 일단 제쳐둔 책이다.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이라는 지극히 자극적이고 호기심 넘치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어떤 책일까? 목차를 훑어보자. 열 두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부터 12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은 없나요?’에 이르기까지 십대들이라면 얼른 읽고 싶을 수밖에 없는 제목들이다.

중학교 1학년 이규린이라는 여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자신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두 딸의 아버지로 자신의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장 두 장 읽다보면 가벼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데 초점을 두고 분량과 형식에도 공을 들인 책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감정을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중학교 1학년 수준에 맞추어 풀어내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 글을 쓰는 저자의 고민과 노고가 고스란히 표현과 문장에 녹아 있다. 책의 형식과 내용은 유기적으로 맞물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고루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가장 말하기 쉽지만 가자 어려운 ‘쉽고 재미 있으면서 유익하게!’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간혹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재밌있고 유쾌한 책도 아니면서 깊이도 놓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말하자면 쉽고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어렵고 딱딱할 경우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이 책은 그 경계선에 서 있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우선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구체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앞서 언급한대로 끝없이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규린이의 질문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익명의 아이디로 답을 달아주는 사람들을 통해 생각을 키워가는 형식이다.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읽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낯설음과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답변의 내용이 심리학과 철학자들의 개념적인 설명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어렵지 않게 다듬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이나 태도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랑’의 개념에서부터 구체적인 감정의 변화 그리고 키스에서 섹스에 이르는 육체적 사랑까지 다루고 있다.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엄존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감정과 욕망을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솔직한 질문과 답변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랑’. 제대로 알려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이 책은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험한 세상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도 아니고 봉건적인 순결을 강조하는 책도 아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자연스런 과정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질문이자 고민인 ‘사랑’에 대해 답하는 책이다. 한 권으로 ‘사랑’을 끝낼 수는 없지만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답변을 준비한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을 묻는 아이들에게, 유행가 가사로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권해도 좋을 만하다. 다만 이 책은 ‘사랑’의 완결판이 아니라 ‘사랑’의 출발이며 실천적 사랑의 멘토 쯤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찌 ‘사랑’을 책으로만 배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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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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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정의를 외치고 싶을 때다 있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자. 20대에 혁명을 꿈꾸지 않거나 40대에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춘기를 거치고 세상을 알아가는 사회화 과정에서 수많은 혼란을 겪는다. 부모의 영향, 가족들의 태도, 가정환경, 교우관계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사회를 보는 논리가 갖추어지면서 지독한 모순과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의 도덕적 기준과 인생의 목표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변한다. 세상을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구별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체계와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 안에서 행복과 자유를 꿈꾸는 보수적인 경향의 사람들이 있고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보수와 진보를 몇 가지 기준과 가치관의 차이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공평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노력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안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든 변화를 꿈꾸기 위해서는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정의는 도덕적 정의에 우선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든 것은 ‘돈’이 결정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물질적 가치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의’에 대한 논의는 무성했다. 철학적 관점에서 윤리학의 접근이 개인이나 실생활의 규범적 가치에 관한 문제였다면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정의는 주로 분배와 자유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의 원천이 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의와 관련한 오늘날의 주장은 거의 다 번영의 열매나 고난의 짐을 어떻게 분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를 지배하는 사고는 행복과 자유다. 그러나 경제적 분배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다 보면, 어떤 사람이 도덕적 자격을 갖추었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 P. 24

최근 ‘공정사회’라는 화두가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이 용어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 기준과 내용이 다르고 원칙과 방법이 제각각이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공정함’에 대한 합의가 없었고 ‘공정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공정한 사회를 꿈꾸고 자신은 최소한 그 피해자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과 하버드에 대한 콤플렉스가 아니라면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되기 힘든 책이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이다. 대학생을 상대로 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이야기는 쉽고 간명하다. 사례 중심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철학적 관점에서 정의를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조금 다른 미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며 그들의 전통과 가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에 그칠 우려가 있는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인의 정의감을 가장 심하게 건드린 것은 내 세금이 실패를 포상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었다. - P. 30

한국 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정치와 재벌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만들었고 그것을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기 위한 무한 경쟁 사회로 이끌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했던 책이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미국인의 정의감’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한국인의 정의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과연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한국적 가치란 무엇일까.

이 책은 결국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 것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의 지향점은 어디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미국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철학적 관점을 확인하는 데 그치고 만다. 전체 10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서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시장과 도덕, 아마누엘 칸트, 존 롤스, 소수집단우대정책, 아리스토텔레스, 충직 딜레마, 정의 공동선에 대한 저자 특유의 비판적 해석이 돋보인다. 1강의 ‘옳은 일하기’는 이 책 전체의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는데 강의 내용 곳곳에서 이 관점들이 가진 장점과 한계 그리고 반론들을 제기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관점에서가 아니라 각각의 관점들이 가지는 효용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미덕’에 방점을 찍는다. 정의는 극단적인 공리주와 자유지상주의 관점이 아니라 ‘미덕’이 주는 관점에서 정의를 설명한다.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판단과 기준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를 인간 사회에서 고민해 온 다양한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게 합의를 통해 규정지을 수도 없고 이론적 기준과 잣대로 판단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과 미래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지 오늘도 한국사회는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연 ‘공정사회’가 어떤 기준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것은 또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의 1강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각자 답해보자. 그것이 바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정의이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 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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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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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형에게.

  창밖에 어둠이 당도해 버린 일요일 저녁, 직장인에게는 아쉽고 때로는 황망스럽기도 합니다. 죽전에 사시는 어머니 집에서 자고 아파트 뒤편 산에 올랐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산에 올라본지가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릅니다. 다음 주에 미국에 계시는 외삼촌과 외할머니에게 이모들과 다녀오시기로 하고 그 준비과정이나 일정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일요일 오전에 늘 책을 보는 버릇을 들여놓은 터라 귀찮아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문득 어제 읽던 형의 산문집에서 ‘나는 요즘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느낀다’는 말이 생각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어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단국대 기숙사 뒤편까지 걷고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려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게 몸을 주신 어머니는 또 내게 더 무엇을 주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실까. 걷는 걸 싫어하시는 아버지와 달리 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에 형의 책을 마저 읽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파트 소공원의 나무들은 벌써 가을빛으로 변해버렸고 저녁 어스름의 푸른 시간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공중으로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고 산책을 나가면 작가에게 혼자 말을 걸게 됩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리고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삶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많던 문청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책을 읽기 시작하고 고등학교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하고 선후배와 몰려다니던 시절은 꿈같이 흘러, 이제는 중년을 바라보는 국어교사로 살아가는 제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순전히 형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처음으로 작가에게 편지를 써 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2007년 2월에 형의 소설 『제비를 기르다』가 나왔을 때 이화여대 후문 쪽 북카페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예스24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한 자리였지요. 글 속에서 만난, 사진으로 보던 형의 모습과 실제 모습은 오래 전부터 알던 동네 형처럼 익숙했습니다. 쑥스럽고 겸연쩍어 보였다고 생각한 건 저만의 생각이었을까요.
제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도 저와 가장 비슷한(?) 사람이 형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영화로만 만나던 배우와 며칠 동안 함께 여행을 한 것 같은 착각. 형의 내면의 풍경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유년의 기억들을 공유하며 일상의 갈피들을 펼쳐보는 일은 제게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는 산문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삶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만의 영역과 생의 감각을 느낀다고 생각하거든요. 타인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천성 탓도 있겠지만 문학은 문학으로만 만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보자마자, 왼손으로 턱을 고이고 부끄러운 듯 미소를 띤 형의 사진을 보자마자 책장을 펼쳐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틀 동안 꼬박 형의 소설들에 대해, 습성과 생각들에 대해 감염되어 버렸습니다. 유년기의 트라우마, 타자와의 관계, 여행과 글쓰기 그리고 곁에서 형을 지키는 형수의 따뜻한 말 한마디. 그 모든 것들이 뜨겁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이 사는 건 무언가 그리웁다는 말 한마디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저녁 형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을 걸고 싶어졌습니다. 화주 운주사의 와불처럼 바닷가에 누워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가는 이유를 묻고 싶어졌습니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저녁 함께 속초로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소설 속의 그 많은 여인들과 그 많은 빛과 어둠에 대해 끝없이 묻고 싶어졌습니다.

  이제 사십대 후반이 되었다는 형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내 나이도 이제 마흔을 넘겨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디선가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세월을 보내고 형의 소설을 기다리는 일이 행복합니다. 저는 요즘 문학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형의 소설을 꼭 넣어 아이들에게 형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날이 차가워집니다. 이 가을 그리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또 어디에서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고 계신가요. 부디 그 잔잔한 미소와 사람에 대한 예민한 감성으로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과 세상의 견고함을 위한 부끄러움을 보여주세요. 더 나이가 들면 다시 형의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을 돌아보고 어쩔 수 없는 시간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여전히 문학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형에게 감사드립니다.


2010년 10월 10일 형을 읽는, 독자 류대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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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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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루 종일 생각을 하며 지낸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사고하는 것은 인간의 훌륭한 특질이고,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각하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생각이 정말로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 P. 14

홍길동처럼 나와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들어 끊임없이 일하고 공부하고 진짜 나는 하루 종일 뒹굴면서 놀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해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생각하고 읽고 쓰는 날들이 반복된다.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임을 알지만 중독처럼 책에서 헤어나기 어렵거나 시간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김갑수처럼 『지구위의 작업실』을 가지고 있거나 머릿속에 커다란 상상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책을 만났다. 첫 페이지를 열고 어깨위에 죽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문장들이 들어와 박힌다. 매력적이다. ‘생각이 정말로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이 도발적인 질문에 잠시 가슴이 먹먹하다. 어느 순간부터 ‘멍’한 시간을 경멸하게 숨가쁘게 일상을 돌아본다. 치열하게, 열정적인 삶을 즐기던 모든 사람들에게 코이케 류노스케의 질문은 잠시 동작을 멈추게 한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뇌 속에 틀어박히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분노와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마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탐욕스럽고 분노할 줄 알며 때때로 어리석은 인간에게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제시하는 책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오히려 절망스럽다.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역설적 발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생각’이 병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깨달음을 주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요구한다. 몸과 마음을 조정하는 법을 통해 짜증과 불안을 없애라고 말한다. 말하기, 듣기, 보기, 쓰기와 읽기, 먹기, 버리기, 접촉하기, 기르기를 통해 저자는 인간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을 설파한다. 아주 쉽고 간결한 문장과 짧은 분량으로 장삼이사들에게 전하는 메시는 명료하다. 하지만 공감과 이해가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실천에 문제 앞에 또 한 번 좌절하지 않을까 싶다. 몰라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는데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 P. 23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간다. 그것이 굳어지는 과정이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생각은 복잡하고 많아지지만 그것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생각과 삶이 다를 수도 있고 과정과 목표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생각’이 흐르는 방향을 바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물론 실천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말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근심과 걱정과 불안을 느꼈는지. 얼마나 많은 분노와 욕망을 표출했으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따라가는 무수한 생각의 편린들을 정리하는 일이 우리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변화의 순간은 온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그 순간의 희열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너무나 원론적이고 어쩌면 따분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산을 옮기는 것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만 그것이 불가능한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변화된 모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흘려듣지 않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받아들이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생각의 방향과 흐름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라면 새롭게 시작하는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이 무수한 명상과 자기계발서의 범속한 세계를 동어반복하는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열린 마음으로 듣지 않는다면 도움이 될 리 없다. 가볍게 읽고 무거운 실천을 통해 작은 변화를 이루어보자. 그 다음은 점점 더 쉬워진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반복적인 연습과 조금씩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을 얼마나 버릴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생각하는 버릇을 고쳐볼까?

무지라는 번뇌는 마음을 실제적인 현실에서 뇌 속의 생각으로 도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한번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도 생각에만 빠져들고 만다. 늘 자신만의 생각에 틀어박힌 꽉 막힌 성격이 되는 것이다. -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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