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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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릇된 것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 P. 35

어떤 기준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책을 만나면 조금 당황스럽다. 형식과 내용의 독창성은 좋은 책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지만 잘못하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지루하고 비슷한 방식의 글쓰기보다 맛깔스럽고 재밌는 내용과 형식은 독자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세상에 태어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그런 책을 찾아 읽는 것 또한 독자들의 안목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폴 콜린스의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이라는 책을 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세계의 혁명을 꿈꾸었으나 자본주의의 상품 코드가 되어버린 체 게바라도 아니고 논쟁을 하다가 부지깽이를 휘두른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의 이야기도 아니고 기행을 일삼았던 작가나 예술가의 일대기도 아니고 『상식』(1776)과 『인권』(1791)을 썼던 미국과 프랑스의 사상적 혁명가 토마스 페인의 이야기라니?

관심을 가질만한 인물의 재탄생인지 아니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거리가 새로 발견된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영국과 미국 사람들에게 토머스 페인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급진적이고 괴팍한 형태의 ‘상식’이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면 18세기에 그가 쓴 소책자 ‘상식’의 파괴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 내용은 차치하고 그의 쓸쓸한 생애에 먼저 눈길이 간다. 상식과 인권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토머스 페인의 인생은 ‘종교’의 문제가 핵심처럼 보인다. 토머스 페인은 무신론자였을까?

그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 상식, 인권을 말할 수 없다는 논리는 아니겠지만 페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사상이나 그가 쓴 책의 내용이 아니라 바로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종교는 상식과 인권에 앞서는 걸까?

문학을 전공한 이 책의 저자 폴 콜린스는 토마스 페인이라는 실존 인물의 죽음부터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거꾸로 더듬어가는 시간여행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토마스 페인이 죽은 현실적 공간에서 출발해서 그의 유골을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한 영화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은 비극이다. 토머스 페인의 페인이 쓴 『상식』은 어떤 책인가?

왜? <상식>은 1776년 1월 10일 출간된 뒤 세 달 만에 12만부가 팔렸다. 그 뒤 3년 동안 판매량이 50만 부까지 늘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다들 책을 돌려 가며 보았다. 미국 인구가 250만이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문맹이었으니 글을 아는 사람은 모두 이 책을 읽었다고 봐야 한다.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성격을 제외하면 그 어떤 문서도 넘볼 수 없는 지위다. - P. 34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녔던 책의 저자 토마스 페인은 죽음 이후가 더 극적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의 영향을 주었고, 『인권』을 발표해 프랑스 혁명을 옹호했던 토머스 페인의 유골은 그만큼 중요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 ‘유골’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삶이, 그의 사상이 걸어온 길을 죽음 이후의 ‘유골’의 행적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저자고 말하고 싶은 진실은 아닐까?

그 진실은 여전히 유효한 토마스 페인의 사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민과 국가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가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와 자유의 의미에 대해 분명하고도 상식적인 대안을 내놓은 페인의 삶을 유골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는 아이러니! 이 책은 죽음 이후를 추적하는 기이한 방식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한 사상가를 기억하고자 한다.

“어떤 그릇된 것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 P. 35

적어도 마르크스가 나오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개혁가로 기록될 만한 인물, 토마스 페인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어떤 죽음을 맞이했든지 인류에게 인상 깊은 말들을 남겨 놓았다. 그것은 시대와 상황을 고려할 때 더없이 중요한 목소리였으며 아무나 흉내내기 어려운 용기였음을 기억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소설처럼 극적인 유골찾기를 통해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때문도 아니고 방대한 자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정교한 시간의 퍼즐 맞추기를 완성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혹은 살아야 할 미래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그보다 먼저 『상식』과 『인권』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감히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머스 페인은 바로 당신의 등 뒤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토머스 페인은 어디에 있는가?
독자여, 그가 없는 데가 어디인가? - P. 272


110309-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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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나무 아우또노미아총서 12
움베르토 마투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최호영 옮김 / 갈무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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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처음 이메일을 사용할 무렵 아이디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뒤에 붙어있는 숫자로 나이나 생일까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닉네임과 아이들로 개인의 정체성과 관심분야 그리고 전공이나 직업까지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식의힘’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인 것이다.

어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을 넘어 형이하학적 세계와 분리된 아닌 형이상학적 영역에 대한 깨달음은 아닐까 싶었다. 나를 넘어서 타인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삶의 비밀을 읽어내고 싶은 욕망이며 세상의 진실을 포착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끝없는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졌고 난삽하고 계통없는 잡식성 독서로 출발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어떤 곳인가.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그렇게 움직이는 모든 것, 행위의 근본질서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영원에 대한 도전만큼이나 부질없는 노력은 아닐까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걷다 보면 길이 생길지도 모르고 가보지 않은 길로 접어들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또 길이 아니면 어떤가.

이웃 블로거 소나기님이 보내준 책을 읽었다.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에 이어 『앎의 나무』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 다른 나의 정체가 되어버린 ‘인식의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말한 것은 모두 어느 누가 말한 것이다. - P. 33

이 책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우리가 인식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는 세상의 모든 대상을 의심하게 한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굳건하게 믿어왔던 세계에 대한 불안과 혼란으로부터 우리들의 지식과 정보와 인식방법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전체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하나의 견고한 구조물과 같다. ‘인간 인지능력의 생물학적 뿌리’라는 부제가 잘 말해주듯이 ‘앎’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결국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고민하는 책이다. 일상경험의 관찰과 행위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어 자기생성과 증식, 섭동작용을 거쳐 개통 발생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어떻게 인식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문화현상 언어적 영역으로 확산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결국 거대한 ‘앎의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책은 거대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고 생물학적 차원에서 인식의 과정에 대한 탐구이며 ‘앎’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칠레 태생의 두 학자가 쓴 이 책은 아우또노미아총서 중 하나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에 대한 심오한 성찰과 과학적 분석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알기 쉽고 간명하게 ‘앎’의 영역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접했다는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성장하는 과정의 비밀을 깨닫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과정에 따라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섬세하고 정교한 흐름으로 앎의 나무를 설명한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고정관념과 타성에 젖은 의식 깨트리기는 신선한 충격이다. 하지만 무언가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과 달리 책의 대부분은 생물학에 기반한 인간의 의식과 인식과정을 탐구하고 있어 조금 지루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기초적인 지식과 자세한 설명으로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지만 책 전체가 씨줄과 날줄처럼 조직돼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저자의 의도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의 핵심은 바로 앎을 잘못 아는 데, 앎을 모르는 데 있다. - P. 279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이제까지 확실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의심을 통해 가장 인간다운 것 중의 하나인 ‘앎’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책이다. 새로운 관점과 세계인식으로부터 또 다른 미래가 펼치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 세상 너머의 세상과 나와 우리를 넘어 선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103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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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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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모방은 정보 수집 면에서 이득이 있지만 상식을 포기하게 하기도 한다. - P. 131

인간의 삶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의 본능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제도, 규범, 문화의 틀 안에서 의식이 형성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본능적 자아에서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쳐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되고 내면화된 습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과 태도를 배우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을 익히며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견고한 사회적 편견에 좌절하기도 하며 인생관이 바뀌기도 한다. 큰 흐름, 보수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을 우리는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따지고 상식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하면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 우려가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맞서 제도와 시스템을 고쳐나가려는 노력은 외롭고 힘겨운 싸움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작은 모래 한 알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다. 그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힘과 삶의 태도의 문제다.

인간 개개인은 전체 사회에서 볼 때 작은 원자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발상.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는 물리학의 잣대로 인간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결합되어 읽는 내내 색다른 감동을 안겨준 책이다. 객관적인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사유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고 사회 현상에 대한 견해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독특한 관점이나 주관적 견해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의 문제와 나에게 어떤 이익이 주어지는가의 문제가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물질세계는 명쾌하게 해명되었을까? 과학자들은 여전히 원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불규칙한 움직임과 알 수 없는 흐름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단지 물질세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을 하나의 원자로 본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차피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인간은 나름의 법치과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름대로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변화의 패턴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리학으로 사회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충격적일 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절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람들의 경제 행위와 예측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심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모방하고 자신의 판단을 미루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오직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론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물리학의 복잡한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물리학의 원리가 사회를 해석하고 인간을 분석하는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치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결국 인간에 대한 물리학적 평가에 불과하다. 인간은 사회적 원자다. 수많은 사회 현상들을 토대로 그것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래된 관심사이다. 이 책은 그것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한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물리학자의 사회학 들여다보기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 현상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거꾸로 사회적 원자인 인간을 통해 사회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사람이 아니라 패턴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사회의 흐름을 해석하는 과정이 어떤 인문학 서적보다도 흥미롭다. 저자의 통찰력은 실제 사례를 통해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물리학의 세계에 견주어 분석하는 데서 얻어진 듯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 문학의 주제로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아질 수도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파생될 수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모든 인간과 사회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노력들이 작은 결실을 맺고 그것이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진지한 성찰과 고민만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열광했던 독자라면 이 책은 본격적으로 물리학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 위해 반드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 세상의 진실, 사회의 진실 그리고 개인의 진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 그리고 패턴과 흐름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과거의 지혜’를 되살려 흄과 스미스의 시대 사람들이 높이 쳐들었던 횃불을 이어받아, 진실이 무엇이든 그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과 확신으로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P. 255

독일의 극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78)이 1778년에 남겼던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정직한 노력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사람의 힘을 늘리는 것은 소유물이 아니라 진리 탐구이며, 이것을 통해서만 인간의 완성에 끝없이 다가갈 수 있다. - P. 255


110227-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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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과 문화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윤해동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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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행위가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고 생활의 일부가 되다가 때로는 책이 일이 되고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책이 또 다시 다른 책을 낳기도 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람도 많다.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넓은 겨울길님은 이제 읽는 단계를 넘어 자연스레 글쓰기의 단계로 넘어간 듯싶다. 두 번 만남이 모두 인상 깊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상사는 물론 삶의 방법과 태도까지 즐겁고 유쾌하며 긴 여운이 남는 대화는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한다. 또 한 분의 이웃 소나기님은 느린 호흡으로 산책하듯 책을 즐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좋고 타인의 글을 모방하거나 현학적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생각과 삶을 통해 책을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통찰력을 지닌 분이다. 꽤 긴 시간동안 블로그에 책에 관련된 글을 올렸으나 책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다. 일면식도 없는 분과의 소통과 작은 인연이 감사할 뿐이다. 연초에 소나기님이 보내온 두 권의 책 중 첫 번째 책을 읽었다.

니시카와 나가오의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는 작고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사책이다. 좋은 책은 당연히 훌륭한 저자를 전제한다. 서문에서 『국경을 넘는 방법』의 속편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학자의 깊은 사유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책이 아니라 ‘국민’의 개념과 의미부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라면 책의 의미와 내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리라. 국가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과 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이 두 용어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굳게 믿고 있는 문명과 문화의 차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한 나라의 문화라고 명명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 하나의 문명권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에 대한 반성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찰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금메달 시상식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눈물 흘리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자.

거기에 민족이 결합되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민족이란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듯이,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명명했듯이 문화만큼 모호한 개념이기도 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곧바로 문화와 연결되는 것은 일종의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아닌가. 저자는 이 개념을 일본인과 일본문화론에 적용시키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었다. SNS는 지구를 하나로 묶고 있다. 아이폰 오카리나 어플의 경우 놀랍게도 전세계 곳곳에서 오카리나 연습을 하는 사람들의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인종과 민족을 넘어 문명과 문화 그리고 민족의 구분은 또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구별짓기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역자 서문의 인상 깊은 부분 하나.

무릇 독서라는 행위는 ‘계발’에 그 핵심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명 개념은 문명 간의 위계성, 혹은 보편의 우월성을 논의의 전제로 삼습니다. 그러나 문화 개념은 개별성을 전제함으로써 각 문화의 특수성이나 차별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11022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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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 수첩 - 개인의 자유와 지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인권 교과서 세상이 보이는 지식 3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공현 지음, 안미라 옮김 / 양철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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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 곧 3월이 돌아온다. 모든 학교에서는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이 신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폭풍 전야처럼 3월 2일 아침부터 학교는 활기를 띠고 학생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모두에게 똑같은 출발이지만 누구나 같은 곳을 향해 걷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목표와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고 그만한 결과를 얻고 졸업을 한다. 이제 교문 밖에 나가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졸업생은 물론 이제 막 교문에 들어서야 하는 신입생에 이르기까지 학교는 인생의 통과의례처럼 중요한 곳이다. 용광로와 같이 뜨거운 열정과 환한 웃음으로 가득할 것 같은 학교는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공부와 시험, 경쟁과 한숨이 가득한 곳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생과 부모들은 어떻게 청소년 시기를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쩌면 거꾸로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과 태도에 따라 학교생활도 다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르다. 졸업 이후에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과 태도를 배우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개성과 능력을 기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잘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우고 깨닫는 과정이 삶이 아닌가. 그러한 삶이 바로 청소년들의 인권을 지키고 미래를 꿈꾸는 삶이 아닐까.

『청소년 인권 수첩』은 최근 학교인권조례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돌아보게 한다. 인권은 학교를 졸업하면서 알아야 할 내용이 아니다. 성장 과정에서 내면화되고 지켜나가야 하는 권리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의 선택과 판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아존중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삶의 조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긍정적인 태도와 자신감은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공부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인권은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며 조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누려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세상이 보이는 지식’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의 저널리스트이다. 인권활동가 공현이 우리 실정에 맞는 내용을 추가해서 내놓은 이 책은 작은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편하고 쉽게 이해되는 책이다. 어렵고 딱딱한 느낌이 드는 추상적인 개념을 일상생활에서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인간의 존엄성, 인권 실현을 위한 방법론, 유엔, 국제비정부기구 등 언론과 민주주의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거론되고 한국의 인권과 한국의 청소년들의 현실을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인권을 위한 실천적 용기와 책임과 권리를 이야기한다.

생각이 바뀌는 것은 산을 옮기는 일보다 어렵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갖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주체적인 고민과 사유를 거쳐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피상적인 현상, 타인의 견해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 인권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논의하는데 언론은 이념을 문제 삼는다. 논점 일탈의 오류에서 벗어나서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두발 자유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더니 또다시 과거로 돌아간 적이 있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첨예하게 맞부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존재, 통제와 억압과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 그들의 의견과 개성과 권리는 공부와 성적을 담보로 제한될 가능성이 항존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민주시민의 역량과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 교육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가 아닌가.


110220-011 
 




고백 - 10년 간의 실수와 학교 이데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아아 나는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 윌리암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1막 4장 중에서

시작은 DMZ(De-Militalized Zone비무장지대) GP(guard post전투초소)였을까? 휴전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그곳. 망원경으로 북한군 초소가 내려다보이고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관찰할 수 있는 곳에 고립된 군인들은 외롭다. 그 외로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대학생이었거나 직장인이었거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 볼 기회가 없었던 스무 살 언저리의 군인들에게 GP는 일종의 사원(寺院)이었다. ‘나’를 돌아보고 ‘너’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사회적, 역사적 관점에서 내가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대학 4년간 읽었던 책의 두 배쯤 읽은 것 같다. 휴가 나올 때마다 쌀자루에 책을 담아 집으로 부치던 기억이 새롭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었고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유일한 멘토였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수많은 책들은 내 영혼의 아버지다. 전역을 얼마 앞두고 앨빈 토플러를 만났다. ROTC에게 특혜가 주어지던 시절이라 취업은 어렵지 않았고 안정적인 금융기관에 출근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권력이동』이 보여준 미래는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정말 우연하게도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선배의 제의를 받고 출근하는 회사가 달라졌다. 책은 결국 첫 직장을 선택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자유롭고 편안한 근무조건과 그리 나쁘지 않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인터넷 SI(System Integration)업체에서 전공과 무관한 제안서를 쓰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하는 일은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2년쯤 근무하다가 평생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와 국어교사인 아내의 권유로 임용고사를 거쳐 교직에 입문했다.


서른, 신규교사 1년차 - 교사는 뭘 하는 사람이지?

젊은 남자 교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몽둥이였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학교에서 처음 맡긴 일은 학생부 생활지도. 나의 하루는 교문에서 시작되었다. 군대 위병소에 헌병이 서 있는 것처럼 학교 교문에는 생활지도 담당교사가 버티고 서 있다. 교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었는지, 머리 길이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낸다. 주눅이 든 학생들은 아침부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이름표, 넥타이, 조끼, 바지통, 치마, 머리 길이, 신발, 양말, 스타킹, 화장, 염색, 반지, 귀걸이, 가방에서 속옷 색깔에 이르기까지 군대만큼 철저하게 통제하고 감시한다. 지각한 학생은 물론 규정을 위반한 학생은 모두 운동장에 엎드리게 한 다음 몽둥이로 때리거나 토끼뜀으로 운동장을 돌게 한다. 상쾌한(?) 하루의 출발이다. 교실까지 이르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교실에 도착하면 또다시 담임 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남학생의 뒷머리가 옷깃에 닿는 순간 껌을 씹고, 염색을 하면 도둑질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걸까? 교육은 통제와 억압이 아니다. 근대 이후 신체를 통제하는 것은 정신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제러미 벤덤이 고안한 ‘판옵티콘’을 소개했다. 불꺼운 전망대에서 단 한 명의 간수가 불켜진 원형 감옥의 수많은 죄수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불안감이다. 통제된 신체는 통제된 영혼을 낳는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이다. 네모난 틀 속에 갇혀 시키는 대로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미래 사회의 ‘창조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이 아닐까?

서른 살의 1년차 교사는 폭행, 흡연, 절도, 학교 밖의 문제아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얼차려를 주고 욕하고 청소시키면서 1년을 지냈다. 담임업무와 학생부 생활지도를 함께 떠안은 채 교재연구과 수업을 해 나가는 일은 정말 버거웠다. 게다가 0교시, 8교시 매일 2시간씩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야자감독은 입가심이다. 대한민국의 교사는 뭘 하는 사람이지? 그러면서 차츰 조직생활(?)에 적응했다. ‘아~ 학교는 이런 곳이구나. 건물구조도 조직도 군대라고 생각하면 되는구나.’ 장교로 군대생활을 했던 나에게 담임은 소대장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했다.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자, 그대 이름은 담임!

그러나 아이들은 군인이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하고 예뻤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아침부터 두근거리며 출근을 한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사실이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고, 우는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은 졸업을 해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들과 만났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지만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 모두의 생각과 시스템이 변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을 때렸던 신규교사 시절보다 더 부끄러운 건 가끔씩 내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난 후의 씁쓸함과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규정이니까 지키라고 했던 순간들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난감해지곤 한다.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다, 선생들은 다 똑같다는 인식을 가지고 학교를 떠나는 많은 아이들을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좋은 사람은 누구인가?

자공이 묻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한다면 어떻습니까?”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 싫어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 공자의 『논어論語』 제 13편 ‘자로(子路)’ 중에서


혹자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지만 유교적 사대주의와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통렬한 비판일 뿐 공자의 모든 논리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인용한 공자의 말은 ‘선택’의 순간에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이다.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악한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어떻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마는 옳은 일과 그른 일은 분명히 구별할 수 있고 그 일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한다. 튀지 말라고 타이르고 중간만 하라고 충고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우리는 금세 스무살이 된다. 나이만 먹어버린 ‘어른애’가 되어 떠밀리듯 졸업장을 받고 교문을 나선다.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공부만 했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지식은 실천이다.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지식은 개인적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우리가 아닌 ‘나’만을 위한 지식으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던 농부 작가 전우익 선생님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고 말했다. 함께 나누고 모두 같이 걸어갈 수 없는 세상은 지옥이다. 현대 사회를 승자독식 사회라고 하지만 1등만 살아남은 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미래 사회는 ‘국영수’ 실력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나만의 무기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


학교 이데아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족해 족해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채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 건 좀 더 솔직해봐 …… 됐어 됐어 이젠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됐어 ……  - 서태지, <교실 이데아> 중에서

수능이 끝나고 합격의 기쁨으로 교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금세 잊히지만 한숨과 탄식, 눈물과 안타까움이 문자와 전화로 전해지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너는 공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해 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그것들을 찾아주거나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모두 똑같은 것만’ 머릿속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나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기 어렵다. 전공이 아니라 대학이 중요하고 적성과 취향보다 직업과 연봉을 감안해야 하는 현실이 모두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20대의 40%가 비정규직이다.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과 미래 사회에 대한 준비를 위해 어떤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지 대학에 가서 배우라고 하면 나의 책임이 조금 가벼워질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힌다. 어느 누구도 정답을 제시해줄 수는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책을 통해 조금 더 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 성숙을 모색해야 한다.

자기 성숙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개인으로서 내세울 장점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속한 집단인 국가, 민족, 종교, 지역, 혈연, 출신 학교를 내세운다. - ,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중에서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생득적인 지위를 통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었다. 마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순전히 우연의 결과일 뿐인 신분제도는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 자신이 속한 집단이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그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우리는 나이와 경력을 내세우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양반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동반자는 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자주한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맞으며 친구를 만나 학교에 갔다. 낡은 교문도 언덕길의 분수도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아 기분이 괜찮은 하루였다. 아침부터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차량을 통제해 주시고 학생회 임원들이 돌아가며 캠페인을 벌인다. 무단 횡단을 하거나 위험하게 도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없다. 교실에 도착하면 친구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짧은 아침 독서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학기 초에 한 권씩 가져온 학급문고만 읽어도 올해 40권의 책을 읽는다. 선생님과 함께 선정한 다양한 책들이 가까이 있어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 오늘 오후에는 단체 활동이 있는 날이다. 밴드부 친구들과 연습을 한 후 청소년 수련원에서 다른 학교 친구들과 합주가 있다.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사회 숙제를 하기로 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들』을 일고 ‘사형제 폐지’에 대한 토론이 수행 평가다. 사형제에 대한 사회, 역사적 변천 과정을 조사하고 관련된 소설, 영화는 물론이고 사회문화 교과서도 참고해야 한다. 반대를 위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예상 질문을 정리해야 한다. 논술이나 구술 면접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준비한 것으로 충분하다. 하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더라도 선배들을 보니까 공부 안하면 2학년을 넘기기가 힘들다던데 대학에 가면 열심히 공부만 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게 있었다는 데 그 시간엔 도대체 뭘 했는지 궁금하다. 기분도 전환할 겸 이번 주말에는 빨간색으로 염색이나 해볼까.

혼자 꿈을 꾸면 공상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현실은 한 번도 만만한 적이 없었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낸 지난 10년은 즐거움과 보람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얘들아 함께 걷지 않을래?


2009 수내고등학교 교지 『솔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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